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바흐
로버트 슈나이더 지음, 강명순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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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바흐의 매력에 대해 잘 모른다. 학창시절 라디오에서 나오는 클래식을 들으면서 낮잠을 즐겼던 기억은 있다. 나른한 아침의 햇살 속으로 울려 퍼지는 클래식의 선율은 졸음을 잠으로 이어가는데 최고였다. 그 이후도 음악회를 가면 존다. 나쁜 버릇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유명한 음악가의 작품을 소설 등에서 해석한 글을 읽거나 우연히 듣게 된 선율은 CD를 구입하게 만든다. 몇 번을 듣지만 유명한 몇 곡을 제외하면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나의 귀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음악가를 다룬 책이 나오면 눈이 먼저 간다. 이 소설은 바로 음악의 아버지라고 학창시절 배웠던 바흐의 유산을 둘러싼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은 구동독의 나움부르크다. 구동독이라고 표현한 것은 독일이 통일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움부르크 성 벤첼 교회의 오르간과 그곳에서 발견된 바흐의 유작을 둘러싸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성을 뒤섞어놓았다. 바흐에 대해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여주는 야곱과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아들을 욕하는 아버지와 자신의 첫사랑과 아버지의 결혼으로 태어난 이복동생 레오가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뒤틀린 묘한 애정을 보여준다면 교회의 오르간을 조사하러 온 저명한 바흐 협회의 회원들이 다른 한 축으로 야곱과 대립하고 속물근성을 드러내어준다. 명성의 허울 속에서 참모습을 꾀 뚫어 보여주면서 진정으로 바흐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려준다.  

 

 주인공 야곱은 특이하면서 불행하고 불안한 남자다. 첫사랑에게 차이고, 그 첫사랑이 자신의 계모가 되었고, 두 번째 사랑한 여자도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 이런 사랑의 실패와 껑충한 키에 굽은 모습은 다른 사람의 애정을 받기에 부족하다. 아니 그 무엇보다 자신감이 없는 그의 삶이 더 문제다. 솔직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술로 자신을 지탱하는 그의 모습은 지리멸렬한 삶 그 자체다. 이런 그에게도 한 가지 재능이 있다. 바흐에 대한 것이다. 그가 살고 있는 도시로 바흐 협회의 회장을 비롯한 거두들이 오르간을 조사하기 위해 온다. 야곱은 이미 이곳에서 수십 년 동안 무료로 연주를 하고 있다. 하지만 소위 거두니 전문가니 하는 사람들이 언제 아마추어의 말에 귀를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통일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의 냉소와 비웃음은 차가운 비수처럼 다가온다.  

 

 이야기는 야곱의 가정사와 애정사를 바탕으로 깔고 그의 바흐에 대한 충성과 우연히 발견하게 된 <요한계시록>이란 악보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교회의 오르간 조사위원회에 자신이 오랫동안 연주하고, 아마추어 바흐 연구자였던 것을 알리면서 위원으로 합류하고자 하였지만 정중하게 거절당한다. 이에 분개하던 중에 이복동생이 낀 곳에서 바흐의 유산처럼 보이는 물건을 발견한다. 분명 이것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불행하고 불안하고 위원회에 발탁되지 않은 감정들이 결합하여 이것을 숨긴다. 소설은 이 때부터 이 상황을 둘러싼 이야기로 맴돈다. 그리고 우연히 이 악보를 야곱이 머릿속으로 연주하면서 알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고, 자신을 둘러싼 음산한 분위기를 경험한다.  

 

 사실 이 바흐의 유작만을 중심으로 나갔다면 속도감은 있었겠지만 풍성하면서 아슬아슬하고 미묘한 재미는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 유품을 협회에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과 최초의 발견자이자 이 때문에 유명해진 자신을 상상하는 욕망에 휩싸인다. 또 짝사랑하는 여인이나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의 불안감과 욕망을 더욱 키운다.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가지 변함없는 것은 바흐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다. 이 감정들이 바로 그로 하여금 <요한계시록>의 가치를 깨닫게 만든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흐 협회의 회장이나 조수는 이를 깨닫지 못하는 반면에 일본인 고야타케만 그 실체를 경험하는 것이다. 명성을 얻을 때까지의 업적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이후 그들에겐 자리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 그 이상은 아닌 것 같다.  

 

잘 읽히고 재미있다. 전작 <오르가니스트>에선 낯설고 더딘 진도였는데 이번에 그렇지 않았다. 전작도 역시 오르가니스트가 주인공(그것도 천재 연주자)이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혹 작가 자신이 연주자거나 아니면 이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것일까?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한다면 역시 눈으로 듣는 바흐의 음악일 것이다. 음악에 무지해서 충분히 형상화시키지는 못했지만 글로 만들어진 그 형상이 가슴으로 울려 퍼진 것은 사실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주인공이지만 연민과 자그마한 애정이 생기는 그의 행동과 삶이 바흐에 대한 삶과 이어져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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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Space Fantasia (2001 야화) 01 2001 Space Fantasia
호시노 유키노부 글.그림, 박상준 감수 / 애니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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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아서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아라비안나이트>를 조합하여 제목을 만들었다. 그리고 첫 번째 밤은 아서 C. 클라크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로 채워져 있다.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인류의 우주로의 비상을 다루면서 차근차근하게 한 발을 내딛어 나간다. 그 과정은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전체적인 구성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독립된 별개의 이야기처럼 나아가지만 끝에 도달하면 다시 앞에 나온 에피소드를 돌아보게 된다.   

 

 각 장 제목은 서양 SF고전 등에서 차용했다고 한다. 알고 있는 제목은 사실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래서 과연 그 소설들과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아니면 전혀 별개의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고, 각 단계에서 다음으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임을 암시한다. 그 가운데 펼쳐지는 과학 지식이나 광대한 상상력은 놀랍고 신기하고 감동적이다.  

 

이 만화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는 다섯 번째 밤의 <스타차일드>다. 어린 시절 이것과 비슷한 만화를 본 적이 있다. 새로운 우주로 가는 기술이 현재의 단계에서는 속도가 너무 더뎌 어린 남녀를 태워 보낸다는 설정이었다. 이 만화에선 로빈슨 가의 정자와 난자를 우주선에 실고 가면서 아이들을 탄생시켜 목적지인 행성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행성에 도착한다. 이 단편만 보면 새로운 환경에서 만들어질 인류의 시발점을 보는 것 같지만 다음 이야기를 위한 조그마한 시작일 뿐이다.  

 

  1권에서 인류의 우주 진출을 다루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다면 2권에서 본격적인 대도약이 이루어진다. 기술발전에서 시작된 시간을 앞지르는 여행은 가슴속 깊은 곳에 강한 울림과 여운을 남기고, 미지의 공간을 향한 인간들의 도전과 모험은 각각 다른 곳에서 위험과 경이로운 현상과의 만남을 보여준다. 이제 작가는 중력을 벗어나 저 넓은 우주로 상상력을 극대화시킨다. 3권에선 다시 인간이란 존재로 돌아오면서 상상력을 더욱 높이고, 가슴 아린 사연을 만들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를 한다. 그 중심엔 스타차일드들이 있다. 
 

400백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다룬다. 이 속에 인류의 철학과 종교를 비롯하여 욕망과 모험과 사랑을 풀어놓았다. 하룻밤이 지나면 다시 만나게 되는 신비하고 놀라운 이야기는 책에서 눈길을 떼기 힘들게 만든다. 각각의 밤들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들은 예전에 읽은 많은 SF소설들을 생각하게 만들고, 기억과 추억으로 새로운 이야기와 결합한다. 25년 만에 정식 출간되었다는데 세월의 흐름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오랜만에 책소개 글에 나오는 광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흔히 말하는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만화도 그렇다. SF소설이나 영화 등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해도 우주에 대한 호기심과 거대한 상상력만 있다면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을 것이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것은 스무 밤은 너무 짧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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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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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란 이름을 여기저기서 만났지만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다. 읽지 않고 쌓아둔 책들 속에 한두 권은 분명 있을 텐데 왠지 손이 가질 않는다. 인터넷을 할 때면 늘 서점을 찾고, 사고 싶은 책을 찜해 놓고, 고민을 하다 결국 구입한다. 이렇게 쌓이는 책은 사실 적지 않게 읽고 있는 책들보다 많다. 최근에 책 사는 것을 약한 뜸하게 했는데 다시 늘어나고 있다. 집은 좁아지고, 욕심은 자꾸 커지고 있다.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다시 물 건너 있는 작가에게서 확인하니 기분은 좋다.  

 

 런던스타일 책읽기란 제목을 붙였지만 런던스타일과는 전혀 상관없다. 미국의 <빌리버>란 잡지에 2003년 9월부터 2006년 6월까지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이다. 원제도 다르다. 하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구성과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매달 산 책과 읽은 책을 글 앞에 늘어놓고, 자신이 그달에 읽은 책에 대해 평을 한다. 그런데 이 평이 신랄하지 않다. <빌리버>란 잡지의 편집 방향이 비판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뭐 덕분에 작가는 에둘러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살짝 반항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당연히 연재 중지란 벌칙이 내려진다.  

 

 사실 책 앞부분을 읽을 때는 즐겁고 웃음도 많이 나왔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이 많았다는 의미다. 익숙한 작가들도 많이 나오고, 색다른 구성이 주는 즐거움도 컸다. 하지만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왠지 모르게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에겐 익숙하고 대단한 작가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낯설기만 한 작가들이 등장하고, 수많은 작가와 책들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오면서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또 목록을 보면서 그의 취향과 맞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뒤로 가면서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sf에 대한 그의 평은 고등학교 국어선생 하는 친구를 잠시 생각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그에게도 좋은 평가와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아! 이 무슨 감정의 혼합인가! 

 

책을 다 읽고 지금 글을 쓰면서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나의 방식이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닌가 의문스럽다. 그가 몇 년에 걸쳐 기록하였고, 공을 들여 읽은 책들을 너무 급하고 빠르게 읽으면서 진정한 교류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경우가 최근에 자주 있는데 닉 혼비가 다른 작가의 소설에 많은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읽은 사례를 보면서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해졌다. 그리고 괜찮은 책인데 왠지 모르게 가슴으로 머릿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지 못한 책들이 연상되었다. 다시 차분하게 시간을 들여 읽는다면 그 아쉬움을 날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끔 미련한 짓을 한다. 지루하여 죽을 정도인데도 그 화려한 명성에 짓눌려 끝까지 힘겹게 읽는다. 책 내용이나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도 느끼지도 못하면서 활자만 따라간다. 이런 반복이 가끔 생기는데 업무나 다른 목적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얼른 덮고 다른 재미난 책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잘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중간에 읽기를 포기한 책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그의 독서량이 많지도 않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의 글을 보면 재미있고 유쾌하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책의 편집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꼽으라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작가가 말한 책들의 한국 출판 본에 대한 표기고, 다른 하나는 작가별로 정리한 책 찾아보기다. 출간된 책을 보면서 읽은 책도 상당히 있고, 가지고 있지만 아직 읽지 않는 책도 곳곳에 눈에 띈다. 전형적인 서평 방식이 아닌 형식으로 글을 이끌어 나가고, 낯선 작가들과 작품도 수없이 나오다 보니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몰입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빈번했다. 하지만 읽은 책에 대한 평을 보면서 기억을 더듬어 비교해 보는 재미는 솔솔하다. 그리고 아직 읽지 않는 책을 읽고 난 후 비교한다면 어떤 재미가 있을지도 기대된다. 물론 내가 과연 이런 부지런한 행동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만약 이 책을 선택하고 이제 읽을 준비를 하고 있다면 긴 시간을 들여서 조금씩 천천히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뭐 순간 몰입하여 단숨에 읽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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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 사라진 릴리를 찾아서,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4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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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와 헤어진 헨리가 새롭게 이사한 후 놓은 전화번호로 릴리를 찾는 전화가 걸려온다. 한결같이 남자들이 전화를 하고, 웹사이트에서 그 번호를 보았다고 말한다. 새롭게 전화를 설치한지 15분 만에 두 통이나 온 것이다. 보통이라면 짜증을 내고, 전화선을 뽑거나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보통의 사람이 아니다. 뛰어난 과학자이자 전도유망한 특허기술을 보유한 회사의 대표다. 그리고 다음 주엔 중요한 투자자와의 약속이 잡혀 있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도 쉽게 번호를 바꾸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원제목은 <Chasing the dime(10센트 뒤쫓기)>다. 이 제목은 중의적 표현이다. 하나는 10센트 크기의 슈퍼컴퓨터 기술 개발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호기심을 뒤쫓는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론 그가 개발하고 있는 신기술 프로테우스고, 호기심은 바로 사라진 릴리를 찾는 것이다. 이 둘이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데 헨리라는 존재를 통해 이어져 있다.   

 

  릴리란 에스코트 걸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녀를 찾는 사람들 전화가 많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소개된 웹사이트에서 그녀의 사진을 보지 않았다면 과연 그가 사라진 릴리를 찾으러 긴 모험을 했을까 의문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남자들이 찾고, 너무나도 매력적인 그녀에 대한 호기심에 굴복하고 만다. 사라진 릴리를 찾기 위한 탐정 역을 맡아 하나씩 단서를 발견하고, 그녀의 삶속으로 한 발 내딛게 된다.  

 

 에스코트란 이름으로 실체가 숨겨져 있지만 릴리는 매춘부다. 하지만 너무나도 매력적이라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찾는다. 여자 친구와 헤어진 상태에 무수한 남자들이 찾는 매력적인 여자 릴리를 찾아 가는 그의 행동이 단순한 호기심만은 아니다. 그에게 쉽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 그의 누나가 길거리에서 매출을 하다가 연쇄살인범에게 죽은 사건이다. 그녀의 벌거벗은 시체가 이틀이나 공공장소에 놓여 있었지만 그 사이에 아무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런 상처가 그녀의 매력과 합쳐져서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아마추어 탐정이지만 실력이 상당하다. 단서를 쫓아 그녀의 흔적을 잘 찾아간다. 그 과정에 드러나는 그의 과거와 심리적 상태와 행동은 평소의 그가 아니다. 실험실에 파묻혀 살다 시피하고, 이 때문에 여자친구와 문제가 생겼는데 이상하게 릴리의 실종에 집착한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불이 켜진 덕분일까? 약간의 어려움이 있지만 사회공학이라고 스스로 부르는 논리방식으로 릴리에게 점점 다가간다. 하지만 점점 릴리에 가까워질수록 위험도 다가온다.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하여 트라우마로 이어지고, 예상하지 못한 위험에 부딪히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실종을 넘어선 무언가가 보인다. 그의 좌충우돌을 보면 그가 살아온 삶이 외로워 보인다. 성공에 한 발짝 다가갔지만 사랑하는 여자친구에겐 차였고, 릴리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주의 경보가 울리지만 멈출 수가 없다. 멈출 수 없는 것은 언젠가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벽은 견고하고 촘촘하다. 과연 그는 멈추거나 벽을 무너트릴 수 있을까? 아니면 깔아놓은 선로를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을까? 뒤로 가면서 읽는 속도와 몰입도는 더욱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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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습작 -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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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는 습관적으로 김탁환의 “따뜻한” 글쓰기 특강으로 읽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다시 그 제목을 보니 “따듯한”이다. 갱상도 남자의 따듯한 감성이 가득 묻어나는 책이다. 그의 글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야기가 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 책을 구성하는 열여섯 강의는 그가 읽은 책들의 밑줄 긋기이자 밑줄 긋는 문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담고 있다. 이 노력을 표현한 것이 바로 백년학생에 빗대어 만들어진 천년습작이란 단어에 이러게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순간의 번쩍이는 깨달음이나 지식의 나열일 수도 있지만 보통은 지독히 더디고 많은 공이 들어가는 노동이다. 단순히 하나의 간단한 이야기를 만든다고 하여도 그 속엔 작가가 걸어온 길에서 마주한 수많은 사람과 그 관계들이 현실과 상상의 그물을 자아내면서 만든 것이다. 이것은 저자가 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이 없음을 말하는 대목과 발자크의 사례로 잘 나타내어준다. 발자크의 일생을 보면 현대 몇몇 작가들이 글쓰기를 직장인들의 일과처럼 고된 노동으로 이어가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열여섯 강의를 읽으면서 많은 책들이 각 강의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그가 밑줄 긋기를 통해 책과의 대화를 한 결과물이자 자신의 삶과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이 책들 중 읽지 않은 책들이 상당히 있다. 그리고 이전에 읽었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책도 있다. 이런 책들은 그의 강의를 통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읽지 않은 책은 읽고 싶어지고, 이해하지 못한 책은 시간내어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의지를 불러왔다. 그가 인용한 문장들이 그 당시 나에겐 전혀 울림이 되지 않은 경우는 그와 나의 차이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책은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쓰고 멋진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266쪽)를 쓴 책이다. 다른 책이나 영화나 자신의 책을 인용한 것은 바로 이런 목적을 위한 조그마한 수단이다. 하지만 눈의 높이가 낮은 나 같은 사람에겐 숲보다 나무에 더 눈길이 간다. 그 한 그루 한 그루를 보면서 작가와 작품을 새롭게 보게 되고,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가 말한 천년습작은커녕 백년학생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저자처럼 처음 몇 장을 읽을 때는 인상적인 문장 몇 곳을 표시해두었다. 나 자신도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프카의 “글쓰기의 매혹과 글읽기의 매혹이 다른 까닭”(29쪽)이란 표현을 읽는 순간 아직 글쓰기의 매혹에 빠지지 않은 나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학창시절 일기를 몇 년 동안 쓰면서 약간의 발전이 있었을지 모르고, 한 편의 멋진 소설을 쓰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책읽기의 매혹에 빠진 내가 쉽게 이 유혹을 뿌리치기는 힘들다. 아니 정확히는 첫 문장을 시작하는 순간 막혔고, 그 뒤로 그 막힘을 뚫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간 내가 글을 쓰는 경우는 리뷰를 쓸 때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이것도 점점 게을러지고 있다. 그리고 가끔 머릿속을 지나가는 기발한 생각이나 멋진 문장들은 손으로 옮겨가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사라지지 않은 문장이나 아이디어도 머릿속에 힘겹게 담고 집에 와서 손으로 옮기는 순간 그 첫 영감이나 생각들이나 문장은 뒤틀리고, 바뀌어버린다. 이러니 아직 백년학생 초입단계에 머물러있다. 또 서평에 대한 그의 경험이나 글쓰기에 대한 인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보다 먼저 걸어가 그의 길에 나의 흔적을 보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글쓰기의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는 이제 그 자세의 일부를 배웠을 뿐이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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