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수업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판미동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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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때 그녀의 소설이 많이 나왔던 시절이 있었다. 한창 인기 있을 때였을 것이다. 그 당시 나에게 그녀의 소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 후 겨우 한 권 정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예상한 것 보다 좋았다. 절판된 책들을 헌책방에서 몇 권 더 구해놓고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다. 그러나 이번에 이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 혹시 재간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출간연도를 확인하니 2011년이다.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한때 인기 있었던 작가의 신작을 십 수 년이 지난 후 만날 때면 가끔 이런 마음이 생긴다. 왜일까?

 

세례명 마테오. 그가 알 수 없는 자동차 사고로 죽은 아내에게 편지 형식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 속에는 행복과 절망과 추악함과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맹인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의 에피소드, 학창시절의 종교 교육까지 성장기의 그는 약간 독특하지만 다른 사람과 별 차이가 없다. 노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들 다비데를 낳았다. 이때까지 그의 삶은 행복했다. 조그만 충돌이 있었지만 보통의 부부보다 적은 것이다. 아내는 또 다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이 행복은 어느 날 갑자기 자동차 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잃으면서 악몽처럼 다가오고 그를 나락을 떨어트린다.

 

가장 행복했던 그를 파괴한 것은 그녀가 왜 죽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를 말한다. 자동차의 결함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자살할 이유도 없다. 타인들은 추측만 말할 뿐이다. 이 말들이 그를 더 황폐하게 만든다. 그가 무너진 것을 본 어머니도 죽어간다. 죽음이 이어지지만 그의 삶은 나락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새로운 여자를 만나도 자신의 내면에 깊숙이 뿌리박힌 아내와 아들의 죽음이 그녀들을 밀어낸다. 아버지의 표현에 따르면 천사 같은 여자가 나타나도 그는 의심하고 죄의식에 밀어내고 도망간다. 이 세월들을 죽은 아내에게 편지라는 수단을 통해 조용히 말한다.

 

아내의 죽음과 부모의 죽음이 이어진 후 그는 방황한다. 그러다 한 어머니의 사연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산 속 어딘가에 정착한다. 유망한 심장전문의였던 과거는 이제 사라지고 조용한 산속에서 자신의 내면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죽은 아내에게 쓴 편지들은 바로 이 여행의 산물이다. 그가 신에게,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들이다. 십오 년 동안 머물면서 그는 내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했고 마음의 고요함을 찾았다. 이런 그의 삶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차이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마도 나의 삶들이 조금은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아내의 죽음 이후 자신이 잃은 것을 쫓아다녔다. 자신에게 없는 것에 집중했다. 중요한 것은 그 잃어버린 것이 일상의 나날에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모른 채 말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와의 시간을, 부모님과의 시간을 계속해서 추억하고 복기한다. 이것은 그를 깊은 수렁으로 빠트리고 나락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방황은 이어진다. 직업도 새롭게 행운처럼 다가온 사랑도 모두 잃어버린다. 이런 사연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은 그에게 다가와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고 간다. 그의 집착이 단순히 과거 속에서 그날들을 재생하는 것을 멈출 때 알 수 없던 죽음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그리고 행운의 유산이 찾아온다. 잔잔한 감동이 조금씩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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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제국
이토 게이카쿠.엔조 도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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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특이한 공저 내역을 가진 소설이다. 프롤로그만 쓰고 이토 게이카쿠는 죽었고, 그의 친구이자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엔조 도가 그 나머지를 썼다. 글을 쓴 분량만 놓고 보면 엔조 도가 거의 다 썼다. 하지만 이 소설의 거대한 얼개를 만든 것은 이토 게이카쿠다. 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세계가 이 소설 속에 그려져 있다. 대체역사소설을 기반으로 한 스팀펑크의 한 종류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굉장히 낯익다. 다른 소설들에서 빌려온 이름들이 많이 나온다. 주인공이 왓슨 박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의 곁에서 개인 컴퓨터 역할을 하는 죽은 자의 이름이 프라이데이다. 그 유명한 뱀파이어 헌터 반 헬싱도 나온다. 역사 속 인물과 소설 속 인물이 뒤섞여 있다.

 

처음 책 소개를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네크로맨서가 나오는 판타지 소설인가 하는 것이었다. 엔조 도가 쓴 소설을 생각하면 쉽게 읽을 수 없겠지만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지향한다는 말에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원래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이토의 문장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엔도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단순히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기보다 오마주와 패러디와 풍자와 철학적 사유를 집어넣어 정신 바짝 차리고 읽게 만든다. 오락적 요소가 곳곳에 심어져 있지만 낯선 세계의 풍경이 단숨에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방해한다. 거의 끝 무렵에 그 재미를 누리기 시작했으니 조금 아쉽다.

 

기본 설정은 죽은 자들을 되살려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하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첩보물이다. 사체에 네크로웨어라는 프로그램을 뇌 속에 넣어 움직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 죽은 자들의 법칙이 있다. 그 유명한 아시모토의 로봇 3법칙을 패러디한 것이다. 죽은 자들을 군인으로 사용하거나 경비로 사용하거나 단순하거나 위험한 노동에 투입하는 모습을 보면 로봇과 별 다른 차이가 없다. 읽으면서 잠시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의 기억을 살짝 더듬었지만 저질 기억력 때문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많은 로봇을 다룬 소설에서 영혼의 문제를 다룬 것처럼 여기서도 역시 다룬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죽은 자의 제국을 만들려는 존재와 하나의 책을 뒤좇는 것이다.

 

주인공 왓슨은 해부학 수업에 들어갔다가 영국 정보조직에 스카우트된다. 그리고 첫 번째 임무를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파견된다. 러시아에서 산 자를 죽은 자로 만들고, 죽은 자의 제국을 만들려고 하는 카라마조프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낯익은 이름이지 않은가! 이 추적에는 행동파 버나비와 죽은 자 프라이데이가 함께 한다. 러시아 측에서는 크라소트킨이 동행한다. 이들의 추적 속에서 낯익은 이름들이 많이 나와 반갑고도 당혹스러웠다. 이때 이 소설이 패러디와 풍자가 강하게 가미된 대체역사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이 추적자 집단은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사건을 뒤쫓기 위해 움직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낯선 설정이 몰입을 방해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와 뒤가 궁금해진다.

 

첫 무대가 아프가니스탄이었다면 다음은 일본이다. 그리고 무대는 미국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은 다시 영국이 된다. 이렇게 전 세계를 옮겨 다니면서 왓슨과 그의 동료들은 죽은 자의 제국에 대한 단서를 찾는다. 그 단서가 가리키는 것은 바로 더 원이라고 불리는 프랑켄슈타인이다. 산 자를 죽은 자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담긴 책 <빅터의 수기>다. 첫 번째 이야기가 조금 밋밋한 액션이라면 다음부터는 점점 규모가 커진다. 원래 이토가 생각했던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엔도는 의식과 영혼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풀어놓으면서 무거움을 더했다. 물론 이것은 나의 무지이자 착각일 수도 있다. 한 번도 이토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으니까.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장면을 조금 삭제하고 스팀펑크의 오락성만 부각한다면 결코 재미없는 소설이 아니다. 대체역사를 단순히 역사 속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설 속 등장인물이나 소재도 빌려와 뒤섞어 놓았다. 단순히 빌려만 온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의도적으로 살짝 그 의미를 틀어놓은 것도 있다. 철학적 명제들이 소설 속 세계관에서 엮이고 충돌하고 풀어지는 과정으로 흘러가는데 이것이 명확하게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매력이 있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패러디와 열린 결말이 주는 상상할 수 있는 재미 때문이다. 묘한 공저가 되었지만 절반 이상은 만족한다. 하지만 원래 아이디어를 가졌던 이토라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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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폴인러브
박향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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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불륜도 있고, 첫사랑도 있고, 죽음 앞에 불타는 사랑도 있고, 풋풋한 사랑도 있다. 사랑을 커피와 엮어서 풀어내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연예소설이다. 앞에서 말한 사랑들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들의 사랑이 불편할 수도 있는데 인물들 각각의 심리를 잘 표현해서 어느 순간은 반감을 누그러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이성이, 윤리관이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현실은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 복잡하고 잔혹하고 아름답다.

 

카페 폴인러브는 경재의 아내 효정이 열심히 만든 커피 전문점이다. 흔한 프렌차이즈 커피숍이 아닌 자체 커피 전문점이다. 위치는 부산 중앙동에 있다. 이 커피숍을 열기 얼마 전 효정에서 병이 생긴다. 뇌종양이다. 그녀의 꿈이 펼쳐지기도 전에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 생긴 것이다. 이 부부는 친구 정수의 아내 세희에게 관리를 부탁한다. 세희는 속성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예정된 것보다 조금 늦게 커피숍을 오픈한다. 이제 이 공간은 이곳을 오고가는 사람들의 관계가 엮이고 꼬이고 맺어지는 장소가 된다. 그 첫 이야기는 세희부터다.

 

세희와 정수는 애정이 없는 부부다. 아이도 없다. 정수의 머릿속은 첫사랑 혜인만 있을 뿐이다. 부부관계는 소위 말하는 의무방어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카페 폴인러브에서 일하던 어느 날 한 남자가 세희에게 다가온다. 그 남자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제호다. 제호는 고등학교 시절 연애사건으로 유명하다. 그 나이의 사랑이 얼마나 열정적인지 잘 보여준다. 이 제호의 관심이 세희의 마음을 무너트린다. 일상의 반복과 애정 없는 삶에 지친 그녀에게 제호는 순간적으로 열정과 스릴을 가져다준다. 이들은 자신들의 가정이 깨어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효정은 어린 시절 집을 떠난 엄마 때문에 아버지의 억압 속에서 살아야했다. 이것이 그녀의 성의식을 왜곡시킨다. 그런데 뇌종양이 갑자기 억눌려져 있던 그녀의 성욕을 폭발시킨다. 이 욕망이 남편 경재에게는 낯설다. 아픈 아내를 생각하면 죄처럼 느껴진다. 시한부 삶을 살아야 하는 그녀에게 진짜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이 부부의 뜨거운 사랑은 약간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 아름답다. 시간이 정해진 사랑은 그 폭발력이 대단하다. 더 긴 세월을 일상으로 보냈다면 이들의 사랑이 지속되었을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정수는 동아리 선배와 결혼했던 혜인의 전화에 달려간다. 늘 그녀 주변에서 지켜보았고, 세희와 살면서도 잘라내지 못한 사랑이다. 그의 순수한 사랑은 사회 윤리 속에서 문제가 된다. 이 문제는 순수함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을 괴롭힌다. 자신도 마찬가지다. 연결되지 못한 사랑은 파괴적으로 변한다. 상대를 파괴하기보다 자신을 파괴한다. 그 선택 중 하나가 이혼이다. 그의 바람이 들킨 것도 바로 순수함과 열정이 만들어낸 미숙함에서 비롯했다. 그의 아내 세희가 보여준 행동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어쩌면 이 순수한 사랑이 집착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희가 정수의 바람을 알게 되었을 때 보여준 행동은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분노와 질시의 감정에 사로잡힌다. 나의 잘못보다 남의 잘못이 더 크게 보이는 법이다. 남편의 핸드폰을 뒤지고, 속옷의 냄새도 맡으면서 확신을 가진다. 세희가 먼저 원했던 결혼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두 부부는 각자의 삶 속으로 떠내려갔다. 늘 바라고 기다렸던 사랑이 아니었는데 그 시간, 장소, 상황 등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지치고 애정 없는 삶 속에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중년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민주와 승재의 사랑은 아직 풋풋하다. 하지만 민주는 엄마 효정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 아이는 엄마의 관심을 필요로 하고, 엄마는 자주적으로 키우려고 한다. 둘의 대화가 사라진 곳은 오해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관심과 간섭, 자유와 무관심의 조그만 차이가 둘을 찢어놓았다. 사춘기 소녀의 마음은 그 변화가 더 심하다. 이것은 엄마가 뇌종양에 걸렸다는 것을 알기 전이다. 작위적인 마무리인데 현실은 더 심한 경우도 있다. 더 넓은 세상에 이런 모녀 사이도 있겠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이렇게 이 소설을 읽으면서 혹은 읽은 후 그들의 이야기가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도 많다. 그냥 그들의 삶을, 사랑을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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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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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하면 나에게는 잠실운동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제는 싱크홀로 유명해진 잠실 롯데도 있다. 하지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은 이 소설의 공간이 되는 엘스 등의 아파트 단지다. 그들은 모두 전세로 살고 있다. 친구는 이제 그곳을 떠나 다른 잠실로 이사갔다. 소설 속에서 4억을 경계로 한 무리가 이사갔다고 했을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언론을 통해 얻은 정보를 보면 초기 사람들이 떠나고 다른 사람들이 들어온 모양이다. 이미 그곳도 7년 정도 지났으니 그때 초등학생 고학년이라면 대학에 들어갔을 나이다. 이 시기가 소위 말하는 물갈이 시기다. 물론 소설은 이 물갈이를 대상으로 쓴 것은 아니다.

 

처음 목차를 읽었을 때 다양한 계층의 사람과 이름이 나와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이야기에서 대학생 이서영의 출생연도가 나오고, 그녀가 살기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보여준다. 바로 매춘이다. 일본에서 매춘을 숨기기 위해 돌려 만든 용어가 원조교제다. 학구열에 불타지만 집에서 지원을 받을 수 없고, 알바로는 충분한 돈을 벌 수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매춘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녀를 산 남자 지환아빠 허인규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회사 내의 권력 다툼과 아내와의 냉담한 관계 등이 나온다. 이제 관계는 다시 그의 아내이자 지환엄마인 박수정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이 소설은 한 명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연쇄적으로 연결되는 구성이다.

 

처음에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다른 줄 알았다. 인맥의 파도타기를 통해 잠실동 사람들의 모습을 퍼즐처럼 이어갈 줄 알았다. 이 짐작은 일부분만 맞다. 단순히 몇 사람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지 않고, 잠실이란 공간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등장시켜 다양한 계층의 시선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 이서영이나 어학원 상담원 지윤서, 파견 도우미 최선화, 학습지 교사 차현진 등을 통해 도시 하층민의 삶을 보여준다면 지환엄마 박수정. 해성엄마 장유미, 태민엄마 심지현 등을 통해 중산층의 뒤틀린 강남 엄마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실제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이 엄마들의 이야기 속에 있다. 이들과 이들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많은 부분 알고 있던 것이지만 읽고 있다 보면 씁쓸함이 강하게 다가온다.

 

하나의 공간이 그 시대 사람들의 욕망을 중첩적으로 보여주는데 그 속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역시 한국적 욕망의 대상인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잠실 엘스 등의 아파트 주민들, 그중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가진 엄마들이 그 욕망을 가장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자녀들에게 투사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자식들을 위한다는 마음 뒤에 감춰진 강한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 이 불안감은 자기 자식이 다른 집보다 조금만 성적이 좋으면 우월감과 안도감을 느끼고, 뒤떨어지면 불안감 때문에 더 많은 학습으로 애들을 내몬다. 엄마들이 직접 가르치고 놀아주기보다 돈으로 불안감을 지우려고 한다. 경훈엄마의 이야기는 이 뒤틀린 연대 속에서 하나의 일탈처럼 다가오지만 올바른 이성을 조금이나마 보여준다.

 

엄마들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 열정을 바칠 때 그 아빠들은 어디에 있을까? 처음에 지환아빠 허인규가 잠시 나오고, 중간에 해성아빠 고성민이 나온 것을 제외하면 그들이 아이들의 교육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엄마들의 열정에 휘둘린 것인지, 아니면 흔한 말로 그들의 무관심이 아이들의 성적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좋은 회사의 팀장도, 판사출신 변호사도 그 돈벌이가 다른 집보다 못하면 두 집안의 비교 속에서 아쉬움과 불만만 가득할 뿐이다.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그 한계가 없는데 이 소설 마지막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상당히 반전처럼 펼쳐진다.

 

초등학교 교사 김미화를 두고 벌어진 등교거부는 예전에 언론에서 다루어진 문제인데 이를 둘러싼 각자의 심리묘사가 그렇게 와 닿지 않았다. 주동자가 갑자기 된 엄마들의 심리가 약한 것이 특히 그렇다. 실제 그럴 수도 있지만 최악인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보니 왠지 모르게 공감하지 못한다. 학원 원장들의 불안감에 휘둘리는 그들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파국까지 몰고 갈 정도라면 더 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과외 교사 김승필을 그들이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생각하면 더욱더. 강남엄마를 열망하는 잠실엄마들의 불안과 허세를 미묘한 심리묘사를 통해 잘 표현했는데 그들의 민낯이 드러날 때마다 그곳을 열망하는 수많은 주변사람들이 떠올라 나의 얼굴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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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디 때문에 아시아 문학선 12
류전윈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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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닭털 같은 나날>의 여운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 당시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로 중국 현대 소설의 재미를 막 붙였을 때다. 이 작품 하나로 류전윈은 일단 믿고 읽는 작가로 올라갔다. 물론 늘 있는 일처럼 그의 다른 책들은 책장에 그냥 고이 모셔져 있을 뿐이다. 그러다 아시아문학선을 통해 다시 만났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 <닭털 같은 나날> 같은 재미는 누리지 못했다. 모호한 시대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명확한 모습을 가지고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반에 중국식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면서 낯설고 어렵게 다가온 것도 단번에 몰입을 방해하는데 한몫했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이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작가는 문학을 ‘한 민족과 다른 민족들 사이의 차이를 쓰는 것’이고,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세계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처럼 소설을 읽는 내내 그 차이 때문에 곤혹스러웠다.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중국과 중국인의 모습과 너무 다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중국 현대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다른 시대와 문화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아주 낯설다. 이 낯섦을 문학이란 수단을 통해 잘 표현할수록 좋은 작품이겠지만 어쩔 때는 이것이 하나의 장애요인이 된다. 이것이 번역을 통해 한 번 더 걸러질 때는 다가가기가 더 힘들어진다. 낯선 이름, 지명, 문화, 정치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이름 같은 경우 이전과 달리 한자의 음이 아닌 실제 발음에 가깝게 표기되면서 더 어렵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민초들이 힘들게 삶을 살아가는 것은 세계 어디나 같지만 그들의 행동과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가 일차적으로 느낀 감정이 바로 이것이다. 실제 전체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인물은 양바이순이다. 그의 아버지 라오양은 두부를 만들어 판다. 중국 국민당 시절로 예상되는 이때는 가족의 구성원이 좋은 노동력이다. 장성한 자식이 결혼하기 전까지 애정의 대상보다는 일꾼의 이미지가 더 강했다. 물론 자식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교육받은 강한 부성애나 모성애는 현실 앞에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식들의 부모를 섬기고 봉양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전체적으로는 양바이순의 삶을 그려내고, 그 세부적으로 그와 연결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그 시대의 문화와 경제와 생활방식 등을 보여준다. 시대의 한계 속에 인간관계도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인간관계의 범위가 좁다는 의미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좁지만 서로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서로를 대하는 것은 현재와 다름이 없다. 라오양이 라오마를 생각하는 것과 라오마가 라오양을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라오양이 병에 걸려 누워 있을 때 찾아온 라오돤의 에피소드에서 이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가 그냥 평범하게 다가왔는데 끝까지 읽은 지금 한 사람의 인생에서 다른 누군가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잘 보여준다.

 

양바이순은 두부 만드는 일을 싫어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장례식에서 뤄창리가 함상을 보는 것이다. 머릿속에 늘 들어있는 것도 이것이다. 뤄창리의 함상을 본다는 생각에 아픈 몸까지 순간적으로 나을 정도다. 이때 일이 틀어져 라오양에게 맞게 된다. 두부 만드는 일은 더 싫어진다. 그에게 일차적으로 기회가 온 것은 옌진의 현장이 교육기관을 설립한 것이다. 라오양은 이전 현장이 현장이었던 이력으로 더 비싸게 가구를 파는 것을 보고 자신의 아들도 현의 관리가 되면 두부를 비싸게 팔 수 있겠지 하는 마음이 생겨 세 아들 중 한 명을 학교에 보내려고 한다. 이때 양바이순은 아버지의 계략으로 가지 못한다. 두부 만들기가 싫어 다른 일을 배우는데 그것이 바로 돼지 잡는 일이다.

 

사부 라오쩡에서 돼지 잡는 법을 배우는데 여기도 문제가 있다. 사부의 두 아들이 양바이순이 자신들의 집에 들어와 사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매일 집에서 왕복 30리를 걸어 다녀야 했다. 사부가 바라는 것은 새 아내를 얻는 것이다. 새 아내를 얻게 되면 양가장에서 다니지 않아도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일은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전통적인 도제관계 속에서 자기 노력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고, 힘은 더 힘들어진다. 정면에서 삶을 마주하기 싫었던 양바이순의 운명은 이제 앞으로 몇 번의 변화가 생긴다. 가장 먼저는 바로 이름이 바뀌는 것이고, 그 다음은 성마저 바뀌는 것이다. 이 사연을 작가는 능청스럽게 풀어낸다.

 

피하고 도망가려고 할 때마다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최소한 혹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는 정면에서 그 일들을 마주하려고 하지 않았다. 돼지 잡은 일도, 염색공장의 일도, 대나무 쪼개는 일도 그랬다. 자신이 실수한 것을 변명하거나 용서 빌지 않고 그냥 달아나기만 한 것이다. 어떻게든 일을 하면 입에 풀칠 할 정도는 되나 풍족한 삶을 살기는 힘든 시대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은 최소한 자신들의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어쩌면 그에게 유난히 많은 시련이 생긴 탓일 수도 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처럼 말 한 마디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버지 라오양이 라오마의 말 한 마디에 평생친구로 생각한 것을 보면 말이다. 가볍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묵직하고 농밀한 소설이다. 한 사람의 삶을 이렇게 그 지역과 인간관계를 다양하게 엮어 풀어내는 것도 쉬운 일은 분명 아니다. 작가의 다른 책도 다시 끄집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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