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 - 의도된 선택인가, 어리석은 판단인가! 선택이 만들어낸 어리석음의 역사
제임스 F. 웰스 지음, 박수철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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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도 인간이다. 언제나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 뒤돌아보면 그것이 분명히 어리석은 판단이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것이 어리석은 판단이란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런 것이 나만의 문제는 분명 아니다. 인류의 역사를 뒤적이면 수없이 나온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역사의 흐름을 하나로 묶었다. 어리석음이란 키워드를 통해 역사를 본다. 그렇게 본 역사는 결코 긍정과 희망으로 가득 찰 수가 없다. 당연히 역사 속 사건이나 인물들의 공적보다 그들의 실수 등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해 현대까지 이어진다. 이 긴 역사를 겨우 600여 쪽 분량으로 압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역사의 큰 흐름과 중요 인물들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그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알 수 없는 몇 가지 중요한 인물과 사건들이 같이 나온다. 이런 방대한 지식을 압축하다 보면 수많은 저작들의 인용이 없을 수 없다. 이 책의 주석 분량도 대단하다. 책을 읽다 보면 수시로 나오는 주석 번호 때문에 이 책들의 인용, 발췌가 혹시 책의 전부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

 

어리석음을 ‘학습에 의해 변질된 학습’, 즉 ‘인위적으로 변질된 학습’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에 중요한 용어가 하나 더 나온다. 스키마(Schema)다. 도식, 외부 환경에 적응하도록 환경을 조작하는 감각적·행동적·인지적 기술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이 단어는 어리석음을 지적할 때마다 나온다.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려주는 역사 속에서 스키마는 그 시대와 그 사람의 한계가 되기도 한다. 역사가 알려주는 실패를 반복하는 것은 그가 사실을 몰라 그럴 수도 있지만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오만함도 한몫한다. 물론 이것도 어리석음의 한 형태다.

 

어리석음의 역사에 대한 개략적 검토는 흥미로운 동시에 많은 공부할 거리를 제공한다. 몰랐던 사실이나 정보는 기존 지식과 교차해서 검증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종교 개혁에 대한 평가는 특히 몰랐던 부분이 많다. 서양의 지성이 근대적이고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는 정치적 중요성보다 개혁가들의 삶과 그것에서 파생한 문제들에 대한 것들이 더 눈길을 끌었다. 장점에 묻힌 부작용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반드시 밖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기독교 등의 수많은 문제들이 그 부작용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스인들이 ‘어떻게?’보다 ‘왜?’에 질문을 던진 것을 논제로 삼았을 때 나 또한 ‘왜?’에 더 많이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왜?’라는 질문이 일으킨 끝없는 소모적 논쟁과 비교해 ‘어떻게?’는 과학으로 이어졌다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자들을 비난했을 때 또 한 번 혼란에 빠졌다. 뭐지?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결과론에 너무 치우친 것은 아닐까? 혹은 너무 과장해서 상황을 풀어내고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시간의 흐름을 따라 어리석음의 역사는 이어진다.

 

이성과 계몽의 시대도 지나가고, 두 번의 세계대전이 끝이 났지만 인간의 어리석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먼 과거나 다른 나라의 예를 들 것도 없이 한국의 정치사만 보아도 우리의 어리석음은 반복적이다. 지역 정당에 빠져 현실과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다시 그들을 찍고 믿는 반복을 계속하고 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서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 속도가 너무 더디다. 현대 역사 쪽으로 넘어오면서 러시아 공격을 둘러싼 두 정치인의 모습이 겹쳐진 것은 너무 당연한 반응이다.

 

가볍게 읽기는 힘든 책이다. 두껍고 어렵고 번역도 반듯하지 않다. 저자 자신도 많은 인용으로 글을 이어가다 보니 그 사이사이를 독자의 상상력이나 지식으로 채워야 한다. 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그대로 적용되는 책이다.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을 모른다면 저자가 신랄하게 휘두르는 칼에 자신이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현재 우리의 선택과 판단은 더 힘들어진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기에 이런 일이 더 어려워진다. 어리석음을 강조하기 위해 선택한 단어와 어휘는 또 다른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역사 속에 가정을 집어넣었을 때는 더 심하다. 이 책에는 이런 가정이 결코 적지 않다. 읽을 때 유념해야 할 부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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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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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산문집을 두 번째 읽는다. 처음 읽은 것은 이 책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바다의 기별>이었다. 상당히 인상적으로 읽은 산문집이었는데 기억을 더듬으면 몇 개 남는 것이 없었다. 이런 현상은 다른 산문집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정협지의 작가)에 대한 글과 기억은 아주 엇갈려 있었다. 왜 김승옥은 떠오르고, 김광주는 왜 잊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김승옥에 대한 나의 기억이 더 강렬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대체적으로 나의 기억이나 그의 이미지는 이번 산문집을 읽으면서 꽤 많이 바뀌었고, 다른 산문집으로 다시 눈길이 간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다른 작가의 글에서도 늘 있어 왔다.

 

이번에 느낀 것은 그의 글이 딱딱하다는 것보다 그가 파고드는 사물의 이치가 상당히 흥미로웠다는 것이다. 현상을 보이는 그대로 적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이치를 파고든다. 라면 하나를 끓이는 일부터 못을 박는 일까지 일상에서 큰 고민 없이 행하는 모든 것을 그는 그냥 그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이번에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연장에 대한 그의 애착이다. 재미난 에피소드 중에는 치과 의사의 도구에 매혹되어 치대에 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도 있다. 포철에 가서 용광로를 본 것이나 도기를 만드는 곳에서 불과 물과 흙의 상호작용에 대해 적은 글은 깊은 사유와 통찰이 없다면 쉽지 않은 글이다.

 

밥, 돈, 몸, 길, 글. 이렇게 5부로 나누어 편집되었다. 이전에 나온 세 권의 산문집에 새롭게 쓴 글이 합쳐져서 나왔다. 세월호의 글은 지금도 그 아픔과 고통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고, 이것을 두고 벌인 정치판의 추악한 행위들은 아직도 치가 떨린다. 밥과 돈에 대한 연작들은 아주 현실적이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 연작은 은유와 풍자와 현실 비판 등을 곁들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성들을 질타한다. 특히 여자를 물화해서 잘 표현했다가 반전처럼 뒤집는 글솜씨는 읽는 재미를 듬뿍 안겨주었다.

 

소방관 서형진 씨의 죽음을 다룬 글은 그들의 노력과 희생에 다시금 숙연해졌다. 사고 후 일상으로 돌아온 풍경을 보여줄 때 삶의 냉혹함을 깨닫는다. 어릴 때라면 분노하였겠지만 그들의 일상은 또 다른 문제이다보니 그냥 넘어간다. 아들의 군 입대를 둘러싼 글은 이 시대 한국을 살아가는 수많은 청춘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모나 청년들은 애국이란 허상에 자신의 몸을 받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의 서민 코스프레를 질타하는 그의 논리는 우리 정치의 한계이자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나도 이제 서울로 상경한지 거의 30년이 되었다. 고향이란 단어는 나의 어린 시절 살던 곳을 의미한다면 상경하기 전 그곳일 것이다. 지금도 명절 등에 내려가면 낯익은 건물과 바뀐 풍경 속에서 기억과 추억을 더듬는다. 서울 토박이 김훈도 북촌의 기억을 더듬지만 일상적인 감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 이 고향 이야기가 남대문 방화로 이어지고, 그 방화를 저지른 노인의 과거를 알려줄 때 개발독재의 진한 그림자가 엿보였다. 그가 새롭게 정착한 일산의 눈부시고 급속한 변화는 오랫동안 그곳을 다닌 나에게도 낯선 모습이다. 단순히 이야기가 아닌 역사 사실을 찾아 같이 묶어 풀었기에 더 깊이 공감한다.

 

셋이란 숫자를 보면 삼위일체니 고스톱 등이 먼저 떠오르는데 그의 글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 깊이를 더한다. 까치집과 김해의 비행기 사고를 묶어 풀어낸 글은 세월호의 침몰 같은 물리학적 깊이로 나아가지 않아 조금 아쉬웠지만 삶의 불가해성을 인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글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이것이 가장 멋지게 드러나는 대목 중 하나가 소설 <임꺽정>과 칠장사를 묶은 글이다. 고형렬의 연어에 대한 글은 아주 매력적인데 실제 재간된 것을 읽는 나에게는 아주 힘든 책읽기였다.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 선생을 본 기억은 그 시대의 한 모습을 아주 인상적이면서도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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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린터 - 언더월드
정이안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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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르 소설에서 멋진 작품이 나왔다. 처음에는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읽으면서 완전히 빠졌다. 1권짜리 소설로 알았는데 3부작이다. 제목처럼 읽는데 가속도가 붙는다. 어떻게 보면 너무 많이 나간 것 같지만 다음에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따라 1부의 작품은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매년 한 권씩 나온다고 하니 나의 멍청한 기억력이 그때와 제목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거대한 설정이 가끔 한국 장르 소설의 고질병을 따라가지 않았으면 한다. 바로 용두사미의 마무리다.

 

단이가 화자로 나와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지하철에 갇힌 단이가 사건을 직접 마주한다면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되는 대통령과 국정원 요원 현국이 또 다른 하나의 시점을 제공한다. 분량에서 단이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현국은 왜 이런 문제가 생겼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한 그의 노력과 한 개인과 집단의 거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3부작의 첫 권이다 보니 많은 것이 가려져 있다. 특히 이번 소설의 마무리 장면에서는 의문을 더 강화시킨다. 그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등장하면서 관계를 꼬기 때문이다.

 

강단이, 지태, 연아는 한 형제처럼 자랐다. 서로 친한 부모님들이 함께 놀러갔다가 교통사고로 모두 죽었다. 이 소식을 들은 지태의 친엄마가 이들을 같이 키웠다. 이들은 모두 그녀를 엄마라고 부른다. 아주 특별한 존재다. 어릴 때 부모를 잃은 고통으로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아주 단편적인 정보 밖에 나오지 않지만 이들의 유대는 아주 특별하다. 이 특별한 유대는 이들이 갑자기 발생한 지하철 테러를 헤쳐 나가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엄마를 구하기 위해 아주 위험한 행동을 한다. 물론 이것이 새로운 사건과 진실을 마주하는 계기가 된다.

 

강단이는 스프린터였다. 그것도 세계 최정상 선수였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려는 순간 도핑테스트에 걸려 트랙에서 끌려나온다. 열아홉 살 고등학생에게 이 사건은 꿈을 완전히 접게 만드는 사건이다. 꿈을 접기 위한 달리기를 한 번 시도한다. 그것은 지하철 첫 칸에서 마지막 칸까지 달리는 것이다. 문이 열리면 달리고, 닫히기 전에 들어오는 시도다. 당연히 성공한다. 2호선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전철이 멈추고, 전기가 나간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때부터다. 지하철은 알 수 없는 생명체에게 공격을 받고, 사람들은 죽는다. 달아날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구한다는 것은 사치다. 하지만 이런 현장에서도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노력들이 있다.

 

완전히 희생적이지는 않지만 개인의 양심을 덜 수 있을 만큼 돕는다. 지하철 출입구가 무너져 다친 사람들이 많지만 현실적으로 그들 모두를 도울 수는 없다. 한 임산부를 도운 것도 그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터지고, 인간의 이기적 욕심들이 폭발하면서 선의는 그대로 묻혀버린다. 자신의 생존이 최우선이다. 괴물들은 어딘가에서 나타나 사람을 죽이고, 먹는다. 이성은 공포에 질식된다. 단이 혼자였다면 아마도 금방 괴물에게 먹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지태와 연아가 있다. 혼자만의 생존이 아니라 함께 도와가면서 이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하는 형제가 있다. 여기에 지하철에서 살아가는 아홉 살 소녀 화니가 함께 한다.

 

작가는 무서운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넣었다. 괴물이 사람을 먹는 장면을 보여주고, 사지가 찢긴 채로 등장한다. 군인들과의 대결은 이성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공포가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명확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을 때 그 공포는 더욱 증폭된다. 그리고 권력자들에게 민중은 한 명 한 명 개인의 생명체가 아닌 하나의 대상일 뿐이다. 진실을 숨긴 채 허위정보만 돌아다니게 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고 한다. 비극이 더 커진다. 하지만 이 비극은 자신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를 중간에 언급한 것도 이 사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하는 말도 알아서 살라는 것이다. 정보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채.

 

액션, 모험, 공포, sf적 장치, 음모론, 덕후 문화 등 많은 요소가 녹아 있다. 그 요소 하나하나가 이야기 속에서 엮이고 풀린다. 철덕이 단이 일행으로 엄마에게 인도하는 것이나, 밀덕이 동시 테러의 불가능성을 역설하는 등 덕후들은 현실의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 위에서 모험하고 액션을 펼치고 공포를 느끼는 인물들은 단이 일행이다. 그리고 그들을 현실세계와 연결해주는 것은 연이의 SNS다. 재미있는 것 중 하나는 유언비어가 현실로 증명되는 것이다. 이 현실이 단순한 서술인지 아니면 작가의 의도가 개입된 장치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시리즈가 이어지면 더 분명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멋지게 시작한 시리즈 1부인데 과연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이것을 이어갈지 벌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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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스쿨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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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리처 최신작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 시리즈를 참으로 순서없이 읽었다. 출간된 순서로 읽었던 적도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읽지 않은 작품도 상당히 있다. 책을 더 많이 읽을수록 더 많이 읽지 못하는 시리즈가 늘어난다. 아는 작가와 시리즈가 늘어나고, 이 모든 것을 읽기에 시간이 부족한 탓이다. 그래도 이렇게 한권씩이나마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다행이고 반갑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1996년 어느 날로 돌아가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순서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다른 작품을 읽다가 이번 이야기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기존 출판사가 출간을 중단했고, 오픈하우스로 넘어오면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가끔 나의 기억은 혼란을 일으킨다. 그 중 하나가 잭 리처의 액션이다. 거구라는 이미지와 그의 액션 신들이 이 이미지를 굳게 만들었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리처의 액션이 너무 적다고 생각한 것은 이 때문이다. 소소한 액션은 있지만 뭔가 큰 한 방은 없다. 왠지 모르게 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느낌이라고 할까. 아니면 그의 뛰어난 지적 능력을 폄하해온 것일까? 기억보다는 다른 작품을 읽으면서 다시 되새기고 싶은 부분이다.

 

1996년 35세 헌병 소령 잭 리처는 훈장을 받는다. 그 후 바로 다른 사건을 위해 차출된다. 그곳에서 FBI와 CIA 요원을 만난다. 이 세 명이 모인 것은 하나의 사건을 풀기 위해서다. 독일 함부르크에 심어둔 스파이가 전달한 메세이 하나 때문이다. “그 미국인이 1억 달러를 요구합니다.” 테러 조직이 지불하고 받을 것이 무엇이기에 1억 달러라 요구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미국인은 누굴까? 이 두 가지가 소설 중반까지 분위기를 이끌어나간다. 이 황당한 문제를 풀기 위해 접선 당시 다른 사건에 투입되었던 세 곳의 정예요원이 차출되었다. 가장 먼저 혐의를 벗어났기에 선택당한 것이다.

 

이 부분까지 읽고 가장 먼 든 생각은 FBI와 CIA의 협력이 펼쳐질 것이란 기대였다. 하지만 이 기대는 사실상 빠르게 사라졌다. 접선의 장소인 함부르크로 리처와 그의 하사관 니글리 상사가 오면서 이 두 조직은 하나의 배경으로 변했다. 대신 함부르크 경찰 그리즈만이 수사 파트너로 등장한다. 이 연결을 이어주는 인물은 1억 달러를 요구한 그 미국인이다. 그가 저지른 살인사건이 둘을 이어준 것이다. 독자들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진행되는 덕분에 금방 알지만 등장인물들은 아직 그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시차가 읽는 내내 답답함과 아쉬움을 전달해줬다. 긴박감을 조성할 수 있는 대목이 빠진 것이다.

 

1억 달러로 팔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당연히 핵무기이다. 그런데 미국은 핵무기 관리법 등을 말하며 이 가능성을 별로 다루지 않는다. 일반 무기는 너무 양이나 부피가 크다. 아직 인터넷이 완전히 대중화되기 전이라 바이러스나 특별한 프로그램도 가능성이 낮다. 화학무기도 고려 대상일 텐데 왠지 모르게 빠져있다. 이 비밀을 풀기 위해 용의자를 찾고, 리처의 번뜩이는 착상으로 그 답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1억 달러의 비밀을 알 수 없다. 리처와 니글리의 수사와 조사는 계속 된다.

 

리처의 액션이 많이 억제된 것은 그들이 쫓는 사건과 함부르크라는 공간 탓이다. 결코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사건이고, 괜히 사고를 일으켰다고 외교문제로 비화되면 첫 번째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리처의 액션은 그를 찝쩍거리는 네오나치 몇 명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아쉬운 부분이다. 액션을 억제하다 보니 다른 쪽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 중 하나가 접선 당사자의 등장과 행동이다. 그가 벌이는 사건에 비해 그 마지막은 너무 무력한데 소설만으로는 그 긴장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외교라는 틀 속에 갇힌 리처가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야생적인 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가 지닌 매력은 변함없이 전달된다. 이전 작품보다 조금 약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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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보다 따뜻한
와일리 캐시 지음, 홍지로 옮김 / 네버모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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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기대했던 가독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나의 산만함이 한 역할을 한 것도 있지만 조금은 밋밋한 전개가 이것을 부채질했다. 화자가 세 명인데 처음에는 이것을 몰랐다. 아홉 살 소년이 화자라는 착각을 한 탓이다. 이런 착각이 몇 개의 문장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고, 바뀌는 화자는 조금 더 적응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솔직히 처음부터 강한 충격을 주는 소설이 아니다. 인물과 관계에 대한 두터운 바탕을 쌓아올린 뒤 순식간에 파국으로 이끌어간다. 이 과정을 보면서 그들에 닥칠 비극을 알게 되고, 운명 같은 삶의 관계가 엮이면서 이어진다.

 

애들라이드 라일은 노부인이다. 챔블리스의 교회에 다니다가 한 신도가 방울뱀에 물려 죽는 것을 보고 발길을 끊었다. 그 죽음은 은폐되었고, 목사는 라일을 위협한다. 마을에서 오랫동안 산파로 아이들을 받아온 그녀는 이제는 교회 밖에서 아이들을 돌본다. 혹시 교회에서 일어날 사건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교회 밖 관찰자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그녀는 스텀프의 죽음을 보고, 숨겨진 사실을 알지만 그 어떤 진실을 입밖으로 내뱉지 못한다. 독자들은 그녀의 속내와 감정의 표현과 과거사만 볼 수 있다. 이 과거사에서 또 다른 사실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제스 홀은 아홉 살 소년이고, 스텀프의 동생이다. 이 소년은 또 다른 시각에서 사건을 보여준다. 스텀프에게 있었던 사건과 그 후에 벌어지는 몇 가지 비극의 현장에 있음으로써 산증인이 된다. 처음 형에게 가해진 폭력에서 그가 내뱉은 한 마디는 광신의 무리에게는 기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신들이 믿고자 하는 것만 믿고 보는 이들에게 사실의 무게는 아주 가볍다. 그리고 그가 본 불륜의 현장은 이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다. 아직 어리고 겁이 많은 소년이 사실을 제때, 제대로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안관 클렘 베이필드는 노년이다. 그의 과거사 또한 결코 순탄하지 않다. 이 집안의 비극은 홀 집안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보안관이고, 스텀프의 죽음을 제대로 알고 싶어한다. 부검은 많은 것을 알려주지만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직접 듣고 싶어한다. 그는 챔블리스의 과거도 알고 있다. 라일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만 그녀는 두려워할 뿐이다. 스텀프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역할은 제스의 목격과 부검 결과가 맡는다. 신의 권능을 외치는 무리에게 인간의 법이 다가간다. 광신과 맹신으로 무장한 이들은 그에게 진실을 말해주려는 의지조차 없다.

 

이 세 명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삶과 현실의 사건을 바라본다. 스텀프의 죽음은 신의 권능을 빌려 자행된 살인이다. 자폐에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소년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이미 이런 살인을 저질러온 그이기에, 모성보다는 신의 권능 아래 살기를 바라는 엄마 때문에 이 비극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비극을 설명하기 위해 그 지역의 맹신적인 종교애를 앞에 풀어놓고, 이성이 얼마나 허약한 실체인지 보여준다. 예정된 파국과 과거의 비극들이 하나씩 드러날 때 이 마을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물론 늘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 소설에서 종교에 대한 맹신과 광신에 가려진 이야기 하나가 있다. 벤과 줄리의 부부관계다. 어쩌면 이 모든 비극은 이 둘의 불안한 관계에서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가 교회에 가서 맹신적인 믿음을 보여줄 때도, 불륜을 저지를 때도, 아내와의 유대와 사랑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줄리의 과거 속에 맹신의 씨앗이 있었다고 해도 그가 좀더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았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가장 쉬운 방법인 운명 탓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관계를 만든 것은 그 두 사람이다. 비극의 현장에서 줄리가 보여준 행동은 부부라는 관계가 얼마나 허울적인지, 광신이 얼마나 모성애보다 강한지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작가의 후기들이다. 보통의 후기와 달리 그가 이 소설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어떤 작가의 영향을 받았는지, 제목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등이 알려준다. 그의 후기를 읽다가 발견한 한 작가의 작품이 한국에 딱 한 권 번역되었고, 그것도 절판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중고 거래 가격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고, 부디 요즘 아주 가끔 가는 헌책방에서 이 책을 봤을 때 그 제목을 기억하기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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