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난 뒤 맑음 - 하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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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보다 분량이 많다. 하지만 익숙해진 이야기 전개와 문장 덕분인지 진도가 잘 나갔다. 상권 마지막에서 이츠카의 부모가 신용카드 사용을 중지했다. 부모의 바람은 신용카드 사용을 중지했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와라는 의도였지만 이 두 소녀는 아직 돌아갈 마음이 없다. 미국을 보는 여행을 더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때 그녀들이 보여준 선의가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지면서 조금 더 여행이 가능해진다. 지속 가능한 여행에 가장 필요한 자금을 이츠카의 알바로 모으는 것이다. 숙소 문제는 그들의 선의로 만난 헤일리의 방에서 거주하면서 해결한다. 한동안 이들은 헤일리의 거주지인 내슈빌에 머문다. 이 시기의 그들을 보면 여행의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내슈빌의 바에 취직한 이츠카는 자신이 취업 비자 없음을 알린다. 그 사실을 알지만 주인은 이츠카가 속여 몰랐다는 뻔한 거짓말을 사전에 맞춘다. 알바를 두 곳에서 하면서 다음 여행을 위한 경비를 모은다. 아빠의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와 자신이 직접 돈을 벌 때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신용카드를 끍을 때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던 것이 자신이 벌어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비용 지출에 좀 더 신경을 쓴다. 낮에 일하는 곳에서 남자가 데이트를 신청해도 영화 관람료가 아까울 정도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그녀가 세상의 쓴맛을 잠깐 맛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녀의 성장도 같이 이루어진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부담스러운 이츠카와 달리 레이나는 천진난만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이 둘의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한 방식은 이츠카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상권에서 이들이 여행하는 것을 보고 걱정했는데 이 걱정이 약간이나마 문제가 되는 순간이 한 번 일어난다. 변태라고 해야 하나. 레이나의 친화성은 여행이 길어지고 비용 문제가 생길 때 작은 돌파구가 된다. 가끔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내슈빌에서 일본만화동호회 사람들과의 만남을 보면서 왠지 모를 공감을 한 것은 왜일까?


이들이 다음 여행을 위해 돈을 모을 때 한 달 이상 부모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이 상황을 보고 나라면 어떤 반응을 할까 생각했다. 아마 엄청나게 걱정했을 것이다. 어쩌면 찾으러 갔을 지도 모르겠다. 이 긴 연락두절을 두고 부모들의 생각과 행동이 갈린다. 걱정하면서 기다리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실종을 알리고 제보를 기다리는 부모로. 레이나의 아빠인 우루우는 후자다. 어쩌면 대부분의 부모는 우루우처럼 하지 않을까?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아이가 더 멀리, 더 많을 것을 보고 경험하고 오기를 바랄까? 물론 이런 마음도 존재할 것이다. 이 판단은 아마 아이와 함께 살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려운 선택이다.


중간 중간 우여곡절이 있지만 소녀들의 여행은 계속 된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면서 겨울의 느낌이 달라진다. 여행하는 도중에 만난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여행을 응원하고 도와준다. 그들이 큰 탈 없이 긴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데는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릴러의 장면들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 현실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이츠카가 크리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상당히 흥미롭다. 작가는 후반부에 한 문장으로 이 특별한 관계를 설명한다. 예상하지 못한 미래의 모습이라 놀란다. 그리고 아이들의 가출이자 긴 여행은 부부가 가진 생각의 틈새를 들여다보게 한다. 사랑과 신뢰를 놓고 고민하는 리오나의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천진하고 무모하고 용감한 소녀들의 여행이 코로나 19로 잠시 사라진 여행 세포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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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뒤 맑음 - 상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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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읽었다. 한때 이 작가의 소설을 열심히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았지만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공감의 영역이 넓어졌다. 그 사이 많은 책을 샀고, 영화를 먼저 보는 바람에 묵혀 둔 책도 있다. 뭐 나에게 흔한 일이다. 상당히 많은 작품이 번역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책 뒤 표지의 목록을 보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책들이 출간되었다. 이 작가의 엄청난 팬이 아닌 관계로 내가 그 책들을 모두 읽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최소한 집에 사 놓은 책은 모두 읽고 싶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바람이지만.


책 표지가 시선을 끈다. 많은 여백과 밝은 색이 왠지 여유롭게 다가온다. 이전까지 본 표지와 다른 느낌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이라 선택했는데 실제 내용을 읽어 나가면서 조금 곤혹스러웠다. 책 내용을 제대로 읽지 않은 탓이다. 17세 이츠카와 14세 레이나, 이렇게 일본 소녀 둘이 부모들에게 편지 한 장만 남긴 채로 미국을 보는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첫 장을 펼쳐 읽을 때만 해도 레이나의 엄마가 나와 어른이 주인공이겠구나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큰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소녀들의 여행을 보면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들은 내가 읽었던 수많은 스릴러의 장면들이었다. 나만 그런가?


사촌인 두 아이가 사라졌을 때 부모는 당연히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은 아이들이 가져 간 신용카드를 중지하라고 말한다. 이 아이들은 뉴욕을 떠나 여행을 하는데 신용카드는 잘 곳, 먹을 것, 이동하는 것 모두 사용된다. 부모는 카드 내역만 보면 이들이 어디를 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서 잤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일탈을 두 집안에서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 이츠카의 아버지는 자신이 20살에 경험했던 세계 여행 때문에 상당히 관대하다. 레이나의 엄마도 관대한 편이지만 남편은 아이들이 빨리 돌아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두 부모의 생각들은 두 아이가 여행에서 경험하는 이야기에 비하면 아주 작은 분량이다.


한도가 많은 신용카드는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숙소에서 잘 수 있게 한다. 이들이 긴 여행을 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신용카드의 힘이다. 신용카드가 되지 않아 현찰을 뽑았을 때 그 금액이 3백 불이었는데 이 돈은 그들이 하룻밤 잔 호텔의 숙박비 정도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안전한 잠자리는 그들의 여행을 더 진행할 수 있게 한다. 여행을 하면서 그들은 여러 사람을 만난다. 작은 실수도 있지만 현재까지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라면 미성년자 두 소녀가 운전을 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작은 안전상의 문제라고 할까. 만약 이들이 차를 운전할 수 있었다면 뜨개질남 크리스이나 미시즈 패터슨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도보와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은 여행자의 시선을 많이 보여줄 수밖에 없다. 그 모습이 잔잔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읽다 보면 이 아이들의 여행을 어떻게 봐야할 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어린 두 소녀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아이들이 경험하는 여행은 무모한 점이 많다.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행동하고, 용감한 부분도 있지만 세상은 선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불안감은 역시 스릴러 때문일까? 처음에는 조금 낯설게 느껴지면서 몰입도가 떨어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속도가 붙었다. 불안감 뒤에는 이들의 여행에 대한 부러움도 있다. 레이나 아빠 우루우는 아츠카 집이 아이들 신용카드 사용에 너무 관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이 부분에서도 생각이 둘로 나누어진다. 아이들의 의지가 얼마나 굳센 것인지에 달려있지만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하권에서 이들의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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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주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박해로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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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로의 공포소설은 언제나 한 공간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한다. 바로 섭주다. 가상의 공간인 이곳에서 이전 세 이야기가 펼쳐졌다. 읽으면서 작가가 중간중간 풀어낸 작은 단서를 통해 이전 작품의 한 자락을 살필 수 있었지만 나의 저질 기억력은 그것들을 완전히 떠올리지 못했다. 아쉽다. 만약 이 소설의 제목이 <섭주>가 아니고, 섭주가 무대가 아니었다면 아쉬움은 그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다. 한 지역을 배경으로 연작소설을 쓰게 되면 그 공간이 현실처럼 다가오고, 그 지명이 하나의 공포로 각인된다. 최소한 현재 나에게 섭주는 그런 곳이다. 이 소설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바로 앞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표자가 섬뜩하다. 다섯 마리의 뱀이 다섯 색깔로 그려져 있다. 이 뱀들의 정체는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역시 보면 볼수록 섬뜩하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이 뱀들의 악의 상징처럼 다룬다.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뱀에 대한 평가와 대우가 달라지는데 작가는 사악하고 나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뱀들은 영성을 가지고 있지만 물리적 힘은 절대적이지 않다. 은밀하게 적은 적을 상대할 때는 이 힘이 대단하지만 그 실체를 알게 되면 물리적 타격이 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고전 전설이나 민담에서 본 것처럼 무찌를 수 있는 존재다. 완전히 영적인 존재가 아니란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고, 뱀들을 아주 쉽게 부려 상대방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최영우가 우연히 상갓집 돈을 훔쳐 달아나 흉가에 들어가면서 문제가 일어난다. 흉가에 간 이유는 출소 후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흉가에서 거울과 방울을 발견한다. 그가 돈을 훔친 곳은 다흥이고, 경찰이 수사망을 쪼여오자 달아난 곳은 섭주다. 최영우가 이야기의 문을 열었다면 본격적인 이야기는 서경을 통해 일어난다. 서경은 노처녀 초등학교 교사다. 학교에서 별명이 B사감이다. 얼마 전 사귀었던 남자가 아버지와 정치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결혼이 무산되었다. 둘만의 살림을 살 만도 한데 서경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쓸 힘이 없다. 학교에서는 거의 왕따다. 그러다 엄마 꿈을 꾼 후 제석정이란 곳에 간다. 이곳에서 방울과 거울을 줍는다. 이때 거대한 뱀이 나타난다. 이 뱀은 그곳에 살고 있는 굶주린 고양이들과 격렬한 싸움을 하고 결국 죽는다. 이 장면을 읽을 때 서늘했다.


이 제기를 가지고 온 이후 서경은 이상한 꿈을 꾼다. 몸에 열은 나는데 체온을 재면 정상이다. 무병이란 생각이 먼저 든다. 의정부에서 양어머니가 내려와 그녀와 잠시 머문다. 아픈 그녀 대신 학교에 전화를 하는데 선생들이 그녀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 전화로 드러난다. 아픈 몸을 이끌고 학교에 갔을 때 모습은 또 어떠한가. 언어 폭력, 뒷담화, 갑질 등의 다양한 저질 행위들이 벌어진다. 위축된 삶을 산 그녀에게 최악의 환경이다. 결혼이 무산된 아픔과 이 억눌린 감정들 틈새로 어두운 기운이 침입한다. 그녀가 꾸는 꿈은 현실과 환상이 엮이고 꼬인 것이다. 그리고 이 힘을 그녀가 받아들이면서 성격이나 행동 등이 변한다. 이후 이 힘을 발현하는데 조금의 거침도 없다. ‘폭주’란 목차가 나올 정도다. 이제 뱀이 사방에서 꿈틀거리고 나타난다. 죽음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언제나처럼 가독성이 좋다. 한국 무속을 바탕으로 서서히 젖어드는 서늘함은 이번에도 유지된다. 중간에 사파왕와 우녀의 전설은 민담의 공포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전설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박해로의 전작들에 나온 이야기들이 이 소설 속에서 자주 말해진다는 점이다. 언제 시간이 나면 하나씩 찾아보면 재밌을 것 같다. 소설 중간에 추락한 소설가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전작처럼 무녀들이 등장해 거대한 힘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무녀와의 대결은 예상 외의 장면으로 이어진다. 작가가 보여주는 정통 무속신앙과 호러의 결합이 이번에는 더욱 부드럽게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살> 이후 최고다. 책 마지막을 덮으면서 아직도 ‘섭주’ 이야기가 끝날 때가 아니라고 느꼈다. 또 어떤 섭주 이야기로 돌아올지 다음 여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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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살인 - 죽여야 사는 변호사
카르스텐 두세 지음, 박제헌 옮김 / 세계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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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엄청나게 가독성이 좋다. 우연히 살인을 하고, 이것이 상황을 꼬이게 만드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소설도 그런 종류다. 다만 살인과 명상을 엮어 잠시 숨을 고르게 한다. 형사 전문 변호사 비요른이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아내가 권한 명상 수업을 들은 후 삶의 변화가 생긴다. 그의 주 고객은 드라간이라는 조폭 두목이다. 이 두목이 평범한 조폭이라면 삶과 일을 어느 정도 배분하면서 살 수 있겠지만 드라간은 그를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수많은 사고를 치고, 이 뒤수습은 변호사가 맡아서 한다. 고액의 수입을 보장하지만 업무 스트레스는 최고치다.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고, 딸과는 만남이 제한된다. 최악의 상황에서 명상은 그에게 새로운 해결책이다.


긴 호흡을 하면서 감정을 다스리는 장면을 보면서 참을 인(忍) 자 세 개면 살인도 피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호흡으로 감정을 조절한 결과 살인으로 이어진다. 이 살인은 딸과 함께 주말 여행을 떠나려고 했는데 갑자기 드라간이 아이스크림을 말하면서 시작했다. 이 암호는 아주 급하다는 의미다. 딸에 대한 협박도 그 자리에서 일어난다.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참는다. 그가 그렇게 급하게 그를 찾는 이유는 드라간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스쿨버스에 탄 아이들이 봤고, 영상이 공개된 탓이다. 회사 지하주차장에서 아이스크림 차에서 만난 후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비요른의 차 트렁크에 몸을 숨긴 채 밖으로 나간다. 드라간의 소리를 아이가 듣지 못하게 음악을 크게 튼다. 여행지 호텔에 도착해서 트렁크를 열어놓아야 하는데 평화로운 명상의 힘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인다. 무더위에 트렁크 안 온도는 엄청나다.


이 첫 살인이 있은 후 사체 처리를 하는 장면은 끔찍하다. 사체가 발견되면 그는 중요한 용의자가 된다. 처음이라 작은 실수가 생긴다. 드라간의 반지를 낀 손가락을 새가 물고 간 것이다. 드라간의 부하들에게 그가 살아있는 척해야 한다. 잠적한 드라간의 엄지에 묻은 D과 타블로이드 신문은 암호문으로 작용한다. 드라간의 운전수 사샤에게 그날 밤 사건의 자세한 설명을 듣는다. 누가 봐도 함정을 판 것이다. 이 위험은 비요른에게도 계속 일어난다. 누가 이런 범행을 저지른 것인지 밝혀내야 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드라간이 살아 있는 척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그의 죽음이 드러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사건은 꼬이고 꼬인다.


요쉬카 브라이트너가 준 책과 그의 수업은 비요른이 마주하는 위기 때마다 좋은 안내서 역할을 한다. 이 책의 목차는 모두 명상 책과 연관 있다. 조폭의 무시무시한 살인 행위에 대비해서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데 그 중심에는 유치원이 있다. 비요른도 딸 에밀리를 유치원에 입학시켜려고 한다. 30곳이 넘는 곳에 신청서를 넣었다. 그 중 한 곳이 드라간이 매춘시설로 바꾸려고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아빠가 조폭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란 이유로 입학 거절 편지를 보낸다. 아내가 크게 노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드라간의 손가락이 있다. 건물에 대한 드라간의 용도를 바꾼다. 그리고 유치원 재단의 비리를 발견해 드라간 조직이 인수하게 만든다. 그 과정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작은 폭력(?)이 있었다. 이 소설은 이렇게 곳곳에서 살인과 폭력이 난무한다. 그런데 무섭기보다 코믹하다.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보는 느낌이다.


이 소설의 매력은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이어가는 것도 있지만 캐릭터의 반전도 무시할 수 없다. 조금의 주저도 없이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는 조폭이 유치원 입학 문제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된다. 경찰은 또 어떤가. 이 상황을 보면서 한국에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보내기 위해 몇 년 동안 대기를 타야 하는 현실이 떠올랐다. 자신의 딸을 입학시키기 위해 한 행동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황당하지만 웃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명상을 수련하면서 그가 마주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은 약간은 도식적인 느낌도 있지만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마주한 마지막 장면은 기대했던 반전으로 마무리한다. 그렇지만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일들이 많다. 당연히 다음 이야기를 보고 싶다. 후속작들이 나왔다고 하니 빠른 번역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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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히스토리 -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
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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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체르노빌은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체르노빌 방사능 누출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계속해서 원자력 발전소를 유지하고 운영했다는 점이다. 완전히 멈춘 것이 2000년이라고 한다. 이 책은 체르노빌의 건설부터 시작하여,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던 밤과 그 이후 일어난 대응과 수습 등을 다루고 있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시간 순으로 하나씩 따라가는데 읽다 보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방사능 누출이 인류 최초의 사건도 아니라는 점도.


우리에게 다시 방사능 누출 문제가 다가온 것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무너진 때다. 얼마 전에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많은 문제가 있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체르노빌 이전에 미국에서 핵발전소 문제가 있었지만 큰 이슈가 되지 않았고, 가장 안전하고 저렴한 전력 생산설비로 각광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도 원자력발전소 홍보를 할 때면 언제나 안전하고 저렴하다는 것을 내세운다. 하지만 매몰비용이 얼마나 들지 모른다는 것과 향후 수만 년 동안 방사능 누출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누락하고 가린다. 저자가 체르노빌 사고 이후 유럽의 핵발전소들이 불안해한 것을 지적한 것도 이 누락되고 가려진 정보 때문이다.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전 정기점검을 위해 원자로 4호기 가동을 중지한다. 원자로의 결함으로 핵분열 반응이 증가하고 제어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원자로가 폭발한다. 원자로를 덮고 있던 200톤의 콘크리트 덮개가 날아간다. 방사능이 열린 하늘로 분출한다. 사상 처음 겪는 사건에 원전 직원들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사고가 일어난 후 방사능 누출 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데도 실패한다. 화재가 발생했다고 소방대원들이 달려와 불을 끄려고 한다. 이들은 고농도의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방사능 피폭이 많이 된 이들은 나중에 사망한다. 핵분열 반응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 사실은 소련은 국제사회에 숨긴다.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스웨덴까지 날아갔고, 그곳 직원들이 이상 상황을 알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체르노빌의 원전은 RMBK원자로 사용한다. 물이 아닌 흑연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원전 설립 비용이 적게 되는 장점이 있지만 안정성 문제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소련은 자신들의 기술을 서방에 알리기 위해 더 빠르고 싸게 원전을 건설한다. 빠른 속도와 싼 비용은 원전의 안전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한 겹 더 씌워야 할 콘크리트 벽을 세우지 않는다. 건설과정에도 수많은 문제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자료가 넘쳐난다. 원자로 설계의 문제도 있지만 건설, 운영, 관리 등에도 문제가 있었다. 사고 이후 이 문제를 처리할 때 각자의 계산에 의해 표면적 원인이 다르게 부각된다. 소련 입장에서는 설계 문제보다는 운영의 실수를 더 부각한다. 역사의 기록은 이 차이를 놓치지 않는다.


사고 이후 핵분열 반응이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방사능의 유출도 심해진다. 원자로가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잘못하면 방사능이 지하수로 흘러갈 수 있다. 이것을 막고, 원자로의 폭발도 멈춰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모래를 원자로 속에 붓는 것이다. 헬기를 동원해 붓는다. 쉬운 일이 아니다. 헬기 조종사들이 방사능에 노출된다. 만약 해당 원자로뿐만 아니라 옆의 원자로까지 폭발한다면 유럽 전체가 방사능에 완전히 오염될 수 있다. 무시무시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원자로를 멈출 방법도,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방사능 누출이 줄어든다.


이 사고로 가장 많이 피해를 본 곳은 체르노빌이 있는 우크라이나와 원전과 가장 가까운 나라인 벨라루스다. 저자의 재미 있는 관점 중 하나는 구 소련의 해체의 시발점으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말하는 부분이다. 원전 폭발 이후에도 제대로 된 정보를 시민들에게 전달하지 않은 관료들은 이 피해 규모를 더욱 키웠다. 이때 방사능 피폭 당한 피해자 등을 처리하기 위해 국가 예산의 10퍼센트까지 사용해야 했다는 부분은 이 사고가 얼마나 거대하고 지속적인지 알려준다.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해당 원자로를 덮는 것인데 두 번이나 진행했다. 유럽의 지원으로 두 번째 덮은 보호막에서 최근 핵분열 반응이 감지되었다는 소식은 공포 영화의 클리세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은 준다.


저자는 체르노빌 사고의 근원적 원인으로 “소련 정치 체제의 중대한 결함과 원자력 산업의 중대한 결함의 상호작용에 있었다.”고 말한다. 발전소 직원의 절차와 안전 규칙 위반도 말하는데 이 부분은 나의 이해 부족이 조금 있다. 사고 이후 체르노빌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우크라이나와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유럽이 폐쇄를 둘러싼 밀당을 한다.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곳은 역시 유럽의 원자력 발전소들이다. 원전 산업이 사라질 위협을 제거해야만 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유럽에서 원전은 퇴출 대상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더 공부해야 할 것 같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시간 순으로 사건의 진행과 의사 결정 과정을 멋지게 그려내었는데 머릿속에서 이 정보를 소화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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