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예술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정윤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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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읽었다. 이 작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필립 말로 시리즈가 생각난다. <빅 슬립>이 워낙 유명해 먼저 읽었는데 솔직히 말해 취향과 맞지 않았다. 당시 나의 취향은 이런 하드보일드 소설이 아니었다. 그러다 시리즈 다른 소설을 읽고 재미를 느꼈다. 도서관에서 한두 권 빌려 읽었는데 나중에 시리즈를 모두 모았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나의 나쁜 습관이 작용했다. 사 놓고 묵혀두기. 그리고 어떤 소설을 읽었고, 읽지 않은 소설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열심히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을 해놓지 않았던 시기였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필립 말로 이야기가 나오면 읽어야지 하는 다짐을 하지만 늘 마음뿐이다.


레이먼드 챈들러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나는 이 단편집도 필립 말로가 등장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장편일 것이란 추측이다. 첫 단편을 읽고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각각의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까지 모두 다른 인물일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책을 모두 읽은 후 낯익은 제목을 검색하고, 이 단편집에 실린 소설 중 최소 한 편은 다른 단편집에 실린 것을 찾았다. 번역된 제목은 다르지만 비슷한 부분이 있었고, 인터넷서점에 나온 샘플 문장으로 같은 작품이란 것을 확인했다. 만약 내가 그 단편집을 가지고 있었다면 서로 비교할 수 있었을 텐데.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한 번 비교해보고 싶다.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앞의 두 편을 재밌게 읽었고, 여운을 남기는 소설은 <호텔 방의 여자>였다. 다른 단편집에 실린 <사라진 진주 목걸이>이 제외한 소설들은 호텔이 중요한 공간이거나 호텔 직원이 등장한다. 대부분 탐정이 등장하고. 술과 담배와 총과 여자가 항상 나온다. 이런 설정이나 전개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 당시 출판계의 현실이 많은 작용을 했다고 한다. 적은 원고료와 독자의 요구 조건 등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다시 다른 단편집에 눈길을 준 것은 대표 캐릭터인 필립 말로가 등장하지 않는 소설들이 나온 드물기 때문이다. 


다섯 편의 소설들이 모두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보여준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첫 단편인 <황금 옷을 입은 왕>의 스티브가 마음에 든다. 호텔 경비직 실직으로 어쩔 수 없이 탐정이 된 그의 활약을 읽으면서 다음 등장을 기대했지만 다른 이야기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재즈 뮤지션 레오파디 살해 위협을 파헤치고 진실을 쫓는 과정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영리한 살인자>는 한 영화제작자의 죽음을 파고들어 그 뒤에 숨겨진 사실을 찾아낸다. 어떻게 보면 뻔한 설정일 수 있지만 건조한 문장과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강한 인상을 준다. 갱들이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장면을 보면서 옛날 갱스터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사라진 진주 목걸이>는 탐정이거나 한때 용의자였다가 친구가 된 두 인물의 술 냄새 가득한 이야기로 펼쳐진다. 그들이 차를 몰기 전, 또는 운전하면서 마시는 장면 묘사를 보면서 잠시 추억에 빠졌다. 지금이라면 경악할 일이다. <호텔 방의 여자>는 가장 분량이 짧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마무리다.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장면이다. <시라노 클럽 총격 사건>은 왠지 모르지만 앞의 작품처럼 깊게 몰입하지 못했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도입부 부분을 정독하고 기억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카마디의 활약을 보면서 앞에 나온 인물의 능력이 더욱 비정상적으로 다가왔다. 사건이 해결되는 장면도 역시 깊게 몰입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펄프 픽션에 매력을 느낀다. 대실 해밋도 마무리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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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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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저자가 쓴 첫 소설이다. <지대넓얕>이 워낙 인기를 얻어 관심을 두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팟캐스트로 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책으로 읽자는 생각에 그만 두었다. 그러다 채사장의 첫 소설이 나왔다는 소식을 봤다. 워낙 글을 쉽고 재밌게 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 펼쳐 읽으면서 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조금 힘들었다. 작가가 만든 세계와 그가 풀어낸 철학들이 나의 머릿속에 춤을 추지만 함께 섞여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곱씹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소마. 주인공의 이름이다. 인터넷 검색하면 인도 신화 속 신과 제례에 올리는 특별한 음료와 마약이란 간단한 설명을 찾을 수 있다. 나에겐 <소마신화전기>란 만화가 더 익숙하다. 이런 것들을 뒤로 하고 소설 속으로 들어가면 한 소년의 삶이 그 속에 녹아 있다. 내가 알 수 없는 신을 믿는 소년 소마가 아버지가 쏜 화살을 찾으러 떠난 후 마주한 장대한 삶을 그려낸다. 그 이야기는 갑작스러운 비약과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로 가득하다. 읽으면서 어떤 대목에서는 오래 전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 <파우스트>의 느낌을 받았고, 어떤 이야기에서는 판타지 소설 속 영웅의 모습을 발견했다.


소마가 살던 곳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가 화살을 좇아다녀온 후 본 마을의 모습은 학살의 현장이다. 죽은 어머니 시체 옆에 머물다 지쳐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가 그를 말에 태우고 떠난다. 그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한다. 그를 데리고 간 인물은 한 국가의 귀족이다. 그의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 여기서 시점이 바뀐다. 아이의 시점이 아닌 아이를 관심있게 관찰하는 한나의 시선이다. 소마는 자신의 기억을 잊고, 하나의 아들처럼 자란다. 하지만 권력은 욕망을 뒤로 숨긴 채 슬며시 집안으로 들어온다. 오만한 귀족 아이가 양자가 된다. 둘이 좋은 형제가 되어 서로 돕는 이야기도 있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아들은 오만하고 이기적이다.


이 두 아들의 갈등을 심화시키면서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지만 작가는 빠르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 짧은 상황을 만들어내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백인들의 세계에서 비백인은 좋은 대우를 받기 힘들다. 왕실기사단에서 좋은 동료들을 만나지만 이 인연도 결코 좋게 마무리되지 않는다. 악의는 정체를 숨긴 채 살며시 찾아와 오해의 씨를 뿌린다. 이 이야기에서 작가는 또 한 번 예상을 벗어난 전개를 펼친다. 그리고 자신의 본래 이름을 알게 되고, 자신이 소마라고 외친다. 영웅의 서사시가 펼쳐질 것 같지만 긴 세월이 흐른 후 마주한 소마는 무자비하고 잔혹한 용병 부대장이다. 적들에게는 아틸라의 현세라고 불리는 무시무시한 인물이다.


이후 펼쳐지는 소마의 행적은 영웅이라 불려고 별 무리가 없다. 지혜롭고 용감하고 무자비한 군 사령관으로 적들을 무찌른다. 승리는 당연하다. 예전의 오해를 풀고 화해할 것 같았는데 또 다른 길을 간다. 예측한 대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예측하기 힘든 이야기에서 우린 역사의 사실과 삶의 철학과 인간들의 헛되고 뒤틀린 욕망이 빚어낸 다양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카이사르의 모습이 떠오른다. 모든 것을 개혁하려는 의지는 시간 속에 조금씩 사그라든다. 간결하게 다루어진 정치와 종교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답답한 현실을 발견한다. 전장을 달리던 말들이 마구간에 머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소마의 생활 습관이 어떻게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지 보면서 가슴 한 곳이 아렸다.


단순히 소마란 인물의 영웅담이나 재미만을 추구한다면 이 소설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야기의 비약 속에 가려진 부분들을 상상력으로 이어야 하고, 개혁의 실패와 종교 등에 대한 설명은 아는 만큼 이해할 수 있다. 칭기스 칸의 몽고가 세상을 정복한 후 왜 그렇게 빨리 멸망하게 되었는지 말하는 대목 중 하나가 한 곳에 머물면서 나태해진 것이라고 말한다. 전장을 달리며 전우애를 쌓은 이들이 권력을 쥐자 몸에 살이 붙고, 기존 귀족처럼 변한다. 권력과 욕망이 결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소마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진 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생각할 거리가 가득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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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여 오라 - 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이성아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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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은 제주 4·3사건을 정면에서 다루지 않는다.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나 가해자에 파고들어 그 상처를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에 눈길을 돌리면서 이 학살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세르비아 학살 등도 같이 다루고, 그 학살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군부정권이 사라진 후 등장한 김영상 정권 아래에서도 여전히 국가폭력이 존재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란 사실을 주인공 조한나의 사연을 통해 드러낸다. 읽으면서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하고, 잊고 있던 기억들을 다시 환기시켰다.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조한나가 번역한 작품의 작가 마르코의 집에 머물면서 학살의 현장을 둘러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과거사를 현재까지 끌고 와 풀어내는 부분이다. 과거의 기억을 따라 올라가면 제주 4·3사건이 있다. 그리고 그녀가 독일 유학 당시 만난 대학 선배 기표와의 이야기는 다시 한국 현대사의 정치조작 사건과 이어진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다. 간첩단 조작사건의 피해자가 된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생략되어 있다. 단지 현재의 삶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건의 재판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그 재판을 보도한 언론이 얼마나 악의적이었는지 말한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감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고 사실적이고 간결하게 알려줄 뿐이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는 <꽃보다 언니> 덕분에 한국에 많이 알려졌다. 유명 관광지 너머의 역사적 비극을 말한다. 그녀가 번역한 작품의 작가 마르코의 집에 머물고, 그와 대화하면서 구 유고슬라비아와 크로아티아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시기에 난민 문제가 생기면서 국경이 강화되고, 그녀의 국가 표기 때문에 생긴 작은 에피소드가 국가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한다. 전쟁과 학살은 국가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이다. 그 수행자들이 개인이라고 해도 그 권력을 쥐어준 것은 국가다. 조한나가 간첩단 사건으로 안기부 담당자의 폭력에 휘둘릴 때 그 담당 뒤에 가려진 국가폭력이 존재한다. 이 폭력과 유사한 것 중 하나가 홀로코스트 재판에서 나온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함’이다.


어느 순간 익숙해진 단어 중 하나가 ‘인종청소’다. 이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려주는데 함축된 단어의 위력을 쉽게 알려준다. 이후 이 단어가 다른 곳에서도 사용되었다. 인간이 저지르는 학살을 대표하는 두 단어 중 하나가 되었다. 국가 앞에 이런 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의 감정은 어떨까? “죄의식은 늘 피해자들의 몫이야.”라고 말하는 대목은 가슴 깊이 와 닿는다. 국가의 억압에 의해 군에 차출되어 원하지 않는 살인을 하는 사람은 어떨까? 눈 앞에서 피를 쏟으면서 죽어가는 사람을 본 사람의 경우다. 이 느낌은 너무나도 강렬해서 그의 삶을 쥐고 흔든다. 삶에 이 사실을 숨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불쑥 불안과 공포가 찾아와 그를 흔든다. 그의 삶을 이해하는 한 모습이다.


그렇게 분량이 많은 소설은 아니다. 예상보다 훨씬 가독성도 좋다. 하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그냥 가볍고 빠르게 읽을 수만은 없다. 그리고 조한나 가족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나올 때 잠깐 숨을 삼킨다. 비극은 결코 한시적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비극의 한 사람, 한 국가에 한정하지 않고 그 폭을 확대하면서 사유의 폭과 깊이를 늘인다. 그리고 시간 속에 생략된 이야기를 순간 떠올리면서 머리가 복잡해진다. 가볍게 이야기를 풀기에는 그 비극과 폭력의 희생자들 모습을 다른 곳에서 너무 많이 봤다. 자신이 당한 사건에 대해 재심청구를 둘러싸고 벌어진 몇 가지 이야기는 생각을 더 복잡하게 한다. 군부 독재가 사라진 후 민주화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곳곳에 그 흔적들이, 유산이 남아 있다. 아직 새벽이 오기 전이다. 밤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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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맑음, 때때로 흐림
마연희 지음 / 처음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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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해외 여행은 한 것은 2019년 연말 즈음이었다. 그 후 2달만에 코로나 19로 하늘길이 막혔다. 이때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2021년이 되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들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살짝 열린 문이 다시 조금씩 닫히고 있다. 아마 내년이면 올해보다 해외 여행을 하는 것이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나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동안 듣던 여행 팟캐스트나 여행 에세이 등을 멀리 했다. 이런 방송을 듣고, 책을 읽다 보면 나가고 싶은 열망이 더 커질 것이 뻔하니까. 그러다 살짝 가능성이 비치자 한 권씩 읽게 된다. 이 책도 그래서 선택했다. 그리고 그렇게 길지 않은 나의 여행 경험과 여행 컨설팅 대표가 들려주는 에피소드들을 비교하며 읽는 동안 잠깐 여행의 즐거움을 누렸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은 책 가장 끝에 나온다. “아직도 여행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아직도 설레여서 다행이다.” 코로나 19의 직격탄을 가장 강하게 맞은 해외 여행사 대표가 내뱉는 이 말은 진한 울림을 준다. ‘아직도’란 단어가 이전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마 이런 느낌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풀어낸 수많은 이야기들과 관계 있을 것이다. 고객을 관리하면서, 고객의 사소한 실수를 처리하면서, 나에겐 진상처럼 느껴지는 손님을 대하면서도 운영했던 그 여행사를, 코로나 19로 2년 가까이 문을 닫고 있어도, 그 여행을 설레고 좋아한다고 하니 대단하다. 자신이 정말 좋아해야 이런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이 에세이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가 여행사를 하면서 만난 고객들과 관계 있다. 단순히 고객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여행지 등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도 같이 나온다. 삐삐섬의 미얀마 소년부터 방콕의 쿤 아저씨까지 다양하다. 이 인연은 짧은 만남부터 긴 시간 여행 파트너까지 다채롭다. 하지만 중심이 되는 것은 역시 고객들이다. 어느 정도까지 믿어야 할지 의문이 생기는 에피소드는 출산을 하러 들어가는 순간까지 고객 관련 업무를 처리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내 머릿속은 이 여행사를 한 번 이용해 보고 싶다는 것이다. 늘 자유여행만 가는 나인데도 말이다. 물론 나의 첫 해외여행은 패키지였다.

이 에세이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 있다. 발리, 태국, 하와이 등이다. 각 에피소드에 나오는 문제들도 아주 다양하다. 나라의 국빈이 리조트를 모두 빌려 다른 곳으로 가야 하거나, 장애인을 위한 계획을 짜거나, 멋 모르고 비싼 세탁 서비스를 이용한다. 주차 실수도 빠질 수 없다. 아이가 여권에 낙서를 해서 급하게 단수 여권을 만들고, 사라진 유모차 때문에 안절부절한다. 가장 놀라운 이야기라면 비행기 비상구가 일회용이란 것이다. 이 실수가 빚어낸 여파로 당사자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다른 여행객들은 기분 좋은 여행을 시작부터 망친다. 그리고 여행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돈이나 물품 분실 문제도 같이 다룬다. 어떻게 보면 여행사 사장님의 고객 관리 체크 리스트 같다.


많은 경험담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비롯했다. 고객들의 성향에 따라, 사건의 무게에 따라 대응하는 방식도 다르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렇게 보상을 해주면 회사 이익이 날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이 늘 있지는 않을 것이다. 팁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준 팁이 어떤 경우는 너무 과했고, 어떤 순간은 너무 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팁은 정말 어렵다. 여행자 보험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에피소드는 읽으면서 불안불안했지만 상당히 잘 마무리되었다. 작가가 가진 공황 장애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머니가 예전에 느꼈다는 그 무서움의 원인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마지막 가족 여행은 읽으면서 살짝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나의 지난 여행 기억을 생각보다 많이 떠올렸다. 왠지 앞으로의 여행보다 과거 여행 회상을 더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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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관 - 국내 최초 군대폭력 테마소설집
윤자영 외 지음 / 북오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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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작가들이 군대 폭력을 대해 이야기를 썼다. 소개글에 넷플릭스 드라마 애야기가 계속 나온다. 아마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영향으로 기획되었을 것이다. 군대 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작품들에 나왔다. 나에게 특별한 내용은 아니지만 이렇게 군대 폭력만 다룬 소설집은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발 빠른 기획이다. 이 네 편의 소설들은 그 시대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읽다 보면 과거 이야기도 나오고, 비교적 요즘 이야기도 다룬 것 같은데 특정 시대를 알려주지 않는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에게 이 시대는 상당히 예민한 부분이다. 속된 말로 ‘나 때는 말이야’란 단어를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의 경험에 따라 각각 다르게 그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다.


윤자영이 쓴 단편 <살인 트리거>는 현재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는다. 국민학교란 명칭이 나왔다는 것부터 오래 전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작가는 이 단편에서 작은 서술 트릭을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정충식과 최호남의 악연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최호남이 어떻게 머리를 써 자신의 위치를 높였는지 하나씩 보여주는데 치밀하고 교묘하게 친구들을 이용한다. 자신이 권력을 직접 쥘 수 없기에 권력자 옆에 붙어 호가호위한다. 국민학교, 중학교 등에서도 문제였지만 군대에서는 더욱 악질적인 행동을 한다. 첫 장면에서 최호남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한 이유를 보여준다. 작가는 단순하고 직선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고 살짝 가리고 비틀면서 예상 외의 반전을 펼친다.


박해로의 <고문관>의 무대는 다시 섭주다. 군대보다 의경으로 이야기를 옮겼지만 내부반의 폭력은 여전하다. 설마 섭주일까 했는데 그 동네가 나오자 섭주에 대한 집착에 살짝 감탄했다. 계부가 무당인데 그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대에 간 심소남은 군대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계부가 준 부적을 가지고 생활하는데 헛것이 보인다. 의경의 고문관으로 불리는 그를 고참과 동기들이 그를 갈군다. 빽 좋은 후임은 하극상을 저지른다. 작가는 점점 더 상황을 악화시킨다. 각자의 사연 속에 허세를 집어넣어 살짝 부풀린 부분도 있지만 폭력의 아래로 흐르는 성향을 그대로 적용한다. 이 소설의 파국은 우연인지 모르지만 정명섭의 <사라진 수첩>과 닮은 꼴이다. 물론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만.


<불청객이 올 무렵>의 문화류씨는 처음 만났다. 개인적으로 공감할 부분이 많지만 설정 부분에는 살짝 거부감이 든다. 아마 개인 취향 문제일 것이다. 제대 후 예전에 있었던 군대 폭력을 다룬다. 때린 놈은 잊어도 맞은 놈을 잊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가장 높이 날고 행복한 순간 추락하는 과정을 한 편의 연극처럼 보여준다. 박종운은 크리에이터로 성공하고, 학창시절 짝사랑했던 여자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약속한 상태다. 군 후임들을 불러 여자 친구를 소개하고 행복한 꿈을 꿀 때 불청객처럼 초대하지 않은 후임이 나타나 그가 저지른 군대 폭력을 까발린다. 최근 연애인들이 성공한 후 학폭으로 추락한 것과 닮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지독하다.


정명섭의 <사라진 수첩>은 군대 내 폭력과 왕따의 희생자가 소총으로 부대원들을 죽인 후 그 이유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군대 폭력과 한 사병의 일탈로 간단하게 마무리하려는 사단장 등의 의도를 깨트리는 헌병 강민규 상사의 수사를 다룬다. 관심사병 정 이병이 왜 이런 참혹한 살인을 저질렀는지, 그 살인을 막을 수는 없었는지를 파고든다. 실제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어디까지 옷을 벗는지 모르겠지만 사단장 등은 사건을 축소시킨다. 군의 폐쇄성과 군 폭력의 확대 등이 왜 계속 발생하는지 그 이유 중 하나를 보여준다. 읽으면서 생기는 호기심 중 하나는 어떤 이유로 사단장 등과 강 상사의 뒤틀린 관계가 생겼을까 하는 것이다. 강 상사가 전역 후 탐정으로 활동하겠다고 했는데 그가 주인공이 소설이 있는지 모르겠다. 있다면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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