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말을 죽였을까 - 이시백 연작소설집
이시백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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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살아오면서 나쁜 버릇이 점점 많아진다. 그 중 하나가 유명작가나 최소한 문학상 한둘은 딴 작가들의 작품만 읽는 것이다. 이미 상들이 문학의 완성도나 재미와 상관없이 상업적 목적에 의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다. 하지만 가끔 입소문이나 다른 사람들의 평을 통해 접한 책들에서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받는다. 그때의 기쁨은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말하는 의도는 너무 분명하다. 바로 이 소설이 그런 소설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했는데 기대한 이상의 재미를 주었다. 그러니 서두에 이런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시백. 사실 이 작가 모른다. 유명작가도 아니고, 출판사도 낯선 곳이다. 만약 누군가의 극찬이 없었다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고 이문구 선생의 계보를 잇는다는 표현에 조그마한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각각의 주인공들에게 정이 간다. 걸쭉한 토박이 말투를 능청스럽게 구사하면서 농민의 삶 속으로 들어간 문장과 묘사들은 감탄을 절로 하게 만든다. 충청도 말이 자연스럽게 풀어지고, 여과 없는 듯 흘러나오는 현재 삶에 대한 한탄과 비판과 충성과 열정은 늘 주변에서 실제 듣던 이야기들이다. 그 생생함은 가끔 갸웃하게 하거나 주억이게 만든다.   

 

 연작소설이다. 열하나의 단편을 통해 충청도 농촌 풍경을 펼쳐 보여준다. 연작이지만 직접적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가족이나 한 마을 사람들이 한 곳에서 지지고 볶고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상의 한 농촌을 좀더 광범위하게 다룬다. 앞에 나온 이가 뒤에 중복되게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연작이란 느낌이 약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농촌 사람들의 삶과 입을 통해 드러나는 한국 현대사와 삶은 보는 나로 하여금 순간 뜨끔하게 만들기도 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시골사람들은 누구는 영악하고, 누구는 우직하고, 누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사람도 있고, 영악하게 처신한다고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아내를 구박하다 살짝 사라진 그녀를 찾아 동네를 헤매기도 하고, 외국 아내가 설마 도망가랴 막 대하다 놓치기도 한다. 아내의 죽음 때문에 동네사람들에게 돈 밖에 모른다는 소리를 듣지만 그 내막을 듣다보면 처참했던 가난과 과거의 아픔이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박통에 대한 강한 향수를 토해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변하는 농촌 현실에 발 빠르게 대처하여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행동하기도 한다. 몇 푼 되지 않는 선심성 공사와 저렴한 관광 여행에 토지를 싼 값에 팔고 더 영악한 다른 동네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데모를 해야 하는데 할 줄 몰라 전직 학생 운동가를 찾아 데모를 벌이지만 조그마한 목적을 달성한 후 그를 팽개치는 이기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이장으로 동네 땅 팔아 구전 챙기는 재미를 누리던 이가 며느리의 노래방 도우미에 허망해한다.   

 

 요지경 같은 세상 속을 감정이나 사상의 치우침 없이 약간 거리를 두고 능청스럽게 작가는 이야기한다. 구수한 토박이 말투는 가끔 뭔 뜻인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게 만들고, 농촌사람들의 말에선 삶의 생생한 현장을 경험한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현실은 너무나도 사실적이라 옆에서 보고 듣는 것 같은 경우도 있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작가가 충청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도 능청스럽고 자연스럽게 나와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경기도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먹어가면서 토박이 말투들이 정겹고 아름답고 즐겁다. 영화 ‘황산벌’에서 각 지역 말투들이 지닌 가치를 이미 경험했지만 점점 언어가 획일화되어가는 현실에서 이런 소설은 더욱 더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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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 1 - 보이지 않는 적,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2-1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2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홍성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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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트와일라잇> 열풍에 몰아넣은 스테프니 메이어의 신작 소설이다. 인간의 뇌에 침입한 외계 생명체란 설정과 하나의 몸, 두개의 영혼이란 설정에서 기존에 보거나 알고 있던 소설이나 만화가 생각난다. 인간의 몸을 지배하는 설정에선 <바디 스내처>가, 동거라는 점에선 일본만화 <기생수>가 연상되었다. 사실 <기생수>를 생각하면서 이 소설도 외계 생명체와 인간의 한 판 대결로 가득하지 않을까 미뤄 짐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강렬하고 파괴적인 장면을 좋아하는 단순한 나의 바람이었다.   

 

 이 소설 속 외계생명체 소울(Soul)은 흔히 생각하는 외계침입자와는 다른 존재다. 일반 행성에서 그 자체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들은 대단히 평화적이다. 이런 존재가 지구를 침략하여 인간을 호스트로 삼는다는 것이 좀 이상한 설정이기는 하다. 인류의 역사를 생각하면 살인과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으니 어느 정도 인정할 부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전 인류를 자신들이 살아갈 호스트로 삼을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사랑이라 감정과 연민과 자비 등의 감정은 또 어떨까? 물론 이것은 자극적인 감정에 늘 노출되고, 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관점일 뿐이다.   

 

 

 거의 대부분의 인류가 소울에게 영혼을 잠식당하고 있다. 소수의 인간만이 자신을 지키고 살아간다. 그들 중 한 명인 멜라니가 잡힌다. 그녀는 자신과 다른 이를 지키기 위해 자살을 시도하지만 소울의 놀라운 의학은 그녀를 살려내고, 그녀의 몸속으로 소울을 삽입한다. 그 소울은 방랑자로 불리고, 이미 일곱 번이나 다른 호스트에 산 경험이 있다. 멜라니의 정신을 침입해 다른 인간들 정보를 캐내길 바라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 몸속에서 색다른 경험을 한다. 멜라니의 기억과 정신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녀의 사랑과 강한 정신력은 이미 여러 번 다른 호스트에서 삶을 경험한 방랑자를 혼란에 빠트리고 이전엔 전혀 느끼지 못한 감정에 빠지게 한다.   

 

 일반적인 외계생명체의 침입이란 설정이라면 치열한 전투나 음모나 계략이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선 그런 것이 없다. 소울들이 인간을 찾아내어 호스트로 삼는 것이 단순히 정복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울이 삽입된 호스트들이 인간들에게 괴물 취급당하고 살해당하는 현실에서 엄청나게 평화적인 소울들에게 이것은 대단한 폭력이자 반사회적 행동이다. 인간들에게 절실한 생존의 문제가 그들에겐 지구의 평화문제나 살인이나 폭력으로 비추어진다. 재미난 점은 호스트에 삽입된 소울들이 호스트의 과거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의 성격이나 입맛이나 기억 등에서 완전히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순화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지 않아 성향을 잘 모른다. 하지만 이번 소설을 읽다보면 필력을 알 수 있다. 자극적인 초반 설정이지만 자극적인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으면서도 흡입력을 유지한다. 소울과 인간의 대립과 갈등을 고조시켜 긴장감을 만들기보다 소울과 인간의 사랑과 이해를 바탕에 깔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멜라니와 그녀의 연인 제러드와 소울 완다와 이안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울 때문에 살 자리를 잃고 외딴 동굴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인간 무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갈등과 의심을 넘어 이해와 동조자가 되는 그 과정은 미묘한 인간관계와 사랑이야기로 흥미를 전혀 잃지 않는다.   

 

 이 소설은 전체적인 설정이나 마무리 등에서 분명히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생각 거리를 제공한다. 방랑자가 지나온 행성들의 에피소드는 낯설고 재미난 상상력이 돋보이고, 소울과 인간의 공생이란 점과 소울이 제거된 인간의 영혼은 정신과 영혼이란 철학적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뇌와 정신의 관계를 기계적으로 해석하지 않지만 감정과 기억 등과 연결해서 풀어낸 부분은 상당히 재미있다. 그리고 자극적인 것에 중독된 우리의 현 사회를 생각하면 그녀의 약간은 밋밋한(?) 이야기와 사랑이 더 다가오는 것은 분명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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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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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시다 슈이치의 연애소설이라기에 가슴 저리고, 기쁨 가득한 사랑이야기로 가득할 것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가슴 저리고, 먹먹하고, 아프고, 끊임없이 사랑과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묻게 만든다. 두 남녀의 과거와 현재가 나로 하여금 좀더 진실하게 나의 사랑을, 다른 사람의 과거를 묻고, 생각하게 한다. 비록 초반에 미스터리처럼 숨겨진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되긴 하였지만 그 이후 펼쳐지는 그들의 과거와 현재는 사요나라란 말로 덮어버릴 수 없이 거대한 산이 되어 다가온다.  

 

 시작은 한 여자가 옆집에 택배를 부탁하면서부터다. 이 여자 사토미의 어린 아들이 얼마 전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언론은 이 불쌍한 여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보통의 어머니라면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울음으로 지내겠지만 그녀는 다르다. 점점 더 화장이 짙어지고, 매스컴을 도발적으로 대한다. 이런 그녀를 언론이 점점 밀착하는 당연하다. 숨겨진 다른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런 그녀의 옆집에 한 부부가 살고 있다. 그냥 평범한 이 부부가 이 연애소설의 주인공들이다. 도입부는 단지 이 부부와 그들의 과거를 뒤좇는 기자 와타나베의 관계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그리고 드러나는 과거는 단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현 위치를 묻게 한다.   

 

 만약 당신의 가족이나 여자친구나 친구가 윤간을 당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만약 그 윤간을 한 사람이 당신이라면 어떨까? 소설은 이렇게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피해자는 흔히 두 번 세 번 사회로부터 공격을 당한다. 직접적인 피해 이후 은연중에 퍼지는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계속 피해를 입는다. 자신의 과거로부터 달아날 방법은 없다. 만약 말하지 않았다가 드러나면 그 연인은 배신감이 휩싸이고, 과거를 먼저 듣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외치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 그 순간 다시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과거에 집착하고 또 다른 가해자로 변한다. 이 가해자는 단순히 한두 사람이 아니다. 그녀를 둘러싼 모두다. 당연히 감싸고 보호해야할 아버지조차 그렇다. 그녀는 어디로 가야할까?   

 

 그녀를 강간한 남자 넷의 현재는 모두 다르다. 그중 한 남자는 이 과거를 잊지 못한다. 그날 밤 사건은 우발적이었다. 자신의 감정은 솔직했지만 젊은 혈기와 분위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가해자인 그도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선배 덕분에 좋은 회사에 다니지만 과거는 술자리 농담이나 뒷담화로 따라다닌다. 그러다 우연히 피해자를 모습을 본다면 어떨까? 만약 그녀가 행복하다면 그는 조금은 과거의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거로인해 계속 피해자로 남아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둘의 과거를 점점 파고드는 와타나베는 일정한 거리에서 그들을 바라보지만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로 감정이입 되기도 한다. 한 아이의 살해사건이 사랑이야기로 넘어가는 그 과정을 중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운동선수였던 그의 과거가 가해자의 경력과 대비되고, 그의 가정사가 그들의 현재 삶과 비교된다. 이런 순간순간 드러나는 사실들은 그 실체에 다가갈수록 가슴 아프고, 아리고, 강렬해진다.   

 

 

 현실은 가혹하고 미묘하고 미스터리로 가득하다. 흔히 어떻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사느냐고 묻곤 한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피해자에겐 그 가해자보다 더한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가해자들이 주변에 있다. 우린 단지 그가 가해자였다는 것만 생각하지 우리가 가해자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만약 그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진솔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고, 한 순간의 실수도 아니고, 단순한 재미나 충동에 의해 벌어진 것이라면 다른 문제다. 하지만 그 만남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하고, 그 느낌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그 사건을 반성하고 잊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피해자가 다른 가해자들로부터 계속해서 피해를 입는다면 말이다. 용서하지 못해 같이 살고, 용서해서 사라진다고 말하는 그녀의 삶은 일어 사요나라가 아닌 우리말 ‘안녕’으로 이해하고 싶다. 헤어질 때 안녕이 아닌 만날 때 안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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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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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영하란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 소설이 있다. <아랑은 왜?>라는 소설이다. 불과 4,5년 전으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 김영하란 이름은 낯설었다. 그 당시 이름을 알만한 작가들은 모두 이상 문학상에 실린 작가거나 아니면 2000년대 이전 일부 작가들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책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없었던 시기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소설만 열심히 읽던 시절이었다. 전작주의를 열심히 실행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지금은 손에 잡히는 책들만 읽지만 말이다. 그 소설로 이름을 기억했고, 인터넷 서점에서 그에 대한 평을 보면서 단편집을 읽었다. 장편처럼 매혹적이지는 않았다. 이것은 그 당시 같이 읽었던 한강과도 유사한 진행이다.   

 

 그의 활동은 1995년부터다. 사실 이 시절은 소수의 한국작가와 장르소설에 몰입하고 있었다. 허영심에 들떠 문학상 작품집은 열심히 읽었지만 그 외는 그렇게 집중하지 않았다. 그런 시기에 김영하가 나왔으니 나의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이름을 말하면 많은 독자들을 거느리고 다닌다. 이력을 보면 적지 않은 책을 내었고(반 이상은 보았다), 국립 예술대학 교수에 라디오 방송까지 하였다고 한다. 상당히 바삐 움직이며 이름을 알리던 시절이었다. 비록 나에겐 낯선 과거이지만 말이다. 이런 그가 일상을 벗어나 유랑의 길을 떠난다. 그 첫 기착점이 시칠리아다. 거기는 그가 방송국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곳이다. 낯선 유랑 여행을 떠나면서 한 번 방문한 곳을 선택했다는 점이 약간은 의외지만 그때와는 다른 일정으로 그 섬을 돌아본다. 그 여정은 결코 보통의 관광여행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휙~하고 지나가는 관광이 아니고 방을 잡고 그들과 함께 머물거나 인사를 나누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여행을 한다. 그의 지식이 곳곳에 묻어나면서 읽는 즐거움을 준다.  

 

  책 제목인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Memory Lost.'는 후기를 겸한 글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는 이 여행에서 잃어버린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제목을 붙인 것은 무얼까? 여행에서 잃어버린 것보다 한국에서 잃어버린 것이 더 많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물론 물건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 무얼까? 생각해본다. 다시 책의 앞으로 돌아간다. 그가 왜 성공한 인생을 뒤로 하고 여행을 떠났을까? 생각한다. 쌓여만 가는 읽지도 않을 책과 보지도 않을 DVD를 정리하고 그러면서 그는 잃어버린 자신 안에 있던 예술가를 찾고자 한다. 그 문장들을 읽는 순간 나의 욕심이 부끄러워진다. 한편으론 그렇게 떠날 수 있는 그의 능력이 부럽다.  

 

 

 그가 만난 시칠리아는 쉬운 길이 아니다. 로마에서 파업으로 기차가 다니지 않고, 버스와 배로 이동을 한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늘 압박을 받는 정시 도착 출발이 이곳엔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나쁜(?) 상황에서 그 부부는 시칠리아 곳곳을 돌아다닌다. 한 곳에 집을 구해 며칠을 머물며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고, 스쿠터를 빌려 도시 곳곳을 다닌다. 단순히 여행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그 마을과 풍경이 빚어내는 역사와 현재에 대한 성찰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정보와 풍경이 만나 사색에 잠긴다. 만약 당일치기 관광이라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자 직관이다. 작가의 글에서 만나는 소설이나 영화나 신화 등은 다시금 옛 기억을 불러오거나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을 토해낸다.   

 

 책은 쉽고 빠르게 읽힌다. 많지 않은 분량에 사진도 나름 풍부하기 때문이다. 현역 인기 소설가가 쓴 문장이니 몰입도도 높다. 우리와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내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적인 유대감, 정, 여유, 느림, 자유, 따뜻한 마음 등등. 여행지에서 살짝 드러나는 작가의 과거 기억과 삶의 단편들은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여행지에서 겪은 일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없는 것은 이 책이 여행서적이 아님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곳곳에 시칠리아 정보가 목을 길게 빼고 말을 건낸다. 따뜻하고 뜨거운 열기가 불어오는 시간엔 텅 빈 거리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오지 않을 기차를 기다리며 안절부절 하지만 그마저 즐기는 순간이 온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아내와 함께 갔는데 그녀의 출연이 너무 없다. 가끔 혼자 여행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순간도 많았다. 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떠난 그의 여행에서 더 많은 것을 쌓아가는 그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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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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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하고 저자는 묻는다. 답은 수치의 제국을 이끌고 있는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다. 저자는 이들을 ‘신흥 봉건제후들’이라고 부른다. 소수가 다수의 부를 차지하는 현상이 중세의 봉건제후들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이야기가 결코 과장되거나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통계수치로 만나게 되는 비극들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분노와 부끄러움을 끄집어낸다.    

 

 세계화란 단어가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은 불과 십 수 년 전이다. 한때 나 자신도 이 단어에 혹하였다. sf소설과도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하루 만에 여행이 가능해지고, 값싼 물건을 쉽게 쓸 수 있으니 반대할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점점 세계화의 이면에 숨겨진 본 모습이 드러나면서 추악하고 수치스러운 사실과 만나게 되었다. 나 자신이 결코 도덕주의자가 아님에도 이런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저자가 말한 것처럼 나의 삶을 정당화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 아니면 그 사실들을 기억의 저편으로 묻어버리고 잊고자 했다. 그러나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점점 더 강하게 다가오는 사실들에 의해 무장해제 되면서 똑바로 바라보게 되었다.   

 

 원제는 ‘수치의 제국’이라고 한다. 원제보다 번역 제목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자본의 속성과 인간의 탐욕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현실들과 잘 맞다. 우린 탐욕에 눈이 멀어서 자신의 양심을 던져버리고, 편안하고 안락한 미래를 위해 현실에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이렇게 눈과 귀를 닫고 양심은 가슴 가장 깊은 곳에 묻어버린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하고 바르다고 외치고 믿는다. 많은 사람들의 행동이나 대화 속에서 이런 사실을 만날 때면 언제나 놀란다. 저기 바로 눈앞에 보이지 않느냐고, 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말해도 그들의 눈과 귀는 닫혀있다. 그리고 입은 끊임없이 말한다. 저들이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부패한데다 능력도 없다고. 이것은 알게 모르게 머릿속 깊은 곳에 새겨져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현재 세계의 언론들은 대부분 다국적기업들이나 대기업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예 노골적으로 그들의 시녀노릇을 하는 매체도 많다. 사실을 왜곡하고, 숨기고, 덮고 하면서 그들은 새로운 봉건제후들에게 봉사한다. 이익을 쫓는 그들에게 이것만으로도 부족하기에 각국의 정부를 움직여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부채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가는 고리대금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이 부채는 해가 지날수록 늘어만 간다. 한 나라의 국내총생산과 맞먹는 부채나 이자는 그 나라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이런 나라일수록 정권과 결탁한 부패가 더 많이 이루어진다. 자본은 뇌물을 먹이고, 관리는 부패하고, 민중은 더욱 가난해진다. 민영화 등을 통해 헐값으로 기업이나 자산을 산 후 막대한 이익을 얻는 과정은 현재 MB정권이 상하수도와 몇몇 공기업을 민영화하려는 사실을 연상시키면서 순간적으로 섬뜩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책은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볼 것은 사유재산을 보호하려는 혁명세력이다. 배고픈 민중들이 왕궁을 약탈하고 나오는 순간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처형한 것이다. 여기서 사유재산 절대 불가침이란 가치를 확실하게 드러낸다. 이것은 이후 지금까지 가진 자들이 자신의 부를 보호하고 늘리는 기본 가치로 자리 잡는다. 이것은 또 특허라는 제도를 통해 더욱 굳세어진다. 현재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가치가 불과 2~3백년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제나 놀랍다. 부의 축적과 획득을 위해 그들이 동원하는 수단이 점점 교묘해지고, 대담해지고, 협박하는 것으로 변하는 과정은 너무나도 거대한 부채 때문에 배움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이들에겐 너무나도 무서운 현실이다.    

 

 이 책은 세 개의 키워드로 읽을 수 있다. 부채, 다국적기업, 기아다. 부채에 대해 놀라운 사실은 남반부에서 북반부로 흐르는 돈의 양이 북반부에서 남반부로 흐르는 돈의 양보다 많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그 나라를 노예처럼 만들고, 사회 기반 시설이나 교육 등에 투자할 여력이나 자본 생성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한때 단순히 부채만 생각한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실이다. 이런 부채는 정권의 부패와 함께 권력자들에게 들어가거나 다국적기업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기아에 시달린다. 이 악순환을 끊고자 부채상환을 중지하면 전 세계로 향하는 통로가 막혀 고립된다. 충분한 경제력과 자산을 갖추지 못한 나라에게 이것은 부채상환보다 더 무서운 현실이다. 저자는 부채를 가진 나라의 연대를 주장한다. 만약 한 나라만 봉건제후들에게 반항을 한다면 가볍게 무시되고 진압이 가능하겠지만 대다수 나라가 연대한다면 이것은 다른 문제가 된다. 좁게 보면 노동조합 문제도 여기에 포함할 수 있다.  

 

 쉽게 읽히고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한다. 나만 생각한다면 굉장히 간단할 수 있다. 그들은 남이다. 그러니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라고. 하지만 탐욕의 시대에 자본의 거대한 입은 결코 그 나라만으로 배부르지 않다. 필연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먹어치우면서 곧 우리에게 달려들 것이다. 누군가는 반문할 것이다. 우리가 먼저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벌어지는 양극화와 탐욕은 어떻게 할 것이며, 양심은 또 어떻게 가릴 것인가? 뭐 요즘처럼 돈이 최고라고 외치는 세태에서 양심이 뭐 대수냐고 외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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