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너 클럽
사스키아 노르트 지음, 이원열 옮김 / 박하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정말 매혹적인 광고 문구를 가졌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위기의 주부들>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상상해봐라. 그것이 바로 《디너 클럽》이다!” 이런 표현은 하이스미스가 보여준 심리 묘사를 좋아하고, <위기의 주부들>에서 나타나는 막장 드라마를 즐겼던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매혹적이다. 그리고 흔치 않는 네덜란드 스릴러란 점도 관심을 끌었다. 자극적인 표지도 아주 인상적이다. 이런 멋진 포장은 과도한 기대를 품게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기대는 조금 과했다. 취향 탓도 있지만 마무리로 이어지는 과정이 조금 느슨하고 긴박감이 조금 떨어졌다.

 

긴박감이 떨어지는 부분을 멋지게 채우는 부분들이 있다. 그것은 인간들의 관계와 멋진 심리 묘사다. 카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은 하나의 모임 속에 감추어진 욕망과 속내를 아주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엮이고 꼬이고 뒤틀린 관계는 하나의 파국을 통해 확대된다. 순진하면 자신의 속내를 알게 모르게 드러내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이것은 질타의 대상이 된다. 순수한 우정이 계속 될 것 같았던 모임 속에 욕망이 꿈틀거리고, 거짓과 비밀이 난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이 부분을 놓고 보면 광고 문구와 딱 맞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환상 중 하나가 한적한 전원생활이다. 카렌 부부가 교외로 나간 것도 이런 환상이 작용했다. 하지만 현실은 지루하고 지겹다. 이때 만난 한네커가 다른 여자들을 소개해주고, 이들이 하나의 모임을 만든다. 디너 클럽이다. 여자들만의 모임이었으면 문제가 덜 생겼을 텐데 남편들도 함께 한다. 동등한 관계가 유지된다면 멋진 모임으로 지속될 수 있었겠지만 성인들의 모임은 감추어진 욕망들이 알게 모르게 표출될 수밖에 없다. 카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강하게 시몬에게 성적으로 끌린다. 그가 보여준 과감한 행동을 제지할 생각조차 않는다. 오히려 즐긴다. 이런 모임이 오래간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이런 목적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친구 중 한 명의 집에 불이 난다. 남편 에베르트는 죽고, 아내 바베터와 아이들은 살아난다. 다행스런 일이지만 얼마 후 이 모임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한네커가 죽는다. 자살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평소 행동을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한 가지 비밀이 드러난다. 에베르트와 한네커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이 둘의 관계가 깨어졌지만 이 불륜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기에 여형사가 끼어들면서 평온한 듯 보였던 관계의 실제 모습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진실과 믿음보다 여형사가 흘린 한 마디가 더 큰 작용을 한 것이다. 2년 동안 그들이 쌓아올린 우정이란 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이지 알려준다.

 

기본적으로 에베르트와 한네커의 죽음을 추적하는 설정이지만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카렌의 욕망과 인간관계와 그 관계에 대한 심리 묘사다. 특히 시몬을 둘러싼 욕망은 아주 노골적이고 자극적이다. “미첼은 나 때문이 아니라 돈, 그리고 시몬이 그에게 펼쳐 보여준 장밋빛 미래에 흥분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시몬, 바로 그에 대한 생각 때문에 흥분했다.” 돈과 육체적 욕망은 언제나 사람들을 타락으로 이끈다. 이성의 고삐가 잠시라도 풀리면 그 틈새로 쉴 새 없이 들어온다. 한 번은 두 번으로,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한네커의 죽음과 잘못된 정보는 이 디너 클럽의 모래성을 가차없이 무너트린다. 카렌이 생각했던 친목 모임의 성격이 한 번에 드러난 것이다. “나는 이 집단 안에서 자 자신을 잃고 있었다. 따스함, 서로에 대한 사랑, 이 모든 것은 내 머릿속에서만 있었다.” 그리고 다시 느낀다.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캐릭터, 외모, 결혼 생활과 가족을 샅샅이 분석하고, 완전히 박살을 내버리는 일은 흔했다. 그런 대화를 나눌 때면 늘 내가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이제 내가 쫓겨나고 보니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게임을 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이 늦은 깨달음은 늦었지만 삶의 방향을 바꾸는데 충분하다.

 

누군가가 죽는 스릴러에서 범인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빼놓을 수 없다. 한 남자를 계속해서 가리키지만 왠지 어설프다. 이 남자를 뒤지는 형사의 행동도 그렇게 치밀하거나 강한 의지가 엿보이지 않는다. 카렌의 수사가 너무 쉽게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형사나 다른 가족들의 노력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게 된다. 가족은 정신이 없었다고 핑계를 댈 수 있지만 경찰은 어떨까? 자살이란 선입견에 빠져 더 파헤칠 마음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많은 추리소설을 봐서 현실을 왜곡하는 것일까? 이런 것과 달리 욕망과 관계를 아주 멋지게 묘사한 부분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노비아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52
모르텐 뒤르 지음, 라스 호네만 그림, 윤지원 옮김 / 지양어린이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다. 분량도 많지 않지만 그림으로 가득해 한달음에 끝까지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다. 현실에 있었던 이야기를 저자가 상상을 조금 덧붙여 풀어내었기 때문이다. 현실의 아픔과 비극은 그것을 경험하지 않은 나에게 피상적이지만 조금만 그 역사적 배경을 알게 되면 예상하지 못한 묵직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그렇다. 이 슬픈 이야기는 시리아 내전이란 참혹한 현실을 알아야만 그 깊이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슬픈 이야기와 그림만으로는 그것의 반도 알 수 없다.

 

2015년 터키의 한 해수욕장에서 세 살 소년의 주검이 발견되었다. 시리아 난민 어린이다. 이전까지 다른 나라의 불행한 역사가 이 사건을 계기로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흔히 말하는 시리아 난민 문제가 공식적으로 세계인들에게 부각된 것이다. 이 그림책은 이 소년의 죽음에서 모티브와 주제를 얻었다. 한 소녀 아미나를 등장시켜 왜 그녀가 작은 배를 타고 위험한 망망대해를 떠돌게 되었는지 보여주면서 한 소녀의 죽음 이면에 있는 한 국가의 비극을 아주 잘 보여준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장면들 없이도 한 소녀의 익사 과정과 과거를 배치하면서 강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현실의 참혹함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비극은 언제나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다. 내전이 있었다고 해도 어린 소녀에게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한다면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최소한 아미나에게는 그랬다. 엄마와의 술래잡기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함께 먹은 음식이 제대로 재료가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얼마나 따뜻한 기억이었는지 등이 간결한 그림과 더불어 잘 드러난다. 풍랑 속에 침몰하는 배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아미나의 기억이 연결되는 순간 작은 기대와 희망을 품게 되지만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작가에게 이런 희망은 무의미하다. 다만 이 소녀의 짧은 행적을 통해 그 나라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분명하게 보여줄 뿐이다.

 

술래잡기는 들키지 않기 위한 게임이 아니다. 누군가가 찾아주길 바라는 게임이다. “나를 찾아줘”란 대사는 한 소녀의 절규인 동시에 시리아 내전의 참혹한 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작은 희망을 의미한다. 제노비아란 제목도 시리아의 유명했던 여왕의 이름에서 빌려왔는데 이 모든 것들은 과거의 영광일 뿐이다. 아미나의 어머니가 딸에게 바란 것이 이 제노비아 여왕 같이 당당하게 사는 것이지만 현실은 절망적인 참혹함만 보여줄 뿐이다. 마지막에 제노비아 호의 침몰을 보여주면서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런 간결한 장면과 배치를 통해 현실을 똑바로 보게 한다. 그리고 그 현실의 슬픔과 분노를 느끼고, 이 시리아 난민을 다른 시각에서 보고 생각하게 만든다.

 

대상 연령을 초등학생으로 잡았는데 이 그림책을 읽고 난 후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그들이 품게 될 의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또 어떨지도. 과연 이 초등학생들이 얼마나 공감할지도. 역사를 알고, 그 참혹한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면 그냥 슬픈 이야기에 그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금 더 나이가 든 사람에게 더 맞는 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니면 어른에게 더 잘 어울리는(?) 책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엔딩으로 만나요
샤를로테 루카스 지음, 서유리 옮김 / 북펌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 작가의 전작 <당신의 완벽한 1년>을 읽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후 조금 더 로맨스 소설에 관대해졌다. 그렇다고 열심히 찾아서 읽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이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보고 얼마나 기대했던가. 전작처럼 두툼한 분량으로 나를 압도하지만 실제 읽다보면 그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생각보다 빨리 진도가 쑥쑥 나갔고, 두 남녀의 결합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까 하는 기대를 계속 품게 되었다. 이 기대는 약간의 아쉬움을 동반한 만족감으로 이어졌다.

 

전작이 ‘다이어리’를 통해 한 여자의 목소리를 내었다면 이번에는 ‘블로그’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엘라는 블로그에 자신이 원하는 해피엔딩 결말을 써서 올린다. 현실의 무거움보다 해피엔딩이라는 아름다운 결말을 추구한다. 그녀의 이 행동은 많은 독자를 불러온다. 실제 영화나 소설 등을 보고 그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 바뀐 결말에 엘라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원작의 문체나 흐름을 깨트리는 않는 수준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넷이란 매체 덕분에 반응은 금방 올라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명의 댓글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녀의 이 결말에 열광한다.

 

그녀의 남자 친구 필립이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결혼 생각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그녀에게 발견된 한 장의 쪽지는 이 행복을 깨트리기 충분하다. 하룻밤의 불륜이 있었다. 그녀와의 결혼을 반대한다. 이보다 더 문제는 이 일이 있은 후 청혼을 했다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남자 친구에게 의존했던 그녀의 삶이 산산조각난다. 남자 친구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한 남자와 충돌한다. 자전거는 부서지고 그녀는 잠시 정신을 잃는다. 부딪힌 남자를 찾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신발과 지갑만이 놓여 있을 뿐이다. 남자를 찾다가 지갑 속 주소로 간다. 여기서 또 한 번 남자가 충돌하고, 남자는 병원에 실려간다. 이렇게 엘라는 오스카를 만난다.

 

기억을 잃은 남자와 거짓말을 하는 여자의 동거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일어난다. 팔까지 다쳐 불편하고 과거 기억도 못하는 남자에게 가정관리사인 엘라는 딱 맞는 선택이다. 남자 친구와 살면서 자신의 삶을 잃은 엘라에게 오스카의 큰집과 그를 돕는 일은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한다. 다만 문제라면 그녀가 가끔 딴 생각에 빠져 사고 비슷한 것을 친다는 정도랄까. 특히 운전할 때 그녀가 보여준 위험한 행동은 팔이 불편한 오스카가 직접 운전해야 할 정도다. 잃은 기억을 그렇게 갈망하지 않는 남자와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길 바라는 이 둘은 생각보다 훨씬 멋진 콤비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제목에서부터 해피엔딩의 기운이 풀풀 날리는 이 소설은 각 단계마다 하나의 미스터리를 집어넣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오스카의 기억상실과 그의 아내와 아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 그리고 왜 그가 그렇게 변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들. 필립이 다시 엘라에게 관심이 보일 때 알게 모르게 가까워진 오스카의 등장은 은연중에 분위기를 살짝 바꾼다. 오스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엘라의 행동은 탐정을 닮았지만 어설프다. 이 어설픔은 오스카의 기억상실이 상쇄시켜준다. 여기에 작가의 재치 있는 문장과 인용은 읽는 재미까지 덧붙여준다.

 

전체적으로 잘 읽히고 재밌다. 반가운 인물들도 등장한다. 전작의 주인공들인 요나단 그리프와 한나가 카메오로 나온다. 이들의 등장을 보면서 다음 이야기에서는 또 어떤 인물이 카메오로 등장할까 살짝 추측해본다. 혹시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엘라 블로그의 현실주의자가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이미 두 편의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들이 현실보다 자신들의 바람을 더 강하게 나타내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독히 냉소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이 나와 새로운 로맨스를 보여줘도 재밌을 것 같다. 이번에도 느낀 것이지만 잘 쓴 로맨스는 나의 취향과도 맞아떨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80년대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
정규웅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의 후기를 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미 60년대와 70년대 문인들을 다룬 책이 나왔었다. 관심을 가지고 검색하니 비슷한 제목으로 출간된 책이 보인다. 이렇게 문인들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이들이 나의 삶 한 곳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문학 소년으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소설과 시 등을 읽으면서 자랐다. 학창 시절 의무감 비슷하게 읽었던 수많은 한국 문학은 이제 기억이 희미하지만 은연중에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물론 그 자부심이란 것이 특별히 자랑할 것은 아니다. 단지 읽었다는 그 자체를 의미할 뿐이니까.

 

80년대라고 하지만 이 책 속에 나오는 문인들의 활동이 그 시대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전부터 시작하여 90년대를 넘나든 작가나 시인도 적지 않다. 그리고 재밌는 사실 중 하나는 이 책에서 다룬 대부분의 작가들이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저자가 그들을 이야기하는데 조금 더 편한 부분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한 문인의 삶을 몇 쪽의 짧은 이야기로 간략하게 추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고, 오해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의 나열만으로 부족한 것을 자신의 기억과 추억 등으로 채웠는데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다.

 

대부분의 작가가 한 장으로 끝나는데 두 명만 분량이 조금 더 된다. 소설가 한수산과 시인 기형도다. 기형도의 경우 학창 시절 좋아했던 시인이다. 아마 나의 암울하고 우울했던 20대와 그 시가 아주 잘 맞아떨어져서 그런지 모르겠다. 저자가 기형도의 직장 상사였다는 부분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한수산 필화사건은 이름만 들었지 내용은 잘 모르는 것이었다. 이 책을 통해 그 이면을 아주 잘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 사건과 저자가 직접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 <군함도>로 화려하게 문단에 복귀했는데 반가운 일이다.

 

대부분 한두 권 정도 읽은 작가나 시인들이다. 하지만 조금 낯선 이름도 보인다. 한때 한국 문학 전집에 나오지 않은 몇몇의 경우나 사지 않은 작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방송작가로 더 이름이 높거나 역사 소설가의 경우는 특히 읽지 않은 경우가 눈에 들어온다. 평론가의 글은 당연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역시 저자들의 작품들이다.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읽은 책이 나올 때면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물론 대부분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리고 저자의 문학 기자 경험 등에서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글동네의 재미난 에피소드들이다. 아직 저자의 나이에 도달하려면 아득한 나이지만 그립다는 표현에 동의하는 것은 내 독서의 뿌리가 바로 이들에게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문단에도 불어온 me too 열풍은 문단의 썩은 부분을 아주 보여준다. 존경했던 노 시인과 작가들의 말년 몰락은 한때 그들을 올려보았던 나를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90년대 한국 문학을 읽으면서 사변적으로 흘러가던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한 이후 한동안 뜸했던 것을 떠올리면 이 간략한 기억 속 이야기들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숨겨져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회장 자리를 놓고 벌어진 다툼이 짧게 표현되었지만 실제 이 과정은 아주 보기 흉했을 것이다. 그때는 관행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글 속에서 행간을 다 읽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이 책 속에서 다룬 작가들 중 몇 사람은 한때 거의 전작까지 나아간 적이 있다. 아니 그 당시는 전작이었는데 이후 다른 작가에 빠지면서 몇 권씩 놓쳤다. 이런 작가들과 함께 늘 관심이 있었지만 그냥 지나간 작가, 대표작을 읽지 못한 작가 등을 떠올리면서 순간순간 즐거운 추억여행을 했다. 어떤 이름은 낯설었지만 작품 이름을 보고 아! 감탄한 적도 있다. 이럴 때 나의 모자란 기억력을 탓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립고 반가운 작가들의 이름을 보면서 집에 있는 책더미 속에 파묻힌 책들을 한 번 휙 둘러보고 싶어졌다. 이런 후일담에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을 보면 나이를 점점 먹는 모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데뷔작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재밌게 읽었다. 특별한 이야기가 담긴 소설은 아닌데 조용히 가슴 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담백한 문체와 차분한 구성은 어느 순간 나를 사로잡아버렸다. 그리고 긴 여운을 남겼다. 늘 그렇듯이 작가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책 제목은 책상 위에 놓아둔 책 때문에 자주 봤다. 그 소설의 작가란 것을 알고 얼마나 기대했던가. 그런데 분량이 지난번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분량이 많지 않아서인지, 책이 준 매력 덕분인지 늦은 밤을 달려 한 번에 모두 읽었다.

 

전작에서 건축사무소 직원을 다루면서 건축에 대해 널어놓았는데 이번에는 문학 편집자를 내세웠다. 편집자가 주인공이라면 문학에 대한 장광설이라도 한 번 나와야 하는데 소설 등보다 집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 그래서인지 앞부분을 읽을 때 주인공 다다시의 직업을 살짝 잊은 적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집을 꾸미려는 노력과 열정은 읽는 내내 이어지는데 나에게는 조금 낯선 느낌이다. 나 자신도 책을 좋아하고, 많은 책을 수없이 사 모았지만 어떤 구체적인 집의 모양을 제대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누군가의 서재 등을 볼 때 부러워할 뿐이다. 당연히 북유럽풍 가구도 관심이 없다.

 

간결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혼을 했다.” 이 문장을 보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 이혼했는지, 이혼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혼 이후의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 등. 이 한 문장을 던진 후 십오 년의 결혼 생활과 아내의 직업 등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나온다. 딱 거기까지다. 어떤 감정의 기복이나 강한 다툼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잔잔하고 고요하다. 집을 두고 나왔는데도 그의 삶은 오히려 더 고요해 보인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집을 열심히 찾았고, 그 결실을 맺었다. 오래된 고택이고, 집주인의 소노다라고 불리는 노부인이다. 아들이 있는 따뜻한 미국으로 떠나기 위해 싼 가격에 집을 세준 것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때부터다.

 

우연히 들른 국수집에서 예전 불륜의 대상이었던 가나를 본다. 기혼자였던 연인의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둘은 헤어졌다. 우연한 만남은 한 통의 메일로 인해 횟수가 늘어난다. 이 만남 속에 다다시의 감정은 요동친다. 가기중심주의적인 심리 상태는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가능성을 탐구하고, 기대를 품는다. 결코 활동적이지 않은 그의 삶을 생각하면 마음의 변화는 심한 편이다. 이 글들을 읽으면서 한때 내 삶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누군가를 짝사랑했을 때, 소개팅을 하고 집으로 간 후 다시 전화를 하려고 했을 당시의 나. 하지만 작가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강렬하고 자극적인 상황을 연출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조금 밋밋한 듯하지만 정제된 문장들과 구성들이 이것을 잊게 만든다.

 

다다시와 사나의 만남은 어느 정도 사이를 두고 있다. 이 사이를 어떻게 봐야할까? 예의와 감정의 충돌이 눈에 들어온다. 다다시가 성큼 한 발 내딛지 않는 것이 불만이지만 이 소심함이, 주저함이, 때로는 신중함이 된다. 헤어진 후 꺼진 듯한 불씨가 조금씩 살아난다고 해야 하나. 이 둘의 만남은 사나의 아버지로 인한 변수도 있다. 이 관계들을 보면서 중년 이후의 연애는 생각할 것이 많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이상과 열정만 좇기에는 너무 많은 경험을 한 것이다. 그래도 감정이 이어져 있고, 의지가 있다면 청춘의 열정보다 훨씬 오래간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볼 때 더욱 느낄 수 있다.

 

다다시가 선택한 목조주택은 현실적으로 살아가는데 아주 불편하다. 지하실에서 곱등이가 떨어지는 장면이나 웃풍이 심해 겨울이면 춥다는 말 등은 현대의 편리함에 젖어 있는 우리에게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집을 조금씩 개조하는 그의 모습과 열정은 밖에서 보는 것 이상이다. 그의 독신 생활을 우아하다고 한 직장 동료의 말을 비틀어 만든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다시 자신은 결코 우아한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를 보는 친구들이나 독자는 삶의 여유를 집과 책에 쏟는 그가 우아해보인다. 아니 우아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현실의 늪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이 늪을 어떻게 지나갈 것인가는 온전히 그의 선택이다. 마지막 장면은 그 선택 중 하나인데 고개를 끄덕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