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1
제니 한 지음, 이지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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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하이틴 로맨스 소설이다. 이런 장르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데 넷플릭스에 나왔다는 소식에 혹해 선택했다. 거기에 주인공 가족이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하니 살짝 더 관심이 갔다. 예고편을 조금 보니 아주 재밌다. 여주인공 라라 진 송은 한국계 엄마는 사고로 죽었고, 아빠와 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산다. 이 가족에게는 가족 같은 옆집 오빠가 있다. 조시다. 조시와 언니는 서로 사귀었는데 언니가 스코틀랜드 대학교로 가면서 헤어졌다. 조시가 헤어지자는 소식에 울고불고하지만 언니의 결심은 굳건해 보인다. 이때 그녀는 자신이 먼저 조시 오빠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짝사랑했던 남자들에게 자신만이 읽기 위한 편지를 썼다는 사실도.


누군가를 짝사랑하면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손으로 쓰던지, 이메일로 쓰던지, 아니면 마음속으로 그 감정들을 담아둔다. 이 감정의 편지는 혼자만의 것이고, 절대 상대편에게 갈 일이 없는 편지다. 그런데 이 편지가 남자들에게 발송되었다. 다섯 명의 남자 모두에게 말이다.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학교 최고의 인기인이자 미남인 피터 카빈스키가 편지를 들고 왔기 때문이다. 편지 속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 편지가 발송된 것을 안 라라 진은 집으로 달려간다. 모두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피터도 문제지만 조시 오빠는 더 문제다. 그는 언니의 전남자친구이지 않는가. 조시가 편지를 들고 다가온다. 이 편지에 담긴 감정이 혼란스러워 묻기 위해서다. 라라 진의 언니 마고가 떠나 가슴 아픈 그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불러온다.


자신이 조시 오빠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는 사실을 결코 알리고 싶지 않은 라라 진은 피터에게 갑자기 키스를 한다. 둘이 사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사실 피터는 그녀의 첫 키스 상대이기도 하다. 어릴 때이지만 피터의 전 여친 제너비브와 옆집에 살면서 친했던 적도 있다. 제너비브는 학교 최고의 미녀이기도 하고, 피터를 꽉 쥐고 있다. 피터는 제너비브에게 차인 상태다. 피터는 제너비브의 질투심을 불러오고, 라라 진은 조시 오빠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고 알려주기 위해 둘은 계약 연애를 하기로 계획한다. 당연히 이 알콩달콩한 계약 연애는 서서히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에게 끌리고. 원래 목적을 살짝 어긋난 수준으로 나아간다. 물론 이 과정에 온갖 장애물이 놓여 있다.


정말 잘 읽힌다. 미국 고등학생들의 삶 일부를 살짝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에는 인종 차별적 요소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작가 자신도 한국계이고, 라라 진도 한국계 미국인이다 보니 한국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보쌈을 만드는 장면을 보면 이상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쌈이 아니다. 세상에 오븐에 보쌈을 굽다니. 목살을 소금에 절인다고. 이 짠 음식을 야채에 싸먹는다고 하지만 짜다. 가끔 한국음식에 대한 낯선 요리법을 만날 때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익숙한 한국 과자들이 나왔을 때는 괜히 반가웠다. 이들이 한국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미국에 사는 후배가 떠올랐다. 잘 알지도 못하는 그의 두 딸이 왠지 라라 진과 겹쳐보인다.


유쾌한 소설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예전에 한창 보았던 미국 하이틴 드라마의 연장선에 있다. 라라 진의 계약 연애는 그녀의 성장을 담고 있다. 최고의 인기남이자 허세 가득한 피터와 사귀는 척하면서 자신의 경험치를 조금씩 높인다. 1편만 나왔다면 다음에 이 둘이 어떻게 될지 엄청 궁금했지만 다행스럽게 3권까지 한꺼번에 나왔다. 2권에서 이 둘이 어떤 상황인지 안다. 안다고 해서 이 둘의 연애가 어떤 과정과 소동을 불러올 지까지는 알 수 없다. 중늙은이가 이들의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지만 그 나이 때의 감정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157센티미터(사실은 156에 더 가깝다) 라라 진의 성장이자 연애를 다루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늘 응원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편지 발송의 미스터리가 풀리는데 솔직히 예상한 부분이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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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신
이동원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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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로 세계문학상 수상한 후 소설을 계속 내었지만 나는 몰랐다. 어쩌면 그 순간은 알고 있었지만 그냥 지나갔을지 모른다. 엄청나게 강한 인상을 남긴 작가이거나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라면, 혹은 외국작가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면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첫 작품이 아니라면 이 작가의 출간 이력이 더 빠르게 다가온다. 이동원도 마찬가지다. 세계문학상 수상자란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가장 강하게 나를 당긴 것은 책 소개에 나온 한 문장이다. “넌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건 신이 아니라 무신론자야.” 자칭 무신론자라고 말하는 나를 흔들기에 충분한 문장이다.


강한 비상을 준비하던 아나운서 선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바로 다음 장은 이 선재의 몰락 후 모습이다. 누나가 찾아와 조카 딸 수아의 실종을 말한다. 정직한 기자 선재를 존경했던 조카 수아의 실종은 오보 방송 이후 몰락한 선재를 다시 밖으로 이끈다. 해커 출신 성원을 찾아가 수아의 노트북 비밀번호를 풀어달라고 한다. 선재는 음주운전 사고로, 성원은 해킹으로 교육을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열린 노트북에 깔린 어둠의 메신저는 사이비종교단체가 보낸 ‘정화의 날’ 문자가 떠있다. 하지만 이 메신저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그 기록이 사라진다. 선재는 이 단서를 가지고 새예언의 정체를 폭로하는 단체 에메트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30년 전 고등학교 시절 친구 동명을 만난다.


동명은 자신이 새예언의 초대 교주였다고 말한다. 자신이 신의 말을 전달했고, 이것이 교세를 불러왔다고 말한다. 일본 선교 중에 이 능력으로 세를 불렸지만 잠시 능력이 사라지면서 세는 꺼졌었다. 힘들어하는 여자를 구하면서 이 능력을 사용했고, 그녀의 남편이 되어 목사였던 장인을 도우면서 그 능력을 쓴 것이 목사 등의 탐욕을 불러왔다. 어느 정도 단계를 넘어간 후에는 이 능력이 사라졌지만 교세는 더 불어났다. 거짓 믿음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떠났고, 인간의 탐욕으로 탑을 쌓은 종교는 새로운 인물을 영입해 더욱 거대해졌다. 기존 교회에 가서 친해진 후 신도들을 새예언으로 이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천지의 추수꾼이 떠올랐다.


선재의 오보는 유력한 대권 후보 류병두의 불법 리베이트 스캔들이다. 가장 강력한 대권 후보가 이 스캔들로 죽었고, 비서관이 오보의 원인으로 선재를 지목하고 자살하면서 그는 처참하게 몰락했다. 선재는 수아를 찾아 새예언으로 갔는데 이 모든 과정이 그를 새예언으로 이끌기 위한 작업이었다. 새예언은 선재의 오보를 다시 바로잡을 수 있게 돕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왜 선재가 불명확한 화면에도 불구하고 오보를 내보냈는지, 그 과정에 어떤 정치적 연결고리가 있었는지 하나씩 풀어낸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작은 사실 하나를 왜곡하거나 사실 확인을 게을리한 대가를 이 소설을 적나라하게 다룬다. 물론 이것은 그 인물이 자신의 잘못을 직시하고 반성하고 고치려고 할 때 가능하다.


새예언의 전도자는 선재가 눈물을 흘리고, 신념이 흔들리게 만드는 에피소드를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정보를 모아 신도를 모으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새예언의 교세가 커지면서 온갖 직업의 신도들이 모였다. 에메트를 테러한 신도들 중 일부는 교사다. 사회 각계 각층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말에 왜 사이비종교단체에 가입했을까 하는 물음은 큰 의미가 없다. 대형교회의 부패를 보면 그 답은 쉽게 나온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동명의 입을 통해 정통 교회와 이단을 구분한 내용이 강하게 와 닿았다. “정통 교회가 성경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대로 살지를 못해서 실패했다면 이단은 애초에 가르침 자체가 왜곡되어 있었다.” 왜곡된 가르침이 개인과 가정과 사회를 망가뜨린다고 할 때 고개를 끄덕였다.


보도기자 출신 선재와 사이비종교단체의 결합만 놓고 보면 사이비종교의 이면을 파헤치는 소설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작가는 이 사이비종교 단체가 권력을 탐하고, 내부 갈등이 발생하고, 정치인이 반격을 가하는 것까지 엮으면서 처음 예상한 전개를 벗어났다. 사이비종교를 다루면서 기성 종교의 문제점도 같이 파헤칠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스릴러 소설처럼 변했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쉽게 밝혀지고, 견고해 보였던 것이 깨어지면서 가독성은 높이고 재미있어졌지만 치밀하고 세밀한 구성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종교에 대해, 진실에 대해 묵직한 이야기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더욱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곳곳에 종교와 믿음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나와 어느 정도 이 아쉬움을 달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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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 관한 증명
이와이 게이야 지음, 김영현 옮김, 임다정 감수 / 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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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수학이 어려워지면서 관심을 끊었다. 그렇다고 수학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시험 위주의 풀이에 질렸고,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한 순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수학 전공자 같지만 고등학교 때 이야기다. 솔직히 머릿속으로 산수도 잘 못한다. 이런 내가 뛰어난 수학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등장하는 소설에 눈길을 주는 것은 어릴 때 좋아했던 과목 중 하나가 수학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수식으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그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왜 영화 등에서 수학자나 물리학자가 칠판 가득 암호 같은 수식을 적어 놓지 않는가. 이 소설도 그래서 선택했다.


수학자 두 명을 등장시켜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보여준다. 과거는 수학에 대한 천재적인 감각을 지닌 료지의 시점이고, 현재는 그와 같이 특례입학을 한 구마자와의 시점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몇 가지 수학 증명에 대한 이론이나 학자 이름은 대부분 모른다. 수학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세계 3대 수학 난제가 있다는 것 정도다. 그 중에서 하나가 증명되었다고 들었다. 이런 무지함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따라가는 데는 무리가 없다. 작가는 수식을 설명하기 보다 수학자들의 우정, 질투, 좌절, 열정, 바람 등을 멋진 묘사 속에 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는 자와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의 대립을 놓아두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료지는 온통 수학만 생각하면서 산다. 다른 과목은 다 성적이 별로지만 수학 하나만은 최고다. 이 재능을 고등학교 수학교사가 알아주면서 대학교수와 연락을 주고받는다. 논문 한 편을 쓰고 특례 입학했다. 이때 같이 구마자와와 사나가 동기로 들어왔다. 이 둘은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출신이다. 이 둘은 학교에서 수학 천재로 이름을 날렸을 테지만 료지와는 보는 세계가 다르다. 학창시절 담당교수의 지도 아래 료지가 이론 대부분을 쓰고 둘이 자료를 준비하면서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다. 그 분야에서 지금도 가장 많이 인용된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논문이다. 료지의 뛰어남은 그에게 조기졸업을 권유할 정도다. 그의 존재와 실력이 수학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뒤흔든다.


료지의 재능과 열정에 질투와 선망의 감정을 가진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그를 대학에 데리고 온 고누마이고, 다른 한 명은 친구인 구마자와다. 고누마는 료지에 자극을 받아 교수직을 박차고 나가 국립수리과학연구소로 간다. 구마자와가 료지의 공책을 6년만에 다시 보면서 그 공책을 가지고 고누마에게 간다. 이 책의 도입부다. 콜라츠 추측 증명을 쓴 공책이다. 이 분야는 구마자와도 고누마도 전공이 아니다. 구마자와는 대학에서 부교수를 역임하는 중이다. 현재의 시간은 이 공책과 그 증명을 둘러싼 구마자와의 아쉬움, 고뇌, 열정 등을 보여준다. 그 사이 사이에 료지와의 만남과 그에 대해 가졌던 감정들이 파편처럼 드러난다. 결코 료지를 뛰어넘을 수 없어 다른 분야를 전공할 수밖에 없었고, 그가 선택한 교수의 영향 때문에, 현실의 무게 때문에, 그 순간의 뒤틀린 감정 때문에 가졌던 감정들이다. 그래서 그가 살짝 료지가 발을 내딛은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 수식들을 풀어낼 때 그 열정과 희열에 감동한다.


료지의 천재성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볼 수도 없다. 고누마 교수가 떠난 후 온 교수가 논문의 작은 바늘구멍을 옳음으로 지적하고, 자신과 함께 수학을 연구했던 사람들의 떠남으로 느낀 외로움이 조급증과 술로 그를 잠식한다. 술은 그에게 외로움을 잊고 자신의 이론을 더 잘 보게 만들지만 몸은 급격하게 망가진다. 그가 이전의 교수와 친구에게 작은 도움을 손길을 내밀지만 그들은 그의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구마자와가 자신이 료지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이면에는 마지막 기회도 그가 날렸기 때문이다. 수학 밖에 모르는 삶을 산 료지이기에 현실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쉽게 망가질 수밖에 없다. 수학의 난제를 풀다가 미친 사람들 이야기가 이전에도 있었지 않은가.


이 글을 쓰면서 국제수학올림피아드를 검색하니 한국의 화려한 수상 이력들이 나온다. 하지만 누군가의 글처럼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은 한 명도 타지 못했다. 한국의 뛰어난 수학자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런 수학 천재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늘 드는 의문이다. 물론 료지의 천재성이 화려하게 포장된 부분이 있겠지만 그 천재를 바라보고 천천히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수학자들도 있다. 이 소설은 이 두 종류의 수학자를 나란히 보여주면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교묘하게 오고 간다. 머릿속에 떠오른 수식을 풀어내기 위해 밤을 세우는 그들의 열정을 보면서 한때 내가 다른 것에 가졌던 열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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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아르테 미스터리 19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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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작가가 쓴 첫 공포 소설이다. 공포 소설을 즐겨 읽지 않지만 기회가 생기면 읽는다. 보통 예상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읽어가면서 그 서늘함이 가중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이야기 속에 작가 자신을 등장시키고, 실제 출판사를 배경으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풀어내어 현실감을 높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공포 소설의 구성을 따라가지 않아 조금 낯설지만 미스터리 작가의 구성력으로 마지막에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보여주면서 이전 상황을 돌아보게 한다. 현실과 상상력이 잘 결합했고, 괴담의 서늘함도 잃지 않았다.  


여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연작이다. 각각 독립된 이야기이지만 등장인물들이 겹치고, 앞 이야기 덕분에 듣게 된 것을 좇아 경험하고 기록하는 형식이다. 다섯 편은 잡지 <소설 신초>에 발표했다고 말하는데 처음에는 이 말을 믿었지만 살짝 의심이 들면서 확인의 필요성을 느낀다. 책 마지막 장에 <소설 신초>에 발표 연월이 나와 무작정 믿었던 것이다. 이런 의심을 하게 된 데는 마지막 단편 <금기>의 역할이 컸다. 각각의 단편 속에서도 추리를 풀어놓았지만 <금기>는 고전 미스터리의 마지막 반전과 같은 역할을 한다. 자신이 듣고 경험한 괴담들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풀어낸다. 반전 같은 추리의 서늘함은 공포 소설의 전형적인 문장과도 이어진다.  ‘오컬트 미스터리 소설’이란 단어가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얼룩>에서 2016년 5월 26일 <소설 신초>에서 단편소설 청탁 메일을 받았다는 내용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가구라자카 괴담 특집 기획이다. 8년 전 우연히 친구에 들은 괴담이 머릿속에 떠올라 그것을 글로 썼다. 점쟁이의 말을 듣고 사귀던 남친과 헤어진 쓰노다 씨에 대한 이야기다. 남자의 집착이 부담되어 연락을 받지 않았는데 사고로 죽었다. 이때부터 괴이한 일이 생긴다. 쓰노다 씨가 작업한 포스터에 이상한 얼룩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글자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나오코와 그 점쟁이를 소개한 친구의 죽음이다. 작가는 점쟁이나 쓰노다 씨의 일을 과학적인 것으로 살짝 분석하지만 정밀하지는 않다. 이 단편 발표 후 괴이 현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저주>는 자신에게 씐 저주가 가족에게 번지지 않게 액막이를 부탁하는 여자 이야기다. 안전 운전하는 남편의 기묘한 충돌 사고, 아들의 몸에 난 상처. 신사에 있는 고마이누상의 꼬리를 밟아 저주를 받았다는 그녀의 절박함은 단지 이와 관련된 글을 썼다는 이유로 작가의 지인 기미코가 긴 압박을 받는다. 남편과 아들의 사건은 이 단편집에서 놀라운 직관력과 통찰력을 보여주는 사카키가 쉽게 풀어낸다. 하지만 괴담은 그 이후에도 이어진다. <망언>은 사카키 씨가 글로 쓰지 않고 남겨둔 괴담이다. 운 좋게 자신들이 원하는 구조와 위치의 집을 싸게 사서 이사한 부부가 옆집 사람의 말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단편집의 제목도 여기서 나왔다. 그녀가 길에서 본 모습의 기이한 설명은 사건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악몽>은 네일숍에서 일하는 도모야 씨가 시댁에서 살게 되면서 꾸는 꿈과 연결된다. 이 이야기 속 설명이 이 책 표지의 그림과 이어진다. 도모야 씨가 꾼 꿈을 시어머니도 이전에 꾼 적이 있었다. 이 단편에서 진나이 씨가 등장해 이 집의 문제점을 말하고 이사를 추천한다. 시세보다 싸게 집을 팔려고 내놓았는데 사려고 한 친척들을 찍은 사진에 이상한 모습이 보인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불길한 일이다. 거래는 중단되고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트릭과 추론 속에 진나이 씨가 작가에게 한 질책이 강하게 와 닿는다. <인연>은 싸게 집을 구한 대학생이 집에서 경험한 괴이한 일들을 다룬다. 옆집에서는 어린 딸이 오래 전에 죽은 가족이 살고 있다. 이 단편에서도 추리와 괴담이 오고 간다. 단순한 괴담의 전달이 아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서 현실감을 더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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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날 정해연의 날 3부작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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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하고 먹먹한 소설이다. 낯익은 이름에 비해 정해연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밝은 느낌의 소설을 더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에는 무거운 이야기다. 구원이란 단어를 보면서 처음에는 가벼운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좀더 깊이 생각하면 이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 상황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모가 아이를 잃는다는 것은 그의 삶과 세계가 파괴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실종된 지 3년이 지난 후 강에서 발견된 아이의 유골에서 시작한다. 이 유골을 발견하는 때는 남자가 프로포즈를 하려는 순간이다.


선준에게 경찰이 전화를 한다. 발견된 유골에 걸려 있던 목걸이 때문이다. 아내 예원이 만든 유일한 물건이기에 이 유골이 자신들의 아이인 선우일 수 있다. 유전자 검사를 해야 정확한 답을 알 수 있다. 미친 듯이 선우를 찾는 예원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그 순간 예원은 이 실종 사건 담당 형사의 차를 들이박는다. 어느 순간 흐지부지된 수사에 화가 났다. 경찰서에서 악다구니를 써는 그녀를 보면서 완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형사의 입장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난 후다. 양 형사의 한 마디가 정말 가슴을 아리게 한다.


보안회사 직원인 선준은 예원을 데리고 경찰서에 나온다. 그리고 정신 병원에 입원시킨다. 지난 3년 동안 이 부부는 미친 듯이 선우를 찾아다녔다. 정신 병원에서도 그녀가 붙인 전단지를 뗀 환자 한 명을 때려 진정제 주사를 맞았다. 어느 순간 그녀의 집착은 광기처럼 보였다. 이 둘 사이를 보면 일상이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안다. 나중에 일상을 행복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이 일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병원의 한 아이가 부른 노래에서 시작한다. 선우가 부르던 개사곡이다. 이 아이가 자폐증상이 있는 로운이다. 로운의 엄마는 열여섯에 아이를 낳았다. 며칠 전에 읽었던 소설 <보통의 노을>과 완전히 다른 전개다. 예원은 로운을 데리고 병원에서 탈출한다. 문제가 커진다. 유괴다.


로운이 부른 노래와 선우를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을 가지기 충분하다. 로운의 엄마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입금을 요청하는 통장번호만 전달한다. 5천만 원이란 거액이다. 이미 가정경제가 박살난 이들에게 너무 큰 돈이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예원은 아파트 밖으로 몸을 던진다. 다행히 낮은 층수와 다른 변수로 크게 다치지 않는다. 읽는 내내 이 모습을 보고 답답했다. 작은 희망의 불씨에 모든 것을 걸기에는 유골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병원장에게 경찰 신고를 유예해달라고 요청한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로운과 함께 아이를 찾으러 간다. 쉽지 않은 길이다. 경찰에 신고하면 바로 유괴범으로 잡힐 수 있다. 하지만 가지 않을 수 없다.


읽으면서 두 가지 가정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양 형사에게 로운이 엄마 주희에게 받은 통장 주인을 확인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선우의 실종 이후 공중전화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다. 하지만 이 가정보다 왜 이들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형사는 격무에 시달리고 누군가의 통장번호를 열람하는 것은 개인정보법 위반이다. 또 얼마나 많은 사기들을 마주해야 했던가. 말없는 전화도 마찬가지다. 두려움과 공포가 말문을 막았다. 이 모든 것은 모두 결과론이다. 이 이전으로 돌아가면 왜 불꽃놀이를 갔을까? 남편의 사고가 업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하는 원망과 아쉬움이 계속 터져나온다. 불안하고 불편하다.


선준이 울면서 예원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때 이 부부는 다시 하나가 된다. 예원이 미친듯이 선우를 찾아다닐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선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준은 자신이 선우 찾는 것을 포기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두려워한다. 로운이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해를 하고, 이런 아들을 돌보는 것이 버거워 주희는 아이를 기도원과 병원에 맡겼다. 선우의 실종도 육아의 어려움에서 비롯한 작은 실수 탓이다. 잠시 놓은 손이 실종으로 이어졌다. 작가가 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 것도 바로 진심과 용기가 있다면 다시 잡을 수 있다고 한 말 덕분이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부모들의 액션이나 어렵고 힘든 과정을 다룬 스릴러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아쉬울지 모르지만 상실과 용서와 일상의 행복을 돌아볼 사람에겐 짧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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