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밀리언셀러 클럽 10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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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켄지 & 제나로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한국에 출간된 순서로 보면 네 번째다. 이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씁쓸하다. 이 두 탐정이 만나는 현실이 결코 희망으로 가득하지도 않고, 현실의 어두운 측면을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빠져서 읽다가 그 끝에 도달하여 느끼는 감정은 뭐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가끔은 공허함과 황량함과 섬뜩함이 가슴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이런 현실도 가능한가! 하고 의문을 던진다. 하지만 매력적이다. 재미있다. 이 모순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시리즈다.

<전쟁 전 한 잔>에 이어 다시 켄지의 아버지가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켄지를 학대하고, 괴롭혔던 그가 죽은 후에도 그 흔적을 남겨 놓은 것이다. 몸에 남겨 놓은 흉터가 아닌 그가 저지른 악행을 말한다. 한 지역에 오래 산 악당이 남겨놓은 유산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이 과거 속에서 마무리되었다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현재와 이어진다면 어떨까? 끝까지 읽은 후 다시 이야기를 조용히 복기하면서 하나씩 그 연관성을 되짚어본다. 촘촘하게 연결된 인과의 고리가 조금씩 이어지면서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게 된다.

켄지에게 에릭 골트가 전화를 한다. 디안드라의 사건을 의뢰하기 위해서다. 그녀는 모이라 켄지라는 여자를 만났고, 그녀가 동네 마피아 케빈의 애인이라고 말했단다. 그러다 그녀의 아들 제이슨의 사진이 우편으로 왔다. 혹시 그 마피아가 자신의 아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까 걱정이 된 것이다. 아들을 돌보며 보호해주길 바란다. 이에 이 둘은 제이슨의 일상을 따라다니며 위험 요소를 파악한다. 물론 그 전에 다른 마피아를 통해 케빈이 협박을 한 적이 있는지 확인한다. 없다. 열흘 이상 따라다녔지만 위협이 될 것이 없다. 무사한 것으로 생각하고 조사를 멈춘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한 여자가 죽었다. 그녀의 손에 켄지의 명함이 있다. 당연히 그가 경찰에 불려간다. 그가 술집에서 명함을 준 동네 미녀 카라다. 참혹하게 죽었다. 왜? 누가? 이런 일을 벌렸는지 모른다. 과거 데이터베이스를 조사하니 이와 비슷한 사건 하나가 나온다. 책형으로 죽은 남자가 있다. 아직 이 사건과의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없다고 판단한 제이슨이 산산조각 난 채로 발견된다. 이제 사건은 연쇄살인사건으로 변한다. 그리고 감옥에 갇힌 사이코 살인마 알렉 하디만이 켄지를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이 만남은 단순히 살인자와의 인터뷰가 아니다. 잊고 있던 잔혹한 과거로의 여행이다. 처음엔 단순히 불쾌한 만남이었지만 그 한 번의 만남은 뒤에 수많은 단서와 연결되면서 중요성을 더해 간다.

죽음, 살인, 공포, 위협, 고통, 불안 등이 가득하다. 힘이 지배하는 암흑가의 현실이 살아있고, 언제 살인자가 나타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지 모른다. 공포와 불안이 고조되는 것은 나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과거 속에서 하나씩 진실을 발견할 때마다 공포와 불안은 더 커진다. 자신 속에 억압되어 있던 감정이 표출되고, 현실의 어둠을 인식하는 순간 피가 들끓는다.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지 않으려고 두려워한 탓에 한계를 지었는데 이제 그 봉인이 깨어지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들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변함없이 위력적이고 매력적인 부바가 멋진 조연의 힘을 보여준다. 살인마 알렉의 모습에서 <양들의 침묵> 한니발 렉터의 흔적이 살짝 보인다. 물론 렉터 같이 무겁고 공포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그가 벌인 사건을 보면 다음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자신과 싸우면서 범인을 향해 나아가는 켄지의 모습은 역시 멋지다. 그 속에 드러나는 그의 외로움과 두려움은 대단하다. 그가 그 일을 하면서 결국 껍데기만 남을 것이라고 한 여자친구의 표현이 가슴 깊숙이 와 닿는다. 이 시리즈를 읽은 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힘든 일들을 겪고도 밝게 살아가는 모습에 놀랄 것이다. 비록 앤지의 사랑이 옆에 있다고 하여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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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미닛 룰 모중석 스릴러 클럽 22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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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두 명의 은행 강도가 은행을 털려고 한다. 기관총을 쏘고, 은행원을 겁준다. 그런데 이 둘은 너무 여유롭다. 은행을 털 때 지켜야하는 2분 규칙을 어기고 있다. 2분 규칙은 은행을 털 때 돈을 챙기든 챙기지 못하든 2분 안에 은행을 나와 튀는 것이다. 이 2분은 은행원이 비상벨을 울리고, 경찰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이다. 한껏 여유를 부리고, 돈을 챙기고 나온 그들은 기다리고 있던 경찰 병력을 맞이한다. 멋지게 총을 쏘지만 결국 죽고 만다. 사건은 종결되었다. 하지만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은행털이 맥스는 긴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한다. 이런 그에게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아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온갖 불법행위로 감옥을 들락거린 그에 비해 아들은 착실하게 자랐고 경찰이 되었다. 부전자전이란 말이 무색하게 훌륭하게 자란 것이다. 비록 그 아들이 아버지를 부정했을지라도 말이다.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총격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다. 혼자만 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동료 네 명과 같이 죽었다. 맥스가 원한 것은 누가? 왜? 죽였냐는 것이다. 그런데 경찰들이 너무 사건을 허술하게 다룬다. 화가 난다. 아마추어인 자신이 보아도 다른 범인이 있는데 사건을 빨리 종결하는 것이다. 이에 그는 도움을 요청한다. 그녀는 바로 그를 잡았던 FBI요원인 캐서린이다.

캐서린은 함께 일하던 남편 때문에 FBI를 그만 둔 상태다. 남편은 어린 다른 여자와 놀러갔다가 사고로 죽고, 그녀의 경제는 점점 나빠진다. 엄마는 새롭게 남자를 사귀라고 말한다. 삶이 정체되어 있고, 힘겹다. 그런 순간에 맥스가 보낸 한 통의 편지는 그녀를 이 허술한 조사와 뒤를 알 수 없는 사건 속으로 끌어당긴다. 맥스에 대한 의심이 마음 한 곳에 살고 있지만 진실에 대한 열망과 그 속에 담긴 옛 일에 대한 열정이 그녀를 강하게 몰아붙인다.

잘 읽힌다. 한 번 잡으면 끝을 보게 만든다.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던 맥스를 회개한 인간으로 만들어내고, 강한 부성애로 무장했다. 작가는 그에게 탁월한 능력을 주기보다 아버지의 위치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사실 머리를 쓰거나 중요한 추리를 하는 것은 캐서린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만들고,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은 역시 맥스다. 아들이 죽은 원인과 정확한 범인을 알고 싶어 하는 그의 절규는 가슴 속까지 울리게 만든다. 그가 울게 될 때 가슴 한 곳이 아리고, 그가 한계에 부딪힐 때 안타까움이 전해진다. 

속도감 있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잘 만들어진 캐릭터와 빠르게 진행되는 전개와 뻔한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경찰과 뒤에 나올지 모르는 반전은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하나씩 사실이 밝혀지고, 새로운 의문이 생기고, 묘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안타까운 사실이 드러나고, 다시 진실이 알려지는 순간 긴 숨을 내쉬게 된다. 이런 순간들의 연속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읽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경찰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맞서 아들을 둘러싼 의혹을 벗겨내려는 그의 행동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멋진 아버지의 모습이다. 진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벗어던지는 그에게 박수를 친다. 새롭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작가가 한 명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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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를렌 하우스호퍼 지음, 박광자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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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고 일어나니 투명한 벽이 생겼다. 이 벽 너머 풍경이 보인다. 그곳엔 세수하다 죽은 듯한 노인이나 나무 위에 멈춰선 새 등이 있다. 그들의 모습에서 폼페이의 화석 등을 연상한 것은 죽을 당시 표정이나 동작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하지만 벽 너머의 세계는 죽음으로 가득하고, 그녀가 머무는 벽 속의 세계는 자연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벽을 따라 혹시 끊어진 곳이 있나 찾아보지만 견고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제 그녀는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읽으면서 로빈슨 크루소가 먼저 생각났다. 고립과 외로움과 생존을 위한 노력이 비슷한 설정이다. 하지만 이 둘은 다르다. 로빈슨 크루소는 섬 밖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살아남아 구조되길 바라는 반면에 그녀는 벽 밖의 풍경 속에서 희망을 잃고 있다. 희망이 없는데 그녀는 삶을 계속한다. 도시인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지구의 종말일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말이다. 손에 물집이 잡히고, 근육은 당겨지고, 초보 농사꾼으로 살아간다. 대단하다. 삶을 포기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 강인한 생명력과 생활력은 단순한 풍경과 상황 속에서 긴장감을 전혀 늦추지 않는다. 

작가는 그녀가 홀로 살아갈 수 있는 몇 가지 상황을 만들었다. 먼저 그녀가 사는 산장이 바로 핵전쟁 등이 발생하면 오랫동안 먹고 살 식량을 비축해둔 것이고, 다음으로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줄 동물로 개 룩스와 어미 고양이 한 마리를 남겨두었다. 그리고 임신한 암소 한 마리를 주변에 놓아둬 풍부한 우유를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 중 의복을 제외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것이다. 옷이야 추위나 다른 곤충이나 벌레를 막을 정도면 되고, 옷장엔 옷들이 꽤 많다. 보여줄 다른 사람이 없으니 기본 기능만 제대로 되면 문제없다. 이런 기본에 산이란 공간이 지닌 풍부한 열매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같이 있다. 비록 그녀가 도시인으로 살아왔다고 하지만 삶을 위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살려고 하는 의지와 노력이다.

책 속에 다루어지는 시간은 2년 반 정도다. 첫해에 겪었던 시행착오가 되풀이 되는 것도 있지만 점점 적응한다. 다만 풍족하지 못한 음식과 익숙하지 않은 농사일 때문에 고생할 뿐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다. 농사일이란 것이 반복의 연속이다. 새로움도 있지만 땀과 정성으로 일궈지는 것이다. 거기다 그녀 주변에 동물들이 가득하다. 개, 고양이, 암소 등의 가금류뿐만 아니라 고기를 제공할 들짐승도 있다. 고양이와 암소는 임신한 상태고, 새끼를 낳는다. 이 가족이 점점 불어난다. 불어난 가족 덕분에 그녀의 할 일은 점점 많아진다. 쉬고 싶은 순간도 있고, 이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몸을 이끌고 생활 속으로 들어간다. 

자신만이 지구에 홀로 남은 상황에서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함께 살고 있는 동물들이다. 과거 속에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녀에게 큰 아픔이나 의미를 주는 것 같지 않다. 단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갈 뿐이다. 작가는 풍경에 대한 묘사와 그 속에 담긴 그녀의 심리와 행동을 섬세하면서도 차분하게 그려낸다. 문장은 간결하다. 감정이입을 강하게 시키지 않고 관찰자의 시선으로 설명한다. 약간 건조할 수도 있지만 덕분에 그녀가 처한 상황을 더 잘 알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사로잡은 것은 역시 홀로 남았다는 사실에 좌절하지 않고, 힘들지만 오늘 하루와 내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나라면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기는데 말이다. 다시 한 번 더 읽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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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인가? - 인류가 밝혀낸 인간에 대한 모든 착각과 진실
마이클 S. 가자니가 지음, 박인균 옮김, 정재승 감수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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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읽었다. 이 힘겨움은 나의 과학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미 알고 있는 몇 가지 사실이 나오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기초 지식이 너무 부족했다. 그러니 글자를 따라가는데 급급했던 순간도 상당히 많다. 이 책에 대한 수많은 호평을 너무 만만하게 다가간 것이다. 나의 수준을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학창 시절 과학에 약했던 지나간 과거가 갑자기 생각난 것도 이런 힘겨움 때문이다. 책 분량만 생각할 때보다 두 배 이상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다시 깊은 생각에 잠긴다.

4부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제가 HUMAN이다. 각 부의 제목에 인간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 바로 인간에 대한 연구와 그 결과물에 대한 저작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인간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에서 시작하여 더불어 살기를 거쳐 인간의 한계를 넘어 사이보그까지 이르는 장대한 여정이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인용들은 뒤에 나온 참고문헌 목록만으로 기가 질릴 정도다. 무려 60쪽에 가깝다. 이것은 이 저작이 어느 정도의 노력과 공을 들였으며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알려준다.

인간. 우리는 학창 시절 배운 몇 가지 정보로 인간을 정의한다. 직립보행, 도구 사용, 사회적 동물, 이성 등이 먼저 떠오른다. 이중에서 몇몇은 다른 동물들의 연구를 통해 인간만의 유일한 특징이 아님이 밝혀졌다. 계속되는 연구 속에서 또 다른 사실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런 지엽적인 사실이 인간을 규정하는데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가진 수많은 고유성이나 다른 동물과 다른 특성들 때문이다. 

책의 기본 전제는 진화론이다. 침팬지와 인류가 같은 조상에서 갈라졌다고 생각한다. 이 둘이 나누어진 이유에 대해서 현재는 정확한 답을 제출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둘의 비교 연구를 통해 인간이 지닌 특성을 발견한다. 수많은 사실 중 엄지손가락 이야기는 새롭고 놀랍다. 그리고 저자가 인간의 뇌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 “다시 말해 더 많은 자손을 생산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자연선택을 통해 안착한 기묘한 장치”(48쪽)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인간이 어떻게 발전했고 발전할지 생각하게 되었다.

뇌란 기묘한 장치 연구를 통해 사회적 관계로 이야기는 나아간다. 사회집단과 뇌와 윤리에 대한 연구는 기존에 알고 있던 일화와 다른 심리학 서적에서 이미 만난 부분이 있어 비교적 가볍게 읽었다. 하지만 다시 세부적인 사항으로 들어가면서 깊이 있는 분석이 이루어진다. 과거의 학설이 뒤집어지고, 새롭게 등장한 이론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만든다. 특히 모방에 대한 설명은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한다. 인류가 언어와 상상을 통해 감정을 모방하고, 관점을 이용해 모방을 바꾸는 등의 능력으로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고 하는 순간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이란 없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제 저자는 예술이란 형이상학적 현상으로 넘어간다. 동물에게 예술이 없다고 말하며 이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 우리가 다른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게 만들고 발전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 덕분에 끊임없이 새롭게 등장하는 불확실한 가능성을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의 전문분야인 분리 뇌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의식이란 단계로 나아간다. 이 부분은 놀라운 예시가 나오면서 흥미를 불러온다. 

4부이자 마지막 장에서 사이보그를 다룬다. 이것은 현재 인류를 기능적 사이보그란 의미에서 파이보그로 규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파이보그란 기술 연장을 통해 기능적인 면을 보충한 생물학적 유기체란 의미다. 예로 들면 신발을 신거나 옷을 입는 등의 몸을 보호하는 기능적인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현재 과학자들이 다루는 인공지능이니 인간의 새로운 장기를 대체할 연구들을 짚으면서 넘어간다. 물론 윤리적인 문제나 미래에 발생할 논쟁이나 한계도 같이 다룬다. 이 속에 만나게 되는 정보들 중 몇몇은 이미 다른 매체나 영화 등에서 만난 부분이다. 

너무 방대한 영역을 다루면서 넘어가기 때문에 앞에서도 말한 나의 한계를 절감한다. 과학뿐만 아니라 비교학, 사회학, 심리학, 의학, 예술 등을 같이 다루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뇌가 있다.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이나 호평을 한 사람들이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고 하는데 왜 나는 어렵고 힘들게 읽었는지 모르겠다. 어찌하든 이 분야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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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2만리 아셰트클래식 1
쥘 베른 지음, 쥘베르 모렐 그림,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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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어린 시절 어린이 축약본으로 나온 책을 읽었다. 읽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강한 인상을 받은 모양이다. 점점 자라면서 다른 책으로 넘어갔고, 읽었다는 기억 때문에 원전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쥘 베른 전집이 나온 것을 계기로 한두 권 사고, 다시 읽게 되었다. 몇몇 부분에선 황당했지만 박물학적 지식은 대단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최근 SF소설이나 모험소설에 적응한 나에게 조금은 강한 인상을 주는데 부족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나의 부정확한 기억이다. 화자인 박물학 박사 아로낙스가 어떻게 네모 선장을 만나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틀린 기억들이 가득하다. 이 기억들 덕분에 물론 새로운 느낌으로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읽기 전에는 전혀 중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두 동반자를 만나서 반가웠다. 한 명은 하인 콩세유고, 다른 한 명은 작살잡이 네드다. 이 둘은 한정된 공간과 바다를 탐험하는 속에서 박사에게 인간적인 면을 부여하고, 웃음을 던져주는 역할을 한다.

노틸러스 호에 그들이 타게 된 것은 이 잠수함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 때문이다. 떠다니는 암초니 거대한 고래니 괴물이니 하는 소문 등으로 그 정확한 정체가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잠수함이란 것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잠수정 같이 조그마한 것은 있었다. 하지만 대양을 운행하는 기선에 구멍을 낼 정도의 거대한 잠수함은 없었다. 그러니 현재처럼 정확한 측정 도구나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잘못 알게 된 것도 당연하다. 이 잘못된 정보와 우연이 겹치면서 박사 등이 노틸러스 호에 탑승하게 된다.

박물학자에게 현장에서 직접 연구하고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아로낙스 박사가 노틸러스 호에 타고 바다 속을 탐험하면서 겪게 되는 모험과 연구 등은 자신뿐만 아니라 독자에게도 유익한 일이다. 나 같이 무식한 인간이 바다 속을 열심히 들여다봐야 물고기와 오징어 와 조개 등으로 두루뭉술하게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화자가 박물학 박사 아닌가! 그는 놀랍고 신난 모험 속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생물체들을 우리에게 하나하나 소개해준다. 이런 박물학적 지식은 읽는 내내 놀라움과 새로움을 준다. 

풍부한 박물학적 지식과 많은 삽화들은 원전이 지닌 가치를 더 높여준다. 수많은 생명체에 대한 정확한 묘사는 눈앞에 보이는 것 같고, 책 중간중간에 들어있는 삽화는 실제로 눈앞에 그것을 보여준다. 내가 알고 있던 바다 속 풍경과 과학적 지식이 얕아 그 엄청난 정보들을 제대로 판별할 수 없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어디가 정확한 정보고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인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부족한 과학 지식과 더불어 또 하나 아쉬웠던 것은 노틸러스 호에 탄 선원들이다. 네모 선장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박사 일행과 대화를 나누거나 개인적인 접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10개월이 넘는 시간과 그들이 지구의 바다 속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것을 생각하면 의외다. 물론 이들이 함께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하거나 죽은 이를 추모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이는 순간은 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박사 무리와 선원들 사이는 알 수 없는 벽으로 갈라져 있는 것 같다. 인간적인 접촉이 거의 없다는 사실 속에서도 바다 속 풍경의 신비함과 놀라운 정보들이 주는 재미가 강하다. 이것이 단순히 이야기의 속도와 박물학적 지식과 상상력의 산물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요즘 소설에 영향을 받은 나의 착각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19세기 소설이다 보니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될 장면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놀라운 것은 시대를 앞선 상상력의 산물들이다. 잠수함부터 시작하여 기발하고 놀라운 상상력은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어떤 부분에선 이 책을 읽었던 것 때문에 기억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상상한 것이 그대로 나타난 것인지 헛갈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 하나는 쥘 베른의 독실한 마니아가 혹시 잠수함을 타고 노틸러스 호의 경로를 따라간 적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현실과 소설의 비교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마지막까지 밝혀지지 않은 네모 선장의 비밀이 궁금했는데 역자 후기를 보니 작가의 다른 책 <신비의 섬>에서 밝혀진다니 한 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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