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평전 - 호랑이를 탄 군주
박현모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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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태종 이방원은 과격하고 난폭한 군주로 기억하고 있었다.

정몽주나 동생 이방간 등을 죽인 사건 들이 한몫했다.

이런 생각이 최근에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태종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그의 업적을 새롭게 보여준 것이다.

특히, 그의 다음 왕인 세종의 치세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할 때 더 두드러진다.

한국 역사 이래 최고의 성군으로 표현되는 세종 앞에 장애물이 될 수 있는 세력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외척이나 개국 공신 등의 세력을 정리해 다음 왕이 국정을 좀더 쉽게 펼 수 있게 했다.

단순히 이런 행위만 가지고 그의 업적을 말하기엔 더 큰 일을 했다.

저자는 실록의 기록을 따라가면서 이전 연구자의 성과에 덧붙여 태종의 삶을 재조명한다.


모두 7개 장으로 나누었다.

정치가, 왕후들과의 관계, 그의 재상들, 그가 바란 조선의 모습, 실용 외교와 전위 등이다.

정치가 태종의 면모는 간결하지만 강렬하게 보여준다.

조선 개국에 큰 역할을 한 왕후 들 이야기도 나오지만 외척은 언제나 위험 요소다.

그가 조선 개국 전에 겪은 위험과 ‘선발제지’의 수법은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개국 전에는 단심가의 정몽주이고, 개국 이후는 정도전이다.

사실 이 둘만 가지고도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텐데 저자는 간략하게 다룬다.

조선의 기틀을 닦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정도전과의 대결은 너무 없어 조금 아쉽다.


단순히 재미만 놓고 본다면 ‘태종 재상 3인방’이 가장 재밌다.

왕이 공들여 모셔온 정승과 태종의 내 몸 같거나 문장으로 업을 경영한 재상들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세 명의 재상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줄 때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태종이 자신의 사람을 얼마나 아끼는지도 같이 나온다.

이 재상들과 힘을 합쳐 국정을 운영하고, 자신이 바라는 조선을 조금씩 이루어 간다.

우리에겐 조금 아쉬움이 있는 ‘소강’의 나라를 꿈꾼 거나 국왕 중심 국가 등이다.

하지만 단순히 국방만 놓고 보면 허약하고 허술하다.

여진족에게 패한 이야기는 아주 낯설고 태조의 공적과 너무 다르다.


실용 외교를 펼친 부분은 지금 봐도 대단하다.

명의 영락제와 만난 듯한 부분은 소설로 다루고 싶을 정도로 흥미롭다.

명 영락제와 태종은 모두 개국에 직접 공헌했고, 자신의 힘으로 왕권을 잡은 인물들이다.

이 둘이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소설가의 상상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일본과 여진의 교린 외교가 왜 중요한지 알려주는 대목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오면 충년군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온다.

왕위는 단순히 인품이 뛰어나거나 학식이 뛰어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왕권을 둘러싼 신하들의 역학 관계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왕위를 물려준 뒤에도 태종은 상왕으로 5년간 통치했다.

이 기간이 세종의 발전에 큰 도움을 준 듯하다.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세종도 대단하다.


조선이란 국가의 기틀을 닦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왕 중 한 명이 태종이다.

성군 세종이 되는데 가장 큰 받침이 된 임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정치에도 빛과 그늘이 있었다.

빛은 점점 더 밝혀질 부분이고, 그늘은 저자에 따르면 왕권 도전을 가감하게 숙청한 부분이다.

그리고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과 행동이 사적에 그대로 드러난다.

다만 왕친과 관련된 역사 기록 등에 대한 거부감 등은 그의 명백한 그늘이다.

사적을 바탕으로 한 인물을 평가한 이 책은 태종 연구의 현재 진행형이다.

역사 기록이 무수히 많이 인용되면서 나온 기록은 필요한 대목이지만 가독성을 조금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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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산책가
카르스텐 헨 지음, 이나영 옮김 / 그러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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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눈길을 끌지만 목차가 더 강하게 다가왔다.

그 제목들은 내가 읽었거나 읽으려고 하는 책 제목이기 때문이다.

책도 산책도 좋아하는 나에게 서점 직원이 등장하는 소설은 아주 매혹적이다.

이 책 산책가가 맞춤 책 추천과 집까지 직접 배달해준다면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배달이 서점의 비용 문제로 넘어가면 문제가 조금 더 복잡해진다.

작가는 이런 상황을 기본으로 놓고, 이 책을 배달 받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나열하고 뒤섞는다.

이 중심에는 서점 직원 칼 콜호프와 갑자기 칼의 책 배달에 끼어든 아홉 살 소녀 샤샤가 있다.


동네 책방 암 슈타토어. 이 서점의 오랜 직원인 칼 콜호프.

그는 독신자이고, 책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서점 직원이다.

70세가 넘은 그는 매일 저녁이면 특별한 손님들에게 직접 책 배달을 한다.

이 배달은 손님들이 요청한 책이 아닌 칼이 맞춤 추천한 책들이다.

그리고 이 고객들은 각각 자신만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이 사연들은 이 소설의 중요한 내용들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칼과 샤샤의 사연과 뒤섞인다.

흔한 구성 방식이지만 안정적이고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이 많다.


자신을 고용했던 사장이 떠나고 그 딸 자비네가 사장이 되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비네는 칼의 특별 배달을 중단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칼은 자신의 특별한 손님을 잃고 싶지 않다.

이들에게 책을 배달하는 것은 단순한 배달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 고객들을 자신만의 애칭으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애칭은 소설 속 캐릭터들이고, 칼의 애정이 듬뿍 담긴 이름이다.

자신만의 손님이었던 이들이 다른 사람과 함께 아는 존재가 된다.

그 이유는 바로 갑자기 그의 곁에서 걸어가는 샤샤 때문이다.


이 샤샤라는 캐릭터도 다른 소설 속에서 많이 본 인물이다.

이런 쾌활하고 돌발적인 인물들은 조금은 경직된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칼의 보수적이고 단순한 행위에 작은 균열을 내고, 그 특별 손님에게 다가간다.

샤샤의 대담한 행동은 그 독자의 일상 생활을 염탐하고, 그들과의 거리를 단축시킨다.

칼의 책 선택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항상 거리를 유지하던 그가 한 발 더 다가가게 한다.

그가 의도적으로 알고 싶어하지 않았던 사실들이 샤샤의 돌발적인 행동 하나로 알려진다.

이 소설의 재미 상당 부분은 바로 이런 샤샤의 행동과 그 행동을 용인하는 칼에게 있다.


이런 소설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 바로 책이다.

목차뿐만 아니라 이야기 속에 수많은 소설과 그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내가 읽어 아는 책도 있지만 모르는 책들도 상당히 많다.

서로 다른 문화와 번역되지 않은 책들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그가 항상 유지하던 거리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일등공신은 아홉 살 소녀 샤샤다.

밤의 책 산책가와 함께 다니는 소녀가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는 없다.

샤샤가 갑자기 나타나지 않으면서 그의 산책에는 작은 구멍이 생긴다.

이 둘이 함께 움직이며 특별 배달 손님의 삶을 뒤흔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조금 가볍게 읽고 좋아하는 책을 떠올리고, 읽고 싶은 책을 발굴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조금씩 무거워지고 현실이 끼어들면서 책 발굴은 뒤로 밀렸다.

이 현실은 가정 폭력과 오해와 엮이면서 더 무거워진다.

이 무거워진 이야기의 무게를 날리는 것은 그가 그 동안 쌓아 올린 관계의 힘이다.

오해와 폭력은 두려움에서 비롯했고, 이것은 현실 직시와 사랑으로 조금씩 넘어간다.

특히 칼의 오해와 두려움은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했다.

이 오해가 풀리고, 그가 앞으로 나아갈 때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존재인지 안다는 것은 아주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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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좀비 - 엄마가 좀비가 된다면 어떻게 할래? 생각학교 클클문고
차무진 지음 / 생각학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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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좀비가 되었는데 장르는 코믹 호러다.

처음 코믹 호러 이야기란 소개를 보고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엄마가 좀비가 되었는데 어떻게 코믹함이 들어갈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 의문은 이야기가 점점 더 진행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좀비와 다른 좀비라는 설정이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다른 좀비란 설정만 가지고 이런 설정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작가의 필력과 세부적인 설정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그 상황 때문에 살짝 웃는 순간들이 생긴다.


아빠의 불륜. 용서 없는 엄마의 힘겨운 나날.

아들은 자발적으로 은둔형 외톨이처럼 집에 박혀 아주 가끔 학교에 나간다.

우연히 외출한 아들 녹현은 다이소에서 근무하면서 진상 고객 때문에 고생하는 엄마를 본다.

엄마를 위로하고 착한 아들이 바로 된다면 좋겠지만 그런 현실은 없다.

엄마는 아들이 학교에 나가길 바라고, 아들은 전교 1등을 하니 무슨 상관이냐고 대든다.

이 갈등의 원인은 엄마가 가차없이 좇아낸 아빠의 부재 때문이다.

남편을 내보낸 후 엄마는 경력 단절과 싸우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쉽지 않다.

아들 녹현은 자신의 방을 쓰레기로 가득 채우고, 더 반항적으로 나간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방을 뒤지다 좀비로 변한 엄마를 발견한다.

녹현을 물려고 한다. 바로 엄마를 발로 찬다. 방에 가둔다.

보통의 좀비 소설이라면 좀비가 더 무섭게 달려들고, 주인공은 생존을 위해 좀비를 죽일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종류의 좀비 소설이 아니다.

세상이 좀비 바이러스로 가득 차 지금 죽이지 않으면 멸망할 정도의 세계가 아니다.

뉴스에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해 사회 문제가 된다는 방송도 없다.

녹현은 일단 엄마를 가두고, 어떻게 이 상황을 넘어갈지 고민한다.

좀비가 된 엄마를 죽일 수 업기에 생기는 문제가 하나씩 흘러나온다.


가장 먼저 좀비를 굶길 수 없다. 굶기면 더 사납고 시끄럽다.

엄마에게 먹일 생고기를 사러 간다. 당연히 피가 뚝뚝 떨어진다.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싼 호주산이나 미국산 대신 한우를 산다. 선지는 덤이다. 물론 엄마의 돈이다.

비싼 식재료는 그만큼 모아 놓은 돈을 빠르게 소진시킨다.

아빠에게 전화해 돈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사정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여기에 가끔 간 학교에서 학교 일진 동민이 그를 기다린다.

50만 원짜리 게임 아이템 분실 문제로 녹현이를 갈구는 중이다.

학교도 집도 녹현이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다.


무섭고 무겁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도 있지만 작가는 조금 가볍게 진행한다.

녹현을 물려는 엄마를 때리고 두들기고 수면제를 넣은 음식으로 재운다.

몰래 집밖으로 나간 좀비 엄마를 찾아 힘들게 데리고 온 적도 있다.

이런 현실은 알게 되는 친구도 나타난다.

이때 좀비 엄마를 상대하는 이들에게 그 어떤 긴장감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좀비 바이러스가 어떤 종류인지 알려주는 인물이 나타난다.

여기서 이야기는 또 한 번 뒤집어지는 상황을 마주한다.

좀비가 된 사람이 정상으로 돌아온 일이 있는 것이다. 아주 로맨틱한 방식으로.


녹현이 좀비 엄마를 집에 가둔 후 일어나는 상황은 곰곰이 생각해볼 내용이 많다.

항상 부모의 돌봄 아래 있는 열여섯 소년이 이제는 엄마를 돌봐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 것이다.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전전긍긍해야 한다. 가둔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아주 위험한 상황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과 좀비 엄마의 잔존 이성이 이를 막았다.

이런 장면이나 상황 등이 엄마를 좀비에서 깨어나게 하는 일고 엮인다.

조금은 뻔한 방식으로 마지막을 풀어내지만 그 과정은 재밌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는 미화된 과거의 속내가 그대로 담겨 있다.

어린 녹현의 실수나 착각은 이 부분을 더욱 부각시킨다.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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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 에어포트
무라야마 사키 지음, 이소담 옮김 / 열림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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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도 서점 이야기>로 먼저 다가온 작가다. 재밌게 읽었다.

이후 후속작이 나온 것을 봤지만 책만 구해놓고 읽지 않고 있었다.

신작인 이 소설을 봤을 때 <오후도 서점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책을 손에 들고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무대는 공항이고, 이곳을 스쳐 지나가거나 공항 서점에서 근무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내가 공항을 갔을 때를 생각하면 많이 다른 분위기와 이야기가 나온다.

언제나 바쁘게 오고 간 곳이 공항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 한 번 가본 일본 공항의 모습을 떠올리기에는 역시 그곳에 머문 시간이 부족했다.

아마 다시 공항에 간다면 이전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최근 많이 보는 구성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그 다음 사람이, 그리고 또 그 다음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구성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만화가의 삶을 그만 두고 귀향하는 료지의 이야기다.

학창 시절부터 연재를 했지만 큰 대박은 없는 만화가다. 그렇다고 연재를 쉴 정도는 아니다.

공항에 온 이유는 귀향, 요리집을 하는 형이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 공항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차분하게 돌아본다.

그 중심에는 전 연인과 절친이 있었다. 이 둘은 나중에 결혼했고, 료지에게 청첩장을 보냈다.

전 여친과 헤어진 이유, 자신의 삶이 망가진 순간, 요리 만화로 인기를 얻은 과거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공항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를 만나 자신이 웃는 초상화를 그린다.

이 웃음 이야기를 보면서 아내가 아이가 퇴근길에 나에게 다가올 때 내가 짓던 미소가 떠올랐다.


다음 주인공은 료지의 만화를 좋아하는 공항 서점 직원 유메코다.

유메코의 할머니는 동네 서점을 운영하신 분인데 어릴 때 돌아가셨다.

할머니 기일에 공항에 와서 생긴 에피소드 하나는 아주 비현실적이지만 환상적이다.

과거를 회상하고, 과거와 조우하고, 좋아하는 만화가도 만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공간의 특성 때문에 단골이 있기 힘든 공항 서점.

하지만 비행기에서 재밌게 읽을 책을 고르는 손님들.

이 손님들 중 두 명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 명은 여배우이고, 다른 한 명은 이번에 신작을 낼 예정인 신인문학상 수상자다.

이 두 명이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배우 이름은 마유리, 신인 작가 이름은 메구미다. 둘은 중학생 때 단짝이었다.

중년의 배우는 이제 빛나기 보다 자신의 나이에 맞는 역할들을 주로 연기한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한 메구미는 드디어 작가가 되어 첫 소설을 내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이 헤어졌던 그 공간에서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 우연히 만났다.

하나의 사건으로 좋지 않게 헤어졌고, 그 동안 서로 연락도 없었지만 아직 그 시절을 기억한다.

연기자인 마유리는 방송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주부였던 메구미는 신인상을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오랜 세월 속에 바뀐 외모 때문에 서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만나 눈물을 흘리면서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그리고 드디어 밝혀지는 과거의 비밀. 예상한 것이지만 어렸기에 아쉬웠던 마무리.


마지막 이야기로 넘어가면 또 다른 사연이 흘러나온다.

만남과 헤어짐, 떠남과 돌아옴의 공간인 공항을 배경으로.

그리고 앞에 잠시 나온 사람들이 교차하는 순간이 생기고, 작은 인연을 맺는다.

이런 공간을 배경으로 계속 연작 소설을 내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제각각 수많은 사연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 읽는 내내 즐거움을 주고, 내가 공항에서 보낸 시간들을 떠올린다.

나라면 수십 년 만에 만난 친구와 데면데면하지 않고 아주 반갑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우연히 비행기에서, 공항에서 몇 년 만에 만난 친구와 후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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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1 사일로 연대기
휴 하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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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로 연대기 3부작 중 첫 번째 이야기다.

애플 TV+로 이 시리즈가 제작되면서 이번에 기존 <울>과 함께 나머지 두 편도 같이 출간되었다.

프리퀄인 <시프트>와 후속작인 <더스트> 등이다.

처음 <울>이 나왔을 때 크게 관심이 없었다. 살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에 시리즈로 나오면서 운 좋게 책을 받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소설에 대한 몇 가지 평을 보았는데 1부와 2부의 평이 대단히 좋아 기대되었다.

하지만 그 평과 달리 나의 취향은 뒤로 넘어가고, 세계가 확장되면서 더 맞아 떨어졌다.

특히 줄리엣의 생존과 사일로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날 때 더욱 재미있었다.


자비 출간의 성공작 중 한 편이다.

1부를 아마존 킨들 전자책으로 출간했는데 후속작 요청이 있어 계속 썼다.

단편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1부이지만 작가가 창조하는 세계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일로 안에는 시장과 보안관 있고, 공간은 지하로만 확장된다.

지하 140 층이 넘는 아주 깊은 곳으로 인류의 영역은 깊어진다.

작가는 여기서 왜 밑으로만 확장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마지막 5부에서 알려준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이 세계관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이고, 다른 이야기와 이어진다.

초기 단편에 잠깐 나온 이야기를 시리즈 확장과 연결시킨 부분은 이야기의 유기성을 더 높인다.


사일로 속에서 사람들은 석유로 발전을 하고, 땅속으로 파고들어 필요한 재료를 수급한다.

땅 속에서 수경재배로 채소와 과일을 키우고, 죽은 인간은 비료로 활용된다.

시장은 선출직이고, 가장 핵심적인 부서는 IT부서다.

보안관 홀스턴은 아주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3년 전 아내가 청소형으로 죽었다.

아내가 청소형을 받기 전 남긴 자료를 쫓으면서 그 또한 청소형에 처해진다.

1부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나의 머릿속에 만들어진 이미지는 줄리엣의 청소형으로 바뀐다.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생략된, 혹은 의도된 세상의 이미지가 조금씩 바뀐다.

그리고 이 좁고 깊은 세계 속 인류가 얼마나 되는지 머릿속에서 셈을 해본다. 쉽지 않다.


사일로의 이미지를 간단하게 하면 고층 빌딩을 지하로 뒤집어 넣은 것과 닮았다.

그런데 이 고층은 엘리베이터가 없다. 걸어서 아래 위를 움직여야 한다.

2부부터 서로 다른 층으로 걸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준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특히 다리가 단련되지 않았다면 더욱더.

줄리엣을 만나 보안관 직책을 맡게 하려는 시장과 부보안관의 심층 이동이 2부의 주 내용이다.

늙은 두 사람에게 이 여행은 결코 쉽지 않고, 왠지 모를 긴장감이 흐른다.

이 긴장감을 작가는 늙은 시장의 힘든 심층으로의 여행인 것처럼 포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긴장감이 사실이라는 장면을 보여주며 끝낸다.


이 소설에서 IT부는 과거의 기록을 보관하는 곳이다.

과거 사일로의 폭동에 대한 기록도 여기에 있다. 이 폭동은 반복적이었다.

사람들은 이 폭동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각 부서 간의 교류는 제한되어 있다.

갇힌 공간 속 닫힌 교류와 알력은 시장과 보안관의 힘으로 균형을 이룬다.

하지만 실제 권력은 어두운 곳에서 IT부가 휘두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정보인 사일로의 비밀을 가진 곳이 IT부다. 당연히 한두 사람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이 비밀이 흘러나오는 것은 IT부의 욕심과 청소형을 받은 사람의 예상하지 못한 행동 때문이다.

오염된 지상으로 나가 바깥 세상을 비추는 렌즈를 울로 닦는 형벌이 청소형이다.

일종의 사형제도인데 짧은 시간 안에 두 명의 보안관이 이 청소형을 선고받았다.


사일로에 갇힌 인류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비장하고 아름답다.

각자의 역할에 따라 구역이 나누어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어우러져 살아간다.

문제는 각자가 가진 사명감이 다르고, 숨겨진 의도가 끼어들어 이 삶을 비튼다는 것이다.

이 비밀이 드러날 때 사람들은 폭도로 변한다. 반복된 역사다.

그리고 하나의 사일로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면서 영속성을 가진다.

그런데 왜 사일로란 이름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도 책 속에 나온다.

프리퀄과 후속편이 궁금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단편에서 발전한 소설임을 생각하면 드라마가 어떻게 구성되었을 지 궁금하다.

오랜만에 디스토피아를 묵직하게 다룬 재밌는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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