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전 한 잔 밀리언셀러 클럽 4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데니스 루헤인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영화 <미스틱 리버>를 통해서다. 책으로 처음 접한 것은 <살인자들의 섬>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좋아하게 된 것은 켄지&제나로 시리즈로 첫 출간된 <가라, 아이야, 가라>다. 어쩌면 시대에 맞지 않는 이 커플 탐정이 지독한 현실의 부조리를 배경으로 탁월한 활약을 보여준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지저분함과 더러움과 가슴 아픈 현실이 가득하다. 그래서 읽고 난 후 개운함보다 씁쓸함이 더 남는다. 

 

이 작품은 시리즈의 첫 작품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처녀작이다. 처녀작에서 이런 멋진 탐정 콤비를 만들다니 대단하다. 하지만 한국에 번역된 순서는 시리즈 중 세 번째다. 시리즈의 경우 첫 작품부터 읽기를 좋아하는 나에겐 아쉬운 일이다. 그래도 나와 준 것만으로 고맙다. 보통 시리즈가 순서대로 나오다 중단되어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남긴 작품들이 많은데 이 시리즈는 나머지 작품도 출간한다니 기대가 된다.  

 

 먼저 출간된 작품을 읽은 것이 상당히 오래되었다. 정확한 기억은 많이 퇴색하였지만 그 당시 느낀 감정들과 이 시리즈 첫 권에 대한 기대는 아직도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런 감정과 기대보다 새로운 정보들이 더 기뻤다. 이 커플 탐정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와 켄지의 과거가 놀라운 정보를 제공하면서 신선하게 다가온 것이다. 덕분에 왠지 모르게 최근 미국 할리우드가 시리즈의 기원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현실을 떠올려주었다. 순서대로 읽지 못한 아쉬움이 단숨에 날아간 것이다.  

 

 이번에도 켄지가 사건을 받아온다. 이 콤비의 특징인 사람 찾기다. 상원의원의 사무실에서 청소부 제나가 자료를 가지고 사라진 것이다. 공식적으로 경찰에게 일을 의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구린내가 난다. 사람을 찾아주고 돈을 받는 탐정일이 본업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다. 이 콤비는 생각보다 쉽게 제나를 찾아낸다. 그녀는 자신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지만 켄지에게 시간 유예를 부탁한다. 그는 이것을 받아들인다. 다음 날 그는 그녀와 함께 은행 금고로 자료를 가지러 간다. 자료를 찾아 나오던 그녀를 향해 한 갱이 총을 쏜다. 그녀는 죽고, 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살인자를 쏜다. 그가 본업에 충실하지 않은 대가를 치룬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더럽고 무시무시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시종일관 작가는 위트 넘치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바닥에 깔린 사실이 가혹하고 냉정하고 가슴 아프다 해도 이것은 변함없다. 콤비를 위협하는 적들의 행동은 단순한 위협이 아닌 사실적인 공격으로 이어진다. 거침없는 총격은 여유 있어 보이던 상황을 단숨에 반전시킨다. 전통적인 탐정 소설에서 보기 힘든 장면들이다. 미국의 현실이 어떤지 모르지만 하룻밤에 벌어지는 갱들의 전쟁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때 다른 세계의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느낄 심리적 압박과 두려움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도 동료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앤지의 모습은 직장인들의 업무 후 귀가처럼 여유가 있어 보인다.  

 

 이전 작품에서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부바를 다시 만나서 반가웠다. 냉혹하고 대단히 무시무시한 인물인 그가 보여주는 매력은 역시 단순함과 순진함이다. 이 커플의 적을 죽이는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지만 앤지에게 보여주는 반응은 부끄러움 많은 귀여운 소년 같다. 그리고 역시 이전부터 궁금했던 이 커플의 시작을 알 수 있어 좋았다. 대단한 운동능력을 가진 그녀가 매 맞는 아내였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 기간이 상당히 길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켄지의 표현을 빌리면 그녀는 남편의 현재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것 같다. 그 환상이 언제 깨어질지는 모르지만.  

 

 또 하나 놀라운 정보가 있다. 켄지의 아버지에 대한 것이다. 소방 영웅이었다는 사실보다 대단히 권위적이고 독재자였고, 폭력을 주저 없이 휘둘렀다는 사실이다. 이 과거의 기억 중에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의 명성이 올라갈수록 집에서 보여주는 강박관념이 더 강해진 것이다. 불이 날 수 있는 어떠한 상황도 만들지 않으려는 그 모습에서 그가 지닌 공포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켄지에게 남긴 상처는 평생 아픔이었다. 존경의 대상이어야 할 아버지가 그에겐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다.  

 

 책을 읽다 만나게 되는 미국의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의 환상 속에서 만난 것과 사뭇 다르다. 인종차별과 그 역차별 문제가 드러나고, 아동학대와 소아성애자의 역겨운 행위와 10대 청소년들의 거침없는 총질은 놀람을 넘어 경악스럽다. 이 커플 탐정이 찾아낸 사진에서 만나게 되는 사실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 깨어지고,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역시 이 시리즈는 재미나게 읽히지만 뒤끝은 씁쓸하고 가슴 저린 아픔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악몽도 꿈이다. 그런데 악몽이 현실로 변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가벼울 수 있는 소설이 점점 무서워지는 것은 바로 악몽이 현실로 변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공간도 엘리베이터라는 한정된 곳이다. 이곳에 갇히면 벗어날 방법도 없다. 밀실 공포가 없다고 하여도 함께 있는 사람들이 평범하고 평소에 알던 사람이 아니라면 어떨까? 그들이 말하는 과거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불안감과 공포가 더욱 거세어질 것이다. 그리고 발생하는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  

 

 네 명이 엘리베이터에 갇힌다. 첫 번째 화자 오가와는 임신한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는 바 레스토랑의 바텐더다. 그는 술 취한 애인을 바래다주고 오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갇힌다. 눈을 떴을 때 자신을 둘러싼 이상한 세 명의 사람들이 있다. 첫 인상은 그냥 양복을 입은 중년, 오타쿠로 보이는 안경 쓴 남자, 까만 옷을 입은 젊은 여자다. 하지만 함께 있으면서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이 심상치 않다. 임신한 아내는 출산이 급하다고 남자에게 연락을 하였고, 남자는 그 전화에 급하게 애인 집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지된 엘리베이터에 갇혔다. 탈출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같이 갇힌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 사람들 전혀 탈출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끔 보여주는 행동은 코믹하기까지 하다.   

 

 모두 세 사람의 악몽을 다루고 있다. 오가와, 마키, 사부로다. 악몽이 현실로 바뀌는 것은 마지막 사부로부터다. 이전 두 사람의 이야기에 많은 단서가 담겨 있지만 읽는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코믹하고, 재미난 상황극 정도로 인식할 뿐이다. 밀실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읽다 보면 연극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은 작가의 이력 때문인 것 같다. 이 소설을 무대로 옮겨 연출을 한다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 각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말이나 행동에서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에 짧게 엘리베이터에 갇힌 적이 있다. 어릴 때였는데 큰 공포는 아니었다. 장난삼아 가끔 엘리베이터를 중지시키고 놀았던 적도 많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나의 통제 아래에 있었다. 아니면 경비실과 연락이 닿아 금방 문이 열리곤 했다. 오히려 나를 공포에 빠지게 한 것은 절반쯤 걸친 엘리베이터의 위치다. 혹시 내가 빠져나가는 순간 엘리베이터가 작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공포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것은 영화의 한 장면에서 받은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오가와의 악몽에서 가장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은 함께 탄 세 명이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말하는 순간이다. 좀도둑, 방화범, 유괴범에 대한 고백이 이어지는데 평범한 오가와에겐 이 상황이 정말 악몽 같다. 달아날 공간도 없고, 사랑하는 아내는 출산에 임박했다. 그런데 갇힌 공간에서 공포를 들어내기 위해 이런 진실게임을 하다니 이상하다. 공포를 들어내기 위한 진실게임이 오히려 공포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세 명의 악몽으로 진행되는 구성은 잘 짜여있다. 오가와가 갑작스럽게 갇혔고, 급하게 갈 곳 있는 사람의 심리를 잘 드러내었다면 이후 나온 두 사람은 상황을 코믹하게 만들거나 그 상황을 설명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진행으로 몰아간다. 공간적 배경이 넓지 않다보니 더욱 연극의 무대처럼 느껴지고, 적은 수가 등장하다보니 이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이 마지막 반전이 공정한 게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중간에 단서를 흘렸는지 모르지만 급속하게 변하는 분위기 때문에 중간에 알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한 번 잡으면 멈추지 않는 엘리베이터의 움직임처럼 끝까지 쉼 없이 달려간다. 그리고 분위기 반전과 스멀스멀 피어나는 긴장감과 공포를 만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욕 더스트 Nobless Club 2
오승환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오승환이란 이름을 처음 만난 것은 <가을왕>이란 판타지에서였다. 당시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판타지지만 현대의 전술 이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호평을 받은 것을 보고 읽었는데 조금 아쉬운 대목이 있었지만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다음 소설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작품인 <1254 동원예비군>은 읽지 못했다. 최근 나의 독서 방식이 몇 권으로 된 장편을 거의 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 한 권으로 나온 이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초인적인 용병의 활약을 그린 소설이다. 단순한 스릴러라기보다 장르 복합적이다. 미래와 최첨단 군사장비들은 sf문학을 연상시키고, 라훌라로 대변되는 이진후의 활약은 무협의 절대고수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예전에 자주 읽었고, 지금도 좋아하는 장르문학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한 번 잡으면 놓기 싫어질 정도로 재미있고, 속도감이 있다. 물론 이것은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다.  

 

 2010년 영종도에서 한 인물이 사람을 죽인다. 그는 인신 매매범이다. 라훌라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그를 죽인다. 시간은 1년 정도 흘러갔다. 라훌라는 존 이엔이라 중국계 꽃집 주인으로 살아간다. 겉으로 드러난 그의 삶은 평온 그 자체다. 가끔 그의 반응을 보면 아직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의 손님이었던 한 남자가 납치되고, 휴식을 취하던 라훌라는 잠시 기지개를 켠다. 이어 벌어지는 놀라운 활약은 보통의 스릴러 액션에선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뒤에 나올 이야기의 조그마한 시작일 뿐이다.  

 

 라훌라가 소속된 조직은 용병회사 AEC다. 미국 CIA가 만들었지만 그 조직 자체가 너무 커버렸다. 미국 내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 조직을 보면서 예전에 어딘가에서 읽은 전쟁대행회사들의 무시무시한 능력이 떠올랐다. 아마 거기에서 이 조직의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이 조직원들이 보여주는 능력은 일반 경찰이나 군사조직을 능가한다. 특히 라훌라가 개입할 때면 몇 배나 월등하다. 초인적인 능력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라면 여기에 불만이 많을 것 같다.  

 

 속도감 있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재미가 있지만 구성은 조금 허술하다. 라훌라로 대변되는 이진후의 삶이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면서 그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인들의 삶을 같이 표현하지만 뒤로 가면서 삶보다 라훌라의 개인 능력에 더 기댄다. 특히 규모를 자꾸 키우면서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오히려 사라진다. 과거 사랑했던 여인 수영이 죽고 난 후 그가 벌인 연쇄살인의 장면과 사연은 처절하지도 애절하지도 않다. 감정의 깊이를 드러내기보다 한 남자의 잔인한 행동만 돌출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속에 엮인 여인의 감정과 행동은 다른 여자들의 감정과 함께 이전 무협에서 자주 보았던 여성의 모습이라 아쉬웠다.  

  

 

 아직 노블레스클럽 시리즈를 한 권밖에 읽지 않았다. 몇몇은 낯익은 이름이고, 좋아하는 작가다. 장르문학을 예전처럼 많이 읽지 않는다고 하지만 언제나 관심을 두고 있는 나에게 이 시리즈는 주목 대상이다. 10대나 20대처럼 이런 종류의 책만 골라 읽지는 못하지만 복잡하고, 어렵고, 책이 읽기 싫을 때면 즐거운 마음으로 찾을 것 같다. 무협이나 판타지가 너무 장편이라 쉽게 손이 가지 않는데 이 시리즈는 대부분 한두 권이라 편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리뷰해주세요.
루머의 루머의 루머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5
제이 아셰르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단숨에 읽었다.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뒷이야기가 궁금하여 계속 읽었다. 결코 밝은 소설이 아님에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대단하다. 한 소녀가 자살하기까지 자신에게 영향을 준 13명의 사람들에 대해 테이프로 녹음한 것을 바탕으로 진행한다. 테이프의 육성과 이것을 듣는 소년의 심리와 행동이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녀가 남긴 것은 모두 7개의 테이프다. 순서가 정해져 있다. 테이프 한 면에 한 사람에 대한 그녀의 기억과 추억과 악행이 담겨 있다. 그 순서를 따라 가다보면 그녀가 자살한 이유를 만나게 된다. 왜 그녀는 자살을 한 것일까? 이 진행이 한 편의 미스터리 같다. 그리고 그녀를 좋아했던 순진한 남자 클레이의 감정은 그녀에 대한 그리움과 그녀가 보낸 수많은 신호를 새롭게 돌아보게 만든다. 그녀의 자살을 막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그가 다른 자살을 막는데 조그마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던져준다.  

해나 베이커. 그녀는 소문으로 상처를 입는다. 늘 이런 이야기에서 만나게 되는 사소한 장난 같은 소문이 그녀를 상처 입히고 힘들게 만든다. 단순히 한 번 지나가는 정도고, 좋은 친구와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했다면 이런 처참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녀에겐 좋은 친구가 없었다. 아니 있었다.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클레이다. 그는 해나를 좋아했다. 그렇지만 그가 그녀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기에는 너무 늦게 만난 감이 있다. 이미 수많은 상처로 가슴이 너덜너덜해진 그녀가 용기를 내기엔 상처가 너무 깊었다. 오히려 마지막으로 그녀가 자신을 잡아주길 원했던 선생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가정은 사실 결과론이다. 만약 우리 주변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수많은 말이 오갈 것이다. 그녀의 나약함을 질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는 동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가 왜 자살을 해야 했는지와 그녀가 보낸 수많은 신호를 우리가 놓쳤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누군가가 신호를 보낸다고 하지만 그것을 알아채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은 우리를 힘들게 만들고, 그 도움을 바라는 신호를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작정 도움을 필요한 신호로 받아들여 나서기도 쉽지 않다. 물론 이 소설을 보면 그 신호에 적극적으로 반응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오해로 상대방을 번거롭게 만들지언정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자살에 대한 13가지 이유, 그것은 결코 즐거운 이야기가 아니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불어나는 소문, 일상적인 거짓말, 이기적인 행동들, 훔쳐보기 등의 수많은 사연들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하나씩만 놓고 본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쌓인다면 어떨까? 물론 이런 일이 쌓인다고 모두 극단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능성은 높아진다. 만약 그 곁에 좋은 친구나 대화 상대가 있어 이해해 준다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  

무겁지만 의미심장하고 흡입력이 있다. 테이프와 현실이 교차하면서 즉각적으로 반응이 일어나고, 자살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미스터리 같아 속도가 빠르게 붙는다. 현재에서 본 과거의 신호를 해석하는 모습에서 나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보낸 신호 중에 혹시 이런 위험한 상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세월이 지나면 하나의 에피소드나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일들이 현실의 무거움과 절박함에 부딪혀 있는 사람에겐 너무나도 큰 고통이고 아픔이다. 내가 장난으로 연못에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을 수 있다는 속담처럼 말 한 마디에도 신중해야함을 다시 한 번 더 느낀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결코 밝은 소설이 아님에도 잘 읽히고, 우리가 사소하게 그냥 말하는 것의 최악을 연상하게 한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유령인명구조대. 자살자들이 자살하고자 하는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자살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나에겐 재미지만 당사자에겐 아픔이나 충격일 수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잃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나 타인과의 솔직한 대화를 주저하고 있는 사람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해나가 아직 살아있을 때. 그녀와 사귈 기회가 영영 사라졌나 싶어 조바심을 내면서. 혹시 무례한 말이나 불쾌한 행동을 한 건 아닌지 곱씹기도 했다. 해나에게 말을 걸기가 너무 두려웠다. 선뜻 다가서려니 가슴이 떨렸다.

 그런데 그녀는 죽었고, 기회는 영원히 사라졌다.(33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채굴장으로 - 제139회 나오키상 수상작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시공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2008년 나오키 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을 선택하게 만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나오키 상이고, 다른 하나는 문장에 대한 칭찬이다. 심사위원이 ‘질투가 날 정도’란 말에 과연 어떤 문장일까 궁금하였다. 이런 마음으로 시작을 하였지만 문장의 아름다움이나 간결함보다 행간에 숨겨진 감정의 파편들이 더 다가왔다. 어떻게 보면 심심한 것 같고, 부정확한 감정이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솔직해지기 쉽지 않은 것도 있는 것 같다.  

 

 남쪽 섬에서 1년 2개월 동안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사건이 거대하거나 감정이 격하게 표현되지는 않는다. 화자인 세이는 섬 학교의 양호 선생이다. 남편은 화가로 섬에서 작업을 한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그들 사이에 아이는 없다. 둘의 사이는 좋다. 평온한 일상이 흘러가는 어느 날 신학기를 맞이하여 새로운 선생이 온다. 음악 선생 이사와다. 그의 첫 인상은 결코 시선을 끌 정도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만남이 이어지면서 감정은 조금씩 자라난다. 이 감정을 작가는 결코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녀의 행동과 사소한 변화 속에 담아낸다. 약간 격렬한 사랑을 기대했는데 그런 장면은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조금 심심하다.  

 

 조용하고 모두가 알고 지내는 듯한 섬에서 활기차고 사건을 만드는 것은 쓰키에다. 그녀는 유부남과 사귀고 있다. 이 유부남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녀를 찾아온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그녀의 행동은 거침없다. 그 남자를 기다리는 것도, 만나는 것도 그녀의 삶을 살찌워주는 것 같다. 이런 그녀의 삶을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개인적일 수 있지만 그녀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를 두고 두 남자가 결투를 한 후에도 이 사건은 그냥 하나의 해프닝일 뿐이다. 그녀의 이런 솔직함은 세이의 솔직하지 못하고 숨겨둔 감정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쓰키에와 함께 밋밋한 듯한 소설에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은 시즈카 할머니다. 아흔을 넘긴 듯한 나이의 그녀는 세이와 상당히 사이가 좋다. 노구지만 활기차고, 나쁜 감정 없는 독설을 내뱉는다. 이런 그녀가 병의 징조를 보이고, 입원해서는 음란한 꿈을 꾼다. 그녀가 꿈속에서 외치는 남자의 이름은 과연 그녀의 남편일까 하는 의문을 남기기도 한다. 그녀가 세이에게 마지막에 한 말을 봐서는 아닌 것 같다. 이 할머니의 역할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세이와 이사와를 은연중에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세이가 이사와를 새롭게 인식하고 그와 대화를 하게 되는 계기가 할머니의 집에서 비가 샌 날이고, 할머니의 병원 입원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사와는 소설 속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그의 과거는 거짓과 비밀로 쌓여있다. 작가는 결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시즈카 할머니가 결국 죽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풍기는 분위기는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 같다. 무표정한 얼굴을 가졌지만 아이들과 놀 때면 열성적인 그의 행동 뒤에 숨겨진 어떤 감정의 조각들은 이런 의심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가 세이에게 가진 감정의 실체는 어떤 것일까? 그들의 마지막 만남에서 얼핏 드러나지만 확실하게 표현하지는 않는다.  

 

 터널을 파나갈 때 제일 끝에 있는 지점을 채굴장이라고 한다. 터널이 뚫리면 채굴장은 사라진다. 터널이 뚫리지 않고 계속 파면 그 곳이 바로 채굴장이다. 이 둘의 관계가 바로 이 곳에 머물러 있다. 둘 사이의 터널을 뚫어야 하지만 막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잔잔한 듯하면서 격렬함을 머금은 감정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멈춰 선 것이다. 어쩌면 이들에게 이 시간들은 긴 인생의 한 순간 바람 같은지도 모르겠다. 뜨겁지만 결코 그 열기를 밖으로 말할 수 없는 바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