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뭔지 오래돼서 잊었다 베트남 당대 대표 시선집 1
응웬 꾸앙 티에우 외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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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아시아에서 낸 베트남 당대 대표 시선집 1권이다. 개인적으로 올해 처음 읽는 시집인데 번역 시집이다. 베트남 시인 20명의 시 3편씩 균등하게 담고 있다. 이상하게 번역시는 나에게 더 어렵다. 유명한 시인들의 시집을 꾸역꾸역 읽는 적도 있지만 그 시들이 가슴에 와 닿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괜한 나의 트집이 이유인 경우도 있고,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다. 솔직히 말해 이 시집의 일부는 내 생각에 의하면 어색하게 다가왔다. 이 부분은 내가 베트남어 알고 모르고 문제가 아니라 나의 갇힌 사고가 만들어낸 이미지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문장의 마무리가 눈에 거슬렸다. 번역자가 이런 선택을 할 때 고민했을 것이 뻔한데 말이다.


44년생부터 88년생까지 다양한 연령의 시인들이 등장한다. 시집을 읽을 때 의문을 품은 것 하나가 있다. 바로 70년대생 시인들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 시기에 시인들이 완벽히 소멸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베트남 당대 대표 시선집 2권에는 이 당시 출생자들의 시가 많이 나올까 기대해본다. 베트남 전쟁 마지막에 태어나 뒤바뀐 조국의 상황에서 삶을 산 그들이다. 이 경험이 그들의 시에 어떻게 표현되고 다루어졌을지 궁금하다.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세대별로 감성이 확 갈라지는 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에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나의 둔한 감각을 탓할 뿐이다.


60편의 시 중에서 나의 감성과 맞는 시보다 낯선 느낌의 시들이 더 많다. 가볍게 읽고 지나가면서 놓친 감성은 오롯이 나의 잘못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몇 편을 읽으니 그때 놓친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이 시집에서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온 시는 옮긴이의 말에 나온 시들이다. 흐우 틴의 “그대와 멀어지니 / 달도 외롭고 / 해도 외롭다 / 바다는 그래도 자신의 깊이와 넓이에 기대보는데 / 돛단배 잠시 사라지면 이내 외롭다”(<바다에서 쓴 시>의 부분) 같은 시다. 이런 감성을 다른 시를 읽으면서도 분명히 느꼈을 텐데 한 시인의 시만 다루지 않다 보니 놓친 부분이 많다. 다행이라면 이 글을 쓰면서 읽은 시들이 조금씩 가슴 속에 스며들고 있다는 것이다.


쩐 안 타이의 <오후마다>를 읽으면서 조용하고, 한가롭고, 침묵에 젖고, 느긋한 시간을 보낸 후 어둠이 호수의 표면을 덮는 시들을 보면서 한적한 고독을 느낀다. 쩐 뚜언의 <손가락 마술>을 첫 단락을 읽고 결합을 떠올렸다면 표제작인 <사는 게 뭔지 오래돼서 잊었다>의 마지막 행 “졸음이 쏟아지는 오후 사람이 피곤에 절었다”란 시어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는 앞에서 “늙은 나무뿌리 베개를 베고 조용히 죽고 싶다”고 말했다. 가끔 삺의 피곤과 힘듦이 몰려올 때 조용히 내뱉는 말들이다. 피곤 속에 느낀 잠깐의 안락이 그 속에 담겨 있지 않을까?


시집 속에 담긴 시들에서 생각보다 베트남 전쟁의 풍경을 다룬 시를 잘 발견하지 못했다. 나의 오독이 있거나 편집 과정에서 의도적인 배제처럼 보인다. 쩐 꾸앙 다오의 <벙어리 폭탄>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폭탄에 익숙했다”는 마을 사람과 기폭 장치를 제거한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 있다.  홍 탄 꾸앙은 <전쟁의 마지막 밤>에서 “조국사랑에 대해 큰소리로 말하지 마라 / 오늘 밤만큼은 / 나는 그저 바란다 / 조용히  / 그리워하고 싶다 / 너를…..” 을 외치며 낭만적인 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쩐 꾸앙 꾸이의 <아침 역>에서 “새벽마다 기차역 플랫폼 / 현실을 향해 경적을 울린다”고 했을 때 잠시 추억의 기차역 장면이 떠올랐다.


이 시집에 실린 수많은 시들은 그들의 감성을 울린 것들이다. 어떤 대목에서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아마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그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일 것이다. 소수 민족 출신 시인의 시는 더욱 그랬다. 그들의 문화를 계속 이어가려는 모습과 자본주의화 되면서 하나로 묶여가는 문화를 떠올리면 그들을 더 응원하고 싶다. 읽다가 “슬픈 두리안 향기”(부 홍 <억울함을 풀어주는 새의 말>)라는 시어를 읽고 그 냄새와 너무 어울리지 않아 한참 고민했던 것이 떠오른다. 작년에도 시집을 생각보다 많이 읽지 못했는데 이 시집을 시작으로 올해는 목표 달성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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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의 수리공
경민선 지음 / 마카롱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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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다.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장편 우수상을 수상하지 못했다면 뒤늦게 발견했을 작가다. 새로운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면 인터넷 서점 검색을 하는데 이 작가의 장편은 현재 이 소설이 유일하다. 단편으로 안전가옥 앤솔로지와 내러티브온의 드라마편에 참여한 이력이 전부다. 물론 그 이전에 공모전에서 수상한 이력이 있는데 현재 출간된 책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이번 작품이 영상화되면 더 많이 출간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야기를 만들고 풀어가는 과정이 상당히 뛰어나고, 읽다 보면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관심이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로 많이 넘어갔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가상현실의 삶도 이어갈 수 없지만 점점 더 그쪽으로 사람들의 지출이 늘어난다. 이 소설의 작가가 주목한 것은 메타버스 같은 가상현실인데 기존과 다른 설정이다. 뉴랜드란 사후세계가 있는데 이 곳은 인간의 뇌를 대체현실과 연결한 세계다. 사람이 죽으면 뇌의 일부만 서브와 연결해 가상현실에서 영원히 살게 한다. 다른 소설들이 인간의 뇌 정보 등을 업로드해서 인격을 유지한 것과 달리 이 소설은 뇌의 한 부분을 연결해야만 한다. 기존 소설들의 방식이 더 앞선 기술이지만 과도기 정도로 생각한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뉴랜드에 입주하려면 정해진 보험료를 모두 납부해야 한다. 영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아주 높은 보험료를 계속해서 낸다. 먼저 가족들을 뉴랜드에 보낸 사람들은 현실에서 그 보험료를 계속 납부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소모한다. 이들을 ‘부양 유령’이라고 부른다. 소설 속 주인공 지석도 이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병으로 죽은 전 여친 희진과 앞으로 입주해야 될 지 모르는 엄마와 자신을 위해 투잡을 하면서 보험료를 납부한다. 본업은 대체현실 수리 기사고, 부업으로 친구와 게임 속 체커로 활약하면서 보험료를 충당한다. 이런 평범하지만 암담한 현실을 살아가는 그에게 한 의뢰가 들어온다. 사후세계에 들어가서 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요청이다.


뉴랜드는 전 세계적인 시스템이다. 국가와 사기업이 결합해 운영하고 있고, 엄청난 보안 시스템을 갖추었다. 외부에서 침투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의뢰인은 뉴랜드 서버에 접촉할 수 있는 내부자다. 높은 수수료를 받고 몰래 들어간 뉴랜드의 모습은 현실의 재현으로 가득하다. 의뢰인이 요청한 곳에 가서 확인하니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뭔가 이상하다. 그는 여친 희진도 확인해보고 싶다. 다시 불법으로 접속해 확인해보니 희진의 집도, 희진도 없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대체현실 속에서 그는 감옥에 갇히고, 무시무시한 살인자를 만나고 접속이 끊어져 그곳을 벗어난다. 그리고 뉴랜드에 대한 의혹을 품고. 그 비밀을 파헤치려고 한다. 물론 거창한 계획이 목적은 아니다. 희진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대학 시절 교수 오성학을 만나게 된 것은 그가 초창기 뉴랜드 사업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설정한 세계 속에서 뉴랜드의 입주자는 하나의 데이터일 뿐이다. 가만히 있는 데이터는 작은 용량을 차지하지만 움직이게 되면 서버 등에 무리를 준다. 서버를 증설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지만 이것은 적지 않은 비용을 불러온다. 여기서 완납자와 미납자 사이의 차별이 생긴다. 최소한의 데이터를 발생시켜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뉴랜드에서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은 이것과 관계 있다. 현실을 가상세계에 재현했지만 이전의 삶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 이 뉴랜드를 보면서 과연 이것이 인류가 머물고 싶은 사후세계가 맞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소설대로라면 나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 현실의 재현이라면 기득권이나 부자에게 더 유리한 세계일 뿐이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게 하기엔 비용이 너무 부담스러운 곳이다.


대체세계를 다루면서 액션을 넣어 눈요기 거리를 만들었고, 생각하지 못하 참혹한 현실을 집어넣어 망자의 부패를 불러온 부작용을 보여준다. 현실의 죽음 이후 영생을 살 수 있다는 욕망은 돈이란 가치 앞에 너무 쉽게 흔들리고, 보장된 권리를 되찾기 위한 연대는 참혹한 아름다움으로 표현된다. 영상화되면 가장 사람들의 눈길을 끌 체커들의 초능력은 액션과 더불어 최고의 눈요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후세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면 얼마나 많은 비용이 필요한지에 대한 현실적 문제도 떠올릴 것이다. 지금 머릿속은 거의 대부분 인류가 디지털로 업데이트된 세계를 그려낸 소설의 한 장면과 이어진다. 재밌고. 잘 읽히고.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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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 - SF와 로맨스, 그리고 사회파 미스터리의 종합소설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정지혜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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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 인간을 소재로 이야기의 탑을 겹겹이 쌓아올린 소설이다. 냉동 인간을 해동하는 기술이 보편화된 미래 사회를 바탕으로 냉동 인간, 냉동 인간의 가족, 냉동 인간 기업 관계자 등의 사연을 하나씩 풀어내면서 천천히 엮어 간다. 처음 이 책을 선택할 때 예상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풀어나가 혼란스러운 점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도달하면 앞에 쌓아두고, 엮어 둔 이야기들이 하나씩 연결되면서 서로의 관계가 이어진다. 앞에 나온 사연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이름을 잊는다면 그 연결 고리를 찾아 관계도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해법이다. 이렇게 관계가 복잡하게 엮이고 꼬인 것은 냉동 인간의 해동 시점과 그들의 과거 때문이다.


규선이 B-17903의 해동에 대한 정보를 얻을 때만 해도 낭만적인 사연이 펼쳐질 것 같았다. B-17903은 무려 50년 동안 냉동되어 있었다. 그 시간을 정한 이유는 그가 꾼 꿈 때문이다. 그는 예지몽을 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꿈은 한 장면을 보여줄 뿐 그 장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없다. 그 장면은 맞지만 왜 그런 상황이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예지몽은 B-17903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꿈의 대상이 규선과 결혼할 예정인 가은이란 것은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규선, B-17903, 가은 등이 엮이고 꼬이면서 상황을 만들고 긴장감을 고조시키지만 이 소설은 그런 방식과 다른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규선은 냉동 인간 회사에서 일하지만 냉동 인간에 호의적이지 않다. 회사 안에서 대인 관계가 원만한 사람도 아니다. 가은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모든 일을 맡겨두고 있다. 8년을 만났지만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현재의 시간 속에서 미래의 삶을 꿈꾸는 그에게 결혼은 또 다른 불안감을 준다. 신혼집을 사면서 생기는 대출과 혹시 지금은 각광받고 있는 사업이 사양 산업으로 바뀌어 일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집 계약을 위해 그녀에게 연락을 했지만 혼자 하라고 말한다. 가은이 이렇게 반응한 이유는 그녀가 냉동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그녀가 살고 있는 집도 같이 해동된 사람이 싼 가격에 세를 주었기에 가능했다. 작가는 이 주부의 사연보다 주부의 쌍둥이 남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려준다. 엄마 없이 자랐다가 갑자기 나타난 엄마를 대하게 된 남매의 반응 말이다.


쌍둥이 남매처럼 비교적 쉽게 그 관계를 알게 되는 사람도 나오지만 갑자기 동떨어진 사람의 이야기도 나온다. 은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냉동 인간 관련 회사의 비리를 파헤치는데 취재 과정에서 궤변과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그만 둔다. 이 과정에 무속인이 끼어 있는데 자식이 생길 것이란 예언을 듣는다. 은태 부부는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길 바랐다. 갑자기 튀어나온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연결 고리가 이어진다. 냉동 인간을 가족으로 둔 채 살아간 사람들이 겪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와 다른 지점을 이 이야기에서 다루는데 궤변과 이기심에 너무 쉽게 무너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이런 문제들을 좀더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면 혹시 앞으로 오게 될 미래가 더욱 암울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사람들의 사연을 한 명씩 던져 놓는다. 그 당시의 감정을 각 인물의 시점에서 풀어내는데 이 부분이 사실을 교묘하게 가리는 역할을 한다. 이 소설 속에 벌어지는 두 개의 큰 사건은 모두 가은과 이어져 있다. 가은이 왜 냉동 인간이 되었는지, 해동된 후 만난 규선에게 자신의 냉동 인간 사실을 알리지 못했는지 알려주는 시점도 가장 나중에 나온다. 그리고 인간의 뒤틀린 욕망이 빚어낸 비극은 그 당시 시간을 벗어났다고 해도 그 대상이 살아 있는 동안은, 그 자신이 그 대상을 극복할 수 없다면 현재진행형임을 알려준다. 읽다 보면 답답함도 느낀다. 망해버린 이번 생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가 변하지 않은 사회 속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모습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이 소설에서 SF요소라면 냉동 인간을 해동해서 미래에 데려다 놓은 것 이외는 없다. 과학 발전의 풍경을 그려내는 장면도 보이지 않는다. 엄청난 시간이 흘렀지만 전철로 출퇴근을 하고, 배달 직원을 고용해 음식을 배달한다. 부동산 문제는 여전히 삶을 짓누르고, 실직의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기대한 미래의 이미지가 너무 부족하다. 하지만 냉동 인간을 둘러싸고 일어날 수 있는 일들과 사연을 엮고 꼬면서 가독성을 유지한 부분에서는 이 작가의 다음 소설을 기대하게 한다. 아직 이 소설 속 이야기를 모두 끝내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는데 후속작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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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탈출 구역
김동식 외 지음 / 책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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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주제로 유명 작가들이 쓴 청소년 SF 단편집이다. <일상 감시 구역>의 후속 작품이다. 전작과 동일한 작가들이 참여했다. 같은 작가들이 이런 식으로 참여한 것이 흔한 것 같지는 않다. 전작과 다른 점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김동식의 단편이 두 편이란 것 정도다. 물론 내용은 차이가 있다. 전작이 ‘감시’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에는 ‘탈출’이다. 그리고 이번 단편집은 이전과 다른 작가들에 더 눈길이 갔다. 이전에 투박하다고 생각한 김동식과 전작을 찾아보게 만드는 박애진 등이다. 김이환의 소설은 미스터리하게 풀어가면서 재미를 유지했다면 정명섭은 조금 아쉬운 전개를 보여준다.


김동식의 단편을 읽고 난 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이전까지 읽었던 작품과 너무 다른 매끄러움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문장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이전의 투박함이 사라졌다. 물론 재밌는 상상력은 그대로 유지된다. <하늘 문 너머>에서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나타난 외계인이 이 세상은 가짜라고 주장하고, 그 주장을 따라 하늘 문 너머로 사라진 이야기를 펼친다.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었다가 보름만에 깨어난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삶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해석에 따라 반전으로, 혹은 판타지로 이해할 수도 있다.


<로봇 교장>은 학교장으로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온 후에 벌어진 일을 다룬다. 로봇을 교장으로 보낸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교칙이 너무 이상하다. 당연히 이 교칙에 의문을 품은 학생들이 작은 계획을 꾸민다. 기발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박애진의 <우주를 건너온 사랑>은 어떻게 보면 전작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다. 전작이 미스터리 요소가 강했다면 이번에는 차별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시간의 상대성을 이용한 우주여행과 홀로그램 가수 이야기는 뻔하지만 흥미롭다. 소설의 주인공 중 하나인 소피아를 전작의 무대였던 곳 출신의 클론으로 설정한 것은 작가가 꾸준히 파고들 주제인 것 같다. 지구 출신 채림의 나이를 시간적 나이와 신체적 나이로 나눈 부분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풀어내는 다양한 소재와 마지막 마무리도 이전보다 월등히 좋아졌다.


김이환의 <구름이는 어디로 갔나>는 초대형 유람 우주선을 관리하는 슈퍼 인공지능 하드리아누스가 시스템 점검하던 중 연락이 두절된 로봇 구름이를 찾는 과정을 다룬다. 유람 우주선 곳곳에 존재하는 로봇들의 유쾌한 자기 소개와 애칭이 지루한 듯하지만 의미심장하다. 이 로봇들이 하는 일과 그 후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인간 역사의 축소판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구름이를 찾아가는 과정은 실종자를 찾는 경찰의 조사처럼 하나씩 하나씩 나아간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넘어가면서 이루어지는 인터뷰는 처음에는 유쾌하지만 모두 읽고 난 후에는 씁쓸함이 남는다. 같은 농담을 반복하는 장면은 살짝 웃게 한다. 감상적인 결말이지만 독자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소설이다.


정명섭의 <아라온의 대모험>은 조금 아쉬운 소설이다. 지난 단편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준 작가인데 이번에는 너무 평범한 전개와 마무리를 보여주었다.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진 쌍둥이 남매 아라와 라온과 지구온난화를 엮었는데 앞으로 펼쳐질 전개가 너무 눈에 들어온다. 몇몇 대목에서 지구 온난화가 불러올 위험을 보여주지만 이야기의 깊이나 기발한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작가가 아주 가까운 미래인 2047년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은 천천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에 알려주는 각 나라의 이기적인 결정은 씁쓸한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감시와 탈출을 다룬 다음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혹시 생활일까? 아니면 다른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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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리그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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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메이드 인 강남>에서 노골적으로 상류층의 욕망을 그려낸 작가가 이번엔 서초동 검찰로 그 시선을 돌렸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상황들을 보면 현 정권의 검찰 개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들만의 리그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소설을 그 부분만 확대해서 보여준다. 읽다 보면 몇몇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지만 특별하게 한정할 수는 없다. 사실에 기반을 둔 채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해 서로 다른 욕망을 품은 검찰의 현실을 간결하지만 강렬하게 표현했다이 사모펀드 사건을 다루면서도 언론이 검찰총장의 조사는 충격적이고 신기하게 다루지만 “피해자들의 사연에 대해서 일언반구, 가타부타 언급도 없었다”는 대목은 왜 이런 사건들이 그렇게 쉽게 잊혀지는지 알려준다. 읽다 보면 씁쓸함과 분노와 작은 통쾌함이 교차한다.


한국 사회의 상위층은 학연, 지연 등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소설 속 주인공 백동수 검사는 소위 말하는 SKY출신이 아니다. 지방 검사 생활을 전전하다 2년 전 서초동으로 발령이 났다. 그에게 부장검사 한동현이 다가온다. 코스닥 상장 바이오 기업 대표 박철균의 자살 사건을 검창총장 김병민과 엮기 위해서다. 그를 선택한 이유는 지방을 전전한 이력과 아직 권력의 손길을 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읽다 보면 속내가 다른 쪽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적을 위해 휘두르는 칼로 잠시 사용하고, 용도가 다 하면 폐기하겠다는 의중 말이다. 절박하게 공부해서 성공을 바라는 백동수에게 한동현의 제안은 솔깃한 것이다. 현직 검찰총장을 기소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모펀드 모디빅을 운영하던 박철균의 자살은 분명한 법의학적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적 타살의 가능성은 있다. 그를 죽음으로 내몬 배후로 김병민 검찰총장을 엮으려고 한다. 한동현은 백동수에게 901호를 내어주고, 백지 소장을 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국 검찰에 대한 반감이 더 높아진 것은 바로 이런 대목들 때문이다. <검사내전>으로 검사들의 삶을 아주 멋지게 그려낸 전직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 고발사주 의혹을 받아 한 동안 정국이 어수선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소설이 소설로만 읽히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작가는 아주 묵직하고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사건들을 이 소설 속에 간단히 욱여넣었지만 세부적인 곳까지 파고들지 않는다. 권력의 다툼, 야합, 살고자 하는 반격 등을 다루면서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전작에서도 하나의 사건으로 간결하게 다루면서 재미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도 그런 부분이 있다.


이 소설에서 백동수가 반격을 위해 사용한 것이 법조 기자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반전을 시도한다. 높은 곳에 계신 분들이 서로 야합하는 사이 완전히 팽 당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재밌는 것은 그 기자를 연결해준 것도 한동현이란 것이다. 수사를 하면서 정치적 목적 이외는 모두 버렸던 것을 다시 모았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그가 지방 검사 생활을 하면서 빡세게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동 리그 검사(특수부)들이 얼마나 널널하게 일하는 지 알려주는 대목은 승자독식 사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검사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 지는 곳곳에 검찰 지상주의가 곳곳에 보이는 <검사내전>에 잘 나와 있다. 비판적으로 읽는다면 검사 생활을 엿보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검찰개혁의 기치를 내세운 두 세력이 나온다. 김병민과 한동현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서로 칼을 겨룬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으로 만나고, 내일은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정의를 외쳐야 하는 검찰이 욕망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둘은 보면 검찰개혁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단지 그들을 정적을 해치우는 칼로 쓰려고 하는 권력자가 더 돋보인다. 다시 앞에 나온 사모펀드의 피해자보다 기소된 검찰총장에 초점을 맞춘 언론 이야기로 돌아가게 된다. 언론인보다 기레기란 단어에 더 익숙해진 한국 언론을 생각하면 더 암담해 보인다. 물론 검찰처럼 모든 기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늘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소수가 전체 물을 흐리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서초동이 상징하는 의미와 한국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재밌지만 씁쓸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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