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도 심장이 있다면 - 법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들
박영화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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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을 판사로, 16년을 변호사로 살아온 법조인의 에세이다. 법정에서 만난 사람과 사건을 중심으로 진정한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인데 읽다보면 저자의 자랑이 은근히 곳곳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 자랑이 그렇게 거부감을 들게 하지는 않는다. 그의 생각이나 노력들이 글로만 읽었을 때 많은 부분 공감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법농단으로 판사에 대한 신뢰가 많은 부분 훼손되었다고 해도 법정신에 충실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이 아직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사의 자리에서 자의반 타의반 물러난 판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던 몇 가지 사실들을 이 책으로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여섯 꼭지로 나누었지만 이 글들이 판사와 변호사로 나누어진 것은 아니다. 판사 시절 경험이 많은 부분 차지하지만 변호사를 하면서 만난 고객들 이야기도 상당히 있다. 변호사 일 중에서 자극적인 것은 역시 돈으로 법망을 피하려고 한 피고인이다. 저자는 이 피고의 의뢰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거절했지만 현실에서 과연 어떤 판결이 나왔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자신도 책 중에 썼듯이 정치권의 대사면으로 인한 법정신의 훼손이 심각했지 않은가. 저자의 훌륭한 법조인 자세는 알 수 있지만 실제 법집행에 대한 정보가 없는 부분은 조금 아쉽다. 어쩌면 이 부분이 사법부에 대한 나의 불신 탓일지도 모른다.

 

최근에 판사란 직업이 얼마나 힘든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얼마 전 있었던 과로사를 뺀다고 해도 판사의 보따리 사연에서 알 수 있듯이 야근이 많은 직업이다. 소송을 한 번이라고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변호사들은 자료를 최대한 많이 제출해달라고 요구한다. 이런 재판을 적지 않게 해야 하는 판사들이 이 서류를 모두 정독하지는 않겠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전후 사정을 알기 위해 메모를 하면서 읽어야 하는 재판도 많다. 여기에 판결문도 직접 써야하니 얼마나 바쁘겠는가. 판결문 문장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아주 공감한다. 뭐가 이렇게 쉼표가 많은지. 하나의 문장을 읽다가 앞의 의미를 놓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법이 국민을 위해 있고, 소송보다 화해가 낫다는 말에 동의한다. 민사의 많은 부분에서 개인의 감정에서 비롯했다는 지적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들이 돈 때문에 소송을 건 사건은 적나라하게 우리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화해가 되었다는 부분에서는 아직 남아 있는 인정을 엿볼 수 있다. 적극적으로 화해를 유도하는 그의 글들은 소송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감정의 소모가 심한 일인지 알려준다. 그리고 판사의 판결이 정확한 입증 자료가 없을 경우 국민의 편이란 원칙은 모든 판사가 지켜야할 기본자세다. 몇몇 언론 기사에서 본 판결은 과연 그랬는지 의문이 든다.

 

저자의 글 속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인간이다. 법에 따르데 사람을 살피는 것을 중단하지 않는다. 최근 문제되고 있는 소년범죄에 대해서는 시대가 맞지 않거나 상황이 다른 것들이 있어 유념하고 봐야 한다. 유괴 사건 이면을 드라마와 함께 풀어낸 이야기는 가슴 아픈 현실을 담고 있다. 자신이 화해시킨 부부를 찾아가거나 판결을 내린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는 지금만이 아닌 다음도 생각하는 그의 판결을 상상할 수 있다. 이런 판사들로만 가득한 사법부였다면 결코 사법농단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그럼에도 사람이란 문장은은 최근에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판사란 직업은 한 곳에만 머물 수 없다. 지방 근무도 반드시 해야 한다. 이때 민원인들을 위해 그가 펼친 몇 가지 시도는 아주 훌륭하다. 그가 많은 것을 선배 부장판사에게 배우는 장면들은 경험 이전에 기본 자세에 대한 것들이다. 물론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많은 판사 출신 변호사들이 하는 말이 있다. 사회 경험을 더 많이 하고 판결을 내렸더라면 좀더 현명한 판결을 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가 힘든 판사를 다시 하려고 하는 글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한국 사법제도의 개선이 아주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꼈다. 만약 이런 판사들이 더 늘어난다면 억울하게, 돈과 권력에 억눌리는 희생자들은 더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검사내전>이란 책이 떠올랐는데 어떤 내용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누군가의 책처럼 검사 시절 자랑질로 가득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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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천사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4
에드거 월리스 지음, 양원정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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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4번째 작품이다. 처음 이 시리즈를 읽었을 때 불만이 많았다. 현대의 고급 미스터리에 익숙한 나에게 허술한 설정과 전개 등이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작가가 실제 활약했던 시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미스터리 태동기의 작품이란 것도 무시했다. 하지만 이 작가의 작품을 한 권씩 읽어가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한 시대를 대표할 작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나름의 재미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작품의 경우 악녀 진 브리거랜드의 모습은 아주 매력적이다. 거기에 미스터리한 인물 재그스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진 브리거랜드는 아주 뛰어난 미녀다. 그녀의 증언에 의해 약혼자 제임스 메레디스는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처음 책소개에서 이 설정을 보았을 때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차분히 내용을 읽어가니 이 위증이 의미하는 바를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제임스가 사형으로 죽으면 그의 60만 파운드의 막대한 유산이 진에게 상속된다. 위증의 목적은 단순하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진의 위증은 법정에서 충분히 위력을 발휘한다. 제임스의 변호사 잭 글로버는 진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 상속자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리디아는 아버지의 빚을 떠안으면서 곤궁한 삶을 살아간다. 그녀의 적은 돈벌이로 이 빚을 다 갚으려면 죽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조건 때문에 잭이 그녀를 선택했다. 상속자를 바뀌기 위한 제임스의 아내로 말이다. 잭 등의 변호사는 그녀를 만나 이 결혼을 통해 빚을 청산할 수 있다고 알려주려고 한다. 그런데 어떤 택시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태우고 떠난다. 낯선 곳으로 가는데 이 택시를 막고 그녀를 구해주려고 잭이 나타난다. 이 상황를 설명한다. 다음 날 8시에 탈옥한 제임스와 리디아가 결혼한다. 이 결혼 직후 제임스는 오른손에 총을 들고 왼쪽 머리에 총은 쏜 상태로 발견된다. 진도 나타난다. 그녀는 9시 결혼으로 알고 있었다. 잭이 작은 트릭을 사용했다.

 

갑자기 막대한 부를 상속받은 리디아는 위험 속에 놓인다. 만약 그녀가 죽으면 다음 상속자가 진이 되기 때문이다. 진과 아버지는 리디아를 죽이기 위해 음모를 여러 차례 꾸민다. 이런 부녀의 살인을 막기 위해 재그스란 인물을 리디아 집에 거주하게 만든다. 재그스는 여러 번 살인 위기에서 그녀를 구한다. 차로 칠려는 시도와 정신병을 가진 살인자를 무찌르는 일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 살인 기도들은 브리거랜드 부녀의 계획이다. 잭은 여러 번 리디아에게 진의 위험성을 말했지만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발암을 유발하는 가장 평면적이자 순진한 캐릭터다. 법과 재그스의 보호가 없었다면 금방 죽었을 것이다.

 

리디아를 죽이기 위한 진 부녀의 시도는 이후에도 계속된다. 리디아는 잭의 경고를 진심으로 듣지 않는다. 죽을 위험을 몇 번이나 넘겨도, 재그스의 보호로 겨우 살아남아도 이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남자라면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넘어가겠지만 리디아는 왜 그런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녀의 착은 마음에서 비롯한 행동들이 그녀를 더 위험하게 만들 뿐이다. 덕분에 이 소설에서 진의 매력은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인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 음모와 계략을 깔아놓기 때문이다. 아마 진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아주 밋밋했을 것이다.

 

진과 함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물이 바로 재그스다. 나중에 그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에 놀랐다. 어슬렁거리면서 리디아를 보호하는 그는 어둠속에서 조용히 움직인다. 그의 놀라운 경호 능력은 그의 과거를 상상하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재그스와 진 부녀의 대결이다. 죽이려는 창과 살인을 막으려는 방패의 대결이다. 방패의 노력은 그 대상의 부주의함으로 더욱 힘들어진다. 창의 공격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진다. 이 공격에는 진의 매력에 이끌린 남자들이 함께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약간 뜬금없지만 악녀 진의 여운을 강하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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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의 죄 - 범죄적 예술과 살인의 동기들
리처드 바인 지음, 박지선 옮김 / 서울셀렉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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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매거진 편집장과 많은 전시의 큐레이팅을 했다는 작가 정보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일평생 예술계를 누비며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펄프픽션의 형식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란 점과 데뷔작이란 사실도 흥미로웠다. 이런 이력이라면 예술계의 이면을 아주 잘 파헤쳐서 예술계의 민낯을 보여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하나의 살인 사건과 그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마주하는 몇 가지 예술계 이면을 조금 보여줄 뿐이다. 아쉬운 것은 왠지 모르게 이 소설에 쉽게 집중을 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다.

 

필립 올리버는 아내 어맨다 올리버가 총에 맞아 죽은 것을 보고 자신이 죽였다고 자수한다. 그런데 아내가 죽었던 시간에 아주 먼 곳에 있었다. 더구나 그는 울프심 증후군이라는 치매성 뇌질환을 앓고 있다. 재계의 거물이고, 수많은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의 애인은 예술가인 클라우디아다.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하게 된 이유는 바로 어맨다이다.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딸을 가진 앤젤라와 이혼했다. 클라우디아가 그에게 두 번째 이혼을 요구한다. 어맨다는 이것을 승낙하지 않는다. 다른 곳에 있어 알리바이가 완벽한 남편의 자수와 어맨다의 죽음으로 이익을 볼 사람들에 대한 수사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책의 화자는 필립의 친구인 잭이다. 그는 앤젤라, 어맨다 등과 친하고, 필립의 딸 멜리사의 대부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탐정은 어릴 때 친구인 호건이다. 자수한 필립의 무죄를 증명하고, 범인을 찾기 위한 조사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치부가 하나씩 드러난다. 무분별한 성관계와 돈에 대한 욕망과 예술의 상업적 모습도 같이 드러난다. 여기에 새롭게 등장한 인물이 있는데 비디오 예술가라고 말하는 폴이다. 그는 아주 매력적이다. 여자들이 감히 그의 매력에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그는 계속해서 멜리사에게 관심을 두고 찝쩍거린다.

 

살인사건의 수사는 현재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조사하는 것이다. 이 과정 속에 필립과 잭의 과거가 흘러나오고, 90년대 소호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보여준다. 수집가에게 예술작품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상품이자 욕망의 대상일 뿐이다. 미술 갤러리 주인들은 신인을 발굴하고 이들을 키워 거대한 부를 일군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예술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사실 이 부분은 조금 난해하다. 행위예술에서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데 이 피보다 미식축구에서 흘리는 피가 더 많다고 한 부분은 아주 인상적이다.

 

어맨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관계인들의 알리바이를 계속 파고든다. 이 과정에서 대녀인 멜리사가 노골적으로 잭에게 대시한다. 어느 순간 그 아이에게 흔들리는 잭의 모습을 보고 로리타 콤플렉스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비디오 아티스트라고 말하는 폴이 멜리사를 유혹하려고 하고 그녀는 이를 적절하게 거절한다. 잭은 폴이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작품 이면을 파고든다. 미성년자들에게 마약을 먹이고 성폭행을 가하는 비디오를 찍은 후 이것을 전 세계에 유포한다. 폴은 멜리사를 이 작업에 참여하고 싶어한다. 이를 수락하는 잭의 모습은 의아하다. 몰론 다른 반전들이 이후에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깊게 몰입하지 못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캐릭터들이 밀착한 것 같은 느낌이 아니다. 예술계 이면을 기대한 부분은 아주 부족했고, 알리바이들을 수사하는 과정은 일반 미스터리에 비교해서 약간 느슨하다. 현재일 것이란 나의 예상은 폴의 사업에서 엇나갔다. 부분적으로 재밌게 본 장면들이 있지만 그 시대와 장소에 대한 이해 부족이 이야기에 집중을 방해했다. 그리고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이 긴장감을 한 번에 터트리는 방식이 조금 약하고, 이야기 곳곳에 풀어놓은 모호함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마지막 반전들과 여운들은 이 부분들을 조금씩 씻어내었지만 모두를 없앨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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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탐정도 불안하다 한국추리문학선 8
김재희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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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김재희 작가의 추리소설을 읽었다. 한국 추리소설 작가 중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는 몇 명 중 한 명이다. 개인적으로 작품마다 조금씩 편차도 있고, 취향을 타는 부분도 있다. 이번 작품의 경우는 개인 취향과 맞는 부분이 많다. 조사를 많이 한 티가 글 속에 나왔고, 최근에 알게 된 심리학적 문제 중 하나를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다. 특정한 누구 한 명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고 프로와 아마추어 모두의 활약을 적절하게 다루면서 하나의 미제 사건을 잘 풀어낸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한 캐릭터 중 한두 명 정도는 독립적으로 시리즈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프로파일러 감건호. 한때 인기 방송인이었다. 하지만 점점 그의 인기는 떨어졌고, 방송 등에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퇴물에 꼰대다.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과거를 답습하고, 현장을 멀리하면서 정확성과 인기가 떨어졌다. 북토크 현장에서 책 내용의 오류를 지적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가 바로 포털 추리카페 왓슨추리연맹의 매니저인 주승이다. 한때 주승에게 감건호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발전도 없고, 오히려 퇴보한 프로파일러는 질타의 대상일 뿐이다. 처음 작품의 구도는 프로파일러 감건호와 왓슨추리연맹 회원과의 대결이다. 그 대상은 2년 전 고한에서 실종된 김미준 사건이다.

 

여기에 양념처럼 끼어든 탐정들이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탐정이고 싶은 민간조사원들이다. 본명이 정탐정이 김미준의 사건을 의뢰받고, 자신이 조사하던 일을 공영태 탐정에게 넘긴다. 정탐정은 김미준의 인터넷 생활 등을 조사하면서 하나의 단서를 발견한다. 이 단서를 조사하는 인물은 공 탐정이다. 그리고 공 탐정은 김미준과 직접 연관성이 있는 인물에게 접근하고 중요한 단서를 얻는다. 더불어 처음 정탐정이 조사하는 일도 해결된다. 왜 16세 여고생이 클럽을 다니고, 무분별하게 남자들과 성관계를 가지는지 말이다. 이 사건 또한 우리 사회의 성폭력 사건 중 하나다.

 

주승을 비롯한 왓슨탐정연맹 운영진과 감건호의 대결은 사건 현장인 고한에서 펼쳐진다. 사건 파일을 보면 초동수사 부족이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피의 비산 등은 전문가의 지식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행히 주승과 진영은 의학전문대학 조교이고, 해부학 등의 지식이 해박하다. 혈흔학에도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 그들이 부실한 초동수사를 말하는 것은 이 지식에 기반한 것이다. 이 방송 이전에 한 번 미제사건으로 방송에서 다루어지면서 대규모 수사가 있었다고 하지만 단순히 인원만 동원된 행위였다. 책 마지막에 가서 왜 그때 해결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아한 부분도 있다.

 

방송의 인기를 위해 대결 구도를 만들었지만 감건호는 꼰대의 꼬장을 부린다. 숙소를 리조트에서 동네 여인숙으로 바꾸고, 술 마시고 꼰대짓을 한다. 이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후배 프로파일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처음 이들은 이 미제사건을 해결하기 보다는 대결에서 이기기 위한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피해자의 어머니를 만나고, 현장을 둘러보고, 단서들을 하나씩 모으면서 마음이 조금씩 바뀌었다. 사건 해결의 전환점은 작은 조언과 우연과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의 연대에서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세 분야의 등장인물들 비중을 적절히 배분한다.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한 사건을 파고들면서 파생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잘 보여준다. 잔혹한 사건보다 현실적인 사건을 다루면서 경찰과 아마추어의 한계를 분명히 한다. 한 사람의 천재가 사건을 해결하기보다는 집단지성의 힘을 더 많이 보여준다. 단서의 조각들을 모으는 과정에서 이것은 더 분명해진다. 소소하게 깔아놓은 몇 가지 설정들도 적절히 이용한다. 개인적으로 정탐정과 공 탐정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작은 미스터리 작품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게 된 사실은 감건호가 <표정없는 남자>의 주인공이었단 점이다. 그때의 감건호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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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베의 태양
돌로레스 레돈도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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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수호자>의 작가다. 이 소설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다시 그때의 서평을 찾아보니 이번 소설의 느낌이 그 속에도 담겨 있다. 갈등을 억지로 만들지 않고, 조금 느슨한 느낌이 있다는 글이다. 이번 작품도 속도감 있게 이야기가 진행되지는 않는다. 자극적인 연쇄살인이 벌어져 긴장감을 높이지도 않는다. 새로운 과학수사기법을 이용해 시선을 끌지도 않는다. 다만 갈리시아 지역의 귀족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숨겨져 있던 과거의 죽음과 비극을 파헤치고 사건의 진실에 한발씩 다가간다.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크기와 한 쪽의 분량에 깜짝 놀랐다. 이전에 나왔던 열린책들의 하드커브 책들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름과 지명과 문장들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조금 더딘 속도로 진도가 나아갔다. 물론 후반부는 수사의 결과가 조금씩 나오고, 숨겨져 있던 과거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속도가 올라갔다. 그 과정 속에서 처음에 예상했던 범인은 사라지고, 새로운 용의자가 드러났다. 하지만 이런 부분보다 한 귀족 가문이 그들의 온갖 비리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저지른 행위들에 더 시선이 갔다. 비극은 언제나 과거에 집착하면서 생기기 때문이다.

 

소설가 마누엘이 <테베의 태양>이란 소설을 집필하던 중 과르디아 시빌 대원 두 명이 방문한다. 그들은 마누엘의 배우자인 알바로 무니스 데 다빌라의 집인지 묻는다. 그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말한다. 지역은 루고 주 몬포르테 지역이다. 지역을 듣고 알바로가 아니라고 부인한다. 그가 바르셀로나로 출장을 갔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화 연락이 되지 않는다. 믿을 수 없다. 아니 믿고 싶지 않다. 왜 그가 자신에게 다른 말을 했을까? 알바로의 비서에게 연락을 한다. 거기에서 들은 소식은 배우자의 신뢰를 깨트리는 말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동성 배우자의 죽음과 함께 그가 자신을 속이고 다른 곳으로 갔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 급히 달려간 곳에서 알바로의 시신을 확인하는데 현지 과르디아 시빌 요원 중 중위 한 명이 교통사고가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배우자의 비밀스러운 이중생활에 이런 말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공증인이 재산을 그에게 남겼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배우자 죽음이 주는 상실감과 배신감이 온몸을 집어삼킨다. 알바로가 남긴 재산을 그의 어머니와 동생 등에게 모두 넘기기로 한다. 바로 넘기고 싶지만 알바로가 3개월이란 시간 장치를 해놓았다. 장례식을 마친 후 이제 떠나려고 한다.

 

떠나는 그를 사고가 아니라고 말한 과르디아 시빌 요원이 찾아온다. 바로 노게이라다. 그는 이제 퇴직했다. 후작 가문이 이 지역에 어떤 존재인지 말하고, 알바로의 몸에 난 상처와 차에 남은 흔적의 의혹을 말한다. 아직 분노 때문에 이성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지만 떠나는 시간을 늦춘다. 그리고 무니스 데 다빌라 후작의 집을 찾아간다. 처음 그를 봤을 때 사람들이 보여준 시선이 재산 포기선언으로 많이 누그러졌다. 아름다운 후작 가문의 정원을 돌아보지만 그의 감정이 제대로 추스러진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된다.

 

한 지역의 귀족 가문에서 동성애자가 나왔다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만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알바로는 집을 떠났고, 동성 결혼까지 했다. 이 동안 부자의 인연은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다. 아버지가 죽으면서 동생들 중 한 명에게 귀족 지위를 물려줄 수도 있는데 그 작위를 알바로에게 상속했다. 알바로가 파악한 내용만 보면 집안이 망하기 직전이다. 그의 노력으로 빚은 모두 청산되었다. 사업도 성공적이다. 가문을 위한 아버지의 냉철한 판단이 가문의 몰락을 막은 것이다. 하지만 이 가문의 비극은 아버지가 죽은 다음부터 계속 이어진다. 그 첫 번째는 아버지 장례 얼마 후 막내 동생이 마약 남용으로 죽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알바로의 죽음이다.

 

노게이라는 마누엘에게서 받은 전화정보 등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를 수사한다. 알바로의 친구였던 신부 루카스를 통해 알바로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다. 알바로 막내 동생의 죽음도 노게이라는 의문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누엘은 그 당시 상황을 루카스 등에게 듣는다. 알바로인 것 같은 사람이 그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을 본 듯하다고. 이렇게 하나씩 파고들면서 나오는 사실들은 수도원의 비리 은폐와 후작 가문의 숨겨진 비밀들이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더욱 긴장감이 넘치고, 한 사람의 비극에 서로 눈물을 흘린다. 한 사람의 죽음 뒤에 숨겨진 장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우뚝 솟아난다. 그리고 내비게이션의 주소 하나는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고, 긴 여운을 남긴다. <바스탄 3부작> 중 나머지 2편은 언제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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