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작은 새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고정아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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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드디어 오츠의 소설 한 편을 읽었다. 사실 집에 오츠의 소설이 몇 권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이 가질 않는다. 얼마 전 읽은 존 어빙의 경우와 유사한 이유다. 너무 유명한 작가의 경우 왠지 모르게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아마 너무 유명해 읽었다는 착각에 빠지거나 지루할 것이란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사놓은 유명작가 책이 너무 많아 선택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럴 때 보통은 가장 최근에 나온 책부터 손이 가거나 이벤트로 받아 읽은 경우다. 이번에는 후자다.

솔직히 적지 않은 분량이다. 많은 분량도 아니다. 800쪽이 넘는 소설도 즐겁게 읽은 것을 생각하면 550쪽 정도는 큰 무리가 아니다. 뭐 가끔은 200쪽 정도 소설도 아주 버거워했던 적도 있다. 분량은 흔히 하는 말로 숫자일 뿐이다. 이번 소설도 분량이 큰 문제는 아니다. 나의 집중력이 최고에 달했을 때는 휙휙 넘어갔고, 산만했을 때는 한 쪽도 힘들었다. 물론 단숨에 읽기는 살짝 부담이 되었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작가가 서술하고 풀어내는 방식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앞에 나온 중요한 핵심 내용을 너무 쉽게 읽고 지나간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두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한 명은 살인용의자의 딸인 크리스타 딜이고, 다른 한 명은 피해자의 아들 애런 크럴러다. 전체 핵심적인 내용을 이끌고 나가는 인물은 크리스타다. 그녀의 아버지 에디 딜이 경찰들에 의해 죽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첫인상은 그녀의 아버지가 흉악범 혹은 살인자였다. 하지만 이야기가 흘러감에 따라 이런 인상은 바뀐다. 그리고 아버지의 외도에 따라 산산조각난 가족의 풍경은 크리스타의 삶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거기에 살인용의자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타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동경은 멈추지 않는다. 

애런은 어머니 조이의 시체를 제일 먼저 발견했다. 그가 어머니의 나체 시신을 보고 했던 행동은 이성을 넘어 지극히 감상적이다. 크리스타에 아빠에게 빠졌듯이 그도 아버지 델로이를 사랑하고 옹호한다. 어머니가 죽던 날 아버지의 알리바이를 위증한 것과 알콜 중독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려고 노력하는 행동 등에서 드러난다. 그는 혼혈이다. 아버지가 세네카 인디언이다. 엄마는 당연히 백인이다. 미국의 인종 분류는 조금이라도 비백인의 피가 섞인 경우 백인이 아니다. 그가 혼혈인 것이 삶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주어진 환경과 더불어 자신이 선택한 삶에 의해 뒤틀린다. 

이 둘에게 과거는 빛나는 순간이 아니다. 물론 빛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조이의 죽음으로 산산조각난다. 그 이전부터 심한 균열이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완전히 깨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아버지와의 연결고리를 놓아버리지 못한다. 크리스타가 경험한 최악의 상황이나 애런의 그 이후 삶은 비참한 삶의 바닥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둘의 아버지는 강력한 용의자이기도 하다. 비록 이 두 사람 모두 아버지가 무죄라고 절대적으로 믿고 있지만. 이런 믿음과 상관없이 읽는 동안 누가 범인일까 의문에 잠긴다. 

가상의 도시 뉴욕 스파타. 그 조그만 도시의 풍경은 삭막하다. 곳곳에 드러나는 마약과 폭력은 낯설고 황량하다. 크리스타가 경험한 하룻밤은 미래의 삶에 대한 목적을 잃은 청소년들이 환락을 통한 자기파괴의 연장선이다. 모범생인 크리스타에게는 버겁고 무서운 것이고, 애런에게는 일상이지만 더 깊은 곳으로 빠지고 싶지 않은 삶이다. 특히 마약이나 살인 등과 같은 중대 범죄에 대해 애런이 가지는 거부감은 그가 가진 마지막 한 자락의 이성을 말해준다. 그 때문에 약물과용으로 죽지도 않고, 감옥에 오랫동안 갇히지도 않는다. 

두 사람을 연결하는 운명의 힘은 지독하게 강하다. 성인이 된 후 다시 만난 둘의 강렬한 열정과 탐닉은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십 수 년 동안 그들 속에 잠자고 있던 욕망이 폭발할 때, 오랫동안 자신들이 믿든 진실을 확인했을 때 그 운명은 이제 자신들의 선택으로 바뀐다. 특히 마지막에 크리스타가 보여주는 선택은 그 운명을 뛰어넘으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현한다. 운명의 영향력 아래에서 아직은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 책만 본다면 오츠의 소설에는 조금은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다른 소설을 몇 권 더 읽은 후 나의 작가 목록에 올릴지 판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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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방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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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족이란 무엇일까? 부모란 어떤 존재일까? 일상생활에서 가족과 부모는 든든한 울타리가 된다. 하지만 가끔 이 울타리는 가족이란 틀에 박혀 가족을 억압한다. 마이크와 티아 부부가 아들의 방에 실시간 엿보기 프로그램을 깔 때 그들의 의도는 단지 걱정 때문이었다. 자신들과 대화하지 않고 거부하고 반항하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혹시 나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힘든 일은 없는지 등 부모의 순수한 의도였다. 바로 이 의도에서 사건은 벌어지고, 주변으로 이어지면서 다시 가족들로 돌아간다.

첫 장면은 매리앤이 자괴감에 빠진 상태에서 납치 살해되는 부분이다. 단지 이번 살인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심어준 후 이 살인자들은 다음 납치와 살인을 벌인다. 왜 이런 끔찍한 살인을 벌일까? 다음은 또 어떤 납치 살인사건이 벌어질까? 이런 의문이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여기에 대응하여 뮤즈 수사과장이 등장하여 이 살인사건을 수사한다. 처음에 매리앤이 창녀처럼 입혀졌고 그들이 활동하는 공간에 버려졌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될 때 직감과 상황 분석 등으로 그녀는 다른 의도를 감지한다. 범인과 경찰의 대결이 전체 이야기 구조 속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이어진다.

“정말 이렇게 하고 싶어요?” 이 문장은 실시간 엿보기를 깔아준 티아의 회사 동료 말이다. 그녀는 아들 애덤을 걱정해서 그를 엿보고 싶어한다. 남편은 아내의 이 의도에 소극적으로 반대하다가 곧 찬성한다. 그도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변한 아들이 걱정되고, 또 앞으로 어떤 위협과 위험과 아픔이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몇 개월 전에 있었던 아들 친구 스펜서의 자살은 불안과 공포를 키운다. 어린 시절 그들의 부모가 자신들을 간섭했던 것을 싫어하고 반항했던 것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그렇게 변한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너도 자식을 낳아봐라! 정도랄까. 

매리앤을 살해한 내시 커플이 하나의 흐름을 구성한다면 마이크 부부의 주변이 또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아들의 자살로 삶이 완전히 깨어진 벳시 힐과 아들의 병으로 숨겨진 과거나 드러나는 수전 로리먼과 선생의 말실수 한 번으로 아이들에게 왕따 당한 야스민의 가족 등이다. 작가는 전혀 관계없는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면서 이들이 과연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마지막에 어떻게 풀려나갈지 기대하게 만든다. 이미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은 적이 있는 독자라면 당연하다. 그의 번역된 작품 모두를 읽은 나의 경우는 더욱더.

조각처럼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각 이야기는 중요한 두 줄기를 따라 흘러간다. 이 두 줄기도 끝내는 하나로 합쳐진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성이고, 필력이 없다면 힘들다. 내시가 살인을 하면서 찾고자 하는 비디오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형사들은 어떻게 내시에게 다가갈지, 마이크 부부의 바람으로 인한 엿보기 자신들의 울타리를 벗어나려고 하는 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그 행동이 어떤 연쇄작용을 불러오는지, 또 다른 자식 가진 부모들의 불안과 걱정과 공포와 바람은 어떤 것인지.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사이에 살인자의 이야기도 들려줘야 한다. 

이 소설의 바탕에 깔린 것은 바로 가족주의다. 내 가족이다. 마이크의 친구 모가 애덤의 행방 때문에 애덤 친구 아버지를 찾아갈 때 아버지 대 아버지로 이야기하라고 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부모에게 보이는 것은 자기 자식들뿐이기 때문이다. 형제자매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들만이 중요하고 다른 가족은 이차적인 문제다. 보수적인 가치관이라도 할 수 있지만 이것은 점점 강해진다. 물론 이 가족에 대한 불안과 허구도 존재한다. 이것을 보여주는 가족이 바로 수전과 야스민의 아버지 가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고자 하는 것이지 그들 자체가 아니다. 가족의 울타리가 또 얼마나 허술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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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의 눈 - 위대한 탐험가가 남긴 경이와 장엄의 기록
퍼거스 플레밍.애너벨 메룰로 엮음, 정영목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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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탐험가가 남긴 경이와 장엄의 기록이란 부제와 함께 한 남자의 사진이 시선을 끈다. 어린 시절 누구나처럼 탐험은 위대한 환상이자 로망이었다. 먼 곳으로 떠나지 못하니 집 근처를 돌아다니며 모험을 즐겼고, 만화나 영화 등을 통해 만난 모험가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 볼일 없고 유치한 곳들이지만 그 당시는 그 무엇보다 무섭고 긴장되며 환상을 불러오는 모험이었다. 자라면서 책 속에서 만난 탐험가의 이름과 업적은 지금도 강하게 머리 한 곳을 차지한다. 몇몇 탐험가는 허위로 밝혀지고 과장되게 평가된 업적이 수정되기는 했지만.

모두 61명의 탐험가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후 남긴 54편의 탐험기가 실려 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모험가를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탐험가 중 처음 듣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학창 시절 배우고 읽은 책들 대부분이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인물들 중심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평가가 약한 인물은 자연스레 낯설다. 이런 종류의 책을 만날 때 늘 경험하는 일이지만 부족한 지식과 함께 안타까움을 느낀다. 특히 이 탐험기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생각할 때는 더욱 그렇다.

편집자 서문에서 “불가피하게 누가 탐험가이고 누가 아니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탐험가의 정의는 ‘새로운 탕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발견은 무엇이고, 새로운 땅은 무엇인가?”(8쪽)라고 묻는다. 어느 정도 서구의 시각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아직 오리엔탈리즘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편집자들은 “탐험가란 미지의 땅의 지도를 그리는 사람, 르포르타주를 쓰는 것보다는 조사를 이유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으며, 최초로 그렇게 한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었다.”(9쪽)고 정의한다. 이 책을 읽기 전 머릿속에 꼭 담아둬야 할 대목이다.

제목처럼 이 책은 편집자들이 한 것은 탐험가들의 기록을 발췌해서 나열한 것이 전부다. 탐험가에 대한 간략한 해설이 각 탐험기 앞에 나오지만 본문은 탐험가들의 기록이다. 그들이 듣고 보고 기록하고 그리고 촬영한 것을 선별하여 실었다. 당연히 글들은 각양각색이다. 쉽게 읽히고 해석되는 글도 있지만 너무 장황한 묘사 때문에 집중력이 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기록이 탐험가들이 직접 쓴 글이다. 결코 평탄하고 쉽지 않았을 탐험 도중에 그들은 잠깐 틈을 내어 기록한 것이다. 이 부분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탐험 도중 죽고, 그 후 후발대에 의해 기록이 발견되어 알려졌을 때는 더욱더.

개인적으로 이 책의 매력은 그림과 사진들이다. 글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루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전체가 아닌 일부만 발췌했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가끔 탐험가의 기록에서 처절함이나 공포, 또는 이상할 정도의 여유를 발견해서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사진이 내용을 압도한다. 낯설고 위험한 곳을 담아낸 한 장의 사진은 수많은 글 이상의 파급력을 가진다. 사진에 눈이 빨려 들어가서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멋지다, 대단하다, 저랬구나 등의 감탄사를 토해낸다. 어쩌면 이런 사진 때문에 글에 더 집중을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탐험가들이 왜 이런 위험한 일을 할까? 등산가에 산을 왜 오르냐고 물으면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이란 답을 내놓는다고 한다. 단순히 이 일을 즐기기 위해서, 삶이기에 그렇다는 의미다. 꽤 많은 탐험가들이 이 일을 즐기기도 하지만 호승심이 강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세계최초, 인류 역사상 처음 등과 같은 수식어는 이를 더욱 부채질한다. 조금씩 나오는 국가 간, 개인 간 경쟁은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가게 한다. 이때도 그들은 기록을 남긴다. 바로 그 결과물의 집합체가 바로 이 책이다. 탐험가가 가지 않은 곳은 없다. 지구의 가장 높은 곳과 가장 깊은 곳을 넘어 달까지 가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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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상자 꿈꾸는 달팽이
루스 이스트햄 지음, 김경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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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구나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잊고 싶은 만큼 그 기억은 강렬하다. 잊고자 노력해도 잊혀지지 않기에 잊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삶은 이렇게 잊고 싶은 기억을 되살려낸다. 그 당시의 아픔, 공포, 고통, 두려움, 좌절 등등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난다. 닫아두었다고 생각한 기억의 상자가 열릴 때 있는 힘껏 막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조그만 틈만 있어도 조금씩 흘러나와 과거의 그 순간으로 우릴 데려간다. 아주 가끔은 이 상자의 개봉이 아픔을 넘어 치유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보스니아 내전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알렉스, 그는 영국으로 입양되었다. 양부모의 사랑과 양할아버지의 보살핌으로 비교적 평온한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가 오면서 자신의 위치를 빼앗긴 레너드는 그를 질투하고 괴롭힌다. 이 둘이 티격태격하는 장면은 큰 후에 양자로 입양되었을 때 일어나는 일 중 한 가지다. 이런 보통의 일상 속에 그를 그대로 받아주는 가족이 있다. 바로 양할아버지 윌리엄 조지 스미스다. 그는 알츠하이머병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부모는 그를 요양원에 보내려고 하고, 할아버지는 그곳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이런 상황에서 알렉스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할아버지의 기억을 스크랩한다. 바로 거기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알렉스와 할아버지를 연결시켜 주는 것이 있다. 전쟁이다. 이 두 사람은 전쟁으로 가족을 잃었다. 할아버지는 2차대전 때 형을, 알렉스는 보스니아 내전 때 부모와 동생을 잃었다. 이 두 사람에게 그 당시의 기억은 잊고 싶은 것이다. 누가 이것을 깨우려고 할 때 거부감을 느끼고 절대적으로 반대하는데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알렉스는 할아버지가 요양원으로 가는 것을 막고 싶다. 병으로 고생하는 도중에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반응과 행동은 의문으로 가득하다. 이 의문을 파헤치면서 잊고 싶어하던 기억을 되살려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비밀이 서서히 드러난다. 

할아버지는 콘치로 불렸는데 이 말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의미한다. 처음 이런 제도가 2차 대전 영국에 있었다는 것을 읽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전쟁 당시 겪어야 했던 비난과 폭력 등을 생각하면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안타깝다. 이것은 다시 할아버지를 들들 볶으면서 자신들의 비통함을 달랬을 것이라는 커비 선생님의 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비겁하고 나약한 인간들이 자신들의 아픔과 고통과 비겁함을 숨기기 위해 그를 만만한 표적으로 삼고 공격한 것이다. 쉽게 말해 남탓을 한 것이다. 좀 심하게.

할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됭케르크에서 사람을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 때문에 나라에서 훈장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의 노력과 용기는 동네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바로 위에 말한 이유 때문이다. 여기에 그는 그때 받은 충격과 상실감과 공포를 기억의 상자 속 깊은 곳에 묻어두려고 한다. 미스터리처럼 이 과정을 다루는데 뻔한 부분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사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비밀은 너무 쉽게 드러난다. 이런 미스터리의 약점은 이 소설에서 중요하지 않다. 전쟁으로 큰 아픔과 공포와 상실을 겪은 두 사람이 시대를 초월해서 자신들을 마주하는 것이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가족들이 몰랐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화해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약간은 작위적인 마무리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그것을 뛰어넘는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였던 할아버지의 과거와 됭케르크의 사실은 왜 전쟁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돼는 지 알려준다. 할아버지를 공격했던 두 사람이 사실보다 자신들의 바람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고 그를 공격한 것은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할아버지가 찍은 사진을 전시하려고 했을 때 정부기관이 사찰하고 막았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불편한 진실은 관료를 괴롭히고 많은 사람들의 환상을 깨트린다. 총을 들고 싸운 사람만 용기 있는 국민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나 뒤에서 전쟁을 독려하는 사람들은 그 참혹한 현실이 주는 공포, 두려움, 고통, 좌절, 포기, 용기 등을 결코 알 수 없다. 실제 이야기 속에 든 것보다 그 너머에 있는 이야기들이 더 많은 생각의 가지를 치게 하고 고민에 잠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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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왼팔
와다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들녘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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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노보우의 성>을 재미있게 읽었다. 아기자기한 이야기 구성에 개성 강한 캐릭터를 내세워 읽는 즐거움을 줬다. 그러니 이번 작품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제목만 본다면 왠지 무협의 느낌이 난다. 야구 소설이라면 왼손 투수가 떠오르겠지만 시대 배경은 센고쿠(전국)시대다. 사실 일본 역사에 정통하지 않다보니 센고쿠 시대가 어디쯤인지 모른다. 이야기 중에 나온 해설을 보면 그 유명한 오다 노부나가가 20세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보통 어떤 시대인지 몰라도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지장이 없다. 그렇지만 이 시대는 조총이 전쟁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전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조총의 위력과 가치를 잘 몰랐다. 이것을 가장 잘 활용한 인물이 오다 노부나가다. 시대 배경은 바로 노부나가가 3열로 조총부대를 꾸려 전국을 휘어잡기 바로 얼마 전이다.

노부나가 이야기를 해서 그가 이야기에 중심적으로 등장할 것 같지만 아니다. 때는 1556년 전국시대. 각 영지의 다이묘들 싸움이 끊이지 않던 시기다. 그중 도자와 가문과 고다마 가문이 싸운다. 병사의 수 등을 생각하면 도자와 가문이 밀려야 하나 이 가문에는 공로 사냥꾼으로 불리는 한에몬이 있다. 물론 고다마 가문에도 기베에가 있다. 하지만 무게의 추는 한에몬 쪽으로 기운다. 이런 개인 역량 차이에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한에몬이 처한 상황이다. 도자와 가문을 앞으로 이을 즈쇼가 해방꾼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공적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가문의 병사를 위태롭게 만들지만 한에몬의 존재로 위협은 벗어난다. 비록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원제는 <고타로의 왼팔>이다. 고타로는 열한 살이다. 등치만 본다면 맹장 한에몬에 뒤지지 않을 정도고 청소년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소년 왠지 허술하다. 너무 착해 친구들의 놀림을 받는다. 할아버지와 둘이 함께 사는데 이런 괴롭힘을 받으면서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한다. 아이의 마음이다. 이 마음 때문에 그가 가진 재능을 마음껏 펼쳐내지 못한다. 거기에 중요한 요인 하나. 그것은 이 아이가 왼손잡이란 것이다. 보통의 조총은 오른손잡이용이다. 겨냥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가 왼손잡이 조총을 쥐고 쏘았을 때 신의 왼팔이 된다. 그리고 그 자신도 모르게 주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뒤흔들리기 시작한다.

병기의 발전과 시대의 흐름은 늘 적응의 문제를 불러온다. 이 시대 무장들은 조총을 그렇게 무시무시한 무기로 보지 않았다. 그 무기를 제대로 활용할 줄도 몰랐고 이전의 가치관에 휩싸여 있었다. 무사가 보여주는 용기와 기백은 적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 바로 이 때문에 한에몬이 적진을 향해 달릴 때 적들이 도망가는 것이다. 덕분에 그의 무공은 더 높아진다. 하지만 개인의 역량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 벽을 단숨에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가 무사의 자존심과 명예를 버리는 계기가 있다. 바로 부하들의 생존이다. 살기 위해 인육까지 먹는 그들을 보았을 때 그 자신도 어느 정도 괴물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다른 괴물을 전장으로 불러오게 되지만.

시대와 재능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시대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 재능은 그냥 신기할 뿐이지만 때를 만나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한에몬의 재능이 시대의 변화 속에 그 끝자락을 차지한다면 고타로의 재능은 새로운 시대를 보여준다. 바로 저격수로서의 재능이다. 물론 무사로서 한에몬의 재능은 탁월하다. 하지만 그의 가슴 속에 자리한 무사 정신은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고타로의 재능도 너무 빠른 것인지 모른다. 너무나도 위협적이고 강렬해서 주변이 공포에 잠기고 없애려고 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현대라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쉽게 땄겠지만.

단숨에 읽히는 매력은 변함없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캐릭터의 개성이 부족하고 이야기 전개는 조금 단순한 느낌을 준다. 노보우의 개성이 너무 강해 그런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해설자로 등장해 시대를 설명하는 부분은 조금 어색한 기분도 들지만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특히 고타로의 경이적인 사격술에 대한 해설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왜냐고?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빠른 속도감과 가지를 많이 친 전개는 몰입도를 높인다. 작가의 또 다른 소설에도 자연스럽게 눈길이 갈 것 같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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