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 아시아 문학선 13
류전윈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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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말 한 마디 때문에>의 후속작이다. 전작을 읽은 덕분인지 이번 작품은 더 재밌게 읽었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뉴아이궈다. 그의 엄마는 전작에서 아빠와 헤어진 아이 차오칭어다. 그녀가 유괴된 후 어떤 과정을 거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았는지 보여주는데 불과 수십 년 전 중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낯선 모습이다. 읽으면서 시대를 알 수 있는 것을 그렇게 많이 발견하지 못한 전작에 비해 이번에는 휴대폰이 나와 비교적 최근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과 사연과 관계들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삶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 단순히 문화 차이라고만 하기에는 더욱.

 

말 한 마디. 정말 살아가면서 많은 상처를 주고받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말 한 마디다. 뉴아이궈가 친구와 절교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부모가 사이가 좋지 않아도, 자신들의 관계가 외부적 요인에 의해 흔들려도 굳건했던 것이 하나의 자그마한 오해에서 비롯한 말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만든다. 그런데 이해가 좀처럼 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그들이 이 오해를 바로 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때까지 쌓아온 우정을 생각하면 약간 의외의 모습이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살고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말이 비수가 되어 상대방의 가슴에 꽂힌다는 표현도 있으니.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지나가는 이야기 중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차오칭어의 양아버지가 흘린 돈을 두고 벌어진 다툼이다. 원래 두 사람은 절친한 사이였는데 이 돈 때문에 완전히 갈라진다. 돈을 두고 두 사람 사이에 숨겨져 있던 속내와 욕심이 그대로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요물 같아서 언제 어떤 순간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것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나 적게 하는 사람이나 상관없다. 이 사건 때문에 차오칭어가 결혼을 하게 되고, 그녀의 삶도 꼬인다. 그녀가 결혼하게 된 사연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비밀은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잘 보여준다. 남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것처럼 포장한 말과 행동 뒤에 숨겨진 의도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뉴아이궈의 삶을 보면 왠지 모를 여유가 느껴진다. 돈이 많아서 생긴 여유는 아니지만 일을 하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것 같아 그렇게 느낀다. 실제 그의 삶은 여유롭지 못하다.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고, 자신은 이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고, 친구들에게 아내에 대한 조언을 구하지만 제대로 된 해답은 하나도 없다. 그가 집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간 것은 바로 이것을 피해 달아난 것이다. 군대에서 배운 운전 실력이 그가 먹고 사는데 지장없게 만들지만 이것은 최소한의 생존 조건일 뿐이다. 아내와 결혼한 것도 사랑 때문이 아니다. 이혼하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못한 그에게 여자는 두렵고 무서운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타난 장추홍은 그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녀와 달아날 용기가 없다.

 

뉴아이궈의 인생을 따라가는 와중에 차오칭어와 관련된 사연들이 곳곳에 나온다. 이것은 다시 전작의 사연과 이어진다. 뉴아이궈가 엄마의 죽음 이후 이 사연을 좇아간 것도 그의 엄마가 간혹 그에게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해준 것과 관계가 있다. 전작과 이어지면서 정말 긴 세월을 다루고 있다. 중국 현대사의 흐름 한 자락을 민중의 삶으로 표현한 것이다. 정치와 경제가 아닌 실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간결하게 요약해서 그 삶의 한 단면을 극적으로 연출해내고 있다. 마지막 장면은 열린 결말이다.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하지만 예상한대로 그 결말이 나올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장추홍에게 하고 싶었던 말 한 마디가 궁금해진다. 이 말 한 마디가 엄마의 양아버지 우모세의 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류전윈의 소설에 더욱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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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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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 셜록 홈즈. 그의 유일한 적수였던 모리어티 교수. 이 둘의 마지막 대결과 그들의 죽음. 팬들의 원성에 의해 다시 부활한 셜록 홈즈. 하지만 그의 죽음과 부활까지는 3년의 공백이 있다. 명탐정 홈즈가 사라진 세계에서 범죄자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악행을 마구 저지를 수 있다. 이 소설은 바로 이 3년 중 얼마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읽는 내내 코난 도일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머릿속은 다양한 가능성을 추리한다고 바빴다. 내가 읽었고 알고 있던 추리소설들의 설정들이 하나의 가설을 만들고, 부수고, 다시 세우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예상하지 못한 반전에 손을 들게 되었다.

 

소설은 셜록 홈즈와 모리어티 교수가 함께 죽었던 스위스 마이링겐의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시작한다. 홈즈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고, 모리어티 교수로 추정되는 시체는 발견되었다. 이 유명한 탐정의 죽음은 전 세계에 알려진다. 이때 이곳을 찾는 두 남자가 있다. 한 명은 런던 경찰인 애설니 존스이고, 다른 한 명은 미국 핑커턴 탐정 사무소 소속인 프레더릭 체이스다. 처음 애설니 존스가 시체를 보고 체이스에 대한 추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애설니 존스가 셜롬 홈즈의 변신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워낙 변장에 뛰어난 홈즈를 감안하면 전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단서가 계속 나온다. 하지만 이미 몇 번이나 추리소설에서 이런 설정을 뒤집는 반전을 보았기에 의심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유럽의 유명한 악당이 죽은 사건에 등장한 미국 탐정 체이스. 왠지 낯설다. 그런데 그를 유럽으로 오게 만든 사건이 영국에서 발생한다. 미국의 악당인 클래런스 데버루가 영국으로 넘어온 것이다. 그는 베일에 쌓인 채 잔혹한 범죄를 뒤에서 조정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모리어티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직접 범죄 현장을 뛰지 않고, 범죄를 계획하고 범죄자를 압박하고 협박하면서 암흑가를 지배하는 것이다. 홈즈에 의해 모리어티의 정체가 밝혀졌다면 이 데버루는 아직 그 실체를 누구도 모른다. 그런데 이 악당이 모리어티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 증거로 모리어티로 추정되는 시체의 몸에서 발견한 암호문이다. 이것을 풀어내는 인물이 바로 애설니 존스다. 작가는 여기서 작은 함정을 파고, 나는 그 속에 쏙 빠졌다.

 

시체에서 발견된 암호문을 풀어 두 대륙의 악당이 만나려고 한 장소와 시간과 조건을 발견한다. 어느 순간 긴 대화를 통해 친구처럼 가까워진 둘은 암호문이 가리키는 카페로 간다. 이곳에 한 소년이 나타나 과연 체이스가 모리어티인지 확인한다. 이미 가능성을 생각한 것이지만 그 답은 비루하다. 소년이 칼을 꺼내 체이스를 위협한다. 겨우 열두세 살 정도의 아이다. 아이가 사라지고, 그 뒤를 애설니 존스 경찰이 뒤쫓는다, 이 미행은 앞으로 벌어질 거대한 권력 투쟁의 시작이 된다. 블레이드스턴 하우스로 이어진 소년의 흔적은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찾고 있던 데버루의 수하에게로 인도한다. 비록 집 안에 소년의 흔적이 보이지 않지만.

 

다음 날 블레이드스턴 하우스에서 학살이 벌어진다. 누군가가 몰래 침입해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을 죽인 것이다. 지금은 약간 기억이 희미하지만 코난 도일의 소설에서 이런 묘사를 보지 못한 것 같다. 현대의 기준으로 좀 더 잔혹하게 보여준 것이 아닐까 하고 착한 해석을 해본다. 이런 몇몇 장면과 설정을 제외하면 정말 코난 도일의 문체나 설정이나 이야기 등을 많이 참조하고 공부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또 하나의 반전으로 작동한다. 작가가 교묘하게 조금씩 풀어내는 이야기는 가랑비에 옷 젓듯이 머릿속에 자신도 모르게 설정과 반전을 끊임없이 그리게 한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펼쳐진다. 당했다는 생각과 함께 반전의 해설을 하나씩 검증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올해 최고의 반전이다.

 

홈즈 시리즈를 차분하게 한 권씩 전권을 연속적으로 읽은 적이 없다. 그래서 홈즈를 좋아하지만 그 내용에 대한 깊이가 부족하다. 단지 그 재미와 재미를 느낄 뿐이다. 하지만 홈즈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소설의 놀라운 반전을 반가워하고 감탄할 것 같다. 물론 이 반전에 약간의 호불호가 나누어질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반전을 이미 다른 작가가 보여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금장 머릿속에 그 이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 전체에 흐르는 위대한 탐정 홈즈의 흔적을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자세하게 적으면 너무나도 심한 스포가 될 수 있어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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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순례하다 - 건축을 넘어 문화와 도시를 잇는 창문 이야기
도쿄공업대 쓰카모토 요시하루 연구실 지음, 이정환 옮김, 이경훈 감수 / 푸른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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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한 장소에 앉아서 창밖으로 계절이 변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늘 무심코 보던 그 창밖의 풍경이 어느 날 갑자기 변했다. 5월의 햇살 아래 푸른 잎으로 가득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 창밖의 풍경은 멋진 경치를 보여주는 곳도 아니었다. 창도 작았다. 단지 조그만 화단에 벽이 있던 곳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지겨운 창밖 풍경이 외부의 조건에 따라 나의 마음을 뒤흔든 것이다. 그 당시 나의 마음은 늘 그늘이 져 있었는데 말이다. 2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 창밖의 풍경이 마음 속 어딘가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때의 인상이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정말 창만 다루고 있다. 크게 3개의 범주로 나눈 후 그 범주 속에서 창의 속성을 구분하다. 이 범주는 빛과 바람, 사람과 함께, 교향시 등이다. 이 범주는 세계를 돌면서 실측하고, 사진을 찍은 후 구분한 것이다. 단순히 실측과 사진 찍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창에 집중된 행동을 관찰해 기록했다. 이 기록들이 각 창의 설명에 곁들여져 있고, 창 사진을 선택하는데 기준이 되었을 것이다. 차분하게 그 창의 모습을 보면, 혹은 그 창밖의 풍경을 보게 되면 어느 순간은 깜짝 놀라고 어느 순간은 그 기능성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물론 어떤 때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기도 한다. 청소 같은 것 말이다.

 

책의 구성은 3개의 범주로 나눈 것을 각 장으로 세분화하는 목차로 되어있다. 그런데 각 창의 설명은 동일한 방식으로 끝까지 진행된다. 실측한 그림을 좌측에 놓고, 간단한 지역 및 기능 설명이 같이 실려 있다. 오른쪽에는 창의 사진이 실려 있다. 이 실측 그림이 왜 중요하냐면 사진으로 결코 알려줄 수 없는 깊이와 자료를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창이 벽 깊숙이 놓여 있을 때는 이 실측 자료가 현장의 사진만으로 알 수 없던 것을 깨닫게 한다. 물론 가장 많이 나를 사로잡는 것은 역시 멋진 창밖의 풍경이다. 이 풍경을 단순히 설계한 곳도 있겠지만 거장들은 계산과 계획에 의해 창을 내고 건물의 효용을 높인다. 이것은 또 그 지역의 자연환경이나 문화와도 연결된다. 빛과 바람과 풍경 등이 잘 어우러져야만 그 공간이 새롭게 창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도시들의 무수한 창을 보면서 감탄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풍경 때문에 그런 적도 있고, 그 기능성 때문에 놀란 적도 많다. 종교적 문제로 창의 모양이 결정된 곳도 적지 않다. 이런 다양한 창은 그 시대의 과학적 한계에 의해 결정된 경우도 적지 않다. 큰 유리를 만들 수 없어 작은 유리를 이어붙이거나 건물의 구조 상 불가능한 창이라 크기를 줄여야 한 경우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무심코 본 그 창이 어떤 배경을 가지게 되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그 창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준다. 많은 사진 때문에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은 바로 이런 문화와 도시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면서 산산조각났다.

 

창은 단순히 창밖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창 안쪽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빛을 모으고, 시원한 바람을 끌어들이고, 사람들의 시선을 차단하고, 혹은 몰래 훔쳐보는 역할까지 다양한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창은 집의 안팎을 구분하는 경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히 구분짓기에는 창의 기능과 활용이 너무 다양하다. 창 안쪽에서 찍은 사진이 많은 것도 바로 사람들이 그곳에 머물면서 창밖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창 안쪽에서 쉬거나 머무는 방식도 기능에 따라 제각각이다. 어느 곳은 꼭 가서 누워보고 싶은 곳도 있다. 열대지방의 한 곳은 그곳에서 쉬면서 열기를 식힌 바람을 맞으며 잠깐 졸음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한국의 창이 단 두 곳밖에 나오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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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열린책들 세계문학 229
알베르 카뮈 지음, 최윤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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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뮈의 소설을 정말 오랜만에 읽는다. <이방인>을 제외하면 단편 한두 편 정도가 읽은 전부지만 말이다. 아마도 까뮈의 소설을 이렇게 읽지 않게 된 이유도 <이방인> 때문이다. 신입생 시절 읽고 전혀 이해하지 못한 탓에 왠지 다른 소설에 손이 나가질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다른 책까지 전혀 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적 허영심에 다른 책들은 읽었다. 단지 읽었을 뿐이지만. 그러다 새롭게 열린책들에서 번역된 <페스트>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나이도 더 들었으니 이 책의 가치를 더 잘 알겠지 하는 생각까지 곁들이면서 펼쳤다.

 

인구 20만 명의 대도시 오랑에서 어느 날 갑자기 쥐들이 죽는다. 오랑은 알제리 해안에 위치해 있다. 이 쥐들의 죽음이 조금 이상하지만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심각하게 이것을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몇 마리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 수 백 마리로 늘어난다. 그리고 사람들 몸 위에 검은 멍울이 생긴다. 증상이 페스트다. 하지만 이것을 당장 밝힐 경우 벌어질 사회적 파장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섭게 변할 수 있다. 아직 정확한 병명이 밝혀진 것도 아니다. 신중하게 접근한다. 어떻게 보면 이 신중함과 느린 대처가 페스트를 더 키운 것인지 모른다. 요즘 한국의 메르스 사태 초기 대응과 살짝 겹쳐진다.

 

페스트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도시는 격리된다. 오랑의 시민들은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다른 도시에서 오랑으로 들어오는 것은 가능하지만 다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과 사랑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현재 자신들이 머무는 곳에 산다. 도시가 거대한 감옥처럼 변한다. 외부 물품과 전기가 제한적으로 공급되고, 영화는 계속해서 재탕하지만 할 일이 없는 시민들에게는 최고의 놀이가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민들이 완전히 공포에 잠겨 집에만 살 것 같은데 현실은 다르다. 놀 것은 없지만 놀 것을 찾고, 술을 열심히 마신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오페라를 감상한다. 약간 부족한 생활이 변함없이 이어진다.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서술자가 있다. 그의 정체는 끝에 나온다.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당연히 의사 리유다. 처음 그의 아파트에서 경비가 페스트로 죽었고, 출근길 복도에서 죽은 쥐를 발견했다. 실제 리유가 하는 일은 당사자에게 잔혹한 일이 된다. 페스트가 심해지면서 그의 일은 환자로 보이는 집에 가서 검사를 한 후 그 당사자를 격리시키는 작업을 한다. 전화 한 통이면 가능한 일이지만 심리적으로 강한 압박을 받는다. 그와 동시에 격리된 환자들의 죽음을 봐야 한다. 한 소년의 처절한 사투 과정을 간략하게 보여주는데 이런 것을 계속해서 본다는 것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할 것 같다. 피로가 점점 쌓여 어느 순간에는 소독 절차를 생략하는 위험한 행동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리유가 의사의 관점에서 이 사태를 본다면 그의 주변 인물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이 사태를 바라본다. 이들 중 몇 명은 자원봉사자가 되어 활동하고, 쌓이는 피로 속에서 이 삶의 무거움을 견뎌낸다. 놀라운 것은 이 과정을 작가가 아주 담담하고 건조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의 감정이입을 최대한 차단하여 설명하고 묘사한다. 덕분에 읽기는 더 힘들어진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헤매게 된다. 그렇게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읽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린 것도 이 문체 때문이다. 감정보다 이성에 의해 쓴 글인데 마지막에 그랑이 하나의 문장을 두고 고민하던 것에서 형용사를 뺏다고 한 것과 왠지 모르게 연결된다.

 

페스트가 갑자기 생겼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감정은 절제되고, 자극적인 묘사는 생략되어 있다. 몇 개의 숫자로 이 사태의 심각함을 알려주지만 현실은 아직 심각함이 모든 곳에 스며들지 못한 상황을 보여준다. 병에 전염된 사람을 격리하고, 그들과 접촉한 사람도 격리 수용하고, 방역에 더 많은 공을 들이지만 전염병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 병이 사라진다. 이 얼마나 인간의 노력이 무력한가. 인간들의 과학은 단지 이 전염병이 더 넓게 퍼지는 것을 막을 뿐이다. 영웅도 없고 성자도 없는 상황은 감정의 개입을 최대한 막는 역할을 한다. 읽을 당시보다 지금 그 상황들을 되돌아보면 더 냉정하게 상황들이 눈에 들어온다.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일까? 언젠가 다시 한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같은 책이나 아니면 다른 번역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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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오프 밀리언셀러 클럽 139
데이비드 발다치 엮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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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이전에 흥행했던 영화가 먼저 떠오른다. 오우삼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다. 당시 홍콩에서 성공한 그가 과연 할리우드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당대의 두 남자 주인공을 캐스팅한 후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어떻게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설정인데 오우삼 특유의 액션이 잘 먹힌 것이다. 이렇게 영화감독들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것처럼 소설가들도 자신만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단 한두 편에만 등장한 인물이 있는 반면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몇 십 년을 계속한 인물도 있다. 우린 그들의 활약을 보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출간된 후는 열광하며 읽는다. 그런데 이 인물들을 하나의 작품 속에서 만나게 하면 어떨까? 영화 <어벤져스>처럼.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두 명 정도 짝을 이룬다면 어떨까? 그 결실을 맺는 것이 바로 이 작품집이다.

 

이 놀라운 기획은 국제 스릴러 작가 협회에서 시작했다. 이미 이 협회에서 작가들의 단편을 모아 낸 적이 있다. 그때는 한 작가의 단편이었다. 이번처럼 두 작가가 자신들의 캐릭터를 한 이야기 속에서 펼쳐낸 것이 아니다. 실제 이렇게 같은 이야기 속에 두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지역도 시간도 다른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다른 성격이나 직업도 무시할 수 없다. 협업의 특성 상 자신의 개성을 어느 정도까지 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 협업을 작가들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없다. 다만 이 22명의 작가들의 작품 중 한 번도 읽지 않은 작가도 있고, 이름마저 낯설어 조금 부끄럽고 아쉬울 뿐이다. 더불어 찾아 읽어야 할 작가들의 목록이 더 늘었다.

 

이 단편집의 문을 여는 작품은 대단한 두 작가의 합작품이다. 마이클 코넬리와 데니스 루헤인의 <야간 비행>이다. 코넬리의 보슈 시리즈가 최근에 잘 나오고 있지만 한때는 꼭 내어주었으면 하는 작가 일순위였다. 반면에 데니스 루헤인은 황금가지의 스타다. 이 출판사를 통해 그를 만났고 빠져들었다. 이 단편집 작가 중 유일하게 모든 출간작을 읽은 작가다. 그리고 이 두 작가의 주인공들은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고, 직업도 다르다. 보슈는 L.A 형사고, 켄지는 보스톤의 탐정이다. 이 작품의 무대는 보슈가 보스톤으로 온다는 설정이고, 우연히 한 장소에서 만나 사건을 해결한다. 솔직히 말해 두 주인공이 만나 반가웠지만 둘만의 매력이 충분히 발현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장편을 기대한 것 때문이 아닐까?

 

<야간 비행>을 제외하면 솔직히 두 작가를 모두 읽은 조합이 없다. 한쪽을 알면 다른 작가가 낯설다.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작품을 읽지 않은 경우도 있다. 물론 둘 다 낯선 경우도 없지 않다. 이때는 순수하게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지옥의 밤>과 <악마의 뼈>가 대표적이다. 특히 <지옥의 밤>에서 보여준 반전과 섬뜩함은 취향에 잘 맞았다. 어쩌면 공포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설정이지만 물고 물리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수리공 잭의 활약을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 나만의 것일까? <악마의 뼈>에서 오래된 액션의 한 흔적을 보았고 노인네라는 말에 발끈하는 말론의 모습이 정겨웠다.

 

<가스등>은 읽으면서 <트윈 픽스>의 향기를 느꼈다. <인 더 닉 오브 타임>에서는 현실적인 형사들의 모습이 보였고, <웃는 부처>는 이 시간 차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등장인물들의 활약보다 이야기에 더 집중한 것이다. 법정물인 <팬더를 찾아>는 왜 북한을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반전에서 솔직히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마 내가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임과 프레이>는 낯익은 링컨 라임에 더 집중했지만 중편에 가까운 분량과 반전들이 이어지면서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두 주인공이 협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아주 부드럽게 이어졌다.

 

<정차>에서 다시 만난 <사고>의 주인공 글렌 가버 이야기는 조금 잔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딸이 죽음의 위기를 겪어야했다는 사실에서 말이다. 물론 멋진 활약을 딸 켈리가 다시 보여주었지만. <침묵의 사냥>에서 두 주인공이 협력하여 악당을 물리치는데 사실 조금 작위적으로 다가왔다. 세부 묘사가 생략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 작품 <대단한 배려>는 작은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재밌게 마무리한다. 보스톤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의 대결을 그 바탕에 깔고 풀어내는 박력있는 이야기는 대단히 남성적이다. 이 경기의 승자를 정하기 어려웠다는 말에 두 팀의 팬심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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