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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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 많은 스릴러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애칭으로 <모기남>으로 불렸고, 나도 어느 순간 ‘모기남’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역사 속에 엄청난 기억력을 가진 이야기가 나오지만 현실에서 이런 인물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 작가에 따르면 전 세계에 수십 명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이런 사람들이 이슈화되지 않고 있을까?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 대한 책도 있는데 말이다. 이런 의문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이어졌다. 그리고 읽으면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엄청난 장점이지만 또 엄청난 고통이란 것도 다시금 깨달았다. 그 고통을 극대화시켜 보여주는 것이 이 소설의 첫 장면들이다.

 

에이머스 데커. 전직 미식축구선수. 현직 경찰.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처참하게 살해된 가족의 시체를 발견한다. 보통 사람에게도 엄청난 고통이지만 그는 더 심하다. 그가 바로 과잉기억증후군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든 것을 기억한다. ‘모기남’은 여기서 비롯했다. 이 비극과 고통은 그가 자살을 시도하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실패하고, 좌절하고, 거의 패인이 된다. 일상으로의 복귀는 아주 더디고, 완전하지도 않다. 범인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그러다 그가 다녔던 맨스필드 고등학교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난다. 동시에 그의 가족을 죽였다고 말하는 인물이 자수한다. 분노와 살의 가득한 그가 경찰서로 간다.

 

경찰서에서 만난 범인은 허술하다.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입 경찰을 속이고 면회를 했지만 범인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의 진술과 데커의 기억이 어긋난다. 그가 몰래 들어왔다는 사실을 서장이 알아채지만 그냥 넘어간다. 그러다 맨스필드 고등학교 총격 사건 조사원으로 채용된다. 서장의 선택이다. 이 학교에서 그는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사건 보고서를 읽는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그는 자신의 모교란 장점을 살려 다른 시각에서 사건을 보게 된다. 사건 당일 들렸던 소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전까지 조사에서 결코 발견하지 못했던 장소를 찾아내고, 단서의 꼬리를 쫓아간다.

 

누가 봐도 범인이 아닌 것 같은 자수범과 고등학교 총격 사건은 뒤엮인다. 데커의 일차 관심은 가족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범인이다. 하지만 이 범인은 변호사를 통해 너무 쉽게 풀려난다. 다른 곳 경찰에 잡힌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데커가 풀려난 그를 쫓고, 한 술집에서 대화를 나누지만 어느 순간 사라진다. 이 순간 독자들은 이 놈의 정체가 무엇일까?,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고등학교로 돌아가서 새로운 단서와 증거들을 발견한다. 이때 아주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데커의 기억력이다. 창의성은 없지만 모든 것을 기억하는 그 기억력 말이다.

 

현대의 과학 수사는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하고 분류하고 걸러내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이것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인물이 데커다. 자료를 그가 보기만 하면 입력되고, 필요에 의해 불러내어지고, 분류된다. 과연 소설 속에서 묘사된 것 같은 다양한 능력이 이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가능한지는 의문이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는데 아주 효율적이다. 데커에게 기억은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그건 이미 거기 있거나, 아니면 없는 것”이다. 이 기억도 입력될 때 약간의 오류가 생기는 모양이다. 원본과 기억의 비교가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결정적 단서가 된다. 이 능력만 놓고 보면 정말 부럽지만 그가 겪은 고통과 수많은 아픔 등을 생각하면 결단코 가지고 싶지 않다. 망각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솔직히 말해 데커의 원맨쇼에 전 동료 골초 랭커스터와 FBI 특수요원 보거트, 여기자 재미슨 등이 살짝 곁다리를 얹은 느낌이다. 가끔 창의적인 의견을 던져주지만 이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데커의 발이 되거나 의지를 유지하는 일이다. 물론 묘사되지 않은 수많은 일들을 홈즈 등의 소설처럼 경찰들이 해주었을 것이다. 그가 단서를 빠르게 쫓고, 발견하고, 의견을 교환하는데 이들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작가는 너무 데커에 집중했다. 그의 능력과 삶을 풀어내는데 열심이었다. 이것도 이 사건들의 단서가 데커의 삶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이해하게 되었지만.

 

소설은 잔혹하고 거침이 없다. 하나의 죽음은 다른 죽음을 발견하는 단서가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물음은 마지막에 풀리지만 그것을 따라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 해답도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처럼 완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뇌는 현재까지 미개척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자들은 상식과 지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괴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냥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데커가 다음 소설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한다. 금방 <괴물이란 불린 남자>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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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잠수함
이재량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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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즐겁고 재밌다. 하지만 그 바탕에 깔린 이야기는 결코 유쾌하지 않다.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현재가 주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성인물을 팔면서 겨우 생계를 떼우는 이현태와 월남 파병 군인 출신의 김 노인과 나 노인, 아이돌이 되고 싶은 모모 등이 주인공이다. 화자는 이현태다. 그의 과거는 이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현태의 과거보다 현태의 봉고차에 나머지 인물들이 타면서 생기는 이야기가 하나의 멋진 모험 활극처럼 펼쳐진다. 로드무비의 형태를 띈 이 소설은 작가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란 생각을 들게 만든다. 어떤 부분에서는 코믹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짠한 감정을 자아낸다.

 

이 네 사람이 한 곳에 모인 곳은 한 만화방이다. 만화방 주인은 김 노인이고, 모모는 이곳의 알바다. 그런데 모모의 집은 현태가 세들어 사는 곳이다. 버스로 한 시간 거리인데 어떻게 다니는지 의문이다. 뭐 이 의문은 금방 풀린다. 어느 날 현태는 만화방 주인 김노인에게서 자신과 나 노인을 봉고차로 부산까지 태워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비용은 1백만 원이다. 이 돈은 그가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해도 번다고 자신할 수 없는 수입이지만 왠지 찜찜하다. 거절하니 형사가 찾아와 삥을 뜯고 간다. 그러다 김 노인이 낮고 묵직한 말에 혹해 부산으로 가기로 한다. 그런데 출발부터 삐걱거린다. 노인이 똥을 싸려고 하고, 약을 놓아두고 오고, 모모까지 몰래 봉고차에 탔다. 모모를 놓고 가려다가 몸싸움(?)이 벌어지는데 이것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동영상으로 찍힌다.

 

부산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냥 달리면 5시간도 걸리지 않는데 김 노인의 약이 문제다. 나 노인의 치매는 또 어떤가. 김 노인이 기저귀에 똥을 싸고, 이 냄새 때문에 휴게소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들의 사연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왜 김 노인이 하반신 불구가 되었는지, 나 노인이 불구의 노인 옆에 붙어 있게 되었는지, 모모가 집을 나온 까닭 등. 이 사연들은 이들의 현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려주는 동시에 앞으로 펼쳐질 다양한 활극의 밑밥이 된다. 각자의 성격과 행동 패턴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나 이것이 딱딱 맞아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부산에 노인들을 데려다주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노인을 돈을 받은 월남 전우가 도망을 갔다. 이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현태와 모모의 실랑이가 그 지역 연쇄살인마의 납치로 알려진 것이다. 현태의 집에서 발견된 수많은 야동과 성인용품은 이 의심을 확신처럼 만들어준다. 이때 김 노인이 사촌이 살고 있다는 목포로 가자고 한다. 당연히 싫다. 경찰에 가서 자신의 누명을 벗고 싶다. 하지만 이미 이 모든 권력이 김 노인 쪽으로 넘어간 상태다. 김 노인 등이 사실을 말해주지 않으면 그는 납치범에 연쇄살인마가 될 수밖에 없다. 울며 겨자먹기로 갈 수밖에 없다. 봉고차 육봉1호는 또 달린다.

 

사실 부산을 떠난 후 육봉 1호는 그 역할이 다했다. 그들은 기차로, 다른 차로, 도보로 이동한다. 이 과정 속에 새로운 개인사가 나온다. 두 노인이 배를 사서 가려고 했던 베트남의 수이진과 그곳의 과거, 모모의 능력과 소망, 현태가 왜 대학에 들어간 후 한 번도 아버지를 찾아가지 않았는지 등. 이 이야기 속에서 월남 파병군이었던 두 노인의 현대사 비극이 드러난다. 나 노인은 고엽제 피해자고, 김 노인은 지뢰 때문에 하반신 마비다. 그리고 그들이 가려고 한 수이진에서 벌어진 비극도 같이. 이 희망에 계속해서 물을 주는 역할이 비틀즈의 ‘노란 잠수함(yellow submarine)’이다. 두 노인이 베트남에서 재밌게 본 영화이자 한 태입에 계속 반복되는 노래다. 또 이것은 그들이 가고자 하는 곳이 페퍼랜드라는 이상향임을 알려준다.

 

개성 강한 캐릭터와 좌충우돌하는 장면들과 어두운 상황에서도 결코 웃음을 내려놓지 않는 묘사는 읽는 내내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월남 파병 군인들과 전경이 충돌하는 장면과 이들이 이곳을 달아나는 장면은 코믹함의 극치다. 개인적으로 영상으로 찍는다면 슬로우 모션으로 찍고 싶다. <킹스맨>의 교회 학살 장면처럼. 물론 느낌은 완전히 다르게. 작가는 은유와 비유를 통해 성인물을 다루고, 간결하지만 재밌는 문장으로 상황을 살짝 뒤튼다. 이 때문에 나의 예상을 벗어난 장면으로 이어졌고, 더 유쾌해졌다. 이 네 사람의 내부적 갈등은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꾼다. 이 바뀐 방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또 다른 재미다. 작가의 첫 장편이자 출간작이라고 하는데 당연히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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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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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콩쿠르상 수상작이다. 이 프랑스 문학상은 가끔 나에게 혼란을 안겨준다. 놀랍거나 흥미롭거나 무미건조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은 놀랍고 무섭고 가슴 아픈 이야기다. 이야기 중에 루이즈가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셋째를 임신하려고 했다는 어느 주부의 말과 달리 루이즈가 벌인 사건은 너무 참혹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그 아이들의 엄마였다면 육아 스트레스와 출산 후 우울증 등으로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녀는 보모였다. 그것도 너무나도 유능한 보모 말이다. 소설은 사건 현장에서 시작하여 과거로 돌아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따라간다.

 

미리암. 두 아이의 엄마다. 둘째를 낳고 그녀의 삶은 육아 스트레스로 망가지고 있다. 남편이 음악 프로듀스로 점점 성공하는 것에 반해 그녀는 육아로 지친다. 이 부분에서 언론을 통해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프랑스 육아의 성공 사례는 간단히 지워지고, 육아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자신의 삶이 사라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보여준다. 변호사로 성공할 수도 있는 그녀가 동창을 만나고 난 후 잊고 있던 경력을 다시 되살리기로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쉽지 않다. 유능한 보모를 채용해야 아이를 두고 직업으로 떠난 자신의 죄책감을 덜 수 있다. 아니 더 열심히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선택은 좁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너무나도 유능한 보모가 나타난다. 첫 만남부터 그녀를 사로잡는다.

 

루이즈가 보여준 행동들은 모든 부모가 원하는 그것이다. 아이 돌보기와 청소와 요리까지 완벽하게 해낸다.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열 때도 루이즈는 완벽한 준비를 한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부부에게 이보다 더 좋은 보모는 없다. 하지만 이 의존성은 어느 순간 독이 된다.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문제의 발생은 이때 생긴다. 이 완벽함 뒤에 가려진 이 세 남녀의 욕망과 삶이 뒤섞이면서 조용히 하나씩 풀려나온다. 만약 처음에 나온 살인 장면이 없었다면 전혀 이 파국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장면 때문에 나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해 하면서 그 이유를 계속 찾는다.

 

미리암과 루이즈의 이야기다. 둘은 모두 직업을 가지고 있다. 루이즈에게는 딸도 있었다. ‘있었다’라는 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현재 그녀의 생존도 사는 곳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리암은 변호사고, 루이즈는 보모다. 흔한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갈등으로 이 사건을 보려고 했다면 큰 오산이다. 갈등은 가끔 생기지만 루이즈에 대한 의존은 절대적이다. 현재 속에서 미리암은 자신의 경력을 쌓아간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도 높아진다. 자신이 집에서 애들만 볼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폴도 점점 자신의 경력을 쌓고, 성공가도를 달린다. 루이즈의 역할이 아주 크다. 루이즈와 함께 여름 휴가를 간다. 이 경험은 루이즈에게 아주 새롭다. 과거 다른 고용인과 함께 간 휴가와 분명히 다르다.

 

작가는 두 여인의 시간을 다르게 사용한다. 미리암은 현재를, 루이즈에게는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준다. 현재가 변화를 알려준다면 루이즈의 과거는 현재의 삶이 어떤지 알려주는 역할이다. 이 과거를 단편적으로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너무나도 완벽한 루이즈의 오늘이 얼마나 불안하고 외롭고 불안정한지 알려준다. 하지만 미리암 등은 이것을 알 수 없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남편의 부채 때문에 독촉장이 자신들의 집으로 날아왔을 때도 도와주겠다고만 말하지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루이즈의 삶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데도. 계속해서 읽다보면 루이즈의 삶은 영혼이 사라진 기계와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읽다 보면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한다. 미리암의 시어머니가 아들이 바쁠 때 미리암이 출장 간 것을 탓하는 장면과 미리암이 북아프리카계를 보모로 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장면 등이다. 사건이 터진 후 루이즈가 일한 가족들을 찾아가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 나온 몇 가지 에피소드는 과거와 현재의 감정이 뒤섞일 때 우리가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그들이 찾고자 하는 이유는 결코 발견되지 않는다. 루이즈의 내면과 과거를 결코 제대로 좇지 못하기 때문이다. 밖으로 드러난 것은 내면의 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말이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살인 이유는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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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신혼일기
김지원 지음 / 다연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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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 보고 tvN에서 방송한 <신혼일기>가 떠올랐다. 사실 나는 이 방송을 제대로 본 적이 거의 없다. 오상진, 김소영 부부가 나오는 에피소드 중 일부를 꽤 오래 본 적은 있지만 찾아 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런 내가 이 책에 관심을 둔 것은 간단하다. 오키나와 때문이다. 신혼일기라는 제목이 붙었으니 단순한 여행기만은 아닐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오키나와는 이 둘이 머문 곳이고, 방점은 신혼일기에 있었다. 약간 실망할 수도 있었는데 오키나와 맛집이나 그들의 삶을 조금씩 다루면서 이 실망을 지워나갔다.

 

신혼은 달콤하다. 마냥 달콤하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산 두 남녀가 좁은 한 집에서 사는데 다툼이 없을 수 없다. 이 책 속 두 부부도 적지 않게 싸운 모양이다. 그런데 이 책 속에는 그 싸움을 다루지 않는다. 싸움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이후 해결책을 보여줄 뿐이다. 사실 이때 대부분의 싸움이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 것임을 감안하면 크게 다룰 필요가 없다. 영리한 선택이자 편집이다. 그 싸움 이후 둘이 내놓은 해결책 중 하나가 집안으로 들어오면 신발 벗듯이 내려놓는다는 것인데 참 현명한 해결책이다.

 

남편의 일 때문에 오키나와에 왔다. 3개월 체류기인데 이 짧은 체류 기간 동안 상당히 재미있게 보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분명히 남편 잭슨이다. 이제는 보기 힘든 머리 모양(나는 머리 모양의 이름을 모른다)을 한 미남인 남편의 행동은 글 그대로라면 열정과 도전의식으로 가득하다. 물론 빼놓을 수 없는 자기애도 있다. 이 남편의 말과 행동은 작가에게 영감을 준다. 심쿵 잭슨어록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 어록보다 나를 즐겁게 한 것은 그의 행동들이다. 회장놀이를 하고, 겁 많고, 감탄 잘 하는 잭슨은 주변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다. 아침형 인간에 운동까지 열심히 하고 긍정적이기까지 한 인물이다. 이런 인물의 일상이 아직 신혼인 아내의 눈에 사랑스럽지 않기는 힘들다.

 

오키나와는 늘 여행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다. 관광지인 오키나와를 살짝 기대했는데 동네 맛집과 작은 일상 이야기 외에는 없다. 맛집은 다음에 가면 참고할 만하다. 그렇지만 여행 가이드북은 영 아니다. 정보가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제목도 신혼일기이지 않은가. 제목만 놓고 보면 결혼하자마자 바로 간 것 같지만 한국에서 살다가 3개월 동안 머문 것이다. 긴 시간 같지만 하나의 도시에 머물면서 그곳의 삶을 누리기에는 조금 부족한 시간이다. 일까지 한다면 더욱. 하지만 작가는 주부이자 블로거 삶을 산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네이버 포스트에 연재한 글이 이렇게 나온 것을 보면 확실하다.

 

소소한 일상을 다룬 이 일기는 과장하는 문장이나 감정을 격하게 풀어내는 장면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조금 심심할 수도 있는데 잭슨의 사진과 오키나와 풍경과 아주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이것을 충분히 대체한다. 오히려 읽다가 자주 입가에 미소 짓게 한다. 남편에 대한 찬양과 달달함이 묻어나는 글들은 잘 정제된 문장으로 바뀌어 표현되었다. 길지 않아 읽기 부담 없고 사진도 많아 단숨에 읽을 수 있다. 감정을 살짝 건드리는 글들이 많아 다른 곳에 인용하기도 좋다. 살면서 생각하고 있던 것을 세련되게 요약하는 부분도 있다. 개인적으로 잭슨 이야기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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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안에 살해된 어린 모차르트가 있다 에프 클래식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송아리 옮김 / F(에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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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다보면 과거의 어떤 일이 어색하고 낯설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대세인 시절은 불과 몇 년 전 폴더폰이 낯설고, 버튼식이 아닌 돌리는 전화기는 더 낯설다. 이처럼 이 책 속 비행사의 실종과 추락도 내겐 낯설다. 가끔 대형사고가 나야만 언론을 통해 알게 되는 비행기 사고가 불과 7~80년 전에는 훨씬 빈번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생텍쥐페리가 정찰 비행을 갔다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나의 전설처럼 알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면 그 당시 비행기 조종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알려준다. 그때는 지금처럼 자동항법장치도, GPS도, 뛰어난 무전기술도 없던 시절이었다.

 

비행기의 연료는 한정적이다. 밤에 달빛조차 없다면 시야는 더 좁아진다. 먼 거리를 날아가야 하기에 조금만 방향이 잘못되어도 다른 곳으로 간다. 날씨에 영향을 받고, 추락한다면 제대로 된 위치 정보가 없어 수색이 어렵다. 추락한 조정사가 며칠을 걸어서 생존했을 때 동료들이 흘린 눈물은 가슴에 진하게 와 닿는다. 생텍쥐페리도 추락했다가 리비아의 베두인에게 구조되었다. 좀더 자세하게 말하면 그들에게 다가갔다. 생존의지를 불태우고, 환각과 싸우면서 베두인을 발견한 것이다. 그 이전에 사막에서 낙하산의 천과 기온 차를 이용해 아주 적은 양을 물을 얻었다. 깨끗한 물이 아니지만 생명을 며칠 더 연장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이때 그가 본 신기루와 환각은 아주 사실적이다.

 

그의 비행이 늘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 속에 나오는 모험과 사건들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사하라 사막에서 반도들에게 억류되고, 노예로 잡힌 사람을 풀어주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특히 노예 모하메드를 풀어줄 때 그가 보여준 몇 가지 행동과 그것을 보는 생텍쥐페리의 모습은 자유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준다. 노예라는 익명에서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개인으로 변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이 글들은 그의 경험들이 녹아 있다. 너무 극적인 부분도 적지 않아 소설이라고 해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이 책의 낯익은 원제인 <인간의 대지>였던 것을 바꾼 것도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읽을 때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사막을 날고, 그곳에 추락한 경험을 적었을 때 자연스레 떠오른 작품은 <어린 왕자>다. 몇 번 읽은 책이지만 아직 나에게 너무 낯선 이 책이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잠시 떠올랐다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생텍쥐페리의 다른 소설을 읽은 적이 없기에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몇 편은 어둠속을 헤매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나의 경험과 취향에 맞지 않는 대목들이 나오고, 읽을 당시 나의 몸 상태가 몸살 감기 등으로 최악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비행기 조종사가 얼마나 위험한 직업이었는지, 그 이후 과학의 발달이 이 직업에 얼마나 많은 안정성을 주었는지 떠올리는 정도로 머문 순간도 꽤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비행기 추락과 생존의 의지를 불태우면서 한 방향으로 나아가던 장면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들을 구한 베두인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다. 그 베두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 부분에서 보통 생명의 은인을 평생 기억하겠다는 통속적인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신은 내게 ‘인간’이고, 그렇기에 모든 인간의 얼굴을 동시에 하고 나타난다. 당신은 단 한 번도 내 얼굴을 유심히 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알아보았다. 당신은 가장 사랑하는 형제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당신을 알아보리라.” 이 문장을 읽고 사막 한 가운데에서 그가 느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위대함을 깨달았다. 적도 사라지고 인간만이 남는다.

 

마지막 <인간들>이란 장의 마지막 부분을 몇 번 읽으면서 바뀐 제목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게 되었다. 어린왕자와 어린 모차르트를 같이 놓아둔 부분을 보고 <어린 왕자>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오직 정신만이, 진흙에 숨결을 불어넣어 인간을 만들 수 있다.” 란 문장을 보고 그가 얼마나 인간의 정신에 많은 기대를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지 알 수 있었다. 결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몸 상태가 좋아진다면 몇몇 부분이라도 다시 읽으면서 조금 더 이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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