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 - 박찬일 셰프의 이 계절 식재료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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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음식에 다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제철 음식 중에서 과일 같은 경우는 하우스 재배가 많아지면서 언제가 제철인지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제철이란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다. 수많은 지방 도시들이 농축수산물 축제를 기획하고, 방송이 이것을 홍보하면서 하나의 공식처럼 되었다. 실제 이 축제 기간에 가면 그 농축수산물이 더 비싼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책 속에도 나오지만 축제를 위해 다른 지역의 음식을 사오는 경우도 있다. 나 자신도 이 제철 음식을 먹으려고 한 적이 많다. 물론 그 지역에 가서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복잡하고 비싸고 멀기 때문이다.

 

십 수 년 전 신토불이가 유행한 적이 있다. 먹거리에서 거리는 아주 중요하다. 다행히 한국은 땅이 작아 운송에 큰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이 작은 땅도 한때는 냉장기술이나 운송 문제로 먹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다. 고등어나 갈치 같은 경우 서울에서 회로 먹기 시작한 것이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다. 이제 제철 음식도 꼭 그곳에 가서 먹을 필요가 없다. 얼마든지 서울이나 큰 도시에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곳의 풍경과 함께 맛보고 싶다면, 그 음식의 전문집을 방문하고 싶다면 그곳에 가야 한다. 실제 그곳에 가야 더 싸고 더 지역적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한국처럼 4계절이 뚜렷한 곳은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 물론 최근에는 수입산이 들어오면서 이 경계가 무너지기도 한다. 조류의 변화나 남획 등으로 가치가 바뀌거나 거의 사라진 어종도 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오징어, 병어, 명태 등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동해 횟집에서 오징어는 서비스로 나왔다. 오징어 물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실 병어는 생선을 잘 몰라 그랬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명태는 정말 흔했는데 이제는 귀하신 몸이다. 명란젓은 비싸 잘 사먹지 못하는데 가끔 명란아보카도덧밥을 아내가 해줘서 가끔 먹는다. 갑자기 입안에 군침이 돈다.

 

내가 자란 곳은 어촌 도시였다. 어시장에서 비린내를 맡으면서 자랐지만 생선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산나물은 초봄 쑥국을 좋아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먹지 못하고 있다. 방송에서 도다리쑥국을 외치기 전에 알고 있었지만 통영의 그 집에 결국 가보지 못했다. 여름 가지 스테이크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국 전통 품종이 작아 맛있는 요리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설명이 기억난다. 포도의 하연 분이 어떤 의미인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메일 이야기를 보면서 다음에 냉면에 식초를 친 후 먹어보고 싶어졌다. 어떤 맛일까? 개인적 이효석 생가 메밀집은 별로였다. 박찬일의 광화문국밥 냉면을 한 번 먹고 싶다. 아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내 취향과 비교해보고 싶다.

 

미더덕을 먹었다고 생각하면 오만둥이인 경우가 많다. 미더덕 회가 있었던가? 어릴 때 해삼, 멍게를 초장에 찍어먹으면 아주 맛있었다. 아마 초장 맛일 것이다. 붕장어와 뱀장어는 지금도 헷갈린다. 외갓집 앞 뱀장어집에서 얼마나 많은 뱀장어 껍질 벗기는 모습을 봤던가. 예전에는 갈치가 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국산의 경우 크기가 커지면 엄청나게 비싸진다. 아프리카산 갈치를 일반 식당에서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장 먼저 양식이 된 광어의 경우 이전에 엄청나게 비쌌다고 한다. 유순해서 양식하기 좋았다는 것도 있지만 비쌌던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멸치하면 요즘 기장을 많이 말하지만 내가 멸치 터는 것을 직접 본 곳은 거제도다. 백화점에서 죽방멸치의 가격을 보고 놀랐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복달임 민어도 몇 년 전에 팟캐스트로 알고 있었는데 그 이후 tv방송에서 너무 말해 평범한 것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민어전을 먹어보고 싶다. 전복의 경우 아직 그 맛을 모르겠다. 낙지의 경우 산낙지와 냉동낙지의 맛 차이를 최근에 알았다. 부드러움의 정도가 너무 차이난다. 참치도 몇 점 먹을 때 그 부드러움에 반하지만 계속 먹으면 어떻게 될까? 통조림 꽁치로 김치지개를 먹던 순간들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

 

식량 자주권의 감자와 연결한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감자는 주식이 아니다. 간식이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얼마 전 기사를 통해 딸기 품종 설명을 들었는데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위치에 따라 당도 차이가 있다니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어릴 때 꼬막을 삶아주면 하나씩 빼먹던 기억이 있다. 1박2일 덕분에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고, 최근에 생긴 식당 프렌차이즈 때문에 쉽게 먹을 수 있다. 굴도 마찬가지다. 왜 생굴에 레몬을 뿌려서 먹는 그 맛을 아직 나는 모를까? 냉면과 더불어 미식의 기준 중 하나인 홍어는 가끔 먹지만 그 진정한 맛은 아직이다. 돼지 김장은 한국보다 이탈리아 이야기인데 저장식품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식탁 풍경을 자주 떠올려봤다. 그런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가지 음식은 뚜렷하지만 대부분의 음식은 텅 빈 채다. 그래서인지 박찬일의 추억들이 부럽다. 비록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라 싼 거에 더 집착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 식재료들이 귀한 몸이시다. 일반적으로 잔잔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욕설을 내뱉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지간히도 그 당시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추억보다 나의 뇌리에 강하게 꽃힌 것은 작가의 문장이다. 간결하고 분명한 문장은 읽기 좋고 재밌다. 왜 이전에는 이 사실을 잘 몰랐을까? 집에 있는 그의 다른 책을 빨리 읽어봐야겠다. 물론 그 책을 읽으면 먹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곳이 더 늘어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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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분홍색 부채 에놀라 홈즈 시리즈 4
낸시 스프링어 지음, 김진희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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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놀라 홈즈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다. 모두 여섯 권이니 두 권만 더 나오면 된다. 사실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이렇게 빨리, 계속해서 나올 줄은 몰랐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시리즈 두 번째 작품에 나온 세실 리가 또 등장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세실리가 에놀라와 콤비가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2권을 읽고 이 왼손잡이 소녀가 함께 활약하는 장면을 기대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찾아야 할 인물은 세실리다. 그녀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의뢰가 있은 것도 아니고, 우연히 여성 전용 화장실에서 그녀의 불행한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여성 전용 화장실에서 세실리는 중년의 두 샤프롱에게 속박되어 있다. 그녀의 손에는 분홍색 부채가 들려 있다. 변장한 에놀라를 발견하고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도 두 샤프롱을 감당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녀는 하나의 단서로 분홍색 부채를 남겨둔 채 끌려간다. 그녀가 탄 마차를 쫓아가다 마이크로프트 오빠와 부딪힌다. 그를 발로 차고 그 마차를 찾지만 이미 사라졌다. 그녀는 오빠의 추적도 피해야 한다. 유일한 단서인 분홍색 부채를 들고 누가 세실리를 끌고 갔는지 찾는다. 상류사회의 잡지를 읽으면서 누군지 찾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변장을 하고 유일한 단서인 분홍색 부채를 들고 이런 물건을 만들만한 업체를 찾아간다.

 

전작들에서도 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오빠들과의 관계다. 이번에도 셜록이나 마이크로프트와 만난다. 19세기의 가치관을 앞세운 오빠들의 입장과 에놀라의 입장은 차이가 크다. 특히 마이크로프트는 더 심하다. 여성 혼자 험한 세상을 살아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숙녀가 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자립심과 독립심 강한 그녀에게 통할 리가 없다. 그녀가 온갖 노력을 기울여 세실리를 찾으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결혼을 막기 위해서다. 세실 리가 본성 깊은 곳에 머물고 있는 강한 독립성을 생각한다면 한 사람의 삶을 구원하는 일기도 하다.

 

전작들에서 그녀의 변신은 셜록에게 이미 알려졌다. 똑같은 변신은 이제 불가능하다. 덕분에 그녀의 변신은 더욱 자연스러워지고 다양해졌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짜 기자로 변신해 단서를 찾아가거나 늦은 밤 넝마주이로 변해 이전처럼 작은 선행을 베푼다. 변신을 위해 옷 속에 도구를 넣어 다니고, 작은 장소만 있어도 금방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순식간에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어떤 순간에는 그녀가 옆에 있어도 오빠들이 그녀의 정체를 모르고 지나간다.

 

세실리를 찾고, 그녀를 구하려는 노력이 이어진다. 그러다 은장에 빠진 오빠 셜록을 발견한다. 그를 도와준다. 이 시리즈에서 셜록은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이 실수가 개인적으로 봐서는 에놀라의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셜록의 불완전을 보여줄 뿐이다. 이렇게 만난 남매는 서로가 쫓는 인물이 누군지 알게 된다. 그런데 이 수사에는 작은 함정이 있었다. 만약 은장에 빠지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에놀라는 이 새로운 사실을 기반으로 수사를 새롭게 한다. 그녀가 가진 단서를 가지고 논리를 세우고 증거를 찾고 목표물에 다가간다. 간결하지만 빠르게 진행되고 작은 액션과 놀라운 기지가 발휘된다.

 

복식과 그 시대 문화에 대한 표현을 이번 이야기에서도 충분히 표현한다. 시대를 앞선다는 것은 많은 질시와 불편함을 초래한다. 에놀라나 세실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실제 에놀라는 십대 중반일 뿐이다. 아직 어린 나이이다 보니 셜록을 만났을 때 감정이 북받친다. 크게 우는 그녀를 보면서 내면을 살짝 엿보게 된다. 조금 더 가까워진 듯한 가족 관계가 다음 이야기에서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 모르겠다. 전편처럼 암호를 풀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또한 가벼운 재미다. 이번에도 다음 이야기가 빨리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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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사람의 속마음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2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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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동네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흔한 일이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곳이고, 많은 기억과 추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결하면서 재밌게 쓰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자신의 경험 등을 다른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은 다른 가이드북 등으로 충분하다. 또 세대 변화도 생각해야 한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과거와 현재의 차이가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마지막에 나온 ‘오사카 사람의 약속 장소’ 같은 것이다. 실제 내 경우만 해도 예전에 당연했던 장소들이 사라지면서 약속 장소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던가.

 

전작 <여탕에서 생긴 일>보다 조금 덜 공감된 것은 아마도 사투리 때문일 것이다. 사투리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번역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사투리를 번역할 때 전라도나 경상도 사투리를 자주 사용하는데 이때마다 나는 어색함을 느낀다. 내가 서울 출신이라면 좀 더 쉬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에세이에서 다루는 문제를 해결해줄 정도는 아니다. 단순히 어투만 바꾸는 것이라면 쉽게 넘어가지만 이것을 전문적으로 번역한다면 어떨까? 번역가도 상당히 고민했을 테지만 작가의 표현에 충분히 공감하기는 어렵다.

 

오사카와 도쿄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 도쿄 험담이 낯설지 않다. 일본에서도 우리처럼 오사카 사투리를 개그 소재로 자주 사용하는 모양이다. 다코야키와 오코노미야키 이야기는 순간 혼란을 겪었다. 다코야키를 왜 오코노미야키와 같은 것으로 생각했는지 잘 모르겠다. 오코노미야키를 밥과 함께 먹는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파전 등을 밥 반찬으로 먹는 것을 떠올렸다. 오사카 사람들의 영원한 히어로라는 가쓰라 분시의 경우 솔직히 모르겠다. 한국도 지역 방송이 활성화되어 지역 스타가 따로 있다면 쉽게 이해될 텐데 최소한 내가 자랄 때는 없었다.

 

그 유명한 도톤보리 강에 다이빙을 했다는 기사를 아주 오래 전 잠시 본 기억이 난다. 그런데 한신의 우승 때문이란 것은 기억이 새롭다. 오사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는 곳 중 하나인 이곳에서 이런 일들이 있었고, 이것을 이 지역 사람들의 성향으로 풀어낸 부분은 재미었다. 규슈 사람과의 미묘한 어긋남도 마찬가지다. 변명의 전주곡으로 ‘그게 아니라’라고 말하는 부분은 한국에서도 자주 듣는 말이다. 간단하게 늦어서 미안이라고 해도 될 텐데 이런 사족을 먼저 붙인다. 붙임성 좋은 오사카 사람들의 서비스 정신에 대한 에피소드는 한국 아줌마들이라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붙임성이란 단어와 맛집이란 단어는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오사카에서는 맛집보다 붙임성이 더 중요한 모양이다. 어쩌면 일본의 부엌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맛집이 많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일정 이상의 맛이라면 기왕지사 붙임성 좋은 집이 좋을 테니. 가위바위보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것은 우리 속에 남았던 일제의 잔재였다. 어릴 때 짱켄보 라는 단어를 듣고 사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사용하지 않지만 기억 속에 아주 진하게 남은 것은 아마 어릴 때 모든 놀이에 이 가위바위보를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것도 일본에서는 다른 사투리와 혼용되어 사용된 모양이지만 말이다.

 

전작처럼 하나의 에세이가 나오면 만화도 한 편 같이 나온다. 두 편인 경우도 물론 있다. 마스다 미리의 다른 만화처럼 간결한 선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번에는 앞에서 말한 사투리를 음계 등올 표시한 부분에서 조금 힘들었다. 내가 그 음계를 따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투리란 특성도 무시할 수 없다. 글에서 없는 이야기를 만화 속에 간결하게 표현한 부분에서는 이 에피소드의 강렬함을 느낀다. 작가가 이응 삼부작을 출간했다고 하는 데 이 책으로 두 편이 나왔다. 마지막 한 권 <엄마라는 여자>에선 또 어떤 이야기로 나를 즐겁게 해줄지 궁금하다. 이 책을 읽으니 왠지 모르게 오사카에 더 가고 싶다. 오사카의 붙임성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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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대기 - 택배 상자 하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 보리 만화밥 9
이종철 지음 / 보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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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에 실린 택배 물건을 부리거나 싣는 일을 까대기라고 한다. 엄청난 노동력이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나 자신도 어릴 때 전자제품 도매를 하는 부모님 때문에 물건 내리고 올리는 일을 한 적이 많지만 트럭에 빽빽하게 가득 들어찬 물건들을 보면 먼저 질린다. 전자제품이야 같은 크기이고, 무게도 일정하지만 이 택배 물건들은 크기도, 무게도 제각각이다. 준비되지 않은 근육은 이런 경우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일에 일정한 리듬을 타면 덜 힘든데 이런 경우는 리듬 타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기에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 쉴 틈 없이 레일 위에 택배를 올려놓아야 한다. 그것도 몇 시간이나. 생각만으로도 벌써 힘들다.

 

솔직히 말해 이전에는 택배 상하차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의 얕고 짧은 경험이 만들어낸 터무니없는 착각 때문이다. 이 알바를 시작하기도 전에 도망간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것이 현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루 하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란 이야기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작가 자신이 몇 년 동안 이 일을 했다는 점에 놀란다. 대단하다. 그리고 이 일을 몇 년 동안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에는 가슴이 아프다. 시급이 다른 알바보다 조금 더 높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했기 때문이다. 다른 알바도 해야 하는 사연 속에는 낮은 인건비도 한몫했다. 부부가 함께 택배나 운송업을 하는 장면을 볼 때 괜히 더 먹먹해진다.

 

이 만화는 작가가 까대기를 하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좀 더 좋은 환경과 조금 더 높은 시간급을 원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지점장과의 대립은 사실 구조적 문제다. 사람을 한 명 더 쓰면, 그만큼 손해가 나니 지점장 입장에서는 줄이려고 한다. 처음 까대기를 한 곳의 지점장이 그랬다. 시간에 쫓기는 택배사원들이 화장실을 얼마나 지저분하게 사용하는지, 까대기 레일 주변을 얼마나 어지럽히는지 보여줄 때 그 조그만 신경조차 그들에게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고생한다는 느낌이 없는 것은 자신도 살기 힘들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까대기 일을 하시던 우 아저씨가 말도 없이 사라진 것이나 첫날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도 이 현장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관계가 깊어지면 쉽게 이곳을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갑과 화장실 청소 문제로 첫 택배지점을 떠날 때 이바다의 행동도 이 관계의 깊이를 잘 보여준다. 열심히 일하는 알바일수록 더 잘 대해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신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깨닫지 못하다가 같이 알바한 동생의 행동에 쉽게 동의하는 모습은 그동안 쌓였던 감정을 드러낸다. 더 큰 택배사로 옮기면서 조금 더 대우가 좋아졌지만 일은 변화가 없다. 어떤 날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명절이 되면 택배 대란이 일어난다. 나 자신도 밤 열한 시가 넘어서 물건을 받은 적이 몇 번 있다. 택배 접수 마감은 연휴 며칠 전부다. 명절 선물이 가세하면서 물량이 더 늘어난 것이다. 택배 집하장에서 일어난 문제가 물류의 흐름을 막은 적도 있다. 이 만화를 읽으면 그 일이 조금 이해된다. 무책임하다고 말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그들이 그 현장에서 며칠 고생해보면 된다. 일당이 많다고 한다면 역시 마찬가지다. 가서 해봐라. 얼마 전 회사에게 택사 아저씨를 불러 물건을 보내니 택배비가 천 원 늘어났다. 워낙 저렴한 비용이란 것을 알기에 묻기만 하고 바로 지급했다. 그래도 초창기 택배 비용 정도다.

 

택배 노동 현장을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그 사실적 표현 속에 불편함도 가끔 있다. 내가 받은 물건들의 작은 파손들 때문이다. 적은 비용 속에서 이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치열해진 경쟁은 이것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던지고, 깔고 앉고, 파손되고, 보상하는 모습들은 현장 그대로다. 보상할 수박으로 더위를 잠시 잊는 그들의 모습은 보기 좋지만 아픈 현실이 담겨 있다. 비가 오면 비를 피할 곳이 없고, 추위도 그냥 견뎌야 한다. 좀더 좋은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지만 이것도 돈이다. 자본의 논리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편하게 받는 택배 속에는 이른 자본의 논리와 그 속에서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까대기를 비롯한 수많은 택배 관련 사람들이 엮여 있다. 과장되지 않은 이야기라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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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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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기생충>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기생충으로 사람을 조정하고 사랑의 감정을 만든다는 흥미로운 설정과 전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노로봇을 이용한 기억 조작이다. 이 만들어진 기억을 작가는 의억(義憶)이라고, 그 대상을 의자(義子)라고 한다. 현재 삶이 불만족스러울 때 사람들은 의억을 사서 가공된 기억 속에 숨는다. 이것과 반대로 레테라는 것은 기억을 지우는 나노로봇이다. 잊고 싶은 기억이 있을 때 이 레테를 먹는다. 아마가이 치히로가 원했던 것은 레테인데 ‘그린그린’이란 의억이 잘못 왔다. 이 약은 이상적인 청춘의 기억을 뇌에 심어주도록 프로그래밍된 나노로봇이다.

 

원하지 않는 가짜 추억 속 소꿉친구가 생겼다. 이것을 없애는 방법은 레테를 먹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먹지 않고 이 가짜 추억을 그대로 둔다. 실제 그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친구가 없었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이혼한 부모들은 자신들은 의억을 사지만 미성년자 아들은 이것을 사지 못하게 했다. 사이가 좋지 못한 부부는 이혼하고, 친권은 아버지가 가졌다. 그런데 엄마가 레테를 먹고 아들을 잊었다. 삶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채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갈 뿐이다. 이런 그에게 가공의 소꿉친구는 좋은 추억이다.

 

어느 날 축제에 갔다가 그는 가상기억 속 소녀를 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의자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인물이 현실에 나타났을 때 우리는 그것을 먼저 부정하려고 한다. 치히로는 선배에게 들었던 사기를 떠올리면서 실존을 부인한다. 그런데 자꾸 의억 속 기억들이 떠오른다. 행복했던 순간들이다. 그러다 갑자기 자기 옆집에서 등장한다. 혹시 자신이 레테를 먹고 나쓰나기 도카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물리적 자료를 찾고, 친구와 아버지를 만나 도카의 존재를 확인하지만 그 누구도 실존을 확인해주지 못한다. 그녀는 누굴까?

 

만들어진 기억이 현실에 스며들 때 자신의 의지와 감정은 흔들린다. 사랑이란 감정이 허구 위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는지 묻는다. 그러다 이들은 오랜 친구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이 시간들은 진짜다. 이때의 감정도 사실이다. 그런 어느 날 도카가 사라진다. 이 사라짐으로 인해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것은 도카의 이야기이자 치히로와 도카의 의문스러운 사연에 대한 해답이다. 이 이야기는 또 하나의 외로운 인생을 보여주고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려준다. 이 의문이 해결되었다고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작은 이야기가 또 하나 펼쳐진다.

 

미국 영화 <토탈 리콜>에서는 만들어진 기억과 액션을 거대하게 엮었다. 이런 부분은 스릴러의 소재로도 딱 맞다. 하지만 작가는 개인으로 축소시켰다. 일본 사소설이 먼저 떠오른 것은 선입견일까? 작가는 확장된 이야기로 나아가지 않고, 축소하면서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만들어진 사랑과 진짜 사랑의 경계와 기억에 대해서, 사랑이 꼭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져야만 하는지. 이것은 전작 <사랑하는 기생충>에서도 나온 물음이다. 전작처럼 밝고 화려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와 미스터리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잘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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