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안는 것
오야마 준코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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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의 저질 기억력과 오독이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줄 때가 있다. 이번이 그런 경우다. 처음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가의 <하루 100엔 보관가계>를 읽었었다. 그것도 상당히 재미있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감독이 이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 소설의 작가라고 잘못 읽었다. 급한 성격과 인터넷 서점의 책소개를 대충 읽는 버릇이 만든 실수들이다. 자주 하는 실수다. 이런 실수들이 있었지만 소설은 잘 읽히고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머릿속에서는 얼마 전에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와 비교하고 있었다.

 

첫 이야기를 읽을 때는 고양이의 시선으로 전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줄 알았다. 자신이 인간인 줄 아는 고양이 요시오가 주인공으로 말이다. 그런데 바로 사오리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야기는 옴니버스 식으로 꾸며져 있고,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간의 흐름 순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 잠시 혼란이 있기도 했지만 부드럽게 이어지는 이야기라 큰 불편함이나 거북함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각각의 사연을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대표적으로 사오리가 왜 고양이에게 요시오란 이름을 붙였는지, 그 연모의 대상이었던 요시오를 보고 오해했던 장면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등 세심하게 이야기를 짜놓았다.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상황을 판단하고 오해하는지 잘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고양이가 각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이 고양이와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같이 어우러진다. 요시오와 사오리나 키이로와 고흐나 르누아르 같은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소설의 제목인 ‘고양이를 안는 것’은 키이로와 고흐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고양이는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안는 것”이라는 고흐의 말이다. 미완성된 그림만 그리던 고흐가 하나의 그림을 완성했지만 예상하지 비극을 맞이하는 장면은 삶의 아이러니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이야기 또한 뒷이야기에서 새로운 상황 설명이 덧붙여진다. 깔끔한 정리다. 그래도 각자의 감정에 남겨진 여운은 그대로다.

 

도쿄 변두리 아오메 강의 네코스테 다리는 고양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네코스테란 단어는 고양이를 버린다는 뜻이다. 이것은 강가의 창고가 신식으로 바뀌면서 쥐가 쉽게 구멍을 내지 못하면서 고양이가 필요 없어졌고, 부가 쌓였다는 의미다. 시대의 변화와 발전이 만들어낸 풍경과 현상이다. 이후 고양이들은 이 네코스테 다리 근처에 모여 살아간다. 이 다리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바로 세 명의 남녀가 고양이들에게 물과 사료를 준다는 것이다. 최소한 이곳에 오면 굶주릴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 고양이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한다. 재밌는 것은 각 고양이의 기억이 달라 작은 에피소드를 만든다는 것 정도랄까.

 

고양이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인물들이 나와 짧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을 한꺼번에 다룬 이야기가 크리스마스인데 따뜻함과 안타까움이 조용히 뒤섞인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희망이 깔려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도 알려준다. 그리고 고양이의 이름을 둘러싼 이야기에서 순간 울컥했다. 아이가 서투르게 발음한 이름에 부모가 숨을 죽이는 대목이다. 단순히 이 부분만 읽었다면 그냥 그랬겠지만 앞에서 쌓여온 감정이 이때 폭발한 것이다. 여기에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현실도 덧붙여졌다. 화려하지도 감정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감성을 건드리지 않지만 책을 덮은 뒤 충분히 그 여운과 감동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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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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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명한 작가의 이름에 비해 그의 책은 공저인 < 윌 그레이슨, 윌 그레이슨>을 제외하면 읽은 적이 없다. 공저의 특성 상 한 작가의 힘이 그대로 드러나기 힘들었다. 그의 대표작을 구매해 놓았지만 언제나처럼 묵혀두고 있다. 늘 있는 일이라 새롭지도 않다. 이번 작품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당연히 작가 이름이 먼저고, 그 다음은 작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심리적 고통을 주인공인 에이자 홈스라는 소녀의 입을 통해 들려주었다는 것이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는 그 작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뭐 아직 이 작가를 깊이 파고들지 않았는데도 이런 생각부터 하다니 나도 참...

 

인디애나폴리스에 사는 열여섯 소녀 에이자는 극도의 불안감과 강박적인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다. 우리도 불안감과 강박증을 안고 살고 있지만 에이자 정도는 아니다. 그녀는 정도가 심하다. 심리 치료를 받고 약을 먹지만 좋아지지 않는다. 물론 약은 제때 제대로 먹지 않는다. 클로스트리움 디피실레라는 병이 있다. 극단적으로 가면 죽기도 하는 모양이다. 소설 속에서 에이자는 이 병의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보통은 잘 일어나지 않는데 그의 불안과 강박증은 한 번 이 병을 생각하면 나선형으로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한다. 참 피곤하고 힘들고 무서운 삶이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은 에이자에게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런 그녀지만 친구가 있다. 데이지다. 스타워즈 마니아이자 팬픽을 쓰는 작가다. 아주 활발하고 사랑보다 우정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만약 데이지가 없었다면 에이자의 삶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이 둘의 우정은 데이지가 곁에 있어주었기에 가능하다. 그녀의 쉴 새 없는 수다를 참아줄 사람이 많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지 모르지만 아주 좋은 친구다. 이야기는 데이지가 하나의 제안을 하면서 시작한다. 그것은 데이비스의 아버지 피킷을 찾아서 현상금 10만 불을 받자는 것이다. 이 시도가 에이자를 다시 데이비스와 만나게 만든다. 사랑은 가끔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시간에 찾아온다.

 

데이비스는 부정부패로 달아났고, 전 재산마저도 파충류에게 물려준 아버지를 두었다. 동생은 아버지를 찾지만 어디에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예민한 10대인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없다. 이때 찾아온 에이자와 데이지는 작은 휴식과도 같다. 어릴 때 캠프에 한 번 같이 간 것이 인연의 전부였던 이 둘은 서로의 아픔을 인정하고 그대로 놓아두기에 가까워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키스의 달콤함도 세균에 대한 강박증에 빠지는 순간 불안해진다. 감정은 불안을 품은 강박에 의해 산산조각난다. 더 가까이 가고 싶고, 그에게 키스하고 싶지만 강박의 소용돌이는 이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에이자는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 손톱 밑에 상처를 낸다. 손톱으로 상처를 내고, 치료하고, 다시 내는 일이 반복된다. 세균에 대한 불안감은 손 세정제를 먹는 수준까지 나아간다. 약을 먹으면서 치료하면 될 텐데 이 약이 자신이 자신 아닌 것처럼 만들 것이란 불안감을 준다.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오히려 독이 된다. 아니 불안과 강박증이 상황을 거꾸로 만든다. 읽는 내내 답답함을 느낀다. 이성적으로는 공감하지만 감성적으로 공감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괴리다. 작가는 이 상황을 멋진 문장과 인용과 구성으로 잘 이끈다. 흡입력이 좋다.

 

첫 포문을 연 10만 불의 상금은 데이비스가 집에서 찾은 10만 불로 간단히 끝난다. 아버지 찾기 대신에 준 돈이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인데 대학에 가기에는 부족하다. 데이지와 에이자의 선택은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나중에 둘 사이에 잠시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가 된다. 그리고 피킷 씨의 실종과 그가 남긴 메모는 하나의 수수께끼 풀이가 된다. 데이비스의 어머니 죽음과 아버지 실종이 아주 큰 상실이듯이 에이자에게는 아버지의 죽음이 그렇다. 아버지의 구형 핸드폰에 집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상실은 각자의 삶에 큰 상처를 남긴다. 사랑으로 이것을 치유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다. 에이자는 ‘나’로 살아가고자 하지만 늘 주변의 영향을 받는다. 이 소설은 바로 ‘나’에 대한 이야기다. 마지막 문장은 나의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정말로 다시 보고 싶은 사람에게만 작별 인사를 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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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의 도시 가이드
제프 마노 지음, 김주양 옮김 / 열림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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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건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본 책이다. 건물 속에 사는 사람의 시선이 아닌 도둑의 시선이다. 제목에서 알려주듯이 도둑들이 어떻게 도시의 공간을 넘나들었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침입절도와 건축은 여전히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더 나아가 ‘모든 도시가 언젠가는 발생할 범죄의 씨앗을 품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처음에는 공감하지 않았지만 책을 모두 읽은 지금은 동의한다. 건축물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모르는 건축물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그들을 보면서 어릴 때 기억 몇 가지가 떠올랐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으로 그들은 집안으로 들어왔었다.

 

도둑들의 의지와 열정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곳을 침입한다. 사람들이 도둑들이 훔쳐간 물건에 관심을 가질 때 ‘도둑들은 공간을 탐험’한다. 이 공간 탐험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는 아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다룬 조지 레오니다스 레슬리 이야기는 도둑들이 도시와 건물을 어떻게 보고 연구하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원하는 돈과 귀금속 등을 훔치기 위한 그들의 노력과 열정은 나의 학창 시절을 훨씬 능가한다. 아니 처음부터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몇 장면만 가지고도 놀라는데 실제는 더 대단하다. 물론 어설픈 도둑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도둑과 경찰 혹은 보안업체와의 대결은 아주 긴 세월 동안 이어져왔다. 앞으로도 이어질 예정이다. 그 중 하나가 빈집털이인데 경찰은 함정을 파기도 한다. 하지만 이 빈집털이가 언제, 어디서,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는지 일반 법칙이 없다. 이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쌓은 방벽이 가장 기이한 범죄를 불러들이는 조건이 된다고 할 때 이 싸움의 현재와 미래를 살짝 엿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영화나 범죄소설 등을 통해 얻은 정보를 기반으로 한다. 실제로 어렵다고 해서 도둑들의 기발한 발상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는 도둑들은 늘 있어 왔다.

 

다양한 이야기 중에서 한국 송도 이야기는 조금 놀랐다. 송도의 기반 시설 정보 데이터를 은행 한 곳에 보관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도둑들에게는 엄청난 자산이 된다. 이것의 구식 버전으로 도시의 마스터 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이베이에서 이런 열쇠가 거래된다고 한다. 이 사실만으로도 나의 상상력은 춤을 춘다. 어디에 어떻게 들어갈까 하고. 그리고 지금 앉아 있는 사무실을 둘러보면서 도둑들이 침입하기 쉬운 공간임을 깨닫는다. 다른 시각으로 기존의 건축물을 본다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실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다른 문제가 되고, 결코 쉽지 않을 테지만.

 

훔친다고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잘 달아나야 한다. “우리에게 알려진 도둑들이 도둑 일반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맞은 말이다, 성공한 침입절도의 흔적을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훔치는 것을 완벽하게 막을 수 없다면 달아나는 것이라도 잘 막아야 한다. 하지만 역시 여기에도 정답이 없다. 막고 뚫으려는 두 조직의 대결은 계속 될 것이니까. 전직 해커나 도둑들이 보안업체에서 일하는 것은 이들의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더 창의적인 도둑들이 나타난다면 이 방법도 별로 쓸모가 없을 것이다. 이 방법이 그 다음에는 잘 방비가 되겠지만.

 

훔치려는 자의 노력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페이스북 정보나 매장의 규칙 등을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흘리는 정보들이 도둑들에게는 아주 좋은 자산이 된다. 영화 등에 나오는 내부 공모자가 없다고 해도 그들은 빈틈을 파고들고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계획이라고 해도 변수를 모두 막을 수는 없다. 몇 가지 실패 사례는 이 때문에 생겼다. 도둑과 건물과의 관계를 멋지게 말하는 마지막 문장이 있다. “도둑들은 그들이 침입하려 하는 건물을, 건축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다.” 이보다 현실적이고 정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인정해야 할 사실이고, 우리는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막거나 도망가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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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5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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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나온 하라 료의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일본 하드보일드 작가 중 최고로 꼽는다. 이번에도 탐정 사와자키와 함께 돌아왔다. 일본 출간연도를 보면 2004년인 것 같은데 한국 출간은 정말 많이 늦었다. 이미 다른 작품들도 출간되었는데 언제 번역되어 나올지는 모르겠다. 뭐 기다리는 입장에서 번역되어 나와준다면 그것으로 감사할 일이지만. 이번에도 전작들처럼 견고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마지막에 반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 소설은 조금 힘이 약한 느낌이다. 나의 취향이 바뀐 탓일까? 아니면 이 작품 앞에 읽었던 작품이 너무 강한 인상을 준 탓일까?

 

언제나처럼 그의 사무실은 건조해보인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를 기다리는 젊은 여성이 있다. 그녀는 이부키 게이코다. 실제는 와타나베를 기다렸다. 그녀의 아버지가 은행 총격 사건으로 자수를 했는데 이전부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와타나베를 찾아가라고 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와타나베는 도망을 다니다 죽었다. 그녀와 함께 아버지가 자수한 신주쿠경찰서로 차를 타고 간다. 그녀를 내려준 후 이런저런 상황을 보다 잠시 주차를 한 후 기다린다. 그의 감각을 자극하는 이상 기류 탓이다. 그때 이부키 게이코의 아버지를 데리고 경찰들이 나온다. 사건이 시작한다.

 

탐정이란 직업 때문일까? 이상해 보이는 상황을 잘 인식한다. 수상한 사륜구동차 한 대가 주차한 것을 보고, 그 차가 수송차를 뒤따를 때 그도 달린다. 그리고 두 번의 총소리. 사와자키의 충돌. 그 차량은 달아나고 사와자키는 쫓는다. 오래된 차량으로 그 차를 계속 뒤좇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놓친다. 경찰서에 돌아와 신고를 한다. 경찰 수송차에 있었던 피격 내용도 듣는다. 이부키는 어깨에 총을 맞았고, 호위하던 경찰이 머리에 총을 맞아 생사를 알 수 없다. 그는 상황을 설명하는데 경찰은 불만이 많다. 그의 차가 충돌하지 않았다면 젊은 경찰이 맞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물론 사와자키는 이에 반응하지 않는다. 두 대의 불확실한 차량 번호를 알려주고 떠난다.

 

연말의 시간은 그렇게 지나가고 새해가 되었다. 사와자키는 형사에게 알려준 불확실한 두 대의 차량 번호 중 하나를 좇는다. 휴가를 떠난 철공소를 찾아왔다. 앞집에 들어가 정탐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집에는 히키코모리 아들이 있다. 이 또한 사와자키에게는 걸림돌이 아니다. 주저없이 들어가 질문을 던지고, 그 집을 감시한다. 차 한 대가 떠나고, 그 집을 지키던 남자도 담배를 사러 나간다. 빈집이다. 히키코모리에게 늦으면 신고하라고 말한 후 집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은행 총격 사고의 주범과 납치된 고령의 노인을 발견한다. 실제 범인은 자수하려다 차를 잘못 타 납치되었고, 이 납치 때문에 매형이 자수했다. 구십이 세의 노인은 왜 납치되었을까? 여기서 이야기는 꼬이기 시작한다.

 

기억이 희미한 전작들처럼 이야기는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인 부분만 건드린다. 별개의 두 사건이 하나로 엮일 때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사건 당사자들에게는 하나의 사건이지만 이 둘 모두 엮인 사와자키에게는 이 둘의 관계가 눈에 들어온다. 이부키의 자수가 단순히 야쿠자 내부의 문제만이라면 간단하겠지만 하나의 의문과 섞이면 다른 사건으로 변한다. 여기에 구십이 세의 노인이 가진 이력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의 과거는 정치계의 추문을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알려지면 거대한 스캔들이 되고, 유력 정치가가 한 번에 실각할 수도 있다. 당연히 노인의 납치는 그 정보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 중 하나가 언론에 알려지고, 이것을 막기 위해 돈이 모이고, 그들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전달책으로 사와자키가 고용된다.

 

아주 피곤한 상태였지만 간결한 문체와 사와자키의 매력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숨겨둔 하나의 정보가 새로운 단서가 되고, 언제나처럼 그의 탐정사무소는 여러 사람들이 들락거리면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공간으로 변한다. 복잡하게 얽힌 사연들은 입이 무거운 사와자키를 통해 하나씩 풀리고, 그 범인들은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움직인다. 그 와중에 사와자키에게 빚을 지는 인물이 생기고, 이 인연은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반전은 늘 그렇듯이 남은 분량으로 짐작이 가능하다. 조금은 예상했지만 그 이상의 반전이 항상 있다. 시대의 변화가 조금씩 담기고,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언제 다음 작품이 나올지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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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갱
반시연 지음 / 인디페이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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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못한 작품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대 이상이다. 소개글에서 노남용이란 희대의 살인마에 집중했는데 이것은 반만 맞다. 노남용이 목표인 것은 맞지만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내용들이 더 흥미롭다. 어떤 대목은 너무 잔혹해서 상상력의 일부를 차단하고 싶기도 했지만 작가는 장르의 특성을 끝까지 몰고 간다. 치밀한 복선과 반전은 마지막까지 깔끔하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이 틀어지기는 했지만 그것도 작품 속에 잘 녹여내었다. 세밀한 묘사와 잘 짠 구성은 책을 덮고 난 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당연히 작가의 다른 작품에 관심이 생겼다.

 

이야기는 세 남자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싸움꾼, 사냥꾼, 파수꾼 등이다. 싸움꾼은 그냥 평범한 30대 남자였다. 복국 식당에서 야간 근무하는 직원이다. 어느 날 한 남자의 침입으로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던 능력을 깨닫는다. 폭력이다. 상대를 때릴 때 그 느낌과 감촉을 즐긴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사람을 때리지는 않는다. 나쁜 짓을 한 사람만 그 대상이다. 물론 그 결과는 살인이다. 자기 안에 내재된 폭력성과 힘은 그를 겉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몬다. 그때 한 가면을 쓴 남자가 나타나 그에게 스카우트를 제의한다.

 

사냥꾼. 그는 회사 소속의 전문가다. 40대로 직급은 차장이다. 일이 들어오면 그만의 기술로 상대를 공포로 몰고 간다. 도입부에 나오는 한 직장인의 사연은 바로 그의 작품이다. 그가 하는 것은 고문과 ‘네 죄를 말해’라는 물음뿐이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대상은 평생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가 저지르는 일은 분명 불법이다. 그렇지만 그 대상들이 저지른 일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리고 그는 한 인물에 집착한다. 바로 희대의 살인마 노남용이다. 그만의 특별한 기술로는 노남용을 공포에 빠트릴 수 없다. 몇 년을 면회하면서 그는 그의 약점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자유를 잃는 것이다. 차장은 그 자유를 박탈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파수꾼. 그의 비중은 적다. 입이 아주 거친 어린 소년과 함께 다닌다. 자살 희망자를 찾아가서 그 소원을 들어준다. 그가 만든 약품은 이미 인터넷에서 유명하다. 그가 만든 사이트에 사연을 올리면 파수꾼이 찾아온다. 그 사연 몇 가지는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 세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독자의 시선을 살짝 가린다. 이 세 명이 어떤 관계고, 어떻게 만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 일어났을 때 앞에 깔아둔 복선과 단어 몇 가지가 머릿속에 떠올른다. 내가 마지막에 책을 덮으면서 감탄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노남용을 처리한다는 설명에서 예상한 것들 대부분이 빗나갔다. 노남용이 저지른 악행은 엄청나지만 작가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악행과 악의를 더 집중해서 다룬다. 괴물을 처리하기 위해 자신도 괴물이 되어야 하는 현실과 감정을 극도로 절제해야 하는 상황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 회사란 곳도 특별하다. 인간 세상의 특별한 사람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그들이 고액을 받고 행동하는 일들은 불법이고, 정상적인 이성을 가지고는 할 수 없다. 한 대리가 잠수를 탄 것도 그 때문이다. 합법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이 회사는 해낸다.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조직이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는 사건 사고를 보면 이성 한 곳이 고개를 끄덕인다.

 

가볍게 읽으려고 했다. 노남용을 죽이려는 싸움꾼과 그를 감옥으로 보내려는 사냥꾼의 이야기는 교차하면서 긴장감을 높였다. 섬뜩하고 잔인한 장면들이 이어지고, 이 상황에 무감각하게 움직이는 이들을 보면서 가벼운 마음을 사라졌다. 그 대신 관계와 상황에 눈길이 갔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상황이, 차장이 가진 스트레스가, 사냥꾼이 벌이는 행동들이 조용히 머릿속에 자라를 잡았다. 몇 장면은 다시 읽고 그 복선과 상황 설명을 되집어야 하겠지만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근래 보기 드물게 완성도가 높은 한국 스릴러가 나왔다. 이 작품도 시리즈로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 주변에는 나쁜 놈들이 너무 많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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