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 죽은 자의 일기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9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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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한국 스릴러다. 도입부에 사건의 범인을 그대로 드러내고, 범인과 형사의 대결로 이어간다. 그런데 그 범인이 한 도시의 시장 당선이 유력한 여당 후보다. 형사는 탁월한 실적을 올리고 있는 형사지만 관할경찰서의 팀장일 뿐이다. 그들의 이름은 강호성과 서동현이다. 이 둘의 대결은 시작부터 일방적이다. 책 속에도 나왔듯이 한국의 1%는 자신들의 힘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 잘 안다. 권력 앞에 일개 형사는 무력하다. 물론 이것은 밖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정의감 넘치는 형사는 자신이 문 먹이를 쉽게 놓치지 않는다.

 

가상의 도시 영인 시. 호화로운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한 여성이 떨어져 죽었다. 강호성의 아내인 주미란이다. 그녀가 떨어진 집으로 들어가니 한 노파가 목이 졸려 죽어있다. 강호성의 어머니 장옥란이다. 이 시체를 발견한 사람은 가사 도우미 서산댁이다. 강호성에게 전달된 문자 메시지를 보면 주미란이 치매로 고생하는 시어머니를 죽이고, 암으로 시한부인생을 사는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은 것처럼 보인다. 주변에 놓인 단서들이 너무 뻔하다. 지신우 경장도 이 현장의 모습에 선입견을 가진다. 이때 서동현 팀장은 냉철하게 현장을 바라본다. 선입견을 털어내려고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강호성이 등장한다.

 

앞부분에 이 사건의 진실을 알려준다. 주미란이 남편 강호성의 악행을 대민일보 박계류 기자에게 알리려다가 장옥란에게 후두부를 맞고 쓰러졌다. 이 상황을 알리려고 아들을 불렀는데 비정하고 잔혹한 아들은 어머니 장옥란을 죽인다. 이유는 장옥란의 치매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죽지 않은 아내 주미란을 창밖으로 던진다. 두 사람 모두를 죽인 것이다. 자신이 살인자이다 보니 현장에 나타났을 때도 피해가족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부분을 날카롭게 파악하는 인물이 서동현이다. 너무 빤한 사건에 의혹의 눈길을 던지고, 그 이면을 파헤치려고 한다. 하지만 유력한 여당 실세가 이것을 그대로 둘 리가 없다. 경찰서장이 직접 불러 사건 종결을 지시한다.

 

권력을 가진 거대한 악은 법의 힘으로 심판하는 것이 쉽지 않다. 분명하고 정확한 증거자료가 있다면 여론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없다면 권력은 그 힘을 사용하여 증거를 수집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악의 축인 강호성과 그 악을 쫓는 형사 서동현. 약자는 당연히 서동현이다. 그 주변을 맴돌다 발견되면 바로 경찰서장에게 압력이 가해진다. 몰래 수사를 해야 한다. 여기에 강호성은 이 사건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데 사용한다. 영인 시장 후보 사퇴를 내세우지만 지지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다시 일어선 척 한다. 우리가 흔히 보던 그 정치쇼다. 그의 지지율이 올라갈수록 일개 형사의 힘은 무기력해진다.

 

형사들이 사건현장에서 가지고 온 단서는 거의 없다. 있다면 가계부 정도다. 유력한 정치인이자 거부인 남편을 둔 그녀가 가계부를 썼다는 것이 이상하다. 지신우가 이 가계부에서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한다. 한 보육원에 많은 과자를 사가지고 간 것이다. 서동현이 신분을 속이고 방문한다. 몰래 방명록을 찍어온다. 나오다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던 차를 발견한다. 그리고 서산댁을 본다. 서산댁을 만나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하지만 겨우 주미란의 다이어리를 받았을 뿐이다. 특별한 내용이 없다. 실제 다이어리는 소설 사이사이에 삽입되어 사실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 장면을 몰래 찍는 사람이 있다. 이 사진은 강호성에게 전달된다. 그는 이 사실을 알지만 서산댁에게 말하지 않는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곳곳에 심어놓은 서산댁의 모습에 의혹을 품는다. 그녀가 강호성에게 주미란이 모은 자료를 그대로 전달하면서 흘린 냉소는 다른 장면들에서도 같이 반복된다. 병든 아들을 위해 자신을 내치지만 말아달라고 강호성에게 부탁하는 모습과 사뭇 다르다. 같이 살면서 이 가족의 치부를 알게 모르게 모두 본 그녀는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핵심 인물이다. 무력한 형사들이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거절하고 자신의 위치를 지킨다. 이것은 강호성의 신뢰로 이어진다. 이 묘한 관계는 뒤로 가면서 뭔가 있을 것이란 기대를 불러온다. 그녀가 꼭꼭 숨겨둔 속내는 무엇일까, 호기심이 계속 이어진다.

 

인간의 비정하고 추악한 욕망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과 열정은 그 악이 지닌 권력 앞에 무력하다. 하지만 의지는 멈추지 않는다. 무너질 순간이 몇 번이나 있어도 다시 일어서 그 악과 싸우는 형사가 있다. 그 때문에 이 소설은 지루함을 느낄 수 없다. 강호성의 죽음을 바라는 주미란의 의도가 막힌 후에도 이 대결은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하면서 긴장감을 불러온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하는 순간 다시 시작되고,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여운이 서늘하다. 기억해야 할 새로운 스릴러 작가 한 명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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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 재밌고도 멋진 이야기
H. A. 거버 지음, 김혜연 옮김 / 책읽는귀족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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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 삶에 북유럽 신화 속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마 <반지의 제왕>이 영화로 성공하고, 이 영화가 소설의 성공으로 이어지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톨킨이 만들어 놓은 세계관 속에서 한국의 인터넷 판타지 작가들은 세계관을 공유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오딘이나 토르란 이름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하면 그 친밀도나 익숙함은 뒤질 수밖에 없다. 나 자신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책은 읽었지만 북유럽 신화에 대한 책은 읽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북유럽 신화를 다룬 책이 거의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은 1909년이다. 처음 이 책을 선택할 때 이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이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북유럽 신화 속 신들을 한 명씩 한 명씩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그 이름들을 하나씩 읽다보면 낯익은 이름보다 낯선 이름이 훨씬 더 많다. 여기저기서 오다가다 들은 이름도 몇 있다. 딱 그 정도에서 나의 지식이 멈춘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면서 얻은 지식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이것은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딘을 비롯한 수많은 신들의 이름에 익숙해지고 있다. 고무적인 일보라고 하면 너무 자화자찬일까.

 

모두 2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상의 시작을 시작으로 그리스 신화와 북유럽 신화의 유사성을 비교한 글로 마무리한다. 마지막 장인 이 비교는 앞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의문을 품고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을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다. 읽으면서 복습하는 느낌도 생긴다. 앞에서 한 장에 한 명의 신을 다룬 것을 감안하면 더욱 요약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 글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그리스 신화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비교가 의미하는 바를 전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리스 로마 신화를 거쳐 북유럽 신화 속에 들어오겠지만 토르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성공한 요즘을 생각하면 그 반대인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토르>란 영화 덕분에 토르 외에 익숙한 또 한 명의 신이 있다. 로키다. 이 북유럽 신화 속에서 어쩌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 셋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경우 그의 이미지가 영화로 먼저 굳어진 탓인지 읽으면서 몇몇 장면에서는 이질감을 느꼈다. 그가 보여준 다양한 캐릭터는 그 정체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잘 모르게 만든다. 어떤 때는 악당이고, 또 어떤 순간은 악동이고, 어딘가에서는 꾀돌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양한 신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 모습은 자주 변하는데 저자도 이 부분은 지적하고 있다. 모호한 정체성을 제외한다면 가장 흥미로운 신임에 분명하다.

 

오딘과 토르의 이야기는 그 이름에 비해 낯선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았다. 오딘의 경우 제우스와 비슷한 모습인데 아주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토르는 영화 속 이미지가 너무 강해 읽으면서 자꾸 겹쳐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재미난 부분은 이들이 드워프의 세공 기술에 의해 무기를 만드는데 그 성능이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이 절대무기도 모순에 처한다. 어떤 무기는 항상 승리를 준다고 했지만 중과부족에 처한 경우가 있다. 토르의 묠니르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지만 다른 마법에 막히는 경우도 있다. 절대성이란 대전제가 흔들린다. 그런 점에서 이 신들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물론 이들이 의미하는 바는 의인화를 거친 신들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복잡한 구성도 아니고 어렵고 힘든 내용을 다룬 것도 아니다. 처음에 낯익은 신들이 나올 때는 아주 흥미로웠지만 낯선 이름이 나오면서 집중력이 조금씩 깨졌다. 다양한 운문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그 출처가 적지 않다. 처음에는 에다를 인용한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뭐 금방 다른 작가의 작품인줄 알았지만. 이야기 곳곳에 어떻게 북유럽 신화가 사라졌는지 알려주었을 때 안타까웠다. 그 지역의 신화를 껴안고 축제로 승화한 부분이나 현대의 요일을 의미하는 단어로 바뀐 것을 알려줄 때 생각보다 우리의 생활 속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이나 영화 등을 보다가 북유럽 신화 속 인물이 등장할 때 참고하기에 좋다. 간략하게 보기는 북유럽 신화 소사전이 아주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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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의 검 소설NEW 3
김이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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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인 김영민에게 한 통의 전화가 온다. 형 영석이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전화다. 병원으로 차를 몰고 달려간다. 곽 형사는 단순히 뺑소니가 아니라고 한다. 귀가 잘려 있고, 잘린 귀가 양복 주머니에서 나왔다. 두개골 함몰까지 있다. 타살이 분명해보이지만 부검을 해야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이 참혹한 정보를 어머니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다. 형이 근무했던 세관을 찾아간다. 직원들의 반응이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CCTV에 찍힌 영상으로 그를 절도범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화자 김영민 가족의 불편한 내역이 조금씩 나온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족이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형을 죽인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과 형이 들고 나온 것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제목 ‘가토의 검’은 임진왜란 당시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서 사사받은 검이다. 단순히 유물이나 문화재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검으로 치부하기에는 이 검에 부여하는 일본 극우파의 정치적 의도가 무섭다. 여기에 한국 정치인들의 야망이 곁들여진다. 아무 관계도 없는 것 같은 사건이 엮이고 꼬이면서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역시 김영민이다.

 

소설 속에 드러난 사실들을 김영민이 홀로 알아낸 것은 아니다. 사건 전후에 있었던 몇 가지 사실들이 기자로서의 감각을 자극한다. 그 중 하나가 양 보좌관이 언론에 홍보한 통도사 금란가사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국회의원이 노력해서 문화재를 돌려받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영민의 후배기자 아영의 질문은 그 이면을 돌아보게 한다. 가토 가문이 이것을 쉽게 돌려주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다. 이것을 밝혀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김영민이다. 양 보좌관의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수많은 자료를 복사한다. 여기에 가토의 검이 나온다. 이 정보를 조금 더 조사하기 위해 일본 유학파인 아영에게 해석을 부탁한다. 이 자료는 이제 일본에서 교수를 한 아영의 아버지에게 넘어가고, 단순한 문화재처럼 보였던 검의 의미가 드러난다.

 

가토의 검이 지닌 의미가 드러나면서 용의자는 축소된다. 그가 조사한 것들이 담당형사인 곽 형사에게 전달된다. 기자의 감과 조사가 범인을 정확하게 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곽 형사의 조사도 만만찮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양 보좌관의 알리바이가 확실하다. 그럼 누굴까? 이야기는 가장 원론적인 부분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영민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나고, 그의 숨겨진 야욕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지방대 출신 지방신문 기자에서 중앙으로 옮겨 성공한 그의 과거는 어떻게 보면 입지전적이지만 순간 드러나는 폭력성은 그를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든다.

 

형의 살인을 둘러싼 진실과 가토의 검이 지닌 의미 등이 엮이면서 단순한 살인사건을 벗어난다. 하지만 그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에서 진실이 밝혀질 때 놀라지만 그렇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작가가 많은 사실을 숨긴 채 전체 이야기를 이끌고 나갔다. 다만 김영민 가족의 과거사를 통해, 한국의 정치 현실에 대한 아영의 개탄을 통해 그 단서를 조금씩 흘려보낼 뿐이다. 특히 김영민의 과거는 그가 종국적으로 추구하는 바와 그대로 이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이야기 구성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취향을 탔다. 이런 종류의 트릭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단서를 하나 던져놓으면서 그 결말에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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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고전 : 동양편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김욱동 지음 / 비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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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 시리즈를 모두 읽었다. 한국에서 시작해 서양을 거친 후 동양 편으로 마무리했다. 개인적으로 첫 권인 한국 편이 가장 신선했고 재미있었다. 동양 편을 읽으면서 나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중국, 일본, 인도를 제외하면 다른 아시아 나라의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솔직히 이 부분은 아쉽다. 물론 이 세 나라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도 그 나름의 문학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른 아시아 국가의 문학 등을 번역한 작품들이 거의 없다는 문제는 있다. 그래도 조금 더 다양한 나라가 다루어졌으면 한다.

 

예상한 대로 노자의 <도덕경>이 나왔다. 그것도 가장 먼저다. 노장 사상은 자연을 말할 때 늘 빠지지 않는 철학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해석을 읽으면서 나의 기억 중 잘못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구절이다. 나중에 <도덕경>을 다시 한 번 펼쳐 읽으면서 확인해봐야 할 부분이다. 재미난 부분 중 하나는 공자에 대한 해석이다. 인본주의자로 알고 있던 그의 언행 중 하나를 뽑아 생태학의 의미를 부여할 때 약간 작위적인 부분이 있지만 현재 우리의 삶과 비교하면 상당히 생태적이다. 어쩌면 우리가 후대의 해석에 의해 공자의 이미지를 만들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도입부를 지나면 일본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세이 쇼나곤이다. 그녀의 수필에서 생태학의 의미를 뽑아내어 해석할 때 나의 인식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깨닫는다. 단순히 자연을 노래했다고 생각했던 문장들 속에 품고 있는 의미들이 독자가 지닌 한계 속에서 해석되어졌기 때문이다. 일본 편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진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하이쿠다. 그 짧은 시 속에서 몇 쪽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보고, 저자의 박식한 능력에 감탄했다. 바쇼와 요사 부손과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가 이런 의미도 있을 수 있구나 하고 처음으로 느꼈다. 늘 하이쿠하면 바쇼만 생각하던 나에게 새로운 하이쿠 시인을 알려준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 동양 편의 특징 중 하나는 시에서 생태학을 풀어낸 것이다. 일본의 하이쿠가 있다면 중국은 이백과 도연명과 두보 등의 유명 시인의 시들이 다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동방규와 왕기, 장유병 등의 글도 같이 다룬다. 낯익은 시 구절이 저자의 해석 속에서 새롭게 풀어지고, 집에 고이 모셔놓은 ‘당시선’을 다시 읽게 되면 차분하게 그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봐야지 하고 다짐을 한다. 물론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해석 중 베트남 전쟁 당시 고엽제를 둘러싼 재판 부분은 미국의 이중적 윤리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들이 주한 미군 주둔지에 저지른 행동을 보면 약소국의 비애를 느끼고, 우리 후손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신들의 나라라고 칭하는 인도에 오면 나에게 혼란이 생긴다. 여기저기에서 읽은 글 때문에 낯익은 이름들이 있지만 아직도 낯선 신들이 많기 때문이다. 타고르의 시와 간디의 연설문은 상징과 간결함으로 대비되면서 읽는 재미를 주었다. 간디가 공기에 대해 말할 때 중국의 황사와 스모그 문제가 우리나라와 연결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리즈에서 늘 다루어지고 있는 또 하나의 재앙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우리에게 재앙임을 거듭 강조한다. <바그바다 기타>에 대한 글은 꼭 읽어봐야지 하는 열정을 불러왔고, 단순히 읽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한 자 한 자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지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의지를 불러왔다. 뭐 대부분 이 의지가 너무 나약하다는 문제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해석이었다. 각 권이 연결되는 부분도 어느 정도 있어 차분하게 읽으면서 각 권에서 다룬 것과 비교한다면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대목도 있다. 그것은 중국 시를 해석하면서 너무나도 중국의 시선에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북쪽 오랑캐라는 단어를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데 그 나라들이 가진 이름을 생각하면 아쉽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 이 동북아 삼국의 관계를 생각할 때 용어의 선택과 사용은 언제나 조심하고 신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가끔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만 저자와 편집자라면 분명한 주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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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9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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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2000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올림픽을 3주 정도 보고 경험한 것을 적은 취재기다. 재미난 것은 그가 올림픽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지사의 요청에 의해 시드니 특별취재원이 되어 올림픽 현장의 소식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가 바라보는 올림픽의 모습은 이미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거대한 산업이다. 필요하지 않는 경기가 늘어나고, 엄청난 금액의 광고비를 낸 업체들의 홍보장소로 전락한지 오래다. 에피소드 중 코카콜라와 펩시에 대한 것은 아주 작은 해프닝이지만 올림픽의 변질된 본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도 올림픽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막식이나 폐막식을 처음부터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니 개,폐막식을 잠시나마 본 적도 거의 없다. 각 나라의 대표들이 지루하게 입장하는 것을 몇 시간이나 볼 만큼 인내력도 없다. 하루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비싼 돈을 주고 들어간 개막식을 중간까지 보다가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근처에 앉은 이탈리아 청년들의 열정은 이 거대한 축제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가 개막식과 폐막식에 대한 혹평을 날릴 때 고개를 자연스럽게 끄덕인 것은 바로 나의 생각과 맞았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하루키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달리기다. 그가 올림픽 종목에서 가장 관심을 두는 종목도 마라톤이다. 남녀 마라톤과 1만 미터 달리기에 대한 글들은 애정이 가득하게 묻어 있다. 문장의 리듬이나 힘이 다른 종목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다. 전체 코스를 돌아보고 오르막과 내리막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레이스를 보고, 선수들의 미세한 움직임마저 포착해서 자세한 해설을 풀어놓기도 한다. 이것은 그가 매일 아침 한 시간 정도 달린 것과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철인3종 경기에서도 이와 비슷한 열정이 넘친다. 개인적으로 이 취재기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글들이 바로 마라톤과 철인3종 경기에 대한 기록이다.

 

특별취재원으로 왔으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보고 갈 수 없다. 다른 경기도 봐야 한다. 대부분은 일본 선수들이 출전하는 경기를 보는데 한국과 대결이 있는 경우 눈이 번쩍 뜨인다.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력을 더듬고, 어떤 경기는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새롭게 한다. 그가 본 경기 중 재미난 것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마쓰자카가 등판한 모든 경기를 봤다는 것이다. 한국과의 마지막 경기는 지금도 구대성의 멋진 투구로 나의 뇌리 속에 남아 있다. 다른 경기는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검색하다 이때가 이봉주 시대였는데 하루키의 글 속에 이름조차 없는 것을 보면 그 당시 세계가 그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올림픽 관람기였다면 승리와 패배에 초점을 맞추고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가득 찼을 것이다. 하지만 의도했든 아니든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를 알게 되었고, 그 속에 담긴 갈등과 해결의 실마리를 보게 되었다. 코알라와 상어에 대한 글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경기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역시 그가 얼마나 올림픽이란 행사에 관심이 없는지 잘 보여준다. 나중에 후기에서 ‘다시 올림픽을 보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다시는 오지 않겠다’였다. 하지만 약 3주 동안의 경험을 즐거웠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이미 번역되어 나온 적이 있지만 새로운 내용이 더 들어가고 이우일의 그림이 덧붙여졌다고 한다. 읽으면서 이 그림이 이우일일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표지를 벗기고 읽었으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간결하고 투박한 그림체가 읽는 내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왠지 제대로 그리다 만듯한 그림체인데 하루키의 문체와 어우러지는 부분이 상당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작과 끝부분에서 남녀 마라토너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집어넣었는데 처음에는 이 둘이 올림픽 메달리스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림픽 기록에서 그 이름을 찾지 못했고, 작가의 글 속에서 그들이 그때 어떤 일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여기에 전문취재원과의 차이가 너무 두드려져 승리의 기록만이 아닌 그 경기장 안팎의 다양한 사람들의 열정과 감정과 생각들을 조금은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의 톡톡 뛰는 문장들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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