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와카타케 치사코 지음, 정수윤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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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와쿠타가와상 수상작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작가의 나이다. 1954년생으로 64살이다. 55세부터 소설 강좌를 들으며 작가로 성장했다. 늦은 나이에 소설을 써 성공한 작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한 나라를 대표하는 문학상을 받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것도 데뷔작으로. 최근 아쿠타가와상을 젊은 작가들이 많이 받은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다가온다. 이 이례적인 상황이 일본에서는 큰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노년의 내면을 다룬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늘어난다. 당연히 새롭게 깨닫는 부분도.

 

소설 속 주인공은 혼자 사는 74살 모모코다. 4명이 살던 집에서 혼자 산다. 이 소설은 그녀의 내면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다. 딸은 결혼해서 떠났고, 아들의 행방은 묘연하다. 남편은 갑자기 뇌경색으로 죽었다. 홀로 사는 그녀에게 4명이 살던 집은 넓고 고요하다. 이 적막함을 채워주는 존재는 쥐들이다. 그들의 소음이 무섭기도 하지만 그 고요한 적막을 깨트려준다. 노년의 일상은 단순하다. 이 단순함을 바꾸려는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모모코에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활발한 활동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면에 침잠된 채 가공의 인물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것도 사투리로.

 

사투리는 아주 중요한 소재 중 하나다. 도호쿠 지방 사투리를 번역자는 강원도 사투리로 풀어내었다. 나름의 방법으로 일본 사투리를 해석한 것이다. 교토 사투리를 경상도 사투리로 번역하는 것을 많이 봐서 일본 사투리하면 경상도 아니면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선입견이 깨어지는 순간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사투리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개인의 노력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치기 힘든 발음도 있다. 작가는 발음이 아닌 하나의 단어에 관심을 둔다. 나라는 단어다. 와타시란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웠다고 말한다. 이 단어를 말할 때 약간 뜸을 들이는데 이것을 알아챈 동료가 있다.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는 모두 사투리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들을 읽는데 조금 힘들었다.

 

“자신보다 소중한 자식은 없다.” 이 말은 딸 나오미가 엄마에게 자식의 교육을 위해 돈을 빌려달라고 한 후 나온다. 노년의 모모코를 가끔이나마 돌보는 인물이 딸 나오미다. 그런데 모모코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오빠 쇼지와 비교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이 비교 결코 낯설지 않다. 모모코는 보이스피싱에 속아 돈을 사기당한다. 이때 마음은 “쇼지에게 속죄하는 맘”이었다. 엄마로밖에 살 수 없으면서 자식의 인생에 너무 밀착한 나머지 자식의 삶을 뒤흔들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엄마의 모습이다. 딸 나오미에게 몇 번이고 거듭 들려주고 싶지만 내뱉지 못한다. 아마 이해하지도 못할지 모른다. 그때의 엄마는 그런 시기니까.

 

그렇게 두툼한 책이 아니다. 내면 이야기와 함께 남편과의 만남과 고향을 떠난 순간들을 간결하게 이야기한다. 특히 남편과의 만남과 결혼 이야기는 그녀의 삶을 강하게 고정시킨다. 남편의 죽음은 강한 충격이다. 늙은 몸을 이끌고 남편의 묘지를 찾아가는 과정은 아주 힘들다. 돌아가는 버스를 타면 되는데 걸어서 산을 넘어간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이 의지가 “나의 생은 이제부터다.”로 이어진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웃는다. 가장 소중한 자신을 찾은 모습이다. 자신의 나이듦과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의지는 눈부시다. 늙는다는 것이 비탈을 굴러내려 오는 것과 같은 급속함이 아님을 말할 때 시간의 퇴적을 둘러싼 우리의 두려움이 살짝 드러난다. 나도 이런 노년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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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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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한 편도 본 적이 없다. 그의 이력을 생각하면 의외일 수도 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제대로 영화를 본 것이 몇 편 되지 않는다. 본 영화도 대부분 오락 영화였다.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이전에는 반드시 봐야할 영화였던 적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아니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다. 다른 것에 시간이 빼앗기면서 이런 영화를 볼 시간이 상대적으로 없다. 하지만 가끔 좋은 소설을 읽고 그것이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상영한 영화의 제목은 <어느 가족>이다. 이 소설은 영화를 원작으로 감독이 썼다. 감독이 영화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한 가족의 비밀과 결정적 순간의 디테일들을 담았다고 한다. 영화를 보지 않아 직접 비교하기 힘들지만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많은 부분을 생략하지 않는가. 아마 영화를 보게 되면 더 많은 부분이 나의 머릿속으로 들어올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이 그려낸 섬세함과 다른 장면들에 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런 영상과 소설의 혼합 작용은 늘 있어왔다. 대부분 영화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지만.

 

다섯 명이 한 집에 산다. 할머니 하쓰에. 아버지 오사무, 어머니 노부요, 어머니 이복동생 아키, 아들 쇼타 등이다. 이런 집에 유리가 들어온다. 여섯 명이 한 집에 살지만 실제 돈을 버는 사람은 노부요와 연금수령자 하쓰에 밖에 없다. 아키도 어느 정도 벌지만 생활비를 내놓지는 않는다. 이런 가족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좀도둑질이다. 오사무와 쇼타가 한조가 되어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친다. 적은 돈으로 고르케를 사서 가족들이 나눠먹는다. 이때 한 꼬마가 집밖에서 떨고 있다. 바로 유리다. 나중에 그녀의 이름은 린으로 바뀐다. 이 집안 사람들은 모두 본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각자 자기만의 사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족들은 그 누구도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 않다. 유리가 이 집에 들어온 것처럼 한 명씩 합류했다. 쇼타가 어떻게 이집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장면이나 아키의 집안 이야기 등은 조용히 하나의 이야기와 연결되면서 풀린다. 처음에는 하쓰에와 오사무가 진짜 엄마와 아들 사이인 줄 알았다. 오사무와 노부요도 진짜 부부로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이 가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 않다. 오사무가 말한 것처럼 가슴으로 이어져 있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진짜 가족 그 이상이다. 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불법과 유괴가 먼저 눈에 들어오겠지만.

 

11살 쇼타와 5살 유리에게 좀도둑질을 시킨다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이 가족에게는 그런 윤리적 잣대를 갖다 대면 가족이 성립할 수 없다. 노부요도 세탁소에서 옷 속에 들어있는 작은 물건을 슬쩍 훔친다. 하쓰에도 파친코 구슬을 훔친다. 이 가족에게 작은 도둑질은 일상적이다. 이런 분위기는 쇼타가 아키가 바라는 샴푸를 가져오지 않았을 때, 다른 제품을 가져왔을 때도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집안의 분위기는 아주 좋다. 좋고 맛있는 것을 먹지 않지만 작은 배려가 곳곳에 드러난다. 유리가 학대받았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이 작은 아이의 가족이 되어준다. 친부모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것은 쇼타도 마찬가지다.

 

이 가족의 파국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펼쳐진다. 통상의 관점에서 유괴가 이 가족에게는 보호가 된다. 아동 학대를 당하는 아이를 오히려 밝게 만든 것도 이 가족이다. 유리가 다시 가족으로 돌아간 후 보여주는 몇 장면은 아주 상징적이다. 진심과 거짓이 공존하는 이 가족은 우리에게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가족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이것에 대한 답을 작가는 내놓지 않는다. 각 개인의 몫이다. 이 좀도둑 가족도 아주 멋진 바다 여행을 한다. 아름다운 추억이다. 아마 영화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가족을 떠난 두 아이들의 현재 모습은 진한 여운과 불안감을 던져준다. 씁쓸하고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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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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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실수해서 한 마을에 바보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그 마을은 폴란드 남동부의 작은 마을 헤움이다. 실제 지명은 존재하지만 이야기 속 마을은 가상의 마을이다. 이 바보들만 모여 사는 마을을 떠올리면서 악마와 바보들의 마을을 소재로 한 단편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것과 다르다. 읽다 보면 이 마을 사람들이 정말 바보란 것을 알게 된다. 처음 몇 편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답답했다. 이성이 예상하지 못한 결말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끔 현명한 해결책이 나올 때도 있지만 아주 일부다. 그러다 문득 몇몇 이야기에서 우리 삶의 모습이 보였다.

 

17세기부터 동유럽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는 짧은 이야기들에서 소재를 빌려 작가가 새롭게 재창작한 우화들과 그 이야기들에 영감을 받아 작가가 창작한 우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이야기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작가의 말에 잘 나와 있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읽다 보면 내가 이해한 것과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우리 삶을 그 속에 대입해서 이해해도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헤움 사람들처럼 바보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그것과 비슷한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읽으면서 ‘저런 바보가 있나.’하고 말하다가도 움찔 놀라게 된다.

 

마흔다섯 편의 우화는 생각보다 빨리 읽히지 않았다.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믿는 헤움 사람들의 행동을 마냥 웃으면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우화와 우리의 삶을 비교하는 시간을 자신도 모르게 가진다. <하늘에서 내리는 나무>를 읽으면서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말장난들이 떠올랐고, <바보들의 인생 수업>에서 4대강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이 연상되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말과 행동을 왜곡하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한데 단순히 잠깐 동안 눈을 가리기 위한 행동을 펼치는 것과 너무나도 닮았다. 물론 이런 행동에 동의하는 바보들이 늘 있다.

 

읽으면서 나는 바보가 아니구나 생각했지만 다 읽은 지금 자신할 수 없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헤움 사람들처럼 수많은 바보짓을 한 것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당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거나 최선이었다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바보 같은 행동을 적지 않았다. 내 욕심에 눈이 가려져 앞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름 지혜로운 대처였다고 생각한 것도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보면 다른 좋은 방법들이 많이 있었다. 가끔 바보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실제 행동은 이익 우선이다. 이런 나를 돌아보면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들은 바로 헤움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헤움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하나 배우고 싶은 것도 있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 답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물론 이들의 해결책은 황당하고 바보 같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진심과 열의는 진짜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돕기 위한 마음이나 현재의 문제를 풀기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 행동 등이다. 그냥 보기에도 간단한 문제의 답을 구하기 위해 며칠을 토론하는 모습은 논쟁을 피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우리의 삶과 대비된다. 이것 또한 읽으면서 바보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이 우화들은 읽은 이후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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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 할 만한 것 - 오시이 마모루가 바라본 인생과 영화
오시이 마모루 지음, 장민주 옮김 / 원더박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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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진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쉽게 일본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을 때가 아니었기에 비디오테이프로 봤다. 주로 본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 등의 작품이었다. 영화 잡지 등에 나오는 작품들에 대해 관심이 높았는데 그 중 한 편이 <공각기동대>였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 주인공의 누드톤을 빼면 강하게 인상에 남는 것이 없었다. 기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뇌를 이해하지 못하니 그들이 펼치는 활약이 낯설기만 했다. 그러다 TV용을 보고, 인터넷과 전뇌에 대한 이해가 조금 깊어지자 다른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감독이 쓴 인생과 영화 이야기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두툼한 책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과 영화를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그 자신도 말했듯이 이 책은 우선순위에 대한 이야기다. 우선순위는 언제나 선택의 문제가 생긴다. 그의 인생이나 애니메이션 스텝들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말한다. 재밌는 것은 남녀의 차이다. 여자 스텝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남자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생활력 때문이다. 남자 스텝들은 오타쿠가 많은 것 같은데 승진과 성취감이 그렇게 큰 것 같지 않다. 그러니 현실적인 여성들이 이들을 남편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원화를 그릴 때 더 빨리 많이 그려서 승진하려는 욕구가 없다. 이런 사람들이 감독까지 올라오는 일은 없다.

 

그의 직업관은 명확하다. 능력 우선이다. 개인사는 사회적인 문제가 크게 되지 않으면 신경쓰지 않는다. 감독이란 위치도 자신의 경험으로 풀어낸다. 감독이 촬영 현장에 늦게 나타나는 것도 다른 스텝이 말해 준 것이다. 그가 빨리 나타나면 다른 스텝들이 긴장하고 서두르게 된다. 프로듀스와 다투는데 이것도 서로의 일을 하는 것이다. 입장 차이를 이해하고 있다. 일과 개인을 분리하고 있는데 그에게 최고의 파트너는 집에 있는 개다. 너무 관계가 밀착되어 있지 않고 복잡하기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나의 삶을 살짝 엿봤다.

 

가짜뉴스와 정치로 넘어가면 그의 정치관에 조금 의문이 생긴다. 특히 공모죄 부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고민스럽다. 그는 “공모죄나 새로운 헌법을 어떻게 올바르게 운용해나갈 것인가”라고 말한다. 하나의 법이 만들어진 후 잘못 운용될 경우 바로 잡으면 된다는 생각일 테지만 현실은 이것을 악용할 가능성이 더 높다. 자신이 “그 기술의 이면에 숨어 있는 인간 존재가 파악하기 어렵다. 더욱이 뒤에 숨겨놓은 인간의 악의에,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둔감하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정치인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주제가 계속 눈에 거슬린다.

 

그의 글 중에서 내가 자주 내뱉는 말이 있다. 원전 부분이다. 원전이 안전하면 도쿄 근처에 지어라는 말과 같이 서울에 원전을 지어라는 말이다. 인간들의 이율배반적 표현은 곳곳에 널려 있다. 나도 물론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기술이나 과학 등이 아니다. 인간이다. 인간보다 재밌는 게 없다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전쟁영화도 그 속에 사람들의 사연들이 담겨 있기에 감동을 준다. 이것은 <신 고질라>의 안노 히데아키의 영화를 비평할 때 분명히 드러난다. 영화는 재밌지만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감독의 시선에서 본 평론은 좋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이해하는 영화의 깊이를 알려준다. 아직 <신 고질라>를 보지 않았는데 검색하니 정치 풍자극이란 평가가 많다. 조금 혼란스럽다.

 

아마 김지운 감독이 새롭게 만든 <인랑>이 상영되지 않았다면 이 책은 이렇게 빨리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김지운 판 <인랑>을 보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예전 판과 함께 보고 싶다. 그리고 아직 보지 않은 오시이 마모루의 다른 영화도 보고 싶다. 어릴 때보다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알게 된 것이 있으니 영화 속에서 그의 철학을 조금은 찾아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끔 영화감독들의 영화평을 읽고 뭔 소린가 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그들이 보는 세계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한동안 끊다시피한 영화를 다시 시작해야 할 모양이다. 나의 우선순위에 조금 변화를 줄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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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첸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최정윤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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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로 바리코, 낯선 이름이다. 이 이름보다 더 낯익은 것은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이다. 물론 이 영화 본 적이 없다. 거의 20년 전 영화이다 보니 봤다고 해도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저자의 이력을 보았다. <이런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아! 그 소설의 작가다. 태국 여행 중 아주 재밌게 읽었던 그 소설. 다른 소설들을 번역해 주었으면 했던 그 작가. 그런데 이번 작품은 소설이라고 하기 좀 그렇다. 1인극을 위한 모놀로그다. 이 부분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노베첸토. 정식 이름은 대니 부드먼 T.D. 레몬 노베첸토다. 그는 버지니아 호에서 태어났고 평생 배 위에서 살았다. 피아노 위에서 발견되었고, 선원 대니 부드먼 손에 키워졌다.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아 그 어떤 신고서에도 그의 존재는 나타나지 않는다. 오직 버지니아 호와 사람들의 소문 속에만 존재한다. 그는 천재 피아니스트다. 너무나도 뛰어난 연주를 하는데 그의 음악을 들으면 사람들은 감정의 홍수 속에 파묻힌다. 1등실 손님이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매일 3등실로 내려왔다. 이런 소문은 멀리 퍼져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실존 인물인 ‘젤리 롤 모턴’과 피아노 경합을 벌이게 된다. 이 장면은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그 이미지를 그려보지만 음악은 머릿속에서 재생되지 않는다. 불협화음 가득한 재즈 몇 가락이 전부다. 영화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이런 음악을 다룬 책들을 읽을 때면 늘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어떤 음악이면 이런 감정들을 불러올까 하고. 만약 이런 음악을 듣게 되면 나의 반응은 어떨까?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벤트가 하나 펼쳐진다. 그것은 고정되지 않은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하는 장면이다. 파도에 따라 배가 기우는데 그 움직임 속에서 그 어떤 충돌도 없이 멋진 연주를 한다. 마지막에 유리가 파손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 장면들을 떠올리면 아주 멋진 영상이 재생된다. 비현실적이지만 환상적이다. 이렇게 이 모놀로그는 아주 강렬하고 인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노베첸토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배에서 내릴 결심을 한다. 그런데 그날이 되자 몇 발자국 내딛은 후 포기하고 배로 돌아온다. 그 앞에 펼쳐진 더 넓은 세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배와 피아노는 한계가 있는 곳인 반면 세상은 그에게 무한으로 다가왔다. 불안감이 그를 배에 묶어두었다. 88개의 건반으로 무한의 음악을 연주하는 그가 세상의 넓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제2차 대전과 선박의 마지막이다. 버니지아 호가 폐선 처리될 때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하고. 하지만 불안한 예측은 현실이 된다. 마지막 장면은 해학적이고 풍자적이다.

 

모놀로그란 것을 의식하는 동시에 영화적 연출을 생각한다. 문장을 읽을 때는 모놀로그를, 이미지를 떠올릴 때는 영화다. 이런 의식적인 행동은 이 짧은 글에 다양한 재미와 깊이를 제공한다. 만약 영화를 먼저 보았다면, 나중에 본다면 영화의 이미지가 이런 상상력을 제한할 것이다. 또 작가는 장면과 상황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읽을 때 나도 모르게 강하게 힘을 주거나 연극적인 음성으로 읊조린다. 당분간 노베첸토의 이미지가 일상 속에서 불쑥 불쑥 떠오를 것 같다. 명확하지 않고 실체도 없는 음악도 이미지로 다가온다. 짧은 글이지만 강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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