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없는 아침
린우드 바클레이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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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침에 눈을 떴는데 가족들이 아무도 없다면 어떨까? 한 장의 쪽지도, 메모도, 흔적도 없이 말이다. 14살 소녀에게 이 현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만약 전날 밤 남자 친구와 있다가 아빠에게 들키고, 술로 비틀거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남겨진 여자 아이가 자라서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삶에서 가족들이 사라진 그녀에게 피해망상이나 공포나 긴장감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그녀를 보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화자는 그녀의 남편이다.  

 

 25년이 흐른 뒤 신시아는 방송국과 함께 그날 사라진 가족들을 찾는 장면을 녹화한다. 혹시 이 방송을 보고 가족들 중 한 명이나 그들을 아는 사람이 연락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연락은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난 후 “당신 가족이, 당신을 용서한답니다.”라는 의문의 전화만 한 통 걸려올 뿐이다. 그리고 이어서 벌어지는 이상한 징후와 메시지는 긴 시간을 넘어 현재를 뒤흔들고, 새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새로운 단서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아버지가 서류 상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란 것이다. 충분하지 않은 경제 속에서 고용한 사립탐정이 가져다 준 놀라운 정보다. 이 정보는 신시아가 대학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돈을 제공한 제3의 인물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 단서가 된다. 여기부터 이전까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범인이나 과거 사건을 재구성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을 하나씩 제거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완전히는 아니다. 작가는 다시 살인사건을 가운데 집어넣으면서 사건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책 중간 중간에 나오는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는 또 다른 결정적 단서다.   

 

 단서들이 촘촘히 나열된다. 하지만 이런 단서들은 신시아와 그 남편의 갈등과 사랑과 대립과 애정을 확인시켜주는 장치이자 그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도구들이다.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의 모자나 남편의 타자기로 쓴 편지나 그들 주변을 맴도는 이상한 사람이나 차량은 신시아의 불안한 심리와 연결되면서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혹시 그녀의 망상에서 비롯된 일이 아닐까? 그날 밤 벌어진 사건과 그녀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등등. 하지만 작가는 초반에 이런 불안감을 고조시키지만 뒤로 가면서 단서들을 더 노출시키면서 사실을 똑바로 보게 한다. 이때부터 책은 몰입도와 속도감을 더 높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기존에 본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영화들의 장면들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여주인공의 심리 불안을 조장하고, 현실과 환상을 교차시키고, 마지막은 빠르게 진행하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 상당히 눈에 익다. 독특한 설정에서 시작한 한 여자의 혼돈과 불안이 자신을 믿고 신뢰해준 남편 덕분에 안정을 찾지만 하나의 계기를 통해 새롭게 그녀의 가족을 흔들어 놓는 과정은 초반에 약간 느슨한 감이 있다. 하지만 상황이 완전히 펼쳐지는 중반 이후로 넘어오면 완전히 달라진다.   

 

 읽는 도중에 신시아의 25년 삶을 여러 가지로 생각한다. 어린 그녀의 삶이 산산조각 나고, 기반이 흔들리는 와중에 가족과 함께 한 마지막 밤의 실수는 아마도 그녀를 계속해서 괴롭혔을 것이다. 그리고 왜 자신만 남겨두고 사라졌는지 정말 궁금했을 것이다. 이유도 모르고 홀로 버려진 열네 살 소녀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짐작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녀가 느끼는 불안, 공포, 두려움 등의 감정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심하다 할 정도다. 너무 반복되고, 상황이 힘겨워지면서 부부관계가 잠시 충돌하지만 그 바탕에는 강한 사랑이 존재한다. 이 소설이 주는 또 다른 재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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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패트롤 - 타임 패트롤 시리즈 1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4
폴 앤더슨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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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드디어 읽었다. 90년대 시공사 그리폰 북스에서 나올 때 사지 않고, 절판된 후 열심히 구했었다. 당시엔 절판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 다시 행복한 책읽기에서 나왔지만 구한 후 쌓아두기만 잘 하는 나의 나쁜 습관 탓에 오랫동안 옆에 놓여 있기만 했다. 다른 볼 책이 수없이 쌓여있는데 이 책을 읽은 것은 나의 변덕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 전 서점에서 이 시리즈의 다음들이 나온 것을 본 탓이기도 하다.   

 

 타임 패트롤, 이미 드라마나 영화 속에 본 익숙한 존재다. 하지만 이 소설이 나올 당시엔 획기적이었을 것이다. 웰즈의 <타임머신>이 시간여행에 대한 문을 열었고, 이후 많은 sf작가들이 시간 여행과 관련된 작품들을 쏟아내었다. 그중 몇 편은 읽었지만 대부분은 읽지 못했다. 허술한 시간이나 공간이동을 다룬 소설도 보았고, 나름대로 공을 들인 작품들도 만났다. 그리고 현대 물리학의 성과와 더불어 시간여행에 대한 다양한 이론도 만났다. 이 소설은 조부패러독스를 다룬다. 쉽게 말하면 과거 역사를 바꾸면 현재 역사도 변한다는 이론이다. 시간여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책들에 대해서는 이 책 부록에 역자가 아주 상세하게 요약 정리해놓았다. 많은 참조가 되는 동시에 읽고 싶어지는 책들도 늘어난다.   

 

 다섯 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작품 <타임 패트롤>은 어떻게 주인공이 타임 패트롤이 되고,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간략하게 보여준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 사람들이 가지는 고민과 어려움도 함께 보여준다. 이후 이 시리즈를 이해하는데 기본이 되는 작품이다. <왕과 나>는 타임 패트롤 키이스가 과거의 한 순간에서 사라지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그의 아내가 그를 찾아달라고 주인공 에버라드에게 부탁한다. 그가 탄 타임머신엔 위치를 나타내어주는 장치가 있는데 키이스가 사라진 곳에선 그 기계가 발견되지 않는다. 역사를 읽다가 하나의 단서를 포착한 에버라드가 키이스를 찾아 고대로 떠난다. 저자는 역사와 시간경찰의 의무를 다루면서 상황을 풀어낸다.   

 

 <지브롤터 폭포에서>는 소품으로 한 남자의 사랑을 다루고 있고, <사악한 게임>은 타임 패트롤의 임무 자체가 결코 선의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몽고군의 아메리카 대륙 상륙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실제 사건과의 차이를 고민하게 한다. 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사실이라면 누군가가 중간에서 변화를 시키려는 의도나 시도가 저지되겠지만 실제 있었던 사실이 미래의 누군가에 의해 개조되고 변화된 것이라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다음 작품인 <델렌다 에스트>에서 미래의 의한 개입으로 변화된 세계를 보여준다. 이 변화된 세계가 현재를 살아가는 타임 패트롤에게 발견되지만 다시 수정된다는 이야기인데 <사악한 게임>이 후대의 역사에 의해 바꾸는 작업인 반면 이 작품은 개입된 역사를 다시 되돌리는 작업이다. 이 두 이야기는 다른 듯하지만 미래에 의해 과거가 변할 수 있다는 가정이 흥미롭다. 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들이 미래의 목적에 의해 가공된 것이라면 우리가 과거 한 시점에서 우연히, 혹은 실제 발생한 일들이 영향을 미칠 것을 생각하여 우리의 인식에 맞게 바꿀 것이란 점이다. 이때 역사를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우리가 된다. 이 이야기들을 보면서 평형우주론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소설은 시간여행이나 시간경찰이란 존재도 재미있지만 풍부한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개입을 배제하고, 바로 돌린다는 이야기는 앞에서 방금 말한 모순이 존재하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다. 또 역사적 사실과 세부적인 지식이 가득해 배울 것도 많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최첨단 무기를 가진 타임 패트롤에게 왜 고대나 현재 무기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를 제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신체에 붙어 외부로 티 나지 않는 장비가 있을 텐데 말이다. 저자가 요즘 같은 신무기나 기타 보호 장비에 대한 과학의 발전을 보지 못한 탓이 아닐까 혹은 생각하지 못했거나, 라고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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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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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에게 자신의 세계로의 진입을 잘 허용하지 않는 작가들이 있다. 그 중 한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의 이번 소설은 약간 그 세계의 틈새를 보여주었지만 아직 몸 들여놓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  몇 편을 읽었지만 재미나 풀어내는 이야기에 젖어들지 못하고 있다. 어렵게 글을 쓰는 작가라면 이해하겠지만 간략하고 감성적인 문장을 지닌 그녀를 생각하면 정말 의외다.   

 

 이번 소설도 그 세계를 이해하거나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38세 여류화가에 유부남과 몇 년째 사귀는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깊게 빠지지도 공감하지도 못한다. 어린 시절 약간 특이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지금 독신에 유부남과 사귄다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폭 좁은 관계를 그려내는 그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꼭 이해가 필요하지 않지만 가슴으로 와 닿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없다. 정녕 남자에겐 너무 먼 당신인가? 주변 여자들은 그녀를 대부분 재미있어 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몇 편 읽지 않았고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언제나 많지 않은 분량과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평 때문에 손이 가곤 한다. 그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전에 몇 편을 읽었고, 관심을 지우려고 하면 주변 여자들의 평에 다시 한 번 그 세계를 엿보려 하지만 그때마다 낯선 풍경으로 다가온다. 가쿠타 미츠요의 작품이나 야마모토 후미오의 작품이 주는 재미나 감성과 너무 다르다고 해야 하나? 아직은 몇 작품밖에 읽지 않았으니 유보해두자. 요시모토 바나나도 어느 날 나에게 그 세계로의 일보를 허락하지 않았던가!   

 

 특별한 내용을 생각해도 크게 남는 것이 없다. 다시 펼쳐들고 몇 장을 보아도 그랬었지! 하는 기억과 느낌은 있어도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고리나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다. 절망에 휩싸여 있지만 애인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 흐름을 정확히 집어내기가 더 어렵다. 전체적으로 불안하게 흘러가는 그녀의 삶이 어린 시절 기억과 연결되면 더 불안해진다. 그녀와 애인의 관계, 그녀와 동생의 관계, 그녀와 동생의 남자친구와 관계 등등이 사회적 시선에서 본다면 불륜이나 평범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모두 본 지금도 나에겐 소설의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어떤 소설은 압도적인 힘으로 나를 짓눌러 놓고, 어떤 소설은 그 치밀한 구성으로 날 놀라게 하고, 어떤 소설은 풍부한 이야기로 날 즐겁게 한다면 이 소설에선 왠지 모르게 무미건조함을 느끼게 한다. 고립된 성에 사는 사람처럼 타인과의 소통이 많지 않은 그녀를 생각하면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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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시티 - 딘 쿤츠 장편소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8
딘 R. 쿤츠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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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 오랜만에 딘 쿤츠의 소설을 읽었다. 십 수 년 전 고려원에서 출판된 그의 작품들은 나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말하듯이 늘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은 갈수록 그를 멀리하게 만들었다. 그후 한 동안 그의 작품을 새롭게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비채에서 <남편>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다시 거의 2년 만에 이 소설이 비채에서 나왔다. 하얀 표면에 검은 글자들이 간결하게 표시된 인상적인 표지로 말이다.   

 

 벨로시티, 속도란 뜻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그의 소설은 잘 읽히고 재미있다. 속도감 있게 이야기는 나아가고, 간결하고 한정된 공간과 시간을 배경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몰입도를 높여준다. 기존의 소설들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다루었다면 이번엔 최악의 살인자와 평범한 바텐더의 대결이다. 전작 <남편>과 이 책과 미 출간작인 <THE GOOD GUY>를 평범한 남자 3부작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그의 다른 작품들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이 작품에선 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주인공 빌리를 계속해서 밀어붙이는 살인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선택과 시간제한이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부딪히는 선택의 순간은 읽는 나도 고민하게 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한 명은 죽는다. 처음 이 쪽지를 발견했을 때 단순한 장난으로 생각하면서도 불안감을 느낀 것은 바로 자신의 선택에 의해 누가 죽을지 정해진다는 점이다. 평범한 바텐더인 그가 고민하다 친형과도 같은 경찰관 네드를 찾아간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네드는 이것을 장난으로 치부한다. 그리고 실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빌리가 두 번째 쪽지를 발견했을 때 보인 네드의 반응과 쪽지의 내용은 다음 장면을 예측하게 만든다. 이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네드가 살해당한 것이다. 이제 쪽지는 장난이 아니고 악몽과도 같은 현실이다. 이 쪽지는 그에게 선택을 계속 강요한다. 선택을 거부하는 것조차 또 다른 선택이다. 이렇게 쪽지가 올 때마다 사람이 죽는다. 상황은 모두 빌리에게 불리하게 조작되어 있다. 그리고 이 악당은 빌리에게 직접적인 상처를 입힌다. 이 상처보다 더 그를 겁먹게 하는 것은 바로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고, 계속해서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이다.  

 

 작가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선택하도록 강요하면서 시간이란 압박을 부여한다. 몇 분이나 몇 시간을 주면서 강요한다. 피할 길은 없다. 아니 유일하게 피할 방법이 있다. 그것은 이 상황을 만들어낸 자들 찾아서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주변에서 맴돌며 빌리를 감시하고, 위험 속으로, 긴장 속으로, 공포 속으로 몰아간다. 직관에 의해 범인일 것 같은 인물이 있지만 분명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이나 전개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다른 부분이다. 빌리가 사건을 풀어가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이다. 기존의 소설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들이다. 극적인 장면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보다 단순해서 오히려 힘이 빠진다. 그래서인지 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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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명문가 -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위하여
조용헌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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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에 과연 명문가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과거 속에서 찾아보면 명문가로 불릴 집안이 꽤 보이지만 현재를 둘러보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물론 현재 진행형으로 명문가를 꼽을 집안이 있을 것이다. 나의 과문함 때문에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이 의문을 달고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만큼 우리가 재벌이나 거부들에 대한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듣지만 좀처럼 그 집안을 칭송하지 않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모두 아홉 집을 말하고 있다. 이 중에서 나 자신이 이전부터 알고 존경했던 우당 이회영 선생의 집안도 포함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이 집안을 존경하는 것도 역사 서적이나 기록을 통해 그들이 흘린 피와 노력과 희생과 삶을 알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나머지 집안은 사실 잘 모른다. 조금씩 들어본 집안은 있지만 왜 명문인가 의문이 생기는 집안도 있다. 물론 이것은 가치관과 삶과 역사를 보는 시각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명문가라고 일컬을 수 있는 물증으로 고택을 꼽는다. 수십 칸의 고택을 현재까지 보유하고 잇는 집안에서 발견되는 몇 가지 특성들이 이차적 증거다. 이 특성들은 역사성, 도덕성, 인물, 재력, 명당 등이다. 이 조건을 모두 갖춘 집안도 있지만 이회영 집안처럼 자산을 모두 정리하여 독립운동에 쏟아 부은 경우는 예외다. 고택이 없지만 그들이 보여준 도덕성과 인물만으로도 충분히 그 누구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 집안들의 과거를 보면서 나 자신을 반성하고 많은 것을 배운다. 과연 그들처럼 나도 행동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들거나 빈민을 위해 자신들의 재산을 풀어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쉽지 않은 행동이다. 오늘 날 1%의 부자들이 자신들의 부를 위해 직접세를 줄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개발이란 이름으로 좇아내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들의 행동은 더욱 빛난다. 재단을 만들어 사회사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재산을 증여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생색내기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청년 실업자를 구제한다는 이름으로 신입사원의 연봉은 깍으면서 자신들의 연봉은 그대로 두는 이중적 작태도 빈번하다. 이런 현실에서 이 책에 실린 아홉 집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저자가 고택을 명문가의 기본으로 삼으면서 자신의 출신을 말하고 있다. 명당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귀가 솔깃하게 만들고, 고택의 아름다운 모습은 한번쯤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물론 고택만 가지고 명문가를 말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한 이회영 선생 집안이나 간송 집안이나 인동 장씨 집안 같은 경우는 고택이 없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고택과 이차적 증거들을 함께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끔은 그 집안의 이야기보다 풍수 등의 이야기가 더 많은 경우도 있다. 역사를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에선 결코 고운 시선으로 보기 힘든 집안도 있다. 그렇지만 어렵고 힘든 시기에 마을 사람들의 인심을 얻고, 전란을 무사히 넘기고, 현재도 고택을 보존하면서 조상의 유지를 받들고 실천하려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다. 

책을 덮고 난 후 과연 이 책에 나온 아홉 집안 모두 명문가로 일컬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였다고 하지만 과연 역사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다. 그냥 저자가 보여준 이야기만 가지고 명문가로 치부하기엔 너무 자료가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런 작업이 있어야 명문가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성립되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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