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 - 탐정 아이제아 퀸타베의 사건노트
조 이데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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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멋진 소설이다. 화려한 수상 이력은 거짓이 아니었다. 재미와 가독성을 모두 놓치지 않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 속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콤비의 멋진 활약이 돋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셜록 홈즈 식의 추리와 거친 액션이 어우러지면서 펼쳐지는데 벌써 다음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생긴다. 오랜만에 취향에 딱 맞는 시리즈가 등장했다. 개인적인 아쉬움이라면 내가 LA를 몰라 그 재미의 상당 부분을 놓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솔직히 말해 내가 좋아했던 시리즈들이 나오다가 중단된 적이 많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현재 5권까지 나왔다.


IQ는 아이제아 퀸타베의 앞글자를 딴 별명이다. 하지만 그에게 사건을 의뢰하거나 아는 사람들에게는 머리가 좋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아이제아는 무면허 탐정이다. 동네에서 생기는 사건이나 문제를 해결해주고 작은 수수료를 챙긴다. 돈을 받기도 하지만 의뢰 내용에 따라 음식물로 수수료를 대체한다. 그가 어떻게 무면허 탐정의 길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이야기는 과거의 실수를 들려주는 이야기 끝부분에 나온다. 주변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주었고, 이것이 입소문으로 퍼져 해결사가 되었다. 그가 돈을 요구한 사건을 해결하는 한 장면은 기발하면서도 그가 유지하는 철학이 보인다. 현재의 시간이 하나의 의뢰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과거는 현재의 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첫 장면만 보면 하나의 사건만 나올 것 같다. 아이제아가 우연히 한 여학생이 납치된 사실을 알고 뒤좇는데 대단한 속도감과 확신으로 가득하다. 생각보다 빠르고 확실하게 해결한 후 바람처럼 사라지는데 이때부터 IQ에 반했다. 그리고 그는 장애 소년을 위해 해변가 리조트를 구하려고 한다. 목돈이 필요하다. 학창 시절 친구이자 악연으로 이어져 있는 도슨이 말한 사건을 맡는다. 그것은 유명 래퍼 캘빈을 죽이려는 사건이다. 표지의 그림이 핏불이 맞다면 괴물 같이 거대한 핏불이 캘빈을 물어 죽이려고 한 사건이다. 이 모든 장면이 CCTV에 찍혔다. 아이제아는 이 영상부터 시작하여 암살자를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일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이야기의 한 축인 과거는 아이제아의 형 마커스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머리가 좋고, 일도 열심히 하면서 동생과 함께 살던 형은 뺑소니 차에 치여 죽었다. 뒤로 봤다면 죽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동생에게 이야기하면서 뒤로 걷다가 차에 치였다. 형의 죽음은 그의 삶을 완전히 뒤흔든다. 형의 바람은 좋은 대학에 진학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인데 이 죽음이 그를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형의 죽음이 미성년자인 그를 보육가정으로 보낼 수도 있다. 그 집에 머물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 이때 만난 인물이 갱의 일원인 도슨이다. 월세를 나누어 내기 위해 그를 집에 들였는데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도슨과 함께 2인조 절도범이 된 것이다.


좋은 머리는 보통의 절도범이 무작정 저지르는 도둑질 대신 정확한 계획 실행으로 이어진다. 첫 도둑질이 그를 움츠려 들게 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이 콤비의 탄생은 바로 이 절도 행위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도슨이 요리를 좋아하고 상당한 재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절도 행위 중에 주방 기구 때문에 시간을 초과한 적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훔친 장물들을 처분하는 과정에 알력이 생기면서 틈이 벌어진다. 느리지만 안전하게 장물을 처분해 돈을 만들려는 아이제아에 비해 도슨은 빨리 처분해 현찰을 쥐고 싶어한다. 쉽게 생긴 돈을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사는데 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 갈등은 도슨의 어슬픈 아이제아 흉내로 이어지고, 이 사실을 안 아이제아가 이 일에 개입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여학생 납치 사건을 가볍게(?) 해결한 후 맡은 래퍼 사건은 생각보다 쉽게 암살자를 찾아내지만 물증이 충분하지 않다. 여기에 내부자가 정보를 제공하는 듯한 장면이 나오면서 용의자들이 늘어난다. 전 아내가 가장 유력해 보이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두 명의 보디가드로 수상하다. 스킵이라고 말하는 암살자는 미친 놈 같은 행동을 한다. 번아웃에 빠진 래퍼도 정상은 아니다. 죽음의 공포와 삶에 대한 회의는 그의 삶을 잠식한다. 아이제아는 이 사건을 해결해야만 원하는 리조트를 구입할 수 있다. 스킵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도 해야 한다. 엮이고 꼬인 상황이 이어지지만 길고 짧은 장면들과 과거의 사연들이 조금씩 맞물리면서 독자의 속도를 조절한다.


작가가 셜로키언이라고 하는데 이 소설도 셜록 홈즈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단 현대 LA를 배경으로 했다. 귀납적 추리 능력과 형를 친 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익힌 관찰력 등의 몇 가지 기술은 그가 무면허 탐정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첫 장면에서 보여준 멋진 레이싱 실력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 알려주는 마지막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사실적으로 연예인들의 삶을 다룬 장면이나 바뀐 음반 시장의 분위기 등도 눈에 들어온다. 특히 멋진 것은 아이제아의 성격이다. 자존감을 잃지 않고 의뢰인과 거리를 잘 유지하는 그를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 이후 도슨과 어떤 콤비를 이루면서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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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벵거 자서전 My Life in Red and White
아르센 벵거 지음, 이성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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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프리미어 리그를 즐겨 보지는 않는다. 가끔 시간 나면, 혹은 손흥민의 경기가 있으면 보는 정도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해외 축구 정보를 꾸준히 찾아본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경기를 보면서 재미가 어느 정도 든 모양이다. 그리고 아스널을 생각하면 책에서도 나왔지만 그들의 무패우승과 티에리 앙리가 떠오른다. 앙리가 ‘무한도전’에 나와 어리둥절해하던 모습도 스쳐 지나간다. 그 당시만해도 앙리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최근에 가장 EPL 최고의 선수로 뽑혔다는 기사를 봤다. 책 부록에 나온 아스널 기록을 보면서 놀란다. 대단한 득점력이다.


앙리를 떠올리면서 아르센 벵거의 위대함을 몰랐다면 나의 축알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축구에서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축구보다 야구를 훨씬 더 좋아하고 즐겨보는데 야구는 감독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약한 종목이다. 축구가 점점 더 상업적으로 변하고, 높은 주급을 받게 되면서 유명 선수들과 함께 높은 연봉을 받는 감독들 이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축알못이지만 이제는 왜 그들이 그런 연봉을 받는지 이해한다. 감독들이 상대방에게 이기기 위해 어떤 전술을 짜고, 어떻게 선수들을 내세우는지, 선수 교체 타이밍과 왜 바꾸는지도 조금씩 이해한다. 이 책은 한 위대한 감독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 이해의 깊이를 더해준다.


솔직히 말해 벵거 감독이 프랑스 사람이란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 책의 제목도 그가 뛰거나 감독한 팀들이 입은 유니폼 색과 관련 있다. 벵거 감독은 엄청나게 긴 세월 동안 한 팀의 감독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제외하면 그 다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시대에 맨유의 퍼거슨 감독이 있었다는 것은 또 다른 불행이다. 여기에 책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은 천적 무리뉴 감독까지 더하면 그가 그 기간 동안 이룬 대단한 성적은 정말 엄청난 것이다. 엄청난 선수들과 유명 감독으로 무장한 팀마저도 계속적으로 1위를 하지 못하는 EPL을 생각하면 1위를 하지 못한 것만으로 평가하기에는 너무나도 뛰어난 성적이다. 물론 늘 우승을 바라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두툼한 책은 아니지만 이 책 속에는 그가 걸어온 인생이 담겨 있다. 출생부터 어린 시절과 선수의 추억과 어떻게 감독이 되었는지 등이 나온다. 지금과 사뭇 다른 상황의 그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정도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얼마 전 영국의 한 팀이 토트넘과의 경기 결과로 몇 년 동안 운영할 자금을 얻었다는 기사를 봤기에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하부 리그 선수들은 열정은 가득하지만 자금 부분은 상대적으로 많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금이 풍부하지 못한 팀은 저비용 고효율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 벵거의 아스널이 지속적으로 유지했던 정책이다. 새로운 축구장을 짓고 그 비용을 모두 상환했다는 자랑이 꾸준히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된다. 미 프로야구에서 <머니볼> 신드롬을 불러온 오클랜드 어슬래틱스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르센 벵거하면 자연스럽게 아스널이 떠오르다 보니 그가 일본 나고야팀 감독이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온다. 그 당시 이미 젊고 재능 있는 감독이자 유명한 클럽으로 감독 제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흥미로운 점이다. 그리고 그가 EPL 감독이 될 당시만 해도 외국인 감독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도 지금의 상황과 비교하면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그가 아스널 감독을 하는 사이에 구단들은 외국 자본에 팔려 나갔고, 유명한 외국 감독들이 취임했다. 그 감독들 대부분은 성적 부진의 이유로 몇 년을 머물지 못했다. 이것은 상위권 팀의 경우에 더 심하다. 가끔 현 맨시티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가 음식 조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기사를 보는데 EPL에 식단 조절 등의 시스템을 가져온 인물이 아르센 벵거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스카우팅 시스템과 데이터를 이용한 것 등이다. 이렇게 좋은 시스템 등은 금방 다른 팀에도 전파된다.


그가 하고 싶어하는 축구는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축구로 승리하는 것이다. 이 축구를 위해 많은 자금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스널은 늘 자금 부족에 시달렸다. 아스널이 최고액으로 영입했다는 선수들의 이적 자금은 보면 유럽 빅리그 우승팀들의 이적 자금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이 스카우트 속에 한국의 박주영이 들어가 있는데 그는 겨우 교체 포함 일곱 경기만 뛰었다. 재능은 있지만 자신감이 부족했다는 지적은 기회의 부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가 영입해서 대단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에 대해 쓴 글을 보면 비교되는 부분이다. 최근, 아주 가끔 유럽 축구에 대한 책을 읽는데 읽을 때마다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사실을 하나로 꿰고, 추억 속 선수들을 마주한다. 그와 관련된 선수와 감독들 자료를 혼자 열심히 검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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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뭇 강펀치 안전가옥 쇼-트 7
설재인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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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쇼트 7권이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를 재밌게 읽고 있다. 한동안 안전가옥 책들을 찾아보지 못한 사이에 몇 권이 더 나왔다. 그렇게 두툼하지 않으니 언제 시간 나면 한 권씩 읽어야겠다. 이번 작품의 작가는 사실 낯설다. 이전에 읽은 작가들은 다른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완전 처음 읽는다. 작가 이력을 보면 특목고 수학교사가 보인다. 대책 없이 사표를 내었다는 것도, 어쩌다 복싱을 수학 교육보다 오래하게 되었다는 정보도 신선하고 놀랍다. 단편 세 편이 실린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인 <사뭇 강펀치>가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아마도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표제작 <사뭇 강펀치>는 한국 교육과 체육계의 부폐와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현진과 윤서란 두 여중생을 화자로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다루고 있는 내용에 비해 이야기는 조금 가볍게 풀어낸다. 여중생의 시선으로 그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데 이 단편을 읽으면서 몇 개의 체육계 비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좋은 대학을 들어가는 방법 중 하나로 체육을 이용한다는 것을 이전에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비인기 종목이 더 좋다는 표현을 보면 괜히 암울해진다. 윤서 이모가 나서야만 하는 상황이란 부분도 그렇다. 스스로 자정능력을 잃은 체육계와 그 속에서 자신들의 꿈을 위해 열정을 다 바치는 선수들을 떠올리면 암담하다. 하지만 강단 있는 현진의 행동을 보면서 작은 희망을 불씨를 엿본다.


<그녀가 말하기를>은 도입부와 본격적인 이야기가 왠지 유리되어 있는 것 같다. 경찰 이야기에서 그녀의 이야기로 넘어간 후 마무리가 왠지 모르게 뚝 끊어진 느낌이다. 하나의 음모론과 그 음모론에 기댄 사이비종교단체를 배경으로 한 여성 주리의 삶을 들려준다.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고, 온라인으로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사람들에게 이 모든 일들은 하나의 볼거리일 뿐이다. 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알려줄 때 그 참담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이 보고 믿고자 하는 것만 믿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자신의 삶도 잠시 돌아본다. 그처럼 중증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서 그런 점이 있다. 불편하지만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다.


<앙금>은 쌍둥이 이야기다. 동생 미단이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동생을 찾으려고 미진은 처음으로 동생방에 들어간다. 2년제 대학 졸업 후 회사 취직해 대리를 단 그녀에 비해 미진은 4년제를 나왔지만 취직을 못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극단의 삶과 성격을 가진 둘을 미진의 시선으로 풀어내는데 작가는 미단의 삶을 하나씩 꺼내 보여준다. 그냥 회사 일에만 빠져 있는 것 같은 그녀의 다른 과거나 삶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지기 전에 있었던 사건을 알게 되면서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마주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마무리가 낯설고 어색하다. 최소 중편 분량으로 늘려 사건을 더 파고들고, 두 쌍둥이가 가진 감정의 골을 더 자세하게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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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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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오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그는 한때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꼽혔다. 그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내가 읽은 책은 거의 없다. 집을 뒤지면 몇 권의 소장 도서들이 나오겠지만 이상하게 손이 잘 나가지 않는다. 단순히 읽기 힘들어서도 아니고,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면 낯익은 표지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확실한 것은 한 권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질 기억력이지만 아마도 맞을 것이다. 그의 책이 출간되면 늘 관심을 두었다. 읽어야지 생각을 그 당시는 했을 텐데 그 결과는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번 책도 받기 전 쪽수를 보고 읽기 힘들 것이란 짐작을 미리 했다. 착각이었다. 물론 역주를 모두 찾아가면서 읽었다면 두 배 정도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르지만.


유다. 예수를 떠올리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유다하면 배신자가 먼저 떠오른다. 유다를 다른 식으로 해석한 책들이 나오는 소개를 봤지만 그 내용까지 읽은 적은 없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쉽게 잊고 있는 유대인 예수를 이 소설은 정면에 내세운다. <다빈치 코드> 같은 스릴러 등에서 내세우는 음모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바라본 유대인 예수를 다룬다. 긴 세월 동안 유대인 학자들이 예수를 어떻게 보았는지 학술적인 차원에서 하나씩 풀어내는데 그 속에는 야훼의 아들이자 신인 예수의 모습은 없다.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발칙하고 무례한 소설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유대인들마저도 잘 다루지 않는 유다를 다루면서 아주 논쟁적인 소설로 만들었다.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인물은 유다를 연구하는 대학원생 슈무엘 아쉬다. 집안이 몰락하고, 여친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그러다 학식이 높은 장애인의 입주 말동무를 구하는 공고를 보고 그 집에 간다. 그를 고용한 여인은 아탈리야 아브라바넬이고, 마흔다섯 살의 미망인이다. 슈무엘이 돌봐야 할 인물은 그녀의 시아버지인 게르숌 발드다. 슈무엘은 아탈리야에게 매혹되고, 발드는 그 매혹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 배신자로 낙인 찍인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임을 알게 된다. 그는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 아랍인들과 화해를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 또한 유다처럼 유대인들의 역사 속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두 배신자들의 과거를 파헤치고, 그들의 사상 이면을 파고든다. 작가는 유다를 첫 번째 기독교인이자 마지막 기독교이고, 유일한 기독교인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인식을 완전히 뒤바꾸는 주장이다. 슈무엘과 발드의 대화 속에 기독교가 가진 역사적 문제점들이 간략하지만 날카롭게 지적된다. 학문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에서 본 문제점들이다. 아브라바넬의 경우는 현실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 이스라엘 전체와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다비드 벤구리온은 아랍과의 평화적 공존이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굉장히 이상적인데 현실의 이스라엘 국가 수립에서는 불가능한 주장이다. 물론 그가 염려한 미래의 모습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지금 시점에서 봐도 아브라바넬의 주장은 너무 급진적이다.


유대인들이 수천 년을 떠돌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유다와 유대인을 동일시한 기독교인들의 시선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도 유대인이었고, 기독교를 전파한 인물들도 유대인이었다. 이런 사실은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가려질 뿐이다. 유다에 대한 유대인들의 암묵적인 침묵을 다룬 부분은 그들이 겪은 역사적 고난과도 관계가 있다. 아브라바넬이 잊혀지고 배신자로 인식되는 과정에서 그 가족들 또한 유배자처럼 지낸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글들을 없앴고, 그 흔적은 사라진다. 그가 주장했던 의견들은 정치적 이유에서 역사 속으로 묻혔다. 작가는 유다처럼 그도 시간의 흐름 속에 다시 재평가 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주장한 아랍인들과의 공존은 긴 세월 동안 중동에 머물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것이다.


슈무엘의 아탈리아에 대한 열정과 아탈리아의 냉정한 시선은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다. 그 이전에 이 집에 온 남자들은 모두 아탈리아에 의해 내쳐졌다. 발드가 슈무엘에게 이를 경계하라고 한 것도 이유가 있다. 그는 벤구리온의 주장에 동조한 인물이지만 그의 아들이 죽은 후 생의 의욕을 많이 상실한 상태다. 이 끔찍한 사고의 기억은 아탈리아와 발드의 삶을 완전히 뒤흔든다. 입주한 젊은 이들과의 대화는 그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일이다.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할 일만 하는 약간 기묘한 동거가 깨어지는 것은 슈무엘의 사고 때문이다. 아브라바넬의 방이 열린 것도, 아탈리아가 다가온 것도 이 사고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들은 그가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몬다. 갇힌 세계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다듬었지만 밖으로 나아가지 못한 그가 이 집을 떠나 자연을 보면서 아름다움과 새로운 삶을 생각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결코 가벼운 소설이 아니다. 이번에는 주석을 대부분 스쳐 지나갔지만 나중에 천천히 읽으면서 더 많은 생각을 해보고 싶다. 어느 부분은 나의 편향적 시선이 작용했다는 것을 느끼는데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전에 생각보다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간 내어 한 권씩 읽어보고 싶다. 묵직한 내용이지만 주석에 집착하지 않으면 가독성이 생각보다 좋아 잘 읽힌다. 작가의 배신자에 대한 경험이 이 소설 속에 녹아 있을 테지만 다시 한 번 배신이란 단어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스라엘 건국을 다른 시각에서 보는 시간도 되었는데 역시 더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다. 공부할 거리를 잔뜩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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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나무
아야세 마루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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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편 일곱 편이 실려 있다. 이 단편집은 나오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고교생 나오키상을 수상했다는 소개 때문에 선택했다. 이 선택은 모두 읽은 지금 작은 감탄으로 이어지고,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사람들의 신체를 분리시키고, 남녀의 시간대가 나누어져 있고, 물고기처럼 알을 낳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고민을 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물론 그 이면에는 사랑이란 감정과 일상적 삶이 놓여 있지만 이 강렬한 세계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당연히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검색해본다. 한 권 더 번역된 책이 있지만 역시 단편이다.


표제작 <치자나무>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뭐지?’였다. 내연녀가 요구한다고 자신을 한 팔을 내어주는 남자보다 너무 쉽게 분리해서 주는 장면에 놀랐다. 이 세계에서는 이런 분리가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여자는 이 팔을 애지중지 가꾸는데 그 남자의 아내가 찾아온다. 남편의 팔이 사라졌으니 당연히 알지 않겠는가. 이 특이한 세계 속에 작가는 사랑이란 감정을, 그 흔적으로 좇는다. 이 단편의 놀람은 조금은 낯익은 설정의 <꽃벌레>로 이어진다. 운명의 상대에게서 꽃이 피는 것과 그 향기를 맡게 되는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페르몬과 이전에 벌레가 사랑의 감정을 조종한다는 소설을 읽었기에 낯설지만은 않다. 그런데 이 꽃과 향기의 정체를 알게 된 후에 벌어지는 상황은 또 다르다. 자신들의 사랑이 단지 벌레의 조종이란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사랑의 스커트>와 <가지와 여주>는 엇갈린 사랑 이야기다. 평범하지만 이 평범한 속에 담긴 작은 감정들의 표현이 좋다. 이 두 작품은 평범한 세계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자가 자신의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어떻게든 그 관계를 이어가려고 하는 모습이 시선을 끈다면, 후자는 새로운 시작을 바라지만 다른 상황의 두 남녀를 보여준다. 2-30대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전자이고, 후자는 50대의 사랑 이야기다. 후자는 가지색 염색과 여주 요리를 뒤섞어 중년 이후의 삶을 조용히 그려내었는데 전자는 머리 커트와 스커트 제작이 이 관계를 이어준다. 작은 인연의 끈이 조용하게 떨린다. 담백한 표현으로 가득하지만 아련한 감정이 단편 속에서 꿈틀거린다. <얇은 천>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권태와 공허함을 느낀 중년 부인의 어린 소년을 대상으로 한 인형 놀이를 다룬다. 남편의 막말과 아들의 막말 이면이 서로 다르다.


<짐승들>은 여자가 뱀으로 변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에 분노한 여자가 뱀으로 변해 그 남자를 먹는다. 이 격렬한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남자들이 낮을, 여자들이 밤을 지배하는 세계이지만 서로 부부가 되어 살아간다. 여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남편을 통해 낮의 시간 이야기를 듣는다. 낮에 나타나 남자들을 공격하는 괴물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정체는 쉽게 알 수 있다. <산의 동창회>는 읽으면서 의인화한 동물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알을 낳고, 몇 번 낳고 나면 죽는다고 한다. 바닷가 마을이 배경이고, 바다에서는 이들을 잡아먹는 거대한 황금 지느러미가 있다. 무론 이들을 지켜주는 해수도 존재한다. 이 해수는 이들 중 일부가 변신한 것이다. 주인공은 다른 친구들처럼 알을 낳지도, 유모가 되지도, 해수로 변신하지도 않고 기록만 할 뿐이다. 이 기록하는 삶이 왠지 모르게 조용한 울림을 준다.


일곱 편 중 네 편이 판타지 소설처럼 다가온다. 작가는 세계를 확장하지 않고, 축소해서 그 사회 속 사람들의 감정을 간결하게 풀어놓았을 뿐이다. 기이하고 묘하고 어떻게 보면 섬뜩한 세계다. 하지만 이 기괴한 세계를 지우고, 사람들의 감정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감정들이 보인다. 사랑, 질투, 그리움, 공허, 분노 등의 감정이다. 여기에 옆에 머물면서 죽음을 관찰하고, 그것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한 편씩 천천히 읽었는데 어느 순간 단숨에 달렸다. 매력적인 이야기들이다. 뒤섞인 이야기와 감정들이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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