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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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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자신이 직접 단편을 선택한 단편집이다.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편집했다. 이 중에서 중기 단편들은 연작들로 구성되어 있다. 재미있는 편집이다. 그리고 초기 작품은 중기 이후 작품들과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나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 해설을 보면 큰아이의 머리 이상이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또 하나 놀라운 이야기가 옮긴이의 말에 나온다. 그것은 한 작가에 대한 깊은 독서가 그의 글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기 단편들을 읽다 보면 이것을 아주 잘 느낄 수 있다.

 

오래전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문학상을 탔을 때 그의 소설을 사 읽었다. 솔직히 말해 그 당시 정말 재미없었다. 하지만 상에 대한 허세가 지금보다 더 강했던 그때는 고려원에서 나온 전집의 몇 권을 살 정도의 오기도 있었다. 아마 고려원 부도로 인해 할인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SF라는 말에 혹해 산 책을 아주 힘겹게 읽고 바로 다른 책들은 포기했다. 그러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체인지 링>에서 시작하는 삼부작 중 두 권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 <체인지 링>은 아주 힘겹게 읽었다. 그런데 다음 작품인 <우울한 얼굴의 아이>는 전편보다 더 쉬웠고 재미있었다. 아마 이때부터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이 나에게 조금씩 문을 열어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초기 작품들은 지금 그의 작품들을 생각하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처녀작인 <기묘한 아르바이트>와 <사자의 잘난 척>은 어떻게 보면 연작의 분위기가 풍긴다. 화자는 대학을 배경으로 아주 이상한 아르바이트를 한다. 폐기처분해야 하는 개들 이야기나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 등이다. 하나의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를 살짝 엮어 풀어내는데 조금은 끔찍하고 기괴한 느낌을 준다. <남의 다리>는 어떻게 보면 외설적이다. <사육>은 추락한 비행기 흑인이 산속 마을 사람들에게 잡힌 후 그를 둘러싼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의 대응과 반응을 다룬다. 흑인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의 반응과 대화가 통하지 않은 사람들의 인간적 교감이 좋게 느껴지다 반전이 펼쳐진다.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인간 양>은 읽으면서 이청준의 단편이 떠올랐다. 버스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물론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실렸던 것으로 기억나지만. 미군과 굴욕적인 사건을 다루는데 이 사건보다 놀라운 것은 이후 한 사람이 보여주는 반응과 집착이다. 굴욕의 대상이었던 학생보다 선생이 자신의 입장을 내세워 사건을 키우려고 희생양을 요구할 때 사회의 한 단면이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우리의 현실과 너무 닮았다. <돌연한 벙어리>는 미군 통역사가 보여준 호가호위를 둘러싼 이야기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반전이다. <세븐틴>을 읽으면서 왜 이런 글을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 소년이 우익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빠르게 다루는데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할 소설이다. <공중 괴물 아구이>는 역자의 말에 따르면 <개인적 체험>과 짝을 이룰 수 있는 소설이다. 작가의 아들에 대한 선택을 다르게 해서 풀어내었는데 그 감정이 강하게 다가온다.

 

중기로 넘어가면 연작 소설이 네 개 나온다.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과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와 <조용한 생활>과 <하마에게 물리다> 등이다. 이 작품들부터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가 하나의 소재로 이용되고,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과 조화를 이룬다. 어떻게 보면 전혀 관계없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가족들, 특히 큰아들이 중심을 잡아준다. 그리고 반핵과 반전. 이 작품들에서는 그가 집중적으로 읽는 작가에 대한 글들이 단편 속에서 계속 나온다. 맬컴 라우리. 윌리엄 블레이크, 단테 등이 대표적이다. 맬컴 라우리는 생소해서 검색한 후 알게 된 인물이고, 다른 시인들은 한 번씩 가볍게 휙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나의 얇은 지식은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겉만 살짝 핥고 지나간다. 이 중에서 <조용한 생활>은 집에 고려원 판이 있어 첫 문장을 비교해봤는데 상당히 달랐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손보면서 바뀐 것인지, 아니면 같은 문장을 다르게 번역한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후자라면 어느 쪽이 제대로 된 번역인지 원문과 비교해보고 싶다. 일본어를 잘 모르지만.

 

역시 후기 단편으로 오면 좀 더 집중해야 한다. 자신의 경험과 가족과 주제가 뒤섞이면 풀어내는 이야기가 세밀하고 집중적인 독서 없이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울보’ 느릅나무>는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고, <벨락콰의 10년>은 단테의 한 인물을 자신과 비교해서 풀어내는데 마지막 문장은 웃게 만든다. <마고 왕비의 비밀 주머니가 달린 치마>는 한 필리핀 여성을 두고 마고 여왕 이야기를 엮어 풀어내었는데 재미도 있고 작가의 성향이 잘 드러나 있다. <불을 두른 새>는 젊은 시절 오독이 새로운 해석을 만난 후 완전히 굴복한 것을 자신의 경험과 엮었는데 역시 세밀하게 읽어야 한다. 작가의 이 경험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는데 왜 그가 세계적인 대문호로 인정받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모든 단편들을 읽고 난 후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일단 집에 꽂혀 있는 작품들에 한 번 더 시선을 줘야겠다. 늘 그렇듯이 언제 읽을지 알 수는 없지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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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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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기시 유스케의 소설이다. 그의 이름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전에 <검은 집>을 읽었지만 솔직히 나에게 강한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그 당시 더 자극적인 소설을 읽었던 탓도 있고, 이런 종류의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읽은 <푸른 불꽃>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 다음 수순은 당연히 기시 유스케의 소설을 한 권씩 사는 것이다. 그리고 책장에 고이 잠들어 있다. 이 책도 분량이 좀더 많았고, 선물이 아니었다면 그런 책들과 같은 운명이 되었을지 모른다. 책 욕심이 독서 속도를 이미 추월한지 오래다.

 

1인칭 소설이다. 화자는 작가인 안자이 도모야다. 그는 나름 성공한 작가다. 꿈으로 문을 열고, 잠에서 깨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날 밤 아내 유메코와 신작 <어둠의 여인> 성공을 축하하는 술 한 잔 하고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내는 곁에 없고, 신발과 옷이 사라졌다. 밖으로 연결 가능한 통신 수단은 모두 불통이다. 이때 그의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들린다. 벌의 날개 소리다. 한 겨울인데 벌이라니 이상하다. 그런데 이 벌이 보통 벌이 아니다. 말벌이다. 그는 말벌에게 쏘이면 그 쇼크로 죽을 수 있다. 공포에 사로잡힌다. 창에 있던 한 마리를 죽인다. 안심한다. 이 안심은 다른 말벌의 출현으로 사라진다.

 

다른 방으로 도망간다. 기억을 더듬어 말벌을 피하려고 한다. 모든 도구를 이용해 말벌을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 시도는 금방 무력화된다. 따뜻한 집안은 말벌이 서식하기 좋은 온도다. 밖으로 달아나면 간단하지만 옷도 신발도 없는 상태에서 한겨울의 추위를 견디는 것은 무리다. 살기 위해 말벌에 대한 기억을 더듬고 되살린다. 밀폐된 공간에서 말벌과의 싸움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 긴장감 사이사이에 과거의 기억과 그가 쓴 글들이 삽입된다. 여기에 단서가 숨어 있다. 반전도 있다. 그리고 사라진 아내와 그녀의 친구였던 곤충 전문가 미사와가 떠오른다. 이 두 사람이 그를 죽이려고 이런 장치를 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유는 보험금이다. 일단은 살아남아야 한다. 추위와 말벌의 공격으로부터 어떻게든 말이다.

 

작가는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를 아주 긴장감 있게 잘 다루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넘어가면서 앞에 깔아둔 설정을 반전으로 이용하면서 그 힘을 잃어버린다. 단순히 반전만 놓고 보면 서술트릭의 멋진 승리일 수 있지만 전체 구성을 놓고 보면 이 반전이 오히려 산만하게 다가온다.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내 개인의 취향에 비추어봐서 그렇다는 말이다. 읽으면서 어색하고 뭔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이것을 마지막 순간에 다 풀어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증인들까지 동반한 채로. 솔직히 말해 다른 작품들처럼 계속 1인칭으로 풀어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더 많은 여운을 남기면서 독자가 상상할 공간을 남긴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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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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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 오랜만에 아사다 지로의 소설을 읽었다. 한때 아사다 지로의 소설에 푹 빠진 적이 있다. 그의 감성적인 이야기는 한 번 빠지면 정신없이 읽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잘 읽힌다. 그런데 책을 받고 나서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있다. 그것은 <안녕 내 소중한 사람> 1,2권의 합본이란 것이다.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마도 그때 약간 아사다 지로에 질렸던 시기였을 것이다. 책은 사지만 손이 잘 나가지 않는 그런 상태라고 할까. 이런 나에게 이 책을 선택하게 도움을 준 것은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의 원작소설이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드라마는 보지도 않으면서 작가에 대한 옛 추억이 발동한 것이다.

 

구성은 평이하다. 죽은 쓰바키야마 과장이 사후 세계에서 이승의 미련 때문에 돌아와 자신이 걱정한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 자신만 나오지 않고 함께 야쿠자 다케다와 초등학생 렌짱이 같이 등장한다. 앞부분만 보면 쓰바키야마 과장의 이야기만 나올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비중이 비슷해진다. 각자가 가진 이승의 미련을 풀기 위해 나흘의 시간을 받는다. 현세에 돌아온 후 벌이는 행동이 각자의 목적을 위한 것인데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하나의 인연으로 묶인 것을 발견한다. 그 속에는 작가의 특기인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성과 코믹함이 곳곳에 심어져 있다.

 

쓰바키야마 과장은 여자의 모습으로 현세에 내려온다. 그것도 아주 예쁜 여자다. 처음에는 놀라지만 아름다운 여성이란 사실에 그가 보여준 행동은 야동의 한 장면 같다. 그가 가진 이승의 미련은 남겨진 처자식과 남은 주택 대출과 백화점의 매출 목표 달성이다. 뼈속까지 백화점맨이다. 여기에 그의 동기이자 섹스파트너였다고 생각한 도모코의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정직한 그이기에 도모코가 보여준 행동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서 최고의 연인을 그는 놓쳤다. 이 이야기는 한 편의 진한 순애보다. 어떻게 보면 미련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지만. 또 다른 현실은 그가 결혼한 아내 이야기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미모도 뛰어난 그녀가 그와 결혼하게 된 이유와 그 후에 있었던 일들도 한 편의 신파다. 하지만 현실적이다.

 

야쿠자 다케다는 아주 충실한 노점상이다. 야쿠자라는 느낌이 없는 인물이다. 그가 죽었던 당시 킬러가 한 말은 그를 이승에 강한 미련을 가지게 한다. 뭐냐고? 사람을 잘못 죽였다는 말이다. 아주 충실한 삶을 살았던 그는 누가 살인 대상인지 알고 싶고, 그 밑의 고봉들이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현세에 돌아온 그의 모습은 멋진 변호사 같다. 그가 자신의 형님들을 만나 그 상황을 복기한다. 이때 그 형님들이 그를 추억하고 내뱉는 말들은 아주 충격적이다. 한 편의 코미디다. 예전에 어떤 멍청한 킬러가 나오는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의 고봉들을 만나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확인한다.

 

렌짱은 예쁜 여자 아이로 나타난다. 이 아이가 바라는 것은 자신의 진짜 부모를 찾는 것이다.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아이는 양부모의 집을 찾아간 후 자신의 영정에 인사를 하고 단서를 찾으려고 한다. 실패한다. 그러다 한 소년을 만난다. 바로 쓰바키야마 과장의 아들 요스케다. 요스케의 옆에는 치매환자로 연기한 할아버지가 있다. 전직 복리후생 공무원이었던 할아버지는 여기서 또 멋진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가장 감동적인 것은 역시 쓰바키야마 과장이 여자의 모습을 하고 이른 아침 전철역에서 이 사실을 말할 때다.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나 가슴이 뭉클하다. 이렇게 인연은 하나씩 이어진다.

 

이 작품 속에는 아사다 지로가 기존에 쓴 소설의 많은 부분이 담겨 있다. 희생적인 아버지, 자신의 일을 사명처럼 여기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 출생의 비밀, 야쿠자의 본모습과 숨겨진 모습, 순애보 이야기 등. 그리고 사후 세계도 상당히 특이하게 그려내었다. 현세의 발전에 발을 맞추었는데 가장 놀라운 것은 영혼의 권리에 대한 부분이다. 천당과 지옥의 중간 지역인 중유에서 벌어지는 몇 가지 에피소드는 낯익은 부분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시스템과 현실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따뜻한 감성은 당연하다. 갑자기 드라마는 어떻게 이 이야기를 각색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비가 주인공이란 부분에서 많은 부분 변화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원작의 감성은 잘 살려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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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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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나온 수많은 미스터리 소설 중 가장 많은 호응을 받은 작품 중 한 편이 <13.67>일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홍콩에서 이런 추리물이 나왔다는 것에 놀랐다. 당연히 이 놀람은 책 구입으로 이어졌다. 그 다음은 늘 그렇듯이 책장 속으로 사라졌다. 언젠가 읽겠다는 의지와 함께. 그러다 조금 더 얇은 책이 또 한 권 나왔다. 일본의 시마다 소지 추리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인 이 소설 말이다.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그렇게 많지 않은 분량이 나를 유혹했고, 그 유혹에 넘어가 다른 수많은 책을 남겨둔 채 읽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엄청난 작품은 아니지만 글을 잘 쓴다는 느낌이 가득하다.

 

방에 누워 있는 시체 두 구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이 둘은 부부다. 여자는 임신까지 한 상태다. 살인자는 잔혹하게 여러 번 여자의 배를 찔렀다. 밖으로 드러난 죽음을 둘이지만 뱃속의 아기까지 계산하면 셋이다. 이 현장에 대한 이야기와 약간의 호러 분위기를 풍기는 장면 하나로 문을 연다. 그리고 숙취에 시달리는 형사가 차 안에서 깬다. 그의 머릿속에는 둥청아파트 살인사건이 스쳐지나간다. 서장에 나온 남편 정위안다와 아내 뤼슈란이 남편의 불륜 상대였던 유부녀의 남편 린젠성에 살해당한 사건이다, 그는 이 사건에 위화감을 느낀다. 이때만 해도 그저 그런 평범한 도입부다. 그런데 이것이 순식간에 변한다. 그것은 쉬유이 형사가 자신의 근무처에 가서 시간을 확인한 그 순간이다. 현재는 2009년 3월 15일이다. 그가 기억하는 연도는 2003년인데.

 

단기 기억상실증이라고 하기에는 6년이란 기간이 너무 길다. 이때 한 여자가 나타난다. 쉬유이와 인터뷰하기로 한 시사정보지 <포커스>의 기자 루친이다. 그녀가 나타난 이유는 둥청아파트 살인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사건 당시 피해자 가족인 뤼후이메이와 담당형사 쉬유이를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둘은 차를 타고 뤼후이메이의 집으로 간다. 피해자의 언니인 그녀는 원래 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 살았고, 이 부부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부부의 딸을 현재 자신의 딸로 키우고 있다. 좋은 이모다. 이때만 해도 평범한 진행이다. 작가가 조각을 하나씩 흘리고 있다.

 

이 인터뷰 전에 린젠성의 용의자에서 살인자로 바뀐 사건 하나가 더 소개된다. 그것은 린젠성이 도망가다 차로 사람을 치어 죽인 사건이다. 잔혹한 부부 살인으로도 충분히 대중의 시선을 끌 수 있는데 이 사건이 더해지자 대중의 관심도는 더 높아진다. 영화로 만들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사건과 비교되는 하나의 실화가 있는데 그 유명한 인육만두 사건이다. 그냥 보면 너무나도 뻔한 사건인데 여기에 위화감을 느끼는 형사가 있다. 쉬유이다. 사라진 시간에 대한 회상보다 그는 아친이라고 부르게 된 루친이와 함께 사건 당시 관계자를 찾아다닌다. 린젠성의 아내와 사건 당일 만나기로 한 아옌이란 남자다. 쉬유이의 머릿속에서는 계속 아옌이라는 남자가 걸린다.

 

현재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사이사이에 작가는 짧은 단락을 넣어 단서를 하나씩 제공한다. 이 단락들은 실제 있었던 사실이다. 가끔 작가가 이 단락을 가지고 트릭을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은 아니다. 이 단락에 화자는 바뀌지만 주요한 등장인물은 두 명이다. 쉬유이 형사와 아옌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연 하나가 반전처럼 다루어진다. 읽으면서 범인에 대한 윤곽은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추리소설을 자주 읽다가 발견한 몇 가지 패턴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패턴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 풀어놓는 단서와 정밀한 구성의 조화다. 찬호께이는 이 부분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 어렵게 글을 쓰지 않아 쉽게 읽히고, 시간과 심리학을 이용해 반전을 펼치기 때문이다. 누구는 뻔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측가능한 반전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현실성을 높였다. 마지막에 모든 것을 설명하는 부분을 구성 속에 녹이고, 간결하고 분명하게 만들었다면 훨씬 멋진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의 단상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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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던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39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양영란 옮김 / 비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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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년에 읽은 <죽은 자의 심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사놓고 묵혀 놓고 있던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어디에 둔 것인지? 그러다 새로운 책이 나왔다. 반가웠다. 낯선 제목이라 다른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해신의 바람 아래서>의 개정판이다. 절판된 책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아주 반가운 일이다. 두툼한 분량과 요즘 나의 주변 상황을 감안할 때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 예상은 기분 좋게 빗나갔다. 한 번 분위기를 타자 단숨에 그 끝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새로운 절판본의 개정판 소식까지 알게 되었다.

 

2004년 작품이다. <죽은 자의 심판>보다 한참 전에 출간되었다. 그래서인지 반가운 인물들이 많다. 형사 아담스베르그 시리즈 중 한 권인데 수상 경력이 화려한 작품이다. 뭐 화려한 수상이 책의 재미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이 소설은 다르다. 재밌다. 그리고 아주 흥미롭다. 왜냐고? 이번 작품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작가의 다른 소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어떻게 이런 작가를 지금까지 놓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기에 읽은 두 작품 사이에 생긴 몇 가지 변화가 호기심을 부채질한다. 해리 홀레 시리즈처럼 한 권씩 꾸준히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출간 순서와 읽은 순서가 달라 비슷한 시작을 비교하기가 그렇다. 영감과 직관의 힘은 이번에도 작용한다. 하지만 이번에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이야기와 다르다. 아주 긴 세월을 배경으로 하고, 아담스베르그 개인과 가족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모든 형사가 평생 풀고 싶어 하는 미해결 사건이 그 중심에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 잠재되어 있던 무의식의 바다를 뚫고 올라온 것이다. 그가 모은 자료가 연쇄살인범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용의자가 죽었기에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의 이론이 다른 형사 등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오래 전 아담스베르그가 살던 동네에 한 유명한 판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퓔장스다. 아담스베르그가 이 사건에 집착하게 된 것은 그의 동생이 용의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증거를 없애고, 알리바이를 조작하면서 살인자에서 벗어났지만 소문은 잠재우지 못했다. 이때부터 그는 퓔장스 판사를 캐기 시작한다. 증거를 모은다. 판사를 뒤좇는다. 하지만 그 어떤 증거도 판사를 기소할 정도는 아니다. 영리한 판사의 작업은 항상 용의자를 사건 현장 주변에 놓아둔다. 대부분 술에 취한 이들은 몇 시간의 기억을 상실한다. 곁에는 살인에 사용된 도구가 놓여 있다. 경찰이 보기에 이보다 더 명확한 증거와 현행범이 없다. 이렇게 늘 사건은 종결된 채 지나간다. 단지 아담스베르그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앞부분이 죽은 판사의 살인 행각을 풀어놓는다면 중반 이후는 아담스베르그가 사건의 중심에 선다. 그리고 르탕쿠르와 당글라르가 있다. 이 둘은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극대화해서 서장을 돕는다. 개인적으로 르탕쿠르의 능력은 <죽은 자의 심판>에서도 놀라웠지만 이번 작품에서 더욱 놀란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아담스베르그는 그의 숙적이 쳐놓은 함정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을 것이다. 정공법이 아닌 편법을 이렇게 멋지게 사용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여기에 또 새로운 한 인물이 등장한다. 할머니 해커라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존재다. 이들은 도움은 궁지에 몰린 서장을 일으켜 세우고, 가장 큰 장벽이었던 것을 무너트리는데 큰 도움을 준다. 여기까지 오면 깊은 밤도 책읽기를 막을 수 없다.

 

아담스베르그 시리즈는 보통의 형사물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일단 그의 주변에 있는 인물부터 특이하다.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같은 당글라르나 뚱뚱하지만 수많은 능력을 가진 르탕쿠르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그의 경찰서에는 그에게 직접 간접적으로 영감을 주는 인물들이 있다. 그리고 아담스베르그의 놀라운 기억력은 직관에 의한 통찰을 거치면서 조각난 퍼즐을 그대로 조합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아담스베르그가 보여준 몇 가지 행동과 불안한 심리는 낯설다. 그래서 그에게 더 몰입한다. 가끔은 그를 질타하면서. 다시 한 번 더 이 시리즈가 모두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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