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리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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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기존의 뱀파이어 소설과 궤를 달리한다. 나에게 뱀파이어 소설하면 앤 라이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물론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예외다.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에 한때 빠져서 정신없이 읽은 적이 있다. 장황하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주는 재미는 대단했다. 그런데 옥타비아 버틀러의 흡혈귀는 기존의 뱀파이어와 종이 완전히 다르다. 그들은 스스로 ‘이나’라고 부르고, 인간들과 함께 산다. 그들에게 물린다고 해서 뱀파이어로 변신하지 않는다. 다만 이나에게 물리면 강한 쾌락을 느끼고, 그들의 힘에 조정되는 문제가 있다. 작가는 이나와 인간들의 관계를 공생이라고 표현한다. 이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공생인이라 부르고, 상대방이 죽을 때 큰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이나와 공생인들은 무리를 이루고 산다.


쇼리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허기를 느낀다. 무엇인가가 나타나자 잡아먹는다.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피와 고기를 먹고 재생한다. 해를 보면 피부가 상한다. 밤에 동굴에서 나와 먹을 것을 사냥한다. 자신이 누군지, 불탄 집의 정체도 모른다. 그러다 도로를 걷다가 한 남자에게 발견되어 그의 차를 탄다. 그의 피를 마신다. 죽을 정도는 아니다. 그는 쇼리의 첫 번째 공생인이 되는 라이트다. 쇼리의 피부는 검고, 키는 150센티미터 정도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그녀는 라이트의 집으로 간다. 기억을 상실한 쇼리가 다시 세상을 만난다. 아직 자신이 정체와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피에 대한 갈증은 주변 사람들을 몰래 찾아가 마시면서 해결한다.


자신이 발견된 곳에서 기억을 더듬어 불탄 집을 찾아낸다. 그곳에서 다양한 냄새를 맡는다. 그녀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안다. 나중에 그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다. 아버지와의 만남은 짧게 이루어진다. 과거의 기억을 잃은 그녀에게 이나의 문화나 능력 등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다. 몇 가지 간단한 정보를 얻지만 충분하지 않다. 다만 이나에게는 공생인들이 필요하다는 사실만 안다. 단 한 명의 공생인으로는 그들의 허기를 채울 수 없다. 성별에 상관없이 다수의 공생인과 함께 살아야 한다. 이야기 진행되다 보면 이 공생인들이 결혼하는 경우도 나온다. 재밌는 설정은 이나들이 영생을 살지 못하고, 기본의 흡혈귀처럼 햇볕에 약하다는 것이다. 낮에는 우리가 밤에 졸리는 것처럼 그들도 잠에 든다. 이것이 그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에게 좋은 먹이감이 된다.


쇼리가 다시 아버지의 집에 갔을 때 집은 불타고 아버지와 형제들은 죽었다. 아버지와 형제의 공생인이 각각 한 명씩 살아 남았다. 그들이 살아남은 것은 그 당시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다른 이나에게 중독된 이들이 다른 이나와 공생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쇼리의 독은 강력해 이들이 쇼리의 공생인이 된다. 쉰세 살의 뱀파이어이지만 과거의 기억이 없다 보니 모든 것이 낯설다. 그녀는 공생인의 도움을 받아 다른 이나를 찾아가려고 한다. 그리고 이나들이 잠들어 있는 낮 시간에 낯선 무리들의 공격을 받는다. 하지만 쇼리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낮에도 돌아다닐 수 있고, 햇볕에도 어느 정도 저항이 가능하다. 인간과 이나의 경합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그녀의 아버지가 이미 알려주었다.


작가는 화려한 액션이나 무시무시한 장면을 연출하기 보다 이나와 인간의 유전적 결합을 통해 태어난 쇼리의 존재를 두고. 인종 차별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많은 이나들이 생각하기에 쇼리의 햇볕 저항력은 큰 축복이 분명하지만 아닌 이나들도 있다.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면 이런 사실들이 눈에 들어오고, 이것을 두로 벌어지는 논쟁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어떤 대목에서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나들은 성인이 되면 동성끼리 살아야 한다. 이성의 존재는 너무 강력한 유혹이라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여러 명이 함께 살아야 하는 문제도 있다. 이 소설에서 첫 공생인 라이트가 남성 공생인이 또 생기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 문화의 문제라는 사실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작가의 작품 중에서 흔치 않은 독립 작품이다. 미국의 유명세에 비해 한국에 번역된 작품의 수가 너무 적다. 운 좋게도 이 작품까지 출간된 모든 작품을 읽었다. 어떤 작품들은 나의 이해를 넘어섰지만 가독성은 변함없이 좋고,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늘 매혹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와일드 시드>를 포함하고 있는 패터니스트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면 하는데 과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만약 작가가 이른 나이에 죽지 않았다면 이번 작품도 시리즈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나라는 뱀파이어 종족이 너무나도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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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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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 오토 질버만의 심리 변화와 행동에 답답함을 느꼈다. 이 답답함은 그 시대의 진행 과정을 알고 있기에 더 심한 부분이 있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결과론에서 본 시각이다. 나치의 위세가 강해지고, 그 지지자들이 언젠가 폭주할 것이란 낌새를 알았다고 해서 자신들이 독일인이라고 생각하는 유대인이 자신의 모든 기반을 버리고 조국을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자신의 자산을 헐값이라도 넘겨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만 그 위험이 코앞에 와서야 깨닫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이다. 약삭빠른 일부는 위기의 유대인을 위협해 그 자산을 아주 헐값에 사들인다. 이 소설에서 핀들러가 대표적이다. 재미있는 점은 나치 추종자가 질버만의 집에 찾아와서 그를 유대인으로 오인하고 폭행하는 것이다.


오토 질버만의 외모는 아리아인을 닮았다. 이름은 유대인이라고 한다. 사실 한국에 살고 있는 내가 이름만 가지고 유대인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다른 모양이다. 질버만은 자신의 이름을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말하지 않는다. 그의 외모만 보고 아리아인이라고 착각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이 추악하고 참혹한 인종차별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핀들러와의 대화에서 외모와 종족 가지고 나눈 대화는 이후 진행되는 이야기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질버만이 기차에서 만난 유대인은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유대인 외모를 가져 위협을 받지 않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질버만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이런 모습들도 답답함을 가중시킨다.


1938년 11월 9일 밤 나치와 그 추종자들은 유대인 상점 등을 파괴하고 약탈한다. 유대인들은 강제수용소로 보내지고 있는 시기다. 아직 아우슈비츠의 그 참혹한 상황이 나타나지 않았고,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곳곳에서는 이미 유대인에 대한 격리와 폭행이 저질러지고 있었다. 질버만이 유대인이란 이유로 냉대를 받는다.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여권에는 유대인을 의미하는 J가 찍혀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답답함을 느낀 것 중 하나는 왜 그가 여권을 위조해서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가 가진 거액을 생각하면 가장 쉬운 방법일 텐데 말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장르 소설에 너무 익숙해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한 여성이 말한 것을 보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의 아내는 아리아인이고, 처남은 나치 당원이다. 만약 남편과 매제가 유대인이란 사실이 밝혀지면 이들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나중에 질버만이 떠돌이 여행에 지쳐 처남을 찾아가 전화했을 때 받은 반응은 아는 유대인 함부르거를 만났을 때 그대로 재현된다. 언제나 자신만을 생각한다고 그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받는다. 사실 유대인들이 함께 다니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지만 유대인 외모를 가진 함부르거 입장에서는 아리아인의 외모를 가진 질버만이 보호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서 인간의 존엄이나 가치가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준다. 이것은 앞부분에 그의 전우이자 친구였던 베커가 회사 지분이라고 하면서 거액의 현금을 전달한 것을 생각하면 누가 더 착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베커가 도박에 중독되었고, 당원이고, 이 위기 상황을 어느 정도 이용하지만 양심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에 머물 수도, 호텔이나 숙소에서 살 수도 없는 질버만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기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떠돈다. 이 여행은 즐거움이 아니라 공포로 인한 도피다. 거액의 현금을 계속 들고 다니는데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다. 나중에 이 돈은 사라진다. 벨기에로 밀입국하려고 시도하다 이 돈 가방 때문에 귀환 조치된다. 돈으로 경찰을 매수하려고 하지만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의 절망은 더 깊어진다. 나치의 광기가 독일을 뒤덮을 때도 아직 선한 사람들은 남아 있었다. 그를 벨기에로 넘겨준 남자도, 기차에서 만나 독일 여성도, 그가 광기에 휩싸여 경찰서의 경감도 그런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는 무일푼이 되었지만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유대인 목수와 달리 자신의 자산에 집착하고 낡은 도덕관과 공포에 휩싸여 자멸한다. 답답함 속에 긴 여운을 느끼고, 그 시절의 분위기를 잘 느끼게 한다. 제목에서 느끼는 낭만이 완전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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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의 천재들 - 전 세계 1억 명의 마니아를 탄생시킨 스튜디오 지브리의 성공 비결
스즈키 도시오 지음, 이선희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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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브리. 늘 가슴 떨리는 이름이다. 이제는 영화를 잘 보지 않지만 한때는 지브리란 이름만으로 선택에 주저함이 없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란 이름은 나의 어린 시절 최고 작품들과 함께 하고 있다. 얼마 전 우연히 케이블에서 방영하는 <이웃집 토토로>를 아이와 함께 보는데 왠지 모를 울컥함을 느꼈다. 생각보다 아이가 집중해서 보길래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기억을 좀 더 과거로 돌리면 일본 문화가 불법이었던 시절로 올라간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상영되었지만 자막이 없던 그 시절까지. 불법으로 복사한 비디오 테이프를 보던 그 시절로, 그보다 조금 더 올라가 <미래소년 코난>으로. 이 책은 그 시절부터 스튜디오 지브리의 설립과 그 이후 만든 영화에 대한 프로듀스의 기억 등을 담고 있다. 지브리 작품을 통해 본 지브리의 철학과 역사다.


지브리의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원령공주>로 번역된 <모노노케 히메>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은 극장에 늘 걸렸고, 토토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미야자키 하야오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미래 소년 코난>이나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떠오르는 것처럼 누군가는 미야자키 하야오나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을 한 편 정도는 봤을 것이다. 너무 오만한 주장일까! 물론 <미래소년 코난>이나 <알프스 소녀 하이디>는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만든 작품들이 아니다. 그리고 지브리의 영어 철자(gibli)를 발음하면 기블리가 된다는 것은 재밌는 작은 에피소드 중 하나다.


이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거장이 되었지만 처음 그들이 극장용 영화를 만들 때는 자금 조달과 배급 등이 쉽지 않았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만들기 위해 도박으로 돈을 잃어주었다거나 원작이 되는 만화를 그렸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다. <천공의 성 라퓨타>를 만들면서 스튜디오 지브리가 발족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가끔 유명한 영화 때문에 그 작품이나 회사 등을 알게 될 때 이런 사실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연보를 외우지 않는 한 이런 실수는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그리고 지브리를 대표하는 캐릭터인 토토로의 탄생 비화는 어딘가에서 얼핏 본 듯하지만 재밌다. 두 편 동시 상영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지만 말이다.


내 기억 속 지브리 최고의 영화들은 아마도 <귀를 기울이면>까지다. 불법으로 수입한 영상을 비디오 테이프로 보면서 좋아했던 그 시절의 추억 때문이다. <붉은 돼지>는 무자막으로 봤는데 솔직히 몇 개의 장면을 제외하면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뭐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나의 취향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모노노케 히메>부터인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마지막 작품이다. <게드전기> 제작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몇 가지 이야기들은 지금도 생각나는데 그때 나왔던 이야기의 반론이 여기에 잘 나온다. 물론 <게드전기>가 르 귄의 <어시스 연대기>를 원작으로 했다는 사실은 지금 제대로 인식했다. 이 작품의 제작 이야기를 읽다보면 빨리 르 귄의 소설을 읽어야 하는데 하는 조급증이 생긴다.


지브리의 만화 제작에 대한 재밌는 뒷이야기로 이 책을 읽었는데 서점의 분류는 경제경영 쪽이다. 실제 이 제작 과정을 읽다 보면 두 천재 감독과 함께 영화를 만들고, 홍보를 하고, 스튜디오 지브리를 이끌고 나간 사람이 저자임을 알게 된다. 훌륭하고 좋은 프로듀스가 좋은 작품을 탄생시킬 가능성이 높다. 지브리의 작업방식대로 영화를 만들면 한 달에 5분 정도의 영화를 만든다는 이야기는 장편 하나 만드는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 <추억의 마니> 같은 작품이 120억엔이 넘는 매출을 일으켰지만 손익을 맞추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지브리의 영화가 얼마나 많은 제작비를 사용하는지 알려준다. 저자가 이 스튜디오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영화를 흥행시키기 위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감안해야 하는 부분이다.


지브리를 거쳐간 수많은 애니메이터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우뚝 솟은 인물들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다. 이 두 천재와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만들고, 키워온 것은 저자인 스즈키 도시오다. 그가 미야라고 부르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만들었던 영화들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 이외에 그 유명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힘을 보탠 애니메이터들이 나온다. 읽다 보면 추억이 방울방울 솟아나고, 그들의 열정과 노력에 박수를 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스즈키의 뛰어난 감각도 넣어야 한다. 지브리의 영화를 좋아하거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이 책은 아주 멋진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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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도시의 아이들 바다 도시의 아이들 1
스트루언 머레이 지음, 마누엘 슘베라츠 그림, 허진 옮김 / 위니더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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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려고 선택한 책이다. 청소년 판타지 소설을 잘 읽는 편이 아닌데 왠지 모르게 끌렸다. 분량이 좀 되는 책인데 청소년 판타지라 그런지 가독성이 상당히 좋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청소년 판타지의 설정을 따라가는데 세계관이 흥미롭다. 가파른 산 위에 세워진 도시,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산이다. 뭐지? 하고 읽다보면 이 세계가 대홍수 이후 생존한 사람들이 높은 산 위 도시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도시의 성당 지붕에 고래가 걸리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부족한 상상력에 도움을 주는 그림이 나온다. 소설 속 삽화는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발명가 소녀 엘리는 고래가 부패해 폭파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래를 찌른다. 그런데 그 속에서 손이 나오고, 한 소년이 나온다. 인공호흡으로 이 소년을 구한다. 이 소년을 본 재판관은 악마의 화신이라고 부르면서 화형에 처하려고 한다. 엘리는 그 소년이 화신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구하려고 한다. 왜 이런 확신을 하게 되었는지는 읽다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핀이라는 소년이 등장해 그 소년을 구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한다. 엘리는 거부한다. 발명가 소년은 발명가 엄마가 만들어 놓은 기계들을 손보면서 산다. 물론 자신의 발명품도 만든다. 작가는 천천히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하나씩 보여준다.


화신. 악마의 화신이다. 이 존재를 잘 알려주는 것이 클로드 헤스터메이어 교수의 일기다. 절친의 죽음과 그 후 찾아온 친구의 모습을 한 악마를 일기에 기록했다. 이 세계에서 세상을 물속에 빠트리고 신들을 죽인 존재가 악마다. 이 화신을 죽이면 죽은 후 성자가 된다. 지금까지 많은 화신이 나타났고, 재판관들은 이 화신을 죽이는 존재다. 하그레스 재판관은 가장 최근에 나타난 화신을 죽였고, 그 과정에 자신의 한쪽 팔을 잃었다. 화신은 악마에게 자신을 내어주면 폭발한다. 화신을 찢고 나온 악마의 힘은 엄청나다. 이 세계를 물에 잠기게 한 악마에 대한 두려움은 화신에 대한 두려움과 맞닿아 있다.


소년을 살리기 위해 엘리는 소년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화신이 아니라는 확신은 재판관들이 화신이라고 판단하면서 충돌한다. 세스라고 부르는 이 소년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 화형에 처해지기 전에는 아직 이 능력이 발현하지 않았다. 이 특별한 능력은 이 소설에서 몇 번이나 멋진 장면과 활약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 이전에 세스를 구해야 한다. 이때 다시 핀이 나타나 그를 구하는데 돕겠다고 한다. 그리고 화형식 바로 전 세스가 사라진다. 엘리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세스를 발견한다. 고래의 몸에서 나왔고, 바닷물을 조정할 줄 아는 특별한 소년이다. 화신을 찾아 죽이려는 재판관들과 이 소년을 지키려는 엘리의 대결이 펼쳐진다. 이 사이에 클로드 헤스터메이어 교수의 일기는 이 악마의 힘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려준다.


비밀처럼 숨겨둔 몇 가지 설정은 쉽게 알 수 있다. 작가가 아이들을 위해 비교적 쉽게 그 단서를 앞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종말 후 세계를 그려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미래 소년 코난>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활약 때문일까? 물에 잠긴 세계에서 섬들은 경작지가 되고, 도시가 된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아직 먼 곳까지 갈 마음이 없다. 아니 다른 섬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어쩌면 일부러 숨긴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나오고, 화신을 둘러싼 대결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바다 도시 속에서 세스를 숨기고, 비밀을 찾아내고, 화신과 싸워야 한다. 전형적인 설정이지만 화신이란 존재가 색다르다. 화신이 사람 몸속에서 꿈틀거려 그 몸을 빼앗으려고 하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아마존으로 검색하니 얼마 전 2편이 나왔다. 1권을 모두 읽은 지금 과연 작가가 이 세계를 어떤 식으로 그려내고, 풀어내었을지 궁금하다. 소설 속 세스의 능력과 그가 나오면 처음 내뱉은 말들이 어떻게 연결될지도. 그리고 엘리의 발명품들이 완성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아주 재미있는 역할을 한다. 다만 엄마였던 한나의 실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 엘리의 절친 안나에 대해 이야기를 다루지 않은 것은 스포가 너무 많을 수 있기에 뺐다. 표지 그림 속 한 명은 분명 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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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 스톡홀름신드롬의 이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
롤라 라퐁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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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래 전 아마도 퍼트리샤 허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그녀의 사건을 인식한 것은 한 팟캐스트에 이 이야기가 소개된 것을 들었던 그때다. 그리고 얼마 후 이 소설이 출간되었다. 인터넷에 퍼트리샤 허스트를 검색하면 그녀를 납치한 공생해방군과 스톡홀름 증후군이 함께 나온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녀의 행동을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니라고 보면서 그 이면을 추적한다. 대부호의 딸이 갑자기 극좌조직의 일원이 되어 강도짓을 하는 상황을 단순하게 보면 협박과 세뇌 말고는 쉽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단순화를 피해 그 당시의 사건들을 하나씩 검토하고 분석한다.


‘17일’이란 제목은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가 아닌 체포된 퍼트리샤 변호에 사용될 내용을 취합하기 위한 작업 일수다. 이 작업을 의뢰받은 인물은 진 네베바이고, 그녀는 작업 도우미로 비올렌을 선택한다. 이 소설의 앞부분에서 네베바의 자료를 찾고 요약하는 일들 비올렌이 한다. 네베바와 함께 한 시간이 17일이다. 퍼트리샤의 납치와 그녀가 처음 보낸 비디오 성명서 등이 나온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을 활자로 읽게 되면 나의 의미가 전달되는데 이 테이프들이 그런 역할을 한다. 납치된 후 그녀가 자발적으로 SLA(공생해방군)에 참여하는데 걸린 시간도 불과 두 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녀의 참여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그녀 재판의 핵심이다.


1974년 2월 4일 미국 언론재벌 상속녀 퍼트리샤 허스트가 납치되었다. 보통의 납치범들은 돈을 요구할 텐데 이 조직은 조금 다르다. 극좌 조직인데 돈 대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것을 요구한다. 이 선언문을 보고 비올렌이 놀라는 것은 미국에 존재하는 빈곤자의 숫자다. 비올렌은 68혁명의 나라에서 정치적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소녀다. 수많은 자료 속에서 퍼트리샤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고, 그 이면에 놓여 있는 감정을 파헤친다. 이것은 다시 네베바의 저서 <머시, 메리, 패티>로 이어진다. 그들은 각각 다른 시간 속에서 기존의 질서를 거부한 여자들이다. 물론 머시와 메리 이야기는 아주 간결하게 다루고 있다.


퍼트리샤의 전향을 두고 보여주는 부모의 모습은 다음의 문장으로 대변된다. “부모는 자기 자식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자식이 부모가 마련해놓은 정체성을 거부하고 다른 정체성을 가지려 하면 부모는 자식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요.” 실제 이 문장의 많은 부분이 사실이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이 문장을 단순화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그리고 전향한 그녀를 두고 과거의 그녀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와 감상이 뒤섞여 나온다. 약혼자에 대한 퍼트리샤의 신랄한 비판은 실제 가부장적 남성의 모습 그대로다. 어머니가 걱정하는 것도 딸의 안위보다는 자신들의 위신이지 않는가. 딸의 변론에 많은 돈을 쓴 것도 딸에 대한 사랑보다는 다른 감정이 더 우선했을 것이다.


소설은 단순히 퍼트리샤 허스트 사건에 국한해서 머물지 않는다. 네베바가 경험했던 처참한 현실과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조직에 대한 강력한 조처 등이 눈길을 끈다. 70년대 중반은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릴 때다. 인종 차별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되던 시절이다. 작가는 이 SLA 조직을 무너트리는 과정을 생중계로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몇 명의 SLA 조직원을 무력진압하기 위해 FBI 둥이 사용한 금액이 6백만 불이 넘는다. 이 조직이 요구한 것을 실행하는데 드는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 물론 이 조직을 요구 사항을 따라하면 그 여파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체제는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가끔, 아니 자주 상상도 할 수 없는 돈을 쓴다.


제목과 퍼트리샤 허스트란 이름이 나에게 작은 선입견을 불어넣었다. 단순히 퍼트리샤 허스트가 SLA에 가담하고 활동한 내용만 다룰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스톡홀름 신드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 이 사건을 단순화했다. 개인적인 습관 중 하나가 단순하게 보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이런 단순함의 집합들이다. 퍼트리샤가 타니아로 이름을 바꾸고, 은행 강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세뇌라고 말하지만 작가는 그녀의 자유의지란 결론에 도달한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인물인 화자가 긴 세월을 지나 이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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