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 집시 - 두근거리는 삶을 살아라
나호.마호 지음, 변은숙 옮김 / 연금술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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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거리는 삶이라! 중년을 넘어가는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두근거리는 삶이 찾아오지만 가지고 있는 것과 환경 등이 이 삶을 좇게 만들지 않는다. 아주 두꺼운 현실이다. 나 같은 중늙은이들이 늘 하는 말은 ‘10년만 젊었어도’ 같은 나이 탓이다. 냉정하게 나 자신에게 10년만 젊었어도 이런 두근거림을 좇아갔을까 하고 묻는다면 그 답은 분명히 ‘아니다’이다. 일시적으로 두근거림을 좇아갈 수는 있지만 계속해서 좇는 것은 실제로 아주 힘든 선택이다. 수많은 여행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두근거림과 열정을 발견하지만 그 이후의 불안 역시 엿보았기 때문이다.

 

나호와 마호는 어떨까? 이 둘은 쌍둥이 자매다. 책 속 대부분의 이야기는 마호의 것이다. 마호는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다른 학교에 또 다니지만 이 또한 만족스럽지 않다. 소유하지 않는 삶을 사는 남자 친구도 있었지만 그녀가 선택한 삶을 살기로 한 순간 헤어진다. 이런 마호의 삶은 우리가 흔히 보는 안정적이고, 차근차근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청춘과 분명히 다르다. 알바도 하지만 수중에 돈은 없다.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다. 이런 그녀에게 우연이 이어진다. <연금술사>란 책이다. 이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선택한 첫 배낭여행지가 페루다.

 

세 번의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 이야기는 페루로 떠나기 전 일본과 페루 여행이다. 솔직히 말해 떠나기 전 그녀의 삶은 시시했다. 하지만 이 책 곳곳에 깔려 있는 신비주의적 분위기는 유지된다. 이 신비가 폭발하는 곳은 당연히 페루다. 그곳에서 마호는 성스러운 진실을 경험한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이 경험은 환각이자 착각이자 자기몰입이다. 이 경험은 그녀로 하여금 기존과 다른 삶을 살게 하는 힘을 준다. 여행은 길어지고, 이 경험은 공유된다. 그리고 자매는 스스로를 어스 집시라고 부르고, 적은 돈으로 긴 여행을 시작한다.

 

처음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몇 장의 사진과 인생의 경험을 새롭게 하는 여행기 정도였다. 일본에서의 시간을 이렇게 길게 다룰지도 몰랐다. 실제로 마호가 페루가 가서 경험한 것들은 아주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여행 준비도 제대로 한 적이 없고, 인맥이 없었다면 그냥 좌절하고 돌아왔을 수준이기 때문이다. 많은 장기 배낭여행자들이 자신들의 경험 끝에 늘 주의 주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이다. 몸으로 부딪혀 해결해야하는 순간도 있지만 계속적인 행운을 바라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두근거림과 표지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이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 비현실적이다.

 

내가 비현실적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관점이다. 새로운 세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고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을 세우고, 준비하고, 부딪혀야 한다. 어떻게 보면 저자는 이 부분을 누락했다. 자신의 경험에 매몰되어, 신비로움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살짝 뺀 것인지도 모른다. 두 쌍둥이가 같은 꿈을 꾼다거나 표지가 맞거나 하는 것들에 더 집중한 것 같다. 살짝 기대한 여행지의 정보는 다 빠져 있다. 어떻게 보면 자기계발서의 연장선이다. 에세이 느낌보다 뒤로 가면 소설의 느낌이 더 강해진다. 좋게 말하면 가독성이 좋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뭔가 첨가 혹은 누락된 이야기다.

 

오래 전 한국에서 <연금술사>가 대히트를 쳤을 때 나는 재미없었다. 취향과 맞지 않았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새롭지도 흥미롭지도 않았다. 잠언의 나열은 진부한 언어의 유희일뿐이다. 만약 그 경험을 본인이 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마호가 경험한 것은 다른 모습이다. 이 다름을 어디에 더 무게를 둘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두근거림을 좇고자 한다면 마호처럼 자신만의 표지를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그 표지에 대한 확신과 노력과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마호처럼 자기혐오를 극복하고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자세는 기본이다. 결국 다시 자신의 발견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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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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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작심하고 쓴 시에 대한 책이다. 은유에 대해 이보다 더 자세하게 쓴 책이 있을까? 현재까지는 모르겠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시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다. 시인이 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다 보니 읽는 시나마 좀더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시집을 읽을 때 쉽게 다가오는 시들도 있지만 무슨 말인지 통 이해할 수 없는 시가 더 많았다. 시어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중 몇 가지를 잡아낼 때도 있지만 아주 파편적이다. 이때마다 학창시절의 수업을 원망한다. 왜 좀 더 시에 대해 더 많이 알려주지 않았나 하고.

 

학창시절 배운 시는 암기였다. 은유를 이해하게 만들기보다 시험을 위해 외우는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감상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졸업 후 우연히 그 시들을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그 지독한 감성에 놀랐던 것을 떠올리면 그 시절 그것들을 누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조지훈의 <승무>보다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가 더 좋은 시라고 했을 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도 시라는 것을 단어 그 이상으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읽고 그렇게 놀랐던 것도 나의 굳은 생각들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나의 시에 대한 공부가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는다. 그보다 먼저 시인들, 시집에 대해 너무 몰랐다.

 

책을 읽다가 은유에 대해 멋지게 설명하는 장면들을 만난다. 밑줄치고 외우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좋은 시와 나쁜 시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서정시의 의미를 되새긴다. 하지만 다 읽은 지금도 머릿속은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아직 은유에 대해, 시에 대해, 시인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재가 아닌 허상의 세계라고 했을 때, 말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말을 버려 의미의 부재에 이르게 한다고 했을 때 시에 한 발짝 다가간 듯한 착각을 한다. 이런 착각은 이 책을 몇 번씩 곱씹고 체화하는 하는 시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탓이다. 안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그 의미를 풀어내지 않은 탓이다. 시인이 휘트먼의 <풀잎>을 몇 개월 동안 읽고 있다고 한 것을 보면 분명해진다.

 

시가 우리 삶을 축약하고 이미지화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은유로 표현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소리를 형상화해서 보여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재 세계가 아닌 허상을 통해 세계를, 현실을 드려내준다고 했을 때 좀 더 시에 다가갔다. 거울의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장르소설이나 영화로까지 이어지는 현실을 생각할 때 상상력이 지닌 힘과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려운 시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하는 문제는 아직도 나에게 남겨진 문제지만 좀 더 읽고 좀 더 분석하고 더 많은 상상력을 동원하면 살짝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아직은 더 많은 노력과 열정이 필요한 분야다.

 

많은 시들과 시인들이 책 속에 나온다. 낯익은 이름도 많지만 낯선 시인도 적지 않다. 나의 시 세계가 어딘가에서 멈췄다는 것을 깨닫는다. 새로운 시인의 발견은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인도하지만 멈춘 그곳에서는 과거로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여러 작가의 글 속에서 시인들을 한 명씩 발견해내지만 그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낯선 시인들의 이름이 나왔을 때 반가웠다. 그들의 시를 이해하는 것은 둘째 문제다. 인식의 공간이 넓어졌다는 부분에서 반가운 일이지만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소장욕구만 높아진다는 문제로 넘어간다. 뭐 이것이 단순히 시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지만.

 

시는 은유다. 시는 머리만의 언어가 아니라 몸의 언어다. ‘몸은 세계와 대면하는 접혀 있음이다.’라고 할 때 그곳에는 과거의 시간들, 상처, 기억들이 숨어 있다. 열린 것만 생각했는데 접혀 있는 곳을 들여다봐야함을 깨닫는다. 전체가 아닌 일부라고 했을 때 그 작은 공간과 시간 속에 세상의 비밀이 담겨 있는 것을 살짝 엿본다. 이 책은 시를 해설하기도 한다. 시를 풀어내고 그 이미지를 눈앞에서 펼쳐 보여준다. 시인의 광범위하고 깊은 독서가 없었다면 이런 작업이 나올 수 없다. 내가 늘 장석주의 책을 읽으면서 감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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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 더 빨라진 미래의 생존원칙
제프 하우.조이 이토 지음, 이지연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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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경영 분야의 좁은 지식은 이 책의 두 저자에 대한 무지와도 이어져 있다. 이름만 놓고 보면 어딘가에 본 듯도 한데 실제 이들의 책을 읽은 적도, 이들에 대한 책도 읽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이 책을 추천한 사람들 때문이다. 그들의 추천을 읽으면서 이 책을 읽고 영향을 받았다고 먼저 생각했다. 이 생각은 착각이다. 다시 보니 제목에 나온 아홉 가지 원칙들을 자신들의 작업에 적용하고, 지침으로 삼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런 착각은 나에게 아주 훌륭한 기회를 제공했다. 그 기회는 내가 지금까지 잘 보지 못했고, 정리하지 못했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다시 정리하고 이해하고 잘 보도록 한 것이다.

 

아홉 가지 원칙은 권위보다 창발, 푸시보다 풀 전략, 지도보다 나침반, 안전보다 리스크, 순종보다 불복종, 이론보다 실제, 능력보다 다양성, 견고함보다 회복력, 대상보다 시스템 등이다. <나인>이란 책 제목도 바로 이 아홉 원칙에서 나왔다. 가장 먼저 창발이란 단어에서 낯섦은 느꼈다. 몇 년 전부터 자주 나오는 단어인데 아직 명확한 정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검색을 해도 바로 알 수 있는 정도의 정리가 없다. 저자는 창발을 “작은 것들(뉴런, 박테리아, 사람)이 다수가 되면서 개별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어떤 속성을 드러낼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 창발 현상을 현재 과학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이 책의 목차에서 반복되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보다’라는 부사다. 권위, 푸시, 지도, 안전, 순종, 이론, 능력, 견고함, 대상 등은 현재 우리가 삶 속에서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정의들이다. 그런데 이것을 저자들은 반대되는 현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의 주제가 주어지면 간단한 설명이 나온 후 현재 과학계와 경영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여주면서 왜 ‘~보다’ 다른 것이 더 필요한지 보여준다. 이때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안전보다 리스크’에서 말하는 바는 맹목적으로 리스크에 뛰어들라는 뜻이 아니라 혁신에 드는 비용이 줄어들면서 리스크의 본질도 바뀐다는 것을 제대로 알라는 뜻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지금과 나중 사이의 저울질을 잘해야 한다는 의미다. 쉽지 않은 판단이다.

 

서문에서 저자들은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세 가지 상황을 설명한다. 비대칭성, 복잡성, 불확실성 등이다. 이 책의 아홉 원칙은 이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새로운 세상을 어떻게 빚어내고 또 어떻게 그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지에 관한 청사진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의문을 품었지만 읽으면서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되었다. 그 첫 시작은 기술에 대한 이야기였다. 기술은 도구에 불과하고 인간의 아이디어로 생명을 불어넣어야 쓸모가 있다는 사례들이다. 이런 사례들의 조사는 이 책의 저술 목적과 잘 맞아떨어졌다. 저자들이 조사원 치아 에버스의 다년간 노고에 감사하고 거의 공동 저자처럼 말하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얻었다. 교육과 학습을 분리해서 정의한 것도 아주 명확했다. 하향식 교육과 달리 학습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공부다. 학습 방법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우면 ‘생각을 조직화하고, 표현하고, 공유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고등 수학을 배우면 서 얻게 될 ‘추상적인 생각을 실용적인 것에 적용하는 방법을 뇌에게 가르치는 것’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대부분 현실에서 필요하지도 않는 수학보다 이것이 더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 같다. 단순히 대입만을 위해 더 어려운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한국 학생들에게는 더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책을 넘겨보면서 느낀 점은 정말 많은 조사가 하나의 원칙을 설명하기 위해 정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원칙을 설명하는 방식도 유려하게 진행되었다. 새로운 과학 지식은 낯설고 그 과학이 만들어낼 미래도 불확실하지만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들을 많이 볼 수 있어 좋았다. 몇몇 부분에서 아직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보이고, 너무 원칙에 맞춘 듯한 조사만 나열되어 살짝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성공원칙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분명히 하지만 이 미래를 더 나은 방식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이 원칙들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고민을 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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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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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저자는 자신의 조상을 대개 남부의 노예 경제 시대에 날품팔이부터 시작하여 소작농과 광부를 거쳐 최근에는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살았다고 말한다. 이런 부류를 부르는 말이 힐빌리, 레드넥, 화이트 트래시 등이지만 저자는 이웃, 친구, 가족이라고 부른다. 하나의 단어 속에 서로 다른 의미가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은 이 단어가 가리키는 집단의 해석과도 맞닿아 있다. 외부자와 내부자의 시선은 이렇게 다르다.

 

이 책은 밴스의 자서전이자 힐빌리 사회, 문화, 경제 보고서다. 그가 어떻게 태어나고, 자랐고, 떠났는지 시간 순으로 보여주는데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내가 알고 있던 미국의 모습이 상당 부분 깨진다. 영화나 소설 등에 나온 이상한 백인들의 모습이 밴스의 할모와 할보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마약에 절어 지내는 사람들 속에 자신의 엄마를 본다는 현실을 이렇게 적은 글을 만난 것도 처음이다. 이 낯선 모습은 아주 비현실적이다. 물론 기준은 내가 알고 있는 미국 중산층 백인의 삶이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복지정책에 기대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불편한 사실이다. 복지정책을 확대하려고 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될 현실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도시는 가정의 평화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하지만 이 도시들은 퇴락했다. 다른 도시에 비해 이혼과 재혼의 비율이 현저히 높다. 부모가 마약을 하지 않으면 자식들이 마약을 한다. 평균 수명도 낮다. 실제로 밴스의 엄마도 마약을 하고, 몇 번의 결혼을 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그는 행복을 느꼈는데 이것은 바로 할모와 할보 덕분이다. 이 두 분이 자식들은 제대로 키우지 못했지만 손자들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키운 것이다.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낀 공간’을 제공 받은 덕분이다. 기회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아주 평범한 가정인데 이곳에서는 흔한 풍경이 아니다.

 

저자가 힐빌리 문화 속에서 살 때 보여준 일상은 도시 하층민이나 저개발국가의 도시 빈민과 상당히 닮아 있다. 꿈은 꾸지만 그 꿈을 이루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없다. “나는 우리 힐빌리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지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아이들 돌보기, 아이들이 세상에 맞서게 하는 일, 자신들이 아이들에게 해를 입히는 행동을 일삼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만큼 강한가? 하고 물으며 이 강함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지적한다. 솔직히 말해 이 부분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이다. 강한 허세를 피우는 것은 쉽지만 강한 의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일은 진짜 강한 사람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 중 하나는 그가 해병대에 입대하지 않았다면 번 돈을 너무 쉽게 낭비하고, 현실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란 사실이다. 최선을 다해 산다는 것의 의미도 이때 처음 알았다. 능력 부족과 무능력을 구분한 것도 이곳이다.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이 백인 노동 계층에서 가장 변화시키고 싶은 부분이라고 할 때 무력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아주 잘 표현했다. 한두 번의 시도와 대충의 최선으로 쉽게 말하는 자신의 결정이 아니다. 해병대는 진짜 세계를 그에게 보여줬다.

 

해병대에 입대하지 않았다면 예일의 로스쿨도 당연히 가지 못했다. 예일에서 그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봤다. 인맥의 고마움도 무서움도 같이 배운다. 여자 친구를 통해 분노를 절제해야 하는 것을 배우고, 자신에게 온 기회를 감사해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 그가 어떤 노력을 기우렸는지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적은 잠과 많은 일로 돈을 벌고 그 남은 시간은 열심히 공부했다. 아메리카 드림의 실현이다. 실제로 이런 벽을 돌파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에필로그에서 그가 본 복지정책의 문제점은 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면이 적지 않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같이 놓고 봐야한다. 이 부분은 빠져 있다. 힐빌리의 문화, 그곳을 벗어난 한 청년의 삶은 그의 기록보다 훨씬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냉철하고 현실적으로 사회의 단면을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책이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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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의 체스 민음사 외국문학 M
파올로 마우렌시그 지음, 이승수 옮김 / 민음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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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툼한 책이 아니라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체스를 모르다보니 작품을 이해하는데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룰이나 체스 말을 움직이는 것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다보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 체스의 거장들 중 몇 명은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이지만 낯선 이름도 많다. 아마 다른 책이나 영화 등에서 본 적이 있기에 낯익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치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정보 덕분에 도입부에 나온 죽음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누가, 왜 라는 의문보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두 사람의 인생과 체스가 더 매력적이다.

 

프리슈의 죽음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의 행적을 따라가면 한 남자의 인생이 흘러나온다. 한스 마이어. 체스에 영혼을 빼앗긴 그는 우연인 것처럼 프리슈의 기차 속 체스 게임에 개입한다. 프리슈가 둔 수에 대한 그의 해석을 시작으로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인생에서 체스는 결코 지울 수 없는 깊은 흔적을 영혼에 남긴다. 그리고 운명처럼 한 인물을 만난다. 타보리다. 타보리와의 만남과 그의 훈련을 짧게 들려준다. 이 훈련으로 그는 점점 성장한다. 멋진 선수가 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타보리가 사라진다. 그의 삶도 나락으로 떨어진다. 다시 둘이 만나고, 타보리의 의도가 드러난다. 이제 이야기는 타보리로 넘어간다.

 

타보리의 이야기는 프리슈 죽음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타보리의 탄생과 성장과 추락과 여생으로 이어진다. 훌륭한 체스 선수로의 성장은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체스가 새긴 강한 흔적을 볼 수 있던 그의 삶은 행복했다. 인내와 강한 몰입을 통해 체스의 수들을 배운다. 하지만 그가 살던 시기는 유대인에게 아주 불행했던 1930년대다. 재능보다는 출신이 우선이었다. 물론 이것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치가 득세하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물론 이 억압과 압박을 피해 달아날 기회가 있었다. 안일했다. 앞으로 펼쳐질 역사의 참혹하고 잔인한 비극을 몰랐을 뿐이다. 타보리와 프리슈의 만남과 대결과 새로운 상황은 영혼에 상처를 깊게 아로새기면서 이어진다.

 

단순히 체스만 다루지 않았다. 체스에 영혼을 빼앗긴 사람들과 시대의 비극을 같이 엮었다. 운명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의 선택은 자유로워야 하지만 이 선택마저 강요되는 현실은 너무나도 큰 비극이다. 승부와 복수라는 단어로 요약하기에는 이들의 삶은 너무 많은 굴곡이 있다. 이 많은 굴곡 속에서도 체스판을 결코 떠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체스 챔피언이 되지 못한 아쉬움으로, 누군가는 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이 세 명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삶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알 수 있다. 의지와 노력과 인내가 없다면 이 불공평함을 조금이라도 바로 잡을 기회조차 잡지 못한다.

 

알파고가 바둑을 무너트리면서 이제 인간의 두뇌 게임은 컴퓨터에 완전히 졌다. 이미 체스가 진 것이 오래전이다. 체스의 신비라고 하지만 연산기능이 뛰어난 기계를 인간이 짧은 시간에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기계의 승리는 인간들이 둔 체스의 역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기보를 학습하고, 그것을 이용해 최상의 수를 빠른 속도로 연산하는 컴퓨터의 놀라운 능력은 이제 인간이 당할 수 없는 곳으로 갔다. 그럼에도 체스의 새로운 한 수에 대한 열정과 도전과 강한 의지는 매혹적이다. 비록 이것 때문에 비극이 생긴다하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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