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소녀들
팜 제노프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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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우리가 기존에 누리고 있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여성 비밀요원들은 공식적으로 다루어진 적이 없는 인물들이다. 물론 비밀요원 자체가 공식적으로 다루어진 적이 없지만 이 시대 여성들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영국 특수작전국 소속 엘레노어 트리그의 위치를 생각하면 쉽게 드러난다. 엘레노어가 여성 비밀요원을 선발하고 관리하게 된 데는 남성 비밀요원들이 프랑스에서 자주 연락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첩으로 취급받을 확률이 낯은 여성 요원에 대한 아이디어를 그녀가 내놓았다. 이 아이디어가 채택되면서 실무 담당자가 되었다. 그 당시는 파격적인 인사다. 그녀가 선발하고 훈련하고 프랑스로 보낸 여성들의 사진을 발견한 인물은 그레이스다.


1946년 뉴욕 출근길에 자동차 사고가 일어난다. 그레이스는 꽉 막힌 도로를 피해 그랜드센트럴역으로 간다. 그곳에서 갈색 여행 가방을 발견한다. 호기심에 가방을 열고 십여 장의 여성 사진을 보고 그것을 챙겨 출근한다. 그녀는 미망인이다. 남편은 대학 졸업 후 군복무를 위해 가던 중 과속으로 죽는다. 다른 전쟁 미망인과 다르다.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던 중 한 법률사무소에 취직한다. 그녀가 볼 때 그녀가 없어도 별문제 없는 것 같은 사무소다. 전후 유럽에서 건너온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머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읽다 보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일하는 자선사업처럼 다가온다.


마리는 엘레노어가 선발한 비밀요원이다. 그녀의 유창한 프랑스어가 선발의 주요한 요인 중 하나다. 그녀는 딸이 한 명 있다. 남편은 나쁜 놈이라 헤어졌다. 딸을 친척집에 맡겨 두고 런던에서 돈을 번다. 이런 그녀에게 더 많은 급여를 준다는 엘러노어의 제인은 매력적이다. 스코틀랜드 훈련소에 간다. 이곳에서 그녀는 다른 여성 비밀요원들을 만난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조시다. 훈련은 힘들다. 포기하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녀들을 감독하는 여성은 꿈도 프랑스어로 꾸라고 말한다. 그녀들은 단순히 비밀전문을 보내는 훈련 외에 간단한 호신술과 총기 등을 다루는 법도 배운다. 이 교육 과정은 엘러노어가 강하게 주장한 부분이다.


이 세 여성이 이리저리 교차하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레이스가 현재라면 엘러노어와 마리가 과거다. 힘든 훈련을 받는 마리, 이런 훈련을 받는 여성들을 조용히 지켜보는 엘러노어, 이 여성 비밀요원들의 사진을 발견한 그레이스 등이 주연이다. 현장에서 직접 위험을 겪으면서 활약하는 인물들이 마리 등이라면 그 후방에서 그들을 돕는 인물이 엘러노어다. 열두 장의 사진 속 여자들은 소재 파악이 되지 않아 실종 상태다. 그레이스는 이 사진들에 담긴 미스터리를 풀려고 노력한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은 마크다. 우연히 만난 후 원나잇을 하고 영원히 만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서로 다른 위치와 시간대 속 여성들의 삶을 통해 전쟁이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숨기고, 왜곡하고, 억압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숨겨진 진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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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션 제로 철도 네트워크 제국 3
필립 리브 지음, 서현정 옮김 / 가람어린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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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네트워크 제국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 권이다. 오랜만에 나왔다. 2권 이후 3년 이상이 시간이 지나 기억이 가물거렸는데 읽다 보니 조금씩 살아났다. 이번 이야기에서 레일창조자들에 대한 작은 의문이 풀리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의문을 타고 들어가면 또 다른 의문과 마주한다. 작가가 새로운 이야기를 내주지 않는 이상 이야기는 여기서 멈춘다. 하지만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던 세계관이 3부에 오게 되면 완전히 익숙해진다. 물론 과학적 기술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런 SF 장르에 완벽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그 소설은 너무 재미없을 것이 분명하다. 과학은 소설의 상상력에 힘을 보태는 부수적인 존재다.


철도 네트워크 제국이 새로운 철도 노선인 웹 월드가 생기면서 둘로 나누어졌다. 구제국의 황제는 이것이 불만이다. 자산의 전투 기차들을 동원해 새로운 제국을 부수고 싶다. 이 일을 하려면 가디언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지난 번에도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이 가디언들을 보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과 너무 닮아 보인다. 물론 좀 더 현실적이다. 거대한 데이터 어딘가에 자신들의 본체는 놓아두고 필요에 의해 실제 세상에 분신으로 내려온다는 설정이 신화와 과학의 결합처럼 다가온다. 이 가디언들은 자주 현실 세계에 내려와 인간들과 교류를 하고, 누군가를 은밀하게 도와준다. 그리고 그들이 레일창조자들을 무너트렸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그 이유가 마지막에 나온다. 아주 보수적인 이유다.


젠이 평화롭지만 지루한 삶을 살고 있는데 한 통의 암호 메시지가 온다. 좌표다. 노바에게서 온 것 같다. 자신이 현재 누리는 것을 모두 버리고 그는 그곳으로 간다. 너무나도 유명해서 그의 외모는 늘 감시의 대상이다. 그가 변장하고 은밀하게 달아난다고 해도 금장 가디언과 기차들은 그의 정체를 알아챈다. 기차들의 도움으로 좌표가 있는 곳에 도착한 그는 노바를 만난다. 노바는 레일창조자들의 세계를 발견하고 자신이 원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그리고 그곳은 철도 네크워크의 출발점 스테이션 제로다. 새로운 은하로 철도가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레일창조자들 깨울 필요가 있다. 그 데이터를 레이븐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젠의 모험을 다시 시작한다.


이번 소설에서 트레노디 눈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꼭두각시 황제가 된 그녀가 진정한 황제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려낸다. 연약한 그녀가 조금씩 자신의 권력을 찾아가는 과정은 작은 계기를 통해 시작한다. 전편에서 새로운 악역으로 생각한 크레이트들이 트레노디에겐 최고의 병사들이 된다. 혼자 제대로 된 경호원도 없이 도시로 나온 그녀가 위험에 처했을 때 크레이트 스카가 그녀를 구해준 그때부터다. 이 무시무시한 크레이트의 활약은 후반부에 아주 강렬하게 드러난다. 자신에게 대항하는 적들에게 이 크레이트들은 공포이자 재앙이다. 실제 한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시리즈의 마지막이란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은 자라 청년이 되고, 권력은 이제 치열한 다툼 끝에 한 곳으로 집중된다. 철도 네트워크 제국의 진짜 힘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려주는 대목을 보면서 잠깐 생각에 잠긴다. 인공지능을 가진 기차들이 어떤 활약을 펼치는지, 바이러스에 의해 잠식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도 보여준다. 너무나도 방대한 세계이지만 작가의 의해 간결하고 단순하게 그려졌는데 이 부분은 다른 작가들에 의해 새롭게 확장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우주를 기차로 달린다는 설정은 이미 <은하철도 999> 등으로 본 것이다. 물론 더 빠르고 더 먼 미래를 다루지만 말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은 개인적으로 아주 인상적이고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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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뒤 맑음 - 하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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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보다 분량이 많다. 하지만 익숙해진 이야기 전개와 문장 덕분인지 진도가 잘 나갔다. 상권 마지막에서 이츠카의 부모가 신용카드 사용을 중지했다. 부모의 바람은 신용카드 사용을 중지했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와라는 의도였지만 이 두 소녀는 아직 돌아갈 마음이 없다. 미국을 보는 여행을 더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때 그녀들이 보여준 선의가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지면서 조금 더 여행이 가능해진다. 지속 가능한 여행에 가장 필요한 자금을 이츠카의 알바로 모으는 것이다. 숙소 문제는 그들의 선의로 만난 헤일리의 방에서 거주하면서 해결한다. 한동안 이들은 헤일리의 거주지인 내슈빌에 머문다. 이 시기의 그들을 보면 여행의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내슈빌의 바에 취직한 이츠카는 자신이 취업 비자 없음을 알린다. 그 사실을 알지만 주인은 이츠카가 속여 몰랐다는 뻔한 거짓말을 사전에 맞춘다. 알바를 두 곳에서 하면서 다음 여행을 위한 경비를 모은다. 아빠의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와 자신이 직접 돈을 벌 때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신용카드를 끍을 때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던 것이 자신이 벌어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비용 지출에 좀 더 신경을 쓴다. 낮에 일하는 곳에서 남자가 데이트를 신청해도 영화 관람료가 아까울 정도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그녀가 세상의 쓴맛을 잠깐 맛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녀의 성장도 같이 이루어진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부담스러운 이츠카와 달리 레이나는 천진난만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이 둘의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한 방식은 이츠카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상권에서 이들이 여행하는 것을 보고 걱정했는데 이 걱정이 약간이나마 문제가 되는 순간이 한 번 일어난다. 변태라고 해야 하나. 레이나의 친화성은 여행이 길어지고 비용 문제가 생길 때 작은 돌파구가 된다. 가끔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내슈빌에서 일본만화동호회 사람들과의 만남을 보면서 왠지 모를 공감을 한 것은 왜일까?


이들이 다음 여행을 위해 돈을 모을 때 한 달 이상 부모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이 상황을 보고 나라면 어떤 반응을 할까 생각했다. 아마 엄청나게 걱정했을 것이다. 어쩌면 찾으러 갔을 지도 모르겠다. 이 긴 연락두절을 두고 부모들의 생각과 행동이 갈린다. 걱정하면서 기다리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실종을 알리고 제보를 기다리는 부모로. 레이나의 아빠인 우루우는 후자다. 어쩌면 대부분의 부모는 우루우처럼 하지 않을까?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아이가 더 멀리, 더 많을 것을 보고 경험하고 오기를 바랄까? 물론 이런 마음도 존재할 것이다. 이 판단은 아마 아이와 함께 살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려운 선택이다.


중간 중간 우여곡절이 있지만 소녀들의 여행은 계속 된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면서 겨울의 느낌이 달라진다. 여행하는 도중에 만난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여행을 응원하고 도와준다. 그들이 큰 탈 없이 긴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데는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릴러의 장면들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 현실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이츠카가 크리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상당히 흥미롭다. 작가는 후반부에 한 문장으로 이 특별한 관계를 설명한다. 예상하지 못한 미래의 모습이라 놀란다. 그리고 아이들의 가출이자 긴 여행은 부부가 가진 생각의 틈새를 들여다보게 한다. 사랑과 신뢰를 놓고 고민하는 리오나의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천진하고 무모하고 용감한 소녀들의 여행이 코로나 19로 잠시 사라진 여행 세포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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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뒤 맑음 - 상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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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읽었다. 한때 이 작가의 소설을 열심히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았지만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공감의 영역이 넓어졌다. 그 사이 많은 책을 샀고, 영화를 먼저 보는 바람에 묵혀 둔 책도 있다. 뭐 나에게 흔한 일이다. 상당히 많은 작품이 번역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책 뒤 표지의 목록을 보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책들이 출간되었다. 이 작가의 엄청난 팬이 아닌 관계로 내가 그 책들을 모두 읽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최소한 집에 사 놓은 책은 모두 읽고 싶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바람이지만.


책 표지가 시선을 끈다. 많은 여백과 밝은 색이 왠지 여유롭게 다가온다. 이전까지 본 표지와 다른 느낌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이라 선택했는데 실제 내용을 읽어 나가면서 조금 곤혹스러웠다. 책 내용을 제대로 읽지 않은 탓이다. 17세 이츠카와 14세 레이나, 이렇게 일본 소녀 둘이 부모들에게 편지 한 장만 남긴 채로 미국을 보는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첫 장을 펼쳐 읽을 때만 해도 레이나의 엄마가 나와 어른이 주인공이겠구나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큰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소녀들의 여행을 보면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들은 내가 읽었던 수많은 스릴러의 장면들이었다. 나만 그런가?


사촌인 두 아이가 사라졌을 때 부모는 당연히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은 아이들이 가져 간 신용카드를 중지하라고 말한다. 이 아이들은 뉴욕을 떠나 여행을 하는데 신용카드는 잘 곳, 먹을 것, 이동하는 것 모두 사용된다. 부모는 카드 내역만 보면 이들이 어디를 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서 잤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일탈을 두 집안에서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 이츠카의 아버지는 자신이 20살에 경험했던 세계 여행 때문에 상당히 관대하다. 레이나의 엄마도 관대한 편이지만 남편은 아이들이 빨리 돌아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두 부모의 생각들은 두 아이가 여행에서 경험하는 이야기에 비하면 아주 작은 분량이다.


한도가 많은 신용카드는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숙소에서 잘 수 있게 한다. 이들이 긴 여행을 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신용카드의 힘이다. 신용카드가 되지 않아 현찰을 뽑았을 때 그 금액이 3백 불이었는데 이 돈은 그들이 하룻밤 잔 호텔의 숙박비 정도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안전한 잠자리는 그들의 여행을 더 진행할 수 있게 한다. 여행을 하면서 그들은 여러 사람을 만난다. 작은 실수도 있지만 현재까지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라면 미성년자 두 소녀가 운전을 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작은 안전상의 문제라고 할까. 만약 이들이 차를 운전할 수 있었다면 뜨개질남 크리스이나 미시즈 패터슨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도보와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은 여행자의 시선을 많이 보여줄 수밖에 없다. 그 모습이 잔잔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읽다 보면 이 아이들의 여행을 어떻게 봐야할 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어린 두 소녀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아이들이 경험하는 여행은 무모한 점이 많다.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행동하고, 용감한 부분도 있지만 세상은 선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불안감은 역시 스릴러 때문일까? 처음에는 조금 낯설게 느껴지면서 몰입도가 떨어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속도가 붙었다. 불안감 뒤에는 이들의 여행에 대한 부러움도 있다. 레이나 아빠 우루우는 아츠카 집이 아이들 신용카드 사용에 너무 관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이 부분에서도 생각이 둘로 나누어진다. 아이들의 의지가 얼마나 굳센 것인지에 달려있지만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하권에서 이들의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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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주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박해로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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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로의 공포소설은 언제나 한 공간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한다. 바로 섭주다. 가상의 공간인 이곳에서 이전 세 이야기가 펼쳐졌다. 읽으면서 작가가 중간중간 풀어낸 작은 단서를 통해 이전 작품의 한 자락을 살필 수 있었지만 나의 저질 기억력은 그것들을 완전히 떠올리지 못했다. 아쉽다. 만약 이 소설의 제목이 <섭주>가 아니고, 섭주가 무대가 아니었다면 아쉬움은 그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다. 한 지역을 배경으로 연작소설을 쓰게 되면 그 공간이 현실처럼 다가오고, 그 지명이 하나의 공포로 각인된다. 최소한 현재 나에게 섭주는 그런 곳이다. 이 소설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바로 앞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표자가 섬뜩하다. 다섯 마리의 뱀이 다섯 색깔로 그려져 있다. 이 뱀들의 정체는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역시 보면 볼수록 섬뜩하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이 뱀들의 악의 상징처럼 다룬다.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뱀에 대한 평가와 대우가 달라지는데 작가는 사악하고 나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뱀들은 영성을 가지고 있지만 물리적 힘은 절대적이지 않다. 은밀하게 적은 적을 상대할 때는 이 힘이 대단하지만 그 실체를 알게 되면 물리적 타격이 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고전 전설이나 민담에서 본 것처럼 무찌를 수 있는 존재다. 완전히 영적인 존재가 아니란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고, 뱀들을 아주 쉽게 부려 상대방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최영우가 우연히 상갓집 돈을 훔쳐 달아나 흉가에 들어가면서 문제가 일어난다. 흉가에 간 이유는 출소 후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흉가에서 거울과 방울을 발견한다. 그가 돈을 훔친 곳은 다흥이고, 경찰이 수사망을 쪼여오자 달아난 곳은 섭주다. 최영우가 이야기의 문을 열었다면 본격적인 이야기는 서경을 통해 일어난다. 서경은 노처녀 초등학교 교사다. 학교에서 별명이 B사감이다. 얼마 전 사귀었던 남자가 아버지와 정치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결혼이 무산되었다. 둘만의 살림을 살 만도 한데 서경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쓸 힘이 없다. 학교에서는 거의 왕따다. 그러다 엄마 꿈을 꾼 후 제석정이란 곳에 간다. 이곳에서 방울과 거울을 줍는다. 이때 거대한 뱀이 나타난다. 이 뱀은 그곳에 살고 있는 굶주린 고양이들과 격렬한 싸움을 하고 결국 죽는다. 이 장면을 읽을 때 서늘했다.


이 제기를 가지고 온 이후 서경은 이상한 꿈을 꾼다. 몸에 열은 나는데 체온을 재면 정상이다. 무병이란 생각이 먼저 든다. 의정부에서 양어머니가 내려와 그녀와 잠시 머문다. 아픈 그녀 대신 학교에 전화를 하는데 선생들이 그녀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 전화로 드러난다. 아픈 몸을 이끌고 학교에 갔을 때 모습은 또 어떠한가. 언어 폭력, 뒷담화, 갑질 등의 다양한 저질 행위들이 벌어진다. 위축된 삶을 산 그녀에게 최악의 환경이다. 결혼이 무산된 아픔과 이 억눌린 감정들 틈새로 어두운 기운이 침입한다. 그녀가 꾸는 꿈은 현실과 환상이 엮이고 꼬인 것이다. 그리고 이 힘을 그녀가 받아들이면서 성격이나 행동 등이 변한다. 이후 이 힘을 발현하는데 조금의 거침도 없다. ‘폭주’란 목차가 나올 정도다. 이제 뱀이 사방에서 꿈틀거리고 나타난다. 죽음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언제나처럼 가독성이 좋다. 한국 무속을 바탕으로 서서히 젖어드는 서늘함은 이번에도 유지된다. 중간에 사파왕와 우녀의 전설은 민담의 공포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전설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박해로의 전작들에 나온 이야기들이 이 소설 속에서 자주 말해진다는 점이다. 언제 시간이 나면 하나씩 찾아보면 재밌을 것 같다. 소설 중간에 추락한 소설가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전작처럼 무녀들이 등장해 거대한 힘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무녀와의 대결은 예상 외의 장면으로 이어진다. 작가가 보여주는 정통 무속신앙과 호러의 결합이 이번에는 더욱 부드럽게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살> 이후 최고다. 책 마지막을 덮으면서 아직도 ‘섭주’ 이야기가 끝날 때가 아니라고 느꼈다. 또 어떤 섭주 이야기로 돌아올지 다음 여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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