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일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109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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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인상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 얼어붙은 호수를 생각하면 그 차가움과 서늘함이 먼저 느껴지는데 안전을 먼저 말하다니 어떤 이유일까? 마지막 문장을 읽고 처음엔 그냥 지나갔지만 계속 읽으면서 이 문장을 새롭게 이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의 경험을 통해 얼어붙은 호수와 얼지 않은 호수 밑 상황을 엮으면서 새로운 해석을 만들기 시작했다. 과연 소설 속 호정은 얼어붙은 호수 같이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을까 하는 의문과 얼어붙은 호수가 깨어진 후 겪게 되는 삶의 아픔은 얼마나 강렬할까? 하는 것이다. 과거형의 그 문장은 이야기가 하나씩 풀려날 때마다 호정이 얼마나 차가운 현실 속에서 살았는지 알게 된다.


사실 작가가 모른 채 읽었다. 가독성이 상당히 좋지만 한국 소설을 자주 읽지 않는 요즘을 생각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재밌게 읽은 <아몬드>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유원>을 잇는 성장 소설이란 평을 봤지만 흔한 출판사 광고처럼 다가왔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읽었는데 내 시대와 다른 학생들의 모습에 쉽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들의 삶과 생각들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새로운 학생들의 삶을 보게 되었다. 다른 시절이라고 해도, 그 삶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다르지는 않는다. 호정과 은기, 나래 커플 등을 보면서 풋풋하고 알콩달콩한 사랑의 감정을 재밌게 지켜봤다.


소설을 끌고 나가는 인물은 호정이다. 수시 대신 정시를 노린다고 말하고, 콜드플레이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친한 친구는 나래와 지후이고, 다른 아이들과도 별로 사이가 나쁘지 않다. 평범한 듯한 고등학생의 삶 속에 어느 날 한 전학생이 살짝 들어온다. 바로 은기다. 처음엔 그냥 전학생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 소년은 소녀의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은기는 스마트폰도 없고, 버스 대신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한다. 급식 시간에 특별한 친구와 함께 밥을 먹지 않는데 나래가 그를 자신의 테이블로 이끈 후 함께 먹는다. 이렇게 작은 행위들이 쌓이면서 호정과 은기는 가까워진다. 이때만 해도 이 감정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감정이 드러날 때는 호정의 과거가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호정의 어린 시절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유망한 선수였던 부모는 호정의 임신으로 선수촌을 나와야 했고, 태권도 도장을 차렸고, 중국에 지점을 내면서 집안의 몰락을 가져왔다. 할머니의 노후를 위한 건물까지 팔아야 했고, 삼촌과 고모의 눈치를 받아야 했다. 사업 실패의 대가를 아이가 겪어야 했다. 그리고 여동생이 태어났고, 그 아이는 자신과 다르게 부모의 사랑 속에서 자랐다. 작가는 호정이 이 아이를 질투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이 호정의 마음을 얼어붙은 호수 같이 만들었다. 은기가 다른 사람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것처럼 호정도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고 살아간다. 쉽게 이런 마음이 드러나지 않는다.


은기와 만나고, 헤어지게 되는 과정을 통해 호정의 얼어붙은 호수 같은 마음은 조금씩 금이 간다. 자신이 서투르게 대답한 일과 은기를 둘러싼 소문이 호수의 단단함을 깨트린다. 깨어진 호수 속에서 감정들이 밖으로 분출될 때 그 감정은 제어할 수 없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날이 선 말을 내뱉고,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는다. 보는 사람이 안타깝다. 자책하고, 스스로 상처를 줄 때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이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잊고 살아가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그들에게는 이 혐오와 비난이 한 순간의 놀이였던 모양이다. 작가는 여기에도 살짝 진중한 소년을 한 명 끼워 놓고 사실을 알려준다.


읽다 보면 어딘가에서 본 듯한 학생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소녀가 나래다. 활발하고 부유하고 이벤트에 목숨을 거는 소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듯한 나래다. 하지만 단순히 본 듯한 소녀에 그치지 않고 그 또래 소녀의 연애 모습을 보여준다. 조금 무거울 듯한 이야기에 경쾌함을 덧붙인다. 밝고 유쾌한 그녀를 보면 얼어붙은 호수 위를 지치는 썰메나 스케이트를 보는 것 같다. 지후가 한남이란 표현을 하는데 발끈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재밌다. 상처 입고, 아프고, 그리워하고, 사랑한 소년과 다시 만난 후 그들이 보여준 아주 성숙한 모습은 지금의 나라도 감히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앞으로 얼어붙은 호수를 보면 왠지 이 소설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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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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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지구 종말 전 모습을 다룬다. 소혹성이 충돌해 지구 멸망이란 흔한 설정이다. 지구 종말이란 표현보다 인류의 종말이란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지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최근에 이런 설정을 다룬 소설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사고 실험으로 달이 쪼개져 지구로 떨어져 인류가 멸망하는 설정도 있다. 이런 소설이나 영화의 경우 대부분 인류의 생존이나 보존에 초점을 맞춘다. 소혹성 출동이 예정된 상태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소설도 있다.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야기들이 주로 나오는 이 장르에서 이 소설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남은 기한은 한 달. 이 시간 속에 각자의 사연이 흘러나오고, 가족이 만들어진다.


네 명의 화자를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낸다. 고등학생에서 시작해 야쿠자와 고등학생의 엄마를 지나 인기 초절정의 가수까지 이어진다. 앞의 세 명 이야기는 서로 연관성이 있지만 마지막 Loco는 조금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인류의 멸망 이전 마지막 무대를 펼치면서 멋지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읽다 보면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누군가의 죽음에 무뎌진 사람들의 감각이 나온다. 도덕과 윤리보다는 생존(?)이 우선이다. 죽을 날을 받아둔 상태에서 뺏고 빼앗고 죽이는 상황이 나오는데 인간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문명이 얼마나 허약한 기초를 가졌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이 문명이 마지막 순간에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첫 이야기의 주인공 에나 유키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최고 미녀 후지모리를 짝사랑하고 있다. 그녀를 좋아하게 된 사연이 나오는데 이 일이 다시 그녀를 짝사랑하게 만든다. 후지모리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 Loco의 도쿄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을 돕겠다고 몰래 따라간다. 사회 기반 시설 일부만 운영되고, 폭력과 약탈과 강간 등이 판치는 현실에서 그녀의 기사가 되고 싶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깡패 메지카라 신지다. 싸움에 탁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가정 폭력에 휘둘리면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고, 자신의 감정도 다스리지 못한다. 머리 좋은 야쿠자의 도구가 될 뿐이다. 소혹성 충돌이 발표되기 전 받은 마지막 임무는 선배의 걸림돌이 될 야쿠자 중간 보스를 죽이는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에나 유키의 엄마다. 그녀가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간략하게 나오고, 어떤 마음으로 에나를 키웠는지 들려준다. 자신과 에나의 생부와 다른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나오고, 삶이 얼마나 무겁고 힘든 지도 표현된다. 하지만 다시 이룬 가정과 Loco의 마지막 공연을 보러 가기 전까지 일상은 그녀가 오랫동안 꿈꾸었던 것이다. 마지막 장에 나온 Loco 이야기는 실패와 성공을 간략하게 풀어내면서 거대한 침몰과 멸망의 순간을 같이 놓아둔다. 성공의 가도를 달릴 때 몰랐던, 혹은 무시했던 감정들이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는 순간 밖으로 표출된다. 외롭고, 두렵고, 거식증으로 고생하는 그녀의 비참한 삶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 읽고 난 후 만약 나에게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하고 묻게 된다. 일상을 이어가려고 하겠지만 아마 힘들 것이다. 사회 기반 시설을 유지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간략하게 나오는데 작가는 이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로 다른 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단지 그런 이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방송이 중단된 상태에서 사람들이 정보를 업데이트 하는 방법은 SNS 같은 것밖에 없다. 확정된 멸망 아래 절망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은 다른 소설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작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고, 행복한 순간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같이 보여준다. 진한 여운과 감동을 주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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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승총을 가진 사나이 - 조선을 뒤흔든 예언서, <귀경잡록>이야기
박해로 지음 / 북오션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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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경잡록>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 시리즈 첫 권 <전율의 환각>을 아직 읽지 못했지만 전래 소설을 비튼 <신 전래특급>은 읽었다. 이 시리즈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기서가 바로 ‘귀경잡록’이다. 조선 선비 탁정암이 약초를 먹고 신비한 경험을 통해 얻은 정보를 기술한 책이다. 재밌는 부분은 이 책이 세종 시대에 나왔다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이 건국신화를 부정하고 백성들을 미혹시킨다고 금서로 지정되었다. 금서로 지정되었지만 이 책을 몰래 읽는 사람들이 있다. 몰래 이 책을 읽고 연구하는 ‘토린결’이란 비밀 모임까지 생겼다. 이 시리즈를 읽다 보면 계속해서 만나게 될 이름들 중 하나다.


표제작 <화승총을 가진 사나이>는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괴현상을 다룬다. 이들이 사라지기 전 육십오능음양군자(六十五能陰陽君子)를 찬양하고 외친다. 이들은 모두 건장한 남녀다. 자식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돈 있는 부모가 이런저런 방편을 사용하지만 그들은 모두 갑자기 사라졌다. 그런데 이 사건을 수사하던 조사관이 뇌성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 총을 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귀경잡록에 나오는 원린자의 무기가 분명하다. 보통 이런 총이 나오면 사람이 소멸한다고 생각하는데 작가는 이 총에 맞은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설정한다.


존비(尊卑)라는 이름의 좀비도 등장한다. 귀갑자란 존재가 죽은 자를 부린다. 존비가 섭주에 등장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 소식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좀비와 닮았다. 작가는 단순히 좀비물로 이야기를 만들지 않고, 이 속에 인간의 욕심을 집어넣어 좀더 복잡하게 만든다. 건장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존비들이 얼마나 강력한 군대가 되는지 보여줄 때 이것이 잘 드러난다.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포도청 조사관들의 노력과 열정도 살짝 흘러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작가는 또 한 발 나아가 인간의 욕심과 의심을 풀어낸다. 공포와 두려움이 뒤섞여 있다.


<암행어사>는 토린결에 참여한 사람 중 한 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섭주 현령 이응수는 모임에서 다른 참여자와 싸우다 자신의 정체를 살짝 드러내었다. 그가 왜 이런 위험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대목은 뒤에 가면 자세하게 나온다. 모임은 이 이후 해체되었지만 조정은 이 모임에 참여한 사람을 잡아낸다. 이 사실을 안 가형이 그에게 암행어사에 대한 언질을 주면서 조심시킨다. 이응수는 암행어사가 누구인지 자신의 조직을 통해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암행어사가 토린결 모임에서 자신과 싸웠던 인물이다. 잘못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이 박살날 수도 있다.


작가는 여기서 또 귀경잡록 속 존비 이야기를 풀어낸다.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구성 속에 과거는 귀경잡록과 관련된 괴사건들을 다루고, 현재는 이 귀경잡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서로의 욕망을 풀어놓는다. 서로 다른 욕망이 충돌하고, 두려움은 오해와 비틀린 행동으로 표출된다. 섬세하게 상황과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는데 이 거칠고 옛 소설을 읽는 듯한 분위기 연출은 읽다 보면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이 소설의 백미는 마지막에 존비들과 함께 외치는 ‘암행어사 출도요!’이다. 그리고 이응수가 탐한 양기를 솟게 하는 약은 현재의 비아그라를 떠올리게 한다. 다른 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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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황무지
S. A. 코스비 지음, 윤미선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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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범죄문학상 5관왕이다. 화려한 수상 이력인데 다루고 있는 소재처럼 대단한 속도감을 가지고 있다. 늦은 밤 마지막 몇 십 쪽을 다음 날로 넘기려고 하다가 그냥 읽고 말았다. 가끔 이런 책들을 만나면 다음 날 일정이 깨어진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알고 있던 부분이지만 실제 체감하는 것은 다르다. 보러가드가 달려나가는 속도와 화려한 운전 실력은 작가의 설명과 묘사를 통해 그대로 나에게 전달된다. 거침없고, 잔혹하고, 인정사정없다. 범죄인들을 다루고 있기에 크게 거부감이 생기지 않지만 어떤 대목에서는 약간의 반발감도 있다. 전적으로 주인공 손을 들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뭐 같은 현실은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보러가드는 자동차 수리센터를 운영한다. 하지만 그가 가장 잘 하는 일은 사설 레이싱과 범죄자를 태우고 달아나는 것이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그는 멋진 레이싱을 보여준다. 그의 성격을 알려주는 잔인한 행동도 같이 보여준다. 이렇게 그가 사설 경주에 온 이유는 자동차 수리센터 운영이 힘들기 때문이다. 백인이 운영하는 경쟁업체가 생기면서 그의 고객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돈이 들어갈 곳은 많고, 나올 곳은 점점 메말라 가는 와중에 이전에 그를 속인 적 있는 로니가 그를 찾아온다. 보석상을 털자는 계획을 가지고 말이다. 로니의 애인 제니가 내부자 정보를 알려준 것이다. 보통 때라면 당연히 그를 내쫓았겠지만 지금은 돈이 급하다. 이 절도 행위에 참여한다.


정말 뛰어난 드라이버인 그는 보석상을 보고 도주로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때 작은 에피소드도 생긴다. 어떤 식으로 도주할 지 궁금했는데 사건 당일 그가 보여준 곡예 운전은 영상으로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멋지다. 아마 영상이라면 더 화려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몫을 잘 챙긴다고 생각한 보러가드를 공범인 로니는 또 속인다. 실제 보석상 금고에는 많은 현찰과 그가 말한 것 이상의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속인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 보석상이 몰래 숨겨둔 다이아몬드의 주인이 문제다. 갱들이 자신들의 돈세탁을 위해 놓아둔 것인데 이런 사실을 모른 채 훔친 것이다. 이야기는 이제 더 잔혹하고 빠르게 펼쳐진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미국 남부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놀라운 운전 실력이 아버지의 유산이란 사실과 그가 몰고 다니는 차 더스터도 아버지가 남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해도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흑인이 갈 곳을 많지 않다. 그가 소년 시절 낳은 딸은 또 어떤가. 그가 소년원에 다녀오게 된 사연을 말할 때 현재 그가 보여준 잔인한 폭력성의 기원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보러가드는 이것을 몽타주 가문의 유전적 특성이라고 말하지만 환경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유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상황이 생기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철저하게 속도감과 재미를 추구한다. 이 사이를 채우는 것은 보러가드가 느끼는 두 개의 삶이다. 한 가정의 아버지로 사는 삶과 폭주하는 차를 몰면서 스릴을 즐기는 버그의 삶이다. 그가 살아 있다고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순간은 아쉽게도 버그의 삶이다. 물론 바라는 삶은 좋은 아버지이자 남편이다. 이런 삶을 흔드는 것이 돈이다. 환경이다. 그의 아내 키아도 버그의 삶을 알고 있다. 불안해하면서도 현실 때문에 멈추게 하지를 못한다. 어쩌면 버그가 원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두 삶은 결국 충돌할 수밖에 없고, 처절한 복수의 총구는 이렇게 불을 품는다. 독자는 이 살육에 몰입해 열광한다. 거침없이 펼쳐지는 마지막 부분은 정말 눈을 뗄 수가 없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것이 벌써 너무 길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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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강지영 외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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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라인업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들이 대부분 참여한 미스터리 단편집이다. 이 단편집의 무대는 학교다.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도 나지 않는 공간이지만 선생을 하는 친구 덕분에 가끔 학교와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 때와 많이 달라진 현실 이야기를 듣지만 아직 그 변화가 실감나지 않는 부분도 많다. 가장 크게 변화를 절감하는 부분은 쓰는 단어들이다. 줄임말과 속어 등은 너무 낯설다. 그리고 무심코 보고 지나간 부분을 짚고 넘어가는 단편들도 있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이 부분이 이 앤솔로지의 매력이다.


<어느날 개들이>는 강지영의 단편이다. 예전에 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개는 등장하지 않는다. 학교 수행평가 주제가 ‘어느날 개들이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이란 가정이다. 풋풋한 청춘들의 일상과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나올 것이란 기대를 빠르게 접게 만들고, 서늘한 이야기가 바로 흘러나온다. 읽다 보면 강지영의 느낌이 확 다가오지만 단편이란 아쉬움을 더 느낀다. 정해연의 <넌 몰라>는 마지막 쪽을 덮을 때 제목의 의미가 강하게 다가온다. 서울대 음대를 목표로 하는 화자가 유튜버로 뜬 친구 배도혁을 질투하면서 생긴 일을 다룬다. 질투의 감정을 부인하고,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화자가 사건의 이면을 깨닫는 순간 반전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늘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하는 모습을 잘 그려내었다.


조동신의 <참수>는 섬뜩한 제목이지만 실제 사람의 목을 치지는 않는다. 그 대상은 학교에 있는 단군 동상이다. 쉽게 생각하면 광신자의 행위일 것 같지만 목을 자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 선생이 이 사건을 전에 살인사건을 해결한 적이 있다는 학생에게 의뢰한다. 의뢰비는 자신의 사촌여동생 소개다. 학생 탐정의 활약은 현장 조사와 추리를 통해 빛을 발한다. 그런데 어떤 소설에서 이 학생이 살인사건을 해결했을까? 궁금하다. <선생님은 술래>의 작가 최동완은 아주 낯설다. 이력을 검색하면 이 책이 처음이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것은 학교의 흡연 문제다. 흡연 학생을 적발하려는 노력을 다루는데 아주 현실적으로 문제에 다가간다. 학교 내 분위기와 학생과 선생의 갈등 등도 잘 다루고 있다. 트릭만 놓고 보면 뛰어난 부분이 없지만 이 트릭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과 과정이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정명섭의 <ㄷㅇ의 비밀>은 초성만 보내 놓고 사라진 친구를 찾는 내용이다. 작가 특유의 가독성 있는 매끄러운 진행과 새로운 문제를 던져 놓은 부분은 단편이란 공간에서 잘 어울린다. 그리고 마지막에 살짝 풀어놓은 ‘방과후 탐정단’은 후속작을 기대하게 한다. 아이돌 산업이 만들어낸 폐해 중 하나를 다루는데 솔직히 몰랐던 내용이다. 물론 아이돌의 앨범이나 굿즈가 어떤 식으로 팔리는지는 알고 있다. 회사 직원이 자기 딸 학교 전교생에게 강다니엘 앨범을 돌린 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이면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윤자영의 <학교가 공정하다는 착각>이란 제목을 보면서 내가 과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살면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사회인 학교가 얼마나 불공정한지는 수없이 경험했다. 내때보다 더 심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성적 바꾸치기는 처음 본다. 갑을의 대립에서 을의 반격과 새로운 갑의 등장을 알리는 마지막은 서늘하고 씁쓸하다.


이 여섯 편의 단편에서 실제 살인을 다룬 작품은 한 편이고, 나머지는 모두 학교 내의 수많은 문제들을 다룬다. 질투, 학업 스트레스, 흡연과 교권, 학생을 노린 어른들의 탐욕, 높은 내신 등급 등이다. 누구나 읽다 보면 자신의 학창 시절과 비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마주할 것이고, 어떤 대목에서는 ‘이런 일도 있어?’ 하고 한탄하는 대목도 나올 것이다. 그리고 예전 소설에서 자주 본 교권만 내세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작가들이 섬세하게 신경 쓴 부분이 보인다. 몇몇 작품에서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장면을 집어넣었는데 살짝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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