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소장품 -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 츠바이크 선집 (이화북스)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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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첫 번째 소설 선집이다. 1911년부터 1925년 사이에 발표된 소설 6편을 담고 있다. 나의 저질 기억력에 의하면 츠바이크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혹시 읽었다고 해도 기억하지 못한다. 워낙 유명한 작가라 몇 권의 책을 사 놓았지만 책 더미 어딘가에 묻혀 있다. 이 소설을 모두 읽은 지금 그 책들을 찾아내고 싶다. 나의 게으름과 밀린 다른 책들을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할 것 같지만 말이다. 가끔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을 읽을 때 취향에 맞지 않아 고역을 치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은 그런 부분이 전혀 없다. 도입부에 잠시 집중이 깨어져도 바로 흥미로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다. 왜 많은 사람들이 거의 소설을 칭찬했는지 알 수 있다. 풍경 등에서 시대를 알아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심리 표현이나 사건을 풀어내는 대목은 아주 탁월하고 현대적이다.


6편의 단편 중에서 <세 번째 비둘기의 전설>은 아주 짧고 개인적으로 시간 나면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아의 방주에서 시작한 것이 현대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드러난 생략과 비약 때문이다. <아찔한 비밀>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바뀌는 주인공 때문에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바람둥이가 주인공처럼 등장해 한 유대인 부인을 유혹하는 초반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바랑둥이가 아이를 통해 엄마에게 접근한 후 너무 빨리 아이를 멀리 하면서 생긴 문제를 아이의 시각으로 풀어내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두 남녀의 욕망과 그 사이에 낀 아이가 비밀에 점점 다가가면서 깨닫게 되는 삶의 다른 모습은 너무 빠른 것 같지만 성장은 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난다.


<불안>은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겁박하는 여자를 등장시켜 그 여성의 불안한 심리를 섬세하게 다룬다. 자신이 가진 돈을 모두 주면서 달아나고, 점점 더 자주 돈을 요구하는 협박 여자에 휘둘리는 그녀의 심리를 긴장감 넘치게 그린다. 정해진 파국으로 달려가는 모습들이 아주 인상적이다. 이성과 감점 사이에서 선택은 언제나 감정에 우선 순위를 내어준다. 그리고 예상한 결말로 이어지는데 읽다 보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모르는 여인의 편지>는 한 여성의 절절한 사랑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 반한 작가에게 자신의 아이가 죽었다고 말하면서 그와의 인연을 하나씩 풀어간다. 어떻게 보면 ‘미저리’의 스토커 팬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작가의 바람기와 무감각한 감정 등이 그녀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몇 번의 밤을 같이 보냈지만 같은 인물이란 사실을 몰랐다는 표현을 보면서 아들의 죽음과 이 편지가 지닌 비극을 절실하게 느낀다.


표제작 <보이지 않는 소장품>은 독일의 초고도 인플레이션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화폐 가치가 너무나도 급속하게 떨어지는 상황에서 삶을 유지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취할 수밖에 없는 행위와 오랜 세월 자신의 취미로 좋은 판화들을 모은 수집가 이야기를 엮었다. 비극은 전쟁에서 비롯했지만 현실에 닥친 삶의 무게는 실명한 수집가를 속이는 상황에서 일어난다. 보이지 않는 소장품을 열렬하게 소개하는 장면을 보면서 서로 엇갈린 감정들이 주는 먹먹함을 떨칠 수 없다. <어느 여인의 24시간>은 휴양지에서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잘 생긴 남자와 떠난 여성에서 시작해 과거의 기억 속으로 넘어간다. 한 노부인이 자신의 과거 비밀을 솔직하게 풀어내는데 그 이유는 화자가 도망친 여성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고, 과거의 비밀을 밖으로 쏟아내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도박장에서 모든 것을 잃고 삶도 포기하려는 남자와 함께 한 24시간을 들려주는데 그 속에 담긴 열정과 욕망은 진솔하고 너무나도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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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너의 심장이 멈출 거라 말했다
클로에 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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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로맨스 소설이다. 로맨스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나의 취향을 생각하면 의외의 선택이다.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지 않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한 해에 한두 권 이상은 읽고 있다. 대부분 외국 소설인데 이번에는 한국 소설이다. 이 책을 선택할 때 소개가 마음에 들었다. 죽음을 앞둔 그녀 은제이와 매일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남자 전세계의 시한부 사랑(100일 계약)이란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독자들의 입소문으로 탄생한 종이책이라고 하니 또 마음이 움직였다. 다 읽은 지금 결론만 먼저 말하면 가독성이 좋고, 곳곳에 유머가 지루하게 하지 않지만 다른 로맨스처럼 감탄할 내용은 아니란 것이다.


후반부가 진행되면서 나의 머릿속은 이미 결론에 대한 예측이 떠올랐다. 이 예측은 사실로 마무리되었다. 이 소설 속 두 주인공 은제이와 전세계는 엄청난 재력을 가진 여자와 멋진 외모의 남자다. 이 둘이 만나 사랑한다는 전형적인 설정에서 시작한다. 제이는 심장에 문제가 있어 죽음이 예정되어 있고, 전세계는 이런 그녀에게 빠져든다. 진행만 놓고 보면 아름다운 사랑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만남은 계약으로 맺어져 있다. 전세계가 제이와 계약을 맺고 남자 친구처럼 행동한다는 조건이다. 계약금은 3억 원, 월 3백만 원의 급여 조건이다. 엄청나다. 보통 사람에게는 비현실적인 계약이지만 현실은 가끔 상상을 뛰어넘는다.


멋진 외모를 가진 전세계는 여자를 유혹해 집도, 차도, 돈도 받는 나쁜 남자다. 그에게 빠진 유부녀가 이혼까지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곳으로 호빠가 생각나는데 구체적인 그의 직업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여자들의 등골을 빨아먹고 내친다는 부분만 나올 뿐이다. 큰 키에 잘 생긴 외모만 부각하고, 사랑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의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들이 보낸 문자가 앞에 잠시 나오지만 이 소설은 그런 이야기가 중심이 아니다. 단지 그의 이전 삶이 나의 눈에 조금 거슬렸을 뿐이다. 멋진 외모로 쉽게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런 남자와 계약을 맺은 시한부 인생의 재벌 2세 이야기라니 너무 익숙한 설정이다.


이전까지 많은 소설은 남자가 부자고, 여자가 가난했다. 영화 <프리티 우먼> 같은 설정이 많았는데 이 소설은 이것을 살짝 바꾸고, 시한부 인생과 순수한 사랑을 섞었다. 돈이 귀한 줄 모르는 제이가 전세계에게 너무 쉽게 돈을 쓰는 장면은 역시 내 취향이 아니다. 이전에 재밌게 읽은 로맨스 소설은 현실적인 일상 속에서 엮이고 꼬이면서 사랑을 만들어 갔는데 이 소설은 거침없이 나아간다. 욕망을 위해서라면 소비의 한도가 없다. 그리고 갈등을 고조시킬 악당도 없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제이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뿐이다. 그녀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는 평범하지만 한 번도 평범한 삶을 살지 않은 그녀에게 특별한 일이다. 소위 말하는 귀족이 평민 체험 같다고 하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앞에 나쁜 말을 잔뜩 썼지만 가독성 좋은 문장과 개성적인 캐릭터와 톡톡 튀는 대사는 확실히 눈길을 끈다. 읽으면서 드라마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오래 전 드라마를 끊었지만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잘 먹히는 것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내 눈에 거슬리는 몇 가지를 제외하면 정말 순수한 사랑 이야기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남녀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었다. 사랑하지만 죽음이 눈 앞에 있기에 조심해야 하는 그 기분과 그 아슬아슬함을 잘 녹였다. 나의 취향은 아니지만 재밌는 부분들이 많다. 과거 평범한 커플의 순애보 사랑과는 분명하게 다른 방식의 사랑이다. 나의 취향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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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50
로버트 두고니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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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20년 전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 트레이시의 모습과 그녀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예상한 것들이 모두 깨졌다. 음모론에 너무 빠져 들어 너무 나간 것이 실수다. 이 책의 마지막을 덮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진실은 잔인하다’는 것이다. 이 잔인한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 당사자가 결정해야 할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쉽게 그 한 발을 내딛지 못한다. 20년 전 동생의 실종 진실을 알고자 하는 형사 트레이시와 어떻게든 이 진실을 숨긴 채 넘어가려는 재판 관계자들의 대결은 멋진 법정극과 함께 계속해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마지막 에필로그를 읽고 난 다음에 남는 여운은 아련함을 남긴다.


시애틀 최초의 여성 강력계 형사 트레이시는 고등학교 화학 교사를 하다 경찰이 되었다. 경찰이 된 이유는 동생 세라가 실종되었는데 마을 보안관 등이 성범죄 전과가 있는 에드먼드 하우스를 살인자로 찍고 이상한 재판을 진행한 것 때문이다. 동생이 실종된 후 세라에 대해 방송된 것을 모두 스크랩했고, 재판 기록을 뒤지면서 이 재판의 허점을 무수히 보았기에 충분히 납득할 수 없었다. 마음 한 곳에서는 혹시 세라가 살아 있을 지 모른다는 희망도 품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다. 그러다 고향 시더 그로브에서 시체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간다. 세라의 유골이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섞어 가면서 트레이시와 세라의 관계를 보여주고, 이 사건을 다룬 재판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려준다. 시체 없이 정황증거만으로 에드먼드는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갇혀 있다. 트레이시가 원하는 진실을 위해서는 에드먼드가 받은 재판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동생의 유해가 발견되고, 장례를 치른다. 이때 어린 시절 친구였던 댄을 만난다. 그의 직업은 변호사다. 그녀는 댄에게 자신이 가진 자료를 주고 검토를 부탁한다. 그리고 살짝 자신의 감정을 흘린다. 상당히 유능한 변호사인 댄은 이 재판의 허점을 많이 발견한다. 이런 이들의 행동이 마을 보안관의 눈에는 거슬린다.


한 소녀의 실종과 허술한 재판 진행은 한 가족을 완전한 파멸로 이끈다. 언니 트레이시는 20년 동안 진실을 찾아 돌아다니고, 실종 당시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간 아버지는 자살했다. 얼마 후 엄마마저 죽었다. 그렇게 원했던 화학 교사도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그만 두었다. 보안관은 그녀가 이 사건을 더 깊이 파고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런 상황들이 의혹의 눈길을 보안관에게 돌리기 딱 좋게 만든다. 음모론의 많은 조건을 갖추었다. 다시 재판을 받기 전 증인 등을 찾아간 그녀에게 그들이 보인 반응은 상황을 더 의심스럽게 한다. 사실이 거짓과 뒤섞이면 사람들은 사실조차 거짓이라고 판단한다. 비극의 발단 중 하나다.


형사 트레이시의 활약보다는 과거 의혹을 파헤치는데 더 집중하고 있다. 시애틀 형사이지만 자신의 사건을 파고들기 보다 시간을 내어 고향에 와서 과거 사건을 다시 검토하는데 더 시간을 쓴다. 여기에 새로운 로맨스를 하나 집어넣고, 눈 폭풍 속에 갇히게 되는 마을을 만든다. 그리고 그녀를 싫어하는 상사가 동생의 유해 발견에 따른 재조사를 불쾌하게 생각하면서 빚어지는 갈등도 같이 보여준다. 아마 다음 시리즈에서는 이 부분들이 좀더 부각되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사가 아닌 현재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이러저리 뛰어다니는 트레이시의 모습을 보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 소설의 백미 중 하나는 법정 장면이다. 존 그리샴의 후계자로 불리기도 한다는데 공감한다. 개인적으로 ‘데이비드 슬로언 시리즈’도 읽어 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이 시리즈의 다음 작품이 더 궁금하다. 시애틀 최초의 여성 강력계 형사의 진한 활약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스릴러 소설을 읽으면서 쓸데없이 의심만 늘어난 나 자신을 발견한다. 물론 작가가 살짝 밀어 넣은 장면들이 그 의심을 부채질했지만 말이다. 후반부 눈 폭풍 속에서 펼쳐진 잔혹한 진실은 긴박감과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로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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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숨 - 혼자하는 숨바꼭질
전건우 외 지음 / 북오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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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흥행에 발 맞춘 기획 소설집이다. <오징어게임>을 보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몇 가지 추억 놀이가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소재로 활용되었다는 것은 안다. 이 앤솔로지도 추억의 놀이들을 배경으로 호러, 공포, 미스터리 등을 풀어낸다. 읽으면서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거나 사라진 놀이들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늘 반가운 작가들과 새로운 작가들의 만나게 되어 신났다. 예전이라면 이런 기획을 좋게 보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런 종류의 출판이 재밌어진 것을 보면 나도 많이 바뀐 모양이다.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은 대박 영화나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는 것 정도랄까!


첫 단편은 반가운 작가 전건우의 <얼음땡>이다. 이 단편에서 추억의 놀이 얼음땡은 솔직히 말해 많이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더 많이 했다. 추억은 잠시 뒤로 하자. 소설 속 주인공 조상우는 나이 마흔에 사채업자에게 쫓긴다. 이 모든 상황에서 달아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목을 매어 죽는 것이다. 목을 매는 순간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30년 전 친구들과 함께 얼음땡 하던 시절로 돌아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게 쫓긴다. 살기 위해 얼음을 외친다. 이 얼음을 풀어주는 누군가가 땡을 외쳐야 한다. 이 게임은 30년 동안 끝나지 않았다. 약간 감상적인 면이 있지만 서늘하고 긴박감 있게 상황이 전개된다.


처음 만나는 작가는 홍정기다. 사실 이 이름보다 네이버 블로거 ‘엽기부족’이 더 친숙하다. 작가로 등단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그가 선택한 놀이는 숨바꼭질이다. 그것도 혼자하는. 이 혼숨은 일본 도시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어로는 ‘히토리카쿠렌보’이다. 작가는 학교 괴담과 학교 폭력을 엮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인형을 이용하 주술은 낯설지만 쫓고 달아나는 과정은 상당히 긴장감 넘친다. 일본 도시전설을 끌고 온 것은 조금 아쉽지만 섬뜩한 살인과 그 이유를 알려주는 마지막 설명은 멋진 반전으로 작용한다. 개인적으로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다.


<야, 놀자!>의 양수련도 반가운 작가다. 그의 바리스타 탐정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이 단편에서 추억의 놀이는 ‘땅 따먹기’다. 이 놀이가 묘 뺏기 놀이로 변주했다. 묘를 밟고 논다는 것이 조금 낯설지만 나중에 그 사연이 나와 뭉클했다. 주인공 혁이 평생 잊지 못하는 소녀가 묘이다. 잠시 논 친구지만 강하게 각인되었다. 40년 전 사천 외할아버지댁에 놀러가서 한동안 즐겁게 보낸 추억을 바탕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그때 기존 놀이를 변형해서 즐겁게 친구들과 놀았던 윤이 입원했다는 현실은 과거의 향수를 더욱 부채질한다. 매끄럽게 전개되면서 중늙은이의 향수를 자극한다. 예상한 존재이지만 예상하지 못한 과거사가 반전처럼 흘러나온다.


다른 앤솔로지에서 만난 작가가 조동신이다. <불망비>는 ‘비석치기’를 소재로 한다. 기본적으로 탐정물이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민속놀이 축제가 벌어지는데 그중 하나가 비석치기다. 결승전에 참가한 정두수가 니코틴 중독으로 죽는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와중에 죽었다. 살인도구는 보이지 않는다. 완전범죄처럼 보인다. 하지만 경찰이 이 놀이에 참가한 두 여자를 용의자로 생각하자 부모는 탐정에게 사건해결을 의뢰한다. 탐정 조대현이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이 콤비 상당히 매력 있다. 정두수의 바람기와 과거의 자살 사건 등이 엮인다. 문장이나 전개가 조금 거친 면이 있다. 트릭을 보면서 시체 검시할 때 그 흔적을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놓친 부분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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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 : 젓가락 괴담 경연
미쓰다 신조 외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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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라는 단어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의미는 ‘빠르다’는 것이었다. 젓가락의 의미하는 단어 ‘저’가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젓가락 쾌가 있다는 것은 몰랐다. 쾌라는 단어가 어떻게 사용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부분이 소설 속에 나와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젓가락하면 ‘저(箸)’가 먼저다. 이 소설 덕분에 한자를 한 자 더 배웠다. 그리고 큰 착각을 하나 했다. 그것은 이 연작단편집 기획을 일본 출판사가 했다고 추측한 것이다. 가장 먼저 등장한 작가 미쓰다 신조 덕분이다. 약간 비겁한 변명이긴 하다. 실제는 대만 출판사에서 기획한 것이다. 미쓰다 신조를 제외하면 대만과 홍콩 작가로 작가들이 구성되어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부제로 ‘젓가락 괴담 경연’이 붙어 있다. 각각의 이야기가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처음에는 읽혔는데 뒤로 넘어가면서 뒤에 등장한 작가들이 앞의 작가들 작품을 자신의 소설 속에 끌고 들어와 묘하게 연결시킨다. 이 연결의 백미는 샤오샹선의 <악어 꿈>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등장한 찬호께이가 앞의 이야기를 연결시키면서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이전 이미지들을 새롭게 만든다. 뛰어난 작가가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가는지, 그 결과물이 어떤 식으로 표현되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면의 이야기를 아주 재밌고 풍부하게 만들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미쓰다 신조의 <젓가락님>은 하나의 도시전설을 학교에 끌고 와 서늘하게 느끼게 만든다. 젓가락님 의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솔직하게 잘 보여준다. 이 의식에 참여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면서 가장 직접적으로 이 주술을 다룬다. 가장 분량이 적다. 왠지 모르게 쉽게 집중해서 읽지 못했는데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난 뒤 서늘했다. 하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팔십사일 동안 쌀밥에 젓가락을 꽂아 기원해야 하고, 아홉 명의 참여자 중 한 명만 살아 남는다. 무시무시한 도시전설이다. 한때 유행했던 분신사바가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다른 방식의 의식이다.


쉐시쓰의 <산호 뼈>도 왠지 모르게 시점을 혼동하면서 재미가 조금 반감되었다. 젓가락님 의식보다 젓가락 그 자체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산호로 만든 비싼 젓가락이고, 이 젓가락에 왕선군이란 조상이 머물고 있다는 설정이다. 도사를 찾아가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신과 귀신에 대한 이론을 풀어내고, 과거 사연을 하나씩 흘리면서 관심을 앞으로 집중시킨다. 이 단편에서는 의식보다 젓가락 자체에 더 비중을 준다. 조상 대대로 물려준 가보란 것과 왕선군에게 소원을 빌면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설정들이 흥미롭게 풀린다. 마지막 부분은 살짝 전형적인 부분이 있다.


예터우쯔의 <저주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는 SNS 등과 엮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한 유튜버가 방송 중에 죽는데 이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것이다. 홍콩에 실재하는 지명을 등장시키고, 하나의 가짜 도시전설이 어떻게 스스로 생명을 얻고, 확산되면서 그 자체로 몸집을 키우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SNS와 유튜버들이 이 죽음을 장사 등에 이용하는데 결코 낯선 모습이 아니다. 이 작품도 내가 처음부터 놓친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살짝 서술 트릭을 쓴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의문이 드는 설정이 나온다. 귀신 신부란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가장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악어 꿈〉을 쓴 샤오샹선은 이 단편에서 앞에 나온 이야기를 아주 멋지게 연결시키고 마무리한다. 젓가락님 전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다른 나라로 전파되면서 변질되었는지 보여준다. 독재정권 시절 있었던 8명의 아이들 실종 사건이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알려주고. 이 사건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대구 개구리 소년 사건’을 떠올렸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이야기 중 하나는 남녀차별이 만들어낸 비극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운명이란 단어가 왜 고대 시대에 더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는지 알게 한다. 이 단편도 서술 트릭을 사용하고, 앞에 등장한 이야기를 이 속에 끌고 들어와 깔끔하게 끝낸다.


미쓰다 신조와 함께 가장 유명한 찬호께이의 <해시노어>는 샤오샹선이 마무리한 부분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다른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앞에 나온 이야기들이 호러, 미스터리 등이었다면 이 소설은 판타지. SF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떻게 보면 황당한 부분이 있지만 읽는 재미는 대단하다. 솔직히 말해 중국 만세를 외치는 듯한 부분으로 읽히는 점이 있어 조금 거슬린다. 나의 오독이라면 사과한다. 홍콩 작가답게 무대를 다시 홍콩으로 옮겨 풀어내면서 살짝 트릭을 사용한다. 맘껏 읽다가 쉽게 당했다. 사건을 해결한 후 길게 풀어낸 부분은 조금 지루한 부분이 있지만 앞에 펼쳐진 이야기의 연장선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작품들은 유명 작가들의 단편이 아니라 아주 낯선 작가들의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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