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S. K. 본 지음, 민지현 옮김 / 책세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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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SF 스릴러란 설명에 혹했다. <마션>을 아직 읽지도, 영화를 보지도 않았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알고 있다. <마션>같은 생존 스릴러란 소개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질지 상상하게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나의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약간은 아쉬움을 남겼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할리우드에서 각본가로 일한 경력이 이 소설 속에 녹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고립되고 멀고 홀로 남은 승무원의 힘겨운 귀환을 다루었을 것이란 기대를 어느 정도는 충족시키지만 어느 순간 분위기가 바뀌면서 전체 이야기가 흔히 보는 할리우드 공식처럼 흘러갔다. 덕분에 가독성이나 재미는 있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욕심이 너무 과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로 우주 탐사선 호킹 2호가 떠났다. 유로파에서 과학 실험을 진행하고, 그 자원을 채취하기 위한 우주선이다. 이 우주선의 선장은 메리엄 녹스다. 그녀는 흑인에 여성이지만 탁월한 업적으로 심우주 탐사선의 선장이 되었다. 소설의 시작은 메이의 어릴 때 사고 기억이다. 자신의 수영 실력을 뽐내다 연못에서 허우적거렸던 기억이다. 우주선의 흔들림에 그녀는 깨어난다. 현실로 돌아왔다. 다른 승무원들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주선의 인공지능이 그녀를 돕는다. 메이는 인공지능에게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붙인다. 이브다. 만능일 것 같은 인공지능은 충분한 자료가 없고, 메이는 역기억상실에 걸렸다. 자신이 왜 병실에 누워 있었고, 무슨 사고가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우주선의 상태도 나쁘다. 살아 돌아가기 위해서는 나사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기억상실과 우주공간에서의 생존이란 두 가지 키워드에, 그녀의 과거사가 끼어들고, 하나의 음모가 그 바탕을 이룬다. 폭주하는 우주선을 안정화시켜야 하고, 이 우주선을 지구로 돌려야 한다. 이렇게 적으면 쉬워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춥고 망막한 우주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주선에 난 작은 구멍 하나로 사람이 빨려 들어가면 죽는다. 멈춘 상태라면 이 구멍이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주선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고 있다. 다른 승무원들도 찾아야 한다. 우주선이 완전하게 기능한다면 이브가 전체를 스캔해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보고할 수 있지만 이브의 기능도 제한적이다. 어렵고 아주 힘든 상황이다.


이브가 나사에 그녀의 생존과 우주선의 상태를 알린다. 우주선 설계자 라지와 메이의 남편 스티븐 등이 이 사실을 알고 그녀의 귀환을 돕고자 한다.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주선에 이상이 생긴다. 쉽게 생각하면 인공지능의 해킹으로 문제를 만드는 것이지만 이것은 정답이 아니다. 이 과정에 메이는 거의 죽음 직전까지 도달한다. 나사의 직원들은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이때부터 스티븐의 분량이 늘어난다. 메이와 스티븐이 어떻게 만났고, 둘이 어떤 식으로 사랑을 쌓았는지, 그들 사이에 이혼 이야기가 오고 간 이유 등이 과거와 현재의 뒤섞인 구성 속에서 하나씩 펼쳐진다. 긴박함에 양념처럼 끼어든 로맨스는 뒤로 가면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과 이곳에서의 생존만 다루어도 결코 지루하지 않을 텐데 작가는 여기에 음모와 뒤틀린 욕망과 새로운 과학기술을 뒤섞었다. 현실적인 기술 문제는 뒤로 밀리고, 스릴러와 액션이 앞으로 튀어나온다. 이야기에 가속도는 붙지만 전체적인 구성이나 사실성 등은 조금씩 힘을 잃어간다. 너무 많이 욱여넣은 느낌이다. 기대한 바와 다른 전개다. 물론 이런 식의 전개가 더 대중적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본 장면들이다.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뒤섞고, 과거와 현재를 엮으면서 음모의 실체를 찾아낸다. 하지만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내가 놓친 것일까? 취향을 많이 탈 SF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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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어하우스 - 드론 택배 제국의 비밀 스토리콜렉터 92
롭 하트 지음, 전행선 옮김 / 북로드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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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물품을 배송하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지금도 언론을 통해 아마존 등의 거대 기업들이 드론 택배 시도하고 있음을 보도하고 있다. 코로나 19 이후 한국의 각 가정은 마트보다 인터넷 배송으로 식품 등을 구입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가 점점 더 비대면 영업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소설은 이런 현실보다 더 나아가 지구 온난화, 엄청난 실업난, 대량 총기 사건 등으로 불안정해진 미래 세계의 한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는 클라우드란 대기업을 무대로 펼치는 SF 스릴러다. 가독성이 뛰어나고, 자신도 모르게 점점 바뀐 체제에 익숙해져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 최대의 판매 행사일이다. 이 날 대량 학살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사람들로 하여금 열린 광장으로 나가길 주저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생필품 등을 클라우드의 드론 택배로 구입한다. 클라우드는 점점 거대해지고, 클라우드의 지점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도시를 이룰 정도까지 커졌다. 높은 실업률은 안정적인 직장인 클라우드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향하게 만든다. 이 소설의 두 주인공 팩스턴과 지니아도 이렇게 입사 시험을 치른다. 입사 시험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가끔 시험에 떨어지는 사람이 생기고, 한 달 뒤나 되어야 재시험의 기회가 생긴다.


팩스턴은 퍼펙트에그란 제품을 발명해 시장에 내놓았던 기업의 CEO 출신이지만 클라우드의 가격 정책 때문에 망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특허를 받아 파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먹고 살기 위해 클라우드에 입사했다. 퍼텍트에그를 만들기 전 교도소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 이력이 그를 클라우드의 보안요원으로 일하게 한다. 그가 바란 것은 빨간 셔츠, 즉 배송 직원이었다. 보안요원으로 그에게 배당된 첫 임무는 클라우드 내부에 유통되는 마약의 거래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 일이 탐탁치 않지만 어느 순간 이 일에 점점 빠져들고, 자신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지니아는 산업스파이다. 본명이 아니다. 거액으로 고용되었는데 이 일은 장기 프로젝트다. 배송 일에 투입되었고, 그녀의 일을 보면 업무 강도와 이 클라우드가 어떻게 노동력을 착취하는지 잘 보여준다. 매력적인 그녀의 모습은 권력을 가진 나쁜 남자가 어떤 짓을 저지르는지, 그런 인물이 어떻게 클라우드 속에서 계속 일하는지 알려주는데 이 부분이 단순히 재미만 추구하는 오락소설이 아님을 알려준다. 최저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그들을 보면 저자의 후기를 무심코 보고 지나가기 쉽지 않다. 별 등급을 이용해 직원들을 평가하는데 아주 비인간적이다. 하지만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말한다. 최근 배달앱의 평점이 가게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기사를 봤기에 더 와 닿는다.


두 주인공이 교차하고, 클라우드의 창업자 대표 깁슨 웰스가 자신의 철학 등을 알린다. 깁슨은 암에 걸려 살 날이 1년도 남지 않았지만 그가 만들어낸 제국 클라우드는 국가의 권력을 넘어선 상태다. 국가 규제를 무력화시키고, 기업 이익 극대화를 위해 인력을 갈아 넣는다. 각 클라우드 지점의 보안 책임자들은 통계를 조작해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하게 다진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바로 이 부분이다. 마약 사건이 일어나고, 성 추행 등의 범죄가 벌어져도 조용히 사건을 무마하면서 밖으로 그 사건을 내보이지 않는다. 대외적인 통계 수치에는 아주 평화로운 곳이다. 권력에 대한 견제가 없는 곳이 어떻게 타락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흔한 할리우드 영화처럼 남녀 두 주인공은 연인 관계가 된다. 지니아가 팩스턴에게 접근한 것은 그가 보안요원이기 때문이다. 만남이 이어지고, 잠자리를 가지고, 감정이 교류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감정이 생긴다. 그리고 이 둘이 나눈 대화 속에서 순간적으로 통찰력이 생기고, 자신의 일을 이룰 단서를 발견한다. 지니아가 냉정하게 자신이 목표한 바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장면이 서늘한 감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팩스턴이 점점 클라우드를 대변할 때 답답해진다. 하지만 이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편하고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우리 말이다. 거대 기업이 한 국가의 권력을 넘볼 때, 기술의 발전에 사람들이 종속될 때, 깁슨이 딸에게 기업을 상속할 때, 이 모든 장면들이 결코 낯설지 않았다. <시녀 이야기>를 비롯한 몇 권의 소설에 대한 부분은 팩스턴의 심리적 변화와 더불어 강하게 경고성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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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자전거 여행 - 2022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 2022 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추천도서, 2021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에프 그래픽 컬렉션
라이언 앤드루스 지음, 조고은 옮김 / F(에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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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재미있게 읽고 있는 에프 그래픽 컬렉션 중 한 권이다. 단순히 표지의 그림만 보면 한 편의 성장 소설 같은 내용일 것 같은데 내용은 판타지 요소로 가득하다. 첫 장을 읽을 때만 해도 밤에 자전거를 타고 자신들만의 모험을 떠나는 소년들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일정 부분 이 모험은 사실이다. 이 소년들은 두 가지 규칙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보통 아이들이 가지는 허세와 포부를 잘 보여준다. 아무도 집에 돌아가 가지 말 것과 아무도 뒤돌아보지 말 것이란 규칙이다. 그런데 이 규칙이 처음 떠난 친구들이 한 명씩 떠나면서 깨어진다.


추분 축제가 열리는 밤, 아이들은 마을에서 강에 띄운 종이 등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이 무리와 뒤떨어져 너새니얼이란 아이가 따라오고 있다. 학교에서 이 아이와 친하게 지내면 쉽게 왕따당할 수 있어 벤은 무리에 껴주지 않았다. 보통 자전거를 타고 종이 등을 따라가다 멈춰 집으로 돌아가는 바위상도 지나간다. 하지만 불안감을 느낀 소년들은 한 명씩 집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아이가 떠난 곳은 다리다. 부모들이 건너지 말라고 경고했던 그 다리다. 이 다리를 건너야 종이 등이 가는 곳까지 갈 수 있다. 너세니얼이 다가와 말을 건내고 둘은 다시 모험을 시작한다. 밤의 어둠 속 다리 뒤편에 거대한 괴물 같은 형상이 서 있지만 아이들은 모른다.


다리를 건넌 그들이 처음 만난 것은 낚시꾼 곰이다. 정장을 차려 입은 진짜 곰이다. 곰이 말을 한다. 벤은 다가가길 주저하지만 너새니얼은 주저하지 않고 다가간다. 이 그래픽노블에서 새로운 모험을 향해 거침없이 발을 옮기는 아이는 너새니얼이다. 자신을 반기지 않지만 늦은 밤 자전거를 타고 벤 일행을 따라온 것도 그렇다. 앞으로 펼쳐질 모험에서 항상 먼저 다가가 곰과 대화를 하면서 함께 동행이 되는 것도, 낯선 곳에 발을 내딪는 것도 너새니얼이다. 이 친화력과 적극성은 벤이 가지지 못한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벤이 자신의 감정을 생각없이 내뱉는 실수를 저지르지만 이것은 누구에게나 흔히 있는 일이다. 다만 용기를 내어 사과하는 것은 흔치 않다.


아이들이 종이 등을 쫓은 것은 하나의 동요 때문이다. 동요에 대한 이야기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환상을 품고 있다. 종이 등이 강의 끝에 도착하면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된다는 이야기다. 곰은 물고기를 잡아가기 위해 여행을 왔다. 그의 아버지가 알려준 곳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졌지만 함께 간다. 밤의 안개가 이들로 하여금 길을 잘못 들게 한다. 높은 벽 앞에서 아이들은 멈추고, 곰은 절벽을 올라간다. 그러다 옆에 있는 물가를 너새니얼이 걸어 들어가면서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다. 호기심 왕성한 아이의 무모함으로 느껴질 정도지만 이 장르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새롭게 내딛는 한 발은 용기가 필요하다. 읽다 보면 내가 누구와 닮았는지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다.


너새니얼에 비교해 벤이 주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도 다른 친구에 비하면 상당히 모험심이 강하다. 모든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마지막으로 남고, 그 다리를 건넜다. 이런 용기가 너새니얼의 도전에 동참할 수 있는 힘이었다. 낯선 곰을 경계하고,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 움직이는 것을 주저할 뿐이다. 이들의 모험을 에상하지 못한 전개로 이어지고, 어느 순간 판타지 세계에 점점 익숙해진다. 이 익숙함의 한 부분은 지브리 영화 속 장면들과 이어진다. 그리고 이들의 모험을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내고, 예상하지 못한 만남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화려하고 섬세한 그림들이 어우러지면서 끝까지 쉼없이 달려가게 한다. 재미있는 그래픽노블이다. 여기에 사족 하나를 달면 왠지 모르게 벤의 모습을 보면서 해리 포터의 이미지가 겹쳐 보인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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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스파이 2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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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권을 다 읽었다. 2권을 읽으면서 1권에서 어렵고 힘들게 느껴졌던 부분들이 많이 완화되었다. 핌이 자신을 3인칭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나 아들 톰에게는 평대를 하고, 상사였던 잭에게는 존대를 하는 장면의 전환에도 조금은 유연하게 대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의문 중 하나였던 왜 핌이 갑자기 정보국을 떠나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인터넷 서점 책소개만 잘 읽어도 알 수 있는 부분인데 늘 그렇듯이 뒤늦게 발견했다. 덕분에 소설을 더 재밌게 읽게 되었다. 천천히 음미하듯이, 그 상황을 그려내듯이 읽다 보면 예상보다 훨씬 가독성이 좋고 재미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1권의 연속선상에서 핌은 계속 글을 쓰고, 잭은 핌의 흔적을 뒤쫓는다. 그의 아버지가 보궐선거에 출마하는데 이때 일어난 일들은 정치판을 조금은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기꾼인 아버지가 지지자를 모으고, 승리를 위해 음모를 꾸미거나 거짓말을 하는 장면은 결코 낯설지 않다. 자신이 저지른 사기 행각에 분노한 여성을 도와주는 핌과 이 상황을 아주 유능하게 넘어가는 장면은 이 소설 전체 구성과 이어져 있다. 양심과 허세의 세계가 충돌할 때 양심은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증거와 그 증거를 제대로 알려줄 매체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SNS가 있다면 다른 문제이겠지만 그때는 그 통로가 일방적이었다.


변호사의 길을 포기하고 장교로 입대한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던 악셀을 만난다. 상대 국가의 스파이로 우연히 만난 것처럼 보이지만 잘 설계된 접근이다. 본래의 의도를 살려 적국의 정보를 빼내려고 하지만 배신의 기억은 양심을 흔든다. 악셀이 느끼는 공포와 위험은 그를 배신자의 길로 이끈다. 양심의 짐을 덜어내지만 자신의 조국에는 또 빚이 쌓인다. 작가는 배신의 구체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미국으로 넘어간 다음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이 비밀정보라고 넘긴 것이 다음 달 잡지에 실리는 일 같은 것이다. 긴박하고 은밀할 것 같은 첩보전을 살짝 뒤틀어 놓았다.


이 소설에서 아버지 릭은 실제 작가 아버지의 이미지가 겹쳐 있다. 작가 후기에 그의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놀랍게도 닮았다. 릭이 핌을 변호사로 만들려고 한 것은 그의 변호를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성공한 작가에게 연락한 아버지의 모습도 겹쳐진다. 생활비를 주지만 결코 그 금액에 만족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닮았다. 실제 핌은 자신이 돌아다닌 곳에서 수없이 아버지를 만난다. 그 아버지는 돈을 구걸한다. 아버지의 죽음이 그에게 자유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완전히 단절하지 못한 관계는 이렇게 삶을 옭아맨다. 그의 떠남이 대립하는 두 진영에게 큰 혼란을 준 것은 다른 문제다.


또 다른 이야기 축인 잭 등의 이야기는 핌의 회고와 다른 면을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핌의 기억과 현실의 괴리를 바로 잡아준다. 과거의 대화 속에서, 기억 속에서 현재 그가 있을 수도 있는 곳을 찾아내야 한다. 냉전이 끝난 지금에서 보면 이들이 보여주는 대결이 크게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지만 이 당시에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줘야만 했다. 실적이란 이름 아래 최말단에 있는 스파이나 정보원들은 잠시 사용되고 폐기되는 용도였다. 이 소설의 제목이 되는 완벽한 스파이도 악셀의 입에서 나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보를 가지고 상대방 진영으로 넘어간 정보원은 내부 스파이들 목록을 내주는데 이것은 서로에게 큰 위험이고 일이다. 실제 이런 일들이 몇 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작가의 소설은 나에게 쉽지 않다. 가끔 명성에 끌려 도전했다가 나와 맞지 않아 중단한 작가들이 생기는데 존 르 카레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이 장편 소설을 읽으면서 작은 돌파구 하나를 발견한 것도 같은데 솔직히 다른 책을 읽어야만 확인이 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수많은 작가들이 칭찬을 솔직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 어쩌면 따라가기에 너무 급급했는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서 소설 내용이 뒤엉키고 모호한 부분들이 충돌하고 있는데 시간 나면 조용히 정리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머릿속에서 수도사가 되었다면 그의 삶은 어땠을까 하는 물음이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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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스파이 1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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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존 르 카레의 1986년 작품이다. 이 작가의 작품을 몇 권 읽었지만 여전히 어렵다. 너무나도 유명한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도 나에겐 쉽지 않았다. 그래서 몇 권 더 사놓고 묵혀두고 있는 책들도 꽤 있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데는 다시 한 번 더 도전하고 싶은 마음과 이제는 어느 정도 조금 묵직한 소설도 익숙해져서 이전보다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근거 없는 자신감이 한몫했다. 하지만 나의 착각이자 오산이었다. 현재 2권을 읽고 있는 중인데 1권의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아직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아마 끝까지 읽고 서평을 쓰면서 생각과 내용을 정리하기 전에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영국 정보국 요원 매그너스 핌과 그의 행방불명을 두고 뒤좇는 상사 잭 등의 이야기다. 영국 데번주 남부 바닷가 마을에서 매그너스 핌이 택시에서 내리면서 시작한다. 그는 아버지 장례식 이후 이 마을의 미스 더비네 집에 왔는데 왜 왔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왜 이 집인지도 아직은 설명이 없다. 그리고 그가 집을 떠나기 전에 그의 아내와 미국 정보원 등과 만찬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아내의 복잡한 감정과 심리 묘사가 이어지고, 핌에게 아버지 릭의 부고가 도착한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전개다. 그런데 핌이 아버지 장례식 이후 복귀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가 스파이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냥 무심코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또 그가 가지고 나간 번박스를 생각하면 더 심각해진다. 이 심각한 상황을 뒤좇는 인물이 매그너스를 스카우트한 잭이다.


정보국을 떠난 핌은 자신의 성장기와 아버지 릭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풀어놓는다. 그의 아버지 릭은 어릴 때부터 사기를 친다. 사기꾼 아버지와 순수한 영혼을 가진 매그너스의 성장기는 상당히 혼란스러워 보인다. 수많은 회사를 설립해 사기를 치는데 모든 사기가 성공적이지는 않다. 사기꾼 이버지와 떨어져 살아도 그의 삶은 그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한때 수도사가 되려고 한 적이 있을 정도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아들 톰과 상사 잭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잠시만 방심하면 바뀐 대상 때문에 헷갈린다. 중간중간 이상한 번역도 낮은 집중력을 더 깨트린다. 호칭이 수시로 바뀌면서 이 혼란을 더욱 부채질한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일까?


정보국 요원이 사라진 것은 정보의 유출과 함께 기존의 내부고발자들이 밝혀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그가 체코 등의 공산주의 진영으로 넘어갔다면 지금까지 심어둔 모든 정보원을 철수시켜야 한다. 빠르게 판단을 내려야 하지만 섣부르게 진행할 수는 없다. 핌을 스카우트하고 키운 잭 브라더후드는 한때 핌의 아내 메리의 정부였다. 핌이 전 부인과 헤어지고 그녀와 결혼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잭을 비롯한 정보요원들은 집을 온통 뒤집고 어떤 단서 하나라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가 넘어갔다는 단서도, 아니라는 단서도 보이지 않는다. 현재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보도 제한을 걸고, 핌을 찾아내거나 이 불안정한 상황을 진정시킬 확실한 정보를 발견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들이다.


1권의 내용만으로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핌의 회고록 역할을 하는 부분이 주는 복잡하고 난해한 상황과 심리 묘사 등은 좀더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희대의 사기꾼인 아버지와 그의 부하들이 벌이는 시기 행각은 또 어떠한가. 1권을 읽다 보면 단순히 정보국을 떠난 것인지, 아니면 정보권이 걱정하는 것처럼 조국을 배신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그리고 한 정보국 요원의 실종이 스파이 세계에 어떤 긴장감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지 조금 엿볼 수 있다. 2권을 모두 읽고 난 후 이 책의 감상은 또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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