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의 교토 - 디지털 노마드 번역가의 교토 한 달 살기 일본에서 한 달 살기 시리즈 2
박현아 지음 / 세나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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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 도시에서 한 달 살기가 몇 년 전부터 유행이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어떤 도시에서 길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며칠 휴가 내어 간 도시에 서양인이 허름한 옷을 입고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을 볼 때면 괜히 부러웠다. 같은 도시를 몇 번 가면서 더 많은 곳을 돌아보고, 그때 신기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던 곳이 그냥 낯설어서 그렇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도 무심코 지나가던 곳이 어느 날 갑자기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았던가. 숙소를 정해놓고 며칠 동안 오고 가다 보면 그 익숙한 풍경이 외국이란 사실을 잊게 만들기도 한다. 이 낯설고 익숙한 경험이 한 달 살기로 나를 유혹한다. 그러다 한 번은 가보고 싶은 일본 고도 교토 한 달 살기 책이 나왔다.

 

교토 한 달 살기의 저자는 일본어 번역가다. 한 달 살기를 하는데 그 나라의 언어를 잘 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번역가이다 보니 특정 장소에서 일할 필요도 없다. 디지털 노마드 번역가란 부제가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네이버 포스트에 연재한 글을 정리해서 책으로 내었는데 가기 전부터 계획한 일이다. 그녀가 교토에 간 시기는 4월이다. 일본 벚꽃이 만발할 때, 소위 말하는 최고의 시즌에 갔다. 문제라면 갓 결혼한 신혼이란 점 정도랄까. 일기 형식으로 하루 하루 일상을 적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오사카, 교토 여행을 생각할 때 예상한 2~3일 일정은 역시 무리임을 깨닫는다.

 

한 달이란 시간 동안 관광과 휴양과 일을 동시에 진행하려는 욕심이 담겨 있다. 읽다 보면 욕심이 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단순히 관광 목적으로 빡세게 돌아다니면 1주일 정도면 유명한 곳들을 모두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다. 넉넉하게 잡으면 2주 정도. 하지만 휴양과 일을 넣으면, 매일 자신의 일정을 포스팅해야 한다면 어떨까? 생각보다 빼앗기는 시간이 많을 것이다. 덕분에 저자의 하루 일정은 그렇게 많지 않다. 여유로워 보이는 일상은 한 달 동안 한 지역에 머물기에 가능한 것이다. 가끔 작은 소도시에 며칠 머물다 보면 이런 현상이 생기기도 하지만 교토는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상당히 많은 관광지들이 낯익다는 사실에 놀란다. 금각사, 은각사, 기요미즈데라(청수사), 철학자의길, 덴유지 등은 일본 소설, 영화, 드라마, 애니 등으로 너무 익숙하다. 이 이외에도 볼 곳은 넘쳐난다. 옛 도시와 신 도시가 강 하나를 두고 나누어진다는 말을 듣고, 왠지 시간 여행을 느낌을 받기도 했다. 내가 교토하면 상상하는 이미지는 마을 풍경인데 이것을 잘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몇몇 카페의 문 닫는 시간이 오후 6시 정도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경제적인 의미에서, 여유라는 면에서 말이다.

 

비교적 긴 시간을 머물게 되어서 인지 저자의 교토 일상은 다양한 경험으로 가득하다. 일본 다도를 체험한다거나 정원의 한적한 분위기를 즐긴다거나. 짧은 일정이라면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여러 곳을 다니겠지만 오늘 아니면 내일이 있는 여행자란 사실이 새로운 선택을 보여준다. 이 책을 보면서 저자가 일본 버스를 타다가 실수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혹시 가게 된다면 꼭 머릿속에 담아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번역 마감일이 다가오고, 파일을 보내야하면 택시도 탄다. 아마 일하지 않는 여행자라면 택시 타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자주 나오는데 그녀가 상당히 타인의 질문에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줘 조금 놀랐다. 타인의 선의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은 안타깝지만 현실적인 대응방법이기도 하다. 분리수거 문제로 관리인의 질책을 받는 부분을 보고 잔뜩 화가 난 모습은 또 어떤가. 후기에 한 달 살기를 하려면 호텔에서 하라고 했는데 자신이 살 던 집의 한 달 비용이 얼마인지 알려줬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작년 일본 문제와 최근의 코로나 19 사태로 이번 봄에 일본 여행을 할 수 없는 것을 감안하면 이 책의 이번 출간은 운이 없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갑자기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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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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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핫한 일본 소설가 중 한 명이 무라타 사야카다.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후 많이 출간되고 있다. 아쿠타가와 상 수상 후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 한 권도 그녀의 책을 읽지 않았는데 이번에 읽게 되었다. 이번 책은 <편의점 인간>보다 먼저 출간되었고, 미시마 유키오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작가의 문학상 수상 이력은 상당히 화려하다. 내가 알고 있는 일본 문학상 중 네 가지를 수상했다. 이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읽으면서 상당히 불편해하면서도 이야기 속에 몰입했다. 이야기는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초등학교 3학년의 한때와 중학교 2학년 시기다. 초등학교 시절은 초등학생의 순수함이 묻어나면서도 아주 도발적인 상황이 일어난다. 한창 성장통을 겪는 다니자와 유카보다 키가 작은 이부키가 내뱉은 말에서 이 둘의 만남은 시작된다. 같은 서예학원을 다닌다는 이유로 말을 섞지만 유카의 첫 생리 후 더 가까워진다. 유카의 강제적인 키스 이후 둘의 관계는 조금씩 변한다. 유카는 이부키를 자신만의 장난감으로 삼고 서툰 입맞춤을 계속 한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모른 채 한다.

 

중학생이 된 후 교실의 계급 관계가 전면에 부각된다. 잘 나가는 부류와 중간과 마지막 계급 등이다. 초등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들은 이제 각각 다른 계급 속에 머문다. 와카바는 최상위 계급으로, 노부코는 최하위 계급으로. 유카는 평범한 계급이다. 한때 와카바를 중심으로 셋이 모여 다닌 것과 비교되는 현실이다. 와카바도 최상위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이 학급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학창 시절을 잠시 떠올리지만 많이 다르다. 이 계급 사회에서 유카는 관찰자를 자처하면서 끊임없이 친구들을 엿본다. 자신의 계급이 노부코처럼 최하위로 떨어지지 않게 긴장을 유지하면서.

 

유카가 성장을 멈춘 사이 이부키는 성장했다. 이제는 키가 비슷하다. 힘은 당연히 이부키가 더 세다. 유카는 아직도 이부키를 자신의 소유물인 장난감처럼 대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란 이부키는 싫다는 감정을 표현하고 사귀자고 말한다. 계급에 민감한 유카에게 이 일은 공포다. 반 친구들을 스스럼없이 대하는 이부키를 ‘행복이’라고 부른다. 만약 둘이 사귄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먼저다. 반에서 그녀는 언제나 이부키에게 촉각을 잔득 세우고 있다. 제3자가 보기에 그냥 사귀면 될 것 같은데 정체된 세상 속에 머물고 있는 그녀에게 이 일은 아주 힘들다.

 

유카는 자신의 신체에 불만이 많다. 같은 부류들이 내뱉는 일상적인 칭찬에 만족하지 못한다. 학급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풍경은 감정을 배제한 채 보면 친구 사이의 조금 심한 농담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창 사춘기를 지날 소녀들에게는 아주 큰 충격이다. 남들과 거리를 두고,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유카에게 이 교실 속 계급은 그녀가 지닌 불안의 원천이다. 그녀는 자신이 관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마지막에 노부코가 그 사실을 말할 때 그녀의 비겁한 행동이 어떤 아픔을 주었는지 잘 드러난다.

 

“소녀는 망상과 현실을 하나로 뒤섞어, 가슴에 뿌리내린 발정을 처리하지 못한 채 몸속에서 첫사랑이라는 괴물을 키우고 있다.” 이 문장은 유카의 현실과 걱정과 욕망을 그대로 표현한다. 이부키를 향한 마음을 왜곡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뒤틀어진 발정과 욕망이 벌이는 충격적인 장면은 아직도 강렬하다. 반의 계급과 놀림에 온몸으로 부딪히는 노부코를 아름답다고 말하고, 자신의 몸을 좀더 알게 되면서 일어나는 자각은 한 소녀를 한 명의 인간으로 성장시킨다. 그리고 이 성장은 멈춰 있던 마을의 개발과 터널의 개통 등과도 이어져 있다. 다른 작품도 시간 내어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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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매시슨 -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외 3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6
리처드 매시슨 지음, 최필원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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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리처드 매시슨이란 이름보다 매디슨이 더 익숙하다. 이번 책을 읽고 인터넷 서점에 검색하니 사놓고 모셔둔 책 몇 권이 눈에 들어온다. 노블마인에서 출간된 책들이다. 황금가지에서 나온 책들을 읽고 산 듯한데 <더 박스>의 단편 몇 편은 이번 단편집에도 실려 있다. 저질 기억력이 작가들의 작품을 새롭게 해준다는 점이 반갑게 느껴진다. 현대문학에서 나온 작가 단편집에 실린 작품은 모두 33편이다. 빅터 라발이란 작가가 직접 골라 엮은 펭귄 클래식 판을 번역했는데 엮은이가 쓴 감상글이 호러처럼 실려 있다.

 

이번 단편선을 읽으면서 <결투(DUEL)>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데뷔작의 원작이란 사실을 처음 알았다. 예전에 이 영화를 아주 인상적으로 본 기억이 있다. 한참 영화에 빠져 있었을 때 이 사실을 알았다면 원작 소설을 열심히 찾았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기억에 나지 않은 [환상특급]의 원작이 실려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부제인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의 시선을 끈 것은 기내 흡연이다. 이제는 전설 속 이야기가 된 그것 말이다. 여기에 총을 들고 탈 수 있다니. 테러리스트들이 과거로 회귀하고 싶을 상황이었다.

 

작가의 첫 단편부터 담겨 있다. <남자와 여자에게서 태어나다>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는 아이가 화자인데 불분명한 실체가 공포를 불러온다. <사냥감>은 영화 <사탄의 인형> 속 척키가 떠올랐다. 마지막 장면은 서늘하다. <마녀전쟁>은 소녀들의 농담에서 실제 학살에 가까운 전쟁으로 이어진다. 초능력을 엄청나게 확대했다. <깔끔한 집>의 마지막 반전은 우리 상상력의 한계를 깨트린다. 집을 벗어난다고 모든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앞의 몇 작품에서 호러, 판타지, SF의 다양한 장르를 보여줬다. 읽으면서 영화 등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사막 카페>는 읽으면서 중국 영화 <용문객작>이 떠올랐다. 외딴 곳에서 일어나는 살인 같은 것. 마무리는 예상과 달랐다. <버튼, 버튼>은 버튼을 누르면 자신이 잘 모르는 사람이 죽고 돈을 받는다는 설정이다. 도덕적 고민을 안겨주는 설정인데 마지막 한 문장이 강한 충격을 준다. <뱀파이어라는 건 없다>는 흡혈귀를 이용한 반전이 예상외였다. 공포 전설을 이용한 트릭을 이렇게 짧은 단편 속에 잘 녹여내다니 대단하다. <산타클로스를 만나다>도 중반 이후 이야기의 실체가 드러나는데 한 남자의 불안과 욕망의 심리를 잘 표현해주었다.

 

<유령선>은 SF 설정이지만 우리가 알던 유령선 이야기다. 자신들과 닮은 시체를 발견한 선원들의 선택과 인식을 다룬다. <태양에서 세 번째>는 지구인데 읽으면서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후의 날>은 종말을 앞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살, 파괴, 섹스, 폭력 등 갖가지 행동으로 드러난다. 그 속에서도 가족의 사랑을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다. <벙어리 소년>은 나치의 인체 실험을 연상시킨다. 언어보다 텔레파시 사용이란 목표에 맞춰 아이를 양육한다. 감정의 교류와 언어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든다.

 

<피의 아들>은 흡혈귀가 되고 싶은 아이가 벌인 사건이 예상외의 결말을 맞이한다, <뜻이 있는 곳에>를 읽을 때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야기들이 떠올랐는데 마지막 장면은 호러였다. <시체의 춤>은 쉽게 집중이 되지 않았는데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장례식>은 유쾌한 공포물이다. 특정한 누군가에게 인기 있다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돌아보게 된다. <깜작 선물>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마지막 설정이다. <춤추는 손가락>은 이 행위 속에 자신의 의지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충격파>를 읽으면서 사물에 깃든 의지 혹은 영에 대한 것을 떠올렸다. 일본 소설에서 자주 보게 되는 설정이다.

 

카우보이물인 <정복자>나 불안한 심리를 다룬 단편들이 이 책속에 나온다. 정말 다양한 장르가 담겨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작품들이 잘 읽히고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한가한 시절이었다면 집에 있는 작가의 다른 책들로 달려가 단숨에 읽고 싶다. 먼저 어디에 둔 것인지 찾아야하겠지만. 스티븐 킹의 단편들을 읽은 지 너무 오래되어 이 작품들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은 조금 아쉽다. <나는 전설이다>를 처음 읽고 뭐지? 했다가 영화를 본 후 이 제목이 의미하는 바로 떠올리고 얼마나 감탄했던가. 또 킹의 <셀>을 읽으면서 이 작품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던 기억이 난다. 이번 기회에 매시슨의 더 많은 작품이 출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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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리커버 에디션)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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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에 출간된 정여울의 첫 에세이 리커버 에디션이다. 정여울이란 이름을 인식하게 된 것은 <내사 사랑한 유럽 TOP 10>이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정말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자신이 경험한 곳만 담고 있지 않고, 가보고 싶은 곳을 포함해 깜짝 놀랐다. 이후 <빈센트, 나의 빈센트>를 읽었는데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애정이 너무 가득 묻어나 객관성에 의문이 조금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문장이 좋고, 사진이 많아 읽기 부담 없었다는 점이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한참 오래전에 지나간 나의 20대를 잠시 돌아보고 싶어 선택했다.

 

20대를 돌아보면 한 것보다 놓친 것들이 더 많이 생각난다. 아마 내가 20대에 이런 책을 읽었다면 과연 이 글들이 가슴에 와 닿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그 시기를 지나온 나에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20개의 키워드가 20대를 연상시키지만 결코 적은 수는 아니다. 마지막이 ‘질문’인 것은 아주 훌륭한 선택이다. 실제 나를 비롯한 20대들은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이고 좋은 질문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20개의 키워드를 하나씩 나열하면 우정, 여행, 사랑, 재능, 멘토, 행복, 장소, 탐닉, 화폐, 직업, 방황, 소통, 타인, 배움, 정치, 가족, 젠더, 죽음, 예술, 질문 등이다. 이 키워드들이 각각 독립된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렇게 분류를 한 것뿐이다. 여행과 장소, 화폐와 직업, 멘토와 배움 등으로 엮을 수도 있다. 나의 20대 키워드를 여기서 뽑는다면 우정, 사랑, 탐닉, 방황, 죽음, 질문 등일 것이다. 친구와 만나는 것을 좋아했고, 사랑에 빠지고, 뭔가를 미친 듯이 파고들었고, 고독을 느끼며 방황하고, 죽음을 생각했다. 비겁한 행동도 적지 않았고, 내 삶의 존재에 질문을 던졌다. 남들처럼 구체적인 꿈을 꾼 적은 없고, 30대가 된다는 것에 어떤 두려움도 기대도 하지 않았다.

 

29살 후배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면서 마지막 20대를 아쉬워할 때 공감하지 못했다. 그와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20대의 무모함으로 몇 가지 행동을 했는데 지금도 이 기억들은 강렬하게 작용한다. 어떨 때는 무용담처럼 풀릴 때도 있다. 여행은 국내 여행만 갔고, 해외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나중에 큰 후회로 남았다. 더 넓고 새로운 세상을 직접 눈으로 볼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더 많이 나갔다면 내 삶의 철학 중 몇 가지는 바뀌었을 것이다. 괜한 아집이었다.

 

나는 재능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재능을 살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직업과 취미는 다른 문제란 것을 깨달았다. 취미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독서와 영화다. 그 비중이 최근에 독서 쪽으로 더 흘렀지만 영화 보기에 대한 집착이 한때는 대단했다. 저자는 방황을 “더욱 대차게 나다움을 벗어던짐으로써 오히려 진정한 나다움을 되찾는 방법”이라고 했다. 방황 속에서 진정한 나다움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방황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피상적이지만 늘 갈구했던 것이다. 시간을 정하고 이 나이를 넘기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던 것은 현실이 허무하고 추악했기 때문이다. 삶의 아름다움보다 그 부분이 더 부각되다보니 죽음에 더 빠졌다. 죽음, 종말을 말할 때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면’이란 질문을 던지는데 이에 대한 나의 답은 언제나 같다. 오늘처럼이다. 미래는 지나간 현재다. 현재를 살지 않는 사람은 미래가 없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돌아다니다가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은 내 가족에게 이런 시간도 돈도 쓴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작은 깨달음이 바로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작은 물줄기는 만들었다.

 

저자의 글 중에서 나의 머릿속을 강하게 두드린 것이 있다. 바로 “학습된 불안감”이다. “한국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개개인에게 과도한 두려움의 문화를 학습시킨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하지만 잠시만 둘러봐도 이 학습된 두려움의 흔적은 곳곳에 널려 있다. 이 ‘불안 바이러스’를 전파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 주변에 넘쳐난다. 이것을 자각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우리의 진정한 자아 찾기가 가능하다. 이런 에세이라면 저자의 다른 글도 더 찾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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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김영하의 소설을 읽었다. 매일 긴 시간을 운전해야 했을 때는 그의 팟캐스트도 자주 들었다. 소설 등을 다른 시선에 볼 수 있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우연히 잡아 읽게 된 <아랑은 왜>는 나를 김영하의 소설 세계로 이끌었다. 한참 사 모았다. 그리고 그 중 겨우 한 권을 읽고 멈추었다.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몇 번 쓴 대로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사놓고 묵혀두는 나쁜 병 말이다. 그렇게 언젠가 읽어야지 하다 보니 시간이 상당히 흘렀고, 방송 때문에 그의 인지도가 엄청나게 올라갔다. 신작들을 위시리스트에 올려놓았다. 그냥 출간된 책들에 관심만 두었다. 그러다 기회가 되어 7년 만의 장편을 읽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이 소설을 장편으로 분류해야 할지 의문이다. 편당 활자가 촘촘한 책의 기준으로 편집하면 겨우 100~120쪽 정도면 충분할 것 같기 때문이다. 아마 중편 소설 정도로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은 아직 인터넷 서점에는 정보가 올라와 있지 않다.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 서재에서 낸 종이책이기 때문인 듯하다. 한참 동안 인터넷 서점에서 책 정보를 검색했다. 언젠가는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소설을 빠르게 읽고 싶은 독자들은 밀리의 서재로 달려가야 할 것 같다. 영리한 마케팅이다. 어쩌면 새로운 방식의 출판과 마케팅인지도 모르겠다.

 

김영하가 풀어낸 SF소설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조금 실망이다. 미래와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데 분량 탓인지 깊은 이야기가 빠진 채 요약만 넘실거린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내가 SF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인 철이가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겪게 되는 이야기도 확장되지 않고 간략하게 다루어진다.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안드로이드의 이야기이지만 구체적인 설명이 상당히 빠져 있다. 내가 아쉬움을 느끼는 대목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다. 빠른 전개로 재밌게 빠르게 읽을 수 있지만 말이다.

 

첫 이야기에서 천자문의 몇 글자를 뜻풀이한다. 현학적 시작이지만 다시 한 번 천자문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미래의 한국을 배경으로 인공지능을 다루는 회사에 근무하는 아버지와 함께 사는 철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평범한 가정의 일상을 보여주다가 철이 등록되지 않은 안드로이드란 이유로 체포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설명들이 나온다. 휴머노이드 등록법이 생겼고, 등록되지 않은 안드로이드 모두 한 곳으로 모은다. 이곳에서도 철은 자신이 인간이란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살아남기 위해 안드로이드인 척만 한다. 선이와 민이를 만난 곳도 이곳이다.

 

통일 후 한국을 그려낸 부분 중 눈길을 끄는 부분은 있다. 대도시를 제외한 중소도시의 몰락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있다. 과학의 발전은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만들어내고, 곳곳에서 이들을 이용한다.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안드로이드는 자는 동안 리셋이 되어 자신이 안드로이드란 사실을 잊는다고 한다. 전투형 안드로이드가 이 장소에서 싸움을 벌이고, 자신들의 파괴된 신체 부위를 교환하거나 약탈한다.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안드로이드의 팔을 잡아빼는 장면은 아주 강렬하고 섬뜩하다. 인간이란 착각을 깨트리려면 실체를 바로 봐야 한다. 폭력적이지만 가장 빠른 방식이다.

 

철의 아버지는 인공지능이 계속해서 자기학습하는 것을 반대한다. 인간과 대립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종말을 다룬 영화 등에서 자주 본 설정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식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인간의 멸종은 인간에게서 비롯한 것임을 보여준다. 재미난 표현 중 하나가 나오는데 ‘플라스틱과 닭뼈’를 남겼다는 문장이다. 이야기는 다시 기억과 육체의 문제로 넘어간다. 인간들이 자신의 뇌를 업로드하는 일이 벌어진다. 철이가 네트워크에서 안드로이드 신체로 내려가는데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감각이다. 사실 이 감각도 뇌의 영역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든 생각 중 하나는 이 거대한 데이터를 저장할 공간이나 에너지는 어디에서 조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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