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디자인 1 지식을 만화로 만나다 1
김재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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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나온 <디자인 캐리커처 - 유쾌한 20세기 디자인 여행>의 개정증보판이다. 서문을 읽고 난 후에 이 사실을 알았다. 이때마다 내가 책소개 글을 꼼꼼하게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 사실을 알고 간단하게 구판과 개정판을 비교해보니 편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개정판이 좀 더 잘 분류되어 있다. 구판이 단순한 나열이었던 것에 비하면 개정판은 브랜드, 패션, 디자이너, 건축, 가구, 빛, 자동차, 비행기 등으로 구분해 이해를 더 쉽게 만들었다. 이 분류와 함께 간단하게 풀어낸 디자인 만화는 가독성을 높여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P.S 디자인’에 오면 많은 글자들로 인해 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이 만화를 보면서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들이 너무 간단하게 나와 아쉬웠던 부분이 많다. 작가가 핵심만 뽑아서 간단한 그림으로 디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판이 단순한 나열로 소제목을 붙였다면 이번에는 제목에 간단한 설명을 곁들였다. 덕분에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바를 더 쉽게 이해하게 되었다. 편집의 힘이라고 한다면 너무 나간 것일까? 표지의 차이도 상당하다. 개인적으로 기괴한 모습의 구판보다 개정판이 더 좋다. 이런 편집도 디자인의 영역이다. 캘리그라피가 새로운 글자체 디자인에, 표지에, 광고 등에 어떻게 인용되고 있는지 보면 이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구판과 달리 개정판의 첫 이야기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 이야기로 시작한다. 더하기보다 빼기로 성공한 애플 디자인은 이제 모든 스마트폰 업체의 표준처럼 보인다. 이들의 빼기는 늘 무언가를 더 넣어서 가격만 부풀리려는 한국의 가전제품 디자인을 생각하면 더욱 돋보인다. 실제 집에 있는 가전제품 중 상당수가 필요 없는 기능이 너무 많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다. 물론 스마트폰의 기능도 마찬가지다. 홈페이지를 보면 또 어떤가? 첫 화면에 너무 많은 것이 들어 있어 보기가 오히려 불편하다. 잡스의 생각을 디자인으로 만들어낸 그들을 보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샤넬과 리바이스 디자인이 시대를 해방했다고 하는데 일부 맞는 말이다. 샤넬의 드레스와 핸드백이 모든 여성의 워너비가 되면서 이제는 구속물이 되었다. 심플한 디자인이나 필요 없는 것 같은 것들 넣은 디자인이 시대를 넘어 유행하는 것은 제품의 특성도 있지만 어느 순간 이것이 유행하면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단순히 디자인 문제로만 한정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다. ‘I♥뉴욕’ 디자인이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70년대에 나왔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 디자인이 얼마나 많은 짝퉁을 만들어내었던가. ‘굿 디자인이 굿 비즈니스다.’라는 말 속에 담긴 의미를 풀어낸 부분은 이 만화의 가치를 더 높여준다.

 

디자이너 이야기를 하면서 안도 다다오를 넣은 것은 의외다. 건축물에 넣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에 대한 극찬 등은 이미 다른 책에서 많이 접했던 것이라 별로 신선하지 않다. 바우하우스가 독일인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부분은 조금 의외다. 나처럼 디자인을 모르는 사람도 아주 자주 들은 이름인데 말이다. 이 디자이너 이야기 속에서 시대와 나라에 따라 호흡하는 디자인 정신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간결한 기능성 위주의 디자인 뿐만이 아니라 겉치레가 가득하거나 장식성을 입힌 디자인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다. 실제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보고 감탄하지만 기능성은 또 다른 문제인 경우가 많다.

 

지을 당시 많은 욕을 먹었지만 짓고 난 후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친 건축이 둘 있다. 하나는 에펠탑이고, 나머지 하나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다. 한국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도 마찬가지다. 멋진 외형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져 많은 욕을 먹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낙수장 이야기에서 물소리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단 작은 컷 하나는 이 만화가 조금 비딱한 시선을 계속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컷들이 자주 나오면서 단순히 열광과 칭찬만으로 가득한 책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빛 이야기를 보면서 낯익은 조명기구가 누구의 작품인지. 왜 그것이 유행했는지. 그 후예들이 어떤 것인지 등으로 생각이 뻗쳐나갔다.

 

한 번도 콩코드가 에펠탑에 버금가는 프랑스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영국과 합작으로 만든 비행기이고,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이 비행기를 보았을 때 감탄한 것은 기억난다. 2차 대전 당시 전투기에 대한 것은 사실 잘 모르겠다. 오히려 SF영화 속 우주선에 더 관심이 많다. 나의 취향이 그 쪽에 더 맞기 때문이다. 자동차 디자인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덤고 있다.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현대 포니의 디자이너가 조르제토 주지아로란 사실이다. 그때는 참 멋없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안목이란 정말. 한때 열광했던 자동차들의 디자인에 대한 간단한 설명 등은 또 다른 재미다.

 

그림이 사라지고 글자만 가득한 ‘P.S 디자인’은 작가의 고찰이 담겨 있다. 재밌는 에세이도 있고,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글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디자인을 시대와 함께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이 부분을 다시 정독하고 앞의 만화를 보고 싶다. 2권이 나왔는데 솔직히 언제 읽을지 모르겠다. 밀린 책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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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옆에 피는 꽃 - 공민철 소설집 한국추리문학선 4
공민철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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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한국 추리작가의 단편집이란 이유로 선택했다. 최근 장르 문학이 조금 더 활성화되었다고 하지만 몇 명 익숙한 이름의 작가를 제외하면 크게 관심을 둔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단순한 선택이 앞으로 주목해야 할, 아니 믿고 읽을 수 있는 작가 한 명을 만나게 만들었다. 아홉 편의 단편들이 예상하지 못한 재미를 전달해주었기 때문이다. 가끔 이런 작가들을 만날 때면 예전에 사놓은 오랫동안 묵혀둔 오늘의 추리소설들이 떠오른다. 혹시 그 작품들 속에도 내가 놓친 수많은 추리작가들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추리작가협회 신인상, 한국추리작가협회 황금펜상 수상작들을 실고 있다. 황금펜상이 최우수 단편에게 수여한다는 것과 그것을 2년 연속으로 받았다는 사실은 이 작가의 글빨이 상당히 좋다는 의미다. 그런데 내가 주목한 소설들은 이 작품들이 아니다. 표제작 <시체 옆에 피는 꽃>과 <도둑맞은 도품>에 눈길이 더 간다. 표제작은 1인극과 관객 참여형 연극을 통해 오랜 세월 동안의 연쇄살인의 범인과 그 이면을 풀어나간다. 다섯 살 때까지 납치법의 손에 길러졌다는 소개와 제목 때문에 좀 잔인한 전개를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이 재밌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마을의 아이라는 설정은 조금 아쉽다.

 

<도둑맞은 도품>에 눈길이 간 것은 이유가 간단하다. 학생 탐정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캐릭터들을 잘만 다듬으면 연작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사건을 두 학생이 추리하면서 진범에게 다가가는 과정이 예전에 학생 추리물을 읽을 때 재미를 떠올려주었다. 신인상을 받은 <엄마들>은 아파트와 집값을 엮어 풀어가다 반전을 불러온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이들의 욕망이 빚어낸 현상에 놀라지 않지만 반전과 엄마들의 모습에는 순간 섬뜩했다. 엄마들의 과거가 현재 아이들에게 투영되는 모습은 불편한 사실이기도 하다.

 

황금펜상을 수상한 작품들은 <낯선 아들>과 <유일한 범인>이다. <낯선 아들>은 화자의 시점을 통해 먼저 오해하게 만들고, 다른 이를 등장시켜 현실을 보게 만든다. 이 현실 속에는 악의가 넘실거리지만 그 속에는 외로움과 모성애가 가득하다. 사실들의 나열 속에 가려진 진실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독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유일한 범인>은 고독사의 다른 이면을 파헤친다. 방송에까지 나온 할아버지의 죽음을 더 알기 위해 최초 발견자이자 할아버지의 술친구 역할을 한 수종을 만나 이 죽음의 이면을 파고든다. 진상의 발견이 씁쓸함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4월의 자살동맹>은 왕따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풀어간다. 자살하려는 왕따 대상 유성민을 막기 위해 김원종이 동맹을 맺는다. 이것이 자살동맹이다. 성민은 계속 학내 폭력에 시달리지만 이것을 기록하면서 자살 후에 증거로 남기려고 한다. 원종이 성민의 자살은 막은 이유는 씁쓸하고, 하나의 목적이 생기면서 그 폭력을 견디고 즐기는 성민이 낯설다. 편지 형식으로 진행하면서 마지막에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 반전이 감탄보다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든다. 성민의 여동생은 왜 이 편지를 보내야 했을까 하는 의문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가장의 자격>은 아들의 살인과 외톨이 삶을 퇴직자 아버지가 다시 알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아들에게 무관심했던 그가 아들의 자살과 재혼한 아내의 시한부 인생을 앞두고 한 가족의 가장이 되려고 한다. 조금 뻔한 설정에서 아버지의 선택과 할아버지란 존재가 충돌하는데 이 부분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일반적인 할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일까? <사랑의 안식처>는 안식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 짠하다. 그것으로 끝날까 하는 의문이 먼저 생기는데 누구에게는 미래보다 오늘과 내일이 더 중요하다. 자기 딸이 성폭행당해 죽었고, 이것과 관계없는 사건이 하나 있다. 연관성은 없지만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성범죄자에 대한 통지문 하나가 그 피해 가족에게 어떤 연쇄작용을 일으키는지, 이 관리방식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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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 4천만 부가 팔린 사전을 만든 사람들
사사키 겐이치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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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어사전 두 편찬자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의 국민적 베스트셀러인 <산세이도 국어사전>과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을 만든 겐보 히데토시와 야마다 다다오가 두 주인공이다. 이 둘은 대학 동기이고, 각자 거의 혼자 사전 한 권을 엮은이들이다. 단순히 두 사전의 편찬 이야기만 담고 있지 않고, ‘말’의 본질을 풀어낸다. 동시에 처음 같은 사전을 편찬했던 두 인물이 왜 갈등을 일으켰고, 두 종류의 사전이 나오게 된 이유를 파헤치는 지적 미스터리를 다룬다. 물론 이 둘이 처음 만든 사전이 지닌 의미도 같이 다루면서 사전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을 깨트린다.

 

원래 방송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것을 책으로 출간했다. 방송 당시 제목은 <겐보 선생과 야마다 선생 - 사전에 인생을 바친 두 남자>였다. 하지만 방송은 한정된 시간 안에 압축적이고 강렬한 편집으로 내용을 담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 책은 방송에서 누락된 부분을 더 채워낸 것이라고 한다. 물론 방송 특성 상 연출에 의한 재미가 더 있을 수 있다. 화려한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곁들여진다면 일본 쇼와시대 사전 역사 최대의 수수께끼를 푸는 재미를 더 쉽게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 실제 이 프로그램은 제30회 ATP상 최우수상, 제40회 방송문화기금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책은 제62회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책은 지적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부분에 서로 다른 두 사전의 대표적인 단어 해석을 풀어놓고, 그 단어의 의미 속에 숨겨져 있던 두 편찬자의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이 과정 속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겐보 선생이다. 처음 그에게 새로운 사전 의뢰가 온 것에서 시작해 어떻게 판본이 발전했고, 이 둘의 갈등이 어떤 사전으로 나누어졌는지 보여줄 때 일반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사전의 의미가 바뀐다. 겐보 선생이 현대어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야마다 선생은 사전의 역할은 문명 비평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의 차이가 단어의 뜻풀이에서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연애란 단어를 풀어낸 두 사전에서 아주 충격적인 단어를 발견한다.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에서 ‘가능하다면 합체하고 싶은 생각’이란 글이다. 반면에 <산세이도 국어사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산세이도 국어사전>에 실려 있는 에이(A)에 실린 의미들이다. 키스, 페팅(B), 성교(C), 임신(D), 중절(I)로 이어진다고 하는 7~80년대의 은어를 실고 있다. 은어로 ABC라고 말했는데 이것을 실었다고 한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아 사전에서 빠졌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겐보 선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야마다 선생의 뜻풀이에는 백도를 ‘과즙이 많고 맛있다’고, 붉돔을 ‘얼굴은 붉은 도깨비 같지만 맛있다’고 풀어놓았다. 이런 사전 솔직히 낯설다. 그런데 이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의 판매 수량이 2천만 부가 넘는다고 한다. 만약 한국 국어사전에 이런 뜻풀이를 담았다면 어떨까? 국어사전에 실린 백도는 “복숭아 품종의 하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으로, 모양이 둥글며 살은 희고 무르다. ‘흰 복숭아’로 순화.”라고 되어 있다. <산세이도 국어사전>과 비슷하다. 눈에 띄는 표현은 ‘순화’정도랄까? 한자를 우리말로 풀어낸 것은 사전에서 자주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단어를 다르게 풀어낸 사전들이 공존하고, 이 두 사전이 모두 잘 팔렸고,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고 재밌고 신기하다. 저자는 이렇게 개성이 강한 두 사전의 편찬자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시간을 따라가면서 왜 이 둘이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는지 파헤친다. 물론 겐보 선생이 처음 새로운 사전 편찬자가 되어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된 <메이카이 국어사전>의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부터 시작한다. 대학원생이었던 그가 홀로 편집을 담당했고, 그의 조수 역할(이것은 야마다 선생의 표현이다)을 한 과정을 보여주면서 왜 이런 일들이 생기게 되었는지 파고든다. 저자는 이 과정은 미스터리처럼 풀어간다.

 

저자의 놀라운 추리 능력은 두 사전에 실린 단어 속에서 단서를 찾아낸 것이다. 단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와 기록을 통해 두 거장의 갈등과 결별과 용서 등을 조금씩 보여준다. 그리고 겐보 선생의 용례 수집과 그 결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용례 카드 145만 장이란 숫자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서 가족의 삶이 어떠했는지 보여줄 때 조금 씁쓸했다. 반면에 야마다 선생의 가족사에 대한 부분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사전에 모든 것을 바친 겐보 선생이었기에 더 부각되었는지 모르겠다.

 

둘의 갈등은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의 서문에서 시작했다. 몰래 만든 것처럼 느껴졌던 설정은 다음에 밝혀지는 내용으로 인해 다르게 다가온다. 어쩌면 단어 하나가 둘의 갈등에 불을 지피고, 출판사의 입장이 불을 키웠는지도 모르겠다. 이 갈등이 해소되면서 뜻풀이와 용례도 바뀌는데 이 장면들이 아주 흥미롭고 재밌다. 인문 에세이가 이런 재미를 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리고 겐보 선생의 말은 소리 없이 변한다고 한 것과 야마다 선생이 말은 부자유스러운 전달 수단이라고 한 것에 동의한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나 많은 단어가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실제 내가 한 말이 어떻게 상대방에게 왜곡되었던가. 사전에 조금이라고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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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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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책을 처음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이 저자에 대한 편견을 심하게 가지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사실 이 책도 여수와 미역창고와 사진들을 보지 않았다면 선택하지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려고 했고, 실제로 그 가벼움이 용어와 단어와 그의 경험 등으로 무게가 더해졌지만 마지막 아재개그로 ‘핏’하고 웃으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마 프롤로그를 먼저 읽고 책을 선택했다면 좀더 주저했을지 모르겠다. 슈필라움과 심리학이란 용어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한국어로 번역하기 힘들다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음을 다시 알게 되었다.

 

슈필라움. 독일어다. ‘놀이’와 ‘공간’의 합성어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주체적 공간’을 뜻하는데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말이라고 한다. 저자의 번역은 ‘여유 공간’ 정도다. 놀이와 공간을 합치면 놀이터가 떠오른다. 여기에 어른들을 붙이면 괜히 야한 장소로 변한다. 왜 이런 상상이 먼저 떠오르는지. 나만의 제대로 된 슈필라움이 없기 때문일까? 책으로 가득한 작은 방이 하나 있으니 나만의 슈필라움이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다만 내가 바랄 때 그 장소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여수, 바닷가. 미역창고 등을 보면서 이렇게 살 수 있는 그가 살짝 많이 부러웠다. 잘 꾸며진 인테리어와 멋지게 정리된 책장을 볼 때면 잊고 있던 작은 꿈이 떠올랐다. 실제 내가 바란 것은 미역창고이지, 여수나 바닷가가 아니다. 이런 지역적 특성은 내가 자랄 때 늘 보던 것이라 별 의미가 없다. 여수란 지명을 보면서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한 그곳의 풍경과 음식을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저자는 음식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여수의 사계절을 담은 사진을 보면서 멋지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은 남해 바닷가 마을의 풍경 중 일부일 뿐이다.

 

자신만의 슈필라움을 꾸미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그는 상당히 행복해 보인다. 이 행복은 글 속에서 여유를 담아낸다. 문화심리학이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평범한 에세이로 다가온다.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작은 관찰과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용어 등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만 인문학의 흔적이 보인다. 너무 박한 평가인가. 4차 산업혁명의 어원을 풀어낸 이야기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실체가 없는 용어는 허상일 뿐이다. 그 예전 창조경제처럼. 이런 경우 거꾸로 하나의 신기술 등을 4차 산업혁명이란 표현 속으로 집어넣게 된다. 먼 훗날 내가 말한 것이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자신이 경험한 통일 독일의 모습도 우리가 외치는 통일을 좀 더 냉철하게 생각하게 한다.

 

현대인에게 부족한 것은 여유다. 경쟁에 쫓기고, 돈에 쪼달린다. 자기만의 방이나 공간 부재를 말하면서 여자들은 화장대라도 있다고 한 부분은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공간의 부재만을 말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돈이 있다면 방 하나 정도는 자신의 공간으로 꾸밀 수 있다. 이때 문제는 이 공간에서 여유를 누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가 여수의 작은 섬 미역창고를 시세보다 비싸게 사고 비싼 비용을 들여 개조해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든 것은 바로 슈필라움을 실천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그곳에서 창조된 그림과 글들은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를 준다. 작가의 다른 책도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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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여행 리포트
아리카와 히로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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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에 많은 책들이 재간되어 나오고 있다. 집에 읽지 않고 고이 모셔둔 많은 책들이 새롭게 출간되어 다시 유혹한다. 물론 재간인지 모르고 덜컥 산 책도 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우연히 책 정보를 검색하다 알게 되는데 이때마다 다른 책을 살 걸 하고 아쉬워한다. 만약 나에게 특정 작품이나 작가의 다른 판본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면 다르겠지만 현실에서는 없다. 이 소설도 다른 출판사에서 2013년에 출간되었던 작품이다. 가끔 개정판들의 표지를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표지 디자인의 변화를 살짝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목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고양이 여행 리포트란 제목이 그렇게 만든다. 고양이와 함께 한 여행 리포트로 해석할 수도 있고, 고양이가 한 여행 리포트로도 가능하다. 아마 작가가 의도한 것은 둘 다 일 것이다. 물론 이야기를 읽다 보면 후자의 이미지가 점점 강해지지만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이 소설 속에서 고양이는 관찰자이자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첫 문장이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첫 문장이란 점도 재밌다. 아직 그 소설을 읽지 않아 이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사토루와 나나의 여행은 추억 여행이다. 각 보고서마다 사토루의 연령별 친구들을 만나는데 이것이 사토루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보여준다. 초등학교 친구 고스케, 중학교 친구 요시미네, 고등학교 친구 스기와 치카코 등으로 이어진다. 이 성장 과정은 사토루만의 것이 아니다. 그와 만난 친구들의 그 시절 모습도 같이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또 한 마리의 중요한 고양이가 등장한다. 바로 하치다. 사토루가 고양이 이름을 지을 때 하치는 한자의 팔자와 닮아서 지었고, 같이 여행하는 나나는 꼬리의 모양이 칠과 닮았다. 작명 센스가 아주 평범하다. 이렇게 이름을 지은 것도 바로 어린 시절 추억과 관계 있다.

 

이미 다른 작품들에서 이야기꾼의 재능을 보여준 작가는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그 실력이 발휘된다. 고양이와 함께 여행하는 이유가 나나를 맡기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나나를 맡길 마음이 없다. 어린 시절 키운 하치를 부모님의 죽음으로 다른 친척에게 위탁할 수밖에 없었고, 이 이별의 아픔이 하치의 죽을 때까지 이어진 기억이 있다. 이 아픔은 어느 날 길고양이였던 나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나나가 자동차 사고를 당하면서 함께 한다. 이렇게 조용히 작가는 이야기의 탑을 조금씩 쌓아간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이 탑 쌓기의 하나다. 이 탑은 결국 왜 이런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 끝자락에는 큰 아픔과 슬픔이 있다.

 

사토루가 친구들을 만날 때 그 친구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작은 아픔을 조금씩 씻어낸다. 고스케는 고양이 사진으로 떨어져 있던 아내와 다시 연결되고, 요시미네는 쥐를 잘 잡는 고양이를 얻는다. 스기는 사토루에 대한 작은 열등감을 덜어낸다. 작가는 이 과정을 과거의 기억과 함께 풀어낸다. 이때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을 나나가 한다. 이 귀여운 고양이 나나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왜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된다. 개와 고양이를 차별하는 사람들에 대한 작은 편견도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나의 존재가 가진 힘이다. 앞부분에 왜 그가 나나를 맡기려고 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말하지 않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유가 조금씩 밝혀진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이어진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예측이 가능했지만 다른 하나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모 노리코가 왜 그렇게 이사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녀가 왜 그를 맡으려고 했는지 등이 나오면서 감동은 여운으로 잔잔히 이어진다. 사토루가 나나에게 큰 힘을 얻고, 나나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노리코가 나나에게 적응하는 과정 등은 간결하지만 묵직한 울림과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다. 다시 모인 사토루의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잠시 나의 학창시절을 돌아봤는데 괜히 그가 부러웠다. 이것은 작은 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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