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하라 - 박노자, 처음으로 말 걸다
박노자.지승호 지음 / 꾸리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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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하라. 뭔가 어감이 이상하다. 박노자의 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 나만은 아닌 모양이다. 진보신당 대표 홍세화 씨도 약간 어색했던 모양이다. 그는 이 단어를 ‘좌파, 좀 제대로 하라.’(8쪽)로 해석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종북좌파가 아니라 좌파라고 칭하는 사람들에 대한 박노자의 일갈인 것이다. 읽는 동안 내 속에 내재해 있던 민족주의나 얼치기 민주주의를 다시 느낄 수 있었고, 감성인지 이성인지 잘 모를 것들이 그의 주장 중 일부가 너무 이상적이라고 태클을 건다. 그리고 그가 너무 급진적으로 변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사회가 너무나 보수화된 거라는 대답을 들려줬다는 말에 다시 한 번 더 나와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된다.

모두 여섯 꼭지로 나누어져 있다. 이 중에서 네 꼭지는 인터뷰어 지승호 씨가 skype를 통해 장시간 영상 인터뷰한 것이고, 뒤 두 꼭지는 진보신당 비례대표에 출마한다는 소식 후 이메일로 인터뷰한 것이다. 이 사실은 에필로그를 통해 알려준다. 그리고 인터뷰 문답을 통해서 그와 박노자 사이에 있었던 인터뷰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통해 이루어졌는지 알게 된다. 박노자의 변함없는 촌철살인과 풍부한 상식과 지식과 통찰력은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내 이성을 움직이게 만든다. 물론 감성도 같이 움직이며 나의 한계를 느끼게 만든다.

인터뷰어 지승호를 통한 인터뷰 내용이다보니 인터뷰어의 준비와 노력이 필수다. 그가 어떤 질문을 하고, 그 답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도출할 것인가가 중요한데 개인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럽다. 박노자의 책 몇 권을 읽고 그를 잘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던 나에게 그가 얼마나 비판적이고 좌파인지 잘 드러내서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급진적이라고 평가하게 된 이유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는데 그가 지적한 것처럼 더욱 더 보수화된 한국사회 때문에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전에 읽었던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그가 말한 내용 중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통합진보당 사건과 연결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 있다. 자유주의자 유시민과의 결합이 곧 파국으로 갈 것이라는 내용도 있지만 “급진분자들은 (의회)민주주의 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할수록 자신들 스스로가 보수화의 길을 걸어 그 바깥의 사회와 동질화되는 것”(60쪽)이라는 말이다. 통진당 당권파의 주장대로 이것이 마녀사냥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드러나고 있는 사실만 놓고 본다면 이미 그들은 신한국당의 그것과 별다른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노조 위원장이 되기 위해 몇 억이 들었다는 소문을 생각할 때 이 땅의 진보세력이 과연 제대로 된 좌파인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인터뷰 중에서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에 대한 정보들은 기존에 알고 있던 사실들을 능가한다. 언론에 의해 복지천국이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비춰진 그 나라들이 현실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보여줄 때 그것이 비록 우리보다 월등히 낫다고 하드라도 앞으로 어떤 개악을 거쳐 나빠질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물며 한국은 말 할 것도 없다. 좌파도 오랜 세월 집권을 하면서 좌파 본연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을 볼 때 한국의 보수가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님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제대로 된 좌파도 보수도 없는 한국 현실에 대한 개탄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의 말들이 더욱 급진적으로 들리는 것은 역시 내 속에 존재하는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때문이다. 제도권 교육 속에서 자란 내가 이것을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책을 읽고 앞선 진보주의자의 삶을 존경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실천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여정을 볼 때 내가 가진 것들 중 꽤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만 가능한 것들이다. 이것을 볼 때 내가 좌파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가 맹공을 퍼부은 노무현에 대한 일말의 연민이나 그리움을 가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좌파가 아니더라도 왜곡되고 문제 많은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를 생각할 때 고민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을 잘 짚어준다. 뭐 그대로 적용되면 더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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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콜스 - 영화 [몬스터콜] 원작소설
패트릭 네스 지음, 홍한별 옮김, 짐 케이 그림 / 웅진주니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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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메달 수상 작가 시본 도우드가 작품을 구상하고, 패트릭 네스가 완성한 청소년 소설이다. 시본 도우드가 인물, 틀, 시작 부분까지 구상해 놓고 죽으면서 패트릭 네스가 이어받아 완성한 소설이다. 세부적인 부분에서 시작하여 완성하게 된 공은 패트릭 네스와 그림을 그린 짐 케이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시본의 공을 잊을 수 없다. 그녀가 없었다면 이 좋은 소설이 결코 탄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도 않고 복잡한 구성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매일 12시 7분이면 찾아오는 몬스터와 대화와 이야기를 통해 진실에 다가가는 코너 오말리의 성장 소설이다. 일반적인 성장소설과 조금 다른 부분은 교훈을 담아내려고 하지 않고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동화라면 권선징악이나 멋진 해피엔딩이 있겠지만 이 소설에는 그런 부분이 없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읽으면서 감탄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몬스터가 들려주는 세 이야기는 더 그렇다. 예상한 결말로 이어지지 않지만 아! 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코너가 꾸는 꿈의 정체를 처음에는 보여주지 않는다. 12시 7분이면 찾아오는 주목나무 형상을 가진 몬스터만 있다. 몬스터는 코너를 찾아와 세 가지 이야기와 코너가 잘 해하지 못할 말들과 암시만 널어놓고 사라진다. 하지만 꿈이라고 생각하기에 방과 집에 남겨진 주목나무의 흔적이 너무 실재적이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자신에게 찾아온 몬스터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의 모습이다. 분명 10대 초반의 아이라면 꿈속이든 현실이든 몬스터의 등장에 겁을 먹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런 의문은 그가 실제 꾼 꿈이 얼마나 흉하고 겁나는 것인지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코너가 처한 상황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장치들이다. 엄마는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고, 이런 사실이 학교에 퍼지면서 아이들에게 기피의 대상이 되거나 왕따를 당한다. 학교 폭력도 당하는데 이것을 코너는 피할 마음이 없다. 처음에는 단순히 보복이 두려워서 그런 것이 아닐까 의심했는데 그가 꾼 꿈의 정체가 드러날 때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여자가 생겨 이혼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아버지의 존재는 13살 소년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만 봐도 결코 쉬운 삶이 아니다. 

제도 교육이나 디즈니 영화나 동화 속에서 만나는 환상이 사라진 이 소설에서 몬스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것이다. 복잡하고 겁에 질리고 두려워하고 반윤리적인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이 세 편의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이런 청소년 소설도 가능하구나! 감탄하게 만든다. 몬스터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하나씩 드러내고 현실과 부딪히는 그의 모습은 성장 소설의 한계를 어디까지 가져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미 중늙은이가 된 나 자신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삶의 한 모습을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몬스터의 말 중에서 가장 와 닿은 것은 “삶은 말로 쓰는 게 아니다. 삶은 행동으로 쓰는 거다. 네가 무얼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네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255쪽)는 말이다. 너무 뻔하고 자주 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가는 말이다. 또 생각했다고 이것을 처벌하려는 혹은 윤리적으로 문제를 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삶을 좀더 풍요롭고 진실되게 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려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행동을 통해 진실을 유추하는 것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밖으로 드러내기 위해 몬스터를 부를 수밖에 없는 코너의 힘겨운 현실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이렇게라도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낼 수 있다면 행복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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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 미 샘터 외국소설선 7
리사 스코토라인 지음, 심혜경 옮김 / 샘터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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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다. 왕따를 당하는 딸, 억울한 누명을 쓴 엄마, 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한 엄마의 외롭고도 처절한 싸움이란 뒷장의 설명이 머릿속을 파고들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펼쳐든 첫 장면이 바로 딸 멜리가 아만다 지곳 등에게 왕따 당하는 장면을 보는 엄마의 모습이다. 멜리의 얼굴에 있는 짙은 반점이 아이들의 놀림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런 일 때문에 엄마 로즈가 급식 도우미를 자처했고 카페테리아에서 급식한 것이다. 이때만 해도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카페테리아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갑가기 터진 폭발로 카페테리아는 혼란에 빠진다. 모든 엄마처럼 로즈는 자기 딸을 찾는다. 아만다의 놀림에 다른 곳으로 사라졌고, 로즈는 아만다를 붙잡고 훈계를 하던 시점이다. 폭발 후 혼란 속에서 그녀의 이성은 바로 옆에 있는 소녀 아만다의 안위를 위해 움직이고, 감성은 사라진 딸을 찾아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것이다. 작가는 영리하게 먼저 아만다를 안전한 곳으로 내보내고 다시 불길 속으로 달려가 딸을 구하는 로즈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화장실로 대피한 딸을 구해 대중 앞으로 나온 그 순간은 영웅 엄마의 모습 그대로다. 그 순간은 멜리가 아직 정신을 차리기 전이라고 해도 말이다.

응급차에 실려 간 딸의 생명이 무사하다고 한숨을 내쉴 때 또 다른 한 대의 응급차가 들어온다. 그 차에는 아만다가 실려 있다. 자신의 딸보다 먼저 안전한 곳으로 내보낸 그 소녀 말이다. 이성과 감정의 싸움 속에서 먼저 선택했던 그 소녀가 나타난 순간 억울한 누명을 쓴 엄마란 소개글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영웅 엄마의 영광은 폭발 전 아만다를 붙잡고 있던 당시를 기억한 아이들과 사람들의 기억 때문에 사라지고 새로운 위기가 다가온다. 로즈는 그녀의 영웅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오해와 착각 때문에 자기 딸을 구하고자 바로 옆에 있던 아이를 버린 나쁜 엄마로 변한다. 그녀의 페이스북이나 이메일은 이를 비난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악의로 가득 찬다. 

딸을 구하기 전 딸을 괴롭힌 소녀를 먼저 구한 엄마가 오히려 위기에 빠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고민이 된다. 자신의 딸을 괴롭힌 아만다가 혼수상태에 있다고 했을 때 그 소녀가 빨리 정상으로 돌아오길 그녀는 바란다. 이 순간은 한 아이의 엄마로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이 작용했다. 엄마니까. 하지만 독자들이 본 영웅적인 행위와 상관없이 아만다의 현 상태만 본 다른 사람들의 악의가 대중적인 소문으로 가득 찰 때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영리하게 첫 장면에 너무나도 이성적이고 윤리적이면서 영웅적인 행동을 앞에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외부에서 불어온 갈등과 오해는 가족 내부의 갈들을 부채질한다. 그 폭발 사건이 왜 발생했을까 하는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피해자 가족은 학교와 다른 사람들을 소송 속으로 몰아갈 준비를 한다. 피 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언론이 달려들어 이것을 더욱 커지게 만들고 왜곡된 정보를 내보내면서 한 가족을 파멸 속으로 몰아간다. 로즈가 언론과 인터뷰를 해도 하지 않아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극한 속으로 말이다.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와 남편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과거 사건을 끄집어 내놓아 마녀 사냥에 열을 올린다. 그녀가 단지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와 시청률을 올릴 수 있다는 이유로.

점점 궁지로 몰리는 그녀에게 남편 레오가 권한 방식은 그의 직업인 변호사처럼 전문 변호사를 통한 대응이다. 그녀가 처한 상황을 넘어가기 위해 다른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미 멜리의 왕따 때문에 한 번 이사한 그녀가 그것은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해와 가족 이기주의와 대중주의의 탈을 쓴 비난 등은 가장 큰 위협이다. 이런 것은 우리의 현실에서도 가장 자주 보게 되는 장면이고 하다. 이런 현실적인 장면들 속에 로즈의 죄책감과 과거사가 녹아들면서 심리적 부담감을 더욱 가중시킨다. 

영웅에서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한 자신을 구하는 것이 첫째 목적이겠지만 엄마 로즈는 결코 약하지 않다. 주변 사람들이 가장 쉬운 맞고소 같은 법적 대응으로 그 어려움을 돌파하라고 할 때도 그녀는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도 생각한다. 변호사들의 조언처럼 행동해서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지는 모르지만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떠나야 한다는 미래를 걱정한다. 정말 대단한 엄마다. 가장 쉬운 방법을 포기하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 그녀는 가장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이제 새로운 싸움이 시작된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싸움이자 이 모든 상황을 뒤집을 싸움이다. 새롭게 드러나는 정보들의 연결 고리 속에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들은 마지막까지 점점 읽는 속도를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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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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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온다 리쿠의 소설이다. 온다 리쿠는 작품에 따라 개인적인 호불호가 나뉜다. 처음 만났던 <밤의 피크닉>의 기억이 지금도 강하게 남았는데 <삼월은 붉은 구렁>은 단편 속에서도 호불호가 나누어졌다. 그 후 몇 편은 아주 좋아하고, 몇 편은 취향을 탔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그녀의 신간은 눈길을 주게 만든다. 좋았던 작품이 나빴던 아니 취향에 맞지 않았던 작품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 이번 소설은 어떨까? 물론 좋았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소설이 있는데 아직 읽지 않았다. 바로 잭 피니의 <바디 스내처>다. 외계 에어리언이 지구 침략을 위해 한 마을 사람들의 신체를 강탈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고 한다. 원작을 읽지 않았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본 것 같다. 이런 간단한 지식만 가지고 있어도 사실 책을 읽는 데는 지장 없다. 오히려 선입견을 배제할 수 있으니 더 좋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점점 진도가 나가면서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밖으로 드러난 사실들 속에 숨겨진 기억과 진실은 왜 이 작품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1위에 올랐는지 보여준다.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등장인물은 모두 네 명이다. 여자들의 사랑을 받는 쓰카자키 다몬, 그의 선생이었던 교이치로, 교이치로의 딸 에이코, 마지막으로 신문사 지부장 다카야스 노리히사다. 이들이 처음부터 연결된 것은 아니다. 가상의 도시 야나쿠라에서 벌어진 수상한 실종 사건을 고리로 이어진 것이다. 수상한 실종 사건은 며칠 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세 명의 노인들에 대한 것이다. 이들은 갑자기 사라졌고 납치의 흔적도 없으며 사라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나타났다. 더 이상한 것은 그들이 실종되었던 기간 동안의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단순한 미스터리 실종 사건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실종자와의 인터뷰와 교이치로가 기르는 고양이 하쿠우가 물고 온 정밀한 인체 복제물이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한다. 인터뷰 도중에 들리는 이상한 소리가 어떤 존재가 그 장소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부채질하고, 복제물이 정밀함을 넘어 기이하게 줄어들고 사라지는 모습에서 이 모든 사건 뒤에 뭔가 거대한 것이 도사리고 있다는 암시를 준다. 여기에 등장하는 <바디 스내처> 이야기는 단순한 미스터리 장르를 넘어 다른 장르로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과 분위기는 그것이 사실로 밝혀진다.

SF와 미스터리의 단순한 결합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도둑맞은’이란 단어의 반복에서 다른 기억과 실체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면 좀더 복잡해진다.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과거가 엮이고 하나씩 풀려나면서 밝혀지는 관계와 사실은 사건의 진행과 더불어 더 깊은 곳으로 독자를 이끌고 들어간다. 기억이란 단어가 과거 속으로 끌고 들어가면서 보여주는 기억들은 우리가 흔히 기억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과연 그 기억들이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것일까? 아니 모두 진짜일까? 하고 물을 때 자신에게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마을 사람들이 ‘도둑맞은’ 것을 예상한 그들이 자신들도 그런 것이 아닐까 의문을 품는 순간 다시 읽는 독자에게 ‘그럼 당신은?’하고 묻게 된다.

물의 도시 야나쿠라라는 가상 도시를 배경으로 했다. 읽는 내내 MB의 대운하가 떠올랐고, 도시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상상했다. 그냥 가볍게 읽어도 되지만 이런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은 역시 최근 정치 현실이나 내가 알고 있는 물의 도시 풍경 이미지가 부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좀더 깊이 들어가면 다양하고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그만 두자. 하지만 물의 도시가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 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도둑맞은’ 사람들과 하나라는 일체감은 괜히 다른 곳으로 생각이 뻗어가게 한다. 우리의 교육이 이미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읽는 동안보다 모두 읽은 지금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아련한 추억의 그림자가 가슴 한 곳에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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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의 눈 - 서경식 에세이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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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씨의 책을 두 번째 읽는다. 처음 읽은 책이 <나의 서양음악 순례>다. 이 책을 통해 그냥 이름만 기억하고 있던 그를 어느 정도 윤곽을 잡게 되었다. 이번 책은 그에 대한 좀더 세밀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 마일리지로 사놓은 다른 책들도 기억 속에서 새록새록 솟아났다. 나의 독서 취향 상 단숨에 그의 다른 책을 읽지는 않겠지만 머릿속 한 곳에 그의 책들이 자리를 잡고 똬리를 틀고 앉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너무 쉽게 보아 넘기고 당연하게 여러 가지 현실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발전을 보여줄 것 같다.

이번 책은 머리말에서부터 나의 이성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자신이 ‘국민’이라는 걸 의심해본 적 없는 독자에게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다른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6쪽)이다. 한 번도 대한민국 국민이란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고, 이 국민이란 관점으로 사물을 본다는 것을 잘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나에게 최근에 이런 글들은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내가 이중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상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면서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산산조각난다. 

여기 실린 칼럼은 <한겨레>에 디아스포라의 시선으로 과거 4년간 한국, 일본, 세계의 사상 등을 응시하며 쓴 글이다. 모두 네 꼭지로 나누었는데 칼럼 순서가 아닌 분야별로 묶어놓았다. 첫 꼭지가 기억의 싸움을 다루는데 특히 이제 곧 다가올 5월과 6월이 기억의 계절이라는 대목에서 “기억하고 증언하는 것은 평화와 인간성을 위한 싸움이다.”(46쪽)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너무 쉽게 잊어버림으로써 파시즘이나 독재자 등이 다시 기승을 부린다는 의미다. 이번 총선을 볼 때 정의도 윤리도 이익을 위해서라면 너무 쉽게 무너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일본의 ‘집단적 죄’와 ‘국민적 책임’을 구분한 내용을 곱씹어볼만하다. 

두 번째는 재일조선인으로 사는 문제다. 한국과 일본에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존재인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것을 예전에 집시라고 불렀던 로마들에 대한 프랑스의 대처를 나치의 그것과 연결한 부분에서 우리 속에도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다시 팔레스타인 문제로 이어지면 홀로코스트 산업이란 용어를 자연스레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재일조선인의 북송사업이 일본 정부에 의해 계획되고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역사적인 기만에 우리가 얼마나 쉽게 놀아났는지, 그것이 현재와 미래와 과거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보여준다.

세 번째 꼭지에서는 시대를 통찰하는 예술의 힘을 다룬다. 이전에 읽은 저자의 다른 책이 간간히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특히 한국문학과 민족문학의 차이에 대한 고찰 부분은 용어가 우리 인식의 한계를 어떻게 결정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베네수엘라의 기적으로 불리는 국가적 음악교육 시스템이다. 우리도 최근에는 사교육으로 악기 하나는 배우게 만들고 있지만 국가적인 지원이나 예술로의 발전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란 점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뭐 한국에서는 음악이나 미술 교육이 하나의 스펙 정도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마지막은 젊음과 그 뒤안길에 대해 다룬다. 병원에서 가족들이 간병하는 것을 당연시 생각하는 우리의 사고와 일본의 현실을 비교한 부분은 핵가족 사회로 변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간병인이 점점 상식화되어 가는 현실에서 병원이라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전문가 집단에게 환자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가족에게 그 부담을 지우면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3년 간병에 열녀, 호부 없다는 옛말을 생각하면 사회적 분담에 대한 논의가 더욱 더 진행되어야 한다. 물론 이런 시스템에 전적으로 의지해 전혀 그 가족을 찾아오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렇게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한국인’이기에 ‘국민’이기에 잊고 있거나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꼭 집어서 보여준다. 이것은 저자의 말처럼 디아스포라로 살아온 그의 인생 역정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고, 역사와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의 우경화에 대한 낙관적 인식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그의 통찰은 가슴 깊이 담아둬야 한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우경화가 우리와 다를 것이라는 역사학자의 인식은 기억하고 증언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과 충돌한다. 이 칼럼 모음집을 통해 다르게 세상을 보는 눈 하나를 더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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