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이어 원 세미콜론 배트맨 시리즈
데이비드 마주켈리.프랭크 밀러 지음, 곽경신 옮김, 리치먼드 루이스 그림 / 세미콜론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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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밀러란 이름을 처음으로 들은 것이 <씬 시티>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상당히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 몸짱 배우들로 가득한 <300>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되었다. 한 번 이름을 기억한 덕분인지 새롭게 나오는 만화에서 유난하게 그의 이름을 자주 만났다. 그의 작품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음에도 너무 익숙해진 것이다. 그러던 중에 영화 <배트맨 다크나이트>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고, 또 그의 이름을 만났다. 하지만 만화보다 영화가 너무 강한 인상을 주었기에 많은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러다가 연이어 나온 두 편의 만화로 다시 그는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 중 한 편이 이 만화다.  

 

 배트맨 이어 원. 제목대로 배트맨이 등장한 첫 해를 다룬다. 사실 배트맨은 어릴 때 수많은 영웅 중 한 명이었다. 그 당시는 배트맨과 로빈이란 두 영웅의 조합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한 때 쓰러져가던 워너브라더스를 살렸던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는 그 이후 일이다. 하지만 나의 뇌리 속에 강하게 자리 잡은 것은 역시 팀 버튼이 만들어낸 배트맨이다. 어두운 고담 시를 배경으로 배트카를 몰고 악당과 싸우는 그는 시리즈가 뒤로 가고, 감독이 바뀌면서 힘을 잃었지만 한 영웅의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 후 배트맨 시리즈는 과거로 돌아가서 그의 탄생을 다루었다. 이 영화 <배트맨 비긴즈>는 나의 성에 차지 않았다. 원작과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가지는지도 몰랐지만 이전에 나온 배트맨의 이미지를 지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것은 내가 배트맨 시리즈 중 최고로 꼽는 <다크나이트>도 마찬가지다.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와 확 달라진 영상이 없었다면 그냥 보통 시리즈 중 한 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시 배트맨에 대한 나의 관심을 불러왔고, 이 책으로 그 관심이 이어졌다. 영화와 다르다는 것과 프랭크 밀러란 이름이 선택을 자유롭게 한 것이다.  

 

 <배트맨 이어 원>은 작가는 프랭크 밀러지만 그림은 데이비드 마주켈리가 그렸다. 당연히 프랭크 밀러가 그렸을 것이란 생각이 서문을 보면서 깨졌다. 그렇다고 이 만화에 대한 재미나 긴장감이나 그림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본 만화에 익숙하다보니 약간 낯설게 느껴지기는 한다. 하지만 컬러에 굵고 강한 인상을 주는 그림체는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이 만화가 나온 것이 1986년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역동적이고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물론 예전에 나온 네 편을 한 권으로 묶어면서 새롭게 채색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림 자체나 내용이 바뀐 것은 아니다.  

 

 제목처럼 단 일 년 동안의 사건을 다룬다. 브루스 웨인은 수련에서 돌아오고, 고든은 고담 시로 전출온다. 이야기는 이 둘을 함께 등장시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 사이에 캣 우먼이 등장하여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배트맨이 자신이 왜 고담 시에서 어둠의 영웅으로 활동하게 되었는지, 왜 박쥐 옷을 입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벌어진 힘겹고 어렵고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던 사건들을 다룬다. 고든 부서장은 부패한 고담 시 경찰을 조금씩 힘겹게 개선하고 어둠의 영웅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들은 많은 실패와 수많은 위험을 지나야 한다. 그 순간들은 보면서 긴장하고, 혹시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의 성공을 바라면서 보게 되었다. 배트맨에게 한 발 다가간 느낌이다. 그리고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진다.  

 

 프랭크 밀러야 너무 유명하니 넘어가자. 이 만화의 그림을 그린 마주켈리는 낯선 작가다. 하지만 책 후반에 나온 부록을 보면 그의 배트맨에 대한 열정을 알 수 있다. 그가 만들어낸 배트맨의 모습과 화면 구성은 머릿속에서 동영상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훌륭한 시나리오를 멋지게 연출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데 그는 이것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배트맨 시리즈나 프랭크 밀러의 작품들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언제 시간 내어 한 권씩 읽거나 구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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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독자서평단 활동 종료 설문

1. 서평단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김훈 <바다의 기별>  

개인적으로 김훈의 장편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건조한 문체라 장편을 읽다보면 쉽게 지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곤 했는데 그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가 지향하는 바를 보면서 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2. 서평단 도서의 문장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구절 

만약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나에게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고귀함을 언어로써 증명하는 것이겠죠. 그 이외의 사명은 나한테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아름다움은 그것만 따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더러운 세상의 악과 폭력과 야만성 속에서 더불어 함께 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할 때 이 세상의 온갖 야만성을 함께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바다의 기별> 137쪽)


3. 서평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1) 엄마를 부탁해 

 2) 바다의 기별 

 3) 건투를 빈다 

 4)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5) 방황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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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비키 마이런.브렛 위터 지음, 배유정 옮김 / 갤리온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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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추운 겨울, 도서 반납함에서 태어난 지 몇 주 되지 않은 새끼 고양이가 발견된다. 쇠의 차가움과 추운 날씨를 견뎌내며 도서관 직원들에게 발견된 그 수고양이가 바로 듀이다. 정확한 이름은 듀이 리드모어 북스. 듀이는 도서관 분류 십진법에서 따왔고, 리드모어 북스는 풀면 READ MORE BOOKS란 문장이 된다. 재미있는 이름이다. 하지만 이름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바로 듀이의 19년 삶이다.  

 이 조그만 고양이가 어떻게 인구 만 명도 되지 않는 마을 사람들과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보는 것은 상당히 즐겁다. 그리고 듀이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은 교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흔히 동물을 키운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동물로부터 위안과 평온을 얻는 경우가 더 많다. 이것을 생각하면 듀이의 존재는 더 빛난다. 한 가정에 속한 것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기거하면서 도서관을 찾는 모든 사람을 반겨주고, 따스함을 나눠주기 때문이다. 그것도 힘들고, 지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잘 찾아가니 기특하고 대단하다. 이전까지 고양이에 대해 가지고 있던 좋지 않았던 생각들이 단숨에 날아간다.  

 

 그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셀 수조차 없다. 실직으로 힘이 빠진 남자나 휠체어 위에서 말없이 수줍어하던 소녀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듀이의 살가운 행동에 힘을 찾았다. 하지만 이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위안을 받은 사람이 바로 저자인 비키다. 이 책은 듀이에 대한 추억뿐만 아니라 비키의 삶에 대한 기록이자 그녀가 살고 있는 스펜서란 도시의 역사도 같이 다루고 있다. 듀이가 추운 겨울 도서 반납함에서 죽음을 이겨내었듯이 비키도 싱글 맘으로 살면서 자궁적출이나 유방암과의 싸움에서 이겼고, 스펜서는 높은 실업과 힘겨운 경제난을 자신들의 자존심이나 환경의 파괴 유혹으로부터 지켜내었다. 그들의 노력들은 보면서 현재 배금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많은 점을 생각하게 되고, 존경스럽다.  

 

 책을 읽으면서 듀이를 찾아와 위안을 얻고, 즐거워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들을 보면 나 자신도 훈훈해진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냥 한 마리의 고양이일 뿐인데 먼 길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극성이다, 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만큼 그들의 삶이 메말라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점점 삶은 각박해지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사람들과의 정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이런 아름답고 훈훈하며 즐겁고 반가운 이야기는 어쩌면 그들이 잊고 살아가는 삶을 되새겨보게 만들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반응도 역시 듀이의 행동으로부터 비롯한다. 외향적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 행동하기에 사람들이 더 감동을 하고, 다른 나라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끝까지 읽기 전에는 세계를 감동시켰다니 신문이나 뉴스에서 듀이의 사망 소식을 다루었다기에 뭔 호들갑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히 호기심을 넘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사랑을 나누어준 것을 감안하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듀이의 존재를 둘러싸고 논의된 많은 논쟁에서 듀이의 경제성이 없다고 말한 대목에서 그를 보기 위해 온 수많은 사람들이 뿌린 금액을 생각하면 그 자체로 훌륭한 관광 상품이었다. 물론 듀이는 그것을 뛰어넘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고, 사람들의 가슴속에 사랑을 실어줬다. 그리고 도서관장 비키의 삶과 그녀의 눈을 통해 바라본 스펜서의 변화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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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 메이커
마젠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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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보면서 누들이란 단어보다 누드란 단어가 먼저 연상되었다. 붉은 빛 도는 표지에 왠 여자가 목욕 수건을 감고 있으니 착각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 때문에 이 책은 한 동안 나의 눈 밖에 났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평을 우연히 읽으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호평이 이어지고, 작가의 이력을 보면서 불쑥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아홉 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독립적인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지만 앞에 나오는 두 인물인 전업 작가와 전업 헌혈자가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각각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현실의 경계를 넘어가는 장면도 나오고, 섬뜩함을 느끼기도 한다. 시대의 모순과 비리를 은유로 풀어내는가 하면 또 직설적이면서 노골적으로 비판한다. 곳곳에 드러나는 먹이사슬 같은 관계나 인간관계는 어느 순간은 너무 냉혹하여 놀라기도 한다.   

 

 그렇게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단숨에 읽히지는 않는다. 재미가 없어 그런 것이 아니라 피곤한 나의 몸 상태와 중간 중간 끼어드는 작가의 등장이 나를 몰입으로부터 밖으로 끌어낸다. 앞의 두 사람을 표현한 <전업 작가>와 <전업 헌혈가> 편을 제외하면 모든 제목이 ‘~거나’, ‘혹은’ 이 들어가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제목을 무심코 보면 그냥 재미난 표현처럼 느껴지지만 읽다 보면 그냥 무심코 넘어갈 수 없다. 도예과에서 대형 전기 가마를 구입해 화장로로 개조해 사업하는 그의 사연을 듣다 보면 두 모자의 묘한 관계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한 여성 예술가의 자살극은 설마를 진짜로 변화시켜 경악하게 만든다. 이런 놀라운 일들이 다음에 한 중년 남자의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면서 인간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거리의 작가의 대필 편지에선 그 노골적인 표현에 놀라고 마지막 장면에선 웃음이 나온다.   

 

 멋진 가슴을 가진 한 여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질투와 부러움과 방해 공작은 순진했던 가슴 큰 그녀를 혼돈 속으로 밀어 넣는다. 또 장애가 있는 딸을 버리면서 아들을 열망하는 한 남자의 수많은 시도에선 아직도 뿌리 깊숙이 자리 잡은 남아선호사상의 허상이 보이고, 수많은 시도 속에 쌓이는 부녀관계는 은연중에 강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하는 개의 등장과 강간을 구경하는 사람들 이야기로 인간 사회의 허위와 저열한 호기심과 이기주의를 절실히 생각한다.   

 

 처음 몇 쪽을 읽었을 때는 이 소설이 왜 금서로 난도질 당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노골적이면서 사실적인 비판과 표현들이 그 경직된 사회에 부담이 되었을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역자가 중국의 문화 대혁명과 천안문 사태를 우리의 70년대, 80년대와 비교한 것이 과연 적절한지는 논외로 하고, 각 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트라우마처럼 자리 잡은 것은 분명한 듯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표지만 바꾸었다면 더 많은 호응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만약 처음에 말한 것처럼 누드 메이커로 착각한 독자를 겨냥했다면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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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오피스쿠스의 최후
조슈아 페리스 지음, 이나경 옮김 / 이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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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오피스쿠스란 단어를 보고 작가가 새롭게 만들어낸 단어라고 생각했다. 내가 책을 잘못 읽은 것이 아니라면 이 단어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책의 원제도 ‘When we come to the end'다. 그래도 혹시 해서 검색을 했다. 나오지 않는다. 출판사에서 만든 조어가 아닐까 추측한다. 최근에 이런 신조어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으니 그냥 받아들이고 넘어간다. 그렇지만 이 단어에 대한 설명이 책에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사실 이 소설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책에 대한 설명 중 카프카가 나올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읽은 <월스트리트 몽키>를 생각하면서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짐작은 몇 쪽을 읽기 전에 깨졌다. 먼저 힘들었던 것은 화자가 누군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개개인의 이름이 나오거나 우리란 단어 속에 숨겨진 화자가 읽는 내내 궁금증을 자아내었다. 혹시 어딘가에 나오지 않을까 하고 집중을 하였지만 쉽게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만약 책을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읽는다면 추측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배경이 되는 장소는 광고회사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삶을 하나씩 풀어내는데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는 않는다. 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다양한 시선을 그려내는 것도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나오면서 조금 혼란스럽다. 강한 개성을 지닌 등장인물들의 등장과 낯선 외국 이름은 초반에 이미지 연결에 어려움을 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앞에 나온 주요 등장인물 소개를 보면서 이미지를 그려본다. 이것은 뒤로 가면서 한 명 한 명 인상을 그려내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리고 그들의 일에 대해서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 광고회사니 당연히 멋진 카피나 광고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리해고와 개인들의 신상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그러다보니 나의 존재는 더 뒤로 숨게 되고, 이야기는 하나의 미로 속에서 맴도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전에 카프카의 소설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문장은 잘 읽힌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만 그렇다. 강한 집중력을 요구하고, 한순간 흐름을 놓치면 헤매기도 한다. 이야기와 이야기가 이어지고, 개인에서 개인으로 넘어가고, 소문과 진실이 뒤섞이면서 진행된다. 이것이 잘 정리되어 읽기 편하게 진열되었다면 속도감 있게 단숨에 읽혔겠지만 작가는 의도적인지는 모르지만 다시 앞 이야기를 돌아보고 연관성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곳곳에 심어놓은 풍자와 사실적이면서 가슴을 콕 찌르는 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직장인임을 느끼게 만든다. 특히 요즘처럼 직장인의 목숨이 파리 목숨 같은 현실에선 사장실에 불려가는 그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에 공감하게 된다. 짤렸지만 회사에 나오고, 회사로 돌아와 의자를 분해하려는 그들을 보면 남의 일처럼 생각되지 않는다.   

 

 난해하고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 흥미로운 점은 소문과 사실이다. 광고회사 대표 린의 소문이나 그들 내부에서 유통되는 소문과 사실들은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한 회사에서 늘 있는 일이기에 공감 한다. 자신감을 상실하거나 자신을 잃어가는 그들이나 일이 없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창작하는 것이 실제 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대목에선 희비가 교차한다. 정리해고라는 거대한 바람 앞에선 그들 모두 연약한 촛불이다. 다만 자신은 그 대상이 아니길 바라지만 언제 자신에게 불어올지 모른다. 현실적일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 속에서 현실이 더 비현실적임을 생각할 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삶이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단지 마지막까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것은 화자는 누굴까 하는 호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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