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워줄게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박지선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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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드디어 이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최근 나무의철학 출판사에서 매년 연속으로 내고 있는데 언제나 관심만 두고 있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많다 보니 우선순위가 뒤로 밀렸다. 개인적으로 심리 스릴러를 찾아서 즐겨 읽지 않지만 좋은 작품은 늘 챙긴다. 그런데 문제는 심리 스릴러들의 경우 책 중반까지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작가가 그려내는 심리 묘사나 상황 등이 나와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1부가 끝날 때까지 좀처럼 이야기 속에 몰입할 수 없었다. 하지만 2부와 3부를 보면서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자살일까? 다시 생각해봐.” 엄마의 기일에 전달된 한 장의 카드는 애나의 일상의 뒤흔든다. 19개월 전 아버지 탐이 절벽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고, 그 7개월 후에 엄마 캐럴라인마저 그 절벽에서 자살했다. 부모 두 분이 모두 같은 곳에서 자살한 일은 애나에게 엄청난 충격이다. 경찰은 신고 전화와 다른 조건들을 검토한 후 자살로 처리했다. 그 후 애나는 심리 상담사 마크를 만났고, 딸 엘라를 낳는다. 출산 후 겨우 일상으로 복귀하는 듯했는데 이 카드 한 장이 그 동안 억눌렀던 그녀의 감정을 뒤흔든다. 부모님이 타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확신을 가지고 경찰의 재수사를 요구하려고 한다. 그곳에서 은퇴 후 경찰서 민간 직원으로 일하고 있던 머리를 만난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진행된다. 애나와 머리의 삶과 애나의 부모인 듯한 사람의 이야기다. 애나가 재수사를 접수했지만 이 신청은 정식으로 처리되지 않는다. 머리가 위에 정식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문의 카드를 제외하면 애나 부모의 자살을 타살로 규정할 어떤 증거 자료도 없다. 규정대로라면 위에 보고해야 했겠지만 그는 자신의 일로 처리한다. 그리고 그의 불안한 일상이 드러난다. 바로 아내 세라의 정신병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해와 자실을 시도한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매일 그녀를 면회 간다. 그가 현직 형사였을 때 그녀가 그를 많이 도와준 적이 있다. 이 사건이 다시 둘의 힘을 합치게 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머리다.

 

일반적으로 자살로 끝난 사건을 타살이라고 말하면서 재수사를 요구하면 어떤 반응이 올까? 아마 대부분은 그녀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 것이다.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산후우울증을 의심할 수도 있다. 마크가 그 카드를 보고도 꿈쩍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살인사건으로 확신한 그녀에게는 범인을 잡겠다는 의지가 가득하다. 머리에게 계속 연락을 한다. 그녀의 이 의지가 사건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녀 가족의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씩 밝혀진다. 이 과정을 작가는 교묘한 서술로 살짝 독자의 눈을 가린다. 뒤에 이어지는 반전들은 이 영향력과 나의 선입견이 같이 작용한 탓이다.

 

비극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일어난다. 하지만 그 씨앗은 오랜 시간을 거친 후 부화하기도 한다. 이 가족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가족 내부의 문제가 하나씩 드러난다. 흔한 스릴러의 공식에 따라 간다면 삼촌 빌리나 엘라의 아버지인 마크 등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다. 처음 시선이 간 인물도 바로 이들이다. 이들에게는 애나의 부모를 죽일 이유가 충분히 있다. 바로 돈이다. 그런데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이 전면으로 나서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바뀐다. 이 등장인물이 반전의 연속을 만든다.

 

소설 속에서 애나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끝없이 맞이한다면 머리는 자료를 모으고 조사를 하면서 이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친다. 그가 한 발 나아갈 때면 사건도 같이 한 발 나아간다. 그리고 그 차이는 점점 좁혀진다. 그의 수사 방법은 발로 뛰는 전통적인 방식과 인터넷을 통한 조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날카로운 관찰과 통찰력이다. 어느 정도는 이 부분이 불만스럽다. 독자에게 같이 전달되는 자료가 너무 없기 때문이다. 고전 미스터리에서 자주 사용하던 설정이다. 마지막 애나의 에필로그도 살짝 아쉽다. 너무 많이 나간 느낌이다. 머리와 세라의 첫 만남 장면이 의미하는 바도 놓인 위치를 생각하면 애매하다. 개인적으로 머리를 계속 등장시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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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그레이스 페일리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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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세 권의 단편집으로 미국문학의 전설이 되었다는 소개글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 하루키의 에세이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이 소설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다. 물론 그는 그녀의 소설이 결코 쉽다고 말하지 않는다. 열성적인 독자들은 “소중하게 숙독하고 맛을 완전히 이해하고자 노력하는데, 질 좋은 오징어를 씹듯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곰곰이 맛을 음미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자신은 즐겁게 읽었다고 하는데 절대 그대로 믿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소설을 아주 힘겹게 읽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그레이스 페일리 소설 읽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열일곱 편의 단편들은 분량이 제각각이다. 1960년부터 1974년까지 쓴 단편들인데 읽다보면 이 시간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그것은 페이스란 등장인물 때문이다. 페이스란 이름이 직접 등장하는 이야기도 몇 편 있고, 그녀인 듯한 인물이 등장하는 단편도 몇 편 보인다.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몇 번의 숙독이 필요할 것 같다. 아직 이 작가의 소설이 지닌 매력을 깨닫지 못한 나에게는 솔직히 어려운 일이다. 무형식의 형식이란 것도 나에겐 색다른 즐거움보다 당혹스럽고 낯설고 어렵다. 그렇다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드는 것도 아니다. 단지 좀더 집중해서 읽고, 이야기 그 자체를 즐겨야한다는 의미다.

 

소설을 읽으면서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노골적인 표현들인데 그 시대를 감안하면 외설죄가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떤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 자유로움을 부여한다. 이런 구성은 “현실의 인물이든 가공의 인물이든 모든 이는 삶에서 열린 운명을 누릴 자격이 있다.”란 문장과 선이 닿아 있다. 그녀가 글을 쓰는 현재에는 이야기 속 인물들의 미래는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나무에 앉아 의미 없이 수다를 떨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에 이런 무의미한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기승전결이 없다 보니 갑자기 뚝 끊어지듯이 끝나는 이야기들이 많다. 단편의 매력 중 하나이지만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집중하지 않으면 이야기 속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순간도 생긴다. 유대계 여성의 이야기지만 그 흔적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소설 속에서 이런 사실이 계속 나오지만 말이다. <소녀> 같은 단편은 사회성 강한 미스터리 단편 소설로 읽어도 부족함이 없다. 가까이 다가가서 상황을 만들다가 사건이 발생한 후에는 관찰자로 변하고 마지막에는 논리적인 추리로 마무리한다. 사실 이런 작품들이 많았다면 이 단편집 읽기기 훨씬 쉬웠을 것이다.

 

삶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인물의 환경에 따라 그 모습은 더 많이 변한다. 이야기는 나쁘게 말하면 중구난방이고 좋게 말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하는 대화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소설을 읽을 때 이런 대화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시간 여유가 많고, 그 대화 속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다면 집중해서 그 대화 하나 하나를 따라가겠지만 보통은 그냥 지나간다. 이런 상황에서 그 재미를 충분히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인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는 전개도 작품을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늘 이런 소설이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갑자기 어느 순간 이야기들이 내 안에 들어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와 재미를 전달해준다. 다만 이 작품의 경우는 아직 그 숫자가 적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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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역 폭발사건
김은미 지음 / 제8요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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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광고 문구로 나를 유혹했다. 재일 조선인의 후예 코헤이와 제국주의 부활을 노리는 일미회와 일본 생체 실험의 생존자이자 윤동주의 연인 강복순을 둘러싼 추격전이란 설정이다. 이 설정은 소설 속에서 그렇게 매력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실제 기대했던 긴박감이나 긴장감이 후반부에 갈수록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독성이 좋아 읽기에 무리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광고에 나온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뺀다면 더욱 그렇다.

 

인적이 드문 어두운 새벽 신주쿠역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일본 경찰은 이 폭발물을 둔 인물을 금방 잡지만 그는 범인이 아니다. 그는 돈을 받고 그곳에 놓아두었을 뿐이다. 당연히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몰랐다. 이 작은 사건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한 결말이다. 왜 이 폭발사건이 일어났는지, 이 폭발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등이 펼쳐진다. 그리고 시간은 한 재일조선인 소년 코헤이의 과거로 넘어간다. 중학생 때 반 친구들에게 재일조선인이라고 차별받고, 외톨이처럼 보내다가 재일한국인들과 어울려 지낸다. 이때의 만남이 잠깐 친구를 만들어주지만 이 만남이 계속 지속되지는 않는다. 조용히 사라진다.

 

코헤이의 어머니는 재일조선인이다. 이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한 통의 우편이 도착한다. 준영이란 이름으로 왔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어딘가로 떠난다. 부모님이 떠나기 전날 코헤이는 예지몽을 꾼다. 부모님이 차 사고로 돌아가시는 꿈이다. 그리고 실제 이들은 차 사고로 죽었다. 부모의 죽음은 그로 하여금 세상과 떨어져나가게 만든다. 친구들과도 멀어진다. 그러다 한 번 다른 사람의 삶에 끼어드는 일이 생긴다. 바로 윤하다. 윤하는 자매학교 행사 때문에 일본에 왔다. 코헤이는 윤하에게 바로 돌아가라고 쪽지를 보낸다. 학교 행사 때문에 온 그녀가 쉽게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날 밤 지진이 일어난다. 그녀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코헤이가 도와준다. 다른 나라와 환경은 몇 번의 메일과 편지를 오고 가게 만들지만 어느 순간 시들해진다.

 

코헤이와 윤하가 현재를 보여준다면 복순은 과거를 알려준다. 일제의 토지개혁으로 인해 농지를 잃고 만주에서 땅을 개척하던 부모는 과로 등으로 한 명씩 죽는다. 공부 잘하는 오빠는 그곳에 머물고, 복순은 일본으로 식모살이하러 온다. 여기서 주인 아들의 친구인 동주를 만난다. 동주와의 만남은 복순으로 하여금 민족의식에 눈 뜨게 만든다. 그렇다고 그녀가 독립운동에 매진하지는 않는다. 이 과정에서 둘은 더욱 가까워진다. 그러다 이들은 모두 일본 경찰에 잡힌다. 소위 내란죄이지만 실제는 학생들의 독립운동을 두려워한 일제의 무리한 행동이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이 둘의 애절한 사랑이 그려질 것 같았는데 역사에 드러나지 않은 인물을 부각시키기에는 자료가 너무 없다. 이 이야기는 코헤이와 윤하 이야기 사이에 조금씩 들어간다.

 

현재로 넘어오면 윤하는 한국에 흔한 계약직 직원으로 살고 있다. 그러다 계약 해지되고, 남자 친구에게도 차인다. 그때 코헤이가 떠올라 일본에 온다.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코헤이 입장에서는 민폐다. 그는 사람과 멀어진 시간 동안 열심히 공부해 의사가 되었고, 가업을 다시 시작했다. 간호사 한 명을 두고 동네 병원을 운영한다. 그런데 이 평온한 일상에 윤하가 끼어든다. 예지몽의 불안을 가진 그는 윤하를 자신의 집으로 강제로 데려 오고,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자신을 둘러싼 일상에 문제가 생기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대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둘의 사이가 가까워지고, 조금 방심하는 순간 윤하가 납치된다.

 

항상 누군가 코헤이와 그의 집을 감시하고 있다. 일미회의 하수인들이다. 한 개인이 일본의 막후 세력을 이길 방법은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신주쿠역 폭발사건이다. 이 사건과 함께 일미회를 압박한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긴박한 상황들이 이어져야 하는데 작가는 너무 느슨하고 일상적으로 풀어간다. 오랫동안 숨겨왔던 복순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녀의 도박이 일미회의 수뇌부 한 명을 압박한다. 이 순간도 역시 큰 긴장감을 불러오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잘 짠 구성과 각 요소에 역사를 녹여낸 설정과 매끈한 문장이 돋보이지만 강한 임팩트가 없다. 코헤이의 액션도 하수인을 잡기 위한 순간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기대한 농밀한 서스펜스는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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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인형 인형 시리즈
양국일.양국명 지음 / 북오션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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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 작가의 공포소설이다. 많은 장르 작가들이 있지만 공포 장르 쪽은 작가가 풍부하지 않다. 뭐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특히 공포 쪽은 그렇다. 좀비를 다루는 공포 소설들이 몇 권 나왔지만 나의 부정확한 기억에 의하면 꾸준히 책을 내놓는 작가는 흔치 않다. 김종일 비롯한 몇 명의 작가들이 한때 비교적 자주 책을 내었지만 어느 순간 나의 기억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검색을 하면 생각보다 많지만 절대적인 숫자가 부족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 두 형제 작가는 나름 꾸준히 책을 내고 있다. 그것도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한 채 말이다.

 

모두 네 편의 단편을 실고 있다. 세 편은 인형을 소재로 했고, 나머지 한 편은 좀비를 다루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표제작 <지옥 인형>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다루고 있는 소재가 아주 잘 어울린다. 이 소설을 가장 잘 드러내어주는 문장이 있다. “공포는 밖에서 오지 않는다. 안에서 떠오른다.”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죄의식과 공포를 ‘지옥 인형’을 매개로 폭발한다. 하지만 이것은 지옥 인형을 보고 죽은 사람들이 경험한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인형은 그 자체로 공포의 대상이다. 물론 공포 소설가에게는 아주 훌륭한 소재일 수 있다.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마지막에 숨겨둔 한 방이 멋있다.

 

<엄마의 방>은 한 남자의 죽음과 그 앞에 놓인 인형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비뚤어진 욕망이 바탕에 깔려 있고, 그 속에는 공포에 짓눌린 아이가 있다.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인형이 음산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엄마의 방이란 공간과 엄마의 죽음이란 사실이 인형과 아버지의 욕망으로 뒤섞여 가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 모든 공포의 설정을 풀어주는 장면에서 알려주는 사실들은 아주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첫 장면으로 돌아가는 반전이 펼쳐진다. 이 반전이 조금 과한 설정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앙갚음>은 6.25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좌익과 우익의 이념 대립이 학살로 이어졌던 그 시절의 한 장면이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남쪽의 북한군은 고립되고 쫓길 수밖에 없다. 좌익의 공격이 이어졌던 순간이 지나고 우익의 공격이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살육은 이성보다 감정에 더 중심을 둔다. 이 학살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복수란 형태로 나타난다. 인형의 형태를 가진 원귀들의 처참한 복수는 아주 잔혹하다. 단편의 특성 상 생략된 많은 이야기들이 개인적으로 더 관심이 생긴다. 좀더 분량을 키워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트렁크>는 개인적으로 아주 실망했다. 도입부는 전형적인 공포 장르를 따라가는데 중반 이후 조폭 같은 남자의 등장으로 공포 액션으로 바뀐다. 좀비처럼 변한 이유를 알려주지만 조금 황당하다. 좀비를 처리하는 방식도 조폭 식이다. 무엇보다 눈에 거슬리는 것은 여주인공 소영이다.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고, 단지 그녀의 언니가 좀비로 변했다는 것과 이 모든 사건의 시작임을 듣는 존재로 한정된다. 또 조폭이 자신의 힘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과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공포가 급속히 사그라들었다. 앞의 두 편에 비해 뒤의 두 편은 조금 많이 떨어진다. 그래도 한 여름의 무더위를 조금 식히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독자의 상상력이 뛰어나면 더욱 더 그 효과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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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과 소설가 -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
최민석 지음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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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최민석’이란 이름을 모른다. 최근에 나온 한국 작가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니 작가가 고민 상담하면서 곳곳에 풀어낸 작가의 작품들이 낯설기만 하다. 보통 어느 정도 책을 내고,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면 한 권 정도는 읽을 법도 한데 최근 나의 독서가 한 곳에 편중되다보니 읽은 책이 한 권도 없다. 아니 이번에 한 권 생겼다. 바로 이 책이다. 소설가의 소설이 아니라 한 주간지에 상담한 것을 실은 책이란 점에서 살짝 미안함을 느낄 뻔했다. ‘뻔’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에세이조차 읽지 못한 작가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민 상담. 참 어렵다. 학창 시절, 직장 초기에 친구들 상담 많이 했다. 내가 이야기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면서 상담을 잘 하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그냥 원론적인 말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상담은 듣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그렇다.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공감했는데 그것들 대부분은 원론적이다. 자신의 경험이 풀려나올 때 이야기는 길어진다. 이때 상담 내용은 설득보다는 이런 삶도 있다는 의미다. 작가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았고, 나름의 경험을 쌓은 나에게 이 내용은 별로 특별한 것이 없지만 2~30대의 청춘이라면 어떨까? 이 또한 개인에 따라 많이 갈릴 것이다.

 

주간지 <대학내일>에 연재한 것을 네 부분으로 나누었다. 시간 순이 아니라 그의 삶이 뒤섞여 있다. 자아, 사랑, 관계, 미래의 4장으로 나누었는데 질문들이 그렇게 기발한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것들이다. 내가 겪었거나, 친구나 선후배 등이 겪은 것들이다. 내용이 조금 다르지만 질문의 기본은 비슷한 것들도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뭐 기발한 고민을 질문으로 던진다고 해도 작가가 그 답변을 기발하게 받아줄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답변을 풀어내는 방식을 보통의 상담과 달리 재밌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면 어떨까? 이 뻔한 질문들을 지루하지 않게 읽은 것은 소위 작가의 ‘글빨’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작가의 소설에 관심이 부쩍 생겼다. 당장 빌려 읽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작가가 글 속에서 왜 사지 않고 빌려 읽을까 하고 고민하지 않았는가.

 

고민 없는 삶이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각자의 고민은 개인이 해결하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얻거나 공감만으로 충분할 때도 있다. 이 상담들을 읽으면서 그 고민들이 결국 나와 관계로 이어짐을 발견하게 된다. 고민을 풀어가는 방식은 나의 경험에서 시작한다. 겪어보지 못한 것을 멋지게 잘 포장하는 소설가라고 해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상당하려면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모두 드러낼 필요가 없지만 자신이 경험한 것은 하나의 사례로 활용하기 충분하다. 지면의 한계나 의도적인 생략들이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경험이 고민 당사자에게는 작은 용기를 심어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고민을 상담한 사람들의 선택과 결과는 모두 자신의 것이란 점이다. 소설가는 이 부분을 꾸준히 추신으로 덧붙인다.

 

작가도 말했듯이 고민을 하는 사람도, 상담을 하는 작가도 조금씩 변한다. 아니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살아가면서 주변 환경이 변하는데 나 자신만 옛것을 고집하는 것은 집착이고 아집이다. 유연한 사고와 행동이 왜 중요한지 소설가의 글속에도 몇 번 나온다. 그가 글로 풀어낸 청춘 예찬과 아쉬움은 나 또한 많이 느낀 것들이다. 지나간 세월의 아쉬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고민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도 그 시간을 지나온 나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고민은 사람의 삶에 깊이를 더하고, 또 다른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다. 무거운 내용들이지만 결코 삶을 짓누르지 않고 유쾌함을 유지하는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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