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홈즈걸 1 -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명탐정 홈즈걸 1
오사키 고즈에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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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이 책 어디에도 홈즈걸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제목을 정하면서 출판사 측에서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서점 속에 존재하는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두 콤비 교코와 다에를 보면 명탐정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가 생각날 수도 있다. 다만 그 명탐정이 홈즈 같은 놀라운 추리력에 비해 약간 덤벙거리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처음에 서점 미스터리란 소개 글을 보고 반가웠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늘 서점에서 신간과 사고 싶은 책을 둘러보는 나의 생활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을 둘러싼 미스터리란 점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이다. 거기에 홈즈걸이란 멋진 명칭으로 유혹하고 있지 않는가! 책에 관한 사건에 흥미진진한 일상 퍼즐 추리극이라니 호기심이 하늘로 치솟는다. 표지가 주는 느낌이 약간 불만이지만 이런 정보는 나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손을 벋게 만들었다. 

작가 자신이 서점 직원 출신이다. 13년을 근무했다니 서점과 관련된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이 단편들 속에 녹아 있는데 한때 서점 직원을 동경했던 나에게 아주 흥미롭고 즐거운 정보였다. 그리고 또 예전에 서점 직원이었던 누군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서 직원들이 많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쓴 것을 읽었다. 그런데 이 소설 속 화자인 교코도 책을 좋아하는 것에 비해 많은 양의 책을 읽지는 않는다. 이 두 정보가 모든 직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왠지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모두 다섯 편의 연작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책과 관련된 미스터리를 다루는데 한 편 한 편이 재미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역시 일본소설이다 보니 트릭이나 기초 정보들을 우리가 쉽게 풀 수 없다. 탐정 역을 하는 다에의 해설을 통해서만 그 트릭의 기발함이나 추리력에 감탄할 뿐이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느냐? 아니다. 트릭이나 미스터리를 제대로 풀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 미스터리와 연결되어 이루어지는 사건이나 인연이 즐겁고 재미있다.

첫 작품인 <판다는 속삭인다>는 어딘가에 본 듯한 결말이다. 정말 일본어를 모른다면 풀 수 없는 트릭이다. 거기에 일본책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반가운 이름들과 작품들이 나와 반가웠고, 명콤비의 탄생을 보는 재미가 가득하다. <사냥터에서, 그대가 손을 흔드네>에서 혹시 범인일까 생각한 사람을 맞추지 못했다. 선입견과 굳어버린 상상력이 문제다. 꽃미남의 매력은 긴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배달 빨간 모자>는 가장 활동적인 단편이다. 공간이 서점을 벗어나 밖으로 향한다. 오해와 착각과 습관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사건이 웃음을 자아낸다. 가장 미스터리답다는 평가에 고개를 끄덕인다. <여섯 번째 메시지>에서 만나게 되는 인연은 역시 책이다. 한쌍의 연인이 탄생하는 과정을 그려내는데 과연 이루어질까 하는 의문도 있지만 그 결과가 궁금하다. 마지막 단편 <디스플레이 리플레이>의 후반부에서 하나의 추측이 맞아 떨어졌다. 또 읽은 책이 어떤 프로모션을 했는지 알게 되고, 서점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앞 작품에 비해 다에의 활약이 조금 약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스터리가 펼쳐지는 공간은 역 빌딩 6층의 100평 정도 서점 세후도다. 이 가상의 공간을 작가는 서점에서 일하는 동안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나 일상의 업무를 꼼꼼하게 메모하였고, 이것을 바탕으로 썼다. 그래서인지 더 현실적이면서 흥미롭고 재미있다. 이번 소설집에선 세후도를 잘 벗어나지 않지만 다음 이야기에선 공간이 확장되는 모양이다. 이 두 콤비의 다음 활약을 보고 싶은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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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 1 - 神秘
하병무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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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하병무의 소설을 읽는다. 예전에 <남자의 향기>가 집에 있길래 단숨에 읽은 기억이 난다. 어렵지 않고 평이하면서 쉽게 읽히는 글을 쓴다는 느낌이었다. 그 후 한 권 정도 책을 더 산 기억이 나는데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소설은 나의 우선순위에 올라갈 정도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 책을 선택했냐고? 바로 소설의 주인공이 광개토태왕이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는 학창 시절부터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좁은 한반도를 넘어 광활한 대륙을 웅비했기에 강한 자부심과 잃어버린 대륙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남겨주었다.

광개토태왕에 대한 자료는 충분하지 않다. 그 유명한 광개토태왕비는 일제의 왜곡으로 항상 역사 논쟁이 벌어지고, 그 장대한 비석은 중국의 수중에 보관되고 있다. 고구려에 대한 기록이라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기록된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 시대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작가의 상상력이 필수적이다. 부족한 사료와 정보는 작가에게 축복일 수도 있고, 재앙일 수도 있다. 그것은 작가의 역량에 달려 있다. 그럼 이 소설의 작가는 어떨까? 좋은 평가를 주기 어렵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광활한 대륙의 정복자였던 호태왕이 39세 죽은 것을 작가는 새롭게 해석한다. 병이나 적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떠난 것으로 그려내었다. 이 하나의 설정을 위해 작가는 무리한 상황을 집어넣고, 정복자 광개토태왕이 아닌 한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인 담덕을 창조한다. 그가 만들어낸 담덕은 무패의 장군이자 정복자이자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태왕의 사실에 바탕을 둔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단지 한 여자를 사랑하기 위한 초석일 뿐이다. 첫사랑을 향한 그 노력과 순정과 사랑은 그의 위대한 업적을 한 순간에 뒤엎어버린다. 과거의 시간 속 위인에게 현재의 관념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바로 여기서 역사소설이 아닌 판타지 로맨스로 바뀐다.

신비는 무신비기에서 무와 기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빛이 바랜 탓이다. 작가는 초반 설정에서 이 책을 조선족 노인이 땅을 파다 발견한 것을 디카로 찍은 후 한 역사학자의 노력 끝에 번역한 것을 올리는 형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책의 저자로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왕의 호위무사이자 내관이었던 두절이란 인물을 창조했다. 이 책은 그의 기록이자 회상록이기도 하다. 한 위대한 태왕의 기록이자 자신의 삶이면서 사랑의 흔적을 담아낸 것이다. 읽다 보면 가끔 가슴 아리고 뭉클하고 벅찬 순간을 맞이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것은 사랑과 위대한 업적 때문이다.

이전에 읽은 작가의 다른 책처럼 잘 읽힌다. 진도가 잘 나간다. 하지만 읽다 보면 논리에 맞지 않거나 역사적 사실과 다른 상황과 단어들 때문에 멈칫거리고 주저하게 된다. 광개토태왕을 너무 부각시키기 위해 적들이 너무 약하거나 쉽게 무너진다. 그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조세정책을 늘어놓거나 옥수수나 감자가 등장한다. 새롭게 연구되고 있는 고구려에 대한 해석을 곳곳에서 만나지만 고구려 왕가에 대한 시선은 너무 강경하다.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고증이나 사실을 따지면 너무 쉽게 무너질 상황이 보인다. 최근에 나오는 역사 드라마들이 판타지로 변질되어 역사 왜곡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이 소설을 한 위대한 남자의 순애보로 읽는다면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추상적이었던 광개토태왕의 진정한 실체를 알고자 했다면 잘못된 선택이다. 아니 일정 부분에서 그의 위대한 업적이 나오니 그 부분은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실망이 작가의 실수보다 너무 많은 기대를 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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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살인 사건
크리스티나 쿤 지음, 박원영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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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카프카의 소설을 읽은 것은 지적 허영심 때문이었다. <성>이나 <심판>을 읽으면서 전혀 감을 잡지 못했던 내가 한 가지 재미를 느낀 것은 문장이었다. 집중해서 이야기는 잘 따라갔지만 전체적인 윤곽을 잡지 못했다. 난해하고 어렵고 이해 못하니 지루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권을 다 읽은 후 느끼는 뿌듯함은 허영심을 채워주기 충분했다. 그 시절 얼마나 많은 고전 문학을 읽고 읽은 티를 내었던가! 

제목만 보면 카프카가 탐정이거나 죽은 이유에 대한 추리소설 같다. 아니다. 이 소설에서 카프카는 그런 역할과 전혀 관계없다. 그는 살인자가 살인을 하는 이유와 그 속에 감춰진 심리를 표현하는 하나의 장치다. 카프카의 유작으로 만들어진 단편은 살인을 위한 시나리오 역할을 한다. 그리고 카프카 전문학자인 허스 교수는 카프카를 새롭게 해석한다. 이 분석은 놀랍고 끔찍하고 대단하다. 또 이 분석은 소설 속에서 살인자를 이해하는 하나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지적 추리소설이란 말도 있지만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한 여자가 죽고, 그 시체가 발견된다. 부검 결과 맞아 죽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그 누구도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다. 끔찍한 사건이다. 그녀가 죽은 얼마 후 또 한 명이 죽는다. 입은 꿰매지고, 시체는 한참 부패했다. 이 둘과 관련된 한 명이 용의자로 잡힌다. 그 사이에 담당 검사는 바뀌지만 결국 다시 담당이 된다. 용의자를 풀어주려고 했는데 그가 자살한다. 그를 용의자로 생각하게 된 것은 살인사건과 동일한 내용의 단편소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은 카프카의 초고처럼 꾸며져 있다. 이 원고를 발송한 메일 주소를 찾아 그를 범인으로 생각한 것이다. 세 번째 단편이 오고, 또 다른 살인사건이 벌어질 예정이다. 검사와 형사는 다음 사건을 막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다.

결국 죽고 놀라고 조사하고 쫓고 죽고 잡고 아니고 다시 쫓고 잡는다는 내용이다. 간결하게 적으니 더 어려워 보인다. 처음 죽은 그녀는 거절하지 못하는 착한 성격이고, 붉은 옷을 입고 춤을 추다 맞아 죽었다. 이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처음 그녀가 죽는 장면을 읽으면서 진짜 죽은 것인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그녀의 죽음을 조사하는 미리암 검사와 형사 반장 헨리는 연인이지만 결혼과 아이 문제로 냉전기를 가지고 있다. 이때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냥 참혹하고 놀라운 살인사건으로 생각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미리암에겐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다. 여기에 그녀 개인적인 일까지 겹치면서 이야기는 조금 복잡해진다. 감정의 흐름이 이어지면서 잔혹한 이야기에서 눈길을 돌리게 만든다. 

작가가 카프카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그가 쓴 것으로 나오는 단편소설 두 편 때문이다. 이 두 편을 읽으면 상당히 불편하다. 살인사건의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허스 박사를 등장시켜 카프카의 숨겨진 의도를 새롭게 해석하기도 한다. 이런 설정들이 카프카를 부각시켜준다. 하지만 두 번째 죽음을 발견할 때 범인이 드러난다. 단서와 죽음과 관계와 죽기 전 대사나 반응 속에서 그를 가리키는 손길이 발견된다. 혹시 다른 반전이 있나 기대했지만 역시 없었다. 그리고 살인의 이유를 보여줄 때 왠지 모르게 긴장감이 풀린다. 그 이유를 완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쉽고 빠르게 읽힌다. 복잡한 것 같지만 단서를 쉽게 드러낸다. 후반으로 가면서 눈에 확 들어온다.(어쩌면 운 좋게 발견할 것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 불만이 있다. 그것은 복잡하지도 않은 구성에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살아있지 않은 것이다. 검사나 형사가 가운데서 중심을 잡아주고 사건을 집요하면서 치밀하게 쫓아야 하는데 그런 점이 약하다. 전문성이 부각되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아쉬운 점이 카프카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상상력을 약하게 만든다. 하지만 아직 읽지 않은 카프카의 단편을 읽게 되면 이 소설이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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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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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잠에서 깬다. 그가 먼저 생각하는 것은 ‘지금’이란 시간과 ‘여기’란 공간에 대한 인식이다. 왜 이런 머리 아픈 생각을 하면서 잠자리에서 일어날까? 바로 여기서 소설은 시작되고, 이 인식이 왜 일어났는지 주인공 조지의 하루를 통해서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오는 하루고, 매일 반복되는 하루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 하루가 전 생애를 요약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도 한다.

조지는 58세의 대학교수다. 동성애자다. 그의 젊은 애인 짐은 한 여자와 여행을 하다 교통사고로 죽었다. 이런 과거의 사실과 점점 늙어가는 그의 육체를 생각할 때 늘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가 결코 상쾌하고 즐겁지는 않다. 반복되는 일상의 흐름은 사랑하던 사람이 죽은 것과 상관없이 계속 이어진다. 상실감은 한없이 커지지만 아직 일상 속에서 그 공백이 메워질 정도는 아니다. 작가는 한 늙은 동성애자를 등장시켜 그 상실감과 함께 일상 속에서 다시 다가오는 유혹과 현실에 대한 비판을 조용히 담아낸다.

이 소설이 처음 나온 것이 1964년이다. 시간적 배경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1962년이다. 여기엔 냉전 시기의 두려움과 공포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가 깔려있다고 한다. 그 유명한 쿠바 미사일 사태다. 이것은 책 중간에 미사일 반대란 구호로 잠시 드러난다. 2차 대전이 끝난 지 십 수 년에 불과한 현실과 원자폭탄의 존재는 그 시대의 사람들을 상당히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여기에 민주주의의 장점이자 단점인 다수결에 의한 문제와 소수집단에 대한 배척을 살짝 언급하거나 중심에 놓아둔다. 

책을 읽으면서 동성애를 다루었다는 사실보다 작가의 거침없는 문장과 사실적인 감정 표현에 놀란다. 노골적인 표현은 그 시대를 생각하면 더욱 놀랍다. 이성애자인 남자가 멋진 몸매를 가진 여자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남자들에게 똑같이 느끼는 것을 보면서 성에 대한 선호도는 달라도 욕망은 진솔함을 느낀다. 또 그가 강의할 때 그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동양여자에 대한 약간의 환상이나 동양인이나 흑인 등의 소수집단에 대한 그의 반응과 인식은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준다. 

하루는 긴 시간인 동시에 아주 짧은 시간이다. 일어나고 씻고 운동하고 강의하고 식사하고 친구를 만나 술 마시고 제자와 함께 술을 마시고 토론할 정도로 긴 시간이지만 긴 삶의 순간에선 그냥 하루일 뿐이다. 이 하루가 조지와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것은 그 순간들이 인생의 어떤 전환점이 되거나 큰 변화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단지 이 하루가 현재 삶을 가장 잘 표현해주었기 때문이다. 상실과 회복과 반복을 통해 그의 현재를 보여준다. 정체된 듯하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삶 말이다. 상실과 외로움이 점점 짙어지는 현실에서 깨어남과 잠듦이란 두 행위를 통해 탄생과 죽음의 두 순간을 표현하고, 하루란 시간을 통해 인생이란 시간의 의미를 말한다. 너무 과장된 해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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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트 - 연쇄살인범 랜트를 추억하며
척 팔라닉 지음, 황보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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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그 유명한 영화 <파이트 클럽>을 보지 않았다. 영화를 무지 좋아하는 내가 가끔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를 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작품이 그렇다. 한 번 시기를 놓치면 그냥 못보고 넘어간다. 그런데 워낙 영화가 유명하고, 작가 척 팔라닉에 대한 칭찬이 많아서 소설은 읽었다. 빠르고 가볍고 쉽게 읽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니다.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었고, 이야기 서술 방식도 난해했다. 그 후 몇 권을 더 샀지만 괜히 손이 나가지 않았다.

이번 신작도 손이 쉽게 나가지 않았다. 구술 전기라는 새로운 형식을 선보였다고 했을 때 호기심을 자극했다. 몇 쪽을 읽고 마음에 맞지 않으면 좀 뒤로 미루거나 다른 책을 보면서 틈틈이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초반 몇 쪽이 상당히 신선하다. 한 인물을 이야기하는데 그 대상은 등장하지 않고, 그를 경험한 사람들만 나와서 그에 대해 이야기한다. 왠지 모르게 끌린다. 첫 부분부터 새로움과 한 인물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흥미를 느낀다. 이렇게 앞의 몇 장을 지난 후 다시 그가 지닌 난해함과 마주한다. 

‘연쇄살인범 랜트를 추억하며’란 부제가 붙어 있다. 처음 이 문구를 보았을 때 얼마나 대단한 살인자인지 궁금했다. 서장에서 랜트를 걷고 말하는 대랑 살상 생체 무기로 표현하는 것을 읽으면서 얼마나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펼쳐질까 잔뜩 기대했다. 그런데 아니다. 표지 밑에 나오는 문구를 간과한 것이다. 그는 총이나 무기를 들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하나의 광견병원체로서 사람들에게 광견병을 옮길 뿐이다. 그와 키스를 하거나 그의 침이 묻어 있는 도구를 같이 사용할 경우 광견병에 걸린다. 그에게서 시작한 이 병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하나의 신화와 전설로까지 발전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과정과 그 중심에 있는 랜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역자가 말한 것처럼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랜트가 태어나고 자란 곳, 도시로 나와 살았던 것, 그의 사후 그 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많은 논쟁과 가정들. 그의 출생과 성장을 보면 남다르다는 표현이 그에게 딱이다. 그가 지닌 탁월한 능력도 흥미롭지만 그가 마을에서 벌인 몇 가지 작업이 더 눈길을 끈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으로 희귀 금화를 발굴하여 한 마을 경제를 뒤흔들어 놓거나 놀랍고 역겨운 장난을 펼친 것이다. 물론 그의 부모나 외가 쪽 사연도 뒤로 가면서 놀라운 사실 혹은 가정으로 앞의 이야기를 뒤흔들어 놓는다.

대도시로 나온 그가 자동차 충돌파티족과 함께 하는 순간 분위기는 바뀐다. 한적한 시골의 풍경은 사라지고 뒤틀리고 괴이한 미래 풍경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주간 혹은 야간활동자로 나누어지고, 이 둘은 통행금지에 의해 정확히 분리된다. 랜트가 어울리는 사람들은 당연히 야간활동자들이다. 그를 통해 광견병이 확산되는데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마지막에 가면 정부에 의해 확대 해석된 부분이 있다는 의문을 나타낸다. 그리고 수많은 화자들의 이야기 사이에 인류가 맞이했던 무시무시한 전염병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가 퍼트린 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려준다.

랜트의 죽음 후 그와 관련된 사람들은 놀랍고 새로운 이야기를 한다. 그가 시간여행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이야기의 흐름은 바뀐다. 할아버지 가설을 놓고 논쟁하고, 그의 실체에 대한 현재의 모습을 설명하고, 과거의 의문을 풀어낸다. 수많은 사람들이 본 현실을 생각하면 분명하다. 하지만 인간이 가진 고집과 한계는 이것을 부인한다. 모순과 충돌이 일어나고,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점점 이야기 속에 빠져들고 작가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이 작품은 분명히 쉽지 않다. 특히 앞부분은 흥미롭지만 난해하고 지루할 때도 있다. 완성된 인간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우리가 스스로 한 사람을 완성해야 한다. 그의 실체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꼼꼼하게 읽어야 하고, 작가가 제시하는 단어와 상황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전염병, 종교, 정부의 조작, 인종 차별, 인간 차별, 시간여행, 불멸 등을 다루면서 한 인간의 이야기 속에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담아낸다. 난해하고, 흥미롭고, 재미나고, 역겹고, 때로는 지루하지만 그 세계 속을 헤엄치다보면 이전에 간과했던 척 팔라닉의 매력과 재미를 깨닫게 된다. 이제 다른 책도 다시 손에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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