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TV를 거의 보지 않는 나에게 강인욱이란 이름은 아주 낯설다.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란 프로그램은 알고 있지만 스쳐지나가듯이 본 것도 손에 꼽을 정도다. 다만 이 방송에 나온 사람들이 각 분야에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알쓸신잡>이 낯선 전문가를 소개하면서 그들의 책에 관심을 가지게 한 것처럼 이 방송도 나에게 그렇게 먼저 다가왔다. 한때 고고학에 관심이 있었다고 해도 이 분야의 전문가가 누군지, 어떤 이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실제 알기 어렵다. 가끔 이렇게 만난 작가들의 글에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 이 책도 한동안 정체되어 있던 고고학 지식 몇 개를 업데이트 할 수 있었다.

 

저자도 말했듯이 고고학하면 가장 먼저 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하인리히 슐리만을 떠올린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있었던 고고학 발견들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리게 된 사실은 이 매혹적인 사실들 뒤에 숨겨진 엄청난 파괴와 무지들이다. 책 후반부에 이렇게 발굴한 유적지들이 얼마나 문제가 있었는지, 발굴한 유물에 대한 오해도 같이 나온다. 식민지 건설과 제국주의가 맞물려 벌어진 일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유물을 둘러싼 국제협약이 얼마나 기존 약탈자들에게 유리한 법인지 알려줄 때 순진했던 나의 지식에 깜짝 놀란다.

 

제국주의가 고고학의 꽃을 피웠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산업화와 개발우선정책 등이 유적지를 어떻게 파괴했는지 너무 빤한 이야기지만 전쟁 속에서 고고학이 이루어졌다는 부분은 조금 생소했다. 하지만 실제 예를 보면 비행전 중에서 하늘에서 본 땅의 높낮이나 참호 속 유적 등이 있다. 고고학에서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삽질이라고 하는데 삽질하면 군인 아닌가. 이 삽질 이야기를 보다보면 고3 대학입시에 과를 정할 때 사학과라고 했더니 삽질을 이야기했던 담임이 떠오른다. 뭐 그때 다른 과를 선택했지만 역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관심 분야다.

 

저자는 유라시아 고고학 전공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지역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알고 있던 이야기도 많지만 낯선 것도 많다. 유적 발굴 현장의 어려움이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발굴 과정의 훼손에 대해서는 큰 실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발굴 과정은 실수를 덜 저지르는 것이라고 한다. 공감한다. 그리고 이 발굴된 유물이 현재가 아닌 미래에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는 부분에서 얼마 전 읽었던 <깃털 도둑>이 떠올랐다. 유전자 분석 등의 과학이 발전할수록 하나의 자료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이 고대 유물을 다루지만 최첨단 기계 등을 이용한다고 한 부분도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발굴과 분석 과정을 거치면서 유물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 시대를 추론하게 만들고, 우리가 알고 있던 것들의 기원을 새롭게 이해하게 만든다. 단순하게 알고 있던 조로아스트교에 대한 나의 이해를 더 깊게 만들고, 그 기원을 더 오래전까지 넓혀주었다. 술도 마찬가지다. 와인과 맥주 같은 경우 최초를 둘러싼 논쟁이 늘 있지 않은가. 이런 것들은 모두 유물로 남아 분석이 가능하지만 음악은 악기를 제외하면 알 수 없다고 한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노래조차 시간이 지나고, 지역이 바뀌면 원래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지 않는데 고대의 음악은 어떻겠는가. 가끔 나 자신도 모르게 현재의 지식으로 과거를 무의식 중에 판단하는 나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발해와 고조선을 넣은 것은 저자가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서 지방 흥산문화 유적의 원류에 대한 논쟁을 가볍게 언급하고 지나간 것은 아직 충분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인들이 얼마나 중화를 앞세우는지, 그들이 억지 주장한 동북공정 등을 감안하면 더 많은 연구와 발굴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한 장에서는 유물 위조 사건을 다루는데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이 사건 자체가 아니다. 이 사건이 가능하게 도와준 수많은 조력자들의 가능성을 저자가 말한 부분이다. 거기에 속칭 국뽕도 한몫했다. 한국의 경우 국보 274호가 그렇다. 고고학을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독자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훔쳐보는 여자
민카 켄트 지음, 나현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잘 쓴 심리 스릴러다. 최근에 나오고 있는 이 장르의 공식을 잘 따르고 있다. 과격한 장면은 거의 없고, 불안과 과도한 관심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간다. 처음부터 중반까지는 이 심리 묘사와 지나친 들여다보기에 살짝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분위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꼬인 관계와 보여주시 위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그래서인지 나의 행동과 심리를 조금씩 들여다보기도 했다. 두 여인을 화자로 내세워 풀어내는 이야기는 번갈아가면서 흘려나오는데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 없는 긴장감을 계속 준다.

 

자기가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낸 엄마가 훔쳐보는 내용이란 설정에 관심이 있어 선택했다. 그런데 단순히 이 엄마의 심리만 다루지 않는다. 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같이 다룬다. 입양 보낸 엄마는 오텀, 키우는 엄마는 대프니다. 대프니는 입양한 딸 그레이스 외에 두 명의 자식을 더 낳았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인스타페이스란 SNS를 열심히 한다. 팔로우가 1만 명이 넘는다. 당연히 업체에서 협찬이 들어오고, 그녀의 게시글은 많은 관심을 받는다. 오텀이 그녀의 계정을 팔로우하고,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단순히 딸 그레이스의 일상을 알고 싶은 것을 넘어선 관심을 그녀가 보여준다. 이 미묘한 감정들은 작은 복선 같다.

 

오텀은 자신의 딸을 좀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남자 친구 벤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맥멀런 가족의 집 뒤편에 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벤이 원하는 여성상으로 자신을 바꾸고, 그의 연인이 된다. 그녀의 이런 집착은 그녀의 일상을 무너트린다. 대프니의 SNS에 몰입하고, 그녀가 산 옷과 물건을 구하려고 한다. 대프니가 보여주는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녀의 딸이 완벽한 가족 아래에서 자란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대프니가 SNS를 잠시 멈춘 순간부터다. 보통 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이때 한다. 실제 대프니의 뒤를 따라 마트에 간 것이다. 그리고 대프니가 아이 돌보미를 구할 때 다시 한 번 최상의 인물인 것처럼 변신한다.

 

대프니는 보여주는 삶과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남편의 외도다. 아이를 간절하게 원했지만 실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늘 일 핑계를 대면서 나간다. 다른 여자의 존재를 알게 된 그녀가 남편을 되돌리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선택한 것이 SNS 중단이다. 하지만 이것은 별로 효과가 없다. 그녀가 그레이스의 잘못을 알고 질책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고 그녀와 남편의 문제에 더 집착한다. 그리고 남편의 외도와 육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도한 대마초가 있다. 작은 일탈은 언제나 더 크게 번지고,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키우는 엄마와 옆에서 보는 엄마의 심리 대비가 아주 잘 드러난다. 실제 감정과 행동의 차이도 잘 드러난다. 오텀이 잠시 돌보미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24시간 육아에 시달려보지 않은 사람의 일시적인 환상이다. 물론 늘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내 주변에서는 이런 엄마들을 본 적이 없다. 자신의 시간을 내기 위해, 얻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노력하는가. 남편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대프니의 모습이나 이 완벽한 가족의 환상 속에 사는 오텀 또한 대조적이다. 이 둘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작은 불만과 불안 등이 계속 이어지고, 희망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희망은 희망일 뿐이다. 바뀐 것처럼 보이는 일상은 거짓이다. 이 거짓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하는 순간도 있다. 부부의 작은 다툼이 더 커지고, 이것이 아이들에게 전달될 때 불안감은 확산된다. 여기서도 작가는 한 번 더 숨을 고른다. 파격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자신의 실수와 감정을 숨기고, 불안감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작은 반전 하나와 큰 반전 하나를 숨겨두었다. 큰 반전 하나 속 사실 하나는 추측한 것이지만 전체적인 것은 알지 못했다. 현실적인 심리 스릴러이지만 반전으로 작은 여운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벽한 생존
김주영 지음 / 인디페이퍼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세기말인 1999년 오두막 사건이라고 불리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사람의 잘린 목으로 벽을 쌓은 사건이다. 사건 현장은 해운대 인근, 인적이 드문 산속이다. 피해자는 열두 명이다. 범인은 목을 매 불타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취재를 나왔던 기자 미희는 공범과 어린 생존자의 존재를 주장한다. 이 도입부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왜 이런 살인이 일어났을까 하는 것과 공범과 어린 생존자의 존재 여부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소설의 방향은 왜 이런 살인이 일어났는지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공범과 어린 생존자의 존재에 초점을 맞춘다.

 

흔히 이런 연쇄살인이 일어났을 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심이 많이 쏠린다. 하지만 작가는 이 부분은 놓아두고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후 삶을 다룬다. 직접적인 피해 대상자의 가족도 나오지만 간접 피해자 가족도 같이 나오면서 이런 사건의 경우 그 영향력이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기자 미희의 경우 지속적인 공범 주장 덕분에 남편이 죽고, 딸 채은은 아빠 없는 삶을 살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열심히 운동한다. 이런 가족의 옆에 윤석이란 아이가 함께 한다. 끔찍한 사건을 겪은 후 말과 선택적 기억을 잃은 아이다. 이들의 삶은 사건들 이후 비교적 평온하게 흘러갔지만 20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미희에게 계속적으로 오는 오두막 사건 제보 메일 때문에 깨어진다.

 

오후 3. 게스트하우스 이름이다. 이곳에는 두 명이 근무한다. 관리인 병훈과 유정이다. 병훈에게는 하영이란 고등학생 딸이 있다. 유정은 삼촌이라 부르는 명준과 함께 산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인 태형은 서울 부동산에서 얻는 임대수익만으로 충분한 여유가 있어 게스트하우스의 운영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 숙소에 놀러 온 젊고 예쁜 손님에게만 관심이 있다. 물론 소녀 같은 외모의 유정에게도 관심을 표현했다. 그런데 유정은 삼촌 명존의 심한 관리를 받고 있다.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온 메일 때문에 윤석은 이곳을 방문해 누가 보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당연히 미희 모르게 온다.

 

미희는 이 사건을 잊고 싶지만 현실은 계속 공범과 어린 생존자에게 관심이 가 있다. 다시 이 사건을 조사한다. 평범한 외모의 삼촌과 아이의 존재는 명준과 유정을 가장 먼저 떠올려주지만 명준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새로운 단서를 얻은 후 그녀는 계속 조사를 하면서 사라진 아이의 흔적을 따라간다. 이 과정은 의문으로 가득하다. 여기에 윤석의 아버지가 전화를 해서 공범을 찾았다는 말을 한다. 이야기의 흐름 상 그 어린 생존자가 누군지 금방 알 수 있다. 하나의 엇갈림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마지막 반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사실 중 하나는 학교 폭력이다. 피해자가 가해 학생들의 죽음으로 안도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은 우리의 씁쓸한 현실이자 그 당시 그의 생존이었다.

 

게스트하우스 오후3시는 평범한 게스트하우스의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나쁜 소문도 꽤 있다. 그 대부분은 주인인 태형 때문에 생긴 문제다. 윤석이 이곳을 예약한 날 채은도 내려온다. 인터넷으로 이 게스트하우스를 많이 검색한 윤석은 태형의 집까지 간다. 묘한 분위기의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다음 날 태형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누가 그를 죽였을까 하는 의문이다. 하영을 집쩍거린 것을 안 병훈일까? 아니면 유정에게 추근거리는 것을 본 명준일까? 아니면 또 다른 3자일까? 이런 수사 와중에 유정은 윤석에게 관심을 보인다. 삼촌 명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하영의 도움이 필요하다. 단순히 한 남자에 대한 관심이라고 하기에는 의심스러운 대목이 많다.

 

연쇄살인의 폭발적인 도입부를 보면서 기대한 것과 다른 전개와 완벽한 생존이란 제목은 좀더 액션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들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고, 감정을 살짝 드러내고, 숨겨진 의식 안으로 파고들 뿐이다. 사람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의 이면에 어떤 폭력과 살의가 담겨져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은 사실 이 소설의 백미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인물을 뛰어넘는 표현 하나가 섬뜩함을 준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시선과 기억을 따라가고, 사실에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모습은 기대와 다른 전개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을 높여준다. 너무 많은 예측과 기대가 이 소설에 아쉬움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암시 - 한사오궁 장편소설
한사오궁 지음, 문현선 옮김 / 책과이음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교 사전>의 작가다. 그렇게 알고 한사오궁으로 검색했는데 나오는 책은 <암시> 한 권이다. 책 제목으로 검색하니 한소공이란 한자 표음 이름이 보인다. 이 이름으로 다시 검색하니 낯익은 책 한 권이 또 보인다. <산남수북>이다. 물론 낯선 책 한 권도 있다. 괜히 이 책에게도 관심이 간다. 가끔 조금 낯선 작가의 경우 이런 검색을 한다. 표기된 이름이 달라 한 작가의 작품이 모두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주 유명한 작가라고 해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있다. 문자와 발음과 표기법이 달라 생기는 작은 오류다. 이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이나 소득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은 문자와 기억과 이미지에 대한 소설이다. 총 4부 112개의 꼭지로 나누어져 있는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와중에 자신의 생각을 아주 자주 녹여낸다. 어떻게 보면 소설보다 인문학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더 많다. 덕분에 뭔가 유익한 것을 읽은 듯한 뿌듯함을 주지만 이해력이 딸려서인지 머릿속에 남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오히려 모두 읽은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작가가 풀어낸 많은 이야기들이다. 문자와 이미지에 대한 해석보다 기억과 그 이야기가 하나의 이미지로 머릿속에 남았다. 아마 평소 내가 책을 읽는 방식과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소개에 나온 위화나 모옌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난해하다. 실험적 장편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형식과 주제가 색다르다. 거기에 왜인지 모르지만 책의 편집도 특이하다. 의도적인지 모르겠지만 책의 각 문단 끝이 들쑥날쑥한다. 문단의 시작은 같은데 말이다. 한 쪽의 분량도 적지 않고, 쪽수도 500쪽이 넘는다. 읽고 난 후 뿌듯함을 느낀 것은 이런 이유도 있다. 역자의 글에 의하면 작가의 글은 다비론(多非論)이라고 하는데 읽을 때 느낀 아리송함에 대한 작은 단서가 된다. 어쩌면 나의 핑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읽으면서 머릿속을 계속 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그냥 놓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문화대혁명에서 현대까지 오는 과정이 시간 순이 아니다. 정확하게 시간대를 표기해주지 않아 대충 맞춰야 한다. 이야기의 흐름으로 순서를 대충 파악할 수 있지만 세부적인 것까지 맞출 수는 없다. 뭐 이런 순서가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기억이 늘 순서대로 나는 것도 아니고 정확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기억은 이미지로 남아 있고, 이것을 언어로 표현하게 되면 정확성에 문제가 생긴다. 언어 밖 이미지에 대한 소설이란 부분에 공감한다. 실제 4부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범위의 확장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 부분은 작가가 후반부에 그린 공간과 시간에 대한 것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읽다보면 머릿속을 울리는 좋은 글들이 가득 나온다. 피상적인 글들도 있지만 나의 고민을 담고 있는 글도 상당히 많다. 나의 이해력이 좀더 좋다면, 알고 있는 지식이 조금 더 많다면 비교해야 할 부분도 많다. 작가가 4부에서 현대 중국 청년들의 삶을 간결하게 표현한 부분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고, 이 부분이 다시 우리의 삶에서 본 장면들과 연결되었다. 역사를 둘러싼 왜곡된 시선들은 언제나 불편하다. 작가 자신이 홍위병으로 문화 대혁명을 경험한 것이나 지식청년들이 농촌으로 내려간 일들은 이전에 읽었던 중국 소설들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힘들게 읽었지만 재미난 부분이 상당히 있다. 이 때문에 작가의 다른 책에 관심이 늘었다. 인용하려고 한 수많은 문장들이 있지만 그냥 지나갔는데 결론적으로 잘 한 것 같다. 왜냐고? 수많은 이미지의 편린을 그 문장으로 고정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사유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문장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언어와 이미지를 양비론으로 풀어낸 부분은 더 내공을 쌓은 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불가의 불립문자(不立文字)에 더 강하게 공감한다. 점점 더 내가 알고 있었던 사실들이 깨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침을 해도 나 혼자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
무레 요코 지음, 장인주 옮김 / 경향BP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란 작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처음 읽은 무레 요코의 에세이였는데 상당히 재밌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작가의 다른 에세이에 시선이 갔다. 사실 <카모메 식당>의 영향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단점이 있지만 무레 요코는 에세이스트로 더 유명한 모양이다. 검색을 하면 에세이가 더 많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표지와 제목에 고양이가 나온다. 전작 에세이에서 고양이와 함께 오래 살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고양이 글이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이번 에세이에 등장하는 고양이 C는 무려 열아홉 살이다. 이 노령의 고양이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낸다.

 

여왕님과 집사 관계가 가장 먼저 나온다. 우리는 흔히 고양이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고 말한다. 물론 속내는 작가처럼 엄마 같은 것이다. 여왕님이 행동으로 짜증 등을 내비치면 집사는 거기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외출할 때도 사전에 미리 알려주고 비위를 맞춰주고, 돌아올 때는 선물을 사온다. 19년 동안 C와 함께 하면서 한 번도 여행을 가지 않았다고 말할 때 정말 놀랐다. 다른 고양이처럼 케이지에 넣어서 함께 가도 될 텐데 C가 얌전한 순간은 동물병원 진찰대 위에 있을 때 뿐이다. 이 병원으로 택시 타고 이동할 때 보여주는 괴성 등과 진찰대의 모습은 너무 대조적이라 같은 고양이가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20년 전 아파트 한 구석에서 발견한 고양이 C는 한때 그 동네의 여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왕의 위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고양이와의 에피소드는 <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에 나오니 참고하면 될 것 같다. 아직 읽지 않은 다른 에세이에 어쩌면 더 나올지도 모르겠다. 추락한 위치는 밖으로의 외출을 삼가게 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몸에 변화도 적응이 필요하다. 진찰실 고양이 모습을 잘 보여주는 발톱 문제도 이것을 잘 보여준다. 젊을 때라면 자신이 내성 발톱이 생기기 전에 관리했을 텐데 이제는 집사가 보고 깍아줘야 한다. 뭐 이것이 싫어 열심히 도망 다니지만 말이다.

 

C는 입이 정말 짧은 것 같다. 사료와 통조림 문제가 초반에 나오는데 입맛에 맞는 사료 등을 찾기가 쉽지 않다. 입맞에 맞는 것은 아직 수입되지 않거나 한 번에 많이 먹지 않는다. 뷔페처럼 차려놓은 통조림 이야기를 읽으면서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연어와 장어를 좋아하는 것은 다른 고양이들과 닮았는데 장어의 뼈를 발라주는 장면에서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여왕님을 수발할 때는 집사이지만 C를 돌볼 때는 엄마의 역할을 한다. 이 전환이 일어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녀가 얼마나 이 고양이 C를 사랑하는지 알게 된다.

 

고양이가 아침, 아니 새벽 일찍 깨우는 고통을 여러 번 이야기 한다. 직접 대화를 할 수 없으니 추측할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수면 부족이 짜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짜증을 내고 나면 잠시 주춤하지만 여왕님으로 변신해서 집사 역할을 강요한다. 어쩔 수 없다. 애완묘를 키우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다. 온도와 습도 등의 문제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조금 변하는 것 같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제습기도 온도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보통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비싼 것을 사줘도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사용하지 않아 벼룩시장에 내놓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새벽에 깨우는 일이나 춤추고 운동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 등은 일상적이다. 어지간하면 버릇을 잘못 드렸다고 말하고 자신을 세계에서 고양이한테 가장 많이 혼나는 주인이란 표현을 사용하겠는가. 그래도 자가의 나이 등을 고려하면 함께 사는 마지막 고양이일 수도 있다. 이 마음이 이 에세이 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 C는 작가가 자리에 있으면 만족해하고, 외출 전에는 미리 말하고, 빗질, 마사지, 쓰담쓰담을 해줘야 한다. 당연히 당일에도 신경을 써 줘야 한다. 어떻게 보면 번거롭게 보이지만 작가는 “지금 C가 스무 살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에 감사하다.”란 마지막 문장에 진심을 담고 있다. 힘들고 귀찮고 짜증나는 순간들이 있지만 감사한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