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정의 - 문학으로 읽는 법, 법으로 바라본 문학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안경환.김성곤 지음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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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어느 인문학 서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법학자 안경환, 영문학자 김성곤 두 교수가 36편의 영화와 20편의 소설 속에서 들여다보고 발견한 폭력과 정의를 이야기한다. 아쉬운 것은 내가 이 영화나 소설을 모두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저자의 이 책은 서울대학교 <법과 문학과 영화> 강의에서 다룬 것 중에서 발췌해 두 학자가 머리를 맞대고 집필했다고 한다. 안경환의 글 상당 부분이 이전에 출간된 내용에 가필했다고 하는데 그 제목이 낯익다. 아마 한참 영화를 보던 시기에 나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다. 법의 이면, 정의와 편견, 사회와 사람 등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글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볼 때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작품들의 해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와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 등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기발한 오락영화 정도로 생각했는데 법학자의 눈에는 다른 설정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다. 만약 다시 이 영화들을 본다면 나에게도 이런 설정이 눈에 들어올지 궁금하다. 미국법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야기 중 로비스트와 배심원제도 부분은 결국 제도보다 사람이란 기본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법이 진실의 편인지, 법망을 빠져나가는 악인들을 다룬 부분도 한국의 현실에 대입하면 결코 좋은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정의와 편견을 다룬 이야기에서 다시 정의를 생각하게 된다. 강요된 정의라는 문제와 나만 정의롭다는 독선이 주는 위험은 언제나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뮌헨>과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정의의 집행과 그 피해를 다룬다. 정의의 집행 때문에 생기는 피해를 그냥 무심코 보아 넘길 때 그 피해를 고스란히 껴안는 시민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엽기적인 그녀>를 여성 편견의 종언이라고 한 부분도 흥미롭다. 내가 읽었다(?)고 생각한 <빌러비드>를 다른 방송에서 들은 후 이 장을 읽으니 또 다른 흑인 노예의 삶이 눈에 들어온다. 토니 모리슨의 작품 몇 편을 힘겹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다시 이 소설을 읽게 되면 그때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 같다.

 

사람은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사회와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코믹 액션 정도로 생각한 <레드 히트>를 냉전시대를 녹이는 우정으로 표현한 부분도 재밌지만 신천군 사건을 다룬 황석영의 <손님>은 묵직한 의미를 던져준다. 3부에서 앞부분이 냉전과 냉전의 가장 큰 피해국 중 하나인 한국의 상황을 많이 풀어낸 것은 의미심장하다. <괴물>도 분단과 미국 주둔 때문에 생긴 사건 아닌가. 그리고 3부는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작품들을 봤다. 한국 사회의 축소판으로 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같은 경우 아주 재밌게 본 소설이지만 한 사회의 문제를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 세력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문제점에 대한 다른 시선도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적지 않은 작품을 다루다 보니 모든 작품에 대한 글을 쓰기는 힘들다. 두 교수의 모든 주장과 해석에 동의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들이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풀어낸 이야기들은 그 분야에 낯선 사람들에 새로운 시선을 던져준다. 그리고 사회 현상을 영화나 소설이란 매체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 부분은 가독성을 높여준다. 이 책의 부제인 ‘문학으로 읽는 법, 법으로 바라본 문학’은 이 책에 딱 맞다. 안경환의 “모든 위대한 문학 작품은 예외 없이 법 이야기”임을 지적한 부분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내가 읽고 본 소설이나 영화에 대한 다른 시각을 본다는 것은 나의 세계를 확장시켜준다. 다른 영화나 소설 등도 다루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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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늑대
멜빈 버지스 지음, 장선환 그림, 유시주 옮김 / 만만한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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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늑대의 생활방식과 습성을 다룬 책을 읽는 적이 있다. 우리가 동화나 영화 등을 통해 알고 있던 늑대와 너무 달랐다. 어느 정도 늑대에 대해 안다고 생각해서인지 왠지 모르게 이 책에 쉽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책 정보를 검색하다가 이전에 번역된 책에 달린 학생들의 감상문과 저자를 몰랐다면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작가는 재밌게 본 영화 <빌리 엘리엇>의 원작자고, 학생들의 감상문은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글이었다. 그리고 영국에서 오래 전 늑대가 멸종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작가는 멸종된 것을 파악된 늑대들이 생존해 있다는 가정 아래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영국 남부 한 조용한 마을에서 벤은 아빠의 공기총으로 사냥을 하려고 한다. 그때 그 앞에 한 남자가 나와 벤의 공기총으로 멋지게 사냥한다. 그는 사냥꾼이다. 벤은 그에게 어떤 동물을 사냥했는지 묻다가 자기 동네에 늑대가 있다는 말을 한다. 이미 오백 년 전에 영국에서 늑대는 멸종되었다. 이 사실은 비밀인데 아이는 실수로 말했다. 이 사냥꾼은 늑대를 잡으면 한 마리 줄 것과 이 총으로 늑대를 쏘지 말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그리고 그는 늑대의 흔적을 뒤쫓기 시작한다. 그의 곁에는 충실한 사냥개 제니가 있다. 며칠 만에 몇 마리의 늑대를 잡는다. 그가 바란 것은 늑대를 멸종시키고, 그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는 것이다. 이렇게 사냥꾼의 잔혹하고 끈질긴 늑대 사냥은 시작된다.

 

이 사냥꾼 때문에 늑대의 숫자는 점점 줄어든다. 늑대들의 필사적인 도주는 이 사냥꾼의 끈질긴 추격에 하나씩 무너진다. 그들의 기억과 경험 속 흔적 지우기는 점점 무력해진다. 마지막으로 실버와 코나 등이 있는 무리가 있을 뿐이다. 실버는 임신한 상태다. 이 무리는 사냥꾼을 계속해서 피해 다녔다. 실버가 세 마리를 낳았는데 샤냥꾼은 잔인하게도 새끼들을 죽인다. 다행히 실버가 한 마리를 물고 달아난다. 이들이 숨은 곳이 바로 벤의 아빠 농장이다. 상처 입은 실버는 벤 가족이 돌봐 겨우 살게 되지만 사냥꾼은 결코 사냥을 멈출 마음이 없다. 이때 살아남은 새끼 늑대의 이름이 그레이컵이다.

 

벤 가족의 보호도 은밀하게 다가온 사냥꾼의 손길을 완전히 피하지 못한다. 야성의 세계로 돌아간 실버 가족은 사냥꾼의 사냥감이 된다. 그레이컵이 사냥꾼 손에 들어간다. 잔인한 사냥꾼을 그레이컵을 실버 등을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고 한다. 어린 그레이컵은 농장의 개들 사이에서 자란다. 농장주는 그레이컵을 개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자란 그레이컵은 다시 제니와 함께 머문다. 실버를 유인하기 위해서다. 이때 제니와 그레이컵 사이에 유대감이 생긴다. 하지만 실버가 자신의 새끼를 구하려고 오면서 상황은 바뀐다.

 

이 소설 속 늑대들은 단 한 번도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 코나가 사냥꾼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사람을 죽이면 무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본능 때문에 상처 입히는 수준에 멈춘다. 늑대는 들쥐나 토끼를 잡아먹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많은 무리가 아니라면 인간에게 해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설정이다. 멸종 직전의 늑대를 보호하려는 벤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노력은 확대되지 않고 그 마을에 머물 뿐이다. 그들의 공간을 벗어난 늑대는 언제나 사냥꾼의 사냥감이 된다. 늑대는 생존을 위해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 아니면 동물원 우리에 갇혀야 한다. 홀로 성장한 그레이컵이 쫓고 쫓기는 관계를 바꿀 때 쫓기는 자의 공포가 인간에게도 나타난다.

 

소설 속에 인간의 바람과 늑대의 본능이 충돌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개처럼 길들이길 바라는 벤 아빠의 생각은 그레이컵의 본능에 너무 쉽게 무너진다. 늑대의 자존심은 벤의 부탁으로 사그라든다. 자신들의 농장에서 머물기 바란 것과 달리 늑대는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간다. 사냥꾼의 허영과 욕망은 결국 자신에게 화로 돌아온다. 결코 많은 분량이 아니라 빠르게 읽을 수 있고, 상당히 재밌다. 마지막에 실린 서평 속 분석과 해석은 이 작품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든다. 예전에 읽었던 책 덕분에 늑대를 마냥 위험하게만 그린 소설이나 영화 등이 불편했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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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의 눈물
권지예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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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권지예의 단편집이다. 2000년대 초반 화려한 수상 이력 때문에 기억하고 있고, 신작이 나오면 관심을 둔다. 그런데 이번에 검색해보니 실제 읽은 책은 거의 없다. 한창 문학상 작품들을 읽을 때 읽은 기억 때문에 작은 오류가 생긴 모양이다. 작가가 개인적으로 10년 만에 낸 단편집이라고 하는데 이 책에 실린 여섯 편의 단편들은 최근 2~3년 안에 발표한 것들이다. 최근에 다시 한국 단편들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예전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작가들이 다루는 소재나 공간 등이 이전과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번역 소설이나 장르 소설들을 주로 읽다가 이런 작품들을 읽으면 예상하지 못한 정갈한 문장들에 잠시 빠져든다. 아마 내년에는 찜해놓은 몇 권의 단편을 더 읽을 것 같다.

 

하정우가 여행 욕구를 불러온다고 했는데 왠지 모르게 나는 그런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여행의 즐거움보다 그 여행이 던져준 상황이나 현실이 결코 즐겁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열렬하게 가고 싶었던 쿠바에서의 일상을 다룬 <베로니카의 눈물>은 물자 부족과 빈곤한 현실이 먼저 눈에 들어와 괜히 불편하다. 관광을 왔다가 마음에 들어 독채를 장기 렌트한 소설가 화자가 마주한 아바나의 현실은 기대와 너무 다르다. 몇몇 가지는 알고 있는 현실이지만 이렇게 누군가의 삶으로 보면 다르게 다가온다. 이중 물가제를 이해한다고 해도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물자는 한국 사람에겐 너무 힘들다, 여기에 집 관리인 베로니카에 대한 오해와 친밀감은 읽는 내내 불편하다.

 

<낭만적 삶은 박물관에나>는 사진 작업 차 다시 파리를 찾은 재이의 파리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몰래 연인들의 사진을 찍어야 하고, 비싼 식당 음식 대신 집밥으로 끼니를 떼워야 한다. 여기에 이혼한 남편과의 기억은 비참하기까지 하다. 혹시 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은 낭만과 욕망의 엇갈림을 잘 보여준다. 다시 쿠바 이야기를 다룬 <파라다이스 빔을 만나는 시간>은 남편이 유품으로 전달해달라는 상자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노력을 다룬다. 믿고 싶지 않고 피하려고 한 사실을 쿠바의 낯선 현실 속에서 마주한다. 쿠바 민중의 척박한 삶과 대비되는 자본의 유입과 성장은 우리 사회의 고도 성장기 이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부유하게 사는 친구 부부의 세미나에 대리 출석한 모녀의 미투 이야기다. 시간이 흘러 성에 대해 관대해졌다고 해도 어두운 곳에서 벌어지는 성폭행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 성폭행 문제에서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고민하고 고통 받는 현실을, 미투 고백의 어려움과 현실적 문제 등을 잘 녹여내었다. 현주의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이란 부분이 가슴 아프다. <카이로스의 머리카락>은 빽빽한 일정의 패키지여행 속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와 화자 부부의 이야기가 같이 나온다. 단체 여행이 주는 불편함과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간결한 이야기 속에서 잘 녹여내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 회상이란 부분에서 조금 낯설었지만 삶은 이런 기억들이 쌓인 것이다.

 

유일하게 한국을 배경으로 한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마>는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대학원을 다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세가 기울고, 부잣집 딸로 생각한 친구의 소개로 키스방과 그 다음 단계로 나선 여인과 소득 1% 삶을 살다가 실업자가 되어 추락한 가장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풀어낸다. 이 둘이 머무는 공간은 최악의 공간인 고시원이다. 여자는 오피걸로 돈을 벌고, 남자는 퇴직금을 까먹고 있다. 자신들의 현실을 가족들에게 속이고 있다. 뻔한 결말로 나아갈 것이란 나의 예상은 현실 앞에 가볍게 무너졌다. 이 여섯 편의 소설을 재밌게 읽은 듯한데 불편함이 가득하다. 이 여섯 편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은 뿌리내려 사는 곳이 아니라 잠시 동안 머물다 갈 곳들이다. 일상을 벗어난 곳의 일상은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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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람 생활만화
송아람 지음 / 북레시피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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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람의 만화를 이번에 처음 읽었다. 이 만화가의 다른 작품은 가끔 제목만 봤다. 어쩌면 한 권 정도 더 집 어딘가 있을지 모르지만 정확하지 않다. 책 읽기에 지칠 때, 시간 여유가 조금 없을 때 이런 만화를 읽으면 왠지 모르게 잠시 위안을 받는다. 나와 다른 삶이라 부럽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길을 가는 모습을 보고 나의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수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도 알고 선택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인 줄 알았다. 나의 무식함이란... 가볍게 본 몇 장의 컷은 이 만화를 선택하는 것을 도와줬다. 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세부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많이 나겠지만.

 

모두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일상, 다른 나라 여행, 다시 일상 등이다. 일상은 말 그대로 작가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아이와 함께 학교에 갔다가 아이 엄마 이름을 몰라 일어나는 해프닝은 소소한 재미를 준다. 아침 산책을 보다 보면 그 여유가 부럽지만 그녀의 하루가 망가지는 것도 그 여유로운 산책 때문이다. 자기애에 빠진 장면에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는 그런 적이 없는가 돌아본다. 남편과 아들이 다른 집에 갔을 때 그녀가 보여준 행동은 계획과 너무나도 다르다. 갑작스런 시간의 홍수는 불안과 예상하지 못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때만 해도 이 만화가가 얼마나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시는지 몰랐다.

 

만화가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이 만화를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생각이 나면, 필요한 종이가 있으면 그렸다고 한다. 제목 그대로 생활 만화다. 일상에서 본 것, 느낀 것을 이야기로 묶기도 하고, 한 컷으로 그려내었다. 내가 더 많이 공감하지 못한 것은 여자도 아니고, 애 엄마도 아니고, 만화가도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일상 속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몇 가지 행동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분노와 허세가 뒤섞인 이야기에서는 나도 모르게 크게 웃고 말았다. 요가를 하면서 들은 음악에 필 받아 붕붕 뜨는 그녀를 나에게 그런 노래가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뭐 어떤 노래는 나오면 절로 흥얼거리지만 말이다.

 

다른 나라를 여행한 이야기에서 최고의 것은 당연히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아들을 데리러 가면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다룬 <픽업 스릴러>다. 속된 말로 살아 있어 재미난 에피소드가 되었지만 그런 환경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지 잠시 들여다보게 된다. 아빠와 와인 한 명이 집의 술을 거덜낼 정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의 주량에 다시 놀란다. 두 번째 작품으로 앙골렘국제만화페스티벌에 가게 되고, 가면서 오면서 주변 도시를 돌면서 생긴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에서 나의 머릿속은 또 다른 생각들이 샘솟는다. 물론 부러움도 한몫한다. 사인회에서 이름을 책에 적어주기 위해 독자들의 이름을 적은 부분은 작은 감동을 전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렇게 자신의 일상을 만화로 표현한 책들을 볼 때면 부러움이 먼저 든다. 다른 작품에서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지 봤지만 이런 에피소드 하나 만들지 못하고 있는 나의 일상이 너무 반복되어 보인다. 물론 조금만 들여다보면. 다르게 표현하면 재미날 부분도 있을 테지만. 아이를 키우다보니 작가 부부가 아들을 어떻게 키울지 고민하는 부분에서 내 생각들이 겹쳐지고, 현실적인 어려움이 머릿속에 자리잡는다. 맥주 한 캔, 야구 시청, 졸음 등의 기억도 그녀가 그린 와인 한 잔에 잠시 다녀간다. 책장을 한 번 뒤져 이전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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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머린
이사카 고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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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4년 일본에서 발간된 <칠드런>의 후속작이다. 솔직히 말해 <칠드런>을 읽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한참 일본 소설들을 읽고 있던 시기고, 몇몇 작가의 작품들을 뒤섞어 읽던 시기라 더욱 그렇다. 저질 기억력 탓도 있겠지만 아마 읽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은가 생각한다. 책은 책장 어딘가 분명히 있을 테지만.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 서점에서 작가 이름으로 검색하니 아직 읽지 않았지만 집에 모셔둔 작품들과 읽을까 고민하는 작품들이 무수히 나온다. 상당수의 작품들은 재간되어 나왔고, 나오고 있다. 좋은 일이다. 그 당시 사지 못한 절판본을 살 수 있는 기회니까.

 

전작을 읽지 않아도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이 작품 속에 전작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어 전작을 읽은 독자라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10년 이상의 간극이 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바뀌었다고 하니 나중에 <칠드런>을 읽고 비교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뭐 이렇게 말해놓고 읽지 않은 수많은 소설들을 생각하면 조금 머쓱하다. 전작이 진나이의 강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에피소드 중심이라면 이번에는 소년 범죄 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처음 도입부 등을 보면서 조금 혼란스러웠던 이야기가 끝으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사실 최근에 이런 방식에 쉽게 적응을 하지 못한다. 여러 권을 함께 읽고, 한 번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 책 읽기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면 독서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이전에 한 번 들고 끝까지 읽던 시절과 분명히 다르다. 물론 이렇게 읽는다고 해서 이해를 잘 한 것은 아니다. 이 소설도 며칠 걸려 읽었는데 앞부분에서 조금 헤맸다. 혹시 읽었는지 과거를 돌아보고, 진나이라는 캐릭터가 쉽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소년 범죄자를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연관성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둘은 별개의 사건이다. 무면허 난폭 운전으로 지나가던 사람을 차로 치어 죽인 다나오카 유마 사건이 중심이지만 ‘죽어’란 공포 메시지를 보내고 자수한 오야마다 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토는 이 두 소년 범죄의 담당이다. 등교거부학생인 오야마다 순에게서 자신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가 보낸 메시지는 모두 인터넷 등에서 누군가를 협박하거나 살해 등을 하겠다고 말한 사람들에게 갔다. 그가 어떻게 개인정보를 얻게 되었는지 말하는 부분은 개인정보보호의 허점을 잘 보여준다. 사회 곳곳에서 품어져 나오는 분노와 증오의 글들을 보면서 실행 가능성을 파악하는 그의 능력은 사실 대단하다. 실제 그가 예상한 일이 벌어지고, 이 사건을 예방하는데 무토와 진나이의 활약이 있었다. 뭐 그렇게 멋진 액션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위험을 막은 것은 분명하다.

 

이야기의 핵심인 다나오카 유마가 행인을 치어죽인 사건은 유마의 과거와 연결된다. 부모가 교통사고로 죽었고, 초등학교 친구도 자신과 같은 소년 범죄의 희생자가 되었다. 무토는 이 사건을 파헤치면서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말하고, 순간적인 감정을 토로한다. 작가는 이 소년 범죄를 무비판적으로 다루지 않고, 이 죄가 얼마나 한 사람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진나이의 섬세하지 않은 말투에는 소년 범죄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쉽게 면죄부를 주지 않고 그 사건의 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한다. 이것은 우리가 사회문제가 되는 사건을 볼 때 평면적으로 보는 문제에 대한 반론이다. 쉽게 흥분하고 욕하지만 두 사람의 삶이 걸린 문제란 것을,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까지 생각이 더 나아가지 않는다.

 

소소한 이벤트와 과거 사건의 당사자가 등장해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고 꼰다. 유마의 친구가 죽은 사건의 소년 범죄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고, 그 삶의 무게도 말한다. 진정한 반성이 얼마나 힘든지도. 물론 반성하지 않는 인물들도 있다. 현실적으로 모두 제대로 반성하면서 살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에게까지 진나이가 관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나이는 무심한 듯, 귀찮은 듯, 황당한 듯 말하면서 누구보다 진한 근성과 열의를 가지고 있다.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다. 소년 범죄의 위험성과 잔혹성만 부각한 소설과는 차별점이 분명하다. 또 다른 관점에서 소년 범죄를 생각하게 된다. 당연히 재밌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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