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삼킨 아이
파리누쉬 사니이 지음, 양미래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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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함구증이란 단어를 이 소설을 통해 처음 들었다. 그것도 흔하지 않은 이란 소설을 통해서 말이다. 지금까지 몇 권의 이란 소설을 읽었는데 현대를 다루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이란을 떠난 사람들이 쓴 소설들이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의 작가도 강체 추방되었으니 어쩌면 같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나에게 감쳐져 있던 이란의 모습을 살짝 엿보게 만들었다. 언론을 통해 알고 있던 일부 모습 너머의 현실은 우리의 삶과 큰 차이가 없고, 어떤 상황에서는 우리의 과거를 떠올려준다.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작가가 실화를 바탕을 두고 쓴 글이라고 한다.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스무 살 청년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방식이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이어지고,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목소리를 삼킨 아이의 이야기와 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다. 샤허브의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목소리를 내지 않는 아이를 옹호하는 엄마의 이야기가 조금씩 꾸준히 나온다. 다섯 살이 되었지만 말을 하지 않는 샤허브를 보고 친척 호스로우 형이나 친형 아라쉬는 벙어리라고 말하고, 멀리 떨어지려고 한다. 다만 호스로우 형은 샤허브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앞세우려고 한다. 어린 샤허브를 아이스크림으로 유혹하고, 강제로 하숫물을 마시게 하려고 한다. 다행이 아라쉬가 이것을 보고 막는다.

 

친척들은 샤허브를 지진아 혹은 벙어리라고 단정해서 말한다. 아빠조차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다르다. 말이 조금 늦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샤허브에게 유일한 아군은 엄마가 유일하다. 이런 샤허브에겐 상상 속 친구가 둘 있다. 바비와 아시다. 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친할머니가 엄마를 질타하자 머리 위로 벽돌을 떨어트리고, 아라쉬 형이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벙어리라고 말하자 형이 완성한 작품을 망가뜨린다. 자신에게 엄마처럼 사랑을 보여주지 않는 아빠는 가위로 차를 긁는다. 자신 속에 움튼 복수의 감정이 저지른 행위들이다. 아이이기에 저지를 수 있는 행동이기도 하다.

 

모두의 말을 알아듣지만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사허브. 그의 나쁜 행동도 감싸주는 엄마. 저능하다고 생각하는 아빠의 뒤틀린 감정 등이 엮이고 꼬이면서 상황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말하지 않아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은 아빠의 감정을 더 나쁘게 만든다. 엄마의 울음에 반응해 엄마라는 단어를 내뱉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엄마를 감싸기 위해 친척들 앞에서 욕을 내뱉는데 이 행동이 그 당시 긴장을 풀어주지만 지진아의 굴레를 완전히 풀어주는 것은 아니다. 조급하고 자신의 위신을 생각하는 아빠는 아들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 한 반 나아가기보다는 주춤하고, 쉽게 화를 낸다. 관심은 공부 잘 하는 큰 아들과 말 잘하는 막내 딸에 집중한다. 샤허브는 아빠를 아라쉬네 형 아빠라고 부른다.

 

친척 누나 페레슈테라는 샤허브를 이용해 공원에서 남자를 만난다. 이란은 법적으로 남녀가 같이 있게 되면 도덕경찰이 체포한다. 자유연애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란과 명예살인이란 단어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관련 기사가 주루룩 나올 정도다. 그러나 청춘들의 열정은 막을 수 없다. 누나가 말하지 않는 샤허브를 이용해 남친을 만나는 것은 기발한 발상이다. 물론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둘 때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은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경찰에 잡힐 뻔 한 적도 있다. 결국 밀회를 위해 집안으로 들어간다. 나중에 누나가 사라졌을 때 지진아라고 생각한 샤허브의 도움으로 그곳을 찾아간다. 그 이후 벌어진 몇 가지 상황은 낯설고, 감춰진 사회의 다른 면을 보게 한다.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와중에 샤허브의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 외할머니다. 그녀는 이 집이 가진 문제를 잘 파악하고, 샤허브가 똑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랑과 애정과 꾸준한 노력으로 아이의 신뢰를 쌓고,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아이의 입을 조금씩 열게 한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 돈을 번다는 아버지의 말이 가진 허점도, 집안일에 짓눌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엄마의 심리 이면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세심한 관찰, 꾸준한 노력과 믿음이 필요한데 이 부부는 성급했고 불안했다. 대화가 사라지고, 변명만 난무한다. 목소리를 숨길 수밖에 환경이 더욱 만들어졌다. 한 번 만들어진 관계는 노력으로 이어가야 한다. 외할머니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읽으면서 많은 부분을 생각하고, 나 자신의 육아에 대해 돌아보고 배운다. 이 작가의 다른 책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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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파도 속으로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황세연 지음 / 들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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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의 전작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주저없이 선택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내가 예상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기대한 작품은 해양에서 찾는 유물과 이를 둘러싼 갈등과 음모 등이었는데 괴기한 상상력이 더 많이 들어갔다. 작가 후기를 보면 이 작품이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린 소설인지, 또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준다. 기대와 다르다고 하지만 한 가지 변함없는 것은 잘 읽힌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말 일제의 배가 미군 폭격기에 의해 침몰한다. 가짜 병원선으로 위장한 731부대 병원이다. 한국의 서해는 일제가 침탈한 수많은 금괴와 유물 등을 일본으로 가지고 가는 도중에 침몰한 배들이 있는 곳이다. 실제 도자기 등을 실은 배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런 배를 찾기 위한 사람들이 상당히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몇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언론을 통해 나온 적이 있다. 이런 배를 찾는 사람들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 있고, 가끔 영화로도 나온다.

 

최순석은 깊은 바다 키조개를 채취하는 재래식 잠수부다. 채취 후 집으로 돌아가는 중 해경 배 위에서 울부짓는 여자를 발견한다. 이윤정이다. 침몰한 배에서 아빠 시체를 찾아달라고 요청한다. 해경은 찾다가 포기한 상태인데 순석은 그녀의 애절함에 넘어간다. 다행히 판돌의 도움으로 윤정의 아버지 시체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작은 에피소드가 생기지만 말이다. 뭍으로 돌아온 그에게 최동곤에게서 보물선을 찾은 것 같다는 문자 한 통이 온다. 다음 날 최동곤의 집에 갔는데 그는 시체가 되어 있다. 다잉 메세지가 피로 써져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를 공격한 후 달아났다. 집은 불탔다. 최초 발견자이자 용의자로 며칠 고생한다.

 

최동곤의 장례식에서 평생을 일본 침몰선 초잔마루를 찾아다닌 이도형을 만난다. 돈을 벌면 그는 이 보물선을 찾아다녔다. 순석은 그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깨닫는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그 숫자가 의미하는 곳으로 간다. 최동곤이 찾은 보물선을 발견한다. 배를 발견했다고 그 보물이 고스란히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 일에는 돈이 들어간다. 이도형과 함께 인양하기로 한다. 마린보이호란 배가 구해지고 사람들도 하나둘씩 모여든다. 그 중에는 최동곤의 전처도 있고, 약사인 이윤정도 있다. 이들은 순석이 표시한 곳으로 간다. 위치를 표시했다고 해도 서해 바다는 인양이 쉽지 않다. 세월호나 천안함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조류나 뻘 등이 이것을 어렵고 힘들게 만든다.

 

정확한 위치를 알고 도구가 있다면 힘든 환경이라고 해도 시간문제일 뿐이다. 순석 등의 잠수부는 초잔마루호의 내부에서 수상한 항아리와 백금괴로 추정되는 것을 찾아낸다. 만약 이것이 백금괴가 맞다면 금괴 하나에 13억 원의 가치가 있다. 이들은 신났다. 그런데 갑자기 해적이 배에 올라탄다. 어디에서 나타났지? 백금괴를 발견한 것은 또 어떻게 알았지? 총으로 무장한 이들은 더 많은 금괴를 인양하라고 말한다. 본보기로 항해사를 죽인다. 해적에 대항해 반격을 시도해보려고 하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다 이 백금괴가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젠 진짜 금괴를 찾아내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해적과 보물선 이야기가 어느 순간 배의 조난과 엮이면서 731부대의 수상한 항아리로 옮겨간다. 항아리 속에서 발견된 문서 한 장은 이 배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하지만 흐릿하고 일어 전공자도 없어 번역이 쉽지 않다. 이 문서는 이윤정이 번역하는데 초잔마루의 항해일지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수상한 항아리에서 나온 기이한 물질 등은 왠지 모르게 으스스하다. 후반부로 넘어가면 조난 이후 배에서 벌어지는 수상한 사건들의 사실과 연결된다. 기대한 것과 너무 다른 설정과 전개지만 가장 빠르게 읽은 부분도 바로 이 부분들이다. 개인적으로 최동곤의 죽음과 보물선 찾기가 더 엮이고 꼬이면서 미스터리한 상황이 일어나고 긴장감을 불어넣기 기대했는데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갔다. 순석과 윤정의 행동과 심리 표현도 왠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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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온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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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놓고 한참 뜸을 들였다. 밀린 책들이 너무 많아 손에 들었다 놓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러다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 읽자고 생각했다. 조금씩 며칠 동안 읽었는데 나의 예상을 뒤집는 이야기들이 계속 흘러나왔다. 나의 선입견이 만들어낸 예상이기에 나 자신을 잠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눈시울을 붉히면서 눈물을 참아야만 했다. 공공장소이다 보니 더욱 그렇다. 이전에 이 작가의 소설을 열심히 읽은 적이 있는데 다시 그 기억을 환기시켰다. 화려함보다 섬세함이 돋보이는 작가란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한 명은 사토코이고, 다른 한 명은 히카리다. 사토코는 히카리가 중학생 때 출산한 아이 아사토를 입양했다. 나의 첫 예상을 벗어난 부분은 사토코 부부가 아이의 입양을 아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다는 것이다. 나중에 히카리가 입양 사실을 주변에 알리겠다고 협박할 때 이 사실이 드러난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우리, 아니 나의 선입견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달았다. 여섯 살 아이에게 입양 사실을 알렸다는 것도 대단하다. 입양을 주선한 단체에서 이런 일을 권장했다는 부분도 놀랍다.


유치원에서 정글짐을 하던 아이 한 명이 아사토가 밀어서 떨어졌다고 말한다. 유치원에 불려가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하지만 미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아사토는 밀지 않았다고 말한다. 떨어져 다친 친구는 아사토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제일 친한 친구 소라다. 소라 엄마는 병원비는 유치원에서 나오니 교통비만 받겠다고 말한다. 사토코는 아들이 한 행동이 아니라면서 거절한다. 진실의 문제가 어른들의 갈등으로 번진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것은 사토코의 절제다. 돈으로 소라 엄마의 갈등을 풀 수 있지만 아이의 말을 믿는다. 의심의 순간조차도 그 말을 내뱉지 않는다. 정말 쉽지 않는 일이다.


사토코 부부가 어떻게 입양을 결정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보여줄 때 현실이 앞으로 튀어 나온다.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한 직장 동료의 반응이나 두 집안의 반대 등도 우리가 예측 가능한 일반적 반응이다. 이 부부가 입양을 하게 된 이유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고, 포기의 순간에 본 한 방송 프로그램 덕분이다. 입양과 육아에 대한 부분은 실제 작가가 취재한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자극적인 뉴스 등에 의해 알게 모르게 우린 뒤틀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토코 부부에게 입양은 축복이고 행운이고 행복이다.


아사토의 친모인 히카리의 삶을 보여주는 후반부는 다른 모습의 가족을 보여준다. 남자 친구를 사귀고 점점 진도를 나가면서 둘은 성교를 하게 된다. 피임의 중요성을 충분히 깨닫지 못한 이들에게 임신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부모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중절 수술이 불가능한 개월 수다. 히카리의 부모는 둘 다 선생인데 아닌 척하면서 딸들의 사생활을 엿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놓친다. 자신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만 보기 때문이다. 히카리가 원하는 중학교에 가지 못한 것도 거짓말로 주변에 말하지 않았던가. 딸의 임신보다 그들에게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자신들의 입장이 더 중요하다. 히카리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가족이란 노력해서 쌓아 올리는 것”이고, “가족은 아무리 핏줄로 이어졌다 한들 오만하게 굴어서는 쌓아 올릴 수 없는 관계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히카리 가족과 사토코 가족이 대비되는 부분이다. 가족과의 갈등은 히카리를 집에 머물지 못하게 한다. 가출한다. 이후 삶을 보면 열심히 산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삶이란 열심히 산다고 잘 되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그녀의 협박과 몰락 과정을 보면서 예상한 현실은 또 한 번 여지없이 틀렸다. 읽으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새로운 가족의 탄생과 희망을 암시한다. 혈연 중심 가족을 벗어난 이들에게 아침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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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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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애플>로 처음 만난 작가다. 혼란스럽지만 대단하면서 뭐지라는 느낌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이후 이 작가의 작품을 한두 권 더 사놓았는데 왠지 모르게 제목 때문에 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단편집이 나왔다. 이사라는 누구나 한 번 이상은 경험한 일을 소재로 다루었다. 개인 이사, 가족 이사, 직장의 이사 등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도시 괴담과 엮어 풀어내었다. 읽으면서 서늘한 기분이 들었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놀라기도 했다. 그러다 반복해서 눈에 들어오는 이름도 있었다. ‘뭐지?’ 이 의문이 풀린 것은 <작품 해설>이란 단편(?)에서 풀린다.


각각 독립된 단편이지만 연결되는 작품도 있다. <문>, <상자>, <끈> 등이 그렇다. <문>은 자신이 사는 집이 연쇄살인범이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 이사를 결심한다. 마음에 드는 집이라고 생각하고 둘러보는데 몇 가지가 신경 쓰인다. 흰 벽에 나 있는 작은 구멍이다. 이렇게 이 집을 선택하지 않을 꼬투리를 잡아가는데 비상구를 발견한다. 문제는 이 비상구다. 열고 들어갔지만 나오지는 못한다. 휴대폰도 사용불가다. 그리고 관리인이 말했던 전철 사고가 꿈과 이어진다.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고, 돈벌레가 나오고, 의미심장한 마무리로 상상력을 자극한다.


<수납장>은 교묘한 서술로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다시 앞장을 확인하게 된다.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의 엄마, 아이가 그린 존재하지 않는 아빠의 그림, 이사 전날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짐 정리 등이 엮이고 꼬인다. 그리고 조용히 드러나는 죽음의 흔적들. 섬세하게 읽어야 하는 단편이다. <책상>은 이삿짐센터에 취직한 한 주부의 시선을 따라간다. 이 이삿짐센터 왠지 수상하다. 사장 누나가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한 통을 급하게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만둘까 고민하는데 책상 서랍에 낀 종이 한 장을 발견한다. 직장을 먼저 그만두고자 한 사람의 편지다. 마지막 장에서 반전이 펼쳐지는데 서늘하면서도 코믹하다.


<상자>는 직장 이사를 다룬다. 자신이 표기한 짐들은 오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짐만 자기 앞에 쌓인다. 유미에는 계약직 여성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정직원의 갑질이 여기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신입들이 계약직 아줌마들에게 찍히면 엄청 고생한다. 이 사내 왕따를 기반으로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이끌어낸다. 이때 한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벽>은 계약직 프로그래머들의 이야기다. 하야토가 어린 시절 겪었던 가정 폭력의 악몽을 꾼다. 잠을 깨기 위해 흡연실에 가서 다른 입사 동기 기요시를 만난다. 기요시는 자신이 사는 집에 상당히 만족한다. 그런데 옆집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온 후 소음이 생긴다. 가정 폭력이 벌어지는 것 같다. 신고한다. 그리고 하야토의 고백과 함께 예상 가능한 일이 벌어진다.


<끈>은 호러 게시판으로 시작한다. 사야카는 이 게시판을 즐겨본다. 자신에게 무서운 일이 생기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아주 좋아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중단된 뒤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데 <상자>와 이어진다. 뭐지? 그녀는 이사를 자주 한다 한 집에 오래 살지 못하는 성격이다. 이번 집도 이전 집 계약 만기로 이사왔다. 그런데 이 집 왠지 낯익다. 그녀의 취미 중 하나가 거리뷰를 보는 것인데 <문>의 한 장면이 그곳에 등장한다. 비상구 밑에 뭔가 끈 같은 것이 보인다. <문>의 마지막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이 집은 호러 게시판의 이야기에 등장한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서늘하고 단편들을 읽으면서 가진 의문들이 한 번에 해결되는 단편이 바로 <작품 해설>이다. 작가는 이 해설부터 읽어서 다행이라고 말하지만 읽으면 재미가 반감된다. 이 단편은 앞에 나온 단편들에 담겨 있지 않은 이야기들의 해설이자 첨부 설명이다. 대충 설명한 연쇄살인범이나 의심 가득한 상황에 대한 분명한 설명을 담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가 놓친 것들을 하나씩 복기한다. 그러다 마지막 문장에서 다시 한 번 ‘뭐지?’를 내뱉는다. 어둡고 서늘하고 끈적거리고 유쾌하지 않지만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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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레터
이와이 슌지 지음, 문승준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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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슌지의 영화는 몇 편 봤지만 소설은 처음 읽었다. 그의 영화 대표작 중 <러브레터>는 “오겡끼데스까”란 대사로 유명하다. 나카야마 미호가 눈밭에서 이 대사를 외치는 장면은 지금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도 많은 패러디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말해 <러브레터>를 그 당시 불법비디오로 봤는데 화질도 좋지 않고 나의 감성과도 맞지 않았다. 아마 내가 기대한 것과 다른 내용이고, 졸면서 봤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후 그의 소설이 출간된 후 그의 글에 대한 좋은 평가를 봤다. 왠지 모르게 그의 소설에 손이 나가질 않았다. 절판본도 많다. 샀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멍청했다.


이 소설도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한 번 보고 싶다. 내가 좋아했던 마츠 다카코가 여주인공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4월 이야기> 속 그녀 이미지와 어떤 변화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아마 1인2역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토사카가 평생 동안 잊지 못하고 있는 미사키와 그 여동생 유리 역으로 말이다. 학창 시절은 다른 배우가 맡았는데 솔직히 누군지 모르겠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보지 않은지 몇 년 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굉장히 정적인 느낌이 영상으로 옮겨질 때는 어떤 느낌일지도 궁금하다.


“네가 죽은 건 작년 7월 29일이었다.”란 첫 문장과 이 사실을 알게 된 8월 23일이란 문장으로 시작한다. 3주가 지나는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작가는 소설로 썼다. 24년 동안 잊지 못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동창회에 가서 그녀의 여동생을 만난 다음 일어난 일들이다. 오토사카의 시선이 한 축을 맡고, 유리가 다른 한 축을 맡는다. 언니의 죽음을 알리러 갔다가 오해한 선배들 때문에 미사키인 척한다. 오토사카는 첫눈에 유리임을 안다. 속이고, 속는 척하는 사이 오해가 끼어든다. 오토사카가 미사키에게 보낸 문자를 본 유리 남편의 질투로 휴대폰이 깨진다. 이후 유리는 손 편지로 그에게 자신의 일을 적어 보낸다. 처음에는 이 편지 내용을 보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유리의 시선으로 넘어가면서 사실임이 드러났다.


오토사카는 소설가다. 딱 한 편을 내었을 뿐이지만. 그 소설의 제목은 <미사키>다. 작가지만 소설을 출간해서 돈을 벌지 않고 비둘기 관련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다른 여자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을 텐데 그는 첫사랑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소설가가 된 이유도 그녀가 소설가란 단어를 말했기 때문이다. 그의 첫 소설도 그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다.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면 그는 소설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가 첫 소설을 낸 후 소설을 출간하지 못한 이유다. 그가 처음에는 유리로부터, 나중에는 미사키와 유리의 딸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이 편지들은 현재와 과거의 기억을 이어준다. 말이 아닌 글로 감정을 표현할 때 감정은 절제된다.


소설은 가독성이 좋다. 분량도 많지 않다. 하지만 정적이고, 감정의 표현이 격렬할 때조차도 왠지 모르게 고요하게 다가온다. 일본 문화 속에서 자주 보게 되는 억눌린 감정이 글 속에 표현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기억과 추억에 묶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그를 보면서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는 것은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그 감정을 머릿속에서 이해한다고 생각해도 말이다. 유리가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그대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납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일들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들고, 조금은 정적인 분위기를 활기차게 끌고 나간다. 아마 이 부분이 없었다면 상당히 처진 분위기의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미사키가 그를 떠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녀가 남편의 학대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이유도. 그 남편이 어떤 매력이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영화를 보면 알게 될까? 그녀의 죽음과 자신의 아이들에게 남긴 유언장은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일지도 모른다. 간결하고 섬세한 묘사를 읽으면서 일본 영화 감독들 중에는 좋은 글을 쓰는 소설가도 상당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자신의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드니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놓고 묵혀두고 있는 이와이 슌지의 소설을 꺼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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