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아주 따듯한 떨림
김인숙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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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시인과 소설가의 산문을 한 권씩 읽고 있다. 여행 작가의 여행기는 자주 봤지만 소설가의 여행기는 사실 그렇게 많이 보지 못했다. 사실 이 산문집 이전에 출간된 북경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제국의 뒷길을 걷다>에 관심이 많이 뒀다. 하지만 읽을 타이밍을 놓치면서 그냥 묵혀두고만 있다. 아마 내가 여행기에서 바라는 것 중 하나가 혹시 간다면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이 여행기가 결코 정보 전달에 있지 않음을 알게 되어 이전 책에 관심이 부쩍 되살아났다. 언제나처럼 언제 읽을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사오싱이란 중국 발음보다 소흥이란 한자 독음이 더 익숙하다. 아마 중국 지명 대부분을 무협이나 중국 역사소설에서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오싱은 일만 개의 다리가 있는 도시라고 하는데 아마 어딘가의 여행 프로그램에서 한 번쯤은 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한때 여행 방송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지금도 관심 있는 지역이 나오면 채널 고정할 정도다. 사오싱이란 이름보다 소흥이란 이름으로 불리면 그 유명하다는 소흥주가 떠오른다. 중국의 명주로 이름 놓은 술이다. 이 책을 보면 소흥주의 종류도 상당히 많은 모양이다. 술을 잘 먹지 못하는 내가 몇 잔이나 마실 수 있을지 괜한 걱정을 해본다.

 

몰랐던 사실 두 가지가 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하나는 루쉰이고, 다른 하나는 월나라다. 루쉰의 고향이 사오싱이고, 이 고향에서 이 고향을 배경으로 루쉰은 좋은 글들을 남겼다. 그 유명한 아큐도 여기에서 탄생했다. 그의 흔적들이 당연히 유적으로 남아 있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한 것도 적지 않다. 와신상담의 월나라 구천 이야기도 나오고, 월나라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간단하게 알려준다. 이런 인문학적 정보들이 이 산문집에는 가득하다. 일반적인 여행 정보를 생각하고 펼치면 쉽게 낭패를 볼 수 있다.

 

검은 호수 묵지와 왕희지를 연결하고, 다시 문화대혁명을 이어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그가 소설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묵지가 검은 것은 왕희지가 붓을 많이 씻어 그렇다고 하는 단순한 노력만을 강조하지 않고, 여기에 타고난 재능까지 담아 이야기를 풀어낸다. 재능은 노력이 함께 할 때 그 빛을 발한다. 상하이에서 고속철도로 1시간 조금 지나면 도착하는 도시라고 하는데 왜 이 사실을 이전에 몰랐을까. 알았다면 이전에 출장 갔을 때 한 번쯤은 다녀왔을지 모르는데. 당일치기 여행으로 가볍게 다녀올 정도의 거린데 말이다. 아쉽다.

 

소설가의 문장은 이 산문집에도 고스란히 살아 있다. 여행 작가들이 쓴 비교적 가벼운 감상기에 비해 묵직한 느낌이다. 여행지 정보보다 사오싱과 관련된 역사와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다. 그런데 글과 다른 풍경 사진에 놀란다. 나의 머릿속 사오싱 풍경은 근대화 이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중국 소설가의 작품을 글 속에 녹여 낸 것은 루쉰의 고향이자 문화대혁명의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전에 읽은 글들인데 아주 낯설다. 문화대혁명기에 많이 것이 파손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역사 유물이 남아 있다. 작가처럼 천천히 걸으면서 일만 개의 다리 중 몇 개를 건너고 싶다. 물론 한 손에는 루쉰의 책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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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연인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3
전경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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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전경린의 소설을 읽었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중반까지 그녀의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왠지 모르게 그 당시 읽었던 여성 작가들의 소설들을 최근에 거의 읽지 않고 있다. 나의 관심이 한국 소설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것도 있지만 그들의 심리 묘사가 어느 순간 나에게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금 질렸는지 모르겠다. 다른 장르 문학을 더 읽게 되면서 뜸해졌고, 이 뜸한 사이에 읽게 되는 한국 문학은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작은 취향의 변화가 지금도 이어져온다. 그래서인지 요즘 한국 소설가의 작품에 많이 무지하다. 사놓은 책도 예전처럼 많지 않고. 이런 기억들과 함께 읽은 이 소설은 좋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니 아직 읽지 않은 작가의 작품들이 가득하다. 묵혀둔 책들도 꽤 보인다. 언젠가 읽겠지 하는 생각만 머릿속을 지나간다. 그리고 이 소설의 기억 속으로 돌아간다. 메모한 곳을 보니 ‘비스듬히 어긋난 연인 사이의 사랑’이란 글이 보인다. 작가가 쓴 글을 메모한 것이다. 이중이란 제목을 보고 양다리를 생각했지만 실제는 아니다. 처음 이열이 문을 열고 들어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보고 이런 착각을 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수완이 빠진 남자는 황경오란 이혼남이다. 방송 PD이자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녀가 2년 전에 한눈에 반했던 남자다. 이열과 연인 사이가 되기 전 황경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사랑의 감정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서로 사랑하는 방법도 다르다. 수완의 방으로 찾아오던 그에게 방을 보여달라고 한다. 혼자 사는 사람의 방은 그 사람을 보여준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의 방은 황량하다. 하지만 이 방을 방문한 후 황경오의 전처로부터 협박을 받는다. 이 협박은 그의 과거를 알고 싶게 만들고, 이 알고 싶은 마음이 황경오의 분노를 산다. 서로가 생각하는 지금의 차이가 충돌한다. 전처가 허언증이 있다고 말하는 그를 전적으로 믿으라고 하지만 무서운 협박 전화를 받은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균열은 이렇게 조금씩 쌓이면서 점점 벌어진다. 이 둘을 묶어 줄 다른 공통 관심사가 없다보니 더 커진다.

 

이열과 처음에 잘 되지 않은 것도 한 여배우의 울음과 오해가 겹친 탓이다. 서로 알아가는 단계를 밟다가 순간의 사랑이 끼어든 것이다. 하지만 이열은 이 어긋남을 옆에서 지켜본다. 수완에게 문을 열어두라고 하면서. 이 기다림은 수완에 대한 사랑 때문일까? 그의 과거 하나가 드러났을 때 수완이 받은 생각은 또 어떤가? 이 어긋남을 바로 잡는 것은 두 사람의 감정선이 이어져 있고, 열어둔 마음 덕분이다. 작가는 이 상황을 섬세한 감정 묘사로 풀어낸다. 이성과 감정의 차이가 순간 폭발하는 순간도 있다. 현실에서 사랑은 더 감정적이다.

 

30대 잡지 기자의 삶에 홀로 된 엄마와 자격증만 따는 동생이 덧붙여진다. 엄마의 부동산 투자 실패에 따른 이자 일부를 대납해야 한다. 사랑의 또 다른 현실은 이렇게 우리를 옥죈다. 그녀가 결혼하기 전까지 갔을 때 마주한 현실은 이런 가정사가 문제였다. 남자는 여기서 너무 현실적이고 이성적이었다. 현대 남자들은 현실적이다. 사랑의 아픔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이 둘 있다. 하나는 황경오의 죽음을 마주한 수완이고, 마마의 죽음을 곁에서 지킨 이열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는 슬픔은 어느 순간 가장 익숙한 감정이 된다는 문구에 고개를 끄덕인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나오는 소설인데 왠지 모르게 밝음보다 회색빛이 더 강하다. 중심이 비어있는 사랑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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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검사 1
서아람(초연) 지음 / 연담L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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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두툼한 책이다. 현재 1권까지만 읽었다. 카카오페이지와 CJ ENM이 주최한 제2회 추미스 소설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이번 작품을 읽고 이 공모전에 관심이 생겼다. 검색하니 관심을 두고 있거나 재밌게 읽은 소설들이 보인다. 현재 3회 공모 중이라고 하니 이 상에 더 관심이 생긴다. 추미스란 단어는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의 앞 글자를 딴 이름이다. 2회 수상작 중 2권을 읽었는데 모두 만족스럽다. 읽지 않은 다른 작품도 가능하면 올해가 가기 전에 읽고 싶다. 물론 이 소설의 2권도 읽어야 한다.

 

이 작품의 작가는 현직 검사라고 한다. 이 소설 이전에는 로맨스 소설을 쓴 모양이다. 이 로맨스 소설도 관심이 간다면 너무 심한 팬심인가. 자신의 직업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보니 사실적이고 현장감이 좀 더 있게 다가온다. 강한 검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제목에서 예상한 것과 다른 ‘암흑’ 검사다. 내가 생각한 암흑은 어두운 곳에서, 법의 테두리 밖에서 정의를 실천하는 검사 정도였다. 그런데 그는 염산 테러를 당한 후 실명을 한다. 맹인이나 실명 같은 단어 대신 암흑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마 내가 예상한 것 같은 효과를 노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도유망한 젊은 검사에게 이 염산 테러와 실명은 암흑 그 자체다.

 

강한 검사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함께 힘들게 살다 정말 열공해서 성공한 검사다. 그의 어린 시절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복싱장이다. 단장은 그의 실력을 보고 프로가 되었어야 한다고 아쉬워한다. 검사라는 직위와 멋진 외모에 운동 실력까지 갖춘 인재다. 그가 검사로 부임한 후 처음으로 현장에 간 곳이 바로 13세 초등학생 소녀 살인 사건 현장이다. 이 사건 담당 검사로 그는 이름을 알린다. 그리고 IQ 65의 3급 지적장애인 지온유를 법정에 세워 실형을 받게 한다. 그런데 이 지온유가 교도소에서 자살한다. 그에게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일 뿐이었다. 염산 테러를 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온유 사건으로 검사에게 불만은 품은 청년이 한 명 있다. 지온유의 친구인 소원이다. 그는 검찰청을 그래피티로 도배한 일로 봉사활동 1만 시간을 선고받는다. 강한 검사를 계속 괴롭히는 인물이다. 그런데 강한 검사가 실명하자 용의자로 지목 받는다. 원한 관계를 생각하면 쉬운 접근법이다. 스타 검사의 실명은 언론에 보도되고, 댓글은 나쁜 말로 가득하다. 실명되기 전까지는 대권 후보자의 사위가 될 뻔했다. 이 실명이 그에게서 권력과 경제력을 빼앗아갔다. 남은 것은 몇 년 동안 그의 연인이었던 정유미 검사다. 소원을 조사하는 검사도 그녀다. 하지만 강한은 현장을 조사한 자료로 소원의 기소를 중지시킨다. 그리고 소원은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해 강한 검사의 24시간 활동보조인이 된다.

 

이렇게 이 둘은 콤비가 된다. 시각장애인 검사와 보조인이 함께 사건을 파헤친다. 하지만 실제 검사들의 일은 서류를 통해 이루어진다. 누군가 이 서류를 읽어주거나 텍스트로 변환해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소원이 이 일을 대신한다. 그리고 젊은 남자 둘이 동거하면서 작은 일들이 일어난다. 티격태격하는 일은 당연히 벌어지고, 이 시간들이 쌓이면서 둘의 우정과 신뢰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검찰청에서 사건을 배당받아 하나씩 해결한다. 이 사건들은 모두 강한 검사와 연결되어 있다. 이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강한은 자신의 자존심을 강하게 내세우기도 하지만 자신이 놓친 부분들을 하나씩 깨닫는다.

 

성공적인 길을 가던 검사가 실명을 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이나 다시 의욕을 불태우며 세상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나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을 표시한 부분들은 개인적으로 많은 부분 공감했다. 현장이 아닌 사무실에서 서류로 일한다는 검사의 일상을 설명한 부분은 조금은 의외였다. 권력과 검사가 연결되는 장면을 간결하게 보여준 부분은 왜 우리나라 검사들이 검찰개혁을 반대하는지 잘 보여준다. 강한 검사가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병원에 모시기 위해 병원과 다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예전의 권력이 아님을 말하는 부분을 볼 때 왠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헷갈린다.

 

소설을 중반을 넘어가면서 머릿속에 범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그가 범인이 아니길 바란다. 강한 검사 테러가 처음이 아니듯이 마지막도 아니다. 범인은 테러를 저지르기 전에 1년 전에 듣고 보고 선고한 것들을 묻는다. 강한에게는 “1년 전 오늘, 넌 뭘 봤지?”란 질문이다. 강한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지온유 사건만은 소원의 기억들이 중간중간 끼어든다. 검사 출신인 작가가 자신의 경험담을 조금씩 이 소설에서 풀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도 바로 이런 부분들 때문이다. 아직 반 정도 남은 이야기지만 결말보다 과정들에 더 관심이 간다.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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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공포소설가 놀놀놀
전건우 지음 / 북오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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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가 전건우의 에세이다. 이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읽은 작품들은 재미있었다. 장편 소설 두 편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밤의 이야기꾼들>과 <고시원 기담>이다. 이 에세이의 마지막 부분에 한국에서 호러 작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 분야를 고수하기 위해 그가 어떤 작품들을 썼는지 조금씩 알려준다. 덕분에 그의 작품 목록을 검색하고 이전에 읽었던 단편의 평을 찾아봤다. 자세한 감상은 보이지 않지만 ‘재밌다’는 글은 보인다. 이 감상들이 조금씩 쌓여 언제부터인가 믿을 수 있는 공포소설가가 된 것 같다. 그런 그가 쓴 얇은 에세이니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호러에 대한 그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끝내주는 영화라고 말한 <13일의 금요일>이나 <나이트메어> 같은 영화를 어릴 때 보고 심장이 엄청 떨린 기억이 있는 나에게 그의 그 반응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어느 순간 공포 영화를 보면서 웃음 코드를 발견한 순간이 있지만 여전히 공포 영화는 나와 잘 맞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수없이 본 공포 영화들은 무엇인지... 아마 이 이율배반적 감정을 잘 표현한 것이 그가 들려준 초등학교 시절 경험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영화 등을 보는 순간 감정 이입되지만 끝나는 순간 나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고, 다시 순간적으로 경험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이런 경험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공포 영화 근처도 가지 않는다.

 

그가 공포라는 장르에 빠졌을 때 경험한 일들이 나오는데 보통 어린 시절 한두 번 정도 시도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꾸준히 공포를 탐닉한다면 어떨까? 그의 글을 보면 타고난 말빨과 이야기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후천적인 노력도 상당히 있었다. 이야기꾼이었던 그를 보면서 잠시 이야기를 잘했던 학창 시절 친구가 떠올랐다. 지금 뭐하고 있을까?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나도 <전설의 고향>을 좋아했었다. 나이가 들어 새롭게 나온 <전설의 고향>은 거의 보지 않았지만 그 이전에 나온 것들은 한때 즐거움을 준 프로그램이다.

 

이제는 아련한 비디오 가게 이야기와 19금을 빌리는 방법 등은 나에게 해당사항이 없다. 그가 보고 싶어한 공포 영화는 내가 보고 싶었던 것들이 아니었다. 영화 잡지에 나온 공포 영화라면 또 달랐지만. 그가 에세이 속에서 말한 수많은 공포 영화 중 시리즈 중 유명한 것들은 한두 편씩 본 것 같다. 영화에 대해 알고, 영화에서 공포를 조성하는 것은 장면이 아니라 음악이란 것을 알게 되면서 조금 시들해졌다. 실제 소리를 끈 공포 영화는 무서움이 훨씬 줄어든다. 이것은 공포 소설을 읽을 때도 해당된다. 그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의성어가 빠지고, 너무 자세한 상황 설명이 들어가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나 같은 사람은 그 속에서 미아가 되어 공포를 누리지 못한다.

 

그가 사랑한 공포 소설가 중 킹은 한때 아주 빠졌던 작가(지금도 마찬가지다)고, <검은 집>은 왠지 모르게 밋밋했다. 오히려 유일한의 소설들이 더 무섭게 다가왔다고 해야 하나. 지금도 공포 영화는 잘 보지 않지만 공포 소설은 자주 본다. 나의 상상력이 작가의 연출과 맞아 떨어지는 순간 잠시 호흡을 멈추고 심호흡을 한다. 너무 빠지면 공포에 서늘함을 느껴 잠 못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 싱크율이 점점 떨어지면서 공포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순간들이 늘어난다. 단순히 자극적인 것보다 천천히 쌓아올린 공포에 더 놀라고, 현실이 너무 잔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공포 소설이 무서우면 잠시 현실을 잊는다. 작가는 이 책을 호러에 바치는 연애편지라고 읽고 난 지금 동의한다. 다음에 더 많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당연히 공포 소설은 더 많이 출간해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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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널 마킹 - 현대 유럽 축구의 철학과 전술적 진화
마이클 콕스 지음, 이성모 외 옮김, 한준희 감수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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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럽 축구의 철학과 전술적 진화란 부제가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대변한다. 목차는 4년 주기로 유럽 축구가 어떤 전술적 진화를 가져왔는지 잘 보여준다. 축구를 잘 모르지만 꾸준히 뉴스 등을 통해 봐왔던 나에게 이 구분은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지만 읽으면서 공감하게 되었다. 특히 푸치볼로 포르투칼이 다루어진 시기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 시기를 풀어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놓쳤던 수많은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한 권으로 내가 축구를 많이 아는 척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던져주었다.

 

현대 축구에서 네덜란드와 크루이프를 빼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이 네덜란드가 한 번도 월드컵에서 우승을 못했다는 점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항상 90년대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는 우승 후보였다. 좋은 선수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좋은 선수가 많다고 우승하는 것은 아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보면 그들이 항상 우승해야 할 것 같지만 유럽 축구에 밀린다. 개인 능력이 아닌 전술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선수들이 없으면 우승하기 힘들다. 유럽에서 감독들의 몸값이 점점 더 높아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는 시기별로 각 나라의 특색과 그들의 축구 철학과 전술이 어떻게 세계에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해외 축구를 보면 축구 용어로 경기를 분석한 기사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나 같은 축알못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감독의 전술보다 스타들의 득점 장면들에 더 관심이 많다. 특히 한국 선수들의 성적이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팀이나 선수나 감독이 있는 경우라면 그들의 결과에 주목한다. 전술적으로 그 부분을 이해할 능력이 부족하지만 알려는 노력도 크게 하지 않는다. 그래도 항상 읽다보면 조금씩 아는 부분이 생긴다. 그 조금 아는 부분들이 이 책의 독서를 아주 재밌게 만들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술들이 어떻게 다음 시기에 바뀌게 되었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축구 철학과 전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니 특정 선수들보다 감독들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물론 메시나 호날두 같은 경우는 다르다. 유럽 축구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크루이프는 말할 것도 없다. 축구 기사에서 4-4-2니 3-5-2니 하는 숫자를 표기할 때 이전에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다. 하지만 많은 기사와 해설자들의 설명으로 이제는 안다. 이 단순한 숫자만 보면 참 간단한 것 같은 축구가 11명의 선수를 어떻게 배치하고 운영하는가에 따라 수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절대적인 강자 같은 팀들이 예상하지 못한 패배를 당하는 순간도 있다. 전술의 승리라는 말이 이해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가장 훌륭한 미드필드를 꼽을 때 지단이 항상 먼저 나오는데 그의 활약이 리그에서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다. 꾸준함과 거리가 있지만 보는 즐거움이 있는 선수란 평가는 그가 이룬 성과 때문인 모양이다. 예전에 피구를 더 높이 치는 기사가 조금은 이해되는 순간이다. 푸치볼에서 무리뉴의 성공이 나오는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훈련 방식이다. 전술 주기화다. 훈련과 실전을 결합한 것인데 학구적인 무리뉴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또 포르투칼하면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있다. 남의 형이 된 호날두다. 그가 몸을 벌크업하면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게 되었다는 부분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스페인 축구하면 역시 티키타카다. 이 축구 전술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팀이 바로셀로나다. 그리고 펩과 메시다. 바로셀로나의 감독으로 무리뉴가 될 뻔했다는 이야기는 놀랍지만 그를 반대했다는 크루이프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현명했다. 스페인 축구에 아르헨티나인들이 끼친 영향을 풀어낸 부분은 개인적으로 새로웠다. 미드필드만으로 팀을 구성하고 싶다는 욕망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메시를 가짜 9번으로 지정한 것은 그의 능력을 극대화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 사비와 이니에스타의 도움도 무시할 수 없다. 한때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던 엘 클라시코 이야기는 또 다른 재미다.

 

독일이 세계 축구의 주류가 되었을 때 나도 한 번은 들어본 게겐프레싱을 구사하는 팀이었다. 클롭 감독이 왜 위대한 전술가란 칭호를 얻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펩이 클롭에게 약한 이유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전술이 모든 것은 아니지만 어떤 중요한 순간에는 이 전술이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클롭의 리버풀이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라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레알의 3년 연속 우승은 솔직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결국 전술은 다시 공간과 압박과 역압박 등으로 풀이된다. 창의적 플레이가 아직 이해되지 않지만 왜 축구 감독이 선수들을 지도한다고 하는지 이 책을 보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왜 현재 세계 최고 리그인지 감독들의 전술로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의 다른 책 <더 믹스>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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