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잠 밀리언셀러 클럽 145
가노 료이치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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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은 엄청난 토건국가다. 한국이 토건 사업으로 국토를 파헤치고 뚫고 막고 세우고 하지만 일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 유명한 버블경제 시대 엄청난 자산이 부동산으로 몰렸고, 그 여파는 현재까지 이어진다. 버블경제를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토건사업을 펼쳤던 일본의 모습은 지금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어쩌면 일본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이런 일본의 한 지역 다카하마를 무대로 9일 동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바닷가를 낀 다카하마는 버블경제 시대 수많은 별장과 기업 부대시설이 세워진 곳이다. 하지만 버블이 꺼지면서 그 건축물들이 페허로 변했다. 철거비용이 땅값보다 더 비싸 누구도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할 생각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도시에 공항 건설 계획이 생긴다. 지방 토호들은 자신들의 자산을 늘일 좋은 기회이다 보니 찬성을 하고, 지방 주민들은 환경 문제 등을 감안해서 반대한다. 이 두 세력은 서로의 의지를 관철시키려고 노력한다. 이 대립과 갈등은 이 소설의 중요한 배경이다. 이 공항 건설 계획을 읽으면서 한국의 지방 공항들이 생각났는데 더 나가면 복잡해지 여기서 그만 접자.

 

이 소설을 이끌고 나가는 인물은 카메라맨 다쓰미 쇼이치다. 그는 잡지사가 조작한 사진 때문에 업계에서 쫓겨난다. 그 후 생계를 위해 흥신소 일을 했다. 누명이 벗겨진 후에도 그를 부르는 잡지사는 없다. 이런 그가 관심을 가지는 사진이 있다. 바로 폐허다. 이미 몇 년 전 폐허 사진집을 낸 적이 있다. 다카하마에 온 이유도 폐허가 된 다카하마 호텔을 찍기 위해서다. 새벽빛 속의 다카하마 호텔의 폐허를 찍으려는 그가 호텔 안에서 한 여성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녀는 이 마을 출신의 유명한 작가이자 공항 건설 반대파의 일원인 아이자와 다에코다. 최초의 시체 발견자라는 이유와 그의 이력이 이 살인사건에 발을 담그게 만든다.

 

다쓰미는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 후지코다. 그녀는 잡지사 기자이고, 다에코가 죽기 전 인터뷰한 이력이 있다. 처음에 그녀는 단순히 다쓰미와 다니면서 이 사건의 관련자를 만나는 인물 정도였다. 그런데 다쓰미가 찍은 사진을 현상해서 가지고 나온 후 다카하마 호텔에서 추락한 채 발견된다. 경찰이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고가 아닌 살인을 노린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쓰미의 후지코에 대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고, 그 범인을 잡으려는 열정이 불타게 된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같은 호텔에서 전 아내를 잃은 지방 신문사 기자 안비루가 있다. 그는 친구인 형사 쓰보이로부터 단서를 얻고, 자신들이 찾은 단서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다쓰미의 가장 좋은 파트너다.

 

처음 다에코가 죽었을 때만 해도 단순해 보였다. 공항 건설과 관련된 살인 사건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건을 파헤치면서 만나게 되는 지역의 이권과 과거의 사건은 그렇게 단순하지만 않다. 그리고 그녀가 죽었던 다카하마 호텔은 이전에 정계와 재계에 검은 돈을 뿌렸던 이종원의 아내가 운영했던 호텔이었고, 5년 전 화재가 발생한 곳이다. 이 화재는 이종원의 아내 가나코가 보험금을 노리고 저지른 사건이란 의혹도 있다. 여기에 방화범 용의자였던 인물이 다리에서 떨어져 죽은 사건까지 있다. 덧붙여 공항 건설 반대파의 회장인 스에쓰구 씨는 이종원의 아들이자 다에코의 연인이다. 보통의 살인사건이라면 그의 전남편 안비루나 스에쓰구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될 것이다.

 

보통의 미스터리라면 공항 건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폐허가 된 다카하마 호텔이 중요한 단서이자 배경으로 작용한다. 화재 사건에서 비롯한 일들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항 건설이 완전히 동떨어진 것도 아니다. 야쿠자 조직이 이권을 위해 개입하고, 지역 주민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또 다른 죽음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사건을 몇 가지 단서와 추리만으로 멋지게 해결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다쓰미다. 개인적으로 그의 추론 과정이나 단서 등이 충분히 소설 속에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매력적인 캐릭터이지만 조금 과장된 듯한 모습이다. 아니면 내가 이야기 속에서 작가가 흘린 단서를 너무 소홀하게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범인으로 지적될 때 나의 뇌세포도 같이 빠르게 회전하고, 그의 결론에 감탄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여운은 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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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vs. 서울보통시 - 서울은 왜 서울인가 서울 택리지 2
노주석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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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부터 2015년 2월까지 3년에 걸쳐 서울신문에 장기 연재되었던 <노주석의 서울택리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종이신문을 거의 읽지 않다 보니 이런 연재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기존의 <서울택리지>가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역사.지리적 개념잡기였다면, 이번에는 정치.문화적 색깔을 더했다고 한다. 하지만 끝까지 읽으면서 그 정치색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느꼈다. 신문 연재이다 보니 충분하게 정치적인 내용을 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내용을 다루다 보니 그냥 가볍게 훑고 지나가는 부분도 적지 않아 깊이의 아쉬움이 조금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백미는 앞의 3개 장이다. 현재 서울의 강남, 강북 문제를 이전의 남촌, 북촌으로 연원을 끌고 올라간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거주지가 신분을 나타내었던 조선 시대를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문학 작품을 인용해 과거 서울의 풍경과 그 속의 삶을 풀어낸 부분은 한 거대 도시의 발전사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서울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 두 번째 지명으로 넘어가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일제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민족의 역사까지 훼손한다고 지적할 때 특히 그렇다. 저자가 말하는 우리나라 지명 역사의 두 가지 경천동지할 사건 중 하나가 일제의 창지개명이다. 이 창지개명은 신라 경덕왕이 모든 지명을 일률적으로 한자로 바꾼 것은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내가 즐겨 다니던 곳의 지명 유래를 보고 있으면 친일잔재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다. “지명 속에는 그 지역의 내력이 오롯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역사와 행정이 따로 노는 부분은 하나씩 바로잡아 나가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구한말 한양의 지도나 사진을 보면 지금과 많이 다르다. 규모나 시설이야 다른 것이 당연하지만 궁궐의 크기나 한양도성은 많이 훼손되어 예전과 차이가 크다. 예전에 북한산 등산할 때 한창 복원 중인 성곽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사실 그 의미를 제대로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사진으로 본 한양도성의 낯과 밤은 내가 늘 가보고 싶고 걷고 싶었던 그곳이다. 한양도성의 사대문이 지닌 의미와 그 훼철의 역사를 보면 다시 한 번 더 일제의 역사 및 문화 파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다음 장의 서울 사수를 위해 지은 북한산성과 남한산성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특히 남한산성의 축성술에 대한 극찬과 한 번도 외세에 빼앗기지 않았던 사실은 늘 지나가기만 했던 그곳을 한 번쯤 발로 밟고 싶다는 욕구를 더욱 부채질한다.

 

서울이란 말의 어원을 ‘신라의 수도 서라벌을 어원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라고 한다. “서울이란 수도를 뜻하는 보통명사이지 땅이름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수도 서울은 중복이다.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이승만 정권 당시 서울의 이름을 바꾸려고 했던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간단하게 서울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향토사와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지방학의 연구 목적이나 대상 혹은 범주가 주로 지역 사회의 역사문화 전통으로 한정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경계하자”는 의미다.

 

한성판윤과 서울시장을 다룬 장은 서울과 서울시장의 정치적 위상에 대한 글이다. 통계와 그 해설이 깊이 있는 곳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단편적인 부분에 머물러 아쉽다. 마지막 장은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서울의 발전사를 간략하게 들려주는데 역시 아쉬움이 많은 글이다. 이 아쉬움은 이전에 서울이 어떻게 발전하고 팽창했는지를 다룬 책을 읽었기에 생긴 것이다. 단순하게 그려내기에는 그것과 관련된 수많은 이권과 위생과 환경 등이 아주 복잡하게 엮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서울시장이 누구였고, 가십이 어떤 것이 있었고, 아파트를 많이 지었다는 것만으로 요약하기는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울에 대해 개론적이고 개괄적이면서 역사적인 부분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 방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 다음은 독자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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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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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을 정말 오랜만에 읽는다. <눈먼 자들의 도시> 이후 처음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의 소설이 집에 더 있지만 읽은 책은 이 책 이전에 <눈먼 자들의 도시>가 유일하다. 하지만 워낙 강한 인상을 받았기에 나오면 항상 위시리스트에 올려놓고 한 권씩 샀다. 나에게 사라마구는 그런 존재다. 자주 읽지 않지만 단 한 권으로 영혼 깊은 곳에 아주 강한 인상을 각인시킨 작가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약성서의 첫 살인자 카인을 재해석했다. 이전부터 그의 작품을 꾸준히 읽은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아주 불경한 듯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 불경함은 기독교도에게 해당한다.

 

그렇게 두껍지 않다. 분량만 놓고 보면 2~3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읽으면 더 긴 시간이 걸린다. 그만의 독특한 문장 구조 때문이다. 문단과 화자의 구분이 없어 문맥으로 파악해야 하기에 집중하면서 읽어야 한다. 순간 문맥을 놓치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다. 천천히 집중하면서 읽으면 아주 공들여 쓴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문장들 속에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널어놓았다. 기독교 국가 태생인 작가이기에 가능할 것 같지만 <구약성서> 속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인간적으로 풀어놓은 책은 정말 오랜만이다.

 

카인. 동생 아벨을 죽인 죄로 평생 유랑하면서 산다. 머리에는 살인자의 낙인이 찍혀 있다. 그런데 카인과 여호와의 대화는 공모자라는 인식을 처음부터 심어준다. 카인이 아벨을 죽이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후 카인은 수많은 현재를 유랑하면서 구약성서 속 이야기를 재해석하고 비틀고 논리적 허점 등을 지적한다.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한 수많은 학살과 파괴의 현장을 둘러본다. 왜 이런 파괴와 학살을 저지르는지 여호와에게 묻는다. 욥의 시련은 단지 사탄과의 내기에 의해 일어난다. 그가 받은 시련은 단지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한 것일 뿐이다. 비신자이자 이성에 의해 판단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런 부분들을 작가는 하나씩 지적하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카인이 유랑하면서 본 현재들은 수백 수천 년의 역사지만 그는 그 시간을 현재로 살아간다. 하나님이 그에게 벌로 내린 능력이기도 하다. 이 저주는 그가 여호와를 긍정하고 믿게 만들지 않고 회의하고 부정하게 만든다. 이것은 구약성서가 가진 비이성적이고 일방적 강요에 대한 이성적 반응이다. 대화와 용서를 통해 구원을 얻을 것이란 기대는 학살과 파괴들에 의해 산산조각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는 외면한다. 아니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강요한다. 이 믿음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징벌이 내려온다. 그래서 읽는 동안 불편했다. 현재 나의 이성이 이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비기독교적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도와 대화를 하면 그들은 늘 신앙을 내세운다. 나는 논리와 과학과 이성을 말한다. 이야기는 평행선을 탄다. 대화의 결론은 없다. 신의 뜻을 인간이 알 수 없다는 말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그럼 묻고 싶다. 왜 그 신을 믿느냐고? 인간을 왜 그렇게 만들었냐고? 교리문답에 이에 대한 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작가들이 이미 다루었다. 나의 이성을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신자와 비신자의 차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머릿속에 계속 든 생각도 바로 이것이다. 무결점이라고 하지만 자신이 만든 세상을 자신이 바라는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새롭게 만드는 모습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비슷해 보인다. 다 알지 못하기에,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에 오류가 있기에 리셋해야 하는 경우처럼. 노아의 이야기가 가장 마지막인 것은, 그 이야기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전개를 펼쳐보이는 것은 단순히 발칙한 상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신의 존재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우리가 종교인과 논쟁하는 것에 대한 작가의 의견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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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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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미도서상 수상작이다. 분량도 적지 않다. 700쪽이 넘는다. 읽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책이 재미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의 몸 상태가 나빠 며칠을 그냥 보냈기 때문이다. 이 긴 장편을 읽으면서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들의 삶에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상황이나 장면에서는 너무나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장면이나 상황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던 미국의 부흥기 속의 어두운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빈민가의 모습과 흑인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 등은 현재 기준으로 아주 놀라운 모습이다.

 

그들. 이 소설 속에서 가리키는 그들은 엄마인 로레타와 그녀의 아들 줄스와 딸 모린이다. 이 2대의 1937년 여름부터 1967년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까지 시간을 다루고 있다. 그 시간은 어느 부분에서는 아주 세밀하게 다루어지고, 어느 순간은 생략된 채 다른 시간대로 넘어간다. 갑자기 시간이 바뀌면 그들의 삶은 다른 모습을 가지고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이 시간의 비약이 낯설다. 왜냐고? 그 빈 시간을 작가가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이야기 속에 이 부분이 다루어지지 않으면 독자의 상상력으로 그곳을 채워야 한다. 의문으로 남겨둬야 하는 곳도 적지 않다.

 

가난은 대물림을 한다.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가 공부를 하는 것이다. 처음 줄스가 태어났을 때 보여준 몇 가지 장면과 설명은 줄스의 밝은 미래였다. 하지만 현실은 쉽게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맹모삼천지교의 한 사례인가 싶게 그는 주변에 쉽게 물든다. 책을 좋아하는 모린의 경우도 더 나은 미래가 보이는 듯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탈출구가 막히고, 폭력이 곁들어지면서 오히려 퇴보한다. 이렇게 적고 보면 이들이 못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이들은 미남 미녀다. 이 외모를 이용할 기회를 잡지도 못했고, 제대로 활용조차 못한다. 읽으면서 계속 안타까웠던 것은 이들의 삶이 늪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장면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로레타. 열여섯의 그녀는 예뻤다. 하지만 그녀가 남자 친구와 동침한 밤 그 남자 친구가 총에 맞은 채 발견된다. 그 남친도 하층민의 양아치 같은 인물이지만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죽음에 대해 정확한 살인자를 작가는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로레타의 오빠 브록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글만 나온다.(작가의 발문에서 브록이 죽였다고 말한다) 그러다 경찰 웬들을 만나 이 상황을 벗어난다. 이 웬들이 로레타의 첫 남편이 된다. 평온한 중산층의 삶이 펼쳐질 것 같은 순간 부정으로 하워드가 경찰에서 짤린다. 시골로 내려간다. 이곳에서 두 딸을 더 낳지만 그녀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 이 웬들 가족이 가장 고요하게 보낸 시기가 바로 이때다.

 

디트로이트로 온 그들의 삶이 도시 하층민을 벗어나지 못한다. 남편이 직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는 사고로 죽는다. 줄스가 일을 해서 가족의 생계 일부를 책임지지만 충분하지 않다. 로레타도 일한다. 줄스는 공부에 관심이 없다. 어수선한 사회분위기와 빈곤은 가장 확실한 신분 상승의 방법인 교육으로부터 줄스를 멀어지게 한다. 나중에 그에게 기회가 찾아오지만 갑작스럽게 생긴 일로 사라진다. 그리고 그를 찾아온 열정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은 평화로운 삶을 방해한다. 그와 네이딘의 사랑은 이성으로 분석하기에는 불가능한 부분이 많다. 존 업다이크의 <브라질>이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정이입을 많이 한 인물이 줄스인데 그의 삶이 정말 많이 흔들리고 불안하다.

 

모린의 삶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다. 어린 나이에 집안 살림을 맡아 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선택한 매춘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상황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 불안한 순간들이 이어지다 새로운 아버지의 폭력 앞에 무너질 때 그녀의 삶도 퇴보한다. 오랜 침묵 끝에 되돌아온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자신의 어머니와 별 다른 차이가 없다. 유부남과의 사랑과 결혼이 목표다. 충분히 자립적인 여성으로 자랄 수 있었던 그녀의 과거를 떠올리면 그 안타까움은 배가 된다.

 

가볍게 읽기에는 분량도 많고 내용도 무겁다. 도시 빈곤과 인종 문제가 그 바닥에 조용히 깔려 있고, 안정적인 중산층을 바라는 목소리도 계속 나온다. 그런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삶은 주변에 의해 흔들린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들’은 중산층일 수도 있고, 도시 빈민들일 수도 있다. 낯선 시대와 나라를 배경으로 다룬 소설이다 보니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강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 나의 삶과 우리의 삶과 어떤 차이가 있고, 비슷한 부분이 있는지 계속 떠오르기 때문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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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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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캐롤>의 원작소설이다. 이 소설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다른 필명인 클레어 모건으로 출간했었다. 나중에 다시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기는 했지만 그 이전까지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 책의 페이퍼백이 거의 백만 권 정도 팔렸다는 것이다. 레즈비언이 주인공인 소설이 이렇게 성공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처음 출간된 시기가 1952년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제는 동성애가 우리의 일상에 낯익은 것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많은 사회문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책 속 몇몇 표현이 잘 이해된다.

 

하이스미스가 빈곤했던 시절 백화점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자전적인 요소가 일부 담겨 있지만 그렇게 길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 단지 도입부의 몇 장면이 그대로 인용된 것 같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평생 동안 작가의 유일한 로맨스 소설이 되었다. 로맨스 소설 팬에게는 아쉬운 일이겠지만 스릴러 팬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이 성공에 의해 로맨스 작가로 전업했다면 우리가 즐겼던 그 수많은 서스펜스 작품을 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중에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한 리플리 같은 주인공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레즈비언 소설이라고 규정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다. 단지 그 두 사람이 여자였을 뿐이다. 그 두 주인공인 테레즈와 캐롤은 그 시대의 금지된 사랑을 한다. 먼저 끌린 것은 분명 테레즈다. 하지만 이 끌림은 캐롤까지 끌어당긴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의 테레즈에 비해 더 성숙한 캐롤은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긴다. 테레즈의 행동과 심리를 작가는 아주 섬세하게 그려내었다. <캐롤>이란 제목만 봐서는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사람이 캐롤 같지만 실제는 테레즈다. 그녀는 무대 디자이너인데 경험이 거의 없다. 당연히 일이 없다 보니 부업을 해야 한다. 그 장소가 바로 백화점이다. 작가가 이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 두 사람에게는 남편과 연인이 있다. 캐롤에게는 이혼을 진행 중인 남편과 딸이 있고, 테레즈에게는 리처드라는 남자 친구가 있다. 리처드는 테레즈를 사랑하고 그녀와 함께 갈 유럽 여행을 꿈꾸고 있다. 만약 캐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둘은 배를 타고 유럽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캐롤의 등장은 테레즈에게 사랑을 일캐워주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게 만든다. 아직 한 번도 여자와 잔 적이 없는 그녀의 떨림과 기대와 긴장감은 이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그녀에게 끌려가는 듯한 모습과 반전처럼 펼쳐지는 캐롤의 감정은 이야기 중간중간에 나왔던 그녀의 행동에 대한 답이 된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낼 때,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상대가 있을 때 그 사랑은 아주 불타게 된다. 이 책의 전반부는 그 감정을 드러내는 과정이라면 후반부는 이 사랑을 그대로 드러낸다. 자동차로 여행하는 두 연인의 하루하루가 새로운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큰 기회가 된다. 그 누군가가 바로 캐롤의 남편이다. 아직 이혼 중인 부부고, 동성애가 금기시되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연인들 사이의 시련은 둘 사이에 생기기도 하지만 그 사랑이 뜨거울 때는 대부분 외부에서 비롯한다.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거나 이 때문에 이익을 바라는 사람이 있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사랑과 그리움은 자신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테레즈의 행동과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강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동성애와 상관없이 말이다. 장애는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가름하는 하나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현실의 벽은 아주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까지 읽으면서 예상한 결론과 다르게 끝났을 때 조금은 놀랐다. 작가는 이것이 성공의 이유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 공감한다. 이들의 사랑에 자신들의 감정을 이입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지 않아 그 재미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지만 하이스미스의 유일한 로맨스 소설이란 것과 테레즈의 변화무쌍한 심리를 들여다본 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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