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맨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3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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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범인에게 고한다> 시리즈 2부다. 어둠의 신기루란 부제가 달려 있다. 전작을 재미있게 읽었고, 전작에서 보여준 극장형 사건이란 점이 먼저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보이스피싱과 유괴 사업의 결합이란 부분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전작의 자극적인 연쇄살인과 달리 이번에는 지능형 범죄다. 지능형 범죄를 다루다보니 범죄자들의 비중이 전작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이 늘어난 비중은 왜 이들이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지,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경찰의 수사를 막기 위해 어떤 장치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이 과정 속에서 어느 정도는 이 범죄자들에게 공감하는 부분도 생긴다.

 

도모키는 운이 나빠 범죄세계로 빠졌다. 단순히 이것을 운만으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자신이 선택한 회사가 제품 관리 문제로 입사 취소를 요청하게 된 것은 운이 바빴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장래의 성장을 보고 선택했기에 더욱 그렇다. 그 다음은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좋은 직장은 지나갔다. 바텐더로 열심히 일하지만 범죄의 손길은 그와 같은 사람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선택한 일이 보이스피싱이다. 동생 선배 폭력배의 알선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잘 풀렸다. 개그의 소재가 되었던 그런 촌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역할을 분담해서 순식간에 처리한다. 이곳에서 아와노라는 사건 설계자를 만난다.

 

아와노는 그 정체가 분명하지 않다. 도모키의 작업장을 급습한 경찰의 낌새를 알고 전화로 메시지를 남긴다. Rest in peace. 이 약자는 RIP다. 립맨이란 제목도 여기서 나왔다. 아와노의 메시지를 받고 이상한 낌새를 COS 도모키 형제는 어렵지만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와노는 그를 가만히 둘 생각이 없다. 그가 일하는 바에 와서 새로운 범죄 계획을 털어놓고, 그가 가담할 것을 요구한다. 그 사업이 바로 유괴 사업이다. 그는 이전에 실패했던 사례를 연구해서 이번 사업은 새로운 범죄의 기원을 열 것이라 주장한다. 이때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은 중남미의 유괴 납치 등이다.

 

아와노의 아이디어는 놀라운 부분이 있다. 우발적인 복수나 개인의 유괴가 아닌 철저하게 사전 조사하고 분업화한 것이다. 상상력까지 덧붙여진 계획은 빈틈을 찾기 어렵다. 첫 유괴는 가볍게 성공하고 두 번째 유괴를 진행한다. 기발한 상상력과 대담함은 실제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소설의 재미도 바로 이 부분에서 생긴다. 이 기발한 작전을 경찰이 어떻게 깨트릴지, 그 과정에 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혹시 실패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등. 그리고 이 사건을 마키시마 경사가 담당한다. 전작에 비하면 그의 분량이 많이 줄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형사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속에서도 경찰 내부의 알력과 문제점이 짧지만 강렬하게 드러난다.

 

유괴 사건의 핵심은 돈을 받는 것이다. 납치보다 문제는 돈의 수령이다.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도 이 부분이다. 돈을 받지 못해 인질을 죽이거나 이 과정에 체포된다. 보통 경찰들이 쫙 깔린 상황에서 돈을 받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와노는 이 과정을 아주 새롭게 멋지게 만들었다. 만화적 상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지만 충분히 가능해보인다. 이런 과정을 더욱 매끄럽게 하는 인물들이 도모키 형제다. 폭력배 출신 동생과 달리 형 도모키는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평범한 사람의 역할을 아주 잘한다. 기본적으로 말투나 행동이 폭력배들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범죄자에게 공감하는 부분도 바로 이 도모키 때문이다.

 

화려한 상황이나 잔인한 장면은 없지만 전편처럼 엄청나게 몰입하게 만든다.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켜 상황의 변주를 일으키고, 기존 인물들은 반갑게 느끼게 만든다. 치밀하게 짜인 계획에 맞춰 범죄자와 피해자와 경찰들이 행동한다. 작은 파탄이 없다면 그냥 그대로 끝날 수밖에 없다. 경찰은 혹시 놓친 것이 있는지 조사하고, 범죄자는 계획이 깨어질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한다. 피해자는 혹시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까봐 전전긍긍한다. 이때부터 장면과 상황의 설명을 위해 각각 다른 분량으로 진행된다. 무게의 추는 범죄자와 경찰로 흘러간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암시한다. 어떤 범죄와 결과가 나올지 벌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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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한 여정 - 빅뱅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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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심연> 이후 두 번째로 읽는 배철현 교수의 책이다. 이전 책이 자신의 사색을 담아내었다면 이번에는 우주와 인간의 역사에 대한 거대한 여정을 풀어놓았다. 빅뱅에서부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등장까지. 이 위대하고 거대한 여정은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 한 위대한 혁신의 원동력은 이타심이었다.”라는 말로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책 속에 담긴 수많은 과학과 고고학과 종교의 분야는 아주 광범위하다.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도 많았지만 새롭게 알게 된 지식도 상당하다. 파편적이고 단편적이었던 정보가 좀더 세밀해졌다.

 

이타심. 이 영적인 유전자와 대척점에 서 있는 용어가 그 유명한 이기적 유전자다. 처음 이타심이란 단어를 깨내어 놓았을 때 내심 기대한 것은 이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분명하고 명확한 공격이었다. 배려와 이타심 등이 어떻게 이기적 유전자와 다른지 긴 우주와 지구의 역사 속에서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깊이에까지 저자는 나아가지 않았다. 나쁘게 표현하면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반론을 펼칠 수 있는 근거나 지식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면 내가 저자의 의도를 오독한 것일 수 있다. 이런 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주 방대한 정보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잘 정리했다.

 

인간의 기원에서 시작하여 언제부터 인간이었는지 묻고 우리가 누구인지 질문을 던지면서 끝난다. 이 과정 속에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과학의 지식은 ‘일시적’이며 ‘가변적’이다.”라는 것이다. 이야기의 첫 부분에서 이 사실을 끄집어낸 것은 그가 설명해주는 수많은 과학적 발견과 정의와 지식들이 미래에는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허블망원경만 알고 있는 나에게 다른 우주망원경이 있음을 알려주고, 더 정밀하고 거대한 망원경을 통해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아주 흥미로운 도입부다. 개인적으로 기존 지식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였다.

 

현대 물리학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아인슈타인 이야기로 시작하여 새로운 우주학을 거친 후 다시 과거의 찰스 다윈으로 돌아간 것은 제목처럼 인간의 위대한 여정을 따라가기 위해서다. 다윈의 이론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고 다시 간 곳은 바로 고고학과 신화와 과학이다. 고고학적 발견과 발굴과 추론은 현생 인류가 언제부터 나타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사실 이것을 몰라도 우리가 사는데 아무 지장없다. 하지만 우리를 알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위대한 여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 사이에 저자의 풍부한 지식을 녹여내어 딱딱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재밌게 유지한다.

 

많은 정보들이 산처럼 쌓여 있고, 저자의 잘 정리된 길을 따라가다보면 어느 정도 인간의 삶을 그려볼 수 있다. 새롭게 연구된 결과들이 기존 지식과 충돌을 일으킬 때 “진리란 원래부터 존재하던 어떤 것이 아니라 숙고와 연구를 통해 그 당시까지 자신이 믿고 있던 어떤 것”이란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농업에 대해 농업이 인간의 삶을 바꾼 것이 아니라 인류의 ‘상상력과 의지’가 농업을 발견한 원동력이라고 할 때는 고개를 잠시 갸웃했지만 수긍하게 되었다. 마지막 장의 인간들은 모두 상상력과 의지와 노력이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상상력과 호기심이 얼마나 우리 삶에서 큰 역할을 하는지 알기에 더욱 그렇다.

 

고고학적 발견과 발굴 이야기는 교과서와 기존의 지식을 정말 많이 새롭게 만들어준다. 알타미라 벽화하면 하나의 그림만 떠오르는데 이 보다 훨씬 많은 그림이 그려져 있음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쇼베 동굴 벽화는 처음 알았다. 새롭게 발굴된 고대 유적은 이 분야에 관심이 없다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 유적들이 의미하는 바를 해석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가 말하는 “종교 이전에 종교적 인간이 있었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음미해본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이종교배가 가능했다는 주장은 또 다른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과학적 발견들을 단정적인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했다’와 ‘했을 것이다’의 차이는 너무 크다. 이런 문장을 쓴 것이 앞에서 말한 오늘의 과학과 지식을 표현하기 위해 혹은 독자의 이해와 가독성을 돕기 위해서라면 좀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너무 트집을 잡는다는 느낌도 있지만 이 어감의 차이가 조금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쓴 후 새로운 인류의 기원설이 나왔는데 이 부분도 반영한 것은 칭찬할만하다. 전체적으로 잘 정리되었고, 설명도 잘 했지만 그가 주장하는 이타심을 보여주는 데는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목대로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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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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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심리 스릴러다. 그것도 아주 잘 짠 스릴러다. 소개글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남들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다른 남편의 물리적 폭력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폭력은 그 대상에게 공포가 될 수밖에 없다. 이 공포는 사람의 의지를 잠식하고, 점점 나약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가정 폭력을 다룬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보여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다르다. 물리적으로 흔적이 남는 폭력은 행사하지 않는다. 강하게 심리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자신의 의도가 관철되지 않을 때 감금과 굶주림과 만남을 제약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구성은 현재와 과거, 이렇게 둘로 나누었다. 과거는 점점 현재와 가까워진다. 이 시점의 이동을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 이 두 시점은 잭과 그레이스 부부의 삶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잘 생기고 뛰어난 변호사인 잭과 동생 밀리가 다운증후군인 그레이스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 만남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등. 남들이 볼 때 너무나도 완벽해 보이는 이 부부의 숨겨진 삶을 그레이스의 시선으로 하나씩 풀어낸다. 그리고 왜 그레이스가 잭을 떠나지 못하는지도 같이. 사실 이 부분이 없다면 이 소설의 긴장감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그레이스에게 동생인 밀리는 아주 특별하다. 다운증후군을 알고는 부모들이 밀리를 입양 보내고 싶어했다. 그녀는 반대하고 자신이 거의 키우다시피 했다. 이때부터 그녀의 삶은 밀리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어느 날 밀리가 놀이공원에서 혼자 춤추었을 때 잭이 나와 같이 춘 것은 그녀에게 축복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날 이전에도 잭의 외모를 보고 힐끔거렸을 정도로 그는 잘 생겼다. 여동생까지 좋아해주니 이 보다 더한 축복이 없다. 둘은 아주 가까워졌고 6개월 만에 결혼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뉴질랜드 이민의 속도를 높였다. 이때만 해도 그레이스는 앞으로 펼쳐질 신혼의 달콤함에 취해 있었다. 결혼식 당일까지 말이다.

 

잭은 사이코패스다. 하지만 완벽한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다. 자신들의 삶이 아주 완벽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잭은 그레이스를 공포 속으로 밀어넣는다. 이 공포의 냄새는 그를 흥분시킨다. 어릴 때 아버지가 엄마를 지하실에 가두었을 때 그는 공포의 향기에 취했다. 이후 삶에 대한 설명은 생략되어 있지만 그가 태국에 가서 하는 일은 이것과 관계 있다. 그가 결혼한 후 태국으로 간 것도 이 연장선에 있는 일이다. 이곳에서 그는 그레이스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그가 필요할 때 그 향기를 맡는다. 그레이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대의 공포는 바로 밀리다.

 

남에게는 완벽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집안에서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 속에서 공포의 향기를 마음껏 들이킨다. 그레이스가 몇 번 저항을 하지만 실패한다. 그 대가는 참혹하다. 오직 공포만을 위한 지하실에 갇혀 지내야 한다. 먹을 것도 없어 어떤 날은 며칠을 굶어야 했다. 그녀가 작은 실수만 해도 매주 만나던 밀리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 잭은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그녀가 실수하게 만들고, 이것을 핑계로 그녀를 괴롭혀 공포의 향기를 마신다. 이 상황을 독자가 납득하게 만들기 위해 저자는 몇 가지 저항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저항들이지만 너무나도 쉽게 깨진다.

 

잭은 완벽한 부부를 연기하면서 이웃들의 관심이나 의심을 피한다. 그레이스가 작은 저항을 하려고 하면 밀착해서 겁을 준다. 집밖에서는 항상 옆에 붙어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얻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약간의 변수만 만들어도 화를 낸다. 그리고 공포가 따라온다. 실제 그가 그레이스와 결혼한 이유는 밀리다. 지하실에 빨간 방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레이스는 밀리가 자신들의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잭의 밀착 감시를 막고, 작은 틈을 찾아내어 그를 공격해야 한다. 두 시점이 뒤바뀌는 그 순간 이 일은 벌어진다. 마지막 장면은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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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크로즈 - 배들의 무덤, 치타공의 철까마귀
김예신 글.그림, 박봉남 원작 / 서해문집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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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국 최초로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중편부문 대상 수상작인 <Iron Crows(철까마귀)>를 그래픽노블로 각색한 작품이다. 최근 이렇게 다큐나 애니 등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그래픽노블로 다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반가운 일이다. 영상은 흘러가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지만 책은 보고 싶은 장면이나 문장을 오랫동안 들여다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독자의 참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그래픽노블을 읽으면서 그림보다 사진 한 장에 더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보다 더한 것은 책 속에 담긴 이야기와 가슴 아픈 사연들이다.

 

치타공. 처음에는 이 단어가 지명을 가리킨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방글라데시의 바닷가란 것도 전혀 몰랐다. 직업의 한 종류로 착각했다. 하지만 이곳은 1965년 강력한 사이클론이 한 선박을 해안에 좌초시키면서 전 세계 선박해체산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한다. 하루 일당 1 달러의 저임금 노동에 의존하는 재활용 산업이다. 여기에 철광석이 전혀 매장되어 있지 않은 방글라데시의 철강 산업이 의존하고 있고, 거대한 선박에서 나온 수많은 폐기물들은 입찰을 거친 후 재활용업자들에게 팔려나간다. 가난이 만들어낸 완벽한 재활용이란 표현이 딱 맞다.

 

선박 해체 작업은 아주 위험하다. 제대로 갖추어진 장비도 없고, 안전장치도 허술하다. 절단공의 작업은 조금만 방심을 해도 불의 위협에 빠질 수 있다. 절단 후 떨어지는 철근에 깔리거나, 자른 철을 올기는 과정에서 끊어진 철끈에 어떤 사고가 날지 모른다. 이 다큐멘터리 촬영 중에서 최소 두 번의 큰 사고 위험이 있었다. 한 번은 조종사의 순발력 덕을 본 것이고, 다른 한 번은 운이 좋았다 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 운이라는 것이 언제나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치타공의 해변은 언제나 괴담처럼 사고에 대한 소문들이 떠돌아다닌다. 화재로 인해 일곱 명이 죽었다는 것 같은.

 

결코 좋은 소문이 나지 않는 이 치타공의 해체 공장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인맥과 인맥을 통해 그들은 공장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노동 현장을 찍고, 해체 과정을 들여다본다. 이들은 대부분 북부의 못사는 지역에서 왔다. 러픽이 치타공을 ‘외국’이라고 부른다. 외국에 돈 벌러 가는 것과 똑같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열한 살 소년이 이곳이 좋다고 할 때, 겨우 1달러 옷을 산 것에 너무 많은 돈을 쓴 것이 아니냐고 할 때 이들의 빈곤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가난과 굶주림보다는 이 힘든 노동이 오히려 낫다.

 

어린 노동자들 고용에 대한 여러 NGO 단체 등의 문제 제기는 원론적으로 옳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반드시 이 선박해체소에서 노동을 해야만 하는 게 현실인 방글라데시에서는 이 원론이 옳지 않다. 선박해체산업이 완벽한 재활용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린피스 등의 반대는 무력해진다. 가끔 나 자신도 이런 원론적 올바름에 매몰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삶도 죽음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란 표현에서 이 노동자들의 노동이 주는 의미가 갑자기 무게를 더한다. 무거운 와이어를 어깨에 지고 바다가 걸어오는 이들의 사진이 얼마나 강렬했던가.

 

가난은 슬프다. 그러나 아무리 척박한 곳이라도 버티고 살아가야 한다. 하나의 희망을 조용히 가슴에 품고 말이다. “하지만 내 자식은 달라. 내 자식의 운명은 다를 거야.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 거야.” 같은 희망이다. 우리의 부모 세대가 늘 말하는 바이기도 하다. 감독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그들의 육체를 말한다. 노동으로 단련된 탄탄한 근육, 어깨에 깊게 팬 상처들, 검게 이글거리는 피부, 경이로운 육체라고. 그리고 이 육체야 말로 한 시대를 만들어냈던 빛나는 노동이었고, 이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아쉽게도 그래픽노블에서 이 육체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읽으면서 몇 번이나 가슴을 뒤흔드는 사연을 만났고, 울컥했다. 이 다큐가 나온 지 거의 10년이 되었는데 치타공은 어떻게 변했을까? 많은 상념들이 머릿속을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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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남극 탐험기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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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과 남극 탐험에 혹해서 선택했다. 조금 무거운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는 조금 가볍다. 무게 잡고 남극 탐험의 혹독함을 다룬다기보다 두 남자의 삶과 운명을 경쾌하게 풀어낸다. 남극 탐험의 혹독함을 생각한 것은 펭귄 고기 때문인데 나의 착각과 얼마 전 읽는 생존기도 한몫했다. 이런 몇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머릿속으로 언제 떠나는거야? 하는 의문이 계속 생겼다. 소설 중반까지 그들이 살아온 삶을 교차하면서 보여줬기에 이 의문은 더 강했다.

 

소설은 두 개의 교차 서술로 진행된다. 하나는 화자인 나와 현재의 섀클턴 박사고, 다른 하나는 나와 섀클턴 박사가 뭉친 후 100년 전 섀클턴 경의 이야기다. 이 두 개의 교차 서술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를 조용히 비현실적 존재가 비집고 들어온다. 첫 번째는 말하는 곰이고, 두 번째는 하늘을 나는 펭귄이다. 이보다 더 비현실적 일은 아마도 아마추어 두 사람이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탐극 탐험을 떠난 일일 것이다. 아무리 현대 장비가 좋아졌다고 해도 단 두 사람이 스노모빌을 타고 다니기에는 남극은 너무 크고 거대하고 위험한 곳이다.

 

섀클턴 박사는 생후 2달 만에 시력을 잃었다. 영국 귀족 가문에서 자란 덕분에 교육도 받았지만 그가 살던 시기는 장애인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 여기다 귀족이 평민들이 다니는 학교에 왔으니 좋아할 리도 없다. 이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섀클턴은 이것을 극복해낸다. 소설 중반까지 섀클턴 박사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와 교차하는데 둘의 삶의 궤적이 너무나도 다르다. 나의 삶이 결코 평범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류지방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지만 수학도 못하고, 학점 잘 주는 국문과 수업에 들어갔다가 국문과 운동경기의 용병으로 활약하는 정도 뿐이다. 중학교 때까지 야구 선수를 했고, 이때 닦은 실력으로 특출한 위력을 발휘했다.

 

섀클턴 박사가 케인즈주의자가 되어 신자유주의 경제를 반대할 때 ‘나’는 아직 학생이었다. 이 둘의 첫 만남은 그가 뛴 마지막 경기였다. 이 만남을 그 당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의경으로 군복무한 후 자신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하지만 임용고시에 떨어진다. 그런데 그냥 쓰고 싶었던 글을, 돈이 필요해서 보낸 소설이 문학상을 받는다. 작가의 탄생이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이 무너지면서 추락한다. 그 후 삶은 우리의 청춘들과 비슷하다. 이런 때 섀클턴 박사를 만난다. 박사가 한국에 오게 된 사연도 조금 억지고, 교수직을 던지고 한국에 머문 것은 더 억지지만 넘어가자. 이 만남 후 진짜 남극 모험을 하게 된다.

 

남극 모험 이야기는 한 편의 판타지다. 앞에서 말한 말하는 곰과 하늘을 나는 펭귄이 등장하면서 이것을 더욱 분명하게 한다. 그들이 겪게 되는 모험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 소설 전체가 판타지다. 100년 전 섀클턴 경이 등장하는 그 순간부터 말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현실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다. 삼류대학 교수가 내뱉는 말에서 지독한 현실의 처절함이 그대로 묻어나고, 계속 흥행작을 써내지 못하는 작가는 매일 밥벌이를 걱정해야 한다. ‘나’의 이 현실은 어쩌면 작가가 절실하게 경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사의 경험도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박사처럼 귀족은 아니었다.

 

생각한 것보다 빠르게 읽지 못했지만 예상한 것보다 몰입해서 금방 끝냈다. 가볍게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 자신의 생각을 적절하게 녹여내어 작가의 생각을 잠시 들여다볼 수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엮는데 뛰어난 능력이 있는 작가이다 보니 읽는 내내 즐거웠다. 어둡지 않고 유쾌한 이야기와 돌출적인 존재들이 적절하게 어울려 큰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 그의 판타지 소설을 읽었던 이력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래도 변함없이 그의 새로운 작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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