미니어처리스트
제시 버튼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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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7세기 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네덜란드 상인들이 전 세계를 누비며 부를 쌓던 그 시대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인 요하네스도 상인이다. 단순히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는 이 소설의 핵심적인 사건의 중심에 서 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이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인 넬라다. 열여덟 살의 소녀인 넬라는 서른아홉 살 요하네스와 결혼해서 암스테르담에 왔다. 이 결혼이 처음에는 넬라의 귀족적 배경을 원했던 것처럼 보였는데 다른 이유가 있다. 이 단서를 책 중간에 목사의 설교 속에 넣어두었다. 그래도 충격적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간은 몇 개월 되지 않는다. 약 4개월 안에 거의 대부분 벌어진다. 시골에 살던 소녀가 집안의 부를 위해 부유한 상인의 집으로 결혼해서 들어온다. 하지만 그녀의 방문이 이 가족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시누이인 마린의 경우는 상당히 적대적이다. 하녀인 코넬라이도 그렇게 사근사근한 하녀는 아니다. 놀라운 일이 하나 있는데 흑인인 오토가 하인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는 아직 흑인들이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인종이 아니었다. 오토가 외출할 때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보통 새 여주인이 나타나거나 하면 그녀에게 아부하는 하녀들이 나온다. 하지만 이 소설 속 하녀와 하인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시누이 마린도 상당한 거리를 두고 그녀를 대한다. 이제 겨우 열여덟 살에 세상 경험이 거의 없는 넬라는 당혹스럽다. 여기에 일을 마치고 나타난 남편 요하네스도 그녀를 열렬히 상대하지 않는다. 넬라의 동네에 있었던 결혼식 이후 첫 만남인데도 깍듯한 예의를 차리고, 조금 거리를 둔다. 중년이라고 하지만 예쁘고 어린 신부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냥 피곤해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어색하다. 이때부터 상상력은 이상한 쪽으로 발전한다. 나의 상상력은 빈곤해서 진짜 이유를 찾지 못한다. 핑계라면 시대 탓 정도랄까.

 

외롭고 우울한 일상에 조그만 파문을 던져주는 것은 남편이 그녀에게 선물한 미니어처하우스다. 그녀는 이 집을 채우기 위해 미니어처리스트를 광고지에서 찾아낸다. 편지와 돈을 보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 미니어처리스트가 만든 물건들이 너무나도 뛰어나다. 실제 사람이나 사물을 작은 크기로 아주 정확하게 만들어낸다. 놀라운 기술이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이 미니어처들에 남겨져 있는 흔적들이다. 이 순간에는 아주 사실적인 이야기가 잠시 미신적인 부분으로 넘어간다. 읽는 내내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이 미니어처리스트의 진정한 능력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중 일부가 나중에 드러나지만 충분하지 않다.

 

작가는 그 시대를 아주 충실하게 재현했다. 어떤 대목을 읽을 때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한 대목을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다. 이 소설은 하나의 사건을 터트리고, 다시 이어서 다른 사건을 터트리면서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다. 여기에 미니어처들에 있던 표시들이 ‘뭐지?’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 또 마린, 프란스, 아그네스, 요하네스, 잭, 오토 등의 엮이고 꼬인 관계들은 갈등을 만들고, 사건들이 파국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이 와중에 단순한 소녀였던 넬라가 여인으로 성장한다. 사실 이 부분이 너무 급하고 빠르게 진행되면서 살짝 의문을 들기는 했다.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몇 장을 넘기지 않아 깨어졌다. 치밀한 묘사와 설명은 충실한 자료 조사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또 그 시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몇 가지 장면과 사건은 유럽이 어떤 시대를 지나왔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니어처리스트의 존재는 미궁 속으로 빠진다. 사실 이 부분 때문에 속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살짝 품었다. 한 소녀의 꿈이 깨어지고, 잔혹한 현실의 벽이 나타날 때 그녀는 조금씩 자란다. 예상하지 못한 관계도 있고, 전혀 예상 밖의 상황도 있다. 비밀이 나에게 살짝 느슨하게 다가왔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많이 남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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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
파스칼 보니파스 지음, 정상필 옮김 / 레디셋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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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으로 바라본 1945년부터 오늘날까지의 국제관계’란 설명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때 제일 궁금한 것은 지정학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지정학의 정의로 ‘지리적 환경과 정치적 현상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국가정책의 용어로 스웨덴의 정치학자 J.R. 셸렌이 1916년 국가이론 5체계의 하나로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아직도 피상적이다. 실제 내용을 읽다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 책의 구성이 지정학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과 같이 지리적으로 묶어서 정치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듯이 1945년 이후는 미국과 소련 두 나라를 중심으로 한 냉전 시대였다. 이 시대가 지난 후 미국과 소련 진영의 긴장이 완화되는 데탕트의 시대가 된다. 이 시대는 두 진영의 긴장이 완화되었다는 의미지 화합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시기 다음은 양극화 이후 세계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두 진영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를 의미한다. 이때의 양극화는 우리가 흔히 경제학적으로 말하는 부의 쏠림과는 관계가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양극화를 생각하고 읽으니 처음에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끔 다른 분야에서 똑같은 용어를 사용할 때 생기는 문제를 여기서도 겪었다.

 

위에서 말한 냉전, 데탕트, 양극화 이후의 세계 등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를 좀 안다고 생각한 나의 오만은 이 책을 읽으면서 산산조각났다. 짜깁기식 지식의 한계가 드러났다. 그것은 책의 구성과도 관계가 있다. 유럽과 미국을 먼저 풀어내고,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의 지역을 연대식으로 다룬다. 어떤 나라는 몇 줄로 끝나고, 어떤 나라는 몇 장을 할애한다. 저자가 프랑스 국적이고,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하던 곳이 유럽과 미국이다 보니 이들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특히 냉전과 데탕트 시대는 미국과 소련이 가장 핵심적이고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데탕트 시대에 벌어진 몇 가지 놀라운 사건은 소련과 공산권의 해체와 분열이다. 소련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간단히 설명할 때 왜 페레스트로이카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식민지가 해체되고, 새로운 나라가 생기면서 생긴 수많은 문제들은 아주 낯익은 장면들이었다. 소련이 주변 국가들을 지배하면서 수탈을 한 것이 아니라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였다고 했을 때 그것은 더 분명해졌다. 그리고 소련 등과 다른 방법으로 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진압한 중국의 모습은 역사의 다른 길을 보여주었다.

 

1990년대 이후 세계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민족주의가 유행하면서 인종간의 대학살이 몇 번이나 벌어졌는지 모른다. 잘 알려진대로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인종청소란 표현까지 나올 정도의 끔찍한 대학살이 벌어졌다. 물론 이 이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에는 미국의 힘이 미친다. 물론 이전과 같은 힘이 없다고 하지만 누구나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몇 가지 사실은 미국과 소련이 냉전과 데탕트 시절에 만들어 놓은 유산이다. 각 지역을 다루다 보니 무수히 많은 정보가 전달되는데 아는 것만큼 이해가 되었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현재는 핵전쟁의 위험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대립 구도는 여전히 남아 있다. 유럽 등의 서방세계 국가들의 독점이 깨졌지만 남반구 국가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다원주의 체계로 바뀌었다. 물론 이것이 서방 강대국의 몰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방세계의 독점이 무너졌다는 의미일 뿐이다. 이 다원주의 체계가 네 번째 시기가 될 것인지 저자는 묻는다. 수십 년 사이에 아주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곳도 많고, 중국 같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나라도 있다. 하지만 아직 세계는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요즘같이 무더운 것의 원인 중 하나로 꼽는 지구온난화나 봄만 되면 불어오는 황사 등의 문제만 해도 충분하다. 분명히 쉬운 책은 아니지만 1945년 이후 세계 역사를 지정학으로 간략하게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정치 문제 등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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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담꾼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
M. C. 비턴 지음, 지여울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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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제1권이다. 스코틀랜드 북부의 작은 마을 로흐두에서 펼쳐지는 살인사건을 다룬다. 로흐두는 가상의 마을이다. 현재 이 시리즈는 31권까지 나왔다. 첫 작품은 1985년도에 출간되었다. 30년 동안 시리즈가 계속 나왔다는 것은 이 시리즈의 인기를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가끔 영미권 시리즈에서 이런 긴 세월을 다룬 작품을 본다. 한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김성종의 작품 중 하나가 긴 세월 동안 나오고 있지만 상당히 기복이 심하다. 개인적으로 정말 아쉽다. 그리고 이런 긴 시리즈의 첫 권부터 읽는다는 것은 아주 큰 즐거움이다. 대부분의 시리즈가 첫 권부터 나오는 경우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리즈 첫 권이다 보니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해미시는 자원해서 이 마을에 부임했다. 그의 급여 대부분은 대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나간다. 그가 근무하는 산간지역의 로흐두 마을은 아주 조용한 곳이다. 밀렵을 제외하면 특별한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마을이다. 그런데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살해당한 사람은 낚시 교실에 참가한 교육생 중 한 명인 레이디 제인이다. 이 낚시 교실에 참가한 인원은 모두 여덟 명이다. 이 교실의 운영자는 존 카트라이트 부부다. 소설을 읽으면서 죽을 사람이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누가 죽을지 금방 알 수 있도록 레이디 제인은 낚시 교실에서 수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대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급여 등을 모두 집으로 보내는 해미시 순경이 커피를 얻어 마시러 왔을 때 시비를 건 인물이기도 하다. 아주 이기적이고 감정을 뒤흔드는 말투와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말로 낚시 교실의 수강생들을 흔들어 놓는다.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 이유를 해미시가 찾아낸다. 레이디 제인의 살인 사건을 통해 탁월한 추리와 수사 능력을 각성했다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괜히 낚시 교실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그가 작정하고 수사에 나서면서 진실은 쉽게 밝혀진다.

 

해미시 순경 시리즈라고 해서 해미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에서 가장 자주 많이 등장한 인물은 앨리스다. 그녀가 변호사인 제러미 블라이스에게 빠져 보여주는 심리 변화와 행동은 한 편의 로맨스 소설 같다. 순진한 19세 소녀가 자신의 환상과 감정에 빠져 남자에게 휘둘리는 모습은 과연 20세기 후반의 소설인가 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이와 더불어 해미시와 프리실라의 묘한 관계가 나온다. 귀족의 딸인 프리실라는 해미시에게 관심이 있지만 신분의 벽은 이 둘이 더 밀착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이 시리즈의 재미 중 하나가 바로 이 둘의 밀고당기는 연애가 아닐까? 이 둘의 연애도 현대적인 모습은 아니다.

 

낚시 교실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 낚시에 대한 설명이 많다. 낚시에 관심이 없다 보니 조금 지루하다. 하지만 이 비싼 프로그램에 참석한 사람들은 아주 열정적이다. 연어를 잡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모습이나 자신이 잡은 척하는 행동들은 아주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여덟 명이 참석했지만 작가는 이들 모두를 비중 있게 다루지는 않는다. 앞에서 말한 앨리스의 비중이 가장 많다. 그리고 제러미가 보여주는 행동들은 전형적인 바람둥이의 모습이다. 다만 앨리스가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답답한 마음이 읽는 내내 생겼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작가는 아가서 크리스티다. 해미시가 보여준 몇 가지 수사와 추리능력은 미스 마플이 연상되었다. 요즘 잔혹하고 강한 살인마가 등장하는 빠른 전개의 소설과 달리 느리고 평범한 살인범이 나온다. 해미시의 수사 과정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친척들을 이용한 정보 수집이다. 비싼 장거리 전화를 통해 정보를 모으는 그의 모습은 살짝 눈에 거슬리지만 그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가 앞으로 해결할 사건들이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고, 밑밥으로 깔아놓은 로맨스의 마지막도 궁금하다. 30년 내공의 기초를 살짝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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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통 - 죽음을 보는 눈
구사카베 요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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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통. 제목대로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무통증 환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무통증을 앓고 있는 등장인물이 있지만 그 영화와 관련이 없다. 하나의 중요한 소재일 뿐이다. 이 소설에서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일본 형법 제39조다. ‘심신상실자의 행위는, 이를 벌하지 않는다. 심신박약자의 행위는, 그 형을 경감한다.’가 법조문이다. 이미 많은 영화나 소설에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인물을 등장시켜 이 주제를 다루었다. 하지만 이 작품처럼 자극적이고 노골적이고 잔혹하지는 않았다.

 

크게 여섯 명이 이야기를 이끌고 나간다. 가장 핵심은 의사 다메요리다. 이 의사는 아주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현실적이지 않는데 아주 매력적이다. 그 능력은 환자를 진찰하면 그 인물의 병을 알고, 중병인 경우는 완치가 될 수 있는지도 같이 아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또 한 명의 천재의사가 등장한다. 시라가미다. 시라가미는 자신의 능력을 병원의 확장에 사용한다. 오만하고 도덕적 관념이 그렇게 투철하지 않다. 자신의 의료법인이 더욱 확장되길 바라는데 그 장애 요소 중 하나로 다메요리의 진료소가 등장한다. 그리고 다메요리가 보낸 환자 모두가 죽었다는 사실을 파악한다. 이 둘은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능력을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소설의 문을 여는 것은 이시카와 일가족 살인사건이다. 아주 잔혹한 네 가족 살인사건인데 단서가 없어 수사가 지지부진하다. 그러다 아내가 신문에 낸 글과 사진을 보고 시체들이 놓여 있는 모습이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현장에서 발견된 신발 크기와 모자 크기는 모순되어 있어 충분한 단서가 되지 못한다. 이 수사 현장에 참여한 하야세 형사는 자신이 체포한 범인이 형법 제39조 덕분에 풀려난 경험을 했다. 때문에 이 조항을 대단히 싫어한다. 작가는 하야세를 통해 이 법조항의 의미를 되새긴다. 새로운 경험이 쌓이면서 하야세가 변화하는데 작가는 그렇게 녹녹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인물들을 중간에서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 나미코다. 남편과 사별한 후 아들과 살다가 이상한 남편과 재혼 후 다시 이혼했다. 다메요리의 지갑을 주은 것으로 인연을 맺었다. 그녀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고, 그녀와 관계된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킨다. 그 두 사람은 바로 무통환자 이바라와 나미코의 전남편 사다다. 사다의 행동이나 심리 표현을 보면 도저히 나미코와 연결될 수 없는 인물이다. 상황이 묘하게 꼬이면서 결혼했다. 하지만 행동에 문제가 생기면서 이혼당했다. 이후 나미코 주변을 머물면서 스토킹한다. 그의 집착과 찌질하고 조악한 행동들은 읽는 내내 기분이 나빴다.

 

제목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이바라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 그가 좋아하는 사람이 둘 있다. 하나는 맹신하는 시라가미고. 다른 하나는 동경하는 나미코다. 일상에서 그는 자신의 성격 덕분에 직장에서 아주 꼼꼼한 일처리를 한다. 하지만 그의 취직은 시라가미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수술하는 장면을 보는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아주 참혹하고 잔혹한 장면으로 이어진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다. 작가가 이렇게까지 묘사하고 설명할 필요가 있었을까 할 정도다. 한 편의 공포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잔혹한 장면이 나오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의사들이 있지만 그래도 역시 다루고 있는 주제는 형법 제39조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이 주제가 마음을 흔들었다. 이전에 본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면서 나의 의견을 물었다. 쉽지 않다. 심실상실자와 심실박약자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술에 취해서, 혹은 약에 취해서 이런 사건 사고가 자주 일어나지 않았는가. 정치인들도 술에 취했다는 핑계를 얼마나 많이 대었는가. 음주운전 사고도 마찬가지다. 물론 소설은 이보다 더 잔혹한 살인을 다루고 있다. 선의의 피해자를 막아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피해자 가족을 생각하면 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시카와 가족 살인사건의 범인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조금 더 나간다. 반전을 위한 장치를 만든 것이다. 하야세 형사의 마음과 시선을 따라가면 형범 제39조가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대목들이다. 현직의사의 너무 사실적인 묘사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논쟁거리를 만들었다는 점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전 작품도 역시 논쟁적이고 자극적이었다. 단순한 오락소설로 읽을 수도 있지만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주제다. 점점 범죄자 연령이 낮아지고, 사건이 잔혹해지는 요즘은 인권을 위해 만든 법들의 허점이 자주 드러난다. 작가가 마지막에 남겨 놓은 여운은 독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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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별곡 - 혼돈의 시대
차현진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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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중앙은행은 현재 한국은행이다. 이 책은 한국은행의 역사 중 일부를 다루고 있다. 그 시기는 1897년 대한제국 선포에서 1950년 한국은행 설립까지다. 실제 대한민국의 독립적인 한국은행은 이 시기 이후다. 원래는 1997년까지 다루려고 했다고 한다. 저자는 일제강점기의 조선은행도 현재의 한국은행과 연관성이 있다고 말한다. 은밀히 따지면 이 둘은 성격이 다르다. 책에도 나오듯이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은 식민지 조선을 통치, 운용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조선은행을 공부하는 것은 근대, 현대 중앙은행의 변천사를 알 수 있게 만든다.

 

중앙은행 역사를 다루고 있어 경제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요즘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추고, 동결시키는 이유를 저자는 설명하지 않는다. 사실 이 책에서 이런 부분이 나오길 조금은 기대했는데 현재 한국은행 직원인 것을 간과했다. 낮아진 금리가 대출자들에게는 아주 좋은 소식이지만 그것이 결국 부동산 대출로 이어지면서 부동산 거품과 엄청나게 거대한 개인 부채로 이어진 부분은 경제에 엄청난 부담이다. 이를 둘러싼 수많은 비평과 비난이 있지만 금리는 하향세를 유지하고 있다. 제1은행권에서는 대출금리가 확실한 담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낮아졌지만 신용이 좋지 못한 사람들은 변화가 없거나 더 올라갔다. 대부업이 성행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이런 거시경제정책을 조금은 직접적으로 다루어주었으면 했는데 생략되어 아쉽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조선은행을 한국 중앙은행의 한 단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 살고 있던 선조들의 삶과 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도 중점적으로 다루듯이 이 시대 조선은행은 일제의 목적에 따라 은행이 운영되면서 독립성이나 조선의 경제 안정과는 아무른 연관성이 없었다. 일제의 만주 침략과 중국 본토 침공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전락한 모양세다. 또 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경제 용어인 금본위제와 은본위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초보자들에게는 더욱 어렵게 다가온다. 하지만 단순히 조선은행의 역사만 다루지 않고, 그 시대의 세계 경제와 각 나라의 중앙은행을 같이 다루면서 세계의 중앙은행 변천사도 같이 들여다본다.

 

중앙은행은 정권과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물론 그 나라의 경제나 경제정책과 동떨어져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정권의 목적에 봉사하면 그 존립 이유가 위태로워진다. 저자는 일본은행과 조선은행의 역사를 다루면서 이 부분을 아주 잘 표현해주고 있다. 한 나라의 화폐가 군대에서 발행하는 군표와 다름없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중앙은행이 통화량 조절에 실패하면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은 나라들 사례를 들려줄 때 이것이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안다. 저자가 일제의 패망이 없었다면 통화정책의 실패로 인한 엄청난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말할 때 순간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중앙SUNDAY>에 연재한 글을 낸 책이다. 연재할 때부터 각 장의 첫 부분에 주제, 시대배경 등과 같은 것을 요약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이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각 장은 현재 이야기로 시작하여 그 시절 세계와 일본과 조선의 중앙은행에 대한 정보를 쏟아낸다. 흥미로운 정보의 조각들을 엮어 재미난 이야기로 만든 것도 많다. 조선은행의 폐지를 둘러싸고 대장성과 군부가 대립한 것도 새로운 사실이다. 군부가 만주로 진출하고, 세계 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면서 조선은행은 실질적으로 중앙은행의 역할을 상실했다. 이 부분을 시대순으로 조목조목 짚어가는데 상당히 새롭고 놀라웠다. 경제학과 통화정책 관련 수업 교재로 사용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중앙은행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가득한 속에서 현대 한국은행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는 흥미롭다. 재무부와의 대결은 현재 진행형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조선은행 직원들이 한국은행 설립에 관여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승진이 되지 않았던 인물들에게 해방은 새로운 기회였다. 그리고 새로운 중앙은행 이론은 열정적인 직원들의 학습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 부분은 그 열정에 살짝 감화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조선은행 직원에서 한국은행 직원으로 신분세탁했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진짜 한국은행 이야기는 이제부터인데 책은 여기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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