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만나요 - 책으로 인연을 만드는 남자
다케우치 마코토 지음, 오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누키 우동을 먹고 싶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일본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서 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면을 좋아하는 식성에 책에서 나온 맛에 대한 표현들이 먼저 뇌를 자극하면서 환상을 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은 후 지인들을 만나 일본으로 사누키 우동을 먹으로 가고 싶다고 하니 너가 화성인이냐, 구준표냐 하는 질타가 이어졌다. 단지 먹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을 뿐인데.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바치는 <해변의 카프카>의 변주곡이란 광고 글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 전에 읽은 소설이라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지만 워낙 좋아하는 작가이다 보니 눈길이 절로 간다. 그리고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이런 표현을 쓴 것일까 의문이 생겼다. 제목만 놓고 본다면 도서관이란 공간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희미한 기억 속에 남은 <해변의 카프카>와 이것을 연결할 고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고민하다 펼쳐 읽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몰입하기 시작했다.

먼저 마흔다섯 살 소설가 고마치 다케도가 등장한다. 그의 손에는 하루키의 신간 <해변의 카프카>가 들려있다. 신간이란 글에 출간된 연도를 찾아보니 2004년다. 이 신간을 들고 그는 여행을 떠난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과거를 추억하고 회상하면서 무작정 길을 떠난다. 이와 동시에 와타루와 나즈나가 등장한다. 이 둘은 착각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이름에 대한 착각이다. 자신들이 본 다른 책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 똑같았다. 이 착각이 연애로 이어진 것은 물론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둘의 이야기가 한 축을 맡는다.

고마치 다케도와 이 두 커플을 번갈아 등장시켜 이야기하는 구성이다. 중년의 소설가가 현실보다 과거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면 20대의 젊은 커플은 현실 비중이 더 높다. 이 둘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 둘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날까 계속 궁금했는데 바로 그 장소가 사누키 우동으로 유명한 다카마쓰의 우동 맛집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역시 하루키의 소설들에 대한 단상들과 나의 기억들이 교차하는 것과 도서관을 배경으로 나오는 다케도의 책 이야기들이다. 책 부록으로 작품 속 도서목록이 실려 있는데 많은 참고가 되었고 독서욕을 자극한다.

소설은 자극적인 내용이 없지만 끝없이 시선을 고정시키게 만든다. 잔잔하게 흐르는 내용 속에 책 이야기가 나오고 그 속에 추억이 담겨 있는데 이것이 가슴 한 곳에 조용히 다가온다. 학창시절 다케도가 경험한 도서관의 풍경과 읽었던 책에 대한 감상은 한때 그렇게 열심히 들락거렸던 도서관을 떠올려주면서 그 당시 읽었던 책들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이런 비슷한 경험의 공유가 더 몰입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이 두 이야기를 적절하게 끊고 이어가면서 접점을 찾아낸 작가의 뛰어난 연출과 담백한 문체다. 

이 둘의 이야기 속에 내가 더 집중한 부분은 역시 나와 나이가 더 가까운 다케도다. 그가 독서의 재미를 이야기할 때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아직 읽지 않은 소설에 대해 극찬을 늘어놓을 때 빨리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생긴다. <해변의 카프카>에 대한 극찬은 나의 저질 기억 속에 그렇게 빠져들었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과 충돌하지만 또 다른 하루키의 소설들은 얼마 전에 읽은 하루키의 <잡문집> 덕분에 조금 더 깊게 다가왔다. 젊은 커플의 행동은 지나간 시절의 한 자락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주면서 잊고 있던 하루키의 첫 만남을 떠올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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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백 무협 단편집 - 마음을 베는 칼
좌백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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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좌백의 소설을 읽었다. <꿈을 걷다: 2009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에서 그의 단편을 한 편 읽었지만 이때는 판타지였다. 그 후 나온 후속편은 아직 읽지 않았는데 이번 단편집에 실려 있다. <마음을 베는 칼>이다. 이 단편집의 표제로 나온 작품이기도 하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어떤 단편이 이전에 읽은 것인지 혼란이 생겼다. 아마 이전에 여기저기에서 읽은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이 단편집에서 보여주는 몇 개의 중요한 설정이나 전개가 기존 무협과 비슷한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비정강호(非情江湖). 이 단편집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특히 앞의 세 편은 협객의 강호행은 없애고 비정한 강호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초월적인 무공을 펼치기보다 현실 앞에 너무나도 작아지고 변하는 인간의 삶과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형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신 자객열전>의 등장인물들은 그래서 더욱 비정하다. 자객이 되자고 하지만 죽여본 적이 없어 주저하거나 남을 원망하고 저주하다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거나 배고픈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객의 도구로 전락하거나 은혜를 갚고자 하는 의도가 오히려 독으로 변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무협지-정생, 강호유람기>는 강한 무력 앞에 너무나도 힘없는 한 인간의 행적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다. 그렇게 죽이고 싶어 했던 인물을 자신 속에서 발견하는 순간 그 변신은 가속화된다. 이 단편을 읽고 난 후 군 폭력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악순환의 연속이 가장 많이 벌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협객행>은 제목과 달리 현실에 나름대로 적응하려는 마을 사람들의 삶이 시선을 끈다. 거기에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편을 옹호하고 비호하는 아내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이것이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도(死刀)와 활검(活劍)>은 무협에서 많이 다루는 소재 중 하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마달의 무협 중 한 장면이다. 아마 더 찾아보면 그 이전에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나의 기억은 그곳이 처음이다. 당연히 제목은 기억하지 못한다. 마지막 대사도 역시 다른 무협 속에서 몇 번인가 읽은 적이 있다. 표제작인 <마음을 베는 칼>도 낯설지 않다. 고룡 무협의 향기가 느껴지기 때문일까? 이것 또한 정확한 출처를 기억하지 못한다. 저질 기억력 탓이다. 하지만 간결하면서도 빠른 진행은 읽는 재미가 대단하다.

<조선군웅전(朝鮮群雄傳) 초(抄)>는 아쉽다. 좀더 장편으로 개작할 수도 있을 텐데 빨리 마무리한 느낌이다. 마지막에 주인공의 정체가 드러날 때 색다른 이야기로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조선을 배경으로 한 편의 무협을 쓴다고 해도 좋을 텐데. <호랑이들의 밤>은 현대 속에서 전통 무술을 찾는 여정을 다룬다. 암시와 복선을 깔고 현실과 상상을 뒤섞어 기존 가치관을 뒤집어 놓을 때 그 빛이 발한다. 현대물로 이야기를 더 만들면 어떨까? 기대된다. 

<쿵푸마스터>는 <비적 유성탄>의 후일담이다. 시작은 아르투르 페레스 레베르테의 <검의 대가> 오마주지만 금방 왕필로 넘어간다. 중국 무술의 고수가 드라큘라와 싸운다는 설정인데 묘하게 이야기의 흐름이 이어진다. 아마 <야광충>의 주인공이 흡혈귀였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무리하게 추측해본다. 굴곡이 많았던 <비적 유성탄>의 완간을 생각하면 이 단편의 가치는 더욱 귀하다. 뭐 <혈기린외전>의 왕일과 이름을 혼동하였지만 작가가 고맙게도 중간에 구별해줘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동양의 무술 고수와 서양 요마의 대결이란 구도를 장편으로 확대한다면 좀더 색다른 재미가 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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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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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었다. 집에 사 놓은 책이 몇 권 더 있는데 왠지 손이 가질 않았다. 그 유명한 <도련님>이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조차 읽지 않았다. 기억이 정확하면 마지막 완간 소설이라는 <한눈팔기>가 유일하다. 그 당시 쓴 서평을 찾아보았는데 그 내용을 잘 파악하지 못하겠다. 그 당시 완전히 매혹되지 않았고, 아직 인생을 몰라 몰입하지 못했다는 글이 보인다. 그 느낌이 지금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들었으니 나의 성장이 참 더디다.

주인공 소스케는 평범한 공무원이다. 앞부분에서 일상의 풍경이 약간은 느긋하게 펼쳐진다. 그의 하루와 일상은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 시대 상황을 어느 정도 감안한다고 해도 그가 보여주는 행동과 심리는 나도 그렇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평온한 일상 속에서 하나씩 문제가 드러난다. 첫 번째는 동생의 학교 문제고, 두 번째는 이 부부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이고, 마지막은 이 부부의 과거로 인한 아픈 상처다. 간단하게 세 부분으로 나눴지만 실제 삶이 어디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되겠는가. 그리고 하나씩 드러나는 과거와 현실은 앞부분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흘러간다.

소스케와 오요네 부부의 금슬은 정말 좋다. 처음에는 그 일상의 풍경에 빠져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점점 진행되면서 그 일상 속에서 사랑이 하나씩 드러났다. 하나의 유기체 같다는 설명은 이 부부의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데 왜 이 부부 사이에 아이가 없을까 의문을 품기 시작할 때 불행했던 과거사가 밝혀진다. 무려 세 번에 걸친 유산과 사산 등은 읽는 이로 하여금 안타깝게 만들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의 사랑은 변함없다. 다만 이 둘이 만나고 결합하게 된 과거만이 불안과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소설을 읽으면서 특히 시선을 간 부분이 있다. 잠시 나온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이다. 분명 그 시대에 조그만 사건이 아니었을 텐데 작가는 비교적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간다. 당연히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한 줄도 없다. 한국인이기에 조금 아쉬운 대목이자 나쓰메 소세키가 과연 어떻게 이 사건을 보는지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은 그냥 지나가는 하나의 뉴스일 뿐인지도 모른다. 이 역사적 사건이 그들에게 지니는 비중과 개인의 일상을 비교하면 당연히 무게의 추는 일상의 삶 쪽으로 기운다. 아마 이것은 현재의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소설은 분위기의 변화가 몇 번 있다. 평온한 일상이 문을 열었다면 동생과 작은 아버지와 관련된 금전 문제가 조그만 파도를 만든다. 이 파도는 현재와 미래의 삶을 결정한다. 풍족하지 못한 삶일 경우 이것은 더 심하다. 중반에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이유가 나오고 오요네가 아파할 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지속된다. 이 불안감은 이 부부 사이의 과거가 나오고, 그 당사자의 이름이 갑자기 등장하면서 더욱 고조된다.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옛 친구이기에 그의 괴로움은 깊어지고 도망이란 선택을 한다. 완전한 해결책이 아님을 그도 알고 있지만.

지난번보다 더 쉽게 읽었다. 소세키에게 조금 적응한 것일까. 아니면 예전에 소세키가 한 아줌마 몸에 빙의한 일본 드라마 때문에 낯설지 않은 것일까. 분명한 것은 지금도 역시 소세키의 매력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금슬 좋고 은근한 애정이 넘치고 부부를 보면서도 말이다. 그러나 20세기 초 도쿄의 풍경과 일상이 세밀하게 그려지는 동시에 그 속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삶이 잔잔하게 가슴 속으로 다가온다. 다만 아내의 봄을 기뻐하는 말에 대한 답으로 또 겨울이 올 것이라고 할 때 이 부부의 불안감이 그렇게 쉽게 사라질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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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사는 남자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손선영 지음 / 청어람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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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인 한국 추리소설이다. 백용준 형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합작-살인을 위한 살인>이 첫 작품인데 아직 읽지 않았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이 시리즈에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 그리고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그것은 아직 이 소설 속에서 끝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간단한 단상이 먼저 떠오른다. 아마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나 내용보다 먼저 지명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창원과 김해와 송파구가 작가의 이력 속에 어떤 위치를 차지한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말이다.

한 남자가 주민 센터에 주민등록을 살리려고 들어간다. 그의 이름은 이지훈이다. 접수를 받은 후 며칠 뒤에 주민등록증을 찾아오라고 한다. 다시 온 그를 보는 여직원의 모습이 불안하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그는 주민 센터를 도망쳐 나온다. 이런 그를 쫓는 형사가 있다. 그런데 그를 이대형이라고 부른다. 어! 뭐지? 이 차이가 뭘까? 살짝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은 앞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그가 만난 여직원과 그를 쫓던 형사의 정체가 드러난다. 형사는 백용준이고, 여직원은 그와 선을 본 박미숙이다. 

군대에서 불명예제대한 양 상사가 등장한다. 그는 흥신소 직원이다. 큰 규모가 아닌 사장과 단 둘이 일하는 곳이다. 보통의 삶이 아닌 어둠의 기운이 느껴진다. 왜 그가 등장한 것일까? 이지훈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짧게 이런 의문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의 삶이 간략하게 요약되어 나오고, 과거 김 사장과 함께 한 일에 대한 A/S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간다. 여기에 그를 죽이려고 공격하는 이구아나가 등장한다. 왜 그를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물론 공격은 그에게만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무실은 뒤집어졌고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그가 사랑하는 미스 김이 시체로 발견된다. 

백용준은 이대형 때문에 10년 전에 있었던 장대한 사건 관할 김해 경찰서에 자료를 요청한다. 그런데 이 자료를 요청하거나 찾는 사람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한 형사가 있다. 황재현이다. 이 소식을 듣고 그는 상사에게 보고 한 후 송파경찰서로 백용준을 찾아간다. 그는 장대한 사건이 완전한 살인사건이라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의혹투성이 사건이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의혹이 생기는 사건이다. 그리고 사실 황재현은 이 소설에서 백용준보다 더 많은 활약을 한다. 사건의 핵심에 다가가고 범인과 사투를 벌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이지훈이 주민 센터에 주민등록을 다시 살리러 가면서 생겼다. 그를 이대형으로 생각하게끔 모든 전산자료는 바뀌어있다. 지문마저도 변했다. 이지훈의 과거를 보면 분명히 이대형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자료는 그를 이대형이라고 말한다. 이 모순에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연쇄반응이 생긴다. 과거 사건을 재조사하는 형사와 이지훈을 찾아 없애려는 살인자와 그 사건과 연관을 가지고 있는 흥신소 사람을 죽이려는 살인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 드러나는 관료 행정의 문제점이 하나씩 드러난다. 이것은 최근에 통과한 전자주민증에 대한 불안감도 고조시킨다. 행정 편의주의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 사건에 연관된 사람들을 다양하게 등장시키고 사연을 들려준다. 개별적인 사건이 가리키는 지점을 보게 되면 이지훈이 중심에 있다. 이것은 그가 대단한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 이름과 정보와 원래 실체가 어긋나면서 생긴 문제다. 최악의 상황 중 하나를 가정한 것인데 왠지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한 살인용의자를 잡으려는 노력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국가의 근본을 뒤흔드는 사건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 녹여낸 사회비판과 풍자 등은 날카롭고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경찰에게 바라는 바를 적절하게 보여준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앞에서도 썼지만 특정 지명에 눈길이 간다. 아마 내가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중간에 분위기와 사건이 살짝 바뀌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또 다른 사건을 암시하는데 과연 시리즈 다음 권에서 해결될지 모르겠다. 백용준 시리즈라고 하지만 그의 활약이 미미했던 것도 역시 아쉽다. 사회파 추리소설을 내세우고 출간되었는데 중간에 다른 이야기를 집어넣으면서 약간 혼란스런 부분도 있다. 물론 이 부분이 다른 사건을 일으키고 앞의 사건과 연관성을 가지지만 말이다. 가독성이 좋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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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아데나 할펀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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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지금 생각하면 정신없이 일하던 시절이었다. 누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을 부르면서 다가오는 서른을 두려워할 때 나에게는 그냥 무덤덤한 일상의 하루였었다. 물론 지금과 비교하면 체력과 힘과 몸매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세월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가 나에게 다시 돌아갈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는데도 아마 이 나이는 아닐 것이다. 차라리 20대 초반이나 30대 초반 정도를 바란다. 20대는 무모함과 다양함을, 30대 초반은 약간의 사회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좀더 편안하게 삶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 중 주인공은 자신의 스물아홉 살 때를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 소원이 이루어진 하루 동안의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이다.

일흔다섯 살 생일을 맞이한 엘리는 자유롭게 살아가는 손녀 루시를 보며 스물아홉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소원을 빈다. 그런데 다음 날 그녀는 스물아홉 살로 다시 태어난다. 젊어진 것이다. 안경 없이도 뚜렷하게 보이는 사물들과 단단한 가슴과 근육들, 오랫동안 걸어도 전혀 힘들지 않는 체력 등은 탱탱한 피부와 함께 이전에는 몰랐던 그녀의 매력을 깨닫게 만든다. 젊으면 하고 싶었던 일들이 있는 그녀이기에 이 놀라운 변신은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리고 이 변신으로 인한 문제들도 같이 보여준다. 이 하루 동안의 여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돌아본다. 약간 뻔한 전개와 결말이지만 유쾌하고 즐겁고 가슴 속으로 여운이 파고든다.

다시 젊어진 나를 본다면 어떨까? 엘리는 깜짝 놀란다. 현실감이 없다. 이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린다. 친구 프리다의 전화를 받으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놀랍고 두렵다. 변한 자신을 보고 놀랄 가족과 친구 때문이다. 실제 젊어진 그녀를 보고 손녀 루시가 얼마나 놀랐던가. 간단한 인증 절차를 거쳐 쉽게 할머니임을 믿지만. 이렇게 할머니와 손녀는 하루 동안 누릴 젊음을 위해 머리와 화장 등을 새롭게 한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엘리는 젊을 때는 몰랐던 그녀의 미모를 깨닫고 남자들의 시선을 즐긴다.

엘리와 루시가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한다면 딸 바바라와 친구 프리다가 또 다른 축을 맡는다. 프리다가 엘리와의 통화와 엘리의 집에서 만난 젊은 엘리 덕분에 의문을 품게 된다. 당연히 그 딸인 바바라에게 전화한다. 바바라는 엄마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하고 열정적이고 저돌적으로 상황에 부딪히는 인물이다. 반면 프리다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할머니다. 이 묘한 결합으로 인해 좌충우돌 만들어지는 사건들은 이 소설에 코미디 요소를 가져다준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가장 유쾌하고 재밌는 장면을 만들 사람들이 바로 이 둘일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이 지닌 콤플렉스는 엘리의 모험으로 인한 자기 성찰 등으로 변한다. 강함 속에 숨겨진 연약함이나 조용하고 둔한 듯한 일상 속에 숨겨진 현명함이 밖으로 드러난다.

소년이나 소녀가 갑자기 어른이 되는 영화나 소설은 가끔 나온다. 그 반대의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나의 저질 기억력에 의하면 그렇다. 그러나 여기에 개성 강한 인물들을 넣어서 변신한 할머니와의 긴장감을 불어넣은 것은 비슷한 설정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년이나 소녀는 성인이 되어 경험할 것을 미리 했다면 할머니의 지나간 시절에 경험하지 못한 것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을 말이다. 세대차나 변한 세상을 드러내기에 이보다 좋은 설정은 없을 것이다. 덕분에 예상하지 못한 미국의 수십 년 전 세태를 살짝 들여다보게 되었다. 또 양념처럼 곁들여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사랑에 대한 고민과 사연들은 잔잔하게 가슴 깊은 곳으로 스며들면서 조용한 울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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