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본능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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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7년 <살인의 해석>이란 처녀작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소설의 두 주인공이 어떤 관계인지는 잘 몰랐지만 읽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사실 전작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읽으면서 받았지만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역자의 글을 통해서다. 읽으면서 왜 이런 장황한 설명이 나오지 하는 의문에 대한 조그만 해답도 얻게 되었다. 전작을 읽게 되면 이번 소설에 대한 더 많은 공감과 이해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 장면은 9.11 테러를 연상시킨다. 1920년 9월 16일 낮 12시 마차에 실린 폭탄이 월 가를 초토화시킨다. 적지 않은 폭탄이 실렸기에 그 피해도 상당하다. 물론 9.11 같은 엄청난 사건은 아니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사건이다. 그것도 미국 금융의 중심가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던 두 주인공이 사건을 마주하고 직접 간접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형사반장 리틀모어와 영거는 이렇게 엄청난 사건에 관여하게 된다. 그리고 영거가 사랑하는 콜레트의 알 수 없는 사건도 같이 엮이면서 흘러간다.

사건은 크게 두 개다. 하나는 당연히 월 가 폭탄 사건이고, 다른 것은 콜레트를 납치하거나 살해하려는 사건이다. 당연히 이 두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는 리틀모어고, 영거는 당사자와 직접 연결되면서 사건과 엮인다. 월 가의 사건이 단순한 테러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음모의 시작인지 의문을 품게 만들면서 거대한 그림을 그린다면 콜레트는 왜 그녀가 표적이 되었는지 의문을 품게 한다. 특히 이상한 여자들이 콜레트를 찾아오는 이상한 일들이 그렇다. 물론 현대 과학에 대해 알고 있는 우리에게 이런 방문이 의미하는 바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녀가 퀴리 부인의 애제자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말이다.

언제나 큰 사건이 발생하면 이 사건을 둘러싼 영역권 문제가 생긴다. 거대 은행 재벌 JP 모건 은행 앞이자 재무부 근처에서 터진 것을 감안하면 일개 관할경찰이 전담하기에는 너무 큰 사건이다. 단순 강도 사건이라면 충분할 수 있지만 그 사건 이면에 또 다른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면 정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작가는 교묘하게 이것을 피해갈 방법을 찾아내었는데 책 중간에는 사실 조금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가독성이 더 좋아지고 새로운 실마리들이 하나씩 풀려나온 것도 사실이다. 역사 속에서 현재까지 미해결 사건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힘을 발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콜레트의 사건은 처음에는 왜 그녀를 납치하려고 했는지 잘 몰랐다. 이 답을 알려주는 것이 마지막에 나오는데 어떻게 보면 황당하다. 하지만 그녀의 사건을 통해 영거의 2차 대전 당시 모습과 과거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또 다른 한 축인 콜레트의 한스앓이와 동생 뤽의 병에 대한 원인이 같이 다루어진다. 콜레트를 통해 사건의 공간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옮겨가고 그 유명한 프로이트의 등장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 만남을 통해 작가는 프로이트 후기 이론의 핵심인 죽음본능을 작품 전체에 녹여내게 된다. 

적지 않은 분량이다. 거의 700쪽이다. 앞부분에 왜 이런 장면들을 넣었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그 시대의 풍경과 사건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현재를 잊고 그 시대에 몰입하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통해 우월감에 살짝 도취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달리다보니 결코 많은 분량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특히 후반부로 가면 예상한 것 이상으로 가속도가 더 붙는다. 그 시대 상황과 정치적 음모가 뒤섞이고, 현재의 욕망이 과거에 다시 투사되면서 단순한 과거 사건을 넘어 현재까지 그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영거를 통해 2차 대전이 끼친 심리적 경제적 영향력을 보여주면서 잘 몰랐던 혹은 잊고 있던 전후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 소설의 아주 인상적인 첫 문장에서 단어 하나만 바꾼다면 그 사실은 더 분명해진다. “전쟁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정말로 힘든 건 그 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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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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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재미있는 제목이다. 처음에는 이 제목에 그렇게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새롭게 와 닿았다. 낯익은 타인이라는 모순된 단어 조합이 첫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조금씩 그 형상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자신을 찾는 K의 3일 동안의 여정을 시간대별로 보여준다. 분명히 낯익고 함께 살아온 그들이 주는 낯선 감정들을 하나씩 풀어내면서 말이다. 그의 3일 여정은 어떻게 보면 자신을 찾는 구도 과정이고, 어떻게 보면 현실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순간들이다.

주인공 K는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깬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주말 동안에는 자명종을 켜지 않는데 울린다. 아내가 켰을까? 아니다. 아내는 기계치다. 이런 낯선 생각을 하고 화장실로 간다. 거울을 본다. 놀란다. 낯선 누군가가 자기 앞에 있다. 자신이다. 소변을 보고, 면도를 한다. 스킨을 바른다. 그런데 자신이 평소 사용하던 것이 아니다. 낯설다. 이 낯익은 공간에서 벌어진 낯선 환경이 신경을 건드린다. 이것은 부엌에 있는 아내에게서도 느껴진다. 분명히 자신의 아내인데 낯선 타인 같다. 이렇게 K는 낯익은 사람들과 낯익은 공간 속에서 낯선 기분을 느끼고 자신을 잃어간다.

그가 가장 먼저 잃은 것은 핸드폰이다. 핸드폰의 상실은 그가 가진 인맥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현대인에게 핸드폰은 단순히 전화기 그 이상이다. 대부분의 정보를 그 속에 담아놓고, 많은 것을 핸드폰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자기 핸드폰을 찾기 위해 전화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문자와 음성 메시지를 남긴다. 바로 회신이 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연락이 닿았다. 이 연결이 낯익은 타인에서 낯선 타인과 환경 속으로 그를 데리고 들어간다. 그 속에 만난 사람들은 재미나게도 낯익은 사람들의 반복이다. 한 사람이 다른 직업과 위치에서 낯익은 모습으로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역시 익숙한 일상의 변화를 우리가 쉽게 감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낯선 감정을 깨닫게 된다고 해도 K처럼 이질감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의문을 품고 K의 모험 속에 빠졌다. 비록 그 모험이 너무나도 도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주인공 때문에 분명한 한계를 보여주지만 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은 K가 느끼는 이질감이 거울 이미지와 중첩되기도 했다. 혹시 그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세계가 거울 속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작가는 그런 평이한 구성을 벗어났다. 자명종과 자신의 집을 시발점으로 삼으면서 뫼비우스의 띠 같은 환경을 구축했다. 그가 잔 곳과 상관없이 매일 7시 자명종 소리에 자기 방에서 깨기 때문이다.

K의 모험은 낯익고 낯선 세계를 떠도는 것인 동시에 자신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과거를 되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같은 사람의 반복적인 등장과 낯선 환경은 묘한 결합을 이루면서 현재가 아닌 과거 속으로 그를 데리고 간다. 그 과거는 물론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바로 기억과 추억 여행이다. 하지만 이 기억과 추억은 낯익은 타인들과 잊고 있던 자신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강한 지진은 세계를 뒤흔들어 세계의 틈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준다. 더 깊이 들어가면 머릿속이 더 복잡할 것 같다.

빠르고 흥미롭게 읽힌다. 하지만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불가해의 세계 속에서 내가 본 것은 ‘나’다. 과연 내가 살고 있는 이 낯익은 세계가 진짜인지 의문이 생긴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심오한 철학세계로 빠진다. 능력 밖이다. 이 부분은 그만하자. SF소설이라면 다중우주 혹은 평형우주 이론을 내세워 다르게 풀었겠지만 작가는 그럴 목적이 전혀 없다. 곳곳에 묻어나오는 자전적인 내용들이 바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 가독성에 비해 많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더 놀란 것은 이 작품이 작가의 첫 번째 전작 장편소설이란 것이다. 오랜만에 읽은 현대물인 것도 사실이다. 지금보다 나중에 더 많이 생각날 것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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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잠 재의 꿈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0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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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시리즈 번외편이다. 대부분 번외편처럼 이 소설도 시리즈 중에 등장하는 사람 중 한 명이 주인공이다. 놀랍게도 그 주인공이 무라젠이다. 미로 시리즈에서 어떻게 보면 미로보다 더한 존재감을 보여준 그 말이다. 무라젠이 등장한다는 사실도 흥미로운데 이 이야기엔 미로도 깜짝 출연한다. 비록 소설 마지막에 등장하는 정도지만. 그리고 현재가 아닌 과거로 돌아가서 무라젠이 왜, 어떻게 야쿠자 조사 탐정이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품어져 나오는 무라젠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이 번외편을 시리즈로 만들어도 좋을 정도로.

때는 도쿄올림픽을 1년 앞둔 1963년 9월. 그 당시 무라젠은 일본에서 지금은 사라진 직업 '특종꾼' 시절이었다. 사실 이 특종꾼과 특종을 터트리는 르포라이터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주간지에서 일하면서 기사를 썼다. 9월 5일 저녁 8시 좋아하지 않던 지하철을 타고 가던 무라젠 근처에서 폭탄이 터진다. 일본 범죄사의 대표적 미해결 사건인 소카 지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특종꾼답게 금방 소카 지로 사건을 떠올리지만 현장에 도착한 형사 이치카와에 의해 현장에서 쫓겨난다. 이 사건을 <주간 담론> 데스크에 보고를 하는데 손님과 상담중이라고 한다. 사진반을 보내라고 요청한 후 잡지사로 돌아간다. 낯선 자동차가 잡지사 앞에 서있다. 야쿠자 같은 남자들이 데스크의 안내를 받고 나온다. 그리고 무라젠을 특종꾼으로 이끈 도야마 군단의 현재와 미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 길지 않는 상황과 장면 속에서 앞으로 일어날 모든 사건의 핵심을 작가는 담아내었다. 비록 읽으면서 깨닫지 못하지만.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진행된다. 하나는 소카 지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조카를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데리고 온 다키 살인 사건이다. 큰 흐름은 소카 지로 사건이 차지하고 그 사이사이의 공간을 메우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다키의 사건이다. 특히 다키의 사건은 무라젠이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다. 이 때문에 그가 야쿠자 조직에게 도움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쏠리는 의심을 풀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데 이 과정에서 무라젠의 매력과 능력을 마음껏 품어낸다. 야쿠자 데이의 “당신은 행동력과 두뇌 모두 완벽하게 균형이 잡혔어요.”(332쪽)란 말은 그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했다. 

무라젠이 시리즈 첫 권에서 미로에게 “중요한 건 이상하다고 느끼는 감성과 왜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상상력이야.”라고 말했는데 이 한 편으로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밖으로 드러나는 것의 이면을 상상력으로 밝혀내는 그의 능력은 낱낱이 조각난 단서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복원할 정도로 뛰어나다. 거기에 그는 한때 권투를 했고 남자로서의 어느 정도 무력도 갖춰 미로의 유일한 약점을 지울 수 있다. 그리고 미로가 가진 행동력과 두뇌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알려준다. 가끔 미로가 의뢰한 사건 조사 중 벽에 부딪혔을 때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바로 이런 경험과 능력 때문이다.

미스터리 작가에게 미해결 사건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그런 점에서 소카 지로 사건에 대한 작가의 해답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 시대의 자료를 가지고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정리하고, 분석하면서 풀어내는 가정은 시간이 지났기에 가능한 추리다. 이해 당사자들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사라졌기에 더 분명하게 그 사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이란 공간이기에 이런 대담한 추리가 용납되고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에 매력적인 주인공 한 명을 넣는다면 금상첨화인 것은 당연하다. 

단순히 미해결 소카 지로 사건과 살인 사건만 다루었다면 흥미로웠을지 모르지만 풍성함이나 인간적인 매력은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 시대의 풍경을 정확하게 그려내면서 무라젠 주변 사람들을 같이 보여주었기에 이야기는 풍성해지고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특히 시대의 풍경은 현재와 상당히 다른데 이것을 생각하면서 읽게 되면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 친구 고토와 짝사랑 사나에와의 관계는 청년 무라젠의 진짜 모습을 보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미로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도 즐겁지만 무라젠의 새로운 이야기도 나왔으면 좋겠다. 이제 미로 시리즈 마지막 한 권만 남았는데 이때 만날 무라젠은 분명히 기존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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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강의
왕리췬 지음, 홍순도.홍광훈 옮김 / 김영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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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상당히 좋아하는 내가 <사기>라는 역사서에 관심을 가진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수필을 읽으면서 이 책 속에 나온 <사기> 예찬을 보고 관심을 가졌다. 사실 그 당시도 호기심 정도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 수많은 책 속에서 <사기>의 위대함을 만나게 되면서 언젠가 한 번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30권의 방대한 사서인 것도 제대로 모르고 말이다. 번역서를 제대로 읽는다 해도 수많은 주석이 붙을 것이고, 방대한 등장인물과 관계는 읽는 동안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을 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던 중 중국CCTV <백가강단>에서 저자가 방송한 것을 묶은 이 책을 발견했다. 상당히 반가웠다. 그리고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연대순과 인물 편을 섞었다. 한무제의 연대를 따라 흐르는 사이사이에 그에게 총애나 미움을 받은 인물들을 집어넣었다. 이 구성을 통해 시대의 흐름과 그 시대 인물들과 한무제의 관계를 잘 알 수 있었다. 600쪽이 넘는 분량임에도 그렇게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은 것은 바로 이런 구성과 원전이 가진 힘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저자의 박학다식한 지식과 명쾌하고 흥미로운 해석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저자가 <사기>를 해석하는 과정에 다른 사서를 같이 다룬 것은 시대와 인물을 좀더 입체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인데 많은 부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사기>에 대한 엄청난 칭찬으로 문을 연 후 경제의 열 째 아들이었던 그가 어떻게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구중궁궐의 암투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치열하다. 저자는 이 과정을 하나씩 분석하며 설명하는데 단순히 그의 노력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여자들의 도움이 지대했음을 알려준다. 그의 어머니는 당연하고 장모와 황궁의 여자들도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즉위에 도움을 준다. 이 과정은 얼마나 많은 인내력과 간절한 욕망과 함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지 보여준다. 결국 그는 16세에 즉위해 70세에 세상을 떠나는데 무려 54년 동안 황제의 자리에 있었다. 청나라 강희제를 제외하면 최대라고 한다. 조선 시대 영조 대왕이 52년 동안 왕위에 있었던 것보다 2년이 더 길다. 

긴 시간을 황제로 있다 보니 수많은 일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황제로 올랐지만 권력은 외척 등이 가지고 있었고 그는 그냥 황제였을 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권모술수를 하나씩 배우고 알게 되면서 그 누구보다 강한 황제가 된다. 이 제위 기간 동안 수많은 승상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한 동안은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지기도 했다. 승상이란 지위를 생각하면 엄청난 것인데 이것을 거부하는 인물이 나올 정도인 것을 보면 그의 독재 정치가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이 독재 정치가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그가 산 시대와 그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 있었던 한나라의 역사를 보게 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그가 흘리게 한 엄청난 피의 바다는 제외하고.

그의 제임 기간 동안 흉노와의 전쟁은 빼놓을 수 없는 논쟁이자 사실이다. 무려 44년 동안 흉노와 전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전쟁을 통해 실크로드의 일부가 개설되고, 영역이 확장된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아직 개국 초기임을 생각하면 국력의 소모가 너무 심하다. 거기에 한나라 건국과 함께 문제로 존재했던 제후들은 반드시 정리가 필요했다.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 중 유씨 황족들이 보이는 것은 그의 정통성에 대한 의문과 그가 보여준 독재에 대한 반발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 과정을 통해 그의 황권은 더욱 강력해지고 새로운 인물들과 정치 개혁이 이루어졌다.

역사가들은 그의 독재정치를 진시황과 비교를 많이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한 명은 나라를 패망의 길로 가게 만들고, 다른 한 명은 대제국의 기틀을 만든다. 이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십분 잘 살려고, 외척을 정리하는데 조금의 주저함이 없었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바로 잡는데 지체함이 없었다. 물론 그의 장기인 인재 등용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단순히 기록만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담아내어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와 암투와 인물들과 욕망들은 말할 것도 없다. <사기>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이 매혹적인 강의 속에서 눈길을 찌푸리게 하는 내용이 발견된다. 그것은 바로 하나의 중국이다. 한무제 때 현대 중국 판도의 기본 틀이 짜졌다고 말하고 사마천이 <사기>에서 [흉노열전]을 쓴 것이 중국의 일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흉노열전]을 중국 소수민족의 역사로 만듦으로써 현재 중국이 진행하고 있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기치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흉노와의 전쟁을 ‘중국민족 간 내부의 비극’으로 표현하는데 이것을 연장하면 고구려도 역시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변하게 된다. <사기>가 지닌 매력을 단숨에 확 깎아내리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앞에 나온 그의 해석을 다시 한 번 더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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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종의 요리책
카를로스 발마세다 지음, 김수진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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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넘어서는 악마적 매혹! 이라고. 글쎄. 이 말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워낙 <향수>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이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비슷한 점을 꼽는다면 더 강렬한 장면으로 채워진 요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부분은 분명히 <향수>를 넘어섰다. 정말 무시무시하고 잔혹하다. 하지만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화려한 요리법과 감정이입을 차단한 묘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면 나 자신 속에 숨겨져 있던 무언가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도 <향수>와 비교한 책에 대해 좋은 평을 하지 않았다. <향수>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주제가 다른데 억지로 붙인 듯한 광고 문구 때문에 거부반응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책도 역시 앞부분에 그런 거부반응이 있었다. 제목과 첫 장면에서 풍기는 강렬함을 감안한다고 해도 그랬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향수>와 완전히 다른 전개방식이었다. 뭐 한 인간의 집착과 삶을 다룬다는 부분에서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번 소설은 오히려 이 자극적인 제목 뒤에 감춰진 아르헨티나 현대사가 더 눈길을 끈다. 

플레이보이의 평에 ‘한 가문의 잔혹사’라는 문구가 보인다. 그렇다. 이 소설은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어떻게 요리사가 되고, 레시피를 만들고, 갑자기 죽는지 보여준다. 한 세대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을 다루는데 이 집안의 역사 속에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같이 녹였다. 동시에 이탈리아의 이민사도 같이. 사실 아르헨티나 역사에 대한 정보를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이 소설이 풀어내는 중요한 장치들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거의 궁극의 요리비법서처럼 다루어지는 <남부 해안지역 요리책>과 음식들이 침을 삼키면서 빠져들게 만든다. 

세사르 롬브로소가 처음으로 인육 맛을 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바로 이 아기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고 이 가족의 과거사가 연대별로 펼쳐진다. 이 과거사가 거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읽으면서 언제 세사르가 보여줄 끔찍한 요리가 나올지 기대(?)하게 된다. 이런 기다림의 시간 속에 펼쳐지는 한 가문의 역사는 처음 예상한 것과 너무 달라 쉽게 빠져들지 못한 부분도 많다. 하나의 긴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고 빠르게 변하면서 흐름을 끊기 때문이다. 아마 책에 대한 접근방법이 잘못된 탓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무 식인주의에 관심을 둔 것이다. 뭐 첫 장면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음식에 대한 나의 식탐을 생각하면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수많은 요리들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다양하고 화려한 요리들은 침을 계속 삼키게 만들고 언제 먹어보지 하는 상상을 끊임없이 하게 한다. 아주 가끔은 이런 화려한 묘사와 달리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도 있을 것이라는 아주 현실적인 생각도 끼어든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 상상은 금방 제압당하고 침을 흘린다. 처음 만났던 인육에 대한 요리가 나오기 전까지. 그리고는 예전에 보았던 영화나 소설 속 인육 요리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식인주의의 인문학적 정보도 동시에 지나갔다. 이런 정보들은 너무나도 간결하고 무덤덤한 묘사와 서술 속에 사라졌다. 앞으로 또 어떤 살인과 요리가 만들어질까 호기심을 불러오면서.

옮긴이의 글에서 “인류의 역사가 결국 ‘식인주의’의 반복에 불과하다”(277쪽)를 읽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음식으로서의 식인이 아닌 역사 속 장면들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얼마나 잔혹한 일들이 많았는지, 상상 그 이상의 일들이 얼마나 자주 있었는지. 또 소설 속 아르헨티나 근현대사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알게 되면 조금 생각이 바뀔 것이다. 아니면 아우슈비츠나 731부대의 생체실험과 그 부산물들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생각해보라. 그리고 작가는 “당시 아르헨티나는 온통 인육 맛을 본 약탈자들이 우글거리는 정글과도 같아서”(169쪽)라는 문장을 써 단순히 엽기, 잔혹, 미스터리를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님을 환기시킨다. 갑자기 아르헨티나 역사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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