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이선영 지음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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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작가 이름을 보았을 때 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작품은 이선영 작가의 소설이 아니었다. 작가의 이력을 보고 기억을 조정했다. 집에 있는 소설이다. 언제나 나의 저질 기억력은 작품과 작가를 헷갈린다. 책 읽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것이 아니라 바로 다른 매칭이 이루어진다. 이 틀린 매칭이 맞다는 기억으로 출력되고, 사실 확인 전까지 공고해진다. 가끔 틀린 기억은 합리화란 이름으로 사실을 왜곡하려고 한다. 사실을 확인해도 시간은 이 사실을 잊는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나의 저질 기억력처럼 작동한다. 이 소설 속 학교 성폭력도 그 중 하나다. 가해자가 보여준 발언과 행동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경기도 가평 청우산에서 여자 변사체가 발견된다. 투신 자살로 보이지만 백규민 형사는 이질감을 느낀다. 신원을 확인하다 사망자가 오기현이라고 확인한다. 그녀의 언니 윤의현을 통해 다시 확인한다. 마지막 확인 작업으로 의붓아버지 오창기를 데리고 온다. 그를 데리고 온 파출소 순경의 모습은 너무 공손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든 의문 하나 왜 지문 확인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고 넘어간다. 시체의 부식 정도나 상처 때문에 지문을 확인할 수 없었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한국은 주민등록증을 발급할 때 모두 지문을 날인하고 그 정보를 보관하고 있는데 말이다.


첫 장에서 백규민의 과거사가 간략하게 흘러나온다. 경찰대학 출신이라 출세가 보장되어 있는데 한 사건 때문에 좌천되어 가평으로 온 것이다. 아내와 이혼했고, 부모와도 좋지 않게 헤어졌다. 가슴 속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가 기현의 언니 윤의현을 봤을 때 끌린 것은 그녀 속에 깔린 어둠과 상처 때문이다. 그리고 자매라고 하는데 둘의 성이 다르다. 출생연도도 1년 차이가 난다. 의현을 낳고 재혼해 기현을 낳았다고 한다. 작가는 이렇게 자매의 과거사를 조금씩 쌓아 올리고, 기현의 죽음에 의문을 던진다. 실족사나 자살일까 아니면 타살일까? 부검을 해야만 이 사실이 명확해진다. 법적으로 부검을 하려면 부친 오창기의 동의가 필요하다.


오창기의 꽃새미 마을은 대지주의 권세 안에 자리잡고 있다. 파출소 경찰이 왜 그렇게 굽신거렸는지 알려주는 대목이 마을 앞 꽃가게들의 실제 주인이 누군지 알려줄 때 바로 나온다. 세상이 서울의 부정부패에 눈길을 줄 때 지방 토호들은 자신의 이익을 착실하게 챙긴다. 자신의 비리를 조력자들을 통해 덮는다. 오기현과 오창기의 사연은 그렇게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 마을 여자들을 달뜨게 하는 남자 신명호가 등장한다. 시력을 잃었고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그다. 시선을 이 두 남자에게 가져간다. 누가 그녀를 죽였을까? 그런데 어느 순간 머릿속에 다른 가능성 하나가 떠올랐다. 책을 덮기 전 그 가능성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교묘한 트릭을 사용해 독자의 시선을 가렸다. 이 사실이 풀려나올 때 장면 하나 하나가 의미를 가진 채 다가왔다.


학내 성폭력과 성추행,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등을 소재로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을 엮었다. 대학 내 성폭력 문제를 학내에서 어떻게 처리하고 대처하는지 보여주는 장면과 가해자의 말과 행동은 역겹지만 사실적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두려워하는 현실은 비정상적이지만 현실의 실제 모습이다. 오창기와 오기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언론에 드러나는 사건들은 피해자의 상처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이 피해자의 사연을 자신들의 이익에 이용하는 언론들이 얼마나 많은가. 탐사보도란 이름으로 공익을 위하는 척하지만 속내는 시청률이라는 점을 작가는 그대로 지적한다. 좋게 보면 공생이지만 결국 언론은 이 사실을 빨아먹으면서 기생한다. 공생이 되려면 지속적이거나 피해자의 상처가 아물어야 가능하다. 이 소설 속 이야기들은 상처를 봉합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진실의 무게가 주는 무거움을 감당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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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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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향이나 독서법과 잘 맞지 않은 작가들이 상당히 있다. 작가의 유명세나 작품의 호평에 끌려 이 소설들을 읽었을 때다. 물론 반대의 경우가 더 많지만 이런 작가나 작품을 만날 때면 한두 번 더 시도하고 긴 세월 그 작가와 떨어져 지낸다. 그레이엄 그린도 그런 작가 중 한 명이다. <권력과 영광>이란 작품이 워낙 유명해 읽었지만 솔직히 어떤 재미도 누리지 못했다, 아마 다른 작품도 그후 한 권 더 읽은 것 같은데 역시 난해하고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절판된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을 발견하고 사 놓았지만 오랫동안 묵혀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긴 시간이 흘렀고, 좀더 다양한 책을 경험했기에 이번에는 하는 심정으로 도전했다. 결론만 말하면 절반의 성공이다.


영국추리작가협회(CWA)와 미국추리작가협회(MWA)에서 선정한 세계 추리소설 100선에 동시에 올라 있다는 정보는 나 같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이 선정에 실패를 경험한 적도 여러 번 있지만 그래도 이런 리스트는 그 장르를 이해하고 즐기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 작품을 가장 잘 소개하는 것은 역시 책 소개의 한 문장이다. ‘작가는 선악, 천국, 지옥, 구원과 같은 가톨릭 교리와 도덕과 신앙에 대한 물음들을 담아냄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소설로 승화시킨다.’ 개인적으로 이런 주제를 좋아하지 않고, 예상과 너무 다른 전개로 이어지면서 상당히 나의 집중력을 깨트렸다. 물론 부분적으로 재밌고 빠르게 읽은 부분이 있지만 긴 시간을 집중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힘들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 완독하게 된 이유다.


브라이턴이 영국의 화려한 휴양지라고 하지만 나에겐 낯설다. 이 낯선 곳에서 갱들은 영역 싸움을 한다. 패배한 조직은 승리한 쪽으로 흡수되거나 완전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열일곱 살 소년 핑키가 조직을 이끈다. 이런 정보가 나오기까지는 지면이 더 필요하다. 신문 기자 출신 헤일이 이벤트 작업을 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그를 위협하는 조직이 바로 핑키 등이다. 카드를 발견한 사람에게 10실링을 주는 행사 때문에 그는 브라이턴을 돌면서 살짝 카드를 놓아둔다. 그러다 매력적인 아이다를 만나 호의를 배푼다. 그녀에게 경마의 승리마를 알려주는 일까지 한다. 이 짧은 만남이 헤일의 죽음을 파헤치는 탐정 역할을 그녀에게 맡긴다.


헤일의 검시 결과는 심장사이지만 그를 죽인 핑키는 완벽하기를 바란다. 헤일이 거쳐간 곳을 돌아보고 죽은 후에 가서는 안 되는 곳을 발견한다. 스노 식당이다. 이 식당에 카드를 회수하러 간다. 없다. 이미 로즈라는 웨이트리스가 그 카드를 발견했다. 카드를 놓아둔 사람도 기억한다. 경찰이 헤일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이 사건을 파헤치면 이 일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핑키는 로즈가 불안하다. 그녀의 증언이 나오면 자신이 살인자로 지명되고 교수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이 불안감이 그녀에게 호의를 배풀게 하고, 로즈는 핑키에게 끌린다. 이 둘의 나이를 보면 핑키는 17세, 로즈는 16세다. 로즈의 증언을 막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핑키와 결혼하는 것이다. 아내의 증언이 효력이 없다는 변호사의 의견이다.


미성년자의 결혼이란 문제와 함께 이 소설에서 핑키와 로즈를 괴롭히는 것이 바로 카톨릭의 죄의식이다. 핑키는 어릴 때 부모의 성교를 보고 자랐고, 이것을 끔직한 대죄로 여긴다. 여자가 자신에게 다가와도 거부한다. 술도 마시지 않는다. 그에게 각인된 교리가 그의 살인과 이율배반적으로 작용한다. 죄를 지어 지옥에 떨어질 것이란 불안은 현실이 지옥이란 속된 말에 묻힐 수 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핑키가 저지르는 살인 등을 보면서 왜 그렇게 로즈에게 집착하고 불안해하는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마 종교적 문화적 차이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런 이 커플에게 계속해서 압박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아이다다.


아이다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게 대응한다. 그녀가 헤일을 위해 살인자와 증거와 증인을 찾는데 이때의 감정은 핑키 등과 다르다. 사회적 법률과 작은 도움에 대한 호의 때문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이성에 의해 움직이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분신사바 같은 판을 이용해 정보를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한다. 아이다가 로즈를 만나 그녀의 순수함에 경험이란 독을 던지는 장면은 현실이 지옥이란 말과 이어진다. 사람이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두 여자의 대화는 작가가 이 소설 속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순수한 사랑에 믿음과 열정을 가진 그녀가 앞으로 마주할 핑키의 욕설을 작가가 지옥이라고 표현한 것도 강한 여운을 준다. 읽기 쉽지 않고, 이해하지 못한 설정과 장면들이 많지만 곱씹어야 할 대목들이 많다. 언젠가 다시 이 작가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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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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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수집한 티셔츠에 대한 에세이다. 그가 소장한 수백 장의 티셔츠가 열여덟 편의 에세이로 살짝 흘러나왔다. 사진과 함께 그 티셔츠에 대한 간결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티셔츠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대학 때 만들어 입었던 동문 티셔츠에 대한 나의 애정은 상당했는데 너무 입다보니 낡고 더러워 버려졌다. 하루키도 자주 입는 티셔츠는 버렸다고 한다. 책 속에 나온 티셔츠 중 자주 입는 것도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한 번도 입지 않은 티셔츠도 있다. 사실 이 에세이는 바로 ‘이런저런 이유’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지만 에세이도 상당히 좋아한다. 에세이의 매력에 빠진 것은 소설보다 훨씬 뒤인데 사실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그가 에세이에 보여준 삶과 내가 읽은 한도 안에서 알 뿐이다. 마라톤, 철인3종 경기, 위스키, 재즈 등의 음악, LP판 들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본 것이라 알고 있지만 그가 미국 대학에서 강의한 것이나 그곳에 몇 년이나 머문 것 등은 낯선 정보다. 개인에 대한 덕질을 했다면 이런 정보들이 나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사소한 정보들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게 되면서 휘발성 정보가 되었다. 물론 <먼 북소리>나 음악 대담을 다룬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같이 책으로 나왔다면 다른 문제다.


하루키가 자신의 컬렉션 중에서 가장 아끼는 티셔츠라고 말한 것은 ‘TONY TAKITANI’ 티셔츠다. 마우이 섬 시골 마을 자선 매장에서 1달러에 샀다고 한다. 토니 타키타니가 어떤 사람인지 맘대로 상상하다 단편 소설을 썼고, 이것이 영화화되었다고 한다. 재밌는 에피소드다. 하루키가 결코 입지 못하는 티셔츠 중 하나가 바로 자신과 자신의 책을 소재로 한 티셔츠다. 하루키의 인기가 세계적이다 보니 많은 나라에서 굿즈로 제작된다. 이 중 하나가 티셔츠인데 그가 자신의 이름이 나온 티셔츠를 입고 다니기 부끄럽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지만 입는다고 누가 뭐라고 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너무 유명한 작가이지만 개인 사생활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으니 이 부분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서핑 티셔츠에서 시작해 동물, 대학교, 록 가수, 차량, 홍보용, 위스키, 맥주 등에 대한 티셔츠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직접 산 것들 대부분은 싼 가격에 산 것들이다. 지역 할인 매장을 이용해 1달러 대에서 산다. 물론 록 가수의 콘서트 장에서 산 것은 다르다. 선물로 받은 티셔츠도 대단히 많다. 에피소드 중 하나는 서점에서 티셔츠를 사려고 했는데 그를 알아본 직원 때문에 수많은 책에 사인을 열심히 해주고 나왔다는 것이다. 이때 받은 티셔츠는 선물로 공짜. 특별 인터뷰를 보면 그의 책이 처음 나온 후 하와이의 중고 티셔츠 가격이 두 배 이상 뛴 모양이다. 이 책의 효과라고 진단하는데 어느 정도 동의한다. 에세이에 실리지 못한 수많은 티셔츠들이 이 인터뷰에 실려 있다.


이 에세이를 읽다 보면 하루키의 일상이 조금씩 나온다. 그의 에세이 특유의 매력적인 문장과 함께 어우러져서 말이다. 자신의 이름이 나온 티셔츠는 입기 어렵다고 하면서 다른 록 가수의 티셔츠는 입는 것이나 어떤 특정 단어가 프린팅 된 티셔츠는 좋아하는 모습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도 들지만 뭐 어쩌겠는가. 옷은 자신이 입는 것인데.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무지 티셔츠를 입게 된 사연을 알려주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나의 저질 기억력을 떠올려봐도 하루키가 정장을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마라톤 등을 할 때 입은 옷은 기억이 나는데 말이다. 어쩌다 모였다고 하지만 자신이 좋아해야만 그것이 가능한 것을 떠올리면 그가 평생 읽지 않을 책이나 듣지 못할 음반에 대한 이야기가 왠지 나의 수집욕을 연상시킨다. 나도 평생 읽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자료들을 얼마나 열심히 모았는가.  아내가 낡았다고 버리려고 한 물건들이 갑자기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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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 게임 2 - 속임수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69
레오폴도 가우트 지음, 박우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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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 시리즈 3부작 중 두 번째 소설이다. 전편과 이어진다. 지니어스 게임에 참여한 세 명의 천재들이 범죄자로 수배되고, 자신들의 장점을 극대화에서 FBI와 통신망의 눈길을 피해 렉스의 형 테오의 숙소를 찾아간다. 형의 숙소에서 발견한 정보들은 놀라운 것들이지만 경찰이 수사 손길이 다가오면서 떠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은 미국을 탈출해 툰데의 고향 나이지리아로 떠난다. 이번 이야기는 툰데의 고향 아키카 마을을 지배하는 독재자 이야보 장군을 유엔 평화유지군에게 체포당하게 하는 것이다. 그가 체포되기 위해서는 나이지리아를 벗어나야 한다. GPS로 자신의 위치를 늘 확인하는 그를 체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카이, 렉스, 툰데 삼총사가 FBI의 눈길을 벗어나 나이지리아로 오고, 독재자 이야보 장군을 속이는 과정을 냉정하게 평가하면 현실성 제로라고 봐야 한다. 긴박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드론 정찰이나 CCTV를 이용한 추적 등은 과대포장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 더 과장된 것은 미국 공항을 너무 쉽게 통과하는 일이다. 만약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미국은 제2의 9.11 사태를 너무 쉽게 마주할 것이다. 그러니 소설 속 설정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런 현실성을 뛰어넘은 재미를 주는 것은 역시 세 명의 역할 분담과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해결 방법이다. 카이는 인맥을 통해 자신을 도와줄 사람들을 찾고, 렉스는 해킹으로 정보를 조작한다. 툰데의 GPS교란기는 정보통신기기를 마비시킨다. 이들의 협력이 물적, 인적 감시망을 뚫게 한다.


툰데의 고향에 도착해서 처음 만난 인물은 이야보 장군의 딸 나야다. 나야와 함께 돌아온 마을의 풍경은 일주일 사이에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마을에 희귀 광물자원 탄탈럼이 있어 거대한 땅들이 파헤쳐지고 있었다. 이 일에 동원된 사람들은 당연히 마을 사람들이다. 이 개발사업은 단순히 장군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이 사업에 참여한 인물 중에는 놀랍게도 카이의 아버지가 있다. 전범과 손을 잡고, 비인도적인 사업에 아버지가 뛰어든 것이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중국 사업가가 홀로 이 사업에 뛰어든 것처럼 처리했지만 이런 사업의 뒤에는 언제나 중국 공산당의 손길이 머물고 있다. 만약 이 사업에 문제가 생긴다면 카이의 아버지가 중국에서 어떻게 처리될지 알 수 없다.


채굴 장비를 새롭게 만들겠다는 툰데의 말은 렉스와 카이의 동업 여부와 함께 장군의 마음을 혹하게 한다. 솔직히 십대들과 사업을 논의하는 독재자가 있다고 믿기 어렵다. 그리고 카이가 보여준 새로운 광물에 대한 정보에 너무 쉽게 혹하는 장군의 모습은 아주 허술해 보인다. 이 소설이 오락용으로는 부족함이 없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이것은 렉스가 프로그램의 오류를 너무 쉽게 발견하고 고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툰데가 채굴기를 개발하고, 만드는 과정이 겨우 며칠이란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작은 장비라면 가능하겠지만 거대한 채굴기라면 장비 또한 작지 않아야 한다. 천재가 도면을 그리는 것과 그것을 조립하고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속도감은 이런 현실성을 살짝 잊게 만든다.


키란의 등장은 예상한 것이다. 그가 이야보 장군의 동업자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는 렉스를 데리고 가서 자신의 라마 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하려고 한다. 그를 인도로 데리고 가서 자신이 해석하지 못한 프로그램의 몇 줄을 풀어주고, 자신의 양자컴퓨터가 더 많은 정보를 얻고 가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의 연구실 장면은 열정적이고 대단한 집중력을 가진 천재들의 집합소다. 아직 키란의 정확한 음모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터니널이란 단체가 이야보 장군의 진영에 스며든다. 한때 렉스의 형이 참여했던 조직이다. 이 단체의 목적도 현재는 알 수 없다.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장군의 독재와 탐욕뿐이다. 이 모든 것들이 밝혀지는 것은 아마도 3권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로운 무대로 이동하면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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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마이클 코리타 지음, 최필원 옮김 / 황금시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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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봉작의 원작 소설이다. 소설을 읽기 전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으로 등장한다는 것도 알았다. 다행이라면 예고편을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전 예고편을 조금 봤는데 원작과 다른 부분들이 여러 곳 보인다. 안젤리나 졸리가 맡은 역할의 비중도 상당히 높아진 것 같다. 가장 큰 차이라면 도망다니는 제이스의 나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 속 아이는 아무리 봐도 열네 살로 보이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살인자 형제들은 블랙웰 형제도 내가 생각한 이미지와 상당히 다르다.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영화를 본 사람의 후기를 간단히 읽었는데 원작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이유들이 내가 영화를 본 후 오랫 동안 원작을 읽지 않게 만들었다.


친구들의 놀림으로 열네 살 제이스가 채석장에서 다이빙하는 연습을 하는 중 처참하게 살해된 시체를 발견한다. 그러다 두 명의 경찰이 다른 누군가를 죽이는 장면을 보게 된다. 물에 숨어 어떻게 이 위기를 피할까 고민한다. 살인자들은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리고 장면은 바뀐다. 몬태나에서 촉법소년 갱생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문제아들에게 생존법을 가르치는 이선 서빈의 집이다. 폭설에 그를 찾아온 인물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그녀를 구하러 간다. 그에게 생존법 수업을 받은 제이미 베넷이다. 제이미는 증인보호프로그램을 믿을 수 없어 하는 부모의 요청으로 이선에게 아이를 맡기려고 한다. 이 일을 이선과 그가 가르칠 아이들에게도 위험이 될 수 있다. 결국 이선은 이 아이를 맡게 되고 문제가 생긴다.


영화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겠지만 소설은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가장 먼저 이선과 그의 아내 앨리슨, 전직 산림 소방대원이었던 해나 페이버와 증인 소년 제이스, 그리고 무시무시한 악당들인 블렉웰 형제 등이다. 졸리가 맡은 역할은 해나다, 증인인 아이가 누군지 정확하게 모른 채 이선은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가서 생존수업을 한다. 제이스는 이선이 알려주는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성격을 바꾼 채 아이들과 동떨어져 있다. 물론 이름을 바꾸었다. 블랙웰 형제는 자신들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황무지 속에서 생존수업을 받고 있는 제이스의 정확한 위치 정보를 얻고 싶어한다. 보안관을 고문해서 정보를 얻고 죽인다. 이 과정에 산불이 난다. 이 산불을 해나가 본다.


이선을 이전과 달리 자신의 위치 정보를 보안관에게 보내지 않았다. 혹시하는 걱정 때문이다. 아내 앨리슨에서 GPS통신으로 문자만 보낼 뿐이다. 이 정보를 악당들이 얻고, 앨리슨을 찾아온다. 이 악당들은 아주 영리하게 같이 모여 있지 않는다. 한 명을 공격해도 다른 한 명이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 대화법도 상당히 특이하다. 둘이 대화를 나누면서 원하는 정보를 얻는다. 살인에 조금의 주저도 없다. 앨리슨을 만나러 오는 과정에 보안관을 망설임 없이 죽이는 장면이 두 번이나 나온다. 그런데 읽다 보면 어떻게 제이스가 이 캠프에 참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과 제이스는 어떻게 이들을 벗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마지막에 도달하면 하나는 풀린다.


소설 후반은 도망친 소년이 해나와 만나고, 거짓말을 하고, 이 소년의 뒤를 쫓는 블랙웰 형제와 이선의 모습이 그려진다. 여기에 거대한 산불은 생명을 지닌 듯 황무지를 불태운다. 몇 가지 사건이 생기고,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섣부른 기대와 추측은 금방 사라진다. 이선의 생존수업은 제이스에게 좋은 교육이 되었다. 불타는 황무지와 고산지대를 배경으로 쫓고 쫓기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점의 변경이 만들어내는 작은 트릭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살기 위해 도망치는 해나와 제이스, 죽이기 위해 황무지 속으로 뛰어든 킬러 형제들, 어쩔 수 없이 킬러들을 인도하지만 기회를 노리는 이선 등의 심리화 행동이 엮이고 꼬이면서 박진감 있게 진행된다. 그리고 감동적인 희생 정신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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