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터스 컷 - 살인을 생중계합니다
우타노 쇼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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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읽는 우타노 쇼고의 소설이다. 서술트릭으로 나에게 다가왔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다. 다른 소설을 읽고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직 그 마음은 변함없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 바뀌겠지만. 이번 소설은 트릭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에 더 신경을 썼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전 작품과 다른 시도를 했다고 하는데 이때까지 읽은 작품과는 다른 방식이다. 첫 장을 읽을 때는 책소개와 다른 분위기라 뭐지? 하는 마음이 더 많았다. 두 번째 장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느낌은 사라졌다.

 

젊은이들의 폭주가 한때의 유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연출을 위한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돈을 벌기 위해 연출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모든 것이 의도된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처음 빨래방의 모습과 식당의 진상 고객 행동은 폭주라기보다 악의 가득한 행동이다. 이런 일행 중 한 명에게 누군가가 가위로 공격했을 때는 당연히 그가 죽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리고 이 공격자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만 실력이 되지 않는 미용사 이야기다. 팔로우가 한 명도 없는 트위터를 하면서 자기 속에 쌓인 감정을 토해낸다. 그러다 우발적인 사건 하나가 발생한다. 한 이방인의 죽음이다. 이 죽음이 그에게 새로운 살인의 길을 열어준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보통 주인공은 경찰이나 살인범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경찰과 살인범은 아주 약한 조연이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MET방송국 하청업체의 PD 하세미다. 그는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고타로 등에게 사건 사고를 만들고, 그것을 찍어라고 말한다. 이 영상을 편집해 방송에 내보내 크게 성공한다. 첫 장에서 젊은이들의 폭주는 바로 하세미의 요구에 의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 연출이 언제나 PD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돌발적으로 고타로에 대한 연쇄살인범의 공격이 벌어지기도 하니까. 다행이라면 고타로는 어깨를 다친 정도로 그친다. 문제는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하세미가 보여준 행동들이다.

 

시청률에 목을 매는 방송국 특성 상 특종은 어쩔 수 없다. 고타로에 대한 공격과 그가 발견한 명함 등을 경찰에 바로 보내지 않고 방송에 내보낼 생각부터 먼저 한다. 미용사 가와시마 모토키의 전 직장을 찾아가고, 그의 집을 방문한다. 이때만 해도 그가 연쇄살인범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곳에서 그의 어머니와 한 남자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도 그는 신고보다 방송이 먼저다. 특종은 달콤했지만 경찰 등이 밝혀낸 사실은 오히려 방송국을 질타하게 되고. 하세미는 정직된다. 이 과정에서 정직원과의 차별이 일어난다. 이것이 또 다른 사건을 연출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들었다.

 

작가는 각 장의 분위기를 다르게 표현하면서 빠르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재밌는 것은 하세미가 생각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이미 시작하고 있고, 경찰은 조직의 힘으로 더 많은 정보를 밝혀낸다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모토키의 트위터 계정이 밝혀진 후 집단지성의 힘이 발휘되어 많은 것이 알려지는 과정은 너무나도 낯익은 모습이다. 어느 순간 그 모습을 감춘 모토키를 찾아내어 떨어진 자신의 위신을 세우려는 하세미의 노력은 아주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진다. 이 시도와 다른 시도의 실패가 한 개인과 조직의 힘을 느끼게 만들었다. 중요한 지점에서 SNS를 활용한 설정과 시청률 경쟁 등은 방송 등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 방송인의 욕망이 만들어낸 다양한 사건들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작은 문제일 수 있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다른 문제다. 이것이 반복되다 보면 실수도 일어난다. 같은 포맷으로 진행하다보면 시청자들은 식상해한다.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고, 이것이 문제를 일으킨다. 이 과정을 아주 잘 보여준다. 서술 트릭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작가답게 이야기 중간 중간 어색한 부분을 집어넣고, 마지막에 강한 반전을 한 방 터트린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전통 미스터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도 또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다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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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 몸도 마음도 내 맘 같지 않은 어른들을 위한 본격 운동 장려 에세이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지수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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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나의 나이가 떠올랐고, 작가 이름을 보고 선택하게 되었다. 운동할 나이가 지난 지 한참 되었지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 누구처럼 술을 마시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술이나 다른 이유 때문을 운동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단지 운동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이 운동할 시간에 책을 읽자는 주의 때문이다. 뭐 한때 너무 튀어나온 뱃살과 저질 체력 때문에 걷기 운동을 몇 개월 한 적이 있지만 비가 오고, 바람 불고, 술 한 잔 했다는 이유로 중단하게 되었다. 그 다음은 작가가 말한 것처럼 게을러져도 될 것 같은 마음이 점점 자라면서 나를 삼키고 말았다. 그 결과는 근육량 감소, 내장지방 증가, 대사증후군 등이다.

 

이 책을 선택할 때 기대한 것은 작가가 운동할 나이가 되었으니 어떤 식으로 운동을 배워나가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얼마 전에 읽은 헌책방을 돌면서 배우고 감탄했던 것처럼 이런 저런 운동을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달렸고, 첫 장부터 마라톤 완주 이야기가 나온다. 뭐지? 하는 당혹감이 찾아온다. 예상한 것과 너무 다른 이야기라 조금 놀랐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완주를 조금씩 풀어내었는데 솔직히 대단했다. 하프 마라톤도 쉽지 않고, 10KM 마라톤조차 힘겨운 사람들이 태반인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 중년 아줌마 뭐야? 하는 놀람과 감탄이 절로 나온다. 물론 이렇게 완주하기 전 매주 10킬로미터 이상을 달렸다는 이력이 있지만.

 

2011년 2월부터 2015년 가을까지 자신이 경험한 마라톤과 요가와 트레일 러닝과 등산 등을 기록했다. 등산을 빼면 하나도 해 본 적이 없다. 트레일 러닝이 군대의 산악구보와 비슷해 보이지만 산에서 뛰어본 적이 없다. 등산하면서 잠시 달린 적은 있지만. 작가는 매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 가장 꾸준히 참가하는 마라톤은 오키나와 나하 마라톤이다. 뛰는 것보다 그곳에서 만날 사람과 술자리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지만 마라톤이 아니라도 그곳을 방문하는 것은 가능하다. 어쩌면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한 핑계가 술자리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나하 마라톤의 인기가 점점 높아져 선착순이었을 때나 추첨에 당첨되었을 때 기뻐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의심은 확신으로 변한다.

 

헬스클럽 런닝머신을 한두 번 달린 적이 있다. 모니터로 드라마 등을 보면서 달렸지만 똑같은 속도와 변함없는 모습 등이 너무 지겨웠다. 힘도 들었다. 그래서 작원 공원을 빠르게 걷는 운동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결론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몇 개월 하다 중단되었다. 작가는 스포츠센터에 등록하고, 복싱도 배운다. 이런 꾸준함이 대단하다. 작가의 말처럼 복근을 꾸준히 단련하여 멋진 복근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변함없는 체형을 유지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달리기를 한 후 다리의 근육량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나처럼 하체가 무너지고 있는 사람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무직의 나태함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같은 곳을 달리고, 새로운 운동을 배우는 그녀의 모습은 멋지다. 달리면서 걷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는 과정은 심히 공감하게 되고, 마지막 단계에서 맥주를 외칠 때 고개를 끄덕인다. 등산하면서 힘듦을 경험하지만 정상에서 느낀 즐거움이 다시 힘든 등산으로 이끄는 과정은 아련한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베어풋 러닝에서는 맨발로 등산하면 몸에 좋다고 하면서 산을 올라갔다는 아는 사람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리고 즐겁게 다녀온 등산 이후 잘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면서 근육통에 시달렸다는 간결한 말에 ‘나도’라는 공감을 드러낸다. 나이트 하이킹의 한 부분에서는 어린 시절 산 길에서 경험했던 일들이 떠올랐고, 보르도에서 펼쳐진 메독 마라톤의 기발한 운영은 ‘이런 이벤트도 있구나!’하고 감탄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다양한 공감과 감탄을 자아내게 된 데는 당연히 작가의 노력과 솔직한 감상이 곁들여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당장 운동할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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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Zero - 나의 모든 것이 감시 당하고 있다
마크 엘스베르크 지음, 백종유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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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터넷, 정보화 사회, 빅데이터, 인공지능, CCTV, 스마트폰 등은 현대 사회를 대변하는 용어들이다. 손에서 잠시만 스마트폰을 놓아두어도 불안감에 휩싸이는 현대인들에게 이 용어들은 너무나도 친숙하다. 인터넷이 대중화된 것이 겨우 이십 몇 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언제나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나 자신도 스마트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분노하고 감정이 격해진다. 이런 사회에서 자신이 가진 정보가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자본으로 바뀐다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알지만 무시하거나 너무나도 많이 털린 개인정보 탓에 무감각해졌다. 가끔은 이런 정보를 팔아 돈으로 바꾸기도 한다. 이런 현실 세계를 바탕으로 작가는 하나의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 우리에게 긴장감과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준다.

 

CCTV를 보는 입장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예전 CSI 드라마를 볼 때 이 정보를 통해 범인을 추적하는 것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좋은 일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나를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불쾌하다. 흔히 다루어지는 소재처럼 악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의 상황에 따라 도구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신시아가 스마트 안경을 착용하고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개인정보가 바로 떠올랐다. 개인의 익명성이 사라졌는데 이 과정 속에는 개인들이 자신의 정보를 팔거나 업데이트한 것과 관계있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신기한 일이겠지만 이런 정보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나 이 정보가 알려지기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주 기분 나쁠 것이다. 이 장면 하나로 작가는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극단적 상황 하나를 경고한다.

 

제로라는 단체는 감시 사회에 대한 경고를 꾸준히 올렸다. 그러다 휴가 중인 미 대통령을 드론으로 촬영한다. 순간적으로 대통령 경호에 구멍이 생겼고, 이 장면들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하나의 이벤트가 그들로 하여금 세계인의 시선을 끈다. 동시에 미국에서는 테러 단체로 불린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이 단체를 쫓는 미국 정보조직을 활약을 그렸겠지만 작가는 제로가 알렸던 감시 사회에 더 초점을 맞춘다. 그 시작 중 하나로 신시아가 회사에서 받은 스마트안경을 빌린 딸의 친구 중 한 명이 수배자를 쫓다가 죽게 되는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프로미라는 프로그램이 전면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하나씩 보여준다.

 

회사에서 제로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 했던 신시아가 딸의 친구가 죽은 사건을 겪으면서 딸 비올라의 바뀐 생활의 원인을 알게 된다. 앱을 통해 자신의 정보를 팔고, 앱의 코치를 받아 자신의 가치를 조금씩 높인다. 정보가 돈이란 단순히 사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선량한 방향으로만 앱이 작용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앱의 지시를 따른다는 설정은 다른 문제를 나을 수밖에 없다. 거의 2억 명이 사용하는 앱이니 개개인에게 어떤 특정한 역할을 지시할 수 없겠지만 알고리즘을 바꾸면 프로그래머의 의도가 앱 사용자에게 작용한다. 물론 그 사용자는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아주 세련된 세뇌작업이다. 이 사건 때문에 제로를 뒤쫓는 신시아의 기획은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 해고 통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때 신시아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조건으로 광고가 들어온다. 

 

현재의 복잡한 인터넷 세계에서 익명성은 점점 사라진다. 내가 올린 글이나 정보가 광대한 인터넷 상에서 누군가에 의해 저장되고 가공된다. 이미 십대들이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사용한 사진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언론 기사가 나왔다. CCTV로 교통정보를 보는 정도에 머무는 나와 달리 이미 정보는 어딘가에 축적되고 있다. CCTV가 없는 사각지대만을 골라 다닌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외부와 연결만 되어 있다면 특정한 인물을 뒤따르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고화질영상이란 조건이 붙지만 말이다. 이것 외에 개인들이 자신의 장비를 가지고 특정한 인물을 쫓는 것도 가능하다. 1인 방송 시대에 이런 영상도 돈이 된다. 해시태그가 붙은 사진과 영상들이 SNS 등을 타고 범람하는 현상은 이제 일상적이다.

 

이런 광대한 정보 사회 속에서 개인들은 배후 세력에 의해 휘둘린다. 더 많은 감시와 조작을 원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 <1984>를 인용한 것보다 더한 세상이 왔다. 처음에 악처럼 보였던 제로가 어느 순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회사의 가치를 더 높이려는 개인 혹은 조직은 자신들의 방해물을 없애는데 주저함이 없다. 제로의 정체를 파헤치는 사람들과 프로미의 정체를 둘러싼 갈등 등은 긴장감을 불어넣고 속도감을 높인다. 음모는 권력과 정보를 가진 자들이 펼치고, 신시아와 제로 등은 이것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것이 감시 가능한 사회에서 인간이 벗어날 수 있는 곳은 편리함이 사라진 곳이다. 인터넷이 없는 공간이다. 인공위성조차 조사할 수 없는 곳이다. 과연 이런 곳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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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 - 듣도 보도 못한 쁘띠 SF
이선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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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독특한 SF소설이 한 편 나왔다. 본격 전원 SF란 문구가 보이는데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전원일기>가 떠올랐다. 소설 속 드라마 <농사의 전설> 때문이다. 몇 사람의 이미지가 겹쳐 보이는데 작가의 노골적인 풍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풍자는 소설 끝까지 변함없이 유지된다. 한국 방송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제목들이 곳곳에서 보이고, 캐릭터는 조금 바뀌어서 등장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설정 몇 가지는 기존에 SF소설하면 가졌던 과학지식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어떻게 보면 황당하지만 이 기이한 SF에서는 그렇게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즐기게 된다.

 

장수 프로그램 <농사의 전설> 출연진들이 라비다 행성으로 납치된다. 라비다 행성에서 유행하는 지구 프로그램이 <농사의 전설>이다. 라비다 행성의 주식은 <소군>이란 식물과 동물의 결합물이다. 나무에서 자라다가 땅에 떨어져 움직이는데 이것을 벗겨 먹는다. 그런데 행성감기에 걸리면서 이 소군들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억지로 떨어트리면 설익는다. 라비다 행성의 농업사령관 띵이 이들을 데리고 온다. 소군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다. 방송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설정인데 우리의 일상에서 이런 허점을 노린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가. 또 출연진은 띵의 등장을 몰래카메라 정도로 생각한다. 속는 척하는 행동을 하지만 진짜 납치되었다.

 

농사에 대해 무지한 연예인들이 라비다 행성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먹을 것이라고는 통조림 밖에 없다. 농사 지식을 가진 인물이라고는 블루베리 농사짓는 것을 도운 조조조연 정도다. 그런데 이 행성에서는 지구의 아이돌 재이니가 아주 큰 인기을 얻는다. 노래도, 춤도, 연기도 되지 않는 그녀지만 라비다 행성 등에서는 초우주아이돌이다. 바뀐 환경과 문화가 한 사람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녀의 팬클럽이 찾아와서 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누고 돌아가는 일이 항상 있다. 재이니가 바란 것은 실제 아빠를 찾기 위해 연예계에 데뷔한 것이 전부인데 말이다.

 

조세열은 나이 오십이지만 얼굴 사기꾼으로 불릴 정도로 동안이다. 인기의 정점을 찍었지만 계속 하락세다. 이 소설에서 띵과 함께 주연으로 활약하는데 아주 큰 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다른 출연진의 분량도 어느 정도 유지하기 때문이다. 김수미를 연상시키는 출연진과 티격태격하는 장면들은 작은 에피소드를 만든다. 이들의 대화 속에 밝혀지는 삶의 이면은 연예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조세열에게는 숨겨진 과거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딸 재이니다. 이들의 관계가 밖으로 드러나는 과정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상상력을 뛰어넘고 일상의 허점 속으로 파고든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만화적인 상상력이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놀라운 설정은 띵의 라비다 행성이다. 순수하고 느긋한 삶을 사는 이들인데 순간적인 판단 실수도 한다. 이 때문에 생긴 문제 중 하나가 행성감기다. 또 자기정화를 위해 오랫동안 떠나있는데 이 기간이 도대체 얼마인지 알 수 없다. 행성감기 때문에 식량이 부족해지자 육체공유법이란 것을 만드는데 한 사람의 몸속에 세 명의 뇌를 넣는다. 물론 우리가 가진 것 같은 뇌의 용량과 모양은 아니다. 라비다인들은 세 번째 손이 있어 큰일을 볼 때 마사지를 해서 도움을 준다. 반가움을 표시하기 위해 세 손을 다 드는 경우도 있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소군>이고, 더 황당한 것은 우주선이다. 우리의 물리학 이론을 뛰어넘은 이 우주선은 자의식도 있고, 소재도 다양하다. 천으로 만든 우주선도 있는데 접어서 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다. 이런 황당한 설정들에 불쾌함과 거부감이 강하지 않다면 이 블랙 풍자 코미디는 즐겁게 즐길 수 있다. 가끔 물리학의 세계를 벗어난 SF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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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히샴 마타르 지음, 김병순 옮김 / 돌베개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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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분 수상작이다. 수상 이력이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고? 논픽션에서 다루는 소재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리비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 정확한 위치도, 이 나라의 독재자가 카다피란 것도 몰랐다. 카다피가 독재자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랍의 나라 중 하나로만 알고 있었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외국인들이 한국을 거의 모른다고 뭐라고 할 수 없다. 역사를 좀 안다고 말하는 나 자신이 이 정도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나.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한국과 다르지만 비슷한 점도 있는 리비아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귀환. 히샴 마타르가 33년의 시간을 지나 고국 리비아로 돌아온다. 이미 세계적인 작가가 된 그이지만 리비아에서 그의 소설은 금서다. 2012년 3월 카이로 국제공항을 떠난 그의 동행은 아내와 어머니다. 이 공항에서 시작하여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히샴과 그의 아버지와 리비아의 역사를 조용히 풀어낸다. 그 내용은 아주 비현실적인 모습을 띠는데 구성이나 진행 방식이 소설과도 닮았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있었던 역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역사다. 그의 바람은 아버지 자발라 마타르의 생사여부다.

 

자발라 마타르는 1939년생이다. 카다피의 쿠데타에 처음에는 호의적인 시선을 보였지만 그의 정체를 알고 곧 반체제 인사가 된다. 이 부분은 박정희 쿠데타를 떠올린다. 그의 주 활동무대는 카이로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집트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카다피에게 넘겨진다. 그날은 1990년 3월 12일이다. 1993년 아버지의 편지가 가족에게 전달되지만 1996년 이후 소식이 끊겼다. 1996년 6월 29일 아부살림 교도소에서 정치범 1270명이 학살되었다. 심정적으로는 이때 아버지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시기에 그를 만났다는 목격자가 나타난다. 진실은 목격자의 증언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한다.

 

히샴은 돌아온 고향에서 친척들을 만난다. 그들을 통해 아버지와 삼촌 등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촌 동생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들려줄 때 내전의 비극이 한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볼 수 있다. 그리고 이 현실 사이에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반체제 인사의 가족이 되어 겪게 된 위험이나 근대 및 현대 역사 속 리비아의 모습 등 말이다. 더불어 히샴이 아버지의 소식을 듣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 노력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등도. 이탈리아의 식민지였던 과거는 완전히 새로웠다. 히샴의 할아버지 이야기는 우리들의 선조들이 어떤 독립운동을 했었는지 떠올려보게 만든다.

 

히샴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친척들을 만나 듣게 되는 이야기는 한 무리로 묶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개성을 부여한다.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 리비아의 민중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카다피가 어떤 폭압과 학살을 저질렀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이 이야기를 듣다가 나의 관심사는 교도관들에게 도달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이 독재 타도 후 어떤 일을 당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작가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면회를 시도하고 먹을 것 입을 것을 영치해준 어머니의 이야기를 생각할 때는 더욱 뚜렷하다. 한 개인이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 돌아온 이야기가 개인을 떠나 시대와 민중 전체로 번졌다.

 

한 개인의 역사가 한 민중으로 번질 때 그 개인은 일개의 독립된 개인이 아니다. 그의 기록과 흔적은 역사가 된다. 히샴이 아버지의 생존과 석방을 위해 노력할 때, 증언들이 조금씩 모일 때 이것은 더 분명해진다. 아부살림 교도소 이야기와 이조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기록은 단순하고 건조한 문체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긴 문장을 역자가 다듬었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읽기 편했다. 더불어 아프리카 대륙의 최북단에 자리한 이 나라를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 더 많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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