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황교익 지음 / 지식너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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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끌리지만 이 끌림에 방점을 찍는 것은 역시 저자 황교익이다. 이 책 속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은 이미 방송 등에서 다루었던 것들이다. 한때는 그가 나왔던 <수요미식회>를 매번 보았고, 여행지에서는 그 방송에 나온 식당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나의 일차적인 목적은 맛집을 찾는 것이었지만 그의 이야기에는 역사와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이 있었다. 물론 사료 중심으로 풀어내면서 그의 인문학적 상상력이 그 빈 공간을 채웠지만 이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취한 실증주의 방식의 이야기는 많은 부분에서 음식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데 도움을 주었다.

 

4부로 나누었지만 하나로 관통하는 것은 정치다. 떡볶이 이야기에서 남아도는 쌀 이야기가 나오고, 김치의 세계화 이면에 담긴 수출보다 훨씬 많은 중국산 수입 김치가 있다. 추석에 대한 그의 반론은 바뀐 시대상을 제대로 보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칼국수가 너무나도 정치적인 음식이라고 할 때 어릴 때 더 좋아했고, 더 많았던 음식은 수제비였다. 그가 말한 정치인들이 자주 가는 칼국수집들의 가격이 일반 칼국수 가격의 50% 이상 비싼 것을 보면 왠지 씁쓸하다. 소금이 식품이 아니라 광물이라고 할 때는 나 자신도 언론 플레이에 얼마나 쉽게, 무비판적으로 넘어갔는지 알게 된다.

 

한때 방송에서 그를 깐죽거리며 하는 말 중 하나가 ‘일제 강점기’였다. 오래 전 중국 미식 여행을 다녀온 일본 작가의 글에서 전통 음식이 얼마나 많이 사라졌는지 알게 되었듯이 한국도 이 시기를 거치면서 음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조미료다. 작은 동네식당부터 유명한 식당까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집이 거의 없다고 한다. 물론 조미료만으로 음식의 맛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식재료도 무시할 수 없다. 이때 놀라운 것은 미식의 대명사처럼 된 평양냉면이다. 일제 강점기에 돼지보다 소의 머릿수가 더 많았다는 사실은 다시 들어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나의 머리가 그만큼 굳은 것이다.

 

그가 치느님이 맛없다고 했을 때 우리 머릿속에 강하게 인식된 치킨의 신화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닭을 즐겨 먹지 않지만 삼계탕이나 치킨은 아주 가끔 먹는다. 이때 내가 좋아한 것들은 국물과 튀김옷이다. 살이 아주 많은 경우에는 튀김옷만 먹고 나머지 닭고기는 버린 적도 많다. 치킨을 시키다보면 이런 경우를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본다. 한국이 치킨 강국이라는 말을 따라하지만 외국에서도 맛있는 치킨을 먹은 적이 있다. 양념으로 넘어가면 다른 문제지만. 이렇게 내 머릿속은 알게 모르게 주입된 음식에 대한 신화가 많이 있다. 이 신화들 중 몇 가지를 이 책은 산산조각낸다. 치느님도 그 중 하나다.

 

유기농을 한때 예찬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가능하면 유기농을 선택하려고 하지만 그 가격이 만만치 않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유기농을 사지 않는다. 최근 음식과 건강을 연결하는 문제에 고개를 끄덕였는데 약과 음식을 그는 구분한다. 이 구분에는 동의하지만 좋은 먹거리는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만든다. 그도 이 부분은 동의할 것이다. 슬로푸드에 대한 그의 주장에는 나도 동의한다. 마케팅에 의해 만들어진 수많은 슬로푸드를 알기에 더욱 그렇다. 김밥이 비빔밥이라고 한 부분과 우리가 집에서 만들어 먹는 비빔밥을 생각하면 많은 부분이 이해된다.

 

남도 음식은 어디나 맛있다고 했을 때 광주 번화가 한 식당은 정말 형편없는 맛이었다. 한정식의 상차림을 좋아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 음식들을 다 먹지 못하면서 버려지는 음식이 아깝다. 한정식이 기생집 상차림에서 비롯했다는 말은 이전에도 들은 것이지만 한정식의 지역색이 사라졌다는 부분이 빠진 것은 아쉽다. 반찬 개수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식당이 예전처럼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줄어든 위도 있지만 제대로 된 음식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먹지 못하는 음식들이 늘어나는 것은 반대다.

 

세계 어딜 가나 음식이나 문화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난무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사찰음식에 대한 비판은 한 번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채운 웅녀와 떡 등의 이야기는 사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궁중음식과 그 요리사에 대한 날선 비판은 사료에 기반한 것이다. 역시 더 많은 검증과 연구가 필요하다. 방송으로 나온 인물들이나 이야기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대한 질타는 우리 역사에 대한 반성이다. 목차에 나온 자극적인 제목들은 그 내용을 제대로 읽지 않으면 오해할 소지가 많은 부분들이다. 단순히 음식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책은 분명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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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였다
정해연 지음 / 연담L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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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처음 읽은 그녀의 작품은 <악의 – 죽은 자의 일기>이다. 상당히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정치인을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간 것도, 마지막 서늘한 여운도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재밌게 읽었고, 관심을 가진 부분은 저작권 기획소송 전문 변호사 김무일과 형사 신여주의 콤비 활동이다.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으로 영화로 만들면 누가 이들의 역할을 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아쉽게도 최근 몇 년 동안 TV를 잘 보지 않아 최근 배우들의 이름이나 역할을 잘 모른다. 그래도 내가 아는 배우들로 가상 캐스팅하는 재미는 줄지 않았다.

 

김무일은 쉽고 편한 길을 가려고 한다. 저작권법을 어기는 카페에서 소송 대상을 찾아 돈을 번다. 자신뿐만 아니라 거의 주변 모든 사람들의 이름으로 가입해서 소송 건들을 만든다. 이런 그에게 사무장에 사표를 내민다. 이유는 사무장 아들이 저작권법을 어겨 소장을 받았고, 사무장이 아들에게 변호사 쓰레기와 함께 일한다는 말을 들어 감정이 상했기 때문이다. 일반 의뢰가 들어와도 김무일은 할 마음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사무장 때문에 다른 일을 하기로 한다. 그때 찾아온 손님이 건물주 권순향이다. 그가 온 이유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고, 자수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신여주는 형사다. 다양한 무술을 습득하고 있다. 학창시절에는 미모 때문에 길거리 캐스팅도 자주 당했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처럼 경찰이 되었다. 여주의 아버지는 사건 현장에서 죽었고, 얼마 후 엄마도 죽었다. 이 기억은 그녀가 바른 경찰이 되게 만들었다. 그런데 우연히 입주한 건물에 자신에게 고백했다가 엎어치기 한 판을 당한 무일이 있었다. 가끔 둘은 술 한 잔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티격태격하는 사이긴 하지만. 무일은 건물주의 자수에 동행하고, 여주의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 건물주의 의뢰를 받은 날도 둘은 친구 엄마의 포차에서 한 잔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건물에서 여주로 향해 떨어지는 사람을 보고 그녀를 밀친다. 떨어진 사람은 건물주 권순향이다.

 

권순향의 자백에 이상한 점이 있다. 그가 집세를 제대로 내지 않은 302호에 들어갔다가 몸싸움을 하다 상대를 죽였다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그를 내보내고, 이 사건을 자살사건으로 만들었다. 권순향이 들고 온 신문기사도 7년 전 자살사건이다. 당연히 권순향에게는 이 사건을 입밖에 내지 말라고 말한다. 그의 자수 의뢰가 있은 날 자신의 집에서 추락사한 것이다. 뭔가 수상하다. 무일은 이 일로 일반 소송에서 손을 떼려고 한다. 여주는 이 사건을 더 조사하려고 하지만 존경하던 팀장이 나타나 자살로 처리한다. 찜찜하다. 더 파고들고 싶다. 이런 그녀에게 화물차가 달려들어 위험한 순간을 만든다. 무일이 이 사건에 본격적으로 개입한다.

 

자수하고자 한 사람의 자살과 그 사건을 파헤치려는 사람을 공격하는 누군가의 존재가 아주 무거운 이야기로 바뀔 것 같지만 소설을 이 콤비의 존재와 대화와 연애 감정 때문에 가볍게 풀려나간다. 자살로 처리된 302호 남자의 신원을 알게 되면서 단순한 살인이 아님을 알려준다. 그는 국정원 직원이었다. 그의 직업은 알려지지 않는 채 죽을 당시 발견된 수많은 음란 자료들이 가족을 힘들게 만들었다. 변태의 자살로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무일과 여주는 가볍게 이 사건의 허점을 파헤친다. 허술한 국정원의 작업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현실에서 국정원이 얼마나 허술하게 사건을 만드는지 몇 번이나 보지 않았던가. 그리고 7년 전 사건의 담당자가 여주의 팀장이란 사실과 그녀를 감시하는 존재을 느끼게 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가독성이 좋고, 콤비의 활약은 유쾌하고 재밌다. 무일의 행동은 반전 매력을 보여주고, 둘의 로맨스는 알콩달콩한다. 이 두 자살 사건 배후에 존재하는 조직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보여줄 때 시간은 몇 년 전 과거로 돌아간다. 현실을 반영한 마무리는 우리 사회의 아픈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 당시의 분노를 다시 떠올린다. 적의 반격은 정보를 쥔 자의 강력한 한 방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 현실에 씁쓸함을 느낀다. 이 씁쓸함을 지워주는 것은 당연히 이 두 사람의 존재와 행동과 대화들이다. 2부가 올 가을에 나올 예정이라고 하니 괜히 즐겁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시간 내어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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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0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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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홀레 시리즈 10번째 작품이다. 전작 <팬텀> 이후 사건을 다룬다. 이 작품에서 해리는 거의 3분의 1 정도의 분량이 지난 후 등장한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등장하지 않은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오슬로에서 미제사건을 담당했던 경찰들을 노리는 연쇄살인이 일어난다. 살해당한 경찰들의 공통점을 따라가면 용의자가 살짝 보인다. 그런데 그는 감옥에서 죽었다. 해리의 동료들은 해리를 그리워하면서 수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죽었다고 알려진 인물이 죽지 않고 탈옥했다는 정보를 듣는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나타났다.

 

전작 <팬텀>의 마지막 장면은 경찰들이 비밀리 보호하는 중환자의 정체를 오해하게 만든다. 해리가 해결한 사건에 연결된 정치인과 경찰청장은 이 환자의 처리가 필요하다. 의도적인 연출은 전작을 기억하는 독자에게 해당되는 설정이다. 많은 해리의 동료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장면을 넣으면서 이 오해를 더욱 부추긴다. 부정과 불륜과 정치적 야합 등은 이 시리즈에 계속 되는데 이 작품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경찰의 보호 아래에 있던 환자가 어떻게 됐는지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를 지키던 경찰이 잠들고, 그 사이에 환자는 죽음 속으로 빠진다. 순진하게 나는 이 환자가 해리인 줄 알았고, 뭐지? 하는 의문에 잠시 빠졌다.

 

사라진 해리는 경찰학교 강사로 일한다. 오슬로의 전설적인 형사가 아니었던가. 동료들이 찾아와 경찰 연쇄살인수사에 합류할 것을 요청한다. 거절한다. 그의 학생 중 한 명이 해리를 유혹한다. 아주 저돌적인 유혹이 거절된다. 이 상황이 잘못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해리는 동료의 도움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이전 동료ㄹ르 만나러 갔다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다. 처참하게 살해된 동료의 시체를 발견한다. 경찰을 떠났던 그가 다시 자문역할로 이 수사팀에 합류한다. 해리의 주변에는 언제나 나쁜 일이 가득하다. 이런 상황들은 소설을 읽는 내내 계속된다. 작가의 노련한 연출과 이전 경험들이 이 불안감에 동조한다.

 

이번 작품은 제목대로 경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해리의 출연 빈도가 준만큼 경찰들의 개인사가 많이 나온다. 이번 이야기에서 경찰청장 미카엘은 초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등장은 정치적 야합과 친구인 트룰스의 삐걱거리는 관계가 나온다. 경찰들이 어떻게 시간과 상황을 조작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준다. 미카엘에게 찝쩍거린 게이 경찰이 어떻게 되었는지 말하면서 한 예를 든다. 이 시리즈에서 그냥 나오는 장면들은 거의 없다. 이 장면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책을 모두 읽은 후에 알 수 있다. 작은 스포일러다.

 

해리는 다른 형사들과 다른 시각에서 사건을 본다. 운 좋게 범인을 잡는 경우도 있지만 경험과 직관과 통찰이 어우러져 사건의 핵심에 다가간다. 그라고 바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몇 번의 실수도 있다. 어떤 장면에서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몰론 이 모습이 그의 실수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다. 반복적인 살인은 하나의 규칙을 발견하게 만들고, 그 살인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게 한다. 그 의미가 사랑이라고 할 때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증오도 사랑의 한 갈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시각들이 해리를 특별하게 만든다.

 

이 시리즈의 가독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순서대로 나오지 않아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 되지 않지만 독립적으로 읽어도 문제가 없다. 미카엘과 트룰스는 해리에게 어떤 숙명적인 적이지만 해리는 경찰이다. 아니 경찰이었다. 이것은 그의 정체성 문제다. 그의 연인이었던 라켈과 관계는 다시 아주 좋아졌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고 경찰 연쇄살인범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면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고조된다. 이 소설에서 몇 번 그런 장면들이 나온다. 스노우맨 사건처럼 라켈에게 또 이런 일이 생길까? 그리고 처음 연쇄살인범으로 추정했던 인물의 은밀한 접근은 또 다른 긴장감을 불러온다. 현재까지 나온 시리즈가 열두 권이라고 하니 다음 이야기에서 그 결과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작품에서는 유난히 몇 가지 문장을 이용해 독자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경찰이 보호하는 중환자로, 나중에는 연쇄살인범과의 만남에서 말이다. 그리고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다른 상황으로 마무리하는 일이 많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를 좋아하지만 경찰들이 이렇게 위험한 직업이라면, 연쇄살인이 이렇게 많이 일어난다면 노르웨이는 얼마나 위험한 나라일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작품 마지막에 가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데 과연 다음 이야기에서 이것이 어떤 작용을 할지도 궁금하다. 언제나처럼 역시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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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상실사
청얼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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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감독이다. 이 단편집 속 세 작품을 영화 <라만대극소망사>에 녹여내었다고 한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읽고 무슨 말인가 했다. 어떻게 단편 세 개를 한 작품에 연결시켰을까 하는 호기심과 더불어 말이다. 그리고 이 책 속 일곱 편의 단편을 모두 읽은 후 고개를 끄덕였고,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장쯔이가 나온다니 더욱. 청얼이 만든 영화는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 낯선 듯 익숙한 분위기 때문에 잠시 혼란을 겪었지만 간결한 이야기 속에서 그 시대를 추측할 수 있었다.

 

영화의 원작이 된 세 편과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네 편이 실려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작품들은 영화로 만들어진 세 편이다. <여배우>, <영계>, 표제작 <로맨틱 상실사> 등이다. 앞의 두 편은 그 당시 시대상을 몰라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지만 <로맨틱 상실사>는 그 시대 배경을 알수록 재밌다.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있다면 더 재밌다. 아직 나의 이해도가 부족해 앞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부분과 잔혹한 복수가 먼저 와 닿았다. 암흑계의 거물들이 어떻게 일본군과 연결되고, 그들과 대립하는지 등은 그 시대를 알아야 더 잘 이해된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작가가 숨겨둔 반전과 그 잔혹한 복수다. 이 작품을 가장 뒤에 둔 이유를 알겠다.

 

<여배우>는 도박에 빠진 남편을 구하려는 노력이 그녀를 권력자의 편으로 만들었다. 암흑계의 권력자들이 어떻게 한 유명한 여배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지 보여준다. 그 큰 힘에 휘둘리는 그녀의 모습은 체념이 묻어있다. <영계>는 조폭 이야기다. 시골에서 올라온 청년이 중간 보스까지 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만난 창녀 이야기다. 진한 낭만이 끼어들 것 같은 도입부이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비정하다. 청년의 순수했던 감정은 참혹한 현실에 쉽게 무너지고, 그도 세파에 시달리면서 그런 무리 중 한 명이 된다. 씁쓸한 이야기다.

 

<인어>부터 <세 번째 X군>까지는 현대 이야기다. 세 번째 X군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X군이란 인물이 세 명 나온다. 유일하게 없는 이야기는 <몸의 시편>이다. 이야기의 배경도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예술에 대한 단상이 나오고, 한 번 뜬 권력이 어떻게 되는지도 보여준다. 지친 육신이 가진 공허함이 강하게 다가온다. 마지막 장면은 여러 가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인어>는 읽으면서 한국 보수언론이 만들어낸 과도한 임금 보도로 상상력이 이어졌다. 하루 몇 시간 동안 왕복해야 하고, 겨우 3시간 일하는 그녀의 말 속에서 말이다.

 

<인어>의 X가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 장면과 밖으로 나오려는 욕구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닭>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남자가 느끼는 살의가 강한 인상을 준다. <세 번째 X군>은 읽으면서 미로 속을 해매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가 풀어낸 이야기가 너무나도 간결하게 표현되었고 아주 불친절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 속 주인공들은 특별히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익명이나 성으로 불릴 뿐이다. 현대 이야기 네 편도 어떤 연관성이 있는 듯한데 아직 나는 모두 발견하지 못했다. 느리게 읽고 생각을 많이 하는 독자라면 많은 것들 발견하고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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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라파엘 몬테스 지음, 최필원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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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사이코패스가 트렁크 속에 여자를 넣고 여행을 떠난다는 문구에 혹했다. 하지만 이 사이코패스는 내가 상상한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나의 선입견에 의한 활약은 아주 잔혹하고 치밀한 살인이었다. 그런데 소설 속 주인공 테우는 그런 연쇄살인범이 아니다. 도입부에 그의 특이한 성격을 보여주는 섬세한 묘사가 나오지만 이것이 범죄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다. 다만 그의 내면에 자리 잡은 사이코패스 성격을 드러내줄 뿐이다. 그가 해부학 시체에게 게르트루드란 이름을 붙인 것과 그 시체에 감정 이입한 것은 나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테우의 엄마는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다. 자동차 사고 탓이다. 이 사고로 아버지가 죽었다. 어느 날 엄마의 손에 이끌려 바비큐 파티에 끌려간다. 가고 싶지 않은 파티다. 이 파티에서 145센티미터의 키 작고 그렇게 예쁘지 않은 한 여자를 우연히 만난다. 클라리시다. 그녀가 기습적으로 그의 입술을 훔친다. 이 작은 일이 그를 매혹시킨다. 그의 표현을 따르면 ‘침략당한 피해자’가 된다. 이 순간 그는 사랑에 빠진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된다. 그녀와의 몇 가지 대화를 통해 법대 학생인 것과 그녀가 바라는 삶에 대해 조금 알게 된다. 위험한 여행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하는 행동을 테우는 한다. 그녀에게 직접 가는 방식 대신 그녀를 미행한다. 그녀를 잘 모르기에 설문조사처럼 전화도 한다. 이 미행을 통해 그녀의 친구와 연인이 누군지 알게 된다. 자신의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그녀는 아주 즐겁게 논다. 여자 친구와 진한 키스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늦은 밤 술에 취해 쓰러진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준다. 그녀의 엄마를 만난다. 딸이 술에 취해 들어온 것이 불만이다. 테우가 누군지 묻는다. 이때 클라리사가 남자 친구라고 말한다. 테우에게는 하나의 착각이 생긴다. 그녀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뿐이다.

 

남자의 착각은 언제나 작은 호의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실을 말하지만 테우는 인정하지 못한다. 시나리오 집필을 위해 떠나려는 그녀를 기절시킨 후 집에 데리고 온다. 착각은 실수로 이어지고, 이 실수는 집착으로 다시 이어진다. 약으로 재운다. 엄마에게 들키지만 잘 둘러댄다. 그녀가 가고자 한 호텔로 떠난다. 그 이전에 그녀를 재울 약을 학교에서 훔치고, 그녀를 묶을 몇 가지 물건을 산다. 차로 이동하는데 그녀는 차 좌석이 아닌 트렁크 속에 들어있다. 표지의 그 트렁크다. 작은 몸의 키 145센티미터라면 가능할 것이다.

 

사랑을 갈구하는 사이코패스와 보통 성격이 아닌 납치된 여자의 동행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전문 범죄자가 아닌 테우이기에 서툴고 거친 모습이 많이 나온다. 그녀가 늘 가는 호텔 방에서 쉬면서 그녀는 자신의 시나리오를 손보려고 한다. 그 시나리오의 제목이 ‘퍼펙트 데이즈’이다. 결코 완성도가 높은 이야기가 아니다. 휴대전화가 통하지 않고, 별채의 숙소는 납치한 여자와 머물기 딱 좋다. 물론 가끔 시내에 나가 양가 부모님들에게 안부 전화를 해야 한다. 클라리시의 남친 브레누도 많이 연락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그가 갑자기 나타난다. 몸싸움 끝에 그를 죽인다. 테우는 이 시체를 해결할 방법은 찾는다. 숲에 뭍는 것도, 호수에 버리는 것도 문제다. 그러다 시체를 해부해서 버리는 방식을 선택한다. 토막 살인의 이유 중 하나가 보통 이런 것이다.

 

약에 취한 클라리시, 엄마의 잦은 연락, 브레누의 죽음 등은 그 호텔을 떠나게 한다. 시나리오처럼 섬으로 간다. 이 과정에서 클라리시의 성격을 조금씩 드러낸다. 긴장감은 테우가 벌인 상황과 클라리시의 성격에서 비롯한다. 이 모든 장면은 철저하게 테우의 시선에서 그려진다. 그가 공감하지 못하는 그녀의 행동과 자신의 납치와 살인으로 인한 불안이 이어진다. 작가는 화려한 살인보다 이 두 남녀의 동상이몽을 통해 긴장감을 높인다. 고립된 공간은 이 둘의 성격을 드러내기 안성맞춤이다. 재밌는 것은 사이코패스인 테우가 아주 이성적이란 점이다. 살의를 절제할 정도로. 예상하지 못한 설정과 함께 마지막 이름 하나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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