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공황 - 80년 전에도 이렇게 시작됐다
진 스마일리 지음, 유왕진 옮김 / 지상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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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먼저 이 책의 출간연도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002년이다. 부제처럼 80년 전에도 이렇게 시작됐다는 표현에서 추측할 수 있는 현재의 미국발 세계불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원제에 따르면 대공황을 다시 돌아보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저자가 자신의 관점에서 통계자료로 대공황의 원인과 과정과 결과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저술한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대공황과 뉴딜 정책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저자가 세계를 보는 시각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저자의 글 솜씨가 독자들이 쉽게 읽게 만들지도 않고, 수많은 통계자료와 명확하지 않는 전개로 순간 몰입을 방해한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 책에서 기대했던 내용이 너무 달라서 조금 혼란스러웠다고 해야 할 것이다. 책 기저에 깔려 있는 신자유주의 노선은 이런 불편함을 더욱 가중시킨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읽은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와 상당히 다르게 뉴딜 정책을 평가함으로써 더욱 복잡하게 다가왔다.  

 

 대공황을 검색하니 ‘1929~39년 무렵까지 북아메리카와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 산업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지속된 경기침체’라고 나온다. 근 10년 걸친 이 시기를 저자는 통화정책을 기초로 분석한다. 금본위제, 금환본위제 등이 그 제도의 기반인데 점점 커져가고, 각 나라의 경제 수준이 다르면서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던 시기다. 이 통화제도는 이후 지금의 세계 기축통화로 적용되는 달러와 변동환율제도로 오기까지 수많은 굴곡과 어려움을 거친다. 이것은 또 다른 문제니 생략하자.  

 

 ‘불황은 무언가가 이 자유시장제도의 과정을 교란시켜 자원 소유자나 소비자가 변화를 정확히 인지하고 반응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가격은 시장경제의 주요 중개자이므로, 가격체제는 통화제도의 장애에 의해 교란될 수 있다.’(56쪽)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문장을 처음엔 그냥 읽었다. 하지만 이 책의 의도를 가장 잘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저자가 신자유주의를 신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제에서 느낀 신자유주의 비판의 느낌을 전혀 느낄 수 없었는데 다시 책을 넘겨보면서 이 문장을 발견하고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가 루즈벨트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 그가 당선 후 자신의 경제정책에 대한 말을 아껴 경기 침체가 더욱 가속화되고 실업률도 높아졌다는 부분에서 기존에 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호의를 무너트리게 한다. 이후 그가 펼친 정부정책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데 이 부분에선 앞에 말한 폴 크루그먼의 평가와 너무 달라 어느 쪽이 맞는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기본적으로 통계자료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대공황의 시기가 1939년까지라고 한다면 단순히 이것을 뉴딜정책의 실패 때문이라고 평가하기엔 너무 조급하고 성급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의 한국 경제 문제와 관련하여 98년 IMF사태를 제외하고 말할 수 없듯이 경제란 것이 단순히 한 시기의 돌발적 사태에 의해 단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공황 이전의 호황과 함께 그 시대의 경제와 사회구조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하나의 대사건을 단순화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지막 장에서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말하는데 이 부분에서도 역시 신자유주의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다. 분명히 현재의 사회보장제도가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사회보장제도를 가진 미국에서 사회보장제도와 그 문제점을 모두 대공황의 산물로 보는 것은 너무나도 확대해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의 전 세계적 불황이 저자의 말처럼 무언가가 정부라면 신자유주의가 역사 이래 최대에 달한 현 시점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을 설명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정부의 규제나 정책에 흠을 잡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금융자본이나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혀 발생한 이 사태를 왜곡한다면 부제처럼 대공황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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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이유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5
멕 로소프 지음, 김희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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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영국에 도착한다. 사촌들이 그곳에 살고 있다. 그녀가 태어나던 그날 어머니가 죽는다. 이 소녀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새엄마를 증오한다. 먹는 것을 거부하고, 아빠의 돈을 낭비하는 것을 은근히 즐긴다. 이런 소녀가 영국에 도착하여 한 소년을 만나고, 그 가족들과 함께 전원생활을 하면서 바뀐다. 이 변화는 곧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 바뀌게 된다. 이런 변화 속에서 소설의 분위기도 청춘소설에서 반전소설로, 다시 성장소설로 조금씩 변한다.  

 

 엘리자베스는 먹는 것을 거부하면서 깡말랐다. 이런 그녀에게 사랑이 다가온다. 그가 에드먼드다. 첫 만남부터 특이하다. 열다섯 살 소년이 차를 몰고, 담배를 피우면서 그녀를 마중 나온 것이다. 약간의 선입견이 생길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 가족들을 만나고, 영국 전원생활을 만끽하면서 자신 속에서 담을 쌓고, 응어리 진 것들이 조금씩 무너지고 사라진다. 콘크리트 빌딩 사이에서 삭막한 감정으로 미움과 증오만 품고 있던 그녀가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결에 나쁜 감정들을 날려버린다. 이 과정에 그녀와 에드먼드 사이에 사랑이 싹트고, 이 사랑은 그들을 강하게 이어준다.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데이지가 영국에 와서 사랑에 빠지고, 영국 시골 삶을 즐기는 장면들과 전쟁으로 그 가족들이 나누어진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과정과 전후 다시 그들이 만나기까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조용히 따라가다 보면 밝음과 아름다움과 열정과 치기가 가득하다가 전쟁의 실체로 점점 다가가고, 그 전쟁의 상흔을 껴안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열다섯 소녀가 사랑에 빠지고, 멋진 가족들과 즐겁게 살아가면서 직접적인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지 못한 장면까지는 조금 밋밋한 느낌도 있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도, 식량 배급으로 모두가 힘들어할 때에도 그들은 전쟁의 의미를 모른다. 그러다가 가족들이 헤어지지만 이때도 그것이 잠시일 것이고, 영화 속 전쟁과 다른 재미난 놀이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적군에게 자신들과 함께 하던 사람들이 총 맞아 죽고, 전쟁이 국지전으로 변하면서 잔인하고 비참한 현실로 다가온다. 작가는 이 과정을 급격하게 보여주기보다 그들을 현실로 발을 조금씩 내딛게 만들면서 그 참상에 다가가게 한다.   

 

 먹기를 거부해 마른 데이지가 배고픈 여행과 삶으로 버터 바른 토스트를 원하는 장면에선 삶이란 원초적인 것임을 다시 알게 된다. 전쟁의 상흔을 어떻게 삶속에서 털어 내거나 묻어 버리나에 따라 바뀌는 것도 볼 수 있다. 순수할수록 그 상처는 깊고 아프다. 그 상처를 역시 씻어주는 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이 바로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영국을 점령한 적군이 누군지도 말하지 않는다. 왜 일어났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원유, 돈, 땅, 봉쇄령, 민주주의 등을 말할 뿐이다. 이런 단어들로 유추할 수 있지만 정확한 것은 작가만 알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시가 배경이 아니다 보니 조금은 느슨한 풍경이다. 하지만 그 느긋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 벌어진 참상은 더 강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에드먼드의 형제들은 각각 강한 개성과 특별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다. 이 능력은 참혹한 현실에서 조금은 여유롭게 숨 쉴 수 있게 만들어준다. 책을 읽을 때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더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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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선집 4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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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단편집 <여성혐오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1975년)과 <바람 속에서 서서히, 서서히>(1979년)을 합쳐 내놓은 책이다. <여성혐오>는 오히려 단편보다 콩트에 가깝다. 몇 쪽이 되지 않는 분량으로 이야기를 끝내는데 그 짧은 글 속에 느껴지는 섬뜩함과 긴장감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 분위기에 익숙해서인지 다음 단편집인 <바람 속에서>를 읽을 때는 처음엔 약간 늘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단편들이 내품는 공포와 살의와 살인은 대단하다.  

 

 모두 29편이다. <여성혐오>가 19편이고, <바람 속에서>가 12편이다. 분량은 <바람 속에서>가 더 많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성혐오>에 실린 이야기들이 단편소설보다 콩트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처음 전작에 실린 단편을 읽을 때 일본작가 호시 신이치의 초단편 소설이 연상되었다. 하이스미스가 그에게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짧으면서 강한 인상을 주는 점에서 유사하다. 물론 그녀가 품어내는 냉기가 더 강한 것은 사실이다.  

 

 가장 먼저 만나는 단편인 <손>은 관용구를 비틀어 이야기를 만들었다. 언어를 사실과 연결시켜 사건을 만들어내고, 한 인간을 파멸로 몰아가는 간결한 내용이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여성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현실을 짧게 그려내면서 냉혹하게 마무리한다. 이 소설들에 나오는 여자들을 보면 소위 말하는 남자의 등골을 휘게 하는 여자들이다. 그 한계가 어느 곳인가에 따라 비등점이 다르지만 그 결말은 모두 비슷하다. 그녀들로부터 벗어난 남자들의 편안함이 왠지 모르게 더 섬뜩하다.  

 

 <바람 속에서>는 읽다보니 스티븐 킹의 소설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들이 있다. <연못>과 <바람 속에서 서서히, 서서히>가 그것이다. 전작이 초자연적인 공포를 조금씩 풍기면서 파국으로 이끈다면 후작은 옥수수 밭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시체의 모습이 그를 생각하게 만든다. 시간 순으로 따지면 하이스미스가 먼저다. 하지만 나에게 먼저 다가온 작가가 킹이다 보니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어쩌면 킹이 그녀에게 더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물론 더 올라가면 앨런 포로 귀결될 수 있지만 아직 포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기에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자.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그려내는 일상의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다. 세밀하고 자세하게 묘사하지는 않지만 간결함 속에 담긴 현실은 공포와 두려움과 살의와 탐욕과 위선과 집착 등이 잘 살아있다. 평생 아이디어가 고갈된 적이 없다고 고백한 그녀의 글답게 현실에서 뽑아낸 이야기들은 냉혹하고 도발적이고 풍자적이다. 일상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급격한 반전으로 마무리되는 과정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대단한 필력이다. 이런 매력 때문에 수많은 영화계의 거장들이 그녀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각 이야기마다 평을 달아 분석할 수 있지만 그녀가 만들어낸 현실에 잠시 머리를 담구고, 일상 속의 일상 밖을 경험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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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 동서 미스터리 북스 39
프랜시스 아일즈 지음, 유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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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초콜릿 사건>, <시행착오>의 작가 앤소니 버클리와 같은 작가다. 두 작품 모두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특히, <시행착오>는 지금 보아도 새로운 느낌을 주는 추리소설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해설에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 어딘가에서 본 기억도 있지만 나의 기억이라는 것을 믿기에는 너무나도 부정확하다.  

 

 <살의>는 도서추리의 3대 걸작이니 하는 광고도 있지만 사실 이런 것의 출처는 대부분 불분명하고 과장된 부분이 많다. 추리소설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 작가의 작품은 완성도와 많은 의미를 가지겠지만 재미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세련된 맛이 조금 떨어진다. 요즘 워낙 많은 작가들이 범인의 심리를 극한으로 몰고 가고, 그를 쫓는 경찰들을 멋지게 묘사하는 것에 길들여져서 그렇다는 것이지 시대나 초창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범인이 누군지 알고 보는 추리소설을 보았을 때를 지금도 기억한다. 부정확한 나의 기억이지만 아마 김성종의 소설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범인의 행동과 심리를 한쪽에서 묘사하고, 다른 쪽에선 그를 쫓는 형사들을 묘사한 소설이었다. <제5열>이나 <제5의 사나이>가 아닌가 생각하는데 나중에 <자칼의 날>을 읽으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김성종의 소설과는 다른 범인의 심리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어떻게 해서 자신의 아내를 죽이게 되었는지와 다른 살인을 준비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과 심리를 차분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저놈은 반드시 죽이고 싶다는 열의 가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상상만으로 대리만족을 하거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린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경우 살의가 생기고,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보는 재미가 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를 하고, 실행을 하지만 살인의 유일한 목적이 없어지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감정의 노예가 되어버린 그가 자신의 열등감을 묘하게 비틀어 다른 쪽으로 상황을 몰고 간다. 현재 자신의 삶을 위험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복수를 꿈꾸는 것이다.  

 

 살해하려는 마음이 살인으로 이어지고, 살인으로 얻고자한 것을 가지지 못하고, 살인으로 얻은 불안을 복수로 풀고자 하는 연속적인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감정의 기복과 불안이 이 소설의 핵심인데 약간 거친 맛은 있지만 재미있다. 아쉬운 점도 있는데 법정 심리 장면을 좀더 보강하였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결말 부분도 역시.  

 

 동서DMB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초판본의 번역 문장이 그대로 나와 문장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일본 소설의 경우는 덜하지만 서양 추리소설은 왠지 중역의 느낌을 항상 받는다. 어린 시절 중역 문장을 많이 읽었지만 최근 한국소설 덕분에 어색한 문장이 주는 느낌을 지워내기가 쉽지 않다. 요즘 번역된 소설의 경우 동서보다 못한 것도 많이 보았지만 그래도 좀더 신경을 써 문장을 가다듬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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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기다림 - 바깥의 소설 23
샤를르 쥘리에 지음, 이재룡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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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프랑스 소설이 나와 맞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들 특유의 문장구조나 묘사가 약간의 거부감을 주기도 하지만 몇몇 소설가는 쉽게 빠져들기도 한다. 이번에 본 샤를르 쥘리에 또한 처음엔 정확한 문장과 건조한 문체로 호기심을 끌었지만 금방 그 매력에서 빠져 나왔다.  

 

 많은 분량이 아니지만 쉽게 빠르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문장은 간결하고 건조하다. 작가와의 대담을 읽다보면 자신의 내면으로 자꾸 들어간다고 하는데 한 개인의 내면 이야기가 약간의 거부감을 주는 모양이다. 세 편 모두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이야기지만 로맨스가 일어나거나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다음 장을 궁금하게 만들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손에 잡힐 듯한 묘사나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없다. 세 편 모두 주저하는 남자들이 나오는데 그들의 모습에서 가끔 과거의 나를 본다. 좋아하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주변을 겉도는 남자들. 그들의 감정을 과격하거나 긴장을 주거나 과장되게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나오는 파편들을 기록할 뿐이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소설이다. ‘가을 기다림’은 글쓰기 위해 노력하지만 쓰지 못하는 작가가 ‘소용돌이’에서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편지를 쓰고자 하지만 쓰지 못하는 작가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자신을 잘 나타내는 진솔한 문장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내면의 기쁨과 괴로움과 그리움을 표현할 말들을 그들은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인지 모르겠다.  

 

 다시 책을 펴고 아무 곳이나 읽어본다. 대화는 적고 자신이 관찰한 기록은 많은 소설이다. 하지만 그 문장 하나하나가 정확하여 다시 읽어도 새로운 감이 있다. 다시 처음부터 읽으라고 한다면 읽지 못하겠지만 가끔 펼쳐서 여기저기를 읽는다면 즐거움을 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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