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k 피크 2
임강혁 그림, 홍성수 글 / 영상노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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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훈련 한 달만에 제대로 된 산악구조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산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넓고 깊고 무서운 것인지 안다면 더욱. 하지만 현실은 그 시간 안에 한 명의 산악구조대가 되어야 한다. 당연히 고강도 훈련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오전엔 지형지물 숙지 산행, 오후엔 암벽등반, 저녁엔 응급처치법과 장비 사용법, 매듭법의 반복교육. 이런 교육이 계속 이어진다. 이런 반복 훈련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바로 나온다. 나와 당신을 구조하기 위한 것이다.

 

고참이 제대한 후 그들이 마주한 것은 산악훈련을 온 군인들이다. 그들의 눈에 산악구조대는 천하의 땡보직이다. 이들이 어떤 현실을 마주하는지, 어떤 훈련을 받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연한 반응이다. 아마 이들에게 산악구조대는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하루를 보내는 한직으로 보였을 것이다. 사실 나 자신도 북한산을 오르면서 이들을 보면서 어떤 일을 겪는지 전혀 생각조차 못했다. 텔레비전에 이들이 구조 활동을 하는 것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무려 일 년에 150여건 정도 구조 활동을 펼치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산에서는 그 산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 최고다.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하고 강인한 체력은 기본이다. 집중력을 조금만 놓쳐도 큰 사고로 이어진다. 그것은 바위산을 조금만 올라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왜 그렇게 다리가 떨리고 힘이 들어가는지.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되어도 산은 어떤 사고를 일으킬지 모른다. 산이 무서운 점이다. 이 만화 속 주인공 연성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그가 시체와 만났다는 것이다. 그가 느낀 감정의 깊이는 두려움과 좌절감과 허무함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역할을 구조대가 아니라 포터라고 말한다. 그때 그 어둡고 깊은 곳에 자리잡은 무력감이 표면으로 올라온 것이다.

 

산악구조대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진 것도 역시 구조 활동 중이다. 그것을 몸으로 알려준 인물이 바로 임배호다. 사실 이 만화에서 다른 동료들의 비중이 작은 것이 조금 아쉽다. 에피소드들 중심에 그들이 자리해도 되는데 왠지 너무 조연으로 머물고 있다. 아직 초반이라서 그런 것일까? 군대라는 특징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분명히 많을 텐데. 현재 어디까지 연재되었고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아쉬움이 섣부른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기고 산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사건들이 생길 것이다. 그가 아무리 베테랑이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스토리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사건들과 현장 모습은 작화가의 손끝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이것이 이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긴장감을 불러오면서 몰입도를 높여준다. 하지만 너무 멋지게 묘사된 것은 약간 거부감이 생긴다. 나만 그런 것일까? 아직 이들에게 남겨진 시간은 많다. 거의 300 여건에 달하는 사건이 남아 있다. 결코 적지 않은 수다. 아마 이들은 이 시간을 통해 자신들의 위치와 삶의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사회에 나가 더 깊고 어둡고 강한 산 속에서 또 다른 경험을 할 때까지는. 그래도 이 당시의 경험은 아주 좋은 자산이 될 것이다. 어렵고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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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숲, 길을 열다 네이버 캐스트 철학의 숲
박일호 외 지음 / 풀빛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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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다루고 있는 철학자와 그 사상이 지금까지 나에게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을 읽은 현재도 어렵다. 왜 이렇게 근대, 현대 철학이 어려운지 잘 모르겠다. 적지 않은 철학 해설서를 읽었는데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할 때 첫 번째 요소 중 하나가 이 어려움을 조금은 쉽게 다가가자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전작 <철학의 숲, 길을 묻다>를 나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이 의도는 솔직히 실패했다. 재미는 어느 정도 유지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철학의 10분의 1도 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을 열다’는 제목처럼 전작과 조금 다른 인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리에게 경제학의 시조로 알려진 애덤 스미스나 찰스 다윈, 막스 베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바로 그들이다. 저자들은 이 독창적 사상가들이 지적자양분을 철학의 숲에서 받았다고 말하면서 이들이 철학에 끼친 영향을 말한다. 그들의 설명을 듣다보면 우리가 단순화하면서 너무 획일적으로 그들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철학의 숲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조금은 알게 된다. 그만큼 공부해야 할 것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가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의 머리가 턱없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조그만 위안을 만든다.

 

모두 21명의 철학자들이 나온다. 열 명이 근대 철학자와 열한 명의 현대 철학자다. 이중에서 현재 생존해 있는 분도 있다. 가장 마지막에 다루는 위르겐 하버마스다. 그리고 굉장히 낯선 철학자도 몇 명 있다. 거의 처음 이름을 듣는 철학자도 있고, 그의 비중을 몰라 이렇게 중요한 인물이었나 의문을 드러낸 철학자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나의 학창시절이나 그 이후 언론을 통해 배우고 읽은 것들이라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또 자기 위안인가. 더 많이 철저하게 공부했다면 조금은 달라졌겠지만.

 

언제나 근대철학사를 읽다보면 독일계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본다.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니체 등이 그들이다. 다른 영미권이나 프랑스 철학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대개 주류로 등장한다. 왜일까? 물론 이들의 철학이 철학사에 끼친 영향이 엄청나기에 그럴 것이다. 이것은 뒤에 나오는 그 유명한 비트겐슈타인의 오만에서 극에 달한다. 이런 천재적인 철학자들의 철학을 그냥 보통의 내가 이 한 권의 책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사실 불가능하다. 수박겉핥기로는 더욱더.

 

학창 시절 철학 수업을 신청해 들었을 때도 이들 중 한 명의 책 중 겨우 몇 쪽을 가지고 한 학기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이란 책이다. 이렇게 어려운 책이고 겨우 몇 쪽으로 강의를 할 것이면 도서관에 해당 쪽들만 카피했으면 되는데 그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 비싼 돈 주고 책을 샀다. 당연히 이 책은 책장 속에서 고이 잠들어 있다. 뭐 언젠가 한 번 읽어야지 하는 헛된 망상 속에서. 다행이라면 <자본론>을 사지 않은 것 정도랄까. 아마 샀다면 장서용 이상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화로 된 것도 겨우 읽고 아주 조금 이해한 상태인데.

 

철학자들이 네이버에 대중을 위해 철학 안내용으로 쓴 글이다. 사실 조금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역시 철학자답게 그들의 문장은 난해함으로 가득하다. 어쩌면 철학 용어들이 이것을 더 어렵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전문가들이 어려운 용어로 그들의 일을 풀어낼 때 늘 경험하는 일이지만. 물론 쉽게 읽고 지나간 부분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잘 떠오르지 않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전작을 읽을 때도 경험한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잊은 모양이다. 뭐 그 때문에 나의 회색 뇌세포가 고생하면서 활성화된 부분도 있다.

 

이 저자들이 독자에게 요구한 것 하나를 말하겠다. 그것은 성찰적 사유다. “성찰적 사유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반성적 사유이며, 세상을 향해 던진 질문이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재귀적 사유이기도 하다”(13쪽) 이 성찰적 사유의 주체로 독자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고 있다. 과거에 읽은 몇 권의 책이나 주마간산처럼 읽어나간 이 책에서 많은 것을 이해하고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만 했다. 하지만 언젠가 철학에 대한 열정을 심어놓고 그 길을 나에게 열어주지 않을까 하는 또 다른 기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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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k 피크 1
임강혁 그림, 홍성수 글 / 영상노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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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북한산을 자주 올라갔었다. 자주라고 해봐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다. 그것도 한두 달 정도 다니다가 말았지만. 주로 봄이나 가을에 많이 올라갔는데 혼자 산행을 하다 보니 페이스 조절이 쉬워 비교적 쉽게 올라갔다. ‘쉽게’라고 말보다 ‘천천히’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렇게 올라가다 보면 산의 정상만 본다. 왠지 모르게 여유가 없어 주변을 천천히 살피지 못한다. 그러다 내려오는 길에 본 산악 구조대 모습은 낯설지가 않았다. 왜일까? 그것은 아마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이들의 모습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낯익은 산악 구조대지만 세계유일이자 특수한 대한민국 조직이다. 군인이면서 경찰이고, 경찰이면서 산악 구조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조대를 창설하게 된 이유가 북한산에서 있었던 7명 사망 사건이다. 그 이후 신체조건과 체력 테스트를 통해 다섯 명을 선발한다. 이들이 바로 경찰산악구조대다. 이 만화는 바로 이 구조대의 창설 이유를 간략하게 보여주면서 다섯 명의 신병을 통해 산악구조대의 일상과 구조활동을 보여준다. 그런데 한해 동안 북한산 산악 구조대가 처리한 산악사고가 적지 않다. 20여 년간 약 3000여건이라니 어마어마한 숫자다.

 

스토리 작가 홍성수가 실제 이곳에서 근무했다. 그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짠 것 같다. 물론 가공의 캐릭터나 상황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앞부분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공감했다. 그 공감대는 평범한 인물들이 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산이 주는 공포가 무엇인지 보여주지 때문이다. 예전에 산은 올라가기 힘들지만 포근하고 시원한 곳이었다. 겨울산을 여유있게 내려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얼마나 빨리 산의 해가 지는지, 얼마나 어두운지, 방향 감각은 또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몰랐을 때 그랬다. 그것을 경험한 후는 바뀌었다. 이 만화의 주인공 연성이 경험한 것을 보면서 그때가 불연 듯이 떠올랐다.

 

아직 1권이다보니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았다. 연성이 북한산으로 자대 배치되었다는 소식에 오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과거 사건과의 연관성을 떠올린다. 고참이 제대하기 전에 보여주는 맹활약과 엄청난 체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이전에 지게를 진 상태로 북한산 정산으로 올라가는 상인의 모습을 보고 놀랐고, 중국 황산에서 수십 킬로의 짐을 지고 꼭대기까지 계단을 올라가는 지게꾼을 보면서 더 놀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아직 미숙한 신병들의 캐릭터가 드러나지 않아 약간의 맛뵈기만 본 듯한 느낌이다.

 

1권 마지막에 나오는 슬링의 키스 자국은 첫 경험의 흔적이라고 한다. 이 첫 경험은 조난당한 사람을 자신의 몸에 묶은 후 달리면서 끈 자국이 몸에 남긴 것을 말한다. 이것이 없으면 묶은 사람이 느끼는 몸의 감각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고 한다. 연성이 자기 전 이것의 본명을 ‘보람’이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군대에서 이것을 느낄 수 있다면 그들의 힘든 일상이 어느 정도는 보상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권이 기대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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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여자 스토리콜렉터 10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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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우누스 시리즈의 첫 권이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큰 히트를 치면서 작가의 모든 작품이 출간되고 있다. 그런데 현재 4권이 출간된 타우누스 시리즈 중 가장 나중에 번역 출간되었다. 독일에서 5권까지 출간된 것을 생각하면 조금 늦은 출간이다. 나머지 한 권도 출간 예정이라니 아직 읽지 않은 시리즈가 3권이 될 예정이다. 그중에서 가장 성공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아직 읽지 않은 것은 개인적으로 큰 즐거움이다. 가장 좋은 평을 받고 있기에 더욱.

 

이 시리즈 중에 더 읽은 것은 <너무 친한 친구들>이다. 이 작품을 읽을 때보다 이번이 더 부드럽게 읽혔다. 아마 시리즈 중 한 권을 먼저 읽은 것이 이해도를 조금 더 높여준 모양이다. 그리고 전체적인 전개를 깔끔하게 풀어낸 것도 한몫했다. 시리즈 첫 권이라 보텐슈타인 반장과 피아의 만남과 이력을 간결하게 처리한 것도 집중도를 높여줬다. 가끔 시리즈를 중간부터 읽게 되면 이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조금은 힘 빠지는 결합이었다. 이혼 후 7년 만에 복직하면서 만났다니 너무 단순하다.

 

첫 사건은 대쪽 같은 성품의 부장검사가 자살한 것이다. 곧이어 한 젊은 여성이 전망대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젊은 여성이 바로 이 콤비로 하여금 고생 끝에 수많은 사건을 밝혀내고 범인을 찾아내게 만드는 이자벨이다. 처음에는 그냥 자살로 처리하려고 했지만 의심스런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부검을 하니 나트륨 펜토바르비탈이라는 동물 안락사용 독극물에 죽었다. 분명한 타살이다. 이제 보텐슈타인 반장의 팀은 이 살인 사건을 본격적으로 조사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남편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들은 정보는 이자벨에 대한 좋지 못한 소문과 정보뿐이다.

 

아내가 죽었을 때 가장 먼저 의심을 받는 인물이 남편이다. 아내가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해명할 알리바이를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면 더욱 더. 당연히 수감되고 제1용의자가 된다. 하지만 한 여자가 나타나 그의 알리바이를 증언해준다. 그런데 안나는 폭행을 당한 흔적이 가득하다. 남편에게 맞은 것이다. 사건이 다른 방향으로 살짝 바뀐다. 그녀의 증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보와 인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녀가 활약했던 목장의 고객들의 증언도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이자벨은 많은 질투와 시기를 몰고 다니는 여자였다.

 

하나의 사건이 독립적이지 않고 다른 사건과 연결되는 것은 이미 앞부분을 읽을 때 예상했다. 그것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숨겨져 있던 이자벨의 비밀금고를 찾으면서다. 안나가 남편 되링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한 몇 가지는 이 사건이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하나의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추악한 사건들은 파헤칠수록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이어진다. 분야가 다른 사건은 그 분야 전문가에게 넘기면서 보텐슈타인 반장은 그가 가장 알고 싶어하는 이자벨 살인의 범인을 찾아간다.

 

단순히 이자벨 살인범 찾기에 머물렀다면 재미가 덜 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 새로운 사건을 집어넣고 보텐슈타인 반장의 감정을 흔드는 여자를 등장시켜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여자가 제공하는 정보는 순도가 높아 순간적으로 영감에 사로잡히게 만들기도 한다. 아마 그녀가 없었다면 사건 해결에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이 과정에 보텐슈타인이 당하는 몇 가지 굴욕적인 장면은 재미있다. 증거와 정황을 좇다가 몇 번의 헛다리 짚는 것을 보면 수사란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진행되고 하나의 사건을 통해 다양한 문제와 사건으로 연결시킨 것은 재미있다. 하지만 뭔가를 암시하는 듯하게 말한 상태에서 그냥 그대로 넘어간 부분은 조금 아쉽다. 이자벨에 대한 실체를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으로 조각낸 채로 독자에게 그대로 맡겨둔 부분도 그렇다. 독자가 충분히 이자벨을 재구성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죽기 직전에 일어난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왜 그녀가 그렇게 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 것도 조금 아쉽다. 피아의 활약이 미미한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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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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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앙앙>의 인기 연재 '무라카미 라디오'의 일 년 치 글을 묶은 것이다. 이미 <무라카미 라디오>란 제목으로 1권이 출간되었다. 이 책을 읽은 것은 출간된 후 한참 지난 후였다. 한때 미친 듯이 하루키의 책을 읽었는데 그 당시에 출간된 책은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 하루키의 단편이나 에세이보다 장편소설을 더 좋아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 글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짧은 단편이나 에세이를 읽어야 한다고 했을 때 콧방귀를 뀌었다. 아마 이런 인식이 바뀐 것이 아마 <무라카미 라디오>가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 문학동네에서 하루키의 단편집이 새롭게 나왔다. 구매 욕구를 마구 자극했는데 집에 있는 책들과 중복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 고민 끝에 사지 않았다. 사실 책보다 더 욕구를 자극한 것은 무라카미 CD였다. 하루키의 글을 읽다보면 늘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음악가와 음악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자연스런 반응이다. 이번 에세이에서도 많은 음악이 나온다. 기억이 부정확해서 그 음악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의 글은 늘 그 음악에 대한 갈증을 불러온다. 그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것을 읽는 동안에도.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을 때 그의 아내나 아이에 대한 부분이 거의 없다. 사실 개인적인 관심사라 이 부분에 대한 글이 좀 많았으면 좋겠는데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주변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많지 않다. 자신을 중심으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것이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긴다. 제목으로 나온 <채소의 기분>이나 <바다표범의 키스>도 그가 느낀 감상을 재미나게 풀어낸 것이다. 영화 속 대사를 재미난 상상력으로 풀어낸 <채소의 기분>은 나도 모르게 공감하고, 바다표범 오일에 대한 맛을 쓴 <바다표범의 키스>는 그 비릿한 맛이 어떨까 괜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바로 이런 공감과 호기심 등이 이 글 속에서 나를 유혹한다.

 

특별한 사회적 이슈나 정치색을 띄지 않아 조금 밋밋할 것 같지만 일상이 주는 재미가 이 글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또 중간중간 나오는 그의 삶의 방식은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결코 무겁지 않은 글이지만 노련한 소설가의 시선을 통해 다듬어진 상황과 장면들은 묘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또 하나 몰랐던 사실은 그가 학창시절 엄청난 독서를 했다는 사실이다. 적지 않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 글에서 그가 내비친 자신감은 놀라웠다. 살짝 부럽기도 했다. 매일 조깅을 한다는 사실이 부럽고, 나이키 사에 있는 궁극의 조깅코스를 달리면서 벌어진 에피소드는 웃음을 자아낸다.

 

각 에세이 끝 부분에 간략하게 코멘트를 달아놓았다. 이 글은 거의 뜬금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조금 찬찬히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끌린다. 재미있다. 기발하다. 웃기다. 이런 자그마한 재미들이 곳곳에 깔려있어 단숨에 읽는 것을 예방하게 만들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읽게 된다. 길지 않은 에세이에 녹아있는 필력과 재미난 문체가 시선을 계속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집에 실린 이야기들이 대부분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란 점도 재밌다. 약간 다른 관점을 사물을 보는 점도. 하루키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는 동안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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