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키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오근영 옮김 / 창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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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잘 넘어간다. 이번 소설도 역시 빠르게 읽힌다. 책 소개에서 받은 이미지와는 다르지만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사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그만의 문체가 주는 속도감은 정말 대단하다. 완성도를 제외하고 속도감만 따진다면 손에 꼽을 정도의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책 소개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백 투 더 퓨처>다. 죽기 전 아들이 과거의 아버지를 찾아간다는 설정이 그런 선입견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사실 이야기의 몇 가지는 영화와 유사한 부분이 있다. 다만 영화는 자신의 아버지를 변화시켜 현재와 미래를 바꾸는 반면에 이 소설에서 현재의 나를 만들 뿐이다. 이야기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이 아닌 아버지를 한 사람의 성실한 남자로 만들기에 가깝다.

 

시작은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에 걸린 아들을 둔 부부의 모습으로 문을 연다. 유전자 문제로 남자에게만 나타나는데 18세를 넘기지 못하는 불치병이다. 이 사실을 알고도 이 부부는 아이를 낳았다. 부부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들이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이럴 줄 알고 자신을 낳은 것을 원망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다. 여기서 아버지 다쿠미는 과거의 한 시점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을 회상한다. 참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은 작가의 창작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 다쿠미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와 자신을 키워준 양부모와의 무너진 관계 때문에 성격 급하고 참을성 없는 청년으로 성장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일 년을 넘기지 못하고, 뭔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을 탓했다. 이런 그에게 미래에서 아들이 온다. 이 아들은 미래를 알기에 아버지가 이야기했던 과거의 풍경에 신기해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코 자신과 함께 할 당시의 모습이 아니다. 이때부터 아들 도키오는 아버지의 인생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이 개입과 함께 다쿠미의 연인이었던 치즈루의 도망으로 벌어진 사건을 다루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설은 도키오와 다쿠미의 설정을 동일선상에 놓고 이야기한다. 다쿠미는 아기 때 생활고 때문에 아이를 키울 수 없었던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양자로 입양된다. 이 일로 다쿠미는 생모를 무시하고 거부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마저 느낀다. 하지만 도키오가 개입되면서 다쿠미는 변한다.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고마워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도키오가 병원에서 고통 받지만 자신을 놓아준 부모에게 고마워하는 마음과 일맥상통한다. 다쿠미와 도키오의 감정이 일치하는 순간 소설은 끝나지만 그것은 결코 마지막이 아니다.

 

다쿠미의 인간 만들기가 한 축이라면 치즈루를 쫓는 것은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다. 알 수 없는 조직이 치즈루를 찾는다. 하지만 다쿠미는 예전에 들었던 단서를 가지고 찾아 나선다. 이런 저런 방법과 어려움을 뚫고 치즈루를 찾는 과정은 한 편의 로드무비 같다. 자신의 성질에 못 이겨 욱하고, 감정 조절은 늘 빗나가고, 생각 없는 행동은 다른 문제를 불러온다. 하지만 그가 치즈루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진실하다. 이 과정을 통해 작가의 이전 작품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예전에 본 간결한 전개와 진행이 조금은 줄어든 것 같다.

 

소설은 평행우주론을 기본으로 하는 것 같은데 이론적인 것은 무시하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는다면 도키오와 다쿠미의 살아온 인생에 대한 고마움이 아닐까 한다. 현재가 결코 만족스럽지 않지만 현재의 나에게 감사하고 긍정하는 모습을 말이다. 다쿠미가 어머니를 인정하고, 자신을 긍정하는 부분이 조금은 억지스러운 점이 있지만 즐겁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처음 예상과 다른 전개로 앞을 예측할 수 없었다는 점도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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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감옥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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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야기꾼인 작가의 세 번째 작품이다. 그는 판타지를 이야기하듯이 그려낸다. 간결하고 단순한 문장으로 그만의 독특한 문체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편안하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 언제나 손에 쥐면 단숨에 읽게 되는 매력이 이런 문체와 이야기 방식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엔 제목에 나와 있듯이 감옥에 대해 이야기 한다. 시간, 공간, 환상의 감옥을 말이다.

 

표제작 <가을의 감옥>은 11월 7일 수요일에 갇힌 한 여자의 이야기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이다. 그 영화에서도 같은 날이 매일 반복된다. 하지만 영화는 한 사람만 반복된다는 것을 알지만 이 소설에선 그런 사람들이 여럿 나온다. 그들은 이유를 모른다. 같은 날이 매일 반복되면 어떨까? 잠시 생각한다. 처음의 혼돈만 지나간다면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일어나는 아침이 동일하다면? 작가는 이 가정을 극대화시켜 살인, 불륜, 여행으로 간결하게 풀어내지만 시간과 공간이 늘 한정된 삶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갑자기 불가의 윤회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왜 일까?

 

<신가몰락>은 한 초가집을 둘러싼 이야기다. 화자는 평소와 다른 길을 가다 초가집을 발견한다. 그곳에 들어가 가면을 쓴 사람과 말을 한다. 그는 그 집에서 자유롭게 벗어나길 두려워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는 떠난다고 말하고 사라진다. 이에 화자는 그 집을 나서려고 한다. 알 수 없는 힘 때문에 나갈 수 없다. 이 집은 한 사람이 집에 있어야 다른 사람이 나갈 수 있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이 집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일본 전역을 돌아다닌다. 일 년에 한 번씩 이 집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자신은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지만 집은 움직이는 것이다. 단순히 집의 이동과 경험만으로 재미있는데 화자가 다른 사람을 놓아두고 떠나면서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연쇄살인이 발생하는 것이다. 집의 효능을 악용한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공간의 감옥은 이제 새로운 감옥으로 변한다. 감옥에 살고 있는 사람에 따라 그 효용이 변한 것이다. 흥미로운 설정과 전개다.

 

<환상은 밤에 자란다>는 환상의 감옥 이야기다. 리오는 환상을 보고 만들 수 있다. 그 자신만의 환상이다. 다른 사람과 접촉하면 그녀가 만들어낸 환상을 다른 사람도 볼 수 있다. 이 환상은 처음엔 그냥 신기할 뿐이다. 시간이 지나고 일반 사람들과 살게 되면서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은 그들과의 거리만 더 멀게 만들 뿐이다. 그녀가 그 능력을 숨기는 당연하다. 하지만 그 능력을 알고,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녀를 구속하고, 자신들의 교단을 위해 이용한다. 이때부터 그녀의 능력은 감옥이 되어 그녀의 삶을 가둔다. 마음속 한 곳에 그녀가 괴물을 키우면서 살지만.

 

변함없이 이번에도 단숨에 읽었다. 한 편을 읽고 난 후 그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이야기에 빠져 또 다른 생각에 잠긴다. 늘 일본 색채가 강하게 풍겼던 그녀의 작품에 이번엔 조금 흐려진 듯해 아쉬운 점도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나의 무지 때문이다. 역자의 후기를 보면 작품의 설정 자체가 일본 민속 문화와 관련이 있다. 근대화, 과학화가 지속되면서 점점 잊고 살아가는 단어(가미카쿠시)와 생활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이 부분은 또 우리의 전래 동화나 설화 등을 생각하게 한다. 작가가 다음에 또 어떤 이야기를 들고 나와 즐겁게 해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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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방관자의 심리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이성현 옮김 / 노마드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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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다른 추리소설이 사건이나 트릭 등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면 그는 사람이 느끼는 불안, 공포, 주변의 시선 등을 다루면서 긴장감과 재미를 느끼게 만든다. 어떤 순간은 훈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변 상황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때마다 작가가 그려내는 사람들의 삶에서 다양한 감정을 맛보게 된다. 이 책에 실린 다섯 편도 그만의 향기로 가득하다.

 

<진상>은 일본판의 표제작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말 그대로 10년 전에 죽은 아들의 진실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왜, 누가 죽인 줄 모르고 가슴에 묻어둔 지 10년 만에 범인이 잡힌다. 범인은 사실을 먼저 부인한다. 결국 범행을 고백하면서 아들이 도둑질하는 것을 보고 협박해서 돈을 뺏으려고 했다고 말한다. 착하고 공부 잘하던 아들이 갑자기 도둑질을 했다니 부모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작가는 과거의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보다 아버지의 마음에 파고들어 잊고 있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한다.

<마음의 지옥>은 12년 전 교통사고를 일으킨 남자가 면장선거에 출마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뺑소니에 시체까지 묻어버린 과거가 있는 그가 상사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려고 면장선거에 참가한다. 그 면은 개발을 원하고 있다. 그런데 개발지 중 한 곳에 자신이 묻은 그녀의 시신이 있다. 이런 불안감이 처음 예상과 달리 힘겨운 선거전으로 이어지면서 지옥 같은 나날이 이어진다. 불안은 의심으로 이어지고, 의심은 다시 불안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속에서 마음은 점점 황폐해진다. 빠르고 간결하면서 힘찬 전개로 작가는 그 불안감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살생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정리해고의 위협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다. 정리해고 된 후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지만 고용보험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불면증 관련 아르바이트는 자신을 점점 황폐하게 몰고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한 대의 차가 지나가는 것을 본다. 사이렌 소리도 들었다. 여기까지 실직자의 단순한 어려움을 다룰 뿐이다. 하지만 형사들이 나타나 살인사건에 대한 탐문수사를 하면서 이야기는 꼬이게 된다. 자신이 방황한 새벽에 발생한 살인사건 때문이다. 형사들의 조사로 아르바이트 한 것이 드러나 실업급여를 토해내야 할 지 모른다고 생각한 그 순간 그 날 밤 본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도 역시 자신처럼 정리해고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새롭게 떠오르는 사실은 힘없이 무료하게 시간만을 보내던 그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물론 숨겨진 비극도 있다.

 

<살인방관자의 심리>는 말 그대로 살인방관자들을 다룬다. 한 면접장에서 가장 기뻤던 때를 묻는 순간 테루는 친구가 죽었을 때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대학 1학년 가라데 부의 합숙 훈련으로 돌아간다. 폭력과 구타로 점철된 대학 가라데 부의 추악하고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현장으로 독자를 데리고 가서 왜 그가 그때를 떠올리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 순간 그 현장에 있었던 동기들과 선배들의 반응을 보여주고, 그 솔직한 감정에 기뻐하고 놀랐던 순간도 보여준다. 하지만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가시는 결코 제거되지 않았다. 제목 그대로 방관자들의 과거와 현재를 간결하게 연결하면서 나약하고 비겁한 현대의 우리를 보여준다.

 

<그 집의 미스터리>는 결말이 쉽게 예상되었다. 하지만 관심을 끈 것은 결말이 아니다. 한 순간의 잘못된 실수로 평생 낙인을 찍고 살아가야 하는 한 전과자의 삶이 시선을 끌었다. 과거가 드러나서 살던 아파트에서 쫓겨나야 하고, 이름만 치면 간단하게 관련자의 이름이 드러나는 부조리한 현실을 동시에 그려낸다. 우리가 전과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냉혹하고 의심으로 가득한지 보여주는데 나 자신에게 과연 나는 어떤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다섯 편의 소설엔 경찰도 뛰어난 탐정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주변에서 늘 보는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그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숨겨진 비밀과 불안을 극대화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한 순간의 실수에서 비롯된 과거에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두려워하는 그들을 보면 삶은 늘 불안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미스터리 위에 사람의 따스한 온기와 숨결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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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앤드 커맨더 1 오브리-머투린 시리즈 1
패트릭 오브라이언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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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치고는 읽기 고약하다. 19세기 초 바다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단순히 모험소설이나 해양소설로만 읽혔다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반부에 나오는 배와 운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곳곳에 나오는 외국어 등으로 쉽게 빠져들지 못하게 한다. 역자가 고백했듯이 수많은 지명과 작가와 언어들은 역자의 주로 만난 덕분에 쉽게 알 수 있었지만 가끔은 책 속도에 지장을 준 것도 사실이다. 지명에 관해서는 차라리 지도 한 장을 첨부한 후 필요한 독자가 찾아보게 만들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몇 년 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사실대로 말해서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이 시리즈가 미완성본을 포함하여 21권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 중 한 편을 영화로 만들었다. 오락영화로 보기엔 나쁘지 않았지만 소설에서 느낀 재미를 충분히 누리기엔 조금 부족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책 속에선 배의 움직임과 함포전의 이유와 독자에게 설명되어지는데 영화 속에선 단순히 보여질 뿐이다. 거대한 배가 항해하고 싸우는 장면이 멋지지만 그 자세한 내막을 모르니 그냥 화려함만 다가온다. 화려한 영상이 주는 장점이 책보다 못한 몇 되지 않는 경우가 아닌가 생각한다.

 

읽으면서 유럽의 18-9세기를 사실적으로 다가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비인간적이고 비위생적이고 수많은 문제가 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전투에 참여하고, 매일 술을 마시고, 규율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태형에 처하고, 겨우 한 사람 누울 공간 밖에 주지 않는 등의 일이 있었다. 선원이나 함장이나 모두 배를 타고 나가서는 적국의 배를 공격하여 노략질할 생각만 가득하다. 책 후반부에 가면 그들이 우편선 호위임무로 얼마나 큰 낙담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적의 상선 등을 공격한 후 전리품을 챙기면 배의 선원 모두에게 상금이 배당되니 당연하다. 그리고 그들은 뭍으로 들어와서는 그 돈을 흥청망청 사용한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다. 이것은 현대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두 주인공 잭 오브리와 스티븐 머투린은 음악 연주장에서 처음 만난다. 첫 만남은 결코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잭은 함장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있었고, 스티븐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첫 만남이 있던 날 잭은 소피 호의 함장으로 임명된다. 그가 기대한 배는 아니지만 대위로 오랫동안 머물렀던 그에겐 꿈같은 소식이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가던 길에 다시 스티븐을 만난다. 이 두 번째 만남으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한 호감을 가진다. 그리고 둘은 함장과 군의로 소피 호를 타고 바다를 누빈다. 밑바닥부터 배를 경험한 잭에겐 소피 호에 탄 선원들이 부족해 보인다. 고되고 반복적인 훈련과 수많은 전투의 승리로 점점 성장하는 그들이 그려진다. 이제 이야기는 바다를 배경으로 소피 호의 흥미진진한 항해로 이어진다.

 

읽을 당시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다 읽고 난 지금 생각보다 많은 것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두 주인공의 관계와 그 시대의 풍경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 그리고 탁월한 능력을 가졌지만 불행한 과거 때문에 죽은 제임스 딜런 대위.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더 복잡하게 회오리친다. 고역이었던 부분들이 사라지고, 장점들이 부각되고 있다. 거대한 함선전의 모습은 예전에 본 영화의 잔영으로 머릿속에서 재구성된다. 한 여인을 두고 벌어지는 질투와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토로하는 모습은 전투의 막간에 등장하는 휴식처럼 느껴진다.

 

역자의 글을 읽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수많은 라틴어를 비롯한 스페인어 등이나  인용되는 유명인의 이름에 대해서 단 하나의 주도 달지 않았다고 한다. 원서를 읽는다면 그냥 고민하다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번역서의 장점이 이 책에선 드러난다. 읽기 고약하지만. 또 지금 우리가 바다가 아닌 우주를 꿈꾸듯이 그 시대는 바다를 꿈꾸었다는 사실이 너무 새롭게 다가왔다. 과연 이 책은 몇 권까지 번역될까? 아마 이변이 없는 한 21권까지 번역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번역되길 바란다. 읽을 때보다 지금 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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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쫓는 자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한 가지 정보 오류부터 바로 잡고 가자. 뒤표지에 나오는 인기 장편 순위에서 1,2위를 다투는 작품이라고 했는데 정확히는 평론가들의 순위다. 이 정보를 보고 처음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한때 판타지, sf순위에서 1,2를 다투던 것이 <반지의 제왕>과 <엔더의 게임>이었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자의 후기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면 기억이 잘못되었다고 나의 기억력을 탓했을 것이다.

 

젤라즈니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난 것은 역시 그의 장편 <앰버 연대기>다. 역자는 이 소설을 <내 이름은 콘래드>, <신들의 사회>와 같이 sf신화의 계보를 잇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은 역시 <앰버 연대기>다. 판타지와 sf가 교차하고, 그 경계를 걷는 주인공이 그런 느낌을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앰버 연대기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은 이 소설도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읽지 않았다면 어떨까?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이 중편이나 장편으로 독립될 수 있다. 1부는 주인공 싱어가 외계의 암살자를 막기 위해 자신이 사냥한 변신수를 풀어서 사냥하는 내용이고, 2부는 사냥의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그가 사냥감으로 변한 후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2부가 더 재미있었다. 1부의 내용은 전개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와 전개와 설정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집중이 필요했다. 그리고 예상을 깨고 너무 간략하게 마무리되면서 혹시 다른 것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도 생겼다. 젤라즈니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다보니 그의 특징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가 전투 장면에 세밀한 공을 들이는 작가가 아님을 말이다.

 

2부에선 사냥꾼과 사냥감이 바뀐 현실에서 싱어와 캣의 관계, 이 둘을 둘러싸고 싱어를 도우려는 텔레파스들의 노력과 시도가 싱어의 변화 속에서 속도감 있게 다가온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선 나바호 인디언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나바호 인디언의 신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앞에서 말한 소설들과 함께 sf신화의 계보를 잇는다고 한 모양이다. 평론가들이야 작품을 하나씩 분석해야 하니 이런 분석이 의미 있겠지만 일반 독자들에겐 얼마나 그 신화가 소설 속에 재미있게 녹아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소설은 잘 녹아있다. 그리고 토니 힐러먼에게 책을 헌정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원제목은 <EYE OF CAT>이다. 여기서 캣은 싱어를 사냥하는 외계 변신수인데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을 잃고 무력하고 권태로운 삶을 살던 그를 바꾸어놓은 존재다. 캣은 놀라운 변신 능력도 있지만 텔레파시로 마음을 공격할 수도 있다. 이야기의 중심은 대부분 싱어를 따라가는데 가끔 등장하는 캣과의 대화는 싱어의 마음속에 드리워진 어둠과 아픔을 건드린다. 사냥감이 되어 도망가면서 공포를 느끼고, 놀라고, 긴장하면서 그는 점점 나바호의 원형을 찾는다. 과거와 달리 뒤바뀐 두 존재의 내면과 상황이 주는 재미와 판타지와 결합한 SF가 주는 재미가 공존한다. 대충 보면 간략한 서술이나 묘사 같지만 좀더 집중해서 문장을 하나하나 읽다보면 세밀한 풍경이 그려진다. 그럴 때면 속도는 뚝 떨어진다. 하지만 잘 몰랐던 재미를 발견한다. 중간 중간 나오는 뉴스 속에 담긴 이야기는 그 시대 풍경을 , 생략된 사건의 결과를 알려준다. 재미난 장치다.

 

길, 걷는다, 달린다. 이 단어들은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다가온 것들이다. 이 단어들 때문에 <앰버 연대기>를 많이 연상한 것도 사실이다. 판타지와 SF의 결합이라기보다 그 경계를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바로 이 단어들 때문이다. 싱어가 자신을 찾아 길을 걷고, 달리듯이 나 자신도 책을 걷고 달리는 속도로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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